뿌리를 옮겨 새로이 정착한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신선한 시각이 있다. <윤영호가 채취한 목소리>로 전쟁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전달해 온 윤영호 필자가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인터뷰를 시도했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카자흐스탄에서 나고 자라, 터키에 정착한 국제 정치학자인 아나르 소문추올루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구소련의 아이였지만, 지금은 러시아와 미국의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맞서는 터키에 정착한 아나르 소문추올루. 소비에트, 카자흐, 터키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골고루 가진 그의 시선에서 바라 본 우크라이나 전쟁. [편집자 주]

✔ 소련에서 나고 자란 러시아어 사용자 카자흐스탄 정치학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위협에 내 일처럼 공감되는 상황✔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러시아에 끌릴 매력이 전혀 없어✔ 단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간절히 원할 뿐

소문추오글리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친 지한파로 한국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은 편이다.

러시아 전쟁사를 이야기할 때, 터키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야기할 때도 터키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이 전쟁은 2014년에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우크라이나인이 러시아에게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땅을 차지했고, 우크라이나인의 마음을 잃었다. 러시아에게 흑해에 있는 크림반도가 중요한 이유는 크림반도가 바다로 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흑해는 터키에 속해 있는 다르다넬스 해협(Dardanelles Strait)[1]과 보스포러스 해협(Bosphorus Strait)[2] 없이는 내해에 불과하다. 소련의 스탈린은 두 해협을 확보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고, 위협을 느낀 터키는 NATO에 가입하길 원했다. NATO는 터키 가입을 거부했고, 터키는 믿을 수 있는 동맹국임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결과적으로 한국인에게 형제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을 모두 차지하려는 야심을 들어냈다. 터키는 이 전쟁을 다른 나라의 전쟁으로 볼 수 없으며, 보는 속내 또한 간단하지 않다.

터키 국제정치학자 아나르 소문추올루(Anar Somuncuoğlu)를 만나 터키의 시각으로 보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아나르는 터키 앙카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후 과정을 보냈다. 그녀는 한국어 소리에 매력을 느끼며, 한국과 관련한 모든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시간 날 때마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로 된 콘텐츠를 즐긴다. 한국인의 생각과 감정을 잘 아는 그녀는 우크라이나, 미국, 러시아, 터키와 카자흐스탄의 관계를 한국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냈다.

우크라이나를 외국이 아닌 조국의 일부로 인식하는 러시아

:소개를 부탁합니다.

아나르: 나는 아나르입니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있는 하제테페(Hacettepe) 대학교 교수로 러시아, 코카서스[3]와 중앙아시아 국제관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975년에 소련의 일부였던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고, 소련이 해체된 직후인 1992년에 터키로 와서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터키 국적을 가지고 있고, 터키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소문추올루라는 이름은 남편 성을 따른 것입니다. 결혼 전 성은 아이우포바(Ayupoval)입니다.

: 처음 전쟁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한 생각이 들었나요?

아나르: 내가 태어난 카자흐스탄 북부는 러시아와 매우 가까운 곳입니다. 내 모국어는 러시아어였고, 카자흐스탄을 떠날 때까지 카자흐어는 잘 몰랐어요. 터키에 와서 터키어를 배웠고, 터키어와 유사성이 있는 카자흐어를 나중에 배웠어요.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살았고, 러시아어 학교에 다녔고, 철저하게 소련의 아이로 자랐습니다. 러시아화된 지역에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내 고향이 동부 우크라이나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연구원으로서 이 전쟁에 대해 깊고도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소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은 우크라이나를 어떤 외국이 아니라 조국의 일부로 인식한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전쟁이 시작으로 우크라이나 전체가 붕괴될 가능성에 경악했습니다. 러시아 연구자로서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을 쉽게 물리칠 정도의 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던 2014년 상황이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번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습니다.

