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당사자들에게 불행이지만, 그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개인이나 국가가 있게 마련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은 SWIFT에서 러시아를 배제시켜 경제 제재를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SWIFT 대신 이용 가능한 중국의 위안화 국제 결제, 청산 시스템이 주목을 받으며 중국이 반사 이익을 살살 누리고 있다. 남의 나라 전쟁의 와중에 조심스레 영역을 확장해 가는 중국 금융을 고한석 필자가 외신을 통해 정리한다. [편집자 주]

✔ 높아지는 위안화 비중, 낮아지는 달러와 유로, 파운드✔ 미국과 달리 유럽내 중국 화폐 선호도는 높아지는 중✔ 고전 끝에 중국 안착하여 수익 내기 시작한 투자 은행✔ 미중 갈등따라 세계 금융 시스템의 이원화 가능성도

국제적인 힘 겨루기의 요소를 아주 단순화하면 지리, 무기, 화폐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땅, 총, 돈’인 셈이다. (필자는 지난 문재인 정부가 지정학적으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한미 미사일 지침에서 사거리 제한을 폐지한 것이며 이것이 동북아 및 한-미 관계에서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원하다고 판단한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설명할 예정이다.) 지리는 고정적인 것이고 무기의 충돌은 워낙 비일상적인 것이기에 둘 다 잘 드러나는 반면에서 화폐는 일상적이면서도 유동적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발생하는 작은 변화는 생활 속에서 잘 감지되는 반면에 그 구조적 변화는 천천히 진행되어 잘 드러나지 않는다.

SWIFT의 대안으로 주목 받는 CIPS

땅과 총이 충돌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21세기를 규정짓는 역사적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화폐와 금융에 미치는 영향은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그 의미는 더 클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하여 금융 분야에서 이슈가 된 것은 ‘국경간 은행결제 시스템’ 즉 CIPS라는 위안화 국제 결제 및 청산 시스템이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의 일환으로 달러화 국제 결제 및 청산 시스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 즉 SWIFT에서 러시아를 배제시켰다. 그러자 갑자기 그 대안 시스템을 지향하는 CIPS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 국제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은 3.2%로 달러(39.9%), 유로화(36.6%)에 비해서 한참 낮은 수준이기에 당장 SWIFT를 대체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국가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합병 이후 미국의 제재를 받기 시작하면서 달러 의존성을 크게 낮추는 대신 위안화 이용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IMF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 간 교역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은 작년 기준 17.5%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의 외환보유액 중 위안화 표시 자산 비중은 13.1%이고 달러화 표시 자산 비중은 16.4%에 그쳤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달러화 비중은 매우 낮고 위안화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달에 국제통화기금(IMF)는 올해 8월1일부로 특별인출권(SDR) 통화 바스켓에서 달러 비중을 기존 41.73%에서 43.38%로, 위안화는 10.92%에서 12.28%로 늘리기로 결정하였다. 반면에 유로(30.93%→29.31%), 엔(8.33%→7.59%), 파운드(8.09%→7.44%) 비중은 하향하기로 하였다. 실제로 IMF가 위안화 준비금을 확대하기로 한 배경 중 하나는 전 세계 은행들의 CIPS 사용이 늘어난 데 있었다.

그러자 닛케아 아시아는 6월12일자 “중국 화폐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은 위험하다”는 외부 기고 컬럼을 통해서 위안화 비축량을 늘리기로 한 IMF의 결정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우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 컬럼은 중국이 상품면에서도 유럽의 최대 교역 상대이고 중국 기업들이 유럽 상대국에 지불할 외화 즉 달러나 유로에 무제한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대금 결제와 관련하여 CIPS와 디지털 위안화 활용도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유럽 기업들이 위안화 수익을 중국 지점을 포함하여 유럽 은행들이 관리하는 위안화 표시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점점 더 쉬워지고 있다. EU와 중국 간의 무역과 투자 관계를 증진시키는 포괄적 투자 협정(CAI)에 대한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중국 본토 전역으로 유럽 은행과 금융 기관의 시장 접근을 확대하기 위해 베이징으로부터 구속력 있는 약속을 받았다.

