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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2. 09.23. 00:00

[윤영호가 채집한 목소리] 영국의 우크라이나 난민 리디아, ‘형제(국가)가 둘 뿐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By | 2022년 4월 29일 | 국제, 미분류, 사람, 여성

윤영호 필자가 이번에는 영국으로 피신한 우크라이나 여성 리디아의 목소리를 전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의 처지이지만, 그녀는 아직 본국 계좌에 연동된 신용카드를 쓸 수 있어 빈털털이 신세는 아닌 21세기형 난민이다.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직장 생활을 하던 리디야. 전쟁이 나자 그녀는 어머니, 딸, 친구와 함께 당장 입을 옷만 챙겨 들고 부다페스트,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피신했다. 본인 스스로도 ‘문명적인 난민 구호’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운이 좋은 편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과연 그녀를 운이 좋다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편집자 주]

✔ 안정적인 삶을 살던 수백만 명이 한 순간에 난민으로 전락
✔ 어머니와 어린 딸 데리고 부다페스트-파리 거쳐 런던행
✔ 푸틴이 돈바스를 차지하고 영원히 떠나 주기만을 바랄 뿐
✔ 취업, 정착, 아이 학업까지 사방에서 호의적인 도움 제공
✔ 만족스레 정착했지만 나의 터전은 키이우, 반드시 돌아갈 것

난민에 대한 선입견을 세련된 여성 리디아

영국에 온 우크라이나 난민을 인터뷰하고 싶었다. 리디아 비노그라드나를 소개받았고, 그녀의 SNS를 봤다. 우크라이나에 관한 소식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SNS가 슬픔으로 도배된 것도 아니었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조율하기 위해서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프로필 사진과 그녀의 언어에는 세련미가 넘쳤다. 먼저 난민이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견에 놀랐다. 그리고 이번 전쟁이 아이폰을 들고, 비싼 선글라스를 끼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던 수백만 명을 한순간에 난민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이 비극으로 느껴졌다.

윤: 소개를 부탁합니다.

리디아 :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태어나 자란 33세 여성입니다. 남편과 5살 난 딸이 있어요. 어릴 적에는 리듬체조 선수로 활약했어요. 대회에 참가하러 런던에 온 적도 있어요. 우크라이나 리듬체조 협회 일도 했고, 임원으로 런던 올림픽에도 왔어요. 리듬체조 심판으로 글래스고에 온 적도 있어요. 전쟁 전에는 면세점 매장을 기획하고 오픈하는 일을 했어요. 2월 28일에 키이우 공항 면세점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했지요.

윤: 전쟁을 예상하지 못했나요? 전쟁이 시작되고 전쟁 초기에는 어떻게 살았나요?

리디아: 전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푸틴이 서방 세계에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고만 생각했어요. 전쟁이 시작되고 40일 동안 우리는 키이우에 있는 단독 주택에 살았어요. 폭탄 소리가 들릴 때마다 옆집 지하실로 대피했고요.

윤: 지하 방공호요? 옆집은 전쟁을 예상했나요?

리디아: 아뇨. 제 주변에서는 누구도 전쟁을 상상한 적이 없어요. 그냥 평범한 지하실이었죠.

윤: 어떻게 우크라이나를 탈출했나요?

리디아: 탈출이라고 말할 만큼 비극적이지는 않았어요. 운이 좋았어요. 인터넷을 통해 유럽 여러나라가 제공하는 일자리를 볼 수 있어요. 나는 영어를 잘 하니 영국에서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했죠. 영국의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한 일자리를 포스팅했고, 저는 그것을 보고 지원하여 일자리를 얻었죠. 그래서 엄마, 딸,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와 같이 자동차를 타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갔어요. 운전하는 짬짬이 길가에 차를 세운 채 잠을 잤고, 눈을 뜨는 즉시 또 달려서 부다페스트까지 갔지요. 운전은 혼자 다 했어요. 부다페스트에서 하루 자고, 지인에게 자동차를 맡기고, 비행기로 파리로 갔어요. 파리에 도착했는데, 아직 영국으로 갈 수 있는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파리에 몇 일 머물렀죠. 중간에 기차를 타고 해변에도 다녀 왔어요.

윤: 비자를 받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나요? 시간이 오래 걸렸나요?

간편한 영국 입국. 정착 중에도 모두가 호의 일색

리디아: 비자를 받은 것이 아니고, 특별입국 허가 문서가 이메일로 와요. 그것을 가지고 영국에 입국할 수 있고, 입국 후 6개월간 체류하면서 집도 찾고, 직장이 없이 온 사람은 직장도 찾죠. 6개월 안에 정식 절차를 밟아서 3년짜리 비자를 받아요. 절차가 어렵거나 번거롭지 않고, 모두가 잘 도와줘요.

