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최근 편집 2022. 12.07. 00:00

[권석준 칼럼] 반도체 칩4동맹과 미국의 패권

By | 2022년 5월 24일 | 국제, 미래, 미분류, 산업

미국이 반도체 생산-소비의 블록 형성을 추진하고 있다.바이든 대통령 방한 이후 불거지고 있다. 반도체 분야의 뛰어난 해설가인 권석준 필자는 이번 글에서 그런 시도로 중국이 갈라파고스 섬처럼 될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편집자가 보기에는 이것이 2억년전 초대륙 판게아(Pangaea)가 북반부의 로라시아(Laurasia) 대륙과 남반구의 곤드와나(Gondwana) 대륙으로 분리되는 것의 시작은 아닌지 궁금하다. 가까운 과거로는 1990년 사회주의 몰락 이후 도래했던 전세계 단일시장(single market)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고들 말한다. 성공할까? 한국은 어떤 영향을 받으며 어떤 길을 가야 할까? 권석준 필자의 글을 2회에 걸쳐 집중 분재한다.[편집자 주]

✔미-중간 패권 경쟁 심해지며 2019 이래로
   미국의 대중 첨단 기술 제재는 여전히 진행중
✔중국 정부는 전략적으로 반도체 산업 지원
   반도체 굴기는 미국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
✔미국의 중국 반도체 견제 정책은 자기 발등 찍기
  어떤 결말로 가든 중국은 차세대 반도체 업계 큰손
✔바이든 정부, 한국 일본 대만에 칩4 동맹을 제안
   단순한 이해관계 공유를 넘어서 안보와 가치 공유

2021년 중국 양회의 핵심 어젠다: 반도체 산업 자력갱생

2021년 3월에 있었던 중국 최대의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에서는 경제개발계획 격이라 할 수 있는 제 14차 5개년 계획의 주요 아젠다가 발표되었다. 2019년부터 본격화된 미-중 간의 갈등 국면이 더 가열차게 고조되던 시기였고, 더구나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도 그 위중함을 더해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이목은 중국 정부가 그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던 첨단산업 육성이라는 기치에 다소 변화가 있을 것인지 여부에도 쏠려 있었다. 그러나 막상 발표된 5개년 계획의 아젠다에는 첨단기술 분야, 특히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의 중국의 자력갱생 의지가 더욱 뚜렷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5G, 인공지능, 양자 ICT 같은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발전을 위해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자립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중국 스스로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일부 분야, 예를 들어, 주요 공정 장비, 칩 설계 소프트웨어, 광대역 에너지 갭 반도체 같은 분야에서의 세부 발전 전략을 명시하기도 했다.

자국 반도체 기업 향한 전략적 지원과 속도 증대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

여전히 반도체 자급이 15% 대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지만 중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 의지와 미국 주도 대중 반도체 기술/무역 제재 국면 속에서 2022년 1사분기 중국의 반도체 수입 규모는 전년 대비 10% 가까이 감소했다 (수입액은 15% 정도 증가). 이는 코로나19 여파를 고려하더라도 예년 기준, 매년 평균 10% 이상씩 증가하던 수입 규모를 생각해보면 매우 이례적일 정도의 규모로 감소한 수준이다. 특히 수입액은 증가했으나 수입 규모 (칩의 개수와 종류)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일부 고부가가치 부품이나 칩, 설계 IP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외국 의존도를 줄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중국이 조금씩 자국 반도체 산업의 자립도를 강하게 추진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019년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대중 기술 제재 수준은 여전히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중국 정부는 오히려 그에 대해 맞불작전을 펼치듯 자국의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전략적 지원의 규모와 속도 증대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펀드는 주로 반도체 산업의 스타트업으로 쏠리고 있다. 2021년 중국의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들은 어느새 2,000개를 훌쩍 돌파하였고, 중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있는 SMIC (중신궈지)같은 파운드리 기업, YMTC 같은 메모리반도체 기업 역시 중앙 및 지방 정부의 펀드를 집중 지원 받아 생산 시설을 늘려가며 매년 매출액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력갱생 의지는 SMIC와 칭화유니 같은 반도체 제조 전문 대기업을 위시로 중국 반도체 산업 전체가 성장하게 만드는 엔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2년 5월, 중국 공산당은 중앙/지방 정부 및 국영 기업에서 사용 중인 모든 외국산 컴퓨터를 2024년까지 중국산으로 대체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그 규모는 물경 5천만 대에 이른다. 이는 외국산 컴퓨터, 특히 외국산 반도체에 의존하는 컴퓨터를 레노버, 인스퍼, 팡정, 둥팡, 하시 등의 자국산 브랜드 컴퓨터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특히 그 과정에서 단순히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운영체제, 그리고 일부 오피스프로그램 같은 필수 소프트웨어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반도체 자력갱생 의지는 결코 좋은 신호만은 아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반도체 산업 포위망에 대한 작용-반작용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시경제학의 이론을 굳이 되풀이할 필요도 없이, 고도로 분업화된 거대한 기계 같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맥락에서 볼 때, A부터 Z까지 한 나라가 반도체 산업 전체에서 모두 다 잘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기술적으로 자력갱생이 가능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소위 비교우위의 논리는 변하지 않는다. 즉, 자국의 산업 생태계 안에서 설계와 생산, 소재와 부품, 공정과 장비에 이르기까지 산업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 특히 그것을 정부가 주도로 시행하는 것은 이미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궤도에서 크게 벗어난 전략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렇게 고립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는 무리수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경제적 논리에 앞서,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즉, 중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의 자력갱생을 외치는 것은 단순히 경쟁력이 떨어지는 혹은 자급률이 떨어지는 일부 분야의 실력 강화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아예 글로벌 반도체 산업 생태계와 분리되는 최악의 경우까지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중국 양회 중 하나인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회의장 모습(사진:연합뉴스)

