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글에서는 폴란드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여성 다리야의 이야기를 들어 보게 되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아니었다면 친지들의 축복 속에 6월의 신부가 되었을 20대의 젊은 직장인 다리야.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을 가진 다리야의 이야기는 전쟁의 참혹함 중에서도 여성성의 말살이라는 관점에 집중하게 한다.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하되, 인터뷰 기사에 폐허가 된 마리우폴의 이미지가 소개되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며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여동생이 졸업파티에 입으려고 골라 둔 원피스 사진이다. [편집자 주]

✔ 러시아어가 주 언어이고 러시아어로 공부했지만러시아 위협 피해 2014년 폴란드로 대학 진학

✔ 아버지와 여동생은 목숨 걸고 가까스로 폴란드 피신외할머니와 52일째 연락두절, 외할아버지 생사 몰라

✔ 모든 것이 아름답고 완벽하던 마리우폴의 95% 파괴더 이상 존재않는 도시에서 삶을 위해 싸우는 이들

✔ 러시아어 사용자와 친러시아 주민은 구분 필요해우크라이나어로 된 문화 새로이 일어서는 중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50일을 훌쩍 넘었고, 전쟁 소식을 지루하게 생각하는 독자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인터뷰 대상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는 20대 여성 다리야 마르첸코(가명). 그녀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였지만, 그녀의 결혼식은 이제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다.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그녀와의 인터뷰가 쉽지 않았지만, 덕분에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감정 중 일부는 고심 끝에 지면에 옮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문학적 표현을 자주 썼고, 어려운 단어와 문장을 구사했다. 때문에 인터뷰도 길어졌고, 내용을 정리하는 데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인터뷰 대상의 외모를 칭찬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도 있지만, 그녀가 6월의 신부일 수 있었던 사실을 핑계 삼아 보겠다. 결혼하는 신부와 신랑의 외모를 칭찬하지 않는가? 그녀가 결혼식을 하게 될 그 날이 온다면, 다리야는 내가 보았던 모든 결혼식을 통틀어, 심지어 TV나 잡지로 보았던 결혼식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신부일 것이라 확신한다. 그녀는 인터뷰 사례비를 거절했으며, 대신에 비트코인으로 우크라이나 정부에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6월의 신부가 될 예정이던 폴란드의 20대 직장인 다리야

윤: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다리야: 제 이름은 다리야(Dariya)입니다. 책 읽는 것, 노래 부르는 것,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이는 25세고, 폴란드에 있는 글로벌 기업에서 시장분석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어요. 저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릴 적에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왔어요.

: 언제, 어떻게 폴란드로 이주했나요?

다리야: 2014년이었어요. 나는 17살이었고, 우크라이나 돈바스의 마리우폴에서 살았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였죠. 내 앞에 세상이 열리고 있었고, 대학 입학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어느 도시로 갈까 고민하고 있었죠. 그런데 부모님이 폴란드로 대학 진학을 줘했고, 그때부터 폴란드를 고려하기 시작했어요. 아직 나이가 어렸고, 부모와 1700km나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죠.

고등학교를 졸업 한 달 전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을 처음으로 공격했어요. 러시아는 당시 루한스크, 도네츠크를 사실상 점령했고, 우리 도시인 마리우폴도 원하고 있었죠. 우리는 불타는 건물을 지나 학교에 갔어요. 거리에 나무, 철조망, 자동차 등으로 만들어진 바리케이드가 도처에 있었어요. 2014 5 9일에 분리주의자들이 마리우폴 경찰 건물에 총격을 가했죠. 그곳에서 아버지의 친구가 죽었어요. 그때 부모님은 저를 폴란드로 보내려는 판단에 확신이 섰고, 하루라도 빨리 자식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후로는 폴란드에 정착하여 살고 있습니다.

: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의 삶은 어떠했나요?

다리야: 2014년 이전에는 최고 중의 최고였죠. 어려서 많은 것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내 눈에는 마리우폴은 번창하고 있는게 눈에 보였어요. 관광객이 많이 찾아왔고, 새 건물이 들어서고, 낡은 건물이 재개발되고 있었죠.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층 부패가 있었지만, 국민들은 여기 대처하는 법을 알아가고 있었고, 개선점을 찾아가고 있었어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복잡해졌어요. 우리는 총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공기를 가르고 들려오는 것인지, 물을 가르고 들려오는 것인지 궁금해 하며, 잠을 청했죠.