윤: 키이우에서 영국까지 오는 비용은 누가 부담했나요?

리디아: 부다페스트에서 파리까지 가는 비행기 표는 우리가 부담했어요. 파리에 도착하고 나서는 모든 교통편이 무료였어요. 에어비앤비를 통한 숙박도 무료였어요. 파리에서 런던까지 유로스타를 타고 왔는데 그것도 무료였고, 런던에서 지금 사는 밀튼 케인즈까지 오는 교통편도 무료였어요. 어려움은 없었고, 다들 친절했어요. 오는 과정에 한 번도 불쾌하거나 불편한 적이 없었어요. 참으로 훌륭한 문명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윤: 지금 사는 집은 편안한가요? 출근은 시작했나요? 아이 학교는 구했나요? 어려운 점은 없나요?

리디아: 회사에서 주택을 제공할 사람을 찾아 주었어요. 그래서 안락한 집에서 살고 있어요. 영국인은 대체로 주변을 돕는 것이 잘 몸에 배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요. 4월 25일부터 직장에 나갔는데, 모두가 환영해 줬죠. 아이 학교도 찾았고, 5월부터 학교에 나가요. 어려운 점요? 굳이 문제점을 말하자면, 영국의 비싼 교통비요. 버스를 타고 직장에 다녀오는데, 하루 버스 비용이 5파운드가 넘어요.

윤: 우크라이나 난민은 교통비가 공짜라고 하지 않았나요?

리디아: 영국 도착 후에 48시간 까지만 교통비가 공짜고, 그 이후부터는 똑같아요. 웨일즈는 9월까지 교통비가 무료라고 하는데, 잉글랜드는 그렇지 않아요. 우크라이나 난민 중에는 식료품보다 교통비에 돈을 더 쓰는 사람이 많아요. 영국 교통비는 장난이 아니네요. 우크라이나 난민 중에서 지역에 따라 학교에 자리가 없어서 학교를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요. 대부분 난민에게 교통비와 학교가 우선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 생각해요.

윤: 우크라이나에서 나올 때, 돈은 충분히 가져왔나요? 가방은 몇 개를 가지고 왔나요?

리디아: 보따리로 싸 들고 올 정도의 달러는 없었어요. 조금 가져왔고, 당연히 부족하죠. 그러나 우크라이나 은행에 돈이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카드를 여기서도 쓸 수 있어요. 생활필수품은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부족함이 없어요. 네 명이 오면서 여행용 가방을 네 개 가지고 왔어요. 한 사람에 한 개씩 가져왔어요. 키이우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자동차에 가방이 네 개밖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윤: 여성의 가방 속을 물어보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피난을 떠날 때 챙긴 리디아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나요?

리디아: 가방 속에 치마 두 벌, 원피스 하나, 바지 두 벌, 윗옷 다섯 개, 속옷, 양말, 화장품, 운동화 한 켤레, 구두 두 켤레, 노트북 컴퓨터, 사진첩이 있었죠. 특별한 것은 없어요. 가방은 우크라이나 리듬체조 국가대표 시절에 받은 가방이에요.

키이우에서 부다페스트까지 타고 온 자동차.

영국이 몹시 고맙지만 내 삶의 터전은 키이우, 반드시 돌아갈 것

윤: 아! 당신은 리듬체조 선수였다고 했죠. 선수 시절에 대회에서 러시아 선수를 많이 만났을 것이고, 친구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들과 이번 전쟁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은 적이 있나요?

리디아: 단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서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의 그런 표현을 고맙게 생각했어야 했는데, 전화를 받을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 전쟁에 대해 침묵하는 다른 친구들은 모두 공범자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앞으로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이유는 없을 것 같아요. 내게 미안하다고 말한 친구는 곧 러시아를 떠날 예정이에요.

윤: 당신은 영국으로 왔어요. 영어를 잘하기에 영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 비교적 쉬웠을 것 같아요. 다른 친구는 어느 나라로 갔나요?

리디아: 프랑스, 독일, 핀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등요. 가장 많이 간 곳은 폴란드에요. 이제 폴란드에는 폴란드 사람보다 우크라이나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대부분 전쟁이 끝나면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으로 간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어요. 미국은 아직 우크라이나 난민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않은 것 같아요.

윤: 전쟁이 끝나고 당신은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나요? 조금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전쟁 전에는 우크라이나 사람이 영국에서 일하고 싶어도 올 수 없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리디아: 딸이 좋은 학교를 찾았고, 좋은 교육을 받게 될 것 같아서 기뻐요. 하지만 나는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돌아가고 싶어요. 남편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고, 우리 삶이 그곳에 있으며, 내가 맡은 면세점 일에도 큰 보람을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포악한) 형제가 둘 뿐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윤: 남편에 대해 말해 볼까요? 그는 우크라이나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죠? 그도 우크라이나를 떠나려고 시도했나요? 그는 지금 안전한가요?