반도체 굴기는 미국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와 분리되는 것 자체를 중국 정부가 목표로 삼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의 반도체 산업 특성을 고려하건대, 오랜 기간에 걸쳐 고도로 얽혀 있으며 기술의 표준을 공유하고 있는 산업 체계에서 분리된다는 것은 자력갱생은 커녕 자국 산업이 그 자체로 갈라파고스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좁게는 수입-수출 채널의 폐쇄부터, 넓게는 기술 표준의 분리와 호환성 상실, 나아가 차세대 기술 로드맵의 공유와 지적재산권의 활용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시스템에서 분리되는 것은 분리되는 그 순간부터 폐쇄성을 동반하며 수많은 악영향을 파생시킨다. 더구나 산업적 파급력이 큰 반도체 산업에서의 갈라파고스화는 다른 산업까지 갈라파고스화를 유도하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중국 스스로가 이러한 ‘분리’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반도체 자력갱생을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움직임에 있다. 미국이 바라보는 반도체 공급망에서의 중국의 포지션은 2010년대 이전까지는 충실하고 저렴한 생산 기지이자 거대한 소비 시장이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중국 시장은 안정된 수익을 매년, 그것도 연평균 10% 이상의 고성장률을 동반하며 가져다 주는 시장이었다. 그러나 미-중 사이의 글로벌 패권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이 먼저 꺼내든 옵션은 중국에 대한 기술 통제였다. 이는 좁게는 중국이 계속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질서 체계에서 예측 가능한 플레이어로 남게 만드는 것, 그리고 넓게는 중국이 제어되지 않을 경우 중국을 미국이 주도하는 체계에서 분리시키는 것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옵션이었다. 2020년대 들어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은 후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후자의 옵션이 현실화되면서 결국 미국 주도의 시스템으로부터의 분리를 강요당하기 전에 먼저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가 되고 있다. 즉, 미국의 대중 견제책의 제 1 옵션으로서, 반도체 산업에서의 대중국 포위망이 형성되는 것에 대해 중국이 선제 대응책으로 꺼내든 것이 바로 반도체 굴기, 반도체 자력갱생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반도체 소비로 보면 미, 중, 한·대만·일, 유럽의 4극체제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 입장에서는 스스로 발등을 찍는 셈이 될 뿐인 중국 반도체 견제 정책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제외되는 옵션은 더더욱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전망도 여전히 우세하다. 미국과 중국은 자의든 타의든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의 분리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 분리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고 해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2019년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미-중 반도체 무역/기술 전쟁은 양국 간의 갈등을 넘어, 이제는 조금씩 글로벌 반도체 산업 전체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큰 반도체 소비 시장이다. 2021년 상반기 기준, 미국 (더 정확히는 NAFTA 협정국인 멕시코와 캐나다까지 포함)은 전 세계 반도체 소비 시장에서 32%, 중국은 그 뒤를 이어 24% 정도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나머지 20%는 한국, 대만, 일본을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실상 이들 세 나라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 그리고 25%는 유럽이다. 업계의 전문가 대다수는 현재 중국의 반도체 수요가 매년 급증하고 있다는 추세를 기반으로, 대략 2025년 전후, 늦어도 2020년대 말경에는 중국이 세계 최대의 반도체 소비 국가로 올라설 것임을 전망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어떠한 결말로 이어지든, 중국은 자국의 ‘산업 성장’ 자체를 위해서는 다양한 세대와 범위에 걸친 반도체가 필요하다. 따라서 중국이 조만간 세계 최대의 반도체 시장 ‘큰손’이 될 것임은 거의 확실하다.

