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은 미국을 만족시킬만한 비핵화 카드를 아직 꺼내지도 않았다”고 신경민 의원은 말했다. 남북관계와 국제정세에 밝은 국회 내 ‘통일·안보통’인 신 의원은 풍계리와 동창리, 영변 시설과 관련해 북이 지금까지 제시한 조치와 제안들로는 미국을 움직일 수 없다며 더 대담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그는 또 최근의 한반도 및 주변 정세 급변에 대처하는 우리의 대응체제에 “근본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 의원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고 정부가 나름 잘 대처하고 있지만, 지금의 인적 구성이나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사람도 시스템도 다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기회를 살리려면 남북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에도 우리 고위 담당자들이 쉴 새 없이 오가며 논의를 진척시키고 이견들을 조율하는 긴박한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대미 외교·안보 라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들에 그는 동의했다. 여당 중진의원의 입에서 나온 외교·안보 라인 교체론은 향후 그 수용 여부가 주목된다.

1993~4년의 북핵 제네바합의(제1차 북핵 위기)를 문화방송(MBC) 북한부 소속 담당기자로서 지켜봤고, 워싱턴 특파원, 뉴스데스크 앵커를 거쳐 2012년 국회에 들어간 뒤에도 5년간 정보위원회 위원과 간사 등을 지낸 신 의원을 18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북미 정상은 2000년에도 만날 뻔했다. 지금 상황도 낙관 불허다

 

Q: 북 비핵화 문제로 촉발된 주변 정세 변화가 급박해져지고 있다. 북핵 문제와의 인연은?

북이 소련과 원자력평화이용협정을 체결한 게 1950년대이고 영변에 소형 원자로가 세워진 것은 1960년대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그때부터 그때부터 북핵을 추적했지만,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시점이 88올림픽 직전부터다. 미 CIA와 국무부가 당시 우리 정부에게 정보 브리핑을 하면서 북핵문제를 정보 차원에서 외교 차원으로 바꿔놓았다. 1993년 북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제1차 북핵 위기가 찾아왔고 1994년에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가 체결됐는데 그때 나는 문화방송(MBC) 보도국 북한부 담당 기자였다.

이후 외교· 통일부를 출입하다가 2000년에 워싱턴 특파원으로 나갔는데 2001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뒤 제네바 합의가 사실상 깨졌고 2002년에 2차 북핵 위기에 해당하는 농축 우라늄 문제가 터졌다. 북은 2006년 한글날에 처음 핵실험을 했다. 나는 그 뒤 정치권으로 왔고 2012년 초부터 국회의원 생활을 시작했다. 5년간 정보위원과 2년간 외통위원을 하면서, 북핵 문제에 끈을 놓지 않고 지켜봤다.

 

Q: 박정희 정권도 프랑스·캐나다와 손잡고 핵 개발에 나서기도 했는데.

그때 미국이 우리 쪽에 ‘핵발전소는 안 된다’고 해서 프랑스로 갔다가, 캐나다의 캔두(CANDU)와 얘기가 돼 70년대에야 우리도 원자력발전소를 갖게 됐다. 원전이 곧 핵무기 개발은 아니지만, 북은 처음부터 (핵무기를 겨냥한) 핵물질 확보에 진력했다. 사람들이 북핵 문제가 1990년대부터 불거진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60년 정도의 역사가 있다.

 

Q: 최근 한반도 정세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는 등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런 변화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인가, 아니면 그런 흐름의 양적 확장에 불과한 것인가.

남·북이 자주 만나고, 북·미 정상까지 만난 것은 대단한 진전이다. 다만, 한반도문제가 본질적으로 달라졌느냐고 물으면 쉽게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긴 세월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지금의 상황 변화는 문재인 대통령만큼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김정은의 인적 조합의 영향이 크다.

북미 정상은 2000년에 만날 뻔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이 평양에 가고, 조명록 북 차수도 워싱턴에 갔었다. 북 외교관들은 워싱턴에 외교공관 부지를 찾아보려고 다녔다. 그러다가 정상회담 직전에 불발됐다. 빌 클린턴 대통령 임기가 1년 정도 더 남았거나, 당시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시가 아니라 클린턴과 비슷했던 민주당의 앨 고어가 당선됐다면 성사됐을 수 있다. 미국 국내정치가, 특히 복잡한 미국 선거제도와 사법제도까지도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지금도 앞에 지뢰밭이 있고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 경제우선 정책변화의 출구는 미국?

