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면 우크라이나를 함락시킨다던 푸틴의 초반 기세와는 달리 어느덧 전쟁은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남기고 100일을 넘겼다. <피렌체의식탁> 칼럼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당사자들의 생생한 상황을 전해 온 런던의 윤영호 필자를 메디치 보이는 라디오가 영상으로 연결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바라 본 분석적, 논리적인 칼럼의 홍수 속에서 윤영호 필자의 인터뷰는 당사자, 피해자, 참여자들이 개인의 관점에서  토로한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여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는 중이다. 인간다운 인간의 얼굴을 하기 어려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앞에서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를 끌어낸 윤영호 필자가 이번에는 인터뷰 대상이 되어 메디치 보이는 라디오의 카메라 앞에 앉았다. [편집자 주]

<피렌체의 식탁> X <메디치 보라> 우크라이나 전쟁 여성들의 목소리, 감정의 전쟁은 어디로 흘러 가는가

✔ 개전 100일 교전 지역은 좁혀지고 전투는 격렬해지는 중✔ SNS 통해 유례없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감정의 전쟁✔ 당황스러울 정도인 난민 향한 영국인들의 공감과 호의✔ 이번 전쟁의 포로 생활을 겼은 이와 인터뷰도 추진 중

어느덧 개전 100일, 사그라드는 전세계의 관심

민소장: 대중의 관심은 참 변화무쌍합니다. 6월 1일 지방선거가 끝나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은 바로 사그라 들었고요. 특정 주제도 오래 다루다 보면 어느덧 관심이 떨어지는 거 같아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바로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 

메대표: 그러게요 벌써 개전 100일이래요.

민소장: 먼저 뉴스를 하나 뽑아 주신다면요.

메대표: 우크라이나가 키이우는 지켰지만 돈바스에서 혈투 장기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에서는 악재가 다 나타나면 이제 더 이상 악재가 아니잖아요. 저는 100일을 계기로 경제 방면의 요소들은 정리가 시작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기억해 보면 한국전쟁도 시작하고 나서 한 1년 지나서, 51년 여름쯤부터 전선은 어느 정도 교착 상태였죠.

민소장: 일단 경제가 힘들었잖아요. 당장 무엇보다 전쟁으로 죽는 것보다 그 뒤에 경제적 고통이 더 크고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지요. 

메대표: 주가나 무역이나 이런 것들이 여지는 있겠지만 한편에서는 재료의 정리들이 시작된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해 봅니다.

유럽 연합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 착수

민소장: 제가 픽한 뉴스는 유럽 연합에서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에 착수했다. 

주유소 가면 휘발유가 2천 원 넘은 지가 꽤 됐잖아요. 비싼 곳은 고급 휘발유 3천 원까지도 등장을 했다고 그래요. 유럽연합이 그간 가스나 원유에 대해 러시아 의존도가 굉장히 높았는데요, 이제 내성이 생긴 거죠. 동아일보 기사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올해 안에 90%까지 감축하겠다. 그러니까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것을 10% 이내로 줄이겠다. 이건 대단한 결심이거든요. 역으로 얘기하면 러시아가 너희들 한번 우리 석유 사용하지 마라, 가스 사용하지 마라 이랬는데 이유가 지금 끝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참아내고 어떤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통해서 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려는 그 야욕을 반드시 뿌리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게 아닌가 저는 이런 해석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대표: 기름과 가스가 유럽으로 못 가면 아시아로 흘러들어오지 않나요? 다시 말하면 중국이나 ~스탄 붙은 국가들, 인도.

민소장: 인도네시아 같은 데로 많이 들어간다고 그래요.

메대표: 그렇게 가면 또 다른 정치 경제 안보적 영향을 미치겠죠.

민소장: 우리가 그동안 메보라에서 새로운 시각들을 저희가 제공하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어 국내 언론들이 젤렌스키 잘한다고 칭찬 일색이던 시기에, 문정인 선생님께서 엄청난 민간인 희생 위에 전쟁을 막지 못한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인가 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었지요. 

윤영호가 채집한 목소리의 주인공

메대표: 160만 클릭이 나왔죠. 그런 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분이 계세요. 지금까지는 복면 사나이였는데 오늘 방송을 계기로 얼굴을 진면목을 드러나게 된 윤영호 선생님이십니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윤 선생님이 쓴 런던 라이프 글을 보니 굉장히 지적인 동시에, 실용적인 시각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잘 아시길래 인터뷰를 좀 해 주실 수 있겠냐 청탁을 했었지요. 우리 언론들이 간접 취재 밖에 못 했잖아요.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이야기했더니 선뜻 하시고 엄청난 인터뷰들을 했죠. 

