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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준 칼럼] 반도체 칩4동맹과 미국의 패권 2

By | 2022년 5월 26일 | 국제, 미래, 미분류, 산업

언론은 그간 철(steel)을 산업의 쌀이라고 해석해왔다. 쌀로부터 음식이 시작되듯이 제조업은 철없이 시작할 수 없었다. 현대 산업에서는 철의 역할을 반도체가 담당한다. 가까운 예로 자동차 산업이 있다. 자동차 산업은 이제 51%이상 전자산업이다. 자율주행차, 전기차가 보편화되면 이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현재 상태의 자동차에는 1백 개 쯤의 반도체가 들어가는데 자율주행차에는 1천개의 반도체가 들어간다고 한다.  이 ‘쌀 산업’에서 한국은 세계 정상급이다. 그리고 미국, 중국이 각각 따로 노는 반도체 블록화는 시장 축소, 원가 상승, 투자비 회수난 등 일대  위기다. 권석준 필자는 위기를 적극적으로 타고 넘어가자고 제안한다. 차세대 반도체 제조에서 필수적인 양자 ICT 기술 개발 경쟁에 현재보다 더 스케일 크게 뛰어드는 것, 인도 아세안 등에 반도체 수직계열화 업체 육성, 필요하면 일본 대만과도 상호 발전을 위한 대협업 추진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런 류의 경쟁에서 ‘기업은 뒤쳐졌다가 만회할 수 있어도 국가는 한번 처지면 만회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비상한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편집자 주]   

✔ 제조업의 시작이 철이라면 현대 산업의 시작은 반도체
✔ 반도체 산업 위기를 불러올 미·중 견제와 개별 블록화
✔ 반도체 블록화로 표준의 궤가 달라지면 한국 입지는 불리
✔ 칩4동맹은 종국에 경제·안보 동맹, 유독 예민한 대만 상황
✔ 미국 블록 선택이 불가피, 중국 공백은 아세안서 만회해야
✔ 필요하면 일본 대만 업체와도 공동 번영 위한 협업 추진

사진:셔터스톡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현대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의 동력이고, 이 때문에 산업 전체적인 비용 절감을 위해 20세기 후반 제조와 설계의 분리가 본격화된 이후, 미국의 주도 하에 오랜 기간에 걸쳐 최적화되어 온 시스템이다. 1부에서는 만약 중국이 이러한 글로벌 시스템에서 어떤 계기로든 분리될 경우 어떠한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 그리고 각국이 감내해야 할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았다. 경제적인 논리만 따진다면 중국이 스스로 분리를 꾀하든, 미국이 강제로 분리시키려고 하든, 지금의 시스템을 두 개로 나누는 것은 lose-lose game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결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최우선적인 정책으로서 글로벌 반도체 산업망에서 중국을 제외시키고, 이를 위해 한국, 대만, 그리고 일본을 동참시켜 이른바 ‘칩4동맹’ 체제를 완성한다면 앞으로의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어떻게 흘러갈까?

중국, 러시아에 새 메인보드 출시는 분리의 신호탄인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중국이 주도하는 또 다른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려 할 것이다. 이에는 러시아를 포함하여 중국의 자본이 많이 투입된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주로 제 3세계 국가들이 포함될 전망이다. 특히 중국은 지리적으로도 접해 있고 인구 대국이기도 한 러시아 시장을 키우는 것에 주안점을 둘 것이다. 2022년 5월, 중국의 시스템 반도체 업체인 Zhaoxin은 x86 CPU인 KaiXian을 탑재한 메인보드를 러시아에 출시했는데, 이는 러시아가 현재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서방세계의 경제 제재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중국이 러시아의 반도체 시장을 서방세계 표준에서 중국의 표준으로 전환하려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는 당분간 인텔이나 AMD, 엔비디아, ARM 같은 미국 혹은 미국 동맹국들이 만든 칩이나 설계 자산을 수입할 수 없다. 문제는 러시아를 포함하여 중국의 영향력이 닿는 국가들의 반도체 산업 및 기술 기반이 매우 약할 뿐만 아니라, 시장 규모 역시 매우 작다는 것이다. 즉, 중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또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부터는 직접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되어 있다.