 

Q: 북 내부 변화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다.

북핵 문제가 미국과 세계의 주목을 끌게 된 배경에는 북이 핵뿐만 아니라 ICBM(대륙간탄도탄)을 개발한 것이 중요한 요인이다. 무엇보다 김정은이란 지도자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이 북 예치자금(2700만 달러)을 동결해 버린 BDA(방코델타아시아 은행) 사태를 겪으면서 북은 미국의 제재 수위를 심각하게 느낀 것 같다. 북 나름의 회피 수단이 있지만, 제재가 더는 (북 경제의) 발목을 잡게 해선 안 된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Q: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장 이후 군사·경제 병진정책에서 경제 우선 정책으로 선회했다는 관측이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외 거래 차단 상태를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1970년대부터 북한은 많이 변했다. 냉전의 종식과 90년대 고난의 행군이 있었고 기술 발전의 영향이 있다. 북한이 규제 속에 휴대폰이 늘고 있고 스마트 시대에 인터넷, USB, CD 등의 기술혁신에 따른 변화에서 북도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는 점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냉전 종식 이후 국제 환경도 크게 변했다. 러시아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중국이 사회주의체제 간의 ‘우호가격’으로 기름을 주고 했지만, 이젠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없이는 출구가 없다고 북 스스로 느끼지 않았을까.

 

Q: 미국 일극체제가 기울면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거대중국이 등장하면서 미중 간에 무역전쟁가지 벌어지는 등의 국제정세 변화도 남북문제 해결에 호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남북 관계 변화는 이런 국제정세의 큰 흐름과도 얽혀 있다.

일극체제는 아니지만, 완벽한 이극체제(G2)도 아니라고 본다. 미국 달러와 군사, 정보의 힘이 아직 세다. 한반도 문제는 언제나 숙명적으로 국제적 양상을 띠고 특히 1945년 이후 미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2018년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동의 없이는 한반도 문제가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전히 경제 군사적으로 미국에는 많이 뒤처지지만 급속히 힘을 키워가고 있는 중국의 동의 없이도 갈 수 없다. 중국 내부와 외교의 실상은 사드 사태와 그 이후의 잔혹한 경제 보복 조치에서 비상식적인 무도함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중국은 예전과 달라졌다고 말해왔지만 예전보다 더 경직된 국내적, 외교적 본질을 보여줬다. 예전 마늘사태와 동북공정 때보다 더 경직돼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최근의 배우 판빙빙 사태 처리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전에는 미국만 신경 쓰면 됐는데 상황이 더 복잡해진 면이 있다. 그만큼 외교가 더 중요해졌다. 일본도 신경 써야 하고 러시아도 무시할 수 없다. 이른바 4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끼리 가보자, 우리끼리 풀자’는 슬로건은 듣기에는 좋아도 현실적이진 않다. 특정 국가에 대한 혐오감을 확산시키는 태도도 마찬가지로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없다.

 

 

정세급변을 쫓아가지 못하는 국내 여론과 정치인

 

Q: 우리 국내 여론이나 언론, 정치인들의 의식이 이런 급박한 상황변화를 좇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식의 양자택일을 요구하면서 편 가르기를 하는 퇴행적인 냉전적 사고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한반도 문제는 다각도의 외교와 군사, 정보 차원의 문제가 뒤엉켜 있다. 그 중에서도 외교를 경시하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나아갈 수 없다. 미국과도 긴밀히 얘기하고, 중국과도 소통해야 한다. 일본이나 러시아도 무시할 수 없고 EU(유럽연합)와 동남아시아의 역할도 있을 것이다. 국내 여론을 감정적으로 자극해서 이용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독일 통일의 예에서도 보듯 현실을 직시하면서 국내와 국제정치의 파고를 헤쳐 가는 지도자의 역할과 이를 떠받치는 시스템 정비가 매우 중요하다.