윤: 크림반도 병합 당시의 상황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아나르: 당시 우크라이나 군과 경찰에는 러시아 요원들이 많았고, 우크라이나는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죠.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에 거의 힘을 쓸 수가 없었어요. 그런 상황이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일어난다면, 러시아군 숫자가 우크라이나군을 제압하기에 충분하지 않더라도 우크라이나 전역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한 것이죠.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쪽은 오히려 러시아군입니다.

나치의 키예프 폭격 떠오르게 한 푸틴의 키예프 공격

: 러시아 외교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 전쟁을 예상했나요?

아나르: 솔직히 말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변에 군대를 집결하고, 우크라이나를 위협한다고만 생각했지, 전쟁이 실제로 발발할 줄은 몰랐습니다. 전쟁을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세가지를 들 수 있어요. 물론 핑계지만요. 첫째, 군사 전문가들이 러시아 군의 숫자가 본격적인 침공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둘째, 러시아 정부는 자국 내에서 프로파간다를 충분히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프로파간다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매우 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특별한 이상징후는 없었습니다. 셋째, 소련에서 살아본 경험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일으킨다는 생각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소련 시대를 살았던 사람 중에 러시아인이 우크라이나인의 삶을 산산조각 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러시아가 언젠가는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해 노력할 것이란 것을 분석가들이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감정적으로 이번 전쟁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소련의 모든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6월 22일 4시 정각에 그들은 키예프를 폭격했고, 우리는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라는 가사로 시작합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시작되는 날, 러시아는 키예프를 폭격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소련을 살아 본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반향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왜냐면 나치 독일이 키예프를 공격한 것과 러시아가 키예프를 공격한 것의 유사성이 즉각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앞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이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하늘이 땅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비현실을 느꼈습니다. 하늘은 나의 어린 시절 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 러시아가 전쟁 전에 충분한 프로파간다를 하지 않은 것 때문에 이번 전쟁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었는데, 전쟁 초기 러시아인은 대부분 우크라이나인에 동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적대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러시아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프로파간다를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전쟁 전에 특별한 프로파간다가 없었다는 것은 러시아도 전쟁 시작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나르: 그것은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현상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현상 속에서 전쟁 징후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지, 그것이 러시아에게 전쟁의도가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터키인의 감정은 서구인과 어느 정도 연동되어 있어

: 터키 사람은 이 전쟁에 대해 어떠한 입장인가요?

아나르: 터키 여론에 대해 묻는다면, 믿을 수 있는 대규모 조사는 보지 못했습니다. 학계에서 본다면, 양쪽 모두를 똑같이 비난하는 사람들이 한 부류를 이루고, 러시아보다는 서방과 우크라이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다른 한 부류를 이룬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어요. 물론 이것이 터키인이 러시아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있다거나 우크라이나에 반대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질문이 전쟁 자체에 관한 것이냐 국제관계 전반에 관한 것이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수 있어요.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하더라도 그 답 뒤에는 아주 다양한 감정이 있어요. 그러나 그 감정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자체와는 관련이 없을 때도 많아요.

: 그렇다면 이번 전쟁에 대한 터키인의 감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감정보다는 서구에 대한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까?

아나르: 그렇습니다. 이번 전쟁에 대한 터키인의 감정은 미국과 터키 관계, 터키와 중동에 대한 미국의 대외정책과 관련이 있습니다. 터키인이 미국에 대해 가지는 미움의 깊이를 한국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냉전 기간 동안 터키는 한국과 같이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었고, NATO의 전진 기지였습니다. 그러나 터키는 이 지역의 초강대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후계자로서 미국이 그려 놓은 선 안에서만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독립적인 이해관계가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대중동 정책은 항상 강압적이었고, 터키를 자극했습니다. 러시아의 이해는 구소련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던 데에 반해 미국의 이해는 중동 일대에 광범위하게 존재했기 때문에 터키는 러시아보다는 미국과 자주 의견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하기에 미국이 러시아보다 더 큰 위협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2011년 PKK 테러로 터키군 26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민족주의 단체들이 PKK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사진:셔터스톡)