설사 중국이 자급하여 만든 CPU, DRAM, SDD, 그리고 리눅스 기반의 중국산 운영체제까지 모두 중국산으로 만들어진 컴퓨터가 중국 내수 시장은 물론, 이들 국가에 널리 보급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표준화된 정보 처리 및 저장, 해석 및 읽기/쓰기 체제를 갖춘 하드웨어에 맞춰 설계된다. CPU의 설계 구조, 메모리의 대역폭과 속도, GPU의 그래픽 메모리 스펙과 SDD의 콘트롤러 등의 모든 스펙을 고려하여 소프트웨어의 퍼포먼스가 최적화되며 역으로 소프트웨어의 요구조건에 따라 반도체 칩의 하드웨어 디테일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이 주도하는 또 하나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또 하나의 생태계가 등장함을 의미한다. 문제는 미국과 미국의 칩4동맹 등이 주도하는 기존의 공급망+생태계와 중국이 주도하는 공급망+생태계 사이에 호환성이 점점 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사진:셔터스톡

미·중 반도체 블럭간 거리 멀어지면서 중국의 갈라파고스화 가능성 

한때 전자왕국으로 불렸던 일본의 전자산업계가 몰락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갈라파고스화다. 2022년에도 여전히 팩스가 주요 통신 수단으로 기업에서 활용되고, 피처폰 (스마트폰 이전의 구형 핸드폰)이 사용되며, 전자사전 신제품이 계속 출시되고 있는 일본은 자국에서만 통용되는 전자제품 기술이 많이 있다. 한 때는 일본 내수 시장이 충분히 컸기 때문에 이러한 자국 표준 기반의 산업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사회의 노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선 후, 내수 시장으로부터 얻는 경쟁력은 축소되었다. 특히 전자 산업의 글로벌 표준화가 진행되면서 일본 업체들이 선두권에서 내려오면서부터 일본만의 전자 산업 기술은 갈라파고스가 되었다. 이러한 기술들은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호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비용이 추가로 들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 중국 중심의 반도체 산업 체계 역시 글로벌 체계와 분리된 시점부터 갈라파고스화가 진행될 것인 것인데, 일본의 케이스와는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중국의 내수 시장이 충분히 크다는 것, 그리고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의 자급화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또 다른 반도체 생태계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기존의 생태계와의 거리는 점점 벌어져,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아예 다른 기술처럼 호환이 되지 않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그 시점에서 설사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정상화된다고 해도 각자가 추구해 온 산업의 생태계를 불편 없이 합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도체 산업을 포함하여 글로벌화된 대부분의 산업은 공통된 표준을 따른다. 그리고 차세대 기술에 대해서는 해당 산업을 주도하는 메이저 업체들 혹은 각국의 대표단들로 이루어진 표준위원회가 구성되어 지속적으로 표준 제정에 대한 협상을 진행한다. 표준을 맞추는 과정은 지난하나, 결국 제정된 표준은 모두가 따르게 된다. 이렇게 표준을 끊임없이 관리해야 하는 까닭은 모두가 비용을 절감하고 최대한의 효과를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표준이 바뀌는 순간부터 이익공동체는 해체된다.

표준의 궤가 달라지면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 입지 잃어

결국 칩4동맹이 결성되어 중국이 소외되는 결말로 이어질 경우, 표준의 궤가 달라지는 결과가 초래될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는 소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그간 전략적으로 모호한 입장을 취해 오던 한국의 사업 방식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견 중국용 반도체와 미국용 반도체를 따로 생산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반도체 산업의 표준에 맞춘 칩과 미국 표준에 맞춘 칩은 공정만 약간 달리 하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 표준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장비, 소재, 그리고 심지어 스펙 평가 기준까지도 달라질 수 있다. 이는 각 용도에 맞는 라인을 분리해야 함을 의미하고, 이는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제조 비용의 증가를 감내하면서까지 설사 각 생태계 전용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치적으로 가능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TSMC나 삼성전자에서 추구하고 있는 차세대 초미세공정인 3 나노 공정에 필수적인 노광 장비인 EUV는 네덜란드의 ASML이 독점 생산하는 장비인데, 이 장비는 미국의 대중 제재 이후 대중국 수출이 금지되었을뿐더러, 향후 칩4동맹이 본격화되면 이 장비를 이용하여 생산된 부품의 수출마저도 제재될 것이다. EUV를 구성하는 기술 IP 중 15% 이상이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회사 혹은 학교 소유이기 때문이다. TSMC가 중국의 팹리스 업체들의 파운드리 물량을 수주하는 것이 원천 금지될 것이고, 아예 중국 팹리스 업체들의 설계 자산이 자사의 라이브러리를 기반으로 하지 못 하게 할 정도로 제재 수준이 올라가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설계 단계부터 기존의 표준화된 툴을 사용하지 못 할 경우, 중국은 자국산 설계 툴을 이용하여 칩을 설계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설계 과정에서 기존에 최적화된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것 마저도 불가능해지면 중국은 그야말로 맨땅에서 설계 요소들을 처음부터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역시 마찬가지이며 삼성이 중국에서 합자 형태로 운영하는 메모리반도체 산업 역시 결국 중국 안에서만 활용되는 수준에서 제재 당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미국이 구상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가시화되기 시작하면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 IP가 하나라도 활용된 반도체 관련 기술 품목들까지도 대중국 반도체 산업 견제의 품목으로 관리될 것이며, 이를 어기는 업체들은 세컨더리 보이콧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2025년경 미 현지 생산공장 완공과 미국의 블록 재구축 작업 겹쳐    