 

Q: 요즘 국정감사 기간인데, 정치인들 질의를 보면 국감장이 그런 중대 국사를 논하는 장이라기보다는 서로 흠집 내기의 정략적 선전장 수준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말로는 한반도 통일 문제에 여야가 따로 없다고 하지만, 분명히 있다. 미국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대단히 아쉬운 것은, 우리 당(민주당) 내부에서도 미국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중요한 문제인지라 조금 더 세심한 의견 조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Q: 미국은 트럼프 등장 이후 민주당과 주류 언론들을 비롯한 반트럼프 진영이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북핵 문제나 한반도 문제의 경우 기존 틀을 깨려는 트럼프의 시도가 반트럼프 진영의 정치공세에 노출되기 쉬워졌다. 트럼프로서도 쉽지 않은 상황인 듯하다.

남북한문제에서 트럼프 덕을 본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트럼프도 사실 미국 내부에서 고립된 느낌이 있다. 트럼프마저 북한 문제를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해버리면 북핵문제를 풀어나가기 어려워진다. 만약 트럼프가 한반도 문제를 답이 안 보인다고 해서 그냥 놔버리자고 하면 문제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점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엔 일본이라는 대체재가 항상 있다는 사실이다. 미일은 찰떡궁합이기도 하고, 미국이 바라보는 일본과 한국의 지위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은 항상 일본과 잘 지내라고 우리에게 종용해왔다. 한반도 문제에 일본이 결정적 지위를 갖지는 않지만 미국과의 대화에서 일본의 입장과 평가를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것을 치유할 내부 역량이 없다.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대일 외교를 펼쳐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과거사 문제 해결 없이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졸속처리하면서 대일외교를 꼬이게 한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 마디로, 미국과 대화하려면 우리도 전략이 필요하다. 동맹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상황과 판단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심할 경우 버릴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혈맹도 마찬가지다. 지고지순하게 끝까지 미국은 끝까지 항상 변할 수 없다는 전제는 재고해 봐야 한다.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의 입장은 전략 우선이라서 우리의 입장과 항상 같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 입장의 차이가 크게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구체적 대안을 가지면서 큰 그림을 보여주는 게 우리의 책무이자 임무이다. 냉정하게 보는 게 좋다.

 

 

미국을 만족시킬 만한 카드를 북은 아직도 꺼내지 않았다

 

Q: 폼페이오 4차 방문 이후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거의 기정사실이 됐다. 미국 중간 선거 전에 열릴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트럼프가 그건 아니라고 했고 볼턴이 2, 3개월 내라고 했다.

애초부터 중간선거 전에는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어렵다고 봤다. 우선 북미 간 입장차가 크고 단시간 내에 조율될 가능성이 작았다. 또, 중간선거도 그렇지만, 총선이나 대선 때에 웬만한 수준의 외교는 미국 정치판에서 그렇게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국내이슈와 경제 문제가 먼저다. 외교는 경제나 국내 문제로 먼저 걸러서 들어간다. 우리는 북핵 문제가 미국 선거의 승패에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건 착각이다.

한반도 문제는 차(車)나 포(包)가 아니고 졸(卒)이다. 미국에서 한반도 문제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미국의 전문가, 외교관, 군인, 씽크탱크 중 극히 일부다. 씽크탱크 한국 전문가란 사람들은 일본이나 중국이 전공이고 한국은 부전공 정도다. 다만 판문점 도끼 사건과 웜비어 사건처럼 미군이나 미국 국민이 죽거나, 미국 안보가 위협당할 경우에 한반도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된다. 한반도 문제가 미국 정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반도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고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Q: 오바마 정부가 견지한 대북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무관심 내지 무대책 정책이었다. 그것도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북핵 내지 한반도가 차지하는 미국 사회 내의 비중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바마 정부 때는 지금과 달리 북한에 ICBM도 없었고 핵물질과 소량의 핵무기만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 큰 영향을 주진 않으리라 생각한 면이 있을 것이다. 미국은 자국 안보가 위협받거나 북한이 시리아나 중동 국가에 핵폭탄, 미사일, 핵물질이나 그 기술을 넘길 가능성이 있을 때 문제가 된다. 그럴 때 미국 내 유대인들이 언론이나 의회를 통해 북의 위협을 얘기해서 시선을 끈다. 그때도 사실 남북문제 자체가 중심 이슈는 아니었던 거다.