터키와 미국간 충돌의 핵심 PKK

:구체적으로 터키는 미국과 어떤 충돌을 일으켰나요? 충돌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아나르: 터키와 미국의 관계에서 S-400 위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위기는 터키가 러시아 방공 시스템을 구매하는 것을 미국이 반대한 일입니다. S-400은 문제의 표면에 불과합니다. 터키가 러시아 무기를 구매하는 것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절대적 우위를 견제하기 위한 시도일 뿐이며, 무기 그 자체는 없어도 그만입니다. 문제는 PKK[4]로부터 터키가 공격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PKK는 터키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모든 동맹국이 테러조직으로 지목한 단체입니다. PKK는 쿠르드족을 터키로부터 분리하여 독립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마르크스-레닌주의 테러 조직입니다. PKK의 테러로 인해 40,00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터키가 수년간 이러한 활동을 진압하지 못한 이유는 PKK가 인근 이라크와 시리아에 기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리아에는 PKK의 지부인 PYD[5]가 있습니다. PYD는 시리아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자 북부 시리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미국은 PYD가 이슬람국가(IS) 테러조직과 싸우고 있다는 핑계로 PYD에 정치·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PYD와 PKK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PYD를 계속 지원했습니다. 이것이 미국과 터키 갈등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터키 국민 다수가 미국의 저의를 의심하는 이유이며, 심지어 미국을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입니다.

터키 사람은 미국이 이라크와 시리아를 효과적으로 분열시킨 후에 터키를 분열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미국이 쿠르드 민족주의를 상황에 따라 활용하고 있고, 그러한 미국의 태도가 터키의 단일성을 헤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중동에서 미국이 하는 것을 본 터키 사람은 미국이 다른 곳에서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터키가 미국을 반대하고, 러시아를 지지할 것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나르: 물론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전쟁의 본질에 경악했고, 어쨌든 터키는 여전히 서구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오스만 제국은 수세기 동안 러시아 제국과 전쟁을 벌였고, 이 전쟁에서 광대한 영토를 잃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로 인해 터키인 일부는 여전히 러시아를 오스만 제국을 분열시킨 제국주의 열강 중 하나로 생각합니다. 러시아에 대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터키인은 우크라이나를 전폭 지지합니다. 그러나 전쟁의 양 당사자를 함께 비난하는 사람이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주관적 관찰일 뿐입니다.

: 카자흐스탄 사람은 이 전쟁을 어떻게 봅니까?

아나르: 외부에서 보기에 대다수 카자흐스탄 사람이 러시아를 지지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상황이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러시아인은 러시아를 지지하고, 카자흐인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합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카자흐스탄에 있는 사람 중에 러시아를 지지하는 사람을 두 명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러시아 뉴스 채널과 인터넷 소스가 카자흐스탄에 깊숙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중개자 없이 직접 러시아어로 자신의 생각을 카자흐스탄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카자흐스탄 사람은 러시아어를 아주 잘 알고 평소에도 러시아어 출처에서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서방이나 우크라이나는 그렇게 전달할 수는 없죠. 그러한 환경을 감안한다면 카자흐스탄 사람의 러시아 지지는 러시아가 원하는 정도와는 상당히 동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또한 나의 주관적인 관찰일 뿐입니다.

국제정치 환경에 대한 책임과 전쟁에 대한 책임은 엄연히 달라

: 다시 말해 터키는 외부인이 보는 것만큼 미국을 지지하지 않으며, 카자흐스탄은 외부인이 보는 것만큼 러시아를 지지하지 않는군요. 국제정치학자로서 당신은 이 전쟁을 어떠한 감정과 어떠한 이성으로 보고 있습니까?

아나르: 감정적으로 나는 이번 전쟁에 철저히 반대하며, 우크라이나에 큰 동정심을 느낍니다. 이번 전쟁을 이성적으로 다룰 때는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미국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이는 자주 러시아를 지지하거나 동정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전쟁 전까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국제정치 환경에는 러시아의 책임이 있고, 미국의 책임이 있습니다. 미국에게 더 많은 책임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 자체의 책임과는 다른 것입니다. 전쟁의 시작은 러시아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시카고대학교 교수인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의 말처럼 미국이 러시아를 자극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걸 전쟁으로 해결하겠다는 결정은 러시아의 결정입니다. 그런 러시아 결정은 나와 같은 국제정치학자의 지지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을 완전히 배제해 버린 것은 러시아이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 대한 책임은 러시아에게 있는 것입니다.