미국보다 중국과 반도체 거래량 많은 한·일·대만·아세안의 고민

2021년 기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규모는 대략 1.8조 달러 (~2천조 원) 정도 된다. 반도체 산업 자체로도 규모가 크지만, 반도체 산업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전 세계 경제 규모는 세계 GDP 전체의 40% 이상이다. 반도체 시장이 거대한 체스판이긴 하지만 말을 움직일 수 있는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2021년에 BCG-SIA (보스턴 컨설팅 그룹-미국 반도체협회)가 공동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관여하는 국가는 25개국이다. 이 중에서도 소비와 공급 모든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들은 열손가락 이내다. 반도체 교역 규모 기준, 미-중 관계는 170억 달러, 미-EU 관계는 60억 달러, 미-한 관계는 80억 달러, 미-일 관계는 40억 달러, 미-대만 관계는 80억 달러, 미-아세안 관계는 300억 달러, 미-인도 관계는 2억 달러 정도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 대만, 일본 그리고 유로권 정도가 실질적인 플레이어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의외로 중국과의 반도체 무역 규모가 제일 크지는 않으나, 그 규모는 한국, 대만, 일본과의 반도체 무역 규모 전체를 합친 것에 비견된다. 미국은 아세안과도 반도체 무역 규모가 성장하고 있는데,  이는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반도체 기술 (IP), 소재보다는 완성품 형태의 상품 수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미국이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위해 정말 신경 써야 하는 것은 한국, 대만, 일본, 혹은 아세안에 앞서 중국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주요 반도체 교역국들이 대 중국 반도체 교역 규모가 과중할 정도로 큰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반도체 교역 주요 상대국은 바로 한국, 대만, 일본, 그리고 아세안이다. 중국은 한국과 810억 달러, 일본과 240억 달러, 대만과는 무려 1천 2백억 달러, 아세안과는 900억 달러에 달하는 반도체 교역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중 한국, 일본, 대만에 대해서는 지난 20-30년 간, 중국은 계속 반도체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아세안에 대해서만 무역 흑자다. 즉, 한국, 일본, 대만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거대한 반도체 수출 시장이다. 중국은 EU와도 190억 달러, 인도와는 60억 달러 수준의 반도체 교역 규모를 기록하고 있는데, 유럽 입장에서도 중국은 꾸준히 유럽산 반도체 장비와 소재, 제품을 소비하는 큰 시장이기 때문에 놓치기 아쉬운 시장인 것은 확실하다.

(사진:셔터스톡)