러시아와 합병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우리 도시에 끊임없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자신들이 우리 도시에 오래전부터 살고 있던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시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깃발을 들고 다녔어요. 우리에게는 성장하고 발전하려는 열망이 있었고, 미래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러시아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미래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누구든지 무기를 들고 와서 우리 삶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리우폴, 삶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중

: 마리우폴은 지금 전 세계인의 관심 대상인데요. 이 도시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다리야: 마리우폴은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평화롭게 사는 항구 도시였어요. 인구는 50만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아름다운 아조프 해변 덕분에 관광객도 많았고, 영화를 찍으러 배우와 영화감독이 늘 찾아왔죠. 항구 이외에도 중공업이 발전한 도시이기도 해요. 커다란 철강 공장도 있어요.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으로 간혹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마리우폴에는 새로운 투자가 들어오고 있었고, 공원은 잘 가꾸어져 있었고, 도심은 유럽처럼 보였고, 다양한 축제가 벌어졌고, 주민들과 함께 번영하고 있었어요.

지금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건물의 95%가 폭탄과 탱크로 파괴되었고, 아름다웠던 거리와 새로 건설된 도로에 죽은 사람의 시신이 놓이게 되었어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과 빛이 없는 지하실에서 살고 있어요. 그들은 친척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아직 살아 있고, 누가 죽었는지 모릅니다. 통신망과 이동 수단이 모두 파괴된 상황에서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도시에서 삶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윤: 이 전쟁은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나요?

다리야: 저는 8년 전에 마리우폴을 떠나 폴란드로 왔기에 이번 전쟁의 참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어요. 그러나 어리석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내 영혼, 내 가족의 영혼, 모든 우크라이나인의 영혼을 영원히 불구로 만들었어요.

나는 올 6월에 남자 친구와 결혼할 예정이었고, 우리는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곳에 양가 친척이 모두 모여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지요. 나는 피로연을 위해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선택했고, 결혼식에 신을 구두를 골라 놓았어요. 우리는 얼마 전까지 한없이 낭만적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어떻죠? 내 고국에서 러시아 군인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어요. 그에 따라 나의 세상은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어 버렸지요.

벌써 52일 동안 외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고, 외할아버지는 어딘가로 끌려갔다고만 들었어요. 지금은 돌아올지 어쩔지 모르는 상태예요. 지금 마리우폴 사람들에게는 음식도, 물도, 빛도, 통신 수단도 없어요.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마리우폴로부터 조금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데, 그곳은 이미 러시아군이 점령해 버렸어요.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전화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3일에 한 번씩 어떻게든 소식을 전해오고 있어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지금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지만, 어쩌면 그들은 나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살아남으려고 하는지도 모르죠. 우리는 3분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그때마다 눈물을 흘려요.

아빠와 여동생은 전기, 난방, 물 없이 포격을 받으며 한 달 동안 버티다가 가까스로 마리우폴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여분의 옷이나 신발도 없었고, 조그마한 배낭 하나를 메고 나왔어요. 그곳을 떠난 모든 사람들처럼 곧 바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들의 삶은 고스란히 마리우폴 집에 남겨져 있습니다. 동생이 졸업 파티에서 입으려고 했던 드레스, 엄마가 살아 계셨을 때 찍었던 사진, 좋아하는 책, 아버지의 일, 그리고 친구들. 나와 나의 가족에게 의미 있었던 곳에 지금은 죽음과 파괴만이 남겨졌습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과 파괴된 자동차가 거리에 누워 있어요. 침략자들은 사람들이 숨어 있던 학교와 병원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여성과 어린이를 강간합니다. 심지어 아기가 강간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동물을 죽여 불태우고, 집에서 소중한 모든 것을 약탈하고, 탱크로 집을 부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이들과 사파리 놀이를 합니다.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그들에게서 도망가도록 내버려두고, 누군가가 충분히 빨리 달리지 않으면 다리에 총을 쏩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스스로를 죽여 자작극을 벌이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퍼뜨립니. 저는 이 전쟁이 남긴 사진 한장 한장을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할 거예요.

전쟁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냐고요? 그 질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릅니다. 저는 지금 흰색 웨딩드레스 대신 검은 운동복을 입고 있어요. 그야말로 재앙이지만, 내가 겪는 고통은 이 전쟁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 전쟁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나요?

다리야: 러시아와 러시아 국민 모두에게 있습니다. 전쟁 결정을 내린 푸틴과 푸틴의 협조자들에게 직접적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러시아 국민들, 우크라이나 땅에서 헛되이 죽어가고 있는 러시아 젊은이를 모른 척하고 있는 러시아 사람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기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이 전쟁을 가능하게 한 모든 사람. 자기 자식과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낸 모든 어머니와 아내에게도 똑같은 책임이 있습니다. 총알을 하나라도 쏘거나 폭탄을 하나라도 떨어뜨린 사람들, 죽은 우크라이나인이 우크라이나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는 선동가들, 그들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런 문명화된 세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아요.

