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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2. 06.27, 00:00

[윤영호가 채집한 목소리] 발트해의 ‘꽃 밀수꾼’ 할머니

By | 2022년 5월 16일 | 국제, 미분류, 여성

5월 14일 0시를 기해 러시아는 핀란드로 가는 전력 공급을 중단했다. 전쟁의 긴장감은 발트해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에!라!리! 북쪽에서부터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이른바 발트3국이다. 라트비아 출신으로 에스토니아에 살고 있는 디아나의 할머니는 꽃다발을 들고 국경너머 할아버지의 묘를 찾았다가 ‘꽃 밀수꾼’이 되었다. 디아나 가족의 여자 4대와 전쟁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에스토니아에 살며 작품활동하는 라트비아 예술가 디아나
러시아어 사용하지만 라트비아 국민이자 EU 시민
✔묘지에 놓을 꽃 들고 국경을 넘다 밀수 혐의로 입건된 할머니
뿌리 없는 식물 만이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현실
✔전쟁으로 생겨난 난민 처지가 뿌리 잘린 꽃과 마찬가지
평화를 갈망하고 그 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꿈꾸는 디아나

사진:셔터스톡

에스토니아에서 만난 라트비아 예술가의 전시 ‘꽃 밀수꾼’

<남의 나라 흑역사>의 저자 위민복이 에스토니아 박물관 EKKM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꽃 밀수꾼(Flower Smuggler)’라는 전시회 소식을 전했는데, 많은 사람이 그 스토리에 매료되었다. 러시아, 국경, 할머니, 무덤, 꽃, 세관, 밀수업자와 같은 단어가 오늘날의 국제정치 현실을 망라하는 것처럼 보였다. 위민복을 통해 알게 된 박물관에 작가의 이메일을 물어봤고, 연락이 닿았다. 그녀는 라트비아 국적이지만 러시아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며 자랐다. 현재는 에스토니아에서 살며 유럽 여러 나라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물어볼 것이 많아서 인터뷰 시작할 때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작품세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삶의 ‘뿌리’에 대한 예술가의 시선을 접할 수 있었다.

:’가족의 초상화’라는 작품에는 네 명의 여성이 나란히 앉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어요. 작품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등장인물 각각은 누구인가요? 모두 러시아 사람인가요? 남자는 왜 한 명도 없나요?

러시아어를 쓰지만 라트비아 국민이며 EU 시민

디아나: 모두 제 가족이에요. 저와 엄마, 할머니, 증조 할머니요. 러시아 사람이냐고요? 저는 라트비아 사람이고, 엄마, 할머니, 증조 할머니도 라트비아 사람이예요. 저의 성 타마네는 라트비아 성이고, 아버지도 스스로를 라트비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조상 중, 러시아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하고, 모두가 집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지만, 우리 가족 누구도 자신을 러시아와 연결시키는 사람은 없어요. 남자를 일부러 배제한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이혼했고,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 가족엔 여자뿐이죠.

‘가족의 초상화’ 영상 중 스틸 사진, 2016

: 라트비아 여성과 인터뷰를 하다 알게 되었는데, 라트비아에 사는 러시아어 사용자 중에 73%가 러시아적인 가치보다 유럽적인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요. 당신도 그 중 한 사람이군요.

디아나: 우리는 라트비아 국민이며, EU 시민이에요. 러시아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나는 라트비아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은 에스토니아에서 주로 활동하지만,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기에, 스페인 등에서 작업하고 전시하는 작가예요. 유럽 여러 나라의 예술가를 만나 소통하고 작업을 같이하기도 하죠. 제가 만나는 사람의 국적이나 민족이 제게 큰 의미를 가지지는 않아요.

: 이번 인터뷰에 기대를 많이 했고, 그래서 첫 질문을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첫 질문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이 되네요.

디아나: 나는 국가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아요. 국적으로 개인을 규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국적 이전에 개인은 각자 고유의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인식되어야 해요. 국적, 성별, 인종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서로 분리되고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게 되죠. 내가 작품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들이 어느 나라 출신인지는 한 번도 중요하지 않았어요. 다만 나는 더 잘 소통하기 위해 러시아인을 만나면 러시아어로, 영국인을 만나면 영어로, 에스토니아인을 만나면 에스토니아어로, 라트비아인을 만나면 라트비아어로 이야기해요. 내가 한국어를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네요.