대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과 대만 입장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칩4동맹 제안은 양자택일을 의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메모리 반도체를 시작으로 점점 파운드리, 전력반도체, 팹리스 등으로 산업이 다각화되고 있는 한국이나, TSMC를 중심으로 전세계 파운드리 산업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대만이나, 사실 지난 20여년 간 막대한 수익, 그리고 그것을 다시 투자하여 생산력을 증대시킬 수 있었던 자본의 흐름은 중국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은 같다. 만약 칩4동맹이 본격화되면 초기에는 두 국가 모두 큰 폭으로 감소할 수도 있는 수익을 이유로 동맹 가입에 저항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국 두 국가 모두 이에 가입한다면 각국의 반도체 업체들은 예전의 자본의 투자 및 회수 방식이 통용되지 않을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실상 두 생태계 사이에서 입장을 정리하고 전략을 재수립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 봐야 2-3년 정도 밖에는 남지 않았다. 실제로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은 2024년-25년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재편이 예정되어 있다.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계획이 그 시점에 맞물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이들 기업들이 미국 혹은 미국의 동맹국들을 생산기지로 하는 방향으로 증산이 시작되는 시기와도 겹치기 때문이다. 대만의 TSMC는 2024년을 기점으로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3나노급 파운드리를 포함한 신규 시설을 대규모로 재편하여 파운드리 증산을 시작한다. 삼성전자는 이미 2022년 상반기, 미국 텍사스주에 역시 신규 초미세 공정이 포함된 파운드리 증산을 위한 공장 착공식을 가졌고, 예정대로라면 2024년 하반기부터 생산이 본격화된다. 전통의 강자 인텔 역시 미국의 애리조나, 오하이오주에 공장을 증설하고 독일에도 전력반도체 생산을 위한 시설을 가동하며 2024년부터 생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른바 미국의 리쇼어링 (re-shoring)은 칩4동맹으로 의미가 확대되어 프렌드-쇼어링 (friend-shoring)으로 재정립되려 하는데, 그 시점이 2025년 이후라고 생각해 본다면, 대만과 한국 모두 사실 매우 급박한 상황에 놓인 것이라 봐야 한다.

사진:셔터스톡

중국에서 번 돈으로 생산력 증대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산업

칩4동맹의 성립에 있어 한 가지 유념할 필요가 있는 사안은 대만이 중국에 대해 갖는 특수성이다. 여전히 대만은 한국이나 일본 같은 주권국가로 널리 인정받는 상황이 아니며 중국은 늘 대만 문제를 주권침해 요소로 설정하여 외부의 간섭이 어떠한 형태로든 구체화되는 것에 민감하다. 대만의 GDP 성장을 이끌고 있는 반도체 산업, 특히 TSMC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제조업 클러스터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수익의 1/3 이상을 얻고 있고 중국에 생산 기지를 둔 기업들도 상당수다. 미국의 제재가 있기 전, TSMC의 최대 고객은 중국의 화웨이였고, 중국의 파운드리 1위 기업 SMIC에는 TSMC 출신 엔지니어들이 500명이 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을 미국과의 관계에 의존하고 있는 대만 입장에서 중국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칩4동맹 가입은 국가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대만과 중국 사이의 지리적 거리가 워낙 가깝기도 하려니와, 언제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등의 급박한 사태로 위기가 고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만의 반도체 제조 업체들은 생산 기지를 일본과 미국으로 증설하는 방향으로 리스트 분산을 꾀하고 있으나, 여전히 절대 다수의 R&D 센터와 생산 자산은 대만 본토에 있다. 칩4동맹이 철저히 이익 공동체이자 가치 공동체로서만 작동한다면 모르겠지만, 결국 이 동맹은 경제-안보 동맹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의 선택에 민감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는 실제로 칩4동맹이 성립할 수 있을 것인지, 장기간 존속될 수 있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된 이슈가 될 것이다.