미국의 칩4동맹 제안, 대중국 반도체 포위망 계획

이렇게 주요 반도체 플레이어들의 대 중국 반도체 교역 의존도가 매우 높아진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무역/기술 제재가 장기화되면 어떻게 될까? 현재 미국 바이든 정부가 중점적으로 밀어 부치고 있는 대 중국 반도체 포위망이 완성되어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질서가 확립되면 어떻게 될까? 지난 5월 19일, 방한하자 마자 평택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인 삼성전자 반도체 신규 공장을 찾았을 정도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대 중국 반도체 포위망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반도체 빅 플레이어들이 참여해야만 하는 상황을 점점 구체화시키고 있다. 이미 미국은 지난 3월, 한국과 대만, 일본 세 나라에 대해 이른바 ‘칩4동맹’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이 최근 몇 년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형성하고 있는 QUAD (미국-일본-호주-인도)나 AUKUS (미국-영국-호주), 나아가 IPEF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같은 정치, 경제 공동체의 또 하나의 모형으로도 볼 수 있다. 다만 다른 공동체와는 달리 ‘칩4동맹’은 반도체 산업이라는 단일 산업 중심의 경제-기술 공동체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특히 한국, 대만, 일본은 경제적인 측면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미국과 동맹 혹은 준 동맹에 가까운 체제의 민주주의 국가들이기 때문에 칩4동맹이 결성되어 미국 주도의 글로벌 서플라이 시스템 재편에 참여할지 여부는 사실 선택이 아닌 의무에 가까운 상황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이미 칩4동맹 같은 반도체 산업 중심의 경제 공동체가 단순히 경제 공동체에만 머물지 않을 것임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 있다. 2021년 9월, 일본의 닛케이는 QUAD가 결국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 신호탄이 될 것이라 전망하는 기사를 내놓은 적이 있다. 물론 QUAD 중에서 실제로 반도체 산업의 키플레이어로 볼 수 있는 국가는 미국과 일본 정도 밖에 없지만 QUAD는 산업-기술적 공동체의 외곽을 형성하는 안보 장치가 되기 때문에, 결국 핵심 플레이어인 한국과 대만에 대해 이러한 공동체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주문은 어찌 보면 예견된 수순에 해당한다. 만약 안보와 산업 경제 공동체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다면, 미국-한국-대만-일본의 반도체 동맹은 사실 오랜 기간 성립하기 어렵다. 각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분야도 있고, 1-2위를 다투는 분야도 있고, 서로 견제하는 분야도 있고, 서로 기술 우선권으로 갈등을 빚는 분야도 있기 때문이다. 이익의 공동체는 언제든 이익 공유의 입장이 달라지면 해체되기 마련이므로, 그렇지 않아도 기술 혁신 속도가 빠르고 대규모 자본의 투입이 수시로 벌어지는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는 동맹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어렵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미국이 동맹이라는 언급을 한 것은 단순히 이익 공유가 아닌, 안보와 국제정치 프레임에서의 가치 공유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 일본, 대만에 이해 관계 공유를 넘어 안보와 가치 공유 집단으로서의 칩4 동맹을 제안한다. (사진:셔터스톡)

칩4 동맹에 선뜻 응하기 어려운 한국 대만 일본의 딜레마

안보와 정치적 성격이 강화된 이익 공유 동맹은 그 동맹에 들어가지 못하는 국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미국이 생각하는 그 희생양은 당연히 중국이다. 문제는 중국이 미국 주도의 공급망에서 분리되는 것은 미국은 물론 미국의 ‘동맹국’ 입장에서도 거대한 시장이 상실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대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대만은 미국 주도로 재편되는 반도체 산업 지형에 순응하기만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만약 중국을 제외시키면서 재편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편입될 경우, 이들 주요 국가들은 대 중국 반도체 교역 규모가 크게 줄어드는 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대중국 완성품 수출은 물론, 중국 현지에 추가 확장하려는 생산 기지 건설, 팹리스 합자 회사 설립, 기술 교역 등이 어려워진다. 나아가, 고부가가치 생산/검사/패키징/공정 장비, 화합물반도체 등의 소재, 완제품을 수출하는 것 역시 어려워진다. 이를 우회하기 위해 제3국을 거쳐 교역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그렇게 거치는 과정이 누적될수록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고, 애써 최적화된 공급망의 이점을 누릴 가능성도 그만큼 적어진다. 미국이 이들 주요 국가들에 대해 이들이 중국과 반도체 교역하는 것 전체를 세컨더리 보이콧 형태로서 제재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렇지만 고부가가치 제품과 기술 거래에 대한 목줄을 쥐기 시작하면 각 나라들의 대 중국 반도체 교역 규모는 적어도 10%, 최대 30%까지도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편의를 위해 평균 20% 정도 감소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경우 글로벌 반도체 교역 규모는 1.7조 달러에서 1.4조 달러 정도로 격감하게 된다. 이중 절반 이상의 손해는 한국과 대만, 일본이 짊어지게 된다. 교역 규모의 감소는 단순히 시장 축소만 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이 축소됨으로 인해, 생산 업체 입장에서는 전체 교역 규모에 최적화되었던 설비 자산이 과잉 투자가 되고, 그로 인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시장 전체의 수익성이 약화될 수 있다. 또한 교역 규모가 축소되면 생산 비용의 증가는 피할 수 없게 되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더 저하시킨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이 제외되면 남는 것은 비용 상승  뿐