 

Q: 볼턴이 2-3개월 안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중간 선거 전이라도 북이 트럼프 정부가 덥석 받을 만한 카드를 제시했다면 미국이 응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은 걸 보면 북이 미국을 만족시킬 만한 카드를 내밀지 않았다고 봐야 하는데, 북미 협상 진척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 보나.

문 대통령은 북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거듭 확신하고, 미국에 그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 미국은 북에 비핵화와 관련한 성의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데, 그건 몇 달 안에 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있고 몇 년이 걸려도 끝내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신고와 사찰에서 비핵화 의지를 무엇을 통해, 또 시한을 구체적으로 정해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냐는 것인데,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북한 외 반출은 그 다음 문제이다.

아직 북이 갖고 있는 핵물질의 양도 모르는 데다 플루토늄은 방사능 물질이 나오기 때문에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데 농축 우라늄은 외부에서 파악할 수 없다. 북이 관련 지역과 핵물질을 신고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추정치와 의심 지역 그리고 북이 실제로 내놓을 수치와 지역이 많게는 몇 백 배, 몇 천 배 차이가 날 수 있다. 북에 들어가서 직접 확인하는 경우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북은 방문(visit)이라 주장하고, 미국은 시찰도 방문도 아닌 사찰(inspection)을 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방문과 사찰 사이에는 시료채취와 측정 장비 반입 여부, 관련 활동 영역 등에서 큰 갭이 있다. 또 싸우게 될 건데, 지금은 거기까지라도 실제로 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신뢰 쌓기

 

Q: 북미 사이에 일정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뭘 해도 안 될 거라는 얘긴가.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신뢰다. 오랜 세월 북한과 미국은 서로를 믿지 않았다. 1980년대에 여러 사건을 비롯해서 1990년대 초 강석주와 로버트 갈루치가 이끈 제네바 합의 때도 서로 믿지 않았다. 피차 신뢰하지 않는데 우리가 중재하는 것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본다. 북미 간 간극은 아주 크다.

이런 상태에서 남쪽이 둘 사이 간극을 메꾸려고 북에 핵 신고 절차로 바로 들어가게 하더라도 신뢰가 깨질 가능성이 높다. 제시한 내용을 미국은 믿지 않을 공산이 크니까. 따라서 쌍방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하다. 정지작업 없이 미국에 믿어보라고 얘기해 봤자 우리 신뢰가 떨어질 수 있어 어려운 일이다. 그 정교한 사전 정지작업을 우리가 해야 한다.

 

Q: 북이 지금까지 취한 비핵화를 위한 조치라는 것에 대해 미국은 믿지 않고 있다는 얘긴데.

영변에도 핵시설이 여럿 있다. 5메가 원자로뿐만 아니라 실험실, 영변 콤플렉스(연료봉 공장)도 있다. 미국이 영변 외에도 의심 지역을 제시했고 핵폐기물 저장소는 두 군데가 있다고 주장했다가 2007년엔 북이 절대 핵 시설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서 끝났다.

북한이 시인한 농축 우라늄 공장도 직접 봐야 하는데, 가서 보자고 했더니 북이 그건 방문(visit)이라고 얘기했다. 아무리 신고를 성실히 해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이 그냥 둘러보러 갈 리 없고, 가게 되면 시료 채취나 측정할 장비를 가져가야 하는데, 북한이 모두 거부했다.

미국을 믿게 하려면, 신고와 사찰이 거의 같은 보조로 가야 한다. 북한이 미국이 의심하는 핵심지역 몇 군데에 대해서 신고도 하고, 사찰도 원하는 대로 해준다면 미국이 믿지 않겠나. 우리로서는 이게 최소한의 미국 요구라고 북에 제시하고, 미국에도 북이 이 정도로 나오니 한번 가보자고 제안해야 한다. 치밀한 계획을 갖고 접근해야 진짜 중재자가 될 수 있다.