민소장: 칼럼으로 나가자마자 정말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현재 런던에 계시는 윤영호 선생님을 직접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원래 러시아어를 그렇게 잘 하십니까?

윤영호: 저는 13년 정도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살았기 때문에 조금 할 수 있죠.

민소장: 워낙 러시아어를 잘하고 양쪽 진영을 이렇게 아우르는 분이어서 저는 그 뭐 정보기관에 계시는 분 아닌가 했습니다. 어떤 계기로 먼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이렇게 관심을 갖고 또 그런 분야에 진출하셨는지, 개인적인 얘기부터 먼저 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윤영호: 저는 우크라이나 말은 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잘 하기 때문에 인터뷰 시작하면서 스스럼없이 러시아어로 말을 걸었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분이 갑자기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러시아 말을 모른다, 러시아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느낌으로는 이분은 러시아 말을 할 줄 알고 잘하는 것 같아요. 그 순간에 깨달은 거죠. 러시아어로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큰 상처구나.

메대표: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한테 일본 말로 말 거는 것

윤영호: 말하자면 그런 거죠. 그래서 조심스러워졌죠. 그래서 하여튼 저는 우크라이나 말은 하지 못하고요, 러시아 말은 잘 하지만 그런데 이 전쟁을 보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고 그들한테 감정 이입이 되면서 심정적으로는 약간 우크라이나에 더 기울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민소장: 네 그렇군요. 우크라이나 분들과 러시아 양쪽을 사실 채집한 목소리를 저희가 이제 쭉 내용을 보다 보면 진짜 정치인들이 아닌 민중들의 소리를 채집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은 누구였나요?

윤영호: 인상적이었다는 게 그 순간순간 다릅니다. 가령 인터뷰를 진행할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이 있고,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인터뷰 글을 보고 인상적이었던 분이 있고, 또 나중에 글을 보고 또 보고 또 볼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또 인상적인 분이 바뀌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은 런던에서 지금 난민으로 살고 계시는 리디아. 이분은 전혀 난민 같지가 않은 거예요. 

난민의 고정 관념을 깨게 해준 리디아

예를 들어 키이우에서 런던까지 오는 과정에서 무슨 어려움이 있었냐 하니까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최신 아이폰을 들고 있고 좋은 선글라스를 끼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가방을 들고.  그리고 난민으로 오는 과정에서 프랑스에서 영국으로부터 오는 서류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사이에 해변에 가서 놀다 왔다는 거예요. 인터뷰 과정에서 내가 a라고 얘기하면, 그거 아니야 막 깔깔 웃으면서 b라고 얘기하고, 그 과정이 참으로 유쾌했죠. 인상적이기도 하고요. 물론 이분이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에 남편을 두고 왔고, 낯선 곳에 오고 자기 아이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데 영국 학교에 다녀야 되고. 이 모든 과정이 굉장히 슬픈데 그 슬픔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고요.

메대표 저는 인터뷰 중에서 형제가 둘 뿐이라 차라리 다행이다라는 그런 표현이 있었잖아요. 덩치 큰 러시아라는 큰 형, 굳이 따진다면 좋아서 형제가 된 건 아니잖아요. 그런 러시아한테 역사상 수백 년 동안 지배당해오거나 끌려다닌 사람들의 오래된 분노, 그리고 어떻게 또 관계를 자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오는 유머와 체념 이런 게 좀 느껴졌어요.

윤영호: 우리가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를 이제 슬라브 삼 형제 국가라고 하는데 그렇게비유하는 것을 우크라이나인들은 원하지 않죠. 특히 우크라이나어는 벨라루스어에 가깝거든요. 러시아어하고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거리가 있어요. 

저 같은 경우 우크라이나어를 들을 경우에 저분이 저런 얘기를 하나 보다라는 정도만 짐작할 수 있지 알아들을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인은 벨라루스 사람들을 더 가깝게 느끼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제 벨라루스가 러시아와 긴밀히 협조하고, 벨라루스를 통해 러시아 군이 왔고 키이우를 공격한 군인 대부분은 벨라루스를 통해서 왔거든요. 

이런 이유로 우크라이나인들은 벨라루스에 대한 배신감도 큰 상태죠. 그러니까 큰 형도 문제지만 동생도 골칫거리인 그런 상황이에요. 