만약 고도로 분업화된 현재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이 완전히 제외될 경우, 비용은 대략 얼마나 상승할까? BCG-SIA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그 비용은 도합 1조 달러 내외다. 특히 가장 비용이 급상승하는 영역은 반도체 생산 분야다. 파운드리든 패키징이든, 실물로 생산하는 것에 고정 자본이 가장 많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영역은 장비 분야다. 최소 900억 달러에서 최대 2.7천억까지도 비용이 급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외, 팹리스 분야나 EDA (설계 소프트웨어), 반도체 소재 등 거의 전 분야에서 비용의 급상승이 예상된다. 현재 글로벌 경제 성장의 주력은 주로 ICT 분야에서의 혁신에서 창출되고, 이를 위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산업이 반도체 산업이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에서의 불필요한 비용 증가는 연관된 모든 산업에 대해 더 큰 비용 증가를 가져오게 된다. 중국이 분리됨으로 인해, 직접적으로는 매년 450억 달러에서 1.2천억 달러 범위에서의 비용 상승이 예상되며, 생산, 소재는 물론, 특히 장비 분야에서는 매년 최소 200억 달러에서 최대 600억 달러까지도 추가적인 비용 상승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분야에 비해 장비 분야의 비용 급상승이 예상되는 이유는, 장비를 대체하기 위해 독립된 IP로 장비를 만드는 것에 있어 시간과 비용, 그리고 경험적 지식이 많이 요구되는 특징 때문이다. 팹리스 부분에서의 비용 상승도 눈에 띄는데, 대략 100억-350억 달러의 추가 비용이 매년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팹리스의 경우, 애초에 파운드리 파트너를 상정하여 맞춤형 생산이 가능할 것을 기대하며 특정 목적에 아주 최적화된 형태의 설계를 추구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파운드리와 팹리스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 양쪽 모두 비용이 급상승하겠지만, 팹리스 업체는 맞춤형 파운드리가 아닌 범용 파운드리, 전세대 파운드리를 상정하여 재설계해야 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능의 최적화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의 추가 상승은 피할 수 없다.

미국은 중국을 고립시키려다 자기 발등을 찍을 수도

사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붕괴될 경우,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큰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미국이다. 이미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제일 큰 손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이 가장 많은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분야는 다름 아닌 제조 분야 (특히 파운드리)다. 미국은 경쟁력이 많이 약화된 자국의 파운드리 산업을 대만과 한국에 외주로 주다시피 하며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패권을 놓지 않으려 하지만, 문제는 이 두 나라의 파운드리 산업의 큰 손 중에는 중국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TSMC나 삼성전자로 하여금 차세대 파운드리 공장을 미국에 짓게 하고, 인텔이나 글로벌 파운드리 같은 자국 파운드리 업체들의 신규 투자를 밀어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파운드리 산업의 특성 상 몇 년에 걸쳐 수백억 달러 규모로 집중 투자되는 생산 시설은 그 공급을 소비할 시장 규모가 뒷받침되지 못 하면 그대로 거대한 비용이 되어 버린다.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제외될 경우, 파운드리 업체들이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는 시간은 지금의 최소 두 배 이상으로 길어질 수 있다. 미국은 이른바 반도체 리쇼어링(reshoring, 본국 회귀) 정책을 앞세워 향후 10여 년에 걸쳐 자국의 파운드리 산업 중흥도 계획하고 있지만, 그 기간 동안의 비용 증가분은 최소 500억, 최대 1천5백억 달러까지도 치솟을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칩4동맹에 한국, 대만, 일본이 포함될 경우, 이들 세 나라 역시 당장 250~800억 달러 수준의 비용을 감당해야 할 뿐더러, 매년 추가적으로 50~200억 달러 수준의 비용 상승분을 각각 감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망에서 분리가 될 경우, 중국 역시 즉각적으로 최소 1.7천억 달러에서 최대 2.5천억 달러까지 천문학적 규모로 치솟을 손해를 감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이 지난 10년간 집중 투자한 반도체 산업 누적 투자 규모의 두 배를 넘을 수도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매년 추가적으로 최대 300억 달러 수준까지 상승될 수 있는 비용 역시 중국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21년 현재 15%도 안 되는 상황이고, 따라서 가장 큰 비용을 치러야 할 부분은 반도체 제조업 분야이며 특히 기술적 제재가 집중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중국은 예상보다 훨씬 큰 비용 청구서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높다.