 

Q: 폼페이오가 4번이나 평양에 갔지만, 그 차원에서의 실질적인 협상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실무 협상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지금도 그렇다. 남북한이 만나고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북 핵 논의는 아직 제대로 출발도 못 하고 미적대고 있지 않나. 우리는 남북 간 교류협력이 먼저 앞서가면 비핵화 문제에도 시동이 걸릴 것이라고 보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쉽지 않다고 본다. 2000년 이후 남북 정상회담이 두 번이나 열리고 남북관계가 급진전해서 온갖 사람들이 다 다녀오고 대북 지원도 했지만, 그때도 핵문제는 제대로 시동을 걸지 못했다. 지금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북미관계 개선, 연락사무소 설치부터

 

Q: 협상은 쌍방관계인데, 미국의 대북 접근방식에는 문제가 없나. 미국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북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우린 행동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제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정말 비핵화가 목적이라면 접근 방법을 단계적 쌍방 동시 행동식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우리 정부가 미국에 요구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미국은 전략에 우선 집중하기 때문에 비핵화 이슈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련해 진전을 이루지 않으면 다른 진전을 평가해주지 않는다. 지금 미국에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연락사무소 정도, 그것도 비핵화에서 제한적 목적의 연락사무소 같은 아주 낮은 단계의 제안일 것이다. 2000년 클린턴 정부 때도 연락사무소 논의 단계까지 갔다.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 사무소를 여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다음 단계가 차례로 무역대표부-대표부-영사관-대사관이다. 막상 사찰을 하려 할 때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둘 필요가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 얘기를 계속 했지만,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의 한 구절이나 부속문서 정도다. 미국이 종전 선언을 정 부담스러워 하면, 다른 아이디어를 내면서 미국에도 성의를 보이라고 요구할 수 있다. 양측에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서 들이밀 수 있어야 ‘진짜 중재’다.

 

Q: 북일 교섭과도 닮은 점이 있는데, 일본인 납치문제도, 무조건 납치문제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관계 정상화 교섭도 불가능하다는 자세를 고집하는 한 우리는 이미 할 만큼 했다고 선언한 북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면 납치문제도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 관계 정상화와 납치문제를 동시에 진행하는 식으로 전략을 바꾸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북미 교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북은 ‘우리는 여러 가지 했는데, 미국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풍계리, 동창리 핵실험장 폭파했다’, ‘유해송환 했다’고 하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만족할 만한 검증이 이뤄지진 않았다. 전문가의 현장 확인도 없었고, 핵 실험장은 보통 몇 차례 실험을 거치면 어차피 더 쓸 수 없고 핵실험이 더 필요하지 않다. 또 실험장은 핵의 중요한 증거일진대 이를 폭파시킨 거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북한이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보존조치와 핵 실험장에 대해 전문가 사찰을 허용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은 미국이 듣고 싶어 하는 과거 핵의 핵심시설 영변 콤플렉스에 대한 건은 아예 언급하지 않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실제로 내놓은 게 없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솔직하고 유능한 중재자가 되려면 이를 사실대로 쌍방에 말해주고 구체적인 타협안을 도출해야 한다. 신고와 사찰은 같이 가야 하는데, 우리가 계속 아이디어를 내야 ‘진짜 중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칫 잘 못 했다가는 오히려 양쪽 모두로부터 불신을 살 수도 있어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긴 하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 아무 영양가 없다

 

Q: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현장조사나 군사분계선 내의 훈련 중단, 정찰비행구역 확대 등에 남북이 합의하고 실행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미국 조야에선 분명 불만이 있는 듯하다. 국내 보수 신문들이 미국의소리’(VOA) 방송 같은 우파 매체보도를 곧잘 인용하면서 계속 그 사실을 부각하려 하고 있는데, 그런 건 별 영양가가 없는 것이라 쳐도, 미국 조야에서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워싱턴 특파원을 했으니 잘 아시겠지만.

미국 조야가 우리에게 불만이 있다는 것은 팩트(사실)다. 다만, VOA는 미국 안에서는 방송 되지 않는 언론이다. 영향력이 없다. 열심히 인용해 봤자 그것 자체로는 영양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걸 우리 언론이 잘못 읽으면 안 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들이 곧잘 인용하는 미국 내 씽크탱크 등의 한반도 전문가는 대부분 잘 알지도 못하고 영향력도 거의 없다. 그들의 주장은 미국 유수의 언론이 그들의 얘기를 다뤄줘야 비로소 영향력이 생긴다.