: 전쟁에 반대하는 터키 사람은 어떠한 일을 하고 있나요?

아나르: 이 전쟁이 발발한 이후로 터키 여론은 크게 요동쳤고, 모든 터키 TV 채널은 전쟁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고, 터키 트위터는 전쟁 뉴스와 토론으로 도배되었습니다. 전쟁의 시작되고 한 달 동안은 러시아 지지자와 우크라이나 지지자 사이의 트위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줄어 들고 있고, 이제는 트위터의 핵심 주제가 우크라이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전쟁 초기에 터키 주요 도시인 이스탄불과 앙카라에서 전쟁 반대 시위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수백 명 정도 모이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터키에는 전쟁에 맹렬히 반대하는 크림 타타르인이 있습니다.

: 크림 타타르인에 대해 더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아나르: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의 성곽이 크림반도를 포함하여 흑해 북부에 많다는 것을 이 지역을 방문해 본 사람은 보았을 것입니다. 크림 칸국(Crimean Khanate)은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었습니다. 1783년에 러시아 제국이 크림 칸국을 병합했는데, 그 때 많은 크림 타타르인이 터키로 이주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크림반도를 놓고 오스만-러시아 전쟁이 있었고, 그 때마다 크림 반도의 토착 투크르계 인구가 터키로 이주했습니다. 대다수 크림 타타르인은 러시아를 반대하며,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를 크게 성토합니다.

터키가 진정 원하는 것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균형

: 이번 전쟁에 대한 터키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요?

아나르: 터키 정부는 서구의 압력, 우크라이나 주권에 대한 지지, 러시아와의 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공식 목표는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이 끝나도록 중재하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이 전쟁을 통해 약화되는 것이 터키의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러시아 힘이 크게 증가하면 그것은 문제가 되겠지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흑해 연안 전체를 장악하면 흑해의 전체 지정학이 바뀔 것이며, 이것은 터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전쟁으로 러시아가 크게 약화되면, 이 지역에서의 세력균형이 깨집니다. 터키는 감당하기 어려운 압력을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는데, 터키에게는 미국을 견제할 대안 세력으로 어느 정도 러시아가 필요합니다. 미군을 포함하여 흑해 연안국이 아닌 다른 강대국이 흑해에 주둔하는 것은 터키가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터키가 해협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고, 흑해에서 비연안 국가의 역할이 제한되는 몽트루(Montreux) 조약[6]이 유지되는 것이 터키에게는 중요합니다. 이 체제의 약화는 터키 안보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외부인의 눈에는 터키가 주변 국가가 아니라 미국을 터키 안보의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이 과도한 걱정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중동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분쟁이 발생한 혹독한 지역입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터키와의 동맹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터키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 터키 내정에 관여하는 패턴을 보여왔습니다. 2016년 쿠데타 시도의 배후로 여겨지는 인물이 아직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테러조직 FETÖ[7]의 활동에 미국이 개입했다고 많은 터키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내가 터키와 미국의 갈등에 너무 깊이 주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터키는 이 지역의 강자로서, 세계적으로는 중간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이해와 외교정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흑해에서 미국이나 러시아의 입지가 강해지는 것은 터키의 이해와 충돌합니다. 우크라이나와 연관지어 보면, 우크라이나가 미국이나 러시아로부터 독립되어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터키 이익에 부합합니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자리한 카자흐스탄의 지리적 위치. (이미지:셔터스톡)

중국, 러시아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

:이번 전쟁에서 카자흐스탄 정부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아나르: 나는 공식적으로는 더 이상 카자흐스탄 국민이 아니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카자흐스탄 사람입니다. 중앙아시아 연구자로서 카자흐스탄이 균형감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며, 그러한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편을 완전히 든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크라이나 편을 든 것도 아니지만, 카자흐스탄이 러시아를 반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많은 유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양국 모두 러시아와 긴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은 7,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식민지가 된 적이 있으며, 여전히 국경 지역에 러시아인이 살고 있습니다. 한 때나마 두 나라 모두 러시아 동조화 정도가 깊었으며, 스탈린 시대에 기근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 기근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인재라고 양국은 생각합니다.