같은 맥락에서 유럽은 중국과의 금융관계를 촉진하고 있다. 중국 증권을 거래하는 유럽내 증권거래소와 중국내 증권거래소를 연계하는 증권시장 연결 메커니즘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룩셈부르크에서 등장했다. 2019년 6월 출범한 런던-상하이 증권 커넥트와 같은 몇몇 유럽 증권거래소가 중국 증권을 다루는 중국 특화 거래소를 뒷받침하고 있다.

독일은 이러한 변화의 선두에 있다. 2015년 11월 출범해 프랑크푸르트에 본사를 둔 중국유럽국제거래소는 상하이증권거래소와 도이치보르세그룹, 중국금융선물거래소가 함께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중국 본토 이외 지역에서 위안화 관련 투자상품 전용 거래소로는 처음이다.

프랑스는 유로넥스트 파리와 상하이 증권거래소 사이에 유사한 연결 메커니즘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 양측은 지난 2021년 12월 열린 중-불 고위급 경제금융대화에서 중국투자공사, BNP파리바, 글로벌 굴지의 투자그룹 유라지오가 참여해 프랑스 상업계에서 위안화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협력펀드를 출범시켰고 국경을 넘나드는 투자 플랫폼으로서 해당 협력펀드의 역할을 높이려고 하고 있다.

전직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지냈던 마리오 드라기 현 이탈리아 총리는 ECB 총재 시절인2015년 11월에 위안화를 세계 통화로 만드는 것은 유로화에 나쁘지 않다고 선언했다. ECB 뿐 아니라 유럽의 거의 모든 중앙은행들이 현재 위안화를 실행 가능한 준비금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중국 인민은행과 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유럽인들과 달리 미국은 전통적으로 위안화가 IMF의 공식적 준비금에 포함되는 것을 반대해 왔으며, 위안화가 아직 국제결제 준비금 지위 획득을 위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럽연합이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 기준에 따르면 중국이 자본계좌를 개방할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인데, 이것은 기업, 개인, 은행들이 엄격한 규칙 및 정부의 승인 없이 돈을 움직일 수 있게 하고, 자국 통화를 자유롭게 유동하게 하고, 중국 중앙은행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느슨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국은 규제를 완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 미국의 비판이다.

HSBC은행, 유럽 중화권 분사 체제로 이익 극대화 검토

하지만 중국은 조심스럽게 글로벌 금융시장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5월 11일자 Financial Times의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드디어 중국에서 흑자로 돌아섰다”는 기사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 4월 증권 및 뮤추얼 펀드 산업의 외국인 소유 한도를 폐지하였다. 외국의 금융기관들은 처음으로 중국 사업체의 완전한 소유권을 획득하고 그것들을 자신들의 글로벌 사업과 더 잘 통합할 수 있었다. JP모건과 골드만 모두 합작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움직였고 모건스탠리는 지분을 90%까지 늘렸다. 다른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중국 시장 특히 개인연금 시장에 적극 뛰어들었다. 2년간의 고전 끝에 이들은 작년부터 중국 현지 시장에 안착하여 이익을 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중국은 해외 금융회사들을 국내로 끌어들이는 한편, 지금까지 정부와 기업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던 해외 자산 투자를 개인들에게도 허용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작년 7월 5일 Financial Times의 “중국 가계의 부가 세계로 방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특집 기사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중국 가계의 과도한 현금이 수입물품 구매로 인한 위안화 강세와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억제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자산관리 커넥트’(Wealth Management Connect: 跨境理)이라는 제도를 시험하고 있다. 기존에는 여행자에게만 소비 목적으로 5만 달러 반출이 허용되었는데 이제는 1인당 최대 15만 달러까지 해외금융 상품에 간접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책을 광동성의 홍콩/마카오 인근 내륙지역 주민들에 국한하여 실험하고 있다. 골드만 삭스, 시티은행, SC은행 등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으며 가장 적극적인 참여자인 HSBC는 2025년까지 중국 가계가 300조 위안(46.3조 달러)의 해외 투자 자산을 보유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 채권 시장 전체와 맞먹는 금액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금융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크게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스템 이원화하는 수도