미국 조야가 북한을 불신하는 것도 팩트이다. 이와 관련한 고위 관계자와 상하원의원, 군, 백악관과 CIA 스텝, 의회 보좌진들의 의견은 중요하다.

남북한 군사합의를 하려면 트럼프 정부 핵심 쪽과 사전에 직접 상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그렇게 하지 않은 듯하다. 그건 미국의 불신을 자초하는 꼴이 된다. 오히려 미국이 검토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 현지 지휘관에게만 촉박하게 통보했다는 인상을 준다면 상황이 더 꼬일 수 있다.

 

 

미국과의 대북정책 사전 조율 중요

 

Q: 남북합의에 따라 경인선 철도 현장조사하려고 했을 때 유엔사가 못하게 막았다. 이 또한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탓이라고 봐야 하나.

그게 지금 정부의 문제인 것 같다. 미국 조야는 문재인 정부를 처음부터 신뢰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무현 정부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미국 보수파의 경직된 시각도 문제지만, 노무현 정부도 거기에 원숙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문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있는 상태에서 긴밀한 한미 협의 없이 가면 될 일도 안 된다. 문 정부가 비핵화 쪽이 아직 본격 시동이 걸리지도 않았는데, 화해, 교류 협력 쪽이라도 먼저 가속해 앞서가면 비핵화 쪽도 따라오리라 생각한다면 위험하다. 문 정부의 기조가 미국을 끌고 가자는 방침이라면 할 수 없겠지만, 일을 성사시키고자 한다면 문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신을 걷어내는 방향으로 가는 게 현명하지 않겠나.

 

Q: 미국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먼저 얘기해봤자 먹혀들기 어렵다고 보고, 먼저 성과를 낼 수 있는 쪽부터 밀고 나가 그쪽을 견인해 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미국은 우리보다 복잡하지만, 더 투명하고 정돈된 나라이기 때문에 제대로 접근하면 통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은 내부적으로 문제도 많지만 민주주의, 합리성을 사회 기조로 깔고 있는 나라다. 의회를 설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백악관과 국무부와 국방부, CIA 등 정보기관, 그와 관련된 전문가 그룹, 영향력이 큰 언론을 이용해서 움직이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이 간과하는 한반도적 시각을 공유하도록 권유하고 불신의 벽을 낮추는 쪽으로 설득을 계속해야 한다.

 

Q: 지금 정부도 미국과 제대로 대화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보나.

어느 정부도 4년이나 8년 만의 미국 정권 교체에 제대로 대비한 경우를 못 봤다. 우리가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서 살아온 나라인데도 미국을 잘 모른다. 영어가 너무 어려운 언어고 문화적 배경이나 역사가 다른 나라여서 그런 면이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미국 연구소 하나 없는 상태는 잘못된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혈맹을 강조하는 것으로 미국 조야의 변화에 대응해왔고 실무를 맡은 외교, 정보, 국방 관계자는 이 기조에 적응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사 문제에 집중하면서 내부역량 강화에 소홀했다.

미국은 나름의 합리적인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시간을 갖고 노력해서 합리적으로 설득하면 듣는다. 미국은 또 한반도에 영토적 야심이 없다. 트럼프가 방위비 문제나 주한미군 문제 등과 관련해 의외의 깜짝 발언을 하는 등 특유의 불안정성과 변덕을 드러내도 나라가 혼란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런 인프라가 잘 돼 있기 때문이다. 의회 힘이 엄청 세다는 것도 안전판 역할을 한다. 박근혜 정부 때 국정이 아예 돌아가지 않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Q: 대통령의 임기가 더 남아 있고, 미국 정부가 남북 접근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2000년 때와는 다르다면 다른 점일 텐데.

그렇다. 2000년을 돌아보고 잘 정리정돈하면 문 정부가 브로커(중재자) 역할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잘하려면 북미 간 신뢰도 중요하지만, 한미 간 신뢰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부분이 가장 걱정이다.

 

 

, 핵 정보 더 과감하게 제시해야

 

Q: 미국과 거래를 하는 북한의 자세는 어떻게 보나. 북에 조언을 한다면.