이러한 공통점 이외에 중요한 차이점도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중국과 이웃하고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잠재적 위협을 감안할 때 카자흐스탄에게 러시아와의 동맹은 중요합니다. 여기서 관건은 카자흐스탄이 러시아 동맹국이면서도 독립적으로 외교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쟁에 대한 카자흐스탄 정부의 태도는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 공식 TV 채널은 전쟁의 균형 잡힌 그림을 보여주며, 러시아 이야기와 함께 우크라이나 이야기도 전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국민은 반전 시위를 하고 우크라이나인에게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것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 정책에 반대하는 러시아인이 카자흐스탄으로 넘어와서 정착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인이 많이 카자흐스탄으로 오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카자흐스탄 당국은 서구가 러시아에 가하는 경제 제재로 인해 이차 제재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러시아와 거래할 때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독립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내의 루한스크 및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을 카자흐스탄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러시아와 긴밀한 경제 및 안보 협력을 지속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카자흐스탄 정부와 국민은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 올 해 카자흐스탄에 러시아 군이 와서 카자흐스탄의 안정에 기여했습니다.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 카자흐스탄 군대의 파병을 요청했는데, 카자흐스탄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이 러시아를 충분히 지지하지 않은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카자흐스탄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지는 않을까요?

아나르: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와 단절을 선언한다면 가능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와 단절을 선택하는 것은 카자흐스탄이 단독으로 러시아와 맞설 수 있거나, 중앙아시아 형제 국가 모두가 연합해 카자흐스탄과 함께 싸워주거나, 기댈 수 있는 다른 주변 강대국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이 지역의 다른 강대국은 중국뿐입니다. 중국은 러시아보다 카자흐스탄에 더 위협적입니다. 현재 중국은 위구르족과 카자흐족이 거주하는 중앙아시아 동부나 동투르키스탄(중국에서는 신장이라고 부른다)에서 본격적인 중국동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국가가 중국을 믿고 러시아와 대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와 갈등을 겪을 소지는 여전히 있습니다. 러시아가 카자흐스탄을 완전히 잃을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면, 러시아가 카자흐스탄 북부를 가져가려고 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극단적인 시나리오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카자흐스탄은 동맹을 맺을 다른 강대국이 없습니다. 미국은 중앙아시아와 이웃이 되려는 생각을 철회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그걸 상징해 줍니다. 카자흐스탄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역 협력을 강화하며, 경제 및 안보 블록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중앙아시아 지역주의는 특정 상황에서 러시아 영향력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러시아가 이 지역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올 해 1월에 있었던 카자흐스탄 소요 사태에서 러시아가 군을 파견한 것도 안보 제공자로서의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외부에서 이 사태를 지켜보는 심정이 어떠했습니까?

아나르: 정말 악몽이었습니다.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습니다. 많은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끔찍했습니다. 나는 짙은 안개 속에서 수많은 총 소리가 들렸던 영상을 기억합니다. 독립 매체가 전하는 소식이 갑자기 중단되고, 공식 뉴스만 전달되면서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되자, 답답함은 더욱 커졌습니다. 인터넷과 통신이 끊겼고 가족과 친구들의 안부가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여전히 ​​카자흐스탄 북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되면 인종간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고, 러시아 침공이 있을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자꾸 나쁜 쪽으로만 생각이 가더라구요. 처음에는 러시아 개입에 충격을 받았고, 혹시나 카자흐스탄이 완전히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러시아군이 카자흐스탄을 안정시키기 위해 들어올 이유는 없었습니다.