이러한 전반적인 흐름은 만약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합병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중국에 대한 제재를 약화시킬 심각한 지정학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의 현실주의 외교전략 싱크탱크이자 매체인 “The National Interest”는 6월 8일 “러시아와 중국의 달러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라는 기고문에서 “미국이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미국은 세계 금융패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진행중인 심각한 움직임에 대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고 대응을 촉구하였다.··

미중 갈등에 따라서 금융 시스템이 장기적으로 이원화될 가능성이 보이자 금융회사들도 이에 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2중 시스템의 등장이다.

중국에는 유명한 3마리 말이 있다.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Jack Ma), 텐센트의 마화텅(馬化騰, Pony Ma), 핑안(平安)보험의 마밍저(馬明哲, Peter Ma)이다. 이 중 마밍저 회장의 핑안보험은 세계 5대 은행이자 유럽 최대 은행인 HSBC의 최대 주주(9.2%)이다. 이 은행의 정식 명칭은 ‘홍콩 상하이 은행’(Hongkong & Shanghai Banking Corporation)으로 1865년에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서 만들어졌으며 역시 영국의 조계지가 있던 상하이로 확장하면서 이름을 HSBC로 지었다. 원래 본사는 홍콩이었지만 중국 반환을 앞두고 1991년에 런던으로 본사를 옮겼다. 하지만 여전히 매출의 대부분, 이익의 2/3를 아시아 시장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지난 5월 4일 Financial Times의 기사 “왜 중국보험회사 핑안은 HSBC의 분할을 요구하고 있는가”라는 기사가 실렸다. HSBC의 대주주인 핑안보험마밍저 회장은 HSBC를 유럽과 아시아 2개의 회사로 분할할 것을 요구하였다.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서 영국 중앙은행(BOE)이 영국 은행들 및 대부업체들에게 주주 배당을 금지함으로써 이 돈으로 장기보험부채를 상쇄하고 있던 핑안보험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몇 년전부터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 끼인 신세가 된 HSBC는 분리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계속 있어왔다. 5월 9일 닛케이 아시아는 “HSBC는 금융 탄광의 카나리아”라는 기사를 실었다. 베이징 당국이 홍콩에 대한 지배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고 미국이 달러를 통한 제재를 자주 사용하게 되는 상황에서 점점 진퇴양난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가 분할되면 오히려 어느 한쪽의 제재에 취약해질 위험성이 줄어들 수 있다.

경제 안보와 무관하게 위안화 강화 허용하는 한국 정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경제 안보라는 흐름과 무관하게 사실상 아시아 지역에서 위안화의 위상 강화를 허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우려가 된다. 지난 5월24일 기획재정부 및 한국은행발표에 따르면 5월 12일 아세안+3(한중일)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는 연말까지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 제도 개선을 통해서 제3국 통화 공여 절차를 마련할 계획이다. 2005년에 회원국 재무부 장관 회의에서 만들어진 CMIM은 역내 회원국 금융 위기 발생시 유동성 지원을 위한 다자간 통화스왑 체계이다. 그동안 달러만을 지원할 수 있었으나 작년 3월부터는 자금 지원국(한중일)의 자국 통화를 지원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올해 회의에서는 더 나아가 내년부터 자금 지원국의 자국 통화가 아니더라도 자금 요청국의 필요에 따라 3가지 통화(위안, 옌, 원) 중에서 지정하여 요청할 수 있도록 방침을 정하였다. 즉 아세안 국가가 필요할 경우 한국이나 일본이 보유한 위안화를 지원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중국과의 무역 비중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아세안 지역에서 위안화의 위상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현 정부 들어서 대통령실에 경제안보비서관이 신설되었다. 기업이나 정부나 이제는 국제 금융 환경의 변화가 잠재적으로 경제 안보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지를 면밀히 따져보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고한석은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IT정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SK China에서 4년 동안 일했으며 삼성네트웍스에서 글로벌사업추진팀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정책연구원 정책기획 연구원과 정세분석국장,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을 거쳐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