북은 어떤 면에선 우리보다도 미국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트럼프 정권의 성격을 잘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트럼프하고만 ‘원샷 빅딜’을 하려 한다면, 그것은 미국을 잘못 이해하는 지점이 될 것이다. 그런 자세를 바꾸는 게 좋을 것이다.
북은 미국이 신뢰를 보이라는 요구에 대한 응답은 아직 하나도 하지 않았다. 미국은 영변, 1994년 이후에 의심하는 핵심적인 시설, 핵물질에 대해서 듣고 싶어 한다. 북한은 그 대답은 안 하고 ‘나를 사랑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은 미국에 곁다리 얘기만 하는 상황이다.

 

Q: 우리 정부 쪽이 놓치고 있거나 잘못하고 있는 부분은.

여당 의원이라 조심스럽지만, 우리 정부도 제대로 준비가 안 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을 위해서는) 지금처럼 좋은 여건이 조성된 적이 없다. 북한도 변하고 있고, (진의는 모르지만) 뭔가 하고 싶어 한다. 트럼프의 등장이라는 요소도 있다. 트럼프가 미국 주류 외교 쪽의 말을 잘 안 듣는 게 오히려 우리에겐 좋은 기회다.

그럼에도 우리 대통령 주변에 이 엄청난 민족적·국가적 숙제를 풀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아 보인다. 이 인재 라인업만으로는 어렵고 대폭 보강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문제를 문 대통령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청와대 실무진이 제대로 보좌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우리 정부, 전략과 사람과 시스템 다 바꿔야

 

Q: 대통령 원 플레이어에 너무 기대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보좌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긴데, 사람의 문제인가 시스템의 문제인가. ‘절호의 찬스가 왔는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북은 오랫동안 꾸준하게 폭파실험과 두 가지 핵물질인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 확보로 핵무기를 갖게 됐고 이제 소형화까지 가능한 단계에 들어섰다. ICBM 개발에도 성공했다고 하고 수소탄까지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SLBM 실험이 진행 중이고 생물, 화학 무기는 이미 만만치 않다. 94년 제네바합의 당시 이뤄졌던 한미의 예상보다 북한의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다. 북한 내부에 우리가 모르는 기술도약 모멘텀이 있었다. 외부 기술 이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화들짝 놀란 미국은 그냥 있을 수 없게 됐고, 그 참에 트럼프가 등장하고 촛불과 탄핵을 거쳐 문재인 정부까지 등장했다.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야만 할 상황이다. 절호의 찬스라고 할 만하다. 이제 우리가 가진 외교, 국방, 정보 등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남북, 한미 관계를 다지고 중국을 설득해서 같이 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시스템도, 사람도 다 문제다. 우리는 ‘정직하고 유능한 브로커(honest and able broker)’로서 북한과 미국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머리 쥐어짜서 협상하면서.

문 정부가 출범하면서 북한과의 관계에서 획기적 변화는 상식적 예상이었다. 외교, 통일, 안보, 정보의 인사구성에서 뭔가 보여줘야 했다. 실제 이뤄진 인사는 이 예상과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청와대와 관련 부서의 인사에서 이 책무를 제대로 수행할 인물을 찾기 어려웠고 그 뒤 이뤄진 실제와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기대는 사라졌다고 본다. 지난번에 우리 특사단이 평양에 다녀왔는데 미국이 우리 쪽에 미국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얘기를 듣고 싶었다면 플로리다가 아니라 알래스카라도 오라고 했을 텐데 별로 듣고 싶지 않은 거다. 한미 간 불신의 벽이라고 본다.

이렇게 외교해선 안 된다. 판을 짤 새로운 시스템, 전략, 사람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큰 책임을 져야할 수 있고, 이런 기회는 언제 또 올지 예측할 수가 없다.

 

Q: 남북 교류협력 강화에 따라 필시 또 퍼주기 논란이 재연될 것이다. 어떻게 봐야 할까.

제재를 하더라도 그 틀 안에서 우리는 한편으론 전략적으로라도 북한을 지원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교류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 인구가 2300만 정도라는데 그중에 몇 만이라도 만날 수 있으면 큰 의미가 있다. 야당은 그걸 비판하는데, 그들은 우리와 역사관, 세계관, 인간관이 다른 거다.
미국이 성의가 있다면, 제재의 틀 안에서 북한을 세계은행(WB)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또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넣어주면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 아주 조금씩, 단계적으로 열어주는 방법을 제안해 볼 수도 있다. 북을 끌어들여 함께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검토하고 연구해야 한다. 북한을 개방으로 끌어내는 이점을 설파하고 설득해야 한다. 지금은 현금이 흘러가는 부분이 제재에 걸린다. 이는 문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실현을 위해서도 가능한 한 빨리 해소해야 할 문제다.