2022년 1월 카자흐스탄 내 소요 사태 진압을 위해 알마아티에 파견된 러시아 군. (사진:셔터스톡)

함의 따위는 없는 푸틴의 아무말

: 푸틴은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은 한 민족이며, 우크라이나는 별도의 민족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터키 국민이자 카자흐인 국제정치학자로서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나르: 러시아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연구원으로서 말한다면 이렇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 국가로서 역사가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것은 현 시점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푸틴의 내러티브는 프로파간다입니다. 국제법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1991년 이전에 어떠한 형태의 국가였는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을 인정했고, 우크라이나를 정상국가로 인정했습니다. 이제 와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같은 민족이라는 말은 국제정치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아무런 함의가 없기 때문에 깊이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아마도 역사적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오늘날 동부 슬라브족이 하나의 국가가 될 수도 있었겠지요. 그것은 역사적 가정에 불과합니다. 러시아인은 동부 슬라브족이 분열한 이유가 몽골의 침공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키예프 루스(Kievan Rus’)[8]가 여러 다른 공국으로 분열된 것은 몽골 침입 훨씬 이전입니다. 몽골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슬라브족이 등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다양한 가정은 역사에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 러시아가 주변국에 개입하는 것이 소련의 부활을 꿈꾸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아나르: 사람들은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주도한 이유를 아직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련 때문에 러시아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러시아인에게 있었습니다. 소련 시기 러시아인은 저개발 지역의 경제적 문제를 러시아가 대신 해결해 주고 있으며, 그것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지역은 러시아에게 착취당했다고 생각했는데, 러시아는 소련에게 착취당했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소련은 모두를 착취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엘리트는 구소련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열망을 포기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러시아의 일관된 정책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앙 아시아와 코카서스를 러시아로 통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국가의 정치, 사회 및 경제 문제를 떠맡기를 원치 않습니다. 너무 많은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영향력을 가지고 좌지우지하는 것이 러시아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 푸틴의 주변에는 유라시아주의자들이 있고, 이에 영향받은 푸틴이 유라시아 제국을 건설하려고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말이 맞다면, 유라시아 제국 건설을 위해 가장 중요한 나라가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이 아닐까요?

아나르: 유라시아주의가 있든 없든 러시아는 구소련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그걸 우리는 제국, 지역 패권 또는 강대국의 전횡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에 입장에서 본다면, 우크라이나가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벨라루스입니다. 세번째는 코카서스일 수도 있고 카자흐스탄일 수도 있는데,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러시아에게 카자흐스탄은 중요성에서 우크라이나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정치적으로 EU와 러시아 사이에 있고, 군사적으로 NATO와 러시아 사이에 있습니다. 또한 흑해의 해상 패권이라는 관점에서도 중요합니다. 구소련 국가 중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다음으로 경제 규모가 크며, 인구도 러시아 다음으로 많습니다. 우크라이나에는 소련 군수산업 시설의 1/3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인 중요성은 설명되고도 남습니다. 그에 반해 중앙아시아는 어떤 NATO 국가와도 거리가 멀기 때문에 중앙아시아 국가가 서방 국가를 동맹국으로 삼을 우려는 우크라이나처럼 크지 않습니다.

카자흐스탄 정부와 국민은 러시아가 카자흐스탄을 자국의 영향권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상황이 미묘해 보일 수 있지만, 1990년대는 훨씬 더 어려웠고, 그 시기를 잘 넘어왔습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잘 조정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아무 매력을 갖지 못하는 러시아

윤: 앞에서도 한 번 했던 질문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해 보겠습니다. 이번 전쟁의 책임을 나토의 동진에서 찾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에게 당신은 어떤 말을 해주겠습니까?

