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만들고 싶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직업 언론인이나 진보 성향의 평론가보다 평소 보수적 시각을 유지해온 필자가 더 잘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 칼럼을 부탁했다. 장경상 필자는 구체적 약속이 없는걸 새 대통령 취임사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대신 윤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잘 알 수 있는데 그 키워드는 연설문에 여러차례 언급된 것처럼 반지성주의에 대한 우려라고 해석했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고, 현실을 반지성주의로 규정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분야에서의 '대결적 변화'는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 짚어봤다. [편집자 주]

취임식장으로 향하며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윤석열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얼마 전에 제가 우리 문대통령의 취임사를 한 번 천천히 읽어 봤습니다. 그 어떤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국민을 속였습니다.”

  2021년 12월 30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후보가 대구선대위 출범식에서 한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어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취임사가 국정운영 최고책임자의 말로는 잘 와 닿지 않았다. 어느 괜찮은 우파 지식인의 잘 쓴 칼럼을 보는 듯했다. 

정통보수 지식인들의 논리에 충실해도 너무 충실한 ‘반지성주의!’

  취임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반지성주의’다. 21세기 디지털혁명시대 한 복판에서 듣기에는 낯설다. 그만큼 강렬하고 선명하다. 인류 역사는 반지성주의를 극복한 두 차례 경험을 공유한다. 첫 번째는 종교와 마녀사냥이 지배했던 중세암흑기 탈출이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과 절대왕정 해체를 통해 가능했다. 그렇게 고전적 자유주의 질서가 자리 잡았고, 그 중심에는 근대과학과 경제적 자유가 있었다. 두 번째는 니치즘과 파시즘과 스탈린식 전체주의를 좌절시킨 사례다. 소위 자유민주진영의 연대를 통해 성공했고, 그렇게 자유민주주의 체제 확산과 신자유주의 질서가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 중심에는 로켓, 원자력, 인터넷 등 과학기술과 세계화가 있었다. 취임사의 ‘반지성주의’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광우병 촛불시위, 천안함 음모론, 세월호 괴담,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 조국 수호, 탈원전과 코로나 정치방역, 레디컬 페미니즘 등은 보수 지식인들이 비판하는 대표적인 ‘반지성주의’ 사례다. 댓글부대로 상징되는 디지털 전체주의가 낳은 폐해로 지적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17일 경기도 안성 대통령선거 유세현장에서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시즘,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짓이 자기의 과오를 남에게 씌우고 자기 과거를 덮는 허위 선동 선전 공작이 전체주의자의 전유물인 것"이라며 지난 민주당 정권을 전체주의에 빗댄 적도 있다. 정통보수 지식인 입장에서 보면, 헌법조무사로 비난받는 김제동과 무학의 통찰을 자임하는 김어준 등이 ‘반지성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일 것이다. 주체사상 또한 1980년대 학생운동권 내부로부터 반지성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586 민주화운동세력도 ‘반지성주의’ 집단으로 낙인찍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것’을 반지성주의로 규정하며, 절대다수야당인 민주당까지 겨냥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지성주의’ 극복을 위해 내세운 과학기술과 자유와 글로벌 가치연대는 역사적 흐름의 답습이자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문제는 오늘날 횡행하는 ‘반지성주의’가 다름 아닌 과학기술과 자유와 세계화가 낳은 괴물이라는 사실이다. 엘리트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명망을 개인적 이익을 위해 곡학아세함으로써 스스로 신뢰성을 떨어뜨려 자초한 측면도 있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고전적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상적 기반과 구체적인 해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자칫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를 배회할 지도 모른다. 취임사에서는 새로운 사상도 구체적인 해법도 발견하지 못했다. 

국정운영 중심축, 과학기술과 자유연대

  ‘반지성주의’라고 우아하게 말했지만, 윤석열 정부에게 현존하는 가장 큰 위협은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다. 파행 일색인 인사 청문 결과를 놓고 보면, 취임사에서 통합과 협치를 들어볼 법도 한데, 일언반구도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연대’가 대신하고 있다. 본래 ‘연대’는 개개인에게 이기주의나 분열을 벗어나 사회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이타적인 의무감을 가질 것을 강조하는 용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시민 연대’를 자유시민의 의무로 강조한다. 자유를 억압받거나 경제적으로 존엄한 삶이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자유 시민들이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대는 글로벌로 확장되어 대한민국이 자유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글로벌가치 리더국가로서 그 역할을 다해야한다는 대목에까지 이른다. ‘자유시민 연대’는 뉴라이트운동의 ‘자유주의 시민연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적 성장이 곧 자유의 확대라고 규정하며, 성장과 자유를 연결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양극화와 사회갈등의 해법으로도 빠른 성장을 앞세운다. 성장이 곧 일자리고 성장이 곧 복지라는 정통보수의 오래된 수사다. 빠른 성장은 과학기술과 혁신으로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4차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한다는 기존 정책노선의 동어반복이다. 과학기술을 통한 성장동력 확보는 자유진영과의 글로벌연대로도 이어진다. 과학기술은 국방 분야에서 차별화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미래전쟁은 첨단기술의 각축장이 되고 있고, 이런 미래전에 대비해 기술 중심의 새로운 미래군 조직을 위한 국방개혁 필요성이 제기된 지 오래다. 그런 맥락에서 임기 내에 모병제로 가는 징검다리가 등장하고, 병사월급 200만원도 그렇게 실현될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내 자유시민연대와 글로벌 자유진영연대를 통해 ‘반지성주의’에 맞설 생각인가 보다. 통상 소수 여당이 다수 야당을 상대할 수 있는 수단은 협치가 아니면 정계개편 정도이다. 한 가지가 더 있다면 바로 시민사회의 지지여론이다. 협치도 정계개편도 실현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수 정권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험난한 정국을 헤쳐 나가려고 하는 걸까? ‘과학기술로 무장한 합리적 지성’은 너무 추상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수위 과정에서 나온 ‘민관합동기구’와 ‘플랫폼정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통령비서실은 대폭 축소한 반면, 대통령특보실과 민관합동위원회 기구가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수진영의 지식인들과 자유시민 운동가들이 국정운영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여기에 과학기술이 데이터 기반 정책결정 환경과 일반 자유 시민 참여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지 않을까 싶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민주화운동가 중심의 적폐청산위원회를 국정운영의 중심축으로 삼았다. 윤석열 정부는 과학기술로 무장한 지식인 그룹과 자유시민 그룹을 국정운영의 중심축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은 다행히 코로나 정국을 만나 총선승리로 이어졌기 때문에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반지성주의 청산’은 2년 후 총선 때까지 이어져 정국반전의 드라마를 쓸 수 있을까?