자기 할아버지 묘지에 꽃을 들고 가다 국경에서 잡힌 할머니

: 작품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요. 할머니가 할머니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당신의 고조할아버지 산소에 꽃을 가져다 놓으려고 한 것이죠. 그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 ‘꽃 밀수꾼’이죠?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디아나: 할머니는 꽃을 정말 사랑하는 분이예요. 직접 가꾼 꽃을 집 안 곳곳에 놓아두죠. 할머니 생일 때 가족이 선물한 앨범에는 할머니가 찍은 꽃 사진으로 가득 차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별 의미가 없는 보통의 꽃이지만, 할머니는 그걸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서 사진첩에 보관하고 있어요. 할머니가 직접 키운 꽃을 할머니의 할아버지 산소에 가져다 심으려고 했어요. 할머니는 라트비아에 살고 있고, 고조할아버지 산소는 압레네(Abrene)라 불렸던 피탈로보(Pytalovo) 지역에 있어요. 이곳은 과거 라트비아 영토였지만, 1945년에 소비에트 연방 시절 러시아 공화국에 편입되었죠.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라트비아는 독립국가가 되었지만, 이 지역은 러시아 영토로 남게 되었어요. 과거 할머니가 살았던 동네를 가기 위해서 할머니는 비자를 받아야 하고, 국경을 통과해야 하죠.

2015년 6월 4일 할머니는 꽃 화분 두 개를 들고, 고조할아버지 묘소에 가려고 러시아와 라트비아 국경으로 향했어요. 러시아 국경 검문소에서 할머니는 반입 금지 물품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입건되어 ‘Flower Smuggler (꽃 밀수꾼)’이 되었어요. 뿌리가 있는 꽃은 반입이 금지인가 봐요. 할머니는 분노하며 벌금을 내고 집으로 돌아왔죠. 이 사건은 우리 가족 모두를 놀라게 했어요. 할머니는 나중에 플라스틱 조화를 들고 다시 할아버지 묘소를 찾았어요. 국경을 지키는 세관이 관료주의적으로 일처리를 했고, 꽃을 들고 국경을 넘던 노인은 범법자가 되었죠.

: 작품은 어떻게 구성되었나요?

디아나: 할머니 앨범에 있는 꽃 사진, 할머니가 가져다가 심으려고 했던 화분 사진, 세관 조사서, 벌금 고지서, 할머니가 나중에 들고 간 조화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꽃 밀수꾼’, 2019

: 저는 당신의 ‘꽃 밀수꾼’이라는 작품을 보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떠올렸어요. 러시아, 국경, 무덤, 꽃, 벌금이라는 단어 때문이죠. 러시아는 탱크로 국경을 쉽게 넘는데,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어느 노인은 꽃을 가지고 국경을 넘지 못했어요. 그것도 할아버지 무덤에 심기위한 꽃이었는데요. 이런 대조가 인상적입니다.

뿌리 없는 식물만 국경 통과 가능, 현재의 난민 처지와 같아

디아나: 러시아 세관원은 규정에 따른 조치를 취한 거예요. 대부분 나라에서 꽃은 가져갈 수 있지만, 나무는 가져갈 수 없을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식 수입 절차를 밟아야 하죠. 그러나 그것은 규정의 문제고, 저는 그런 규정의 타당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죠. 그 사건이 가지는 함의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뿌리가 제거된 꽃만이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 주는 상징적 의미가 있어요. 지금 발생하는 많은 난민이 바로 뿌리가 제거된 꽃이라고 생각되요. 전쟁이 수많은 사람의 뿌리를 잘라 버려요. 어쩌면 자발적인 이주조차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어요.

: 그 세관원은 꽃을 현장에서 압수하여 폐기하지 않고, 왜 벌금을 부과하여 할머니를 자극했을까요? 영국이었다면, 꽃을 잠시 세관원이 보관하고 있다가 할머니가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게 했을 것 같아요. 러시아 국경의 관료주의를 상상해 볼 수 있네요. 국가는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을 때가 많고, 때로는 그런 것을 혐오하도록 만들죠. 결과적으로 좋은 작품이 나오게 되었네요. 할머니가 작품 소재를 제공했는데, 그에 대한 보상으로 선물이나 용돈을 달라고는 안 했나요?

디아나: (웃음) 아직은 그런 말은 안 했어요. (웃음) 할머니는 전시회마다 찾아오고, 자기 생각을 말해 주고, 영감을 주죠.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가 작품이 된 것에 대해 고맙다고 늘 말해요.

: 전쟁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디아나: 아무도 이런 전쟁을 원치 않아요. 이번 전쟁을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보는 것은 제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인간 내면의 문제를 보려고 해요. 탐욕, 질투, 시기심, 증오와 같은 감정이 우리 내면의 문제죠. 인간이 가진 이러한 감정 위에 정치와 경제 같은 거대한 담론이 결부되어 국가주의가 탄생해요. 나는 예술가로서 어떻게 내면의 평화를 이룰까, 평화 안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 고민합니다. 이 세상의 평화를 간절히 희망하는 사람으로서, 제 작품이 피스 메이커(Peace Maker)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죠.