코티지 치즈와 계란 이야기가 더욱 슬펐던 저격수 올레나 이야기

민소장: 제가 이제 궁금한 것이 또 한 명이 있어요. 스나이퍼가 된 기자 올레나. 저격이라는 숨죽이는 작업이 끝나고 치즈와 소시지를 사러 간다. 그런 부분에서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생활인의 느낌이라 그의 비극이 오히려 실감이 났었거든요. 그분 인터뷰했을 때 상황을 좀 전해주세요.

윤영호: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 당신은 어떤 느낌을 받았느냐 물었어요. 이분은 전쟁에는 많이 나갔고, 저격수로서 임무도 여러 차례 나갔고, 임무를 나가자마자 총을 쏘는건 아니니까 기회를 봐야 되고 어느 순간 이제 첫 번째 사격을 한 거예요. 그 목표물을 대상으로 하고 그래서 목표물이 한 600m 이상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죽었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그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맞았다라는 것만 직감한 거예요. 

그래서 그 순간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느냐 했더니, 별 생각 없었고 뜨바록이라고 하는데.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로 뜨바록과 계란을 사러 가고 싶었다.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 말이 처음에는 약간 괴상하게도 들렸고 생각할수록 미묘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재차 물었는데, 이게 전쟁 중이지만 거기도 누군가가 사는 마을일 거고, 우크라이나 군 진지가 있을 거고, 그런 곳에도 동네 아주머니가 만드는 치즈하고 집에서 나는 계란은 파는 거지요.

그걸 사러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가, 그게 워낙 인기가 있어서 군인들이 모두 달려가서 그걸 산다는 거예요. 그래서 빨리 가서 치즈가 나오는 시간에 맞춰 사야 된다는 거죠. 그걸 사다가 집에서 요리하면서 느끼는 그 만족감이 대단히 크다는 거예요. 전쟁터에서 누리는 일종의 호사같은 느낌도 나고 해서 자기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는 거죠. 그 얘기를 듣고 하여튼 복잡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메대표: 전쟁이 생활화된 국경지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하네요.

윤영호: 그리고 그거를 이제 사갖고 오는 과정에서 자기 부대원을 만난 거예요. 그 사람이 축하를 해준 거예요. 축하한다 성공이다.

어떻게 알았냐 했더니 이제 러시아 군 교신 서로 감청하고 그럴 거 아닙니까. 감청 부대에서 그걸 들은 거예요. 어느 지점에서 누가 총에 맞아 죽었다. 그 얘기를 듣고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들었냐 그랬더니 자기가 임무를 잘 완수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고 해요. 저는 사실  감정적으로 복잡해지더라고요.

민소장: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게 우리가 이라크 전쟁도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서 봤고, 아프카니스탄 전쟁도 봤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현상을 보면서 훨씬 전쟁의 참상 자체가 진짜 더 피부에 와 닿고 이게 현실이구나 싶어요. 그리고 군인 뿐 아니라 민간인의 희생을 리얼하게 보면서 이 전쟁이 갖고 있는 의미 자체가 역대 다른 전쟁하고 좀 다르게 느껴졌어요. 이게 제 개인적인 감정인지 혹시 윤 선생님에게도 좀 여쭤보고 싶어요.

윤영호: 저는 지금 한 20 명가량 인터뷰했고 실제로 피렌체의식탁에는 아직 7개 정도밖에 나가지 않았어요. 그 중 카자흐스탄 분을 인터뷰했는데 이분은 굉장히 오랫동안 중립을 지켜왔어요. 자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거라고도 생각 못 했고, 러시아 군인이 우크라이나에 있는 민간인을 죽일 수 있다는 것 역시 상상도 못 했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이분이 부차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계기로 중립을 포기합니다. 학살 사진과 뉴스를 보고 결정적으로 생각이 바뀐 거죠. 그러니까 SNS를 통해 전쟁 현장의 생생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의 생각들이 바뀌는 거라 생각합니다. 

메대표: 눈앞에서 사람이 죽고 가족이 죽어서 비통해 우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비극이지만, 마치 정해진 일과처럼 사람을 쏘고 물건을 사러 가고 덤덤이 살아가는 그 자체가 어떻게 보면 더 큰 비극이네요.

민소장: 현재 런던에 살고 계시잖아요. 그곳에는 얼마나 계셨습니까?

