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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칼럼] 586의 대안, X세대 역할론

By | 2022년 5월 6일 | 문화, 미분류, 사람

유사이래 처음 등장하는 신인류라 불리던 X세대가 벌써 중년이다. 인구 구성으로는 830만 명에 달한다. 강한 개성 탓에 존재만으로도 기성세대의 눈총을 받던 그들은 어느새 위, 아래 드센 세대 사이에 끼어 고달프고, 편가르기 담론에 밀려 투명인간의 신세가 되었다. 1975년 생, X세대의 한 가운데 선 필자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써내려간 인류학 보고서 <다정한 개인주의자>를 책으로 냈고, 피렌체의식탁 독자를 위해 그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끼인 세대의 소명으로 교량과 중재, 더 나아가 소통과 융합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사진:셔터스톡)


✔ 그 많던 세대론의 원조 1970년대생 신인류 X세대

✔ 동질 집단으로 납작하게 보는 편의주의적 발상
✔ 비교의 잣대로 들이댄 세대론은 분열과 갈등의 무기
✔  편가르기 담론에 밀려 저평가, 투명인간으로 전락

✔ 권력 장기점유한 86세대 VS 기회 잃은 청년세대 
✔ 집단을 벗어나 다른 세대 이해하는 개별적 서사 필요

수많은 세대론의 원조 X세대
세대론에서 1970년대생은 가려져 있다. 인구 구성으로 보자면 1960년대생(860만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830만명에 달하는 거대집단이지만 대한민국 세대론에서 이들에 대한 담론은 신기하리만큼 싹둑 잘려져 있다. 대개 이런 식이다. 5060 기성세대와 2030 청년세대, 베이비부머 부자 아빠와 가난한 MZ세대 등. 그 중간에 끼어있는 40대는 거세되어 있다(이런 수식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루기로 한다).

모든 낀 세대는 과도기적 운명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1970년대생이 겪는 특수성은 결이 다르다. 사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 세대론을 촉발시킨 주역이었다. 서태지와 함께 “난 알아요!”라며 화려하게 등장한 X세대는 세상을 집어삼킬 듯 시끌벅적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배꼽티와 알록달록하게 염색한 헤어스타일, 소위 키메라 화장으로 불리는 진한 화장과 튀는 패션으로 남의 시선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왜 이렇게 입었느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기분이 조크든요(좋거든요)”라고 답하는 이들은 기성세대 눈에는 불가해한 존재였다. 오죽하면 ‘신인류’라고 불렸을까. 

위아래로 ‘쎈캐’에 치여 고달픈  낀세대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후 그때 그들은 세대 담론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있다. 그 많던 X세대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기존의 세상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힐 것이라는 기대감을 한 몸에 받았던 신세대, 기성세대와는 차별화되는 가치관과 철학으로 새로운 질서를 직조할 것으로 여겨진 세대…. 

그런데 이들의 40대는 어떤가. 위로는 서바이벌 스킬이 체화된 베이비부머와 조직력의 최강자 86세대, 아래로는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하는 사이다 세대를 맞닥뜨린 이들은 고달픈 세대다. 위아래로 ‘센캐’에 치여 납작하게 되기 직전의 형국이다. 

윗세대에게는 ‘SKSK’세대, 즉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세대가 되었고, 아래 세대에게는 ‘시키느니 내가 하고 말지’ 심산으로 야근을 자처하는 프로야근러 세대가 되어버렸다. 단군 이래 야근을 가장 많이 하는 세대로 기록될 것 같다는 설득력 있는 추측이 힘을 받는다. 이 서글픈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부자 눈으로 본 15개 특징의 서사, <다정한 개인주의자>

