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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2. 05.13, 00:00

[박상윤 칼럼] 미국 검찰이 한입으로 두말을 하는 걸까?

By | 2022년 5월 13일 | 미분류, 정치

한국 검찰의 수사권 유지, 축소 문제를 두고 미국 검찰의 사례가 상반되는 두 진영에서 함께 인용되고 있다. 수사권 유지론자와 축소론자 모두 “선진국 미국은 이렇게 한다”고 제 논에 물을 대고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 또한 엄청난 논거와 입증의 과정이 필요하다. 미국 변호사이기도 한 필자는 진실공방에 앞서 반대 입장에서 설득력 강화의 물을 길어오도록 당부한다. 이를테면 검찰 수사권을 옹호하는 쪽에선 흑인의 인권을 침해한 미국 경찰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국민들에게서 정당성을 잃어갔는지, 이를 회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연구해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검찰 수사권을 축소하는 쪽이라면, 사법기관을 매도하는 것이 국민들의 법의존 심리에 얼마나 위협인지, 검수완박같은 과격한 슬로건이 운동의 동력을 어떻게 잃게 했는지 미국 사례를 역설적으로 연구해보라는 것이다. 애꿎은 미국 검찰을 일구이언하는 존재로 만들기 전에. [편집자 주]      

✔미국 형사체계 내 검찰 수사권 작동절차를 파악하는건 ‘뒷전’
   미국 사례를 아전인수, 견강부회의 근거로 합리화하는데 열중
✔검찰 수사권의 논란의 본질은 ‘형사권력을 정치적 남용하는가’ 여부
   ‘표피’가 아닌 맥락의 유사성에 초점 맞춰 살펴봐야
✔Black Lives Matter 같은 흑인 인권운동,
   경찰권 축소운동은 경찰권 남용의 결과
✔반면 “모든 경찰은 호로자식들이다”같은 슬로건
   “All cops are bastards(ACAB)” 인권 운동의 동력 저하

사진:셔터스톡

미국으로 이민 온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한국 뉴스는 챙겨보는 편이다. 요즘 논란거리인 검찰 수사권 조정에 관한 뉴스는 현업하고도 관련이 있어 특히 관심 있게 보고 있었는데, 마침 미국의 검찰 수사권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 두 건이 눈에 뜨였다. 

두 기사는 인터뷰한 전현직 검사 둘이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었다. 한 분은 미국의 검사는 “경찰이나 FBI의 수사를 감독, 지휘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검찰 수사권 박탈을 반대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다른 한 분은 미국의 검사는 “경찰이 거의 모든 사건에서 독립적으로 수사한다”라며 검찰 수사권 박탈을 찬성하는 듯한 인터뷰를 했다. 

같은 미국의 사법제도를 두고 어떻게 이런 정반대의 내용이 나올 수 있을까. 독자의 입장에선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두 기사에 등장한 전현직 검사 두 분을 같이 앉혀놓고 동시에 인터뷰를 진행했다면, 이렇게 방향이 갈라지는 기사 두 건으로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미지:셔터스톡

조선 예송논쟁 뒤엔 권력 헤게모니 싸움

해외의 사례를 들어가며 견강부회하는 것은 검찰 수사권 이슈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선 해외 사례를 거론하고 비교하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많은 경우, 정책을 고안하기 전 여러 해외 사례를 살피면서 정책의 장단점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 방향을 이미 정해놓은 다음 그 방향과 부합해 보이는 해외 사례를 꿰어맞추곤 하는데, 그러다보면 이런 우스꽝스런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효종의 계모 자의대비가 얼마나 오랫동안 복상기간을 거쳐야하는가라는 문제가 유교적 예법의 문제가 아니라 서인과 남인의 헤게모니 다툼이었듯이, 이러한 논쟁에서 검찰 수사권이 미국의 형사체계 내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선진국인 미국은 이렇게 한다”라는, 한국의 검찰 수사권 논쟁에서 휘두를 몽둥이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수사적 몽둥이를 찾아다니는 행위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미국만 선진국인가? 2022년의 한국 또한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선 만큼, 한국의 정책형성층이 해외 사례를 다루는 방식 또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해외 사례를 그 나라의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서 떼어내어 국내 정치 다툼에 이용하는 현대판 예송논쟁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 도입되지 않은 정책의 장단점을 가리는 과정에서 해외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마다할 일은 아니나, 그 방식은 예전보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검수완박’보다 몇 배 더 과격한 DP/AP