윤영호: 5년째 돼 갑니다.

민소장: 우크라이나 러시아 간의 이번 전쟁에서 가장 강경한 노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영국인 것 같아요. 그런데 영국과 러시아는 과거에 인도나 아프카니스탄 등지에서 협력하기도 했지만 엄청난 전쟁을 했잖아요. 그런 배경에서 영국인들의 심정과 정치인들의 심정이 지금 일치하고 있는지요? 

영국 거주 5년 중 가장 너그러운 영국인들의 모습 보게 해 준 이번 전쟁

윤영호: 영국이라는 나라가 19세기 크림 전쟁 때 러시아와 싸웠고, 그 이후에는 러시아와 매우 가까운 상황을 유지했어요. 왕실 간의 친인척 관계가 있었고, 더군다나 1차 대전에서 영국과 러시아가 같은 편이었소, 2차 대전에서도 또 같은 편이었죠. 그런데 현대에 와서 영국이 러시아를 결정적으로 배척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이후에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대립에서 처칠은 스탈린이 히틀러보다도 더 위험한 인물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후로 줄곧 소련을 견제해 왔고, 소련이 망한 후에 잠시 이제 해빙 무드가 있었습니다. 푸틴이 영국 와서 여왕 앞에서 영어로 연설도 하던 해빙기가 잠시 있었지만, 영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기본적인 가치인 개인주의, 자유주의 이런 것들에 대한 큰 위협이 푸틴이라는 사람한테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영국 정치인들의 기본적인 생각이고. 영국 사람들과 영국 정치인들 간에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영국 개인들은 그런 큰 문제를 떠나 이 전쟁에 대한 감정 이입이 매우 잘 돼 있어요.  

저는 영국에 5년 있으면서 브렉시트도 지켜봤고 많은 것을 경험했지만, 영국 사람들이 영국 사람들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호의적인 것은 처음 봐요. 예를 들자면 영국은 국경을 닫고, 난민 못 들어오게 하고, 예전에 수많은 난민들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넘어오다 사고가 나서 물에 빠져 죽고 할 때도 거의 눈 하나 깜짝 않는 차가운 모습들을 보여 왔어요.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는 상황에서는 ‘난민들한테 왜 비자가 필요하냐, 난민들한테 왜 서류가 필요하냐. 폴란드는 어떻게 하는데 당장 받고, 받고 나서 나중에 하지 그러한 것들을 언제 다 서류를 하고 받느냐’ 이런 분위기가 강해요. 영국 사람 중에 우크라이나 난민한테 집을 제공하겠다고 신청한 가정이 20만 가정이니, 영국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메대표: 영국 사람들이 섬나라라 자기네 나라에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게 까다롭잖아요. 

비자도 다른 대륙 국가끼리보다 훨씬 까다로운데요. 시리아나 아프리카 난민에 대해서는 상당히 강경 내지는 원칙적인 태도를 견지하다가, 우크라이나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너그러운 거를  보면서 같은 유럽인으로서의 어떤 동질감 연대감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윤영호: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우크라이나 난민의 모습이죠.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유럽 사람들도 비슷했을 거예요. 난민 하면 다른 기후의 사람, 대부분 더운 지역 사람들이겠죠. 우리와 다른 옷을 입고 우리가 다른 종교를 믿고 이런 사람들을 난민으로 생각한 거예요. 

그러나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자기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자기와 같은 기후에서 자기와 같은 생활 패턴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난민은 굉장히 운이 나쁜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렇지만 1,200만 명이 갑작스럽게 난민이 됐단 말이에요. 제 인터뷰 중에 이제 사로티 교수의 말도 그런 말이 있었죠. 이 전쟁은 푸틴 한 사람의 결정에 의해서 시작된 거예요. 모든 역사적인 사건이 어떤 한 사람의 결정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면 그 일은 그 일이 발생하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변동의 여지가 있다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이 전쟁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안 위험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에 의해서 1,200만 명이 순식간에 난민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거는 운이 나빠서라고만은 할 수 없는 거지요.

나도 난민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 공동 대응하자 이것은 정치적인 단위의 이야기고요. 개인 입장에서는 그런 감정 이입이 다른 여타의 전쟁과 다르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소장: 러시아를 워낙 잘 아시니까 여쭤보겠습니다. 러시아를 저도 여러 차례 방문을 했고, 한·러 수교 20주년 때 러시아의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 언론사 사주들하고 거의 한 17일 이상을 쭉 보면서 느낀 게 있어요. 러시아 사람들의 속성 자체가 동서양의 모든 기질을 다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모양은 유럽식인데 정서적인 건 동양적인 것도 같이 갖고 있더라 하는 느낌.