나는 이 질문들에 오랫동안 천착했고, 이 질문들이 씨앗이 되어 최근 <다정한 개인주의자>라는 책을 펴냈다. 1975년생으로서 X세대의 한가운데에 있는 내가 내부자의 시선으로 써내려 간 인류학적 보고서의 성격을 띤다.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에서 출발해 공통점을 추출해내면서 X세대의 잠재력과 경쟁력을 15개 용어로 새롭게 규정했다. 개인주의 첫 세대, 이카루스 세대, 투명인간 세대, 문화 개척자 세대, 취향 세대, 돈키호테 세대, 길목 세대, 카멜레온 세대, 포용력 세대 등이 그것이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를 새롭게 절감했다. 하나는 X세대는 나와 우리가 아는 것보다 잠재력과 역할이 훨씬 더 크다는 것, 또 하나는 2000년대부터 주류적 담론으로 소비되어온 세대론의 상당 부분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문화의 기틀이자 영향력의 원천

먼저 X세대가 가진 경쟁력부터 보자. X세대는 세대론 담론에서 보여지듯 가려진 세대가 아니다. 한국을 전 세계가 주목하게 한 힘은 정치도 경제도 아니었다. 삼성과 현대로 대표되는 제조업 기반 대기업도, 4차 산업으로 상징되는 IT기술력도 아니었다. 

바로 문화의 힘이었다. 보이그룹 BTS(방시혁 의장),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황동혁 감독), <지옥>(연상호 감독) 등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문화콘텐츠는 모두 X세대가 만들었다. K-팝의 도화선으로 거론되는 ‘강남스타일’의 싸이,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JYP 박진영, 안테나의 유희열도 X세대다. 뿐만 아니라 음악과 영화, 방송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X세대는 대한민국 문화의 기틀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산업화 세대(1960년대생 이상), 민주화 세대(1960년대~1969년생)에 이어 문화 세대로 우뚝 섰다. 문화는 조용히 힘이 세다. 정치와 경제가 타는 불꽃이라면 문화는 지열과 같아서 뭉근히 뜨겁다.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고 두고두고 힘을 발휘한다. X세대가 문화세대로서의 영향력은 한동안 사그러들지 않으리라 본다. 

원하는 건 무엇이든, 내 꿈을 펼쳤다

세대론에서 중요하게 보는 시기는 20대인데, 1970년대생의 20대는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고 정치적으로는 안정적이었다. 3저(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와 3고(고금리, 고일자리, 고정장률)의 호황이 20대의 X세대에게 주어졌다. 한중 국교수립(1992), 우루과이 라운드(199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1996) 등 경제성장의 기폭제가 되는 역사적 사건들의 상당수가 이 시기에 이뤄졌다. 

“나는 중산층”으로 인식한 국민이 60% 이상에 달했으며, 부의 불평등이 가장 적은 시기이기도 했다. 거리마다 흥이 넘쳤고, 100만장 베스트셀러가 쏟아져 나왔으며,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나 홍정욱 회장의 마침표 없는 도전기 <7막 7장> 같은 밀리언셀러가 탄생했다. 

그야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핑크빛 조류가 가득한 시대였다.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안정 속에서 20대를 겪은 X세대는 밖이 아니라 안으로 시선을 향한 채 개인의 개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시대와 사회가 부여하는 중재자의 역할

X세대야말로 저평가 우량주 세대다. 문화 세대로서의 역할 외에도 이들 세대가 해오고 있고, 앞으로 더욱 역량을 쏟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교량 세대로서의 역할이다. X세대는 달라도 서로 다른 양 세대를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다. 윗세대의 성실성과 책임감을 물려받은 한편, 아래 세대의 개인주의의 속성을 갖추었다. 

이들은 윗세대가 왜 그렇게 악바리 세대가 되었는지 이해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그들이 자신만의 취향을 갖지 못한 채 위로는 노후 준비가 안 된 부모세대를, 아래로는 소위 N포 세대가 되어버린 밀레니얼 세대인 자식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는 현실에 안쓰러운 마음도 있다. 그런가 하면 X세대는 다양성과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와도 심정적으로 맞닿아 있다. 

양 세대가 충돌이라도 하면 그 중간에 있는 X세대가 “잠깐만요, 흥분하지 말고 들어보세요. 이 세대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아세요?”라면서 중재자적 역할을 능히 해낼 수 있다. 이는 시대와 사회가 X세대에게 부여한 중차대한 임무라고 본다. 