아나르: 우리는 이 전쟁이 어떤 목적으로 시작되었는지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소식에 의하면, 이 전쟁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의도가 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통제하고 싶어하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미국이라는 변수를 빼 놓고 보면,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민족주의 투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주도권 다툼입니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 다른 나라의 의도보다는 미국의 의도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NATO는 자체로 행위자가 아니기 때문에 NATO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다는 미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는 구소련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지역 패권국가에 머무르고 있고, 미국은 세계 패권을 추구하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은 다른 강대국의 영향력 범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지역에 한정된 패권이라고 하더라도 미국 패권을 대체하는 의미를 가질 경우에는 그것을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현실주의 측면의 헤게모니뿐만이 아니라, 그람시(Antonio Gramsci)[9]가 말하는 헤게모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전쟁은 어떤 의미에서 냉전의 반복이지만, 러시아는 소련보다 훨씬 능력이 적으며, 훨씬 야망이 적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이 러시아에게 면죄부를 주지는 못합니다. 이번 전쟁은 분명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결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푸틴은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세르게이 까라가노프(Sergei Karaganov) 러시아 연구원은 러시아는 경제력과 소프트파워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드파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분석가인 코르투노프(Kortunov)는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이 어떻게 ‘선택권을 박탈당했고 전쟁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는 러시아 내부 문제가 이번 전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러시아의 진짜 문제는 미국이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일만한 경제적이며 문화적인 매력을 만들지 못했고, 앞으로도 만들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사람 눈에 러시아는 미국이나 서구의 대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러시아의 한계는 중앙아시아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앙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러시아, 중국, 아프가니스탄으로 둘려 쌓여 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 국가에게 러시아는 매력적 대안이 됩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서쪽으로 유럽을 가지고 있기에 다릅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서구와 경쟁할 수가 없기에 경쟁을 포기하고 전쟁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 중요

: 터키가 나토에 가입한 것이 언제죠? 가입당시 나토는 터키에게 어떤 의미였고, 지금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나르: 1925년에 터키와 소련은 상호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는데,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에 소련이 일방적으로 조약을 폐기했습니다. 소련은 터키 해협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을 위해서 터키 해협에 군사기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터키는 이에 큰 위협을 느꼈습니다. NATO가입을 희망했지만, 1950년 5월에 터키의 나토가입은 거부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고, 터키는 한국전쟁에서 서방세계에 큰 힘을 보탰습니다. 덕분에 터키는 1952년에 NATO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NATO 회원국 중, 터키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NATO 회원국이 되면서 터키군은 현대화되었고, 군사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터키에 NATO와 미군 주둔은 많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터키에 핵 미사일을 배치했지만, 쿠바 위기 이후 일방적으로 핵 미사일을 철수시켰습니다. 터키 안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슈에 대해 터키는 어떠한 발언권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런 점이 터키가 미국과 NATO를 불신하게 된 요인입니다. 스탈린 사후 소련 지도부는 터키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유화적으로 나왔고, 터키는 서방과의 관계에서 밀고 당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터키는 소련과의 경제협력도 시도했습니다. 현재 터키와 러시아의 관계가 복잡한 것은 그 뿌리가 깊습니다. 터키와 러시아 관계 패턴의 뿌리는 냉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이전으로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 터키는 독립을 위해 전쟁을 벌였고, 그리스와 유럽 강대국이 터키를 점령했습니다. 그때 소련이 유일하게 터키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터키는 역사의 매순간마다 유럽과 러시아 사이를 오갔습니다.

윤: 이 전쟁은 러시아와 터키 관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요?

아나르: 그것은 이 전쟁이 어떠한 결과를 남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봅니다. 현재는 많은 것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미 전쟁은 소모전으로 바뀌었고,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로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면, 시리아에 관여하고 있는 나라들 사이의 세력균형이 바뀔 것입니다. 여러 시나리오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러시아가 터키 주변의 국제정치적 사건에 대해 터키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 인정한다면, 터키는 러시아와 전쟁전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며, 더 긴밀한 협력을 모색할 수도 있습니다.

윤: 이 전쟁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관계에 어떠한 변화를 불러 일으킬까요?