푸틴 덕에 부자가 된 올리가르히들은 이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

중국과는 또 다른 러시아의 모습을 봤는데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이 전쟁에 대한 일반 러시아인들의 정서와 러시아의 푸틴을 중심으로 한 집권층, 그리고 올리가르히라 하나요 신흥 재벌들 간에 이해 관계의 차이는 확실히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푸틴의 영향력이 그만큼 큰 것인가 이게 궁금합니다. 

윤영호: 저는 이번 전쟁에서 국민들이 푸틴을 더 지지하게 됐다고 봐요. 민감한 이야기라 <피렌체의식탁>에는 싣지 않았는데, 러시아 사람과 인터뷰를 해 보면 푸틴을 지지해요. 의견이 엇갈리는 지점은 조금 다른 곳에 있다고 보는데요. 

본국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과 외국에 살거나 외국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사는 러시아 사람들이 있어요. 이 둘 사이에 생각의 차이가 있는 거예요. 러시아 시골에 사는 할머니처럼 삶의 기반이 러시아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러시아 편인 거예요.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자기나라 편을 들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나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개인이든 상관없이 해외에 살거나 친척이나 자식들이 해외에서 있는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요.

러시아 내부에 사는 사람과 러시아 외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 간의 생각의 차이가 있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올리가르히들은 푸틴을 지지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들은 해외에도 많은 사업이 있고, 가족들이 다 해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러시아의 고위 엘리트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측면이 있는 거죠. 

러시아의 일반 대중들은 전쟁이 난 이상 이거는 이겨야 되는 거고. 일단 푸틴을 지지해야 되는 거고 그런 정서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메대표: 올리가르히들이 푸틴 덕에 돈을 벌기는 했지만 세상 물정을 알기 때문에 이 전쟁이 무리한 전쟁이라는 걸 알고, 한편 국내에 거주하고 정보가 어느 정도 소외된 이들은 그냥 우리나라가 하는 일이고 우크라이나나 카자흐나 다 옛날 우리 땅 아니냐라는 심정이라고 그렇게 들립니다.

민소장: 제가 예전에 이그나텐코 타스 통신 사장의 집무실을 들어가서 봤는데요. 그때가 아이폰 나온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그 사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이렇게 보여주면서 자랑하더라고요. 많이 놀랐습니다. 러시아 언론사 사주들의 사고 자체가 굉장히 자유롭더라고요. 

예를 들어 호화 유람선에 저희를 초대해서 모스크바나 세인트 페테르스부르그 강변에서 거의 5시간 동안 음식을 대접하는데요, 스스럼없이 우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는 농담을 하더라고요. 이게 뭐지? 우리가 생각했던 러시아 이미지와 자본주의가 들어가서 그들이 부를 축적한 단계에서의 생각은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메대표: 그거는 역사적 뿌리가 있는 것 같아요. 한때 러시아 왕실에서는 프랑스 예절과 언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됐고, 또 아까 말씀하신 대로 영국이나 독일 왕족들하고 친인척 관계였으니 최근 몇 백 년간 러시아 상류층은 굉장히 유럽적인 면모가 많았던 것 같아요. 

민소장: 표트르 대제가 황제 되기 전에 온 유럽을 다 돌아보고 건설한 게 세인트 페테르스부르그 아닙니까. 유럽 지식인들의 사회는 굉장히 서유럽화된 정서가 분명히 있는 건 사실인 것 같고요. 그 속에서도 우크라이나는 더욱 서방 친화적인데, 동쪽에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에 가까운 편이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거라고도 생각을 못했다고 하거든요. 러시아 군인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죽일 수 있다는 것 역시 상상도 못했다 하고요. 우크라이나를 정서상 동서로 가르는 분열이 러시아의 오판을 가져온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가끔 들더라고요.