끼인 세대에게 시대와 사회가 부여한 사명, 중재와 통합. (사진:셔터스톡)

X세대의 시대적 역할과 잠재력에 대해 훨씬 더 크게 보는 시각도 일부 존재한다.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다정한 개인주의자>에 대한 서평에서 “김민희 작가는 X세대의 브릿지, 포용적 리더십을 강조하지만 나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며 이런 주문을 했다. “세대 간 융합을 넘어 X세대만의 정치, 경제, 문화를 우뚝 세울 것을 요구한다. 내가 요구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나의 요구가 아니라 시대적 요구임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종린 교수의 이런 시각은 X세대 입장에서는 과분한 분석이지만 X세대가 스스로 그럴만한 의지가 있는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본다. 

세대를 하나의 동질집단으로 엮는 1차원적 발상의 모순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이렇듯 X세대가 해온 역할과 수많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왜 X세대는 지워진 세대처럼 취급받아온 걸까. 이 원인을 찾으려면 한국사회가 세대론을 다루는 방식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세대론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비동시대적인 경험이 기반이 된다. 같은 경험을 겪더라도 성별, 재산별, 지역별, 이념별로 생각과 감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한 세대 담론은 같은 세대라는 이유만으로 동질적 집단으로 납작하게 보는 편의주의적 발상이 강했다. 그 중심에는 세대론을 정치적으로 도구화하는 강력하고도 위험한 현실이 있다. 

최근 세대론에서 가장 강력한 프레임은 ‘정치와 경제를 장기 점유한 86세대 VS 이들 때문에 기회를 상실한 청년세대’의 구도다. 이 담론은 마치 고정불변의 진실로 받아들여지면서 86세대는 일면 집단적 죄인처럼 다뤄지는 분위기도 있다. 과연 86세대가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며, 물러나야 할 욕심쟁이 세대일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집단의식으로 똘똘 뭉쳐 세력화에 목매면서 정작 중요한 정책적 의제는 뒷전인 86세대 정치인 일부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밥벌이를 위해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는 이 땅의 수많은 86세대는 아무런 죄가 없다. 비정규직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60대 이상(67%)이고, 그 다음이 50대(35%)(2015년 기준)라는 사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세대론, 편가르기의 프레임으로 이용되선 안돼

세대론의 존재 이유를 원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세대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은 동질적 사건을 경험한 세대의 삶의 양태이다. 즉 상이한 생애 경험을 겪은 다른 세대를 깊숙이 들여다봄으로써 다른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서 기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세대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부각시켜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비교급의 세대론은 폐기되어야 한다. 비교급의 세대론은 세대 간을 이간질시키고, 이편과 저편을 갈라치기하는 분열의 무기로 전락하고 만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근작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내용 역시 세대가 정치권의 도구이자 편가르기의 프레임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세대가 불평등의 시대를 함께 겪는다는 공동체주의적 수사는, 격차사회의 현실을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를 사유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에 크게 동감한다. 

망원경 대신 현미경적 시각의 개별적 서사가 필요

요컨대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세대론은 서로 다른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서사로서의 세대론이다. 망원경을 내려놓고 현미경을 들 필요가 있다. 여전히 세대담론의 헤게모니를 쥔 기성세대가 먼발치에서 어설피 타 세대를 규정하기보다 각 세대가 자신의 세대를 세밀히 펼쳐 보이는 개별적 서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인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는 지난 4월 30일자 <경향신문> 칼럼 ‘MZ세대라는 용어는 폭력의 합집합’에서 “MZ세대로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무려 20년의 시절을 묶어내는 데 대해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말이 우선 나온다”고 날선 비판을 했다. 

김민섭 작가의 의견에 동의한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서로 다른 인종이나 다름없을 만큼 사고방식의 차이가 크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바일 세대인 Z세대는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출현한 최초의 세대로, 10대에 모바일을 접한 밀레니얼 세대와는 또 다르다. 도대체 누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MZ세대라는 용어로 이들을 뭉뚱그려서 명명한 것일까. 해당 세대에 속한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이 편의주의적 용어는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을까. 