만약 대만까지 우여곡절 끝에 가입함으로써 칩4동맹이 확고해지고, 결국 대만과 한국, 일본이 중국 시장을 사실상 상실한다면 과연 세 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그 상실된 부분을 수년 이내로 회복할 수 있을까? 현재 기준의 반도체 기술 로드맵에서는 1부에서 언급한 바대로 시장의 축소로 인해 모두가 어마어마한 비용 상승의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이에 더해 적어도 공급망이 재편되는 10여년 간 각국은 최소 연간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비용을 각자 부담해야 한다. 소비 시장의 규모 축소로 인해 글로벌 경기의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던 일부 회사들의 연쇄 부도가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중국이라는 큰 시장이 상실되면 증산한 생산 시설은 비용 증가의 촉매가 될 수 있고, 중국 현지 생산으로 절감한 비용은 다시 몇 배의 비용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반도체 시장이 재편된 이후,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비용 문제 해결해도 산넘어 산, 양자 ICT 기술로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성공해야  

지금의 실리콘 기반 반도체 공정 기술은 점점 물리적, 경제적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물리적인 선폭을 줄이는 것에 대한 한계는 물론, 소재 자체의 물성 한계, 그리고 튜링이 제안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디지털컴퓨터 자체의 한계가 가까워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TSMC 양사 모두 차세대 초미세 공정인 3나노 공정에서의 양산 계획을 원래의 계획보다 1.5년-2년 이상 연기했을 정도로 공정에서의 양산 역시 큰 난관에 봉착해 있다. 반도체 공정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공정 비용은 더욱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이는 반도체 산업 전반의 비용 상승을 불러일으킨다. 그간 당연시되던 이른바 무어의 법칙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되면 반도체 산업에서의 혁신에서 급격한 경제 성장 동력을 이끌어 내었던 지난 반 세기 동안의 경제 성장 논리가 뿌리 채 흔들린다. 물리적, 기술적, 경제적 한계 상황에 봉착한 현대 반도체 기술의 돌파구는 나올 수 있을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차세대 반도체 기술이 많이 제안되고 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양자 ICT 기술이다. 현재의 전망대로라면 향후 20-30년 안으로 반도체 산업의 전장은 현재의 실리콘 기반 폰 노이만 방식에서 조금씩 양자 ICT 방향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중장기적인 반도체 산업 전환 국면에서 계속 자국의 헤게모니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칩4동맹은 그러한 산업 전환기에서의 포석 중 일부로 볼 수도 있다.

미국, 차세대 양자 ICT 기술개발 과정에서 중국 추격 뿌리칠 장벽 구축할 듯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한결같은 산업 지배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그것은 제조업에 대한 원천기술 표준 선점 및 시장 지배력 보존이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석유화학, 기계공업, 플랜트 산업, 제철산업, 그리고 반도체 산업 같은 전통적인 산업에서 그래 왔듯, 미국은 앞으로 차세대 반도체 산업이나 양자 ICT 분야에서도 길목길목마다 반드시 지나치지 않을 수 없는 지식재산권(IP)을 깔아 두는 것을 국가적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주요 기술에 대한 표준을 선점하려 하며, 특히 칩4동맹을 시작으로 재편될 서플라이 체인이 그대로 차세대 반도체 기술 동맹, 즉, 양자 ICT 기술 동맹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을 계획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칩4동맹에 들어가지 못 할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양자 ICT 분야에서 기술 표준에 참여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을 것임을 의미한다. B2C로는 제품을 잘 만들지 않을 뿐더러, B2B도 어떤 서비스를 하는지 잘 안 알려져 있는 특징 때문에 사람들이 반도체 기업이라고 하면 잘 납득을 못하는 미국의 회사 중에 하나가 바로 IBM다. 이 회사가 딱히 B2C 제품을 많이 만들지 않더라도 여전히 연간 800억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주된 이유 (그리고 매출이 꾸준히 성장세인 이유)는 수십 년짜리부터 수개월짜리까지 다양한 주기의 선행 기술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쌓아둔 원천기술 특허들 때문이다. 대부분이 반도체 소자나 공정, 소재, 툴 등에 맞춰져 있어서 곳곳에서 거대한 포석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다. IBM는 미국 정부가 차세대 산업 전략을 세울 때에도 항상 참여하는 대표적인 키플레이어인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러한 거미줄 같은 선행 기술 지재권(IP)들 때문이다. 장판파의 장비 같이 피해갈 수 없는 IP가 쌓이면 결국 그 기술이 그 업계의 표준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구글을 포함하여 애플, 메타, 엔비디아 같은 미국의 주요 IT 테크기업들 역시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당장 돈이 안 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서 선행 기술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것이 무엇을 노리는 것인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지금의 실리콘 반도체 산업이 양자 ICT를 위한 필수적인 마중물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자 ICT 기술은 양자 정보를 제어할 수 있는 소재와 소자를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나노미터 혹은 원자 스케일에서의 공정과 소재 제어 노하우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하우는 기존의 반도체 산업에서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며, 한 회사가 주도적으로 커버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즉, 양자 ICT 산업에서도 여전히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 정립될 것이고, 그 전신은 글로벌 반도체 서플라인 체인이 될 것이며, 표준과 기술 자산은 바통을 이어받듯 자연스럽게 전달될 것이다. 미국은 이 전이 과정에서도 중국을 제외시키는 것을 계획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에 대해 경제개발계획의 주요 아젠다의 우선순위에 양자 ICT를 선정하여 대응하고 있다.