한국의 검찰 수사권 이슈를 논의하기 위해 꼭 미국의 검찰 수사권을 거론해야할까?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형사사건을 다루어 본 입장에서는, ‘경찰을 없애라, 감옥을 폐지하라’라는 미국의 경찰 및 감옥 폐지 운동(Defund the Police / Abolish Prison)에 눈길이 간다.  한국의 ‘검수완박’보다 몇 배는 더 과격한 주장이다. 미국의 2020년을 뜨겁게 달궜던 Black Lives Matter(BLM) 시위에서 등장한 이 정책적 제언은, 미국의 경찰권이 특정 인종, 즉 흑인들에게 남용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2020년 5월 26일,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시 경찰 데렉 쵸빈은 체포 뒤 수갑을 찬 채 엎드려 저항하지 않고 있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질식사시켰으며, 이 끔찍한 장면은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일파만파 퍼져 미국 전국에 시위의 불을 당겼다. 2020년 이전에도 미국 경찰은 수시로 별다른 이유 없이 흑인들을 살해해왔으나, 사회적 공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지속적으로 겪어온 흑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경찰 및 감옥 폐지론은 점점 고도화되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당시 시카고에서 있었던 BLM 시위 모습. (사진:셔터스톡)

미국 진보정치 어젠다 큰 축

예를 들어 도로시 로버츠 펜실베니아대학 교수는 현재 미국의 형사사법체계가 흑인들에게 각별히 혹독한 이유는 이 시스템이 오작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형사사법체계 자체가 노예제에 기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로버츠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찰 체계, 수감 체계, 또 사형제는 전부 노예제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흑인들이 정의로운 형사사법체계를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람을 구금함으로서 인간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 좀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를 구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조지 플로이드 살인사건을 계기로 큰 동력을 얻어, 미국 진보정치 어젠다의 큰 축을 형성하게 된다.

미국 경찰·감옥 폐지운동과 비슷

한국의 검찰 수사권 폐지 논쟁을 보면서 미국의 경찰/감옥 폐지 운동이 떠오르는 이유는, 둘 다 비슷한 정치적 맥락에서 나온 논쟁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한국 정치라는 맥락 내에서 검찰 수사권 논란의 본질은 ‘형사권력의 정치적 남용’이다. 검찰 수사권 박탈을 주장하는 측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지닌 한국의 검찰은 전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없을 만큼 강력하며, 이 강력한 권력을 정치적인 용도, 특히 진보계열 인사들을 향해 남용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정치의 맥락 속에서의 경찰 폐지, 감옥 폐지 운동 또한 비슷하다. 미국의 형사사법체계는 자국민들을 독재국가 수준으로 죽이거나 가두고 있으며, 이러한 사법적 권력은 2등 시민으로 낙인 찍혀진 흑인들을 통제하는데 남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의 검찰 수사권이란 논쟁에 쓸 논거를 찾으려 미국의 검찰 수사권에 초점을 맞춘다면, 한국에서 검찰 수사권이 논란거리가 된 이유가 자연히 시야에서 벗어나게 된다. 미국 정가에서 검찰 수사권은 논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탈맥락적으로 납작해질 뿐

한국에서는 오랜 시간을 두고 켜켜이 쌓아올려진 사회적 이슈를 두고, 그 사회적 이슈의 표피가 같을 뿐인 해외의 사례를 들고 온다면, 그러한 논의는 탈맥락적으로 납작해질 뿐이며, 한국적 맥락에서 논의를 진행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외 사례를 들 때 표피가 아니라 맥락의 유사성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 검찰의 수사권과 경찰의 존립권(?)은 분명 같은 것이 아니나, 한미 양국에서 각각 비슷한 맥락에서 촉발된 논의라는 점에선 유사점이 있다. 논쟁이 시작된 맥락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 두 논쟁들이 전개되는 양상 또한 비슷하다. 한국의 논쟁에서 어느 쪽 편을 들더라도, 미국의 경찰/감옥 폐지 운동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검찰 수사권을 옹호하는 쪽에선 미국의 경찰이 어떠한 역사와 과정을 통해 국민들의 상당수에게서 정당성을 잃어갔고, 이러한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 노력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를 살펴본 뒤, 한국의 검찰은 어떤 대응을 할 수 있는지를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검찰 수사권을 반대하는 쪽이라면, 사법기관을 비판하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법치에 대한 본능적 의존을 어떤 식으로 위협하는지, 또 “모든 경찰은 호로자식들이다” (“All cops are bastards”, ACAB) 같은 과격한 슬로건이 운동의 동력을 어떻게 잃게 했는지를 검토하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권력 핵심제도는 남용과 대응의 역사

정치적 말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해외 사례를 전용하는 행위는 그만 둘 때가 되었다. 한 나라의 모든 제도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으며, 특히 형사사법체계처럼 권력의 핵심에 위치한 제도의 계발은 연이은 남용과 그 남용에 대한 대응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금의 한국은 전쟁의 폐허 위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해외 사례를 탈맥락적으로 뽑아내어 한국의 정책적 논쟁에 사용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해외 각국의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고, 현재 한국의 역사적, 정치적 맥락이 어느 지점에서 평행선을 그리는지 살펴본다면, 한국이 정책적으로 나아가야할 길 또한 밝혀질 것이다.


글쓴이 박상윤(Sangyoon Nathan Park)은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학부 때는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컬럼비아 로스쿨을 나와 현재 워싱턴 DC에서 국제 변호사로 일한다. 떠나온 한국와 새로이 자리 잡은 미국의 정치와 법제도에 모두 관심이 많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미국에서는 워싱턴 포스트, CNN, 포린 폴리시 등의 매체에 기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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