 

 

더 과감한 퍼주기필요

 

Q: 개성공단의 경우도 계획대로 확장되었다면 북의 경제가 남쪽과 연계되어서 상당부분 상호 의존 관계가 강화됐을 것이다. 개성공단은 원래 2천만평까지 단계적으로 확장하게 돼 있었는데.

원래 계획의 10분의 1도 못 한 거다. 문제는 제재 때문에 현금이 흘러들어가는 거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건데, 우리는 필요하면 위험도 감수해야 하고, 그 전에 미국을 설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Q: 북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은 감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개성공단이 전략적 접근이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닫지 않았어야 했다.

맞다.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고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했다. 그땐 그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문 정권도 기대에 적극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개성공단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작동시켜서 전략을 짜야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니다. 지금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미국 없이 우리끼리 가자’고 하지만 그건 비현실적이다.

 

Q. 다음 미국 대선은 어떻게 예측하시는지?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은?

미국 중간 선거에서는 몇 차례 예외를 제외하고는 야당이 유리했다. 현재 여론조사는 하원은 민주당이, 상원은 공화당이 이긴다고 점치고 있다. 경제 상황이 좋은 점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예측대로 갈지는 두고 야 한다. 하원에서 민주당이 다수를 점할 경우 전반적으로 트럼프 백악관이 지금보다 어려워질 건 당연하고 북한 문제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북핵 문제 뿐 아니라 인권과 독재 문제가 장애로 대기하고 있다. 중간 선거 이후 바로 다음 대선 주자 등에게 관심이 가게 된다. 여기에서 최근 사의를 표시한 니키 헤일리 UN 대사에게 이목이 쏠린다. 그녀는 소수자인 인도계이고 여성이자 보수의 아성인 남부(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출신이다. UN 대사 경력으로 외교적인 목소리를 갖게 됐다. 거기에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드물게 트럼프의 축복을 받으며 현직을 떠난 인물이다. 트럼프가 2년 뒤 재선을 위해 헤일리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고 그 이후 헤일리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반도와 연동될 개연성이 있는 대목이다.

인터뷰 한승동(편집인), 정리=박지은 수습 편집자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앵커 등을 지낸 방송인 출신 정치인. 현역 재선 국회의원(19, 20대, 민주당). 뉴스데스크 앵커로 있을 때 뉴스를 끝맺는 ‘클로징 멘트’에서 소신을 담은 날카롭고 직설적인 비평을 날려 화제를 모았다. 그는 결국, 정권의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그 멘트 때문에 앵커직을 그만두게 된다. 앵커에서 물러날 때 당시 이명박 정부의 외압 때문이라는 설이 돌았고, 사내 지지자들의 반발도 많았다. 2010년 정년퇴임 뒤 2012년 19대 총선 때 민주통합당에서 공천을 받아 서울 영등포구 을 지역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20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재선됐다. 국회에서는 민주당의 국정원 선거개입 진상조사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확인한 사실을 토대로 <국정원을 말한다>(2013)는 책도 썼다. 책은 ‘좌파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공세 차단’, ‘박원순 시장 제압’ 등의 정치공작을 자행한 국정원의 비리를 고발했다. 2000-2003년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그는 그 전인 1987~1988년에 미국 의회 펠로십 객원연구원, 1997~1998년에는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언론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미국생활을 경험했다. 이런 경험과 5년간의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 및 간사, 북한부와 국제부 체험 등으로 다져진 그의 폭넓은 안목은 특히 남북관계와 국제정세 분석에서 빛을 발한다. 1953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문화방송 기자로 입사해 정년퇴임 때까지 외신부(국제부), 사회부, 북한부, 정치부 기자로 일했고 뉴스데스크 주말 진행자(1993-1995), 국제부 부장, 논설위원, 뉴스데스크 평일 진행자(2008-2009)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