좁지만 더 뜨겁게 타오르게 될 우크라이나 전쟁

메대표: 미래 전망 중심으로 몇 가지 더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제 100일이 됐는데, 전쟁 자체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윤영호: 전쟁은 소강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첫째로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정서가 처음에는 인명이라는 것이 소중하기 때문에 평화를 기원하는 분위기가 많았다면, 현재 상황은 특정 지역으로 교착되어 있고 그리고 또 렌드리스(Lend-lease) 법에 의해서 이제 많은 무기가 서방에서 제공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전선보다 더 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피해가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이러한 희생을 치른 이상 러시아와 타협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많이 생기고 있고요. 폴란드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회에 와서 단 1cm의 땅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 말이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폴란드 군이 우크라이나 정서를 잘 알았다고 생각하고, 폴란드 입장에서도 땅을 양보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전쟁 초기에 인터뷰하는 분들은 어떻게든 빨리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는 입장이 많았는데,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가지냐면 1cm도 양보할 수 없다. 만약 1cm도 양보할 거면 우리가 이런 전쟁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젤렌스키 대통령 입장에서도 평화 협상을 하기에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였고 , 이렇게 된다면 이 전쟁은 굉장히 오래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메대표: 정리해 보자면 첫째, 우크라이나 전 국경선에서의 전면전에서 동부 전선을 중심으로 해서 전선이 압축됐다. 둘째, 렌드·리스(Lend-lease) 법안 덕에 무기 지원이 들어오면서 우크라이나 군이 좀 더 선전할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피해와 희생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양보 불가의 심리가 우크라이나 사람들 사이에 많이 퍼졌기 때문에 좁혀진 가운데 더 뜨겁게 타오르는 전쟁이 되지 않겠냐 이렇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민소장: 저도 전적으로 윤 선생님 견해에 동의하고요. 다만 우리가 6.25 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 압록강 끝까지 회복하고 대륙으로 진출하자고 하는 주장은 그저 목소리에 불과했고, 결국은 미국이나 소련 중국을 둘러싼 강대국들에 의해 그어진 휴전선을 유지하는 선에서 지금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굉장히 비극적으로 얘기한다면 저는 우크라이나 인민 사람들의 목소리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미국과 영국 그리고 많은 유럽의 국가들 이런 손익 계산 속에서 단 1cm도 뺏기지 않겠다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정서가 과연 이 돈바구니 속에서 먹힐 것인가 싶어요. 자꾸 우리 6.25 전쟁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게 되거든요.

메대표: 이라크 전쟁 얘기도 좀 할 수 있는데요. 그때 갑자기 이라크가 쳐들어 갔거든요. 처음 3주 정도는 전면전이었는데, 나중에는 전선이 축소되고 무려 8년을 끌었어요. 그러니까 휴전이 되지는 않더라도 휴전 논의가 시작된 1951년 7월부터 53년 7월까지의 한국전 같은 그런 양상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었습니다.

윤영호: 이번 전쟁이 SNS와 언론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정 적으로 이입을 하고 그래서 감정의 전쟁이라는 그런 표현을 하는데요. 이런 감정의 전쟁이기 때문에 아까 민소장님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강대국들의 의사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강대국 국민들의 감정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인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메대표: 예 맞습니다.

민소장: 오늘 영국 런던을 영상으로 연결해서 이야기 나누다 보니 시간이 정말 빨리 가네요.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인터뷰 있으신가요.

윤영호: 계획하고 있는 인터뷰는 사실 많은데, 그 중 가장 하고 싶은게 포로 인터뷰예요. 포로 교환에 의해서 우크라이나에 있던 러시아 포로가 러시아로 갔고 러시아에 있는 포로가 우크라이나로 왔는데, 이분들 그리고 마리우폴 제철소 지하에서 저항했던 분들이 대부분 잡혀갔거든요.

이분들이 언젠가는 모르지만 이제 곧 돌아오시거나 아니면 거기서 어떤 인터넷에 접근 가능한 시기가 올 텐데 그때 이제 그분들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과 키이우 인근에서는 이제 약간씩 일상이 지금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폴란드라든가 다른 유럽에 난민으로 있다가 다시 들어간 분들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민소장: 네 윤영호 선생님께서 전해 주시는 현장의 목소리는 언론사 취재 그 이상의 것이 있지요. 윤 선생님 말씀대로 그들과 공감하고 그 공감 속에 취재하면서 함께 걱정하는 그런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더 감동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듭니다. 앞으로도 저희 메디치 보이는 라디오 자주 와주시기 바랍니다. 

메대표: 윤선생님 러시아와 영국 다 잘 아시는 전문가인줄은 알았지만 굉장한 휴머니스트라는 느낌 받았습니다. 

<피렌체의 식탁> X <메디치 보라> 우크라이나 전쟁 여성들의 목소리, 감정의 전쟁은 어디로 흘러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