반지성주의 극복, 언론개혁은 필수?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 시대 최대 해악으로 ‘반지성주의’를 찍었다. 대부분 보수진영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반지성주의 진원지로 방송을 지목한다. 각종 방송프로그램과 해당 진행자와 패널 등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까 싶다. 자발적인 흐름도 형성되겠지만, 일정부분 언론과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취임사에는 언론에 대한 그 어떤 말도 담지 않았다. 눈앞에 놓인 지방선거 때문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끝나면, 진원지를 그냥 놔두지는 못할 것이다. 언론개혁이 네이버나 다음이나 카카오와 같은 인터넷 포털로도 확산될지는 알 수 없지만, ‘반지성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셔터스톡

글로벌 가치 주도 및 연대, 자유진영 중심 국제기구 적극 참여 예고

  ‘자유와 인권’과 ‘자유와 창의’라는 수사를 붙였지만, 국제기구 참여에 있어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그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따라서 QUAD, CPTPP, D10 등 그동안 소홀했던 자유민주진영 국가간 경제안보협의체 가입에 적극적으로 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EU, 일본, 호주 등 주요 국가들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통상과 연계하는 가치지향적 통상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5G,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첨단기술과 핵심 산업에 대해서도 민주주의․기술동맹까지 구축하고 있다. 취임사는 어떤 국제기구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자유진영 중심 국제질서 재편에 적극 동참할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빠른 성장, 양극화 완화가 아닌 가속페달일 수도

  윤석열 대통령은 빠른 성장이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 갈등을 줄일 것으로 봤다. 재정적자도 일자리도 지금보다 더 성장만하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의 반영이다. 성장은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면 시켰지 완화하지 못한다. 데이터는 분명히 그렇게 말한다. 국민총소득 기준으로 보면, 2018년도는 1725억불로 2009년도 943억불에 비해 1.8배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근로소득신고자 기준으로 보면, 하위 10%와 상위 10%의 격차는 6.9배에서 42.6배로 늘어난다. 2018년 종합소득신고자 기준으로는 그 격차가 무려 153배에 달한다. 빠른 성장은 더 빠르고 큰 격차를 의미할 뿐이다. 양극화와 사회갈등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감성적 영역이기도 하다. ‘반지성주의’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연의 감정이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마인드를 바꿔야한다는 지적도 많지만, 한국인의 문화 DNA에 각인된 정서다. 성장과 지성만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으로 갈 확률이 높다. 성장의 결실을 나누는 복안이야 당연히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 정서까지 헤아리는 정책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노동과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는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바람이 불어야 풀은 그제야 눕는다

  취임식 때 뜬 무지개가 상서로운 조짐이라고 화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식 무대에서 ‘반지성주의’를 향해 ‘과학과 진실’을 외쳤는데, 그 무대 아래서는 ‘반지성주의’가 넘쳐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근본이유로 ‘반지성주의’를 꼽았다. 대부분 정권은 자기모순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이명박 정부는 ‘이념을 넘어 실용’을 외쳤지만, 신자유주의 이념에 걸려 넘어졌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은 최순실의 말에 걸려 꼬꾸라졌다. 문재인 정부의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는 조국의 강을 넘지 못했다. 이런 내리막길의 이면에는 다 ‘반지성주의’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정치 위기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반지성주의’가 아니라, 그런 여론이 득세할 빌미를 제공한 정권 그 자체다. ‘반지성주의’는 포퓰리즘의 우아한 이름이기도 하다. 포퓰리즘은 좌와 우,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끊임없이 ‘반지성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풀은 결코 바람에 앞서 반응하는 법이 없다.


글쓴이 장경상은국가경영연구원 사무국장. 문학박사(고전번역).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을 역임했다. 공저로 <새 정부에 바란다>가 있다. 현재는 국가경영연구원에서 리더십연구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