정치적 갈등으로 반도체 공급망 무너지면 모두가 손해

반도체 산업에서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성립된 것은 기본적인 비용 절감은 물론, 글로벌 기술 혁신을 위한 당위성 차원에서도 이루어졌던 일이다. 그렇지만 미-중 갈등 국면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시스템은 언제든 정치적 상황이 바뀜에 따라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다. 단적인 예로서 일본은 지난 2019년, 대 한국 반도체 무역 및 기술 제재에 돌입했는데, 그로 인해 주요 부품, 장비, 소재의 한-일 공급망 일부가 일시에 마비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수개월 간 주요 공급처의 재설정, 신규 도입된 소재나 장비의 테스트 및 숙련 기반 구축 과정에서 비용의 급상승을 감당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많은 부분이 다른 공급처로 대체되거나 국산화 된 이 시점에도 공급망 재조정으로 인한 비용의 상승분은 그리 많이 감소되지는 않았다. 겉으로는 국산화 성공이나 공급망 다변화라는 이점도 누릴 수 있었지만, 사실 그만큼의 비용 상승은 한국 반도체 업계 전체로는 경쟁력의 약화를 의미했으며, 2019년의 일본이 이것을 획책한 것이라면 일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공급망의 부분 붕괴는 사실 일본에게 더 큰 손해를 안겨주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큰 손들이 일본 업체의 제품을 수입하지 않게 되면서 (못하게 되면서), 일본 업체들의 설비 투자는 고스란히 비용이 되었고, 자금이 제때 회수되지 않으면서 일본의 반도체 장비, 소재, 부품은 재고율이 높아졌다. 일본의 종합 반도체 회사는 이제 없다시피 한 상황이고, 반도체 제조업에서 역시 일본의 내수 시장은 많이 축소된 상황이기 때문에, 일본의 많은 중소 반도체 업체들 입장에서 대 한국 수출 금지는 그대로 비용의 급상승을 야기했다. 이로 인해 버티지 못 한 업체들은 아예 한국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로의 편입을 위해 생산기지나 R&D 센터를 한국으로 이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부분적으로 붕괴된 한-일 반도체 공급망은 일본의 총리가 두 번 바뀌는 과정 속에서도 거의 회복되지 않았는데, 이는 비용의 절감이라는 확실한 동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적 신뢰 관계의 회복은 그렇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의 정책은 한국 업체들에게는 물론 자국 업체들에게도 모두 손해를 안겨주는 lose-lose 게임이 되었다.

이렇듯 반도체 산업에 있어 글로벌 공급망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오랜 기간에 걸쳐 최적화되어 온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 즉, 칩4동맹이 본격화되고, 실제로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분리되는 결과가 초래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2부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글쓴이 권석준은
서울대 공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MIT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을 지냈고 차세대 반도체 소재 및 광(光) 컴퓨터, 양자 컴퓨터 등의 차세대 IT소자 원천 기술 등을 연구 중이다. 현재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지금까지 60여 편의 논문을 해외 저명 학술지에 게재했다.

 

최신기사 링크

[정재권의 사람] 조형근, “86세대, 상위 10%에 대한 ‘증세’ 운동 벌였으면”

2022년이 숨가쁘게 지나간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우선 ‘한 해 살이’가 어땠는지 반성하게 된다. 나와 가족, 이웃, 그리고 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 나는 무엇을 했는가? 그 성찰의 크기만큼 우리네 삶은 앞으로 나아갈 게다. 한 해를 차분하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며 ‘동네 사회학자’ 조형근 박사를 만났다. 그는 2019년 대학의 정규직 교수로 1년 남짓 근무한 뒤 스스로 걸어 나와 ‘동네’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아래로부터의’ 연구와 저술, 실천 활동에...

[문일현 칼럼] 김대중-장쩌민, ‘화양연화’의 시대는 어떻게 가능했나

한국과 중국의 사이가 가장 좋았던 때는 언제였을까? 한·중 관계에 밝은 이라면 우선 김대중 대통령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시대를 떠올릴 듯하다. 당시 두 나라는 순탄한 미·중 관계의 토대 위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상호이익을 추구했다. 미·중 패권 대결의 격화 속에서 한·중 관계가 살얼음판인 요즘과 견주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그 ‘화양연화’ 시대의 한 축이었던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세상을 떠났다. 중국 전문가인 문일현 필자(중국정법대 교수)는 장쩌민의 시대를 돌이켜보며,...

[이상민 칼럼] ‘윤석열·이재명 예산’ 버리고, ‘국민 예산’ 지켜야

639조원 규모의 2023년도 예산협상이 막바지다. 국내 최고의 재정 전문가인 이상민 필자는 여야가 ‘윤석열 예산’, ‘이재명 예산’을 지키려다 보니 법정 처리기한을 어겼다고 봤다. 언론들은 둘 중에서 뭐가 이기는지를 주요 관전 포인트로 삼을 것이다. 그럼 국민들도 내키는 대로 편을 들고 있으면 될까? 아니다! 이상민 필자는 진짜 지켜야 할 ‘국민 예산’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바로 ‘법인세’다. 국민들은 이걸 누가 어떻게 하는지 봐야 한다. 국민들이 제대로 된 판정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