리디아: 18세 이상 60세 이하의 남성은 우크라이나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가려고 시도할 이유가 없고, 그런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지금은 키이우에서 전쟁을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어요. 무기를 들고 싸우지는 않기에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우리는 매일 영상 통화를 해요.

윤: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푸틴은 이 전쟁을 통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나요? 푸틴의 전쟁은 러시아인에게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푸틴의 지지율이 러시아에서 80%가 넘는다고 하는데 믿어지나요?

리디아: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멀어지는 것을 더는 좌시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이 아니면 영영 우크라이나를 잃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으며, 그런 이유로 마리우폴 같은 도시를 초토화시킬 수가 있어요? 그런 이유로 형제 국가를 초토화시키는 것이 어떻게 보통 사람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나요? 우리나라에는 요즘 이런 말이 있어요. ‘우크라이나에게는 두개의 형제 국가가 있다. 그러나 형제가 둘 뿐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윤: 그게 무슨 말이어요?

리디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슬라브 형제 국가라고 부르잖아요.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문제만 일으키는 형제 나라가 둘 있는 거죠. 러시아인의 푸틴 지지에 대해서 말한다면, 많은 사람이 의사 표현을 겁내고 있을 거예요.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이 푸틴의 전쟁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도 국민 다수가 푸틴을 지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푸틴을 지지하는 사람과 침묵하는 사람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80%가 다 푸틴을 지지하든지, 그 안에 침묵하는 상당수가 있는지는 내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이런 사람도 많아요. 크림반도가 2014년에 러시아가 된 이후에 그곳 사람은 러시아 여권을 가지게 되었죠. 지금 크림에 있는 사람이 동유럽으로 가요. 거기서 러시아 여권을 버리고 기간이 만료된 우크라이나 여권이나 우크라이나 신분증을 제시하죠. 그렇게 거짓 난민이 되어 유럽 국가의 도움을 받아 정착하죠. 그런 사람도 여론 조사할 때는 모두 푸틴을 지지한다고 대답했을 거예요.

푸틴은 폐허가 된 돈바스를 챙겨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지길

윤: 평화 회담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젤렌스키 대통령이 종전을 위해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에 넘겨주는 결정을 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나요?

리디아: 돈바스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떠났어요. 그리고 폭탄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죠. 많은 사람이 다시는 그 지역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우크라이나 서부로 떠날 거예요. 일부는 해외로 가서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죠. 많은 사람을 죽이고 난민으로 만들면서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거라면, 돈바스를 가져가고 다시는 얼굴 보지 말자고 푸틴에게 말하고 싶어요. 저는 그런 결정이 나온다면, 눈물을 머금고 젤렌스키의 고뇌를 지지할 거예요.

윤: 당신의 다섯 살 딸은 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요?

리디아: 아이는 폭탄 소리를 들었고, 전쟁이 났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피난을 떠났다던가, 난민이 된 처지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수도 있어요. 엄마와 할머니와 같이 여행을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모든 사람이 선의로 우리를 돌봐 주고 있기 때문에 비극을 온전히 비극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곧 언제 돌아갈 수 있냐고 묻겠죠.

파리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유로스타 안에서 찍은 사진. 다섯 살 난 아이는 전쟁이 난 건 알지만, 난민이 된 처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 하다.

부담스러운 영국의 교통비, 안 쓰는 자전거 기증이 가장 큰 도움

윤: 한국 사람이, 영국에 있는 한국 교민이 당신 같은 영국에 온 우크라이나인을 도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당신은 은행 계좌는 있나요?

리디아: 영국 인터넷 은행 계좌를 우크라이나 여권으로 쉽게 만들 수 있어요. 일반 은행도 우크라이나 여권만으로 쉽게 계좌를 개설할 수 있어요. 거주지 증명과 같은 서류를 요구하지 않아요. 은행에서 우크라이나 여권을 제시하면 기꺼이 도와줘요.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가장 큰 도움은 안 쓰는 자전거를 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미 말한 것처럼 교통비가 너무 비싸니까요. 영국에 온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서 SNS에서 Help Ukraine을 검색하면, 지역마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조직이 결성된 것을 보실 수 있어요. 우리 지역을 돕고 싶으시다면, Help Ukraine BAMK (Bedford, Aylesbury, Milton Keynes)을 검색해 보세요.

윤: 오늘 인터뷰 너무 감사합니다. 런던에 오면, 맛 있는 한국 음식을 대접할게요. 어머니, 딸, 그리고 친구까지 꼭 다 같이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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