한국, 미국 블록 채택불가피, 아세안에서 매출 증대로 중국 공백 메울 궁리 필요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로까지 생태계가 분리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미국 입장에서는 안보 동맹에 비해 느슨할 수 밖에 없는 경제 동맹, 나아가 가치 동맹이라는 시스템의 허술한 구조를 차세대 반도체 로드맵으로 이어지는 전략으로 보강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시간이 별로 없는 한국은 그간 고수하던 모호한 포지션에서 얻었던 수익 모형을 크게 수정해야 하고, 무게중심을 미국 주도의 시스템에 포함되는 것에 놓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현재 30%가 넘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 조절이 과제인데, 이는 시장 다변화, 수익 창출 모델의 다변화를 통해 꾀해야 한다. 1부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세아권의 반도체 시장 성장 전망은 밝으며 이는 소비 시장으로서도 생산 기지로서도 중국을 대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 인구 대국이 몰려 있고 경제성장률이 높은 아세아권의 특징을 고려컨대 수요처의 변동이 소비자 IT 중심으로, 그리고 그를 위한 기반 기술 확립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임을 고려하여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가는 전략을 정부 차원에서 수립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R&D 센터는 물론 제조기지로 자리 잡을 수 있고 언제든 이 모델을 참고하여 말레이시아나 태국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할 수 있다. 또한 인도와 호주가 중국을 대신하는 소재 및 생산 공급기지로 떠오르는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이미 두 나라는 미국과 다양한 경제-정치 공동체를 이루고 있을뿐더러, 앞으로 주요 플레이어가 될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호주가 비록 현재 기준으로는 반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크지 않으나, 이들이 당당히 글로벌 공급망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는 차세대 반도체 분야의 핵심 기술이 될 가능성이 높은 포토닉스 기술에 대한 기초과학 체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인도 역시 희토류 매장량 외에, 차세대 반도체 산업의 핵심이 될 AI칩 설계에 대한 성장률이 눈에 띄게 높으며, 2020년대 들어 팹리스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와중에 10년 후에는 글로벌 수준의 팹리스 업체들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이는 기존에 인도가 자랑하던 IT 산업의 기반과 융합되어 자체적인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이루게 될 초석이 될 것이다. 즉, 인도는 팹리스와 부품 설계 산업의 확장성이, 호주는 광반도체와 소재 공급 기지로서의 확장성이 풍부하다는 특징이 있다. 미국이 재편하려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아세안, 인도, 호주가 새롭게 자리잡기 시작하면 중국에 쏠려 있던 수출 비중 역시 다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아세안-호주는 미국이 추구하는 IPEF의 핵심축이기도 하다.