할머니의 어린시절을 담은 작품, ‘기억하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줄게’

: 할머니나 증조할머니가 들려준 전쟁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디아나: 할머니는 유독 하모니카와 아코디언 소리를 좋아해요. 2차 세계대전때 할머니는 아주 어린 아이였어요. 당시에 독일군 장교가 할머니 이웃집에 살았어요. 그는 자주 하모니카와 아코디언을 연주했고 연주 솜씨가 좋았다고 해요. 독일군은 독일에 어린 딸을 두고 왔다며, 어린 할머니를 잘 돌보아 주었고, 하모니카와 아코디언을 자주 들려주었어요. 할머니는 하모니카와 아코디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어요. 아이러니한 것은 할머니의 아버지, 즉 내 증조할아버지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죽었죠. 이웃집 아저씨는 독일군이었지만 하모니카와 아코디언 소리에 독일군이라는 표식은 없었죠. 할머니가 어린 시절 자랐던 곳을 함께 방문했을 때 이 이야기를 들었어요. 집이 있었던 곳. 양봉용 벌통이 있었던 곳, 강아지와 축사가 있었던 곳, 그리고 고조할아버지가 심은 참나무를 보여주었어요. 남아 있는 것은 참나무 뿐이었지만, 하모니카와 아코디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이 이야기도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줄게(I will tell you everything I rememeber, 2021)’라는 작품에 담았죠.

‘엄마’, 2016

: 당신은 여태까지 16회의 단독 전시회를 가졌고, 길, 이동, 이주, 국경 같은 것이 주된 작춤 소재던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디아나: 90년대에 아버지는 서유럽에서 자동차, 전자제품 등을 사다 라트비아에 파는 일을 했죠.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무언가를 사러 길을 떠나는 모습이었어요. 할머니는 러시아와 라트비아 국경을 자주 오갔지요. 어머니는 5년 전부터 대형 트럭을 운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독일과 프랑스 어딘가를 달리면서 내게 전화하고, 트럭에서 쉬면서 메시지와 이메일 보내죠. 아버지, 어머니와 할머니는 늘 길을 따라 국경을 넘었죠. 가족이 오가던 그 길이 내게 작품 소재가 되요.

: 당신은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젊은 세대는 글로벌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데요. 당신의 작품은 가족과 관련한 개인사에서 출발합니다.

디아나: 인간의 마음과 국가 간 전쟁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거대 담론과 일상적인 개인사가 분리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반복되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 반복적인 것은 가족과의 일상에서 자주 발생하죠. 우리의 많은 일이 가족 안에서 일어나고, 일상에서 출발하여 세상으로 확장되는 거예요. 사회적 현상을 보고, 사회의 변화를 살피기 위해서는 작은 단위, 즉 자기 자신과 가족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그래서 가족 속의 개인사가 내 작업의 출발점이죠. 나는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 속하는지 같은 질문은 과거 기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과거를 탐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재로 연결되고, 개인사로부터 시작한 것에 크고 복잡한 사회가 담기죠. 작품 속에서 시간과 공간은 점차적으로 확장됩니다.

: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이며, 당신 예술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디아나: 예술은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요. 때로는 농담도 하고, 울기도 하죠. 때로는 정치에 과해 이야기하고, 서로 같이 있으면서 침묵하기도 하죠. 나에게 예술이란 내가 살아가는 일상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거에요. 평범한 일상이 우리 삶의 가장 큰 부분이니까요. 예술가는 자신을 최대한 개방하고,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느낌을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하죠. 그게 바로 내가 예술을 하는 이유예요. 그리고 나의 궁극의 가치이자 내가 예술에서 추구하는 것은 완전한 자유예요.

‘너는 나를 진정으로 가질 수 없어’, 2018

: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위한 예술가들’이란 전시회를 큐레이팅한 몰타의 어느 예술가가 있었어요.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예술가의 연대가 인상적인 프로젝트였지요.

디아나: 나도 어떻게든 우크라이나인을 돕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건 내가 예술가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생각일 거예요. 그러나 내가 예술가이기 때문에 도울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면 그것은 축복이죠. 그런 면에서 예술가로부터 작품을 기부 받아 전시하고 판매한 후에, 그 돈으로 몰타에 온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 기획에 큰 찬사를 보냅니다. 저는 올해 유독 전시가 많아요. 물론 전쟁 발생 이전에 계획된 것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지금 전시를 하고 있을 때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금전적인 기부를 했지만, 예술가로서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지금 전시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꽃 밀수업자’ 전시회를 러시아에서 개최할 계획이 있을까? 러시아에서 이 전시회가 열린다면, 러시아 관객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디아나 타마네는 러시아 전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발트 3국이 EU 회원국이 되고, 나토에 가입한 이후로 러시아 비자 발급 조건이 엄격해졌고, 절차가 까다로워졌다. 할머니 꽃 밀수 사건도 러시아의 발트 3국 견제의 연장선이었다. 러시아 국경이 닫히고 있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예술가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낀다. 그리고 느낌을 제한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녀에게 자유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녀가 러시아를 멀게 느끼는 주된 이유는 러시아에는 제약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글쓴이 윤영호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증권사, 보험회사,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고, 카자흐스탄 증권사 겸 자산운용사인 세븐 리버스 캐피털(Seven Rivers Capital)에서 대표로 일했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자산을 운용하며 런던 라이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 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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