아나르: 이 전쟁은 카자흐스탄 엘리트에게 러시아가 위험한 파트너라는 것을 확인시켰습니다. (물론 카자흐스탄 엘리트가 그런 말을 입밖으로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와 긴밀히 협력함과 동시에 서로 다른 강대국과의 유대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전통적으로 취해왔던 다원적 접근 방식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다시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자흐스탄에게는 터키와 한국 같은 중견국과의 관계도 중요해졌습니다. 카자흐스탄은 북쪽의 러시아뿐만 아니라 동쪽, 남쪽과 서쪽으로 다양한 물류 경로를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러시아적인 것에서 벗어나서 카자흐적인 것을 추구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국민이 러시아어보다는 카자흐어를 더 많이 쓰도록 하는 조치를 더 앞당길 것입니다. 1월의 카자흐스탄 소요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카자흐스탄은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 과정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윤: 만일 러시아와 터키 관계가 악화된다면, 카자흐스탄은 어떠한 태도를 취하게 될까요?

아나르: 터키와 러시아의 긴장관계는 2015년에 아주 높았던 적이 있습니다. 터키가 시리아 국경에서 러시아 군용기인 SU-2를 격추시켰을 때였지요. 러시아는 유럽에서 오는 터키 트럭이 자국 영토를 통과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러시아와 터키의 갈등이 고조되었을 때도, 카자흐스탄과 터키의 우호 관계가 영향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에도 터키와 러시아를 중재한 것은 카자흐스탄이었습니다. 러시아와 터키 관계가 악화된다면, 카자흐스탄의 국제정치적 위상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습니다.

윤: 지중해 안탈랴 해변에 러시아 관광객이 아주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여전한가요?

아나르: 러시아 관광객은 터키 관광 산업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터키는 서구의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많은 러시아 관광객이 터키를 찾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당신이 여성 국제정치학자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전쟁의 고통에 더 많이 공감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나르: 여러 사람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런 측면에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우크라이나인의 일상이 파괴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데에는 남녀가 따로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소셜 미디어 상의 토론을 보면, 남성과 여성에게 뚜렷한 차이가 발견되는 것 같습니다. 남성이 이번 분쟁에서 군사적인 측면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전술, 군사 작전, 무기의 효율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논쟁하는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런 토론에 참여하는 여성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러한 종류의 토론은 때때로 매우 잔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기가 날아가서 목표물을 파괴하는 것을 가지고 기쁨을 표현하거나 그것에 대해 이런 저럼 감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러나 터키 여성 중에 그런 종류의 영상을 이야기 주제로 삼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더 이상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두 문장 안에 서로를 보는 양국의 이성과 감정이 집약되어 있다.

[1] 지중해에서 흑해로 들어가는 앞자락에 있는 터키의 해협이다.

[2] 지중해에서 흑해로 들어가는 끝자락에 있는 해협이다. 이스탄불을 관통하는 이 해협의 동쪽을 아시아, 서쪽을 유럽으로 부른다.

[3] 캅카스의 영어식 표현이다. 캅카스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가 있다. 북쪽으로 러시아, 서남쪽으로 터키, 남쪽으로 이란이 위치해 있다.

[4] 쿠르디스탄 노동자 정당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터키 동남부와 이라크 북부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무장단체다.

[5] 민주 연합 정당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시리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좌파 정치정당이다.

[6] 1936년에 스위스 몽트루에서 체결된 조약이다. 이 조약에 의하면 모든 민간 선박은 흑해로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지만, 군함은 오로지 흑해 연안국만 터키 해협을 지나갈 수 있다.

[7] 1999년부터 미국에 거주한 무슬림 설교자 페툴라 귈렌이 이끄는 무슬림 형제애 운동 단체다. 터키 정부는 이 단체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했으나 미국과 유럽은 테러리스트로 단정하지 않았다.

[8]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동유럽과 북유럽에 걸쳐 존재했던 나라로 동슬라브족, 노르드족과 핀족이 함께 있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국가명이 이곳에서 유래했다.

[9]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로 문화적 패권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글쓴이 윤영호는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증권사, 보험회사,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고, 카자흐스탄 증권사 겸 자산운용사인 세븐 리버스 캐피털(Seven Rivers Capital)에서 대표로 일했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자산을 운용하며 런던 라이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 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