위기를 기회로? 양자 ICT 표준 그룹 적극 참여, 인도 베트남 업체들과 수직계열화 강화

한국이 새롭게 재편될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의 존재감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반도체 산업 공급망에서의 키플레이어로서의 포지션 보전은 물론, 차세대 반도체 산업에서의 포지션 선점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양자 ICT 표준 그룹에 더 많이 더 큰 비중으로 참여해야 한다. 현재 이 그룹에는 중국 기업들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동맹국 기업들 일부만 참여가 허용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에 맞춰 미국은 자국의 기업과 대학들과 협업하여 양자 ICT 기술 IP를 공동으로 창출하는 기업들에 대한 혜택을 주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은 기업 단위에서도 그렇지만, 대학들과 연구소 역시 미국 반도체 산업과의 국제 협력을 양과 질 모두 더 강화해야 한다. 더 많은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더 많은 기술이전을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주요 연구 중심 대학에 더 많은 현지 기술 개발 프로그램 및 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미국에 더 많은 R&D 센터를 신설하여 미국으로 몰려드는 다국적 인재들을 한국 기업의 인력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는 철저하게 미국이 그리는 기술 로드맵의 레퍼런스 포인트가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은 시장의 다변화와 차세대 반도체 기술에서의 표준 선점이다. 미국이 격년으로 개최하는 양자암호통신 분야 그룹에서 표준을 선도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고 기초분야의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표준 경쟁력 확보는 기술 신뢰도의 향상과 전략적인 IP 포트폴리오 구성으로 가능하다. 기초분야의 연구개발 투자는 정부의 전략적 연구개발정책 수립으로 대응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일부 대학이 중국 정부나 회사로부터의 연구개발자금을 지원받고 있는데, 중국과의 해당 분야 기술 협력 시도는 장기적으로는 미국 주도의 표준 그룹에서의 자리 박탈로 이어질 수 있고, 최악의 경우, 그 협력 대상자는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 역시 외연을 넓혀, 단순하게 K-반도체만 기치로 외칠 것이 아니라, 클러스터의 외연을 아세안권, 인도, 호주 등으로 확장하려는 복안을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 성장할 AI 칩 설계 전문 팹리스 스타트업들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이들이 한국의 생태계에 편입될 수 있도록 더 전문적인 DSP이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인도나 베트남 현지에 이런 회사들이 더 많이 진출하게 하여 향후 각 나라에서의 반도체 산업 규모가 커지는 모멘텀의 일부를 한국으로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호주와 포토닉스 기반 차세대 광컴퓨터 기술 그리고 양자정보 분야의 기술 협력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산업의 종속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적절하지 않지만,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언제든 앞으로 재편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이들 새로운 이머징 플레이어들이 한국과 무리없이 클러스터링 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지금부터 조성해야 한다.

사진:셔터스톡

필요하면 일본, 대만 업체와도 공동번영 위한 협업 추진해야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산업의 지도는 언제든 다시 그려질 수 있고, 짧은 주기로 명멸하게 될 회사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는 그럴 수 없다. 첨단산업에서의 경쟁력 확보하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잃은 후 되찾기는 더더욱 어렵다. 멀리 갈 것 없이 일본의 케이스를 생각하면 된다. 앞으로 미-중 기술 갈등, 산업 갈등, 나아가 패권 갈등이 첨예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한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대체 불가능한 포지션을 고수할 수 있는 실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반도체 산업 지형을 더 많은 팹리스 스타트업, 더 많은 소재-부품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다변화는 것이 필요하며, 차세대 반도체 산업으로의 전환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양자 ICT나 광컴퓨터, 포토닉스 등에서의 선행 IP 확보도 중요하다. 적절한 시점에 일본과 다시 반도체 산업에서의 협력과 신뢰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상호간 비용을 절감하면서 일본의 업체들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으로의 편입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으며, 대만과는 발전적 경쟁 구도를 이루며 1 나노 이하 옹스트롬 (0.1 나노)급 반도체 공정 선행 기술 개발에 대해서도 협력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자유 경쟁 체제에서는 상호 경쟁 밖에 없으나, 미국이 재편하는 산업의 판도에서는 전략적 제휴도 중요한 옵션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2024년 이후, 바이든 정부가 2기를 맞을 것인지 여부에 따라 현재의 미-중 갈등 국면에 전환점이 찾아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권이 설사 교체된다고 해도 전임 트럼프 정부의 대 중국 견제 기조를 현 바이든 정부가 이어 받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 당분간은 이러한 대결 기조가 완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여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정책 방향을 정리해야 한다. 예상 가능한 피해 규모와 범위를 산출하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구제책을 구체화해야 하며, 생산 기지의 이전이나 리쇼어링에 대한 계획도 본격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두 개의 평행세계는 아니지만 두 개의 반도체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도 고려 사항에 넣어야 한다.


글쓴이 권석준은
서울대 공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MIT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을 지냈고 차세대 반도체 소재 및 광(光) 컴퓨터, 양자 컴퓨터 등의 차세대 IT소자 원천 기술 등을 연구 중이다. 현재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지금까지 60여 편의 논문을 해외 저명 학술지에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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