이름은 틀을 만든다. MZ세대라는 용어가 지배적인 담론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이질적인 집합체인 그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피하기 힘들다.

X세대도 1977년 전후로 극명하게 갈려

내가 <다정한 개인주의자>를 쓰는 과정에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X세대는 1970년대를 지칭하지만, 1970년대 초반생과 후반생은 또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미묘한 경계는 1977년생에서 갈린다. 1976년생까지만 해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사회의 공기를 가득 먹고 자랐으나, 1977년생부터는 패배주의적 분위기가 암암리에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들 사이에는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경계면이 있다. 대학교 졸업 직후에 외환위기를 겪은 이들은 그래도 캠퍼스의 낭만은 흠뻑 누렸으나 그 이후의 세대는 이미 외환위기로 인한 사회적 상처를 흡수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후속작업으로 진행되어도 흥미로울 것 같다. 

<다정한 개인주의자>는 X세대를 관통하는 서사인 동시에 75년생 김민희의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다. 말하자면 여중 여고 여대 여대학원 등 13년 동안 여성만 있는 세계에서 성장해, 남성 위주의 권위적인 언론사에서 20년 동안 조직생활을 해오면서, 육아를 도와줄 친인척 한 명 없는 지방 출신이, 경쟁사회 한복판인 서울에서 두 아이를 키워낸 직장맘의 투쟁기이기도 하다. 

나의 서사는 세대론에서 휑한 구멍으로 남아있는 X세대의 작은 퍼즐 조각 하나에 불과하다. 더 많은 X세대의 서사가 필요하다. 그래야 개인주의 첫 세대로서 똘똘 뭉쳐본 적은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제 몫을 다해낸 잡초 세대의 경쟁력이 더 구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남이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세상 

그렇다. 지금 세대론에서 필요한 건 집단적 서사가 아니라 개별적 서사다. 복잡계 사회, 문명화된 사회로 갈수록 개인의 다양성은 더욱 촘촘해질 것이고, 각성된 개인이 많아질 것이므로 개인들을 세대의 묶음으로 보려는 시도는 실체적 진실을 놓치기 쉽다. ‘우리가 남이가’ 식의 집단주의적 사고로는 사회를 진일보시키기 어렵다. 우리는 남이며, 타인은 결코 내 생각과 같을 수 없다. 

다름을 인정하려는 개인주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개인주의는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각자의 개성과 사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세상이야말로 문명화된 세상이다. 

김민섭 작가는 내가 나의 X세대를 ‘다정한 개인주의자’로 규정했듯, 자신도 자신의 밀레니얼 세대를 규정하고 싶다고 했다. 그 섬세한 작업이 실체를 드러내면 정치적 도구이자 상업적 수단으로 치부되어온 밀레니얼 세대의 진면목이 한층 선명하게 드러나리라 믿는다. 

지방대에서 시간강사를 하다가 작가로 전업했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강원도 강릉에 정착해 대리운전을 겸하는 N잡러의 삶을 고단하지만 보람 있게 살아내는 김민섭 작가. 그의 밀레니얼 세대론은 어떤 용어로 규정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세대론의 새로운 흐름이 감지된다.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기 쉬운 비교급의 세대론이 아닌, 서로 다른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각 세대 개인의 서사. 바야흐로 세대론 2.0 시대가 열렸다. 더 많은 개별자들의 서사를 기대한다. 


글쓴이 김민희는
사람을 통해 세상을 읽어내는 사람. 20년 동안 언론계에 몸담으면서 700여 명을 인터뷰했다. 한 사람의 결정적 순간을 간접 체험하는 인터뷰의 경험이 쌓이면서 나음보다 다름, 결과보다 과정, 순간의 반짝임보다 축적된 시간의 가치를 중시하게 되었다. 월간조선, 주간조선, topclass 기자로 일해 오면서 ‘세대 갈등’을 직시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그 어떤 대안도 공허한 외침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향한 공감과 이해의 몸짓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공존의 방향성을 모색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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