: 어떤 사람은 루한스크와 도네츠크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도 러시아 지지자를 많이 죽였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푸틴에게 침공의 명분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2014년부터 갑자이 늘어난 러시아 사람들

다리야: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람을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으로 나눈 적이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모든 시민은 어떠한 정치적 입장이든지 모두 우크라이나인입니다. 2014년에 친러시아 시민들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 갑작스럽게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이들은 러시아를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 친러시아 집회를 조직했으며, 러시아 군대가 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우크라이나인이 아니라 러시아에 의해 파견된 사람들이었어요.

이건 오늘날의 국제관계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이에요.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에서 온 스파이와 분리주의자를 색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무기를 가지고 당신의 집에 이웃이 침입했다면,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을까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어만을 말하는 사람, 러시아어 문학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유럽보다는 러시아와의 연합을 원하는 사람을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 언어와 문화를 선택할 권리를 가집니다. 그러나 그들이 국가의 주권에 무력으로 도전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그래요. 좋아요.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러시아인과 러시아 문화를 보호하는 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 봅시다. 

제 이야기를 더 하자면 저는 태어날 때부터 러시아어를 사용했고, 러시아어로 생활하고, 러시아어로 공부했어요. 우리는 모두 생활 언어와 공부 언어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50만 명이 살고 있던 마리우폴에서 많은 사람이 러시아어를 선택했어요. 현재 푸틴은 군대를 보내, 마리우폴 건물 95%를 파괴했으며, 오늘까지 약 22,000명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푸틴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마리우폴에 군대를 파견하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인구의 엄청난 수를 죽이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인구의 거의 모든 집을 파괴했습니다. 나머지 생존 인구는 음식, , , 통신 및 난방이 없는 상황에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가, 이런 푸틴이 러시아어 사용 인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도 친러 세력보다는 친유럽 세력이 다수였으며, 친유럽 세력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곳에는 친러 세력이 절대 다수였다고 말합니다. 어느 주장이 맞는 것일까요? 

다리야: 우크라이나 남동부를 이해하려면 지도를 열고 모든 면에서 우크라이나 이웃이 누구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은 많은 사람이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고 폴란드어도 사용합니다. 동부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고, 러시아 대중문화가 인기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국경 안에도 우크라이나 문화가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러시아의 쿠반(Kuban) 지역입니다.

러시아어를 주언어로 사용하는 것과 친러 세력은 분명히 구분해야 해요. 돈바스에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 중에 러시아와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언어를 사용하든지 간에 유럽을 동경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으며, 좋은 길을 따라 운전하여 유럽에 가기를 원했고, 유럽적 가치를 지향했습니다.

자신을 러시아인으로 생각하고 러시아와의 병합을 생각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진 노인들이었고, 그들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지도 않아요. 그들조차도 100km 안 되는 거리에 러시아가 있지만, 러시아로 갈 생각은 없어요. 그들은 소련과 푸틴의 러시아가 다른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며, 소련은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옛날이야기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런 노인들보차도 지금은 더 이상 러시아에 속하기를 원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구스-흐루스탈니(Gus-Khrustalny)는 러시아에세 가장 유럽지향적인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돈바스와 루한스크 지역 사람들은 구스-흐루스탈니보다도 훨씬 더 정신적으로 항상 유럽인이었습니다. 어떤 언어를 쓰든지 상관없이요. 러시아는 원하는 만큼 영토를 장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지역이 친러가 되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말이 죽으면, 말에서 내려야 합니다!

: 우크라이나 지역의 일부를 러시아로 병합하는 것, 나아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화하려는 푸틴의 욕망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죠? 

다리야: 바보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관심이 없어요. 그가 무슨 목표를 추구하고, 어떤 명분을 가져다 대도 이 전쟁을 정당화할 수 는 없어요. 러시아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말이 죽으면, 말에서 내리십시오!' 소련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어떻게 그 말에 올라탑니까? 자유롭게 살 줄 아는 나라에서 어떻게 새로운 속박국가를 만들 수 있겠어요?

: 푸틴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하나의 민족이며, 우크라아나는 한번도 별도의 민족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다리야: 푸틴은 정신분열증 환자이고 오랫동안 특별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다른 역사, 다른 영웅,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을 보면, 우크라이나인이 러시아인과 얼마나 다른 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전쟁을 통해서 전 세계인이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차이를 절절히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 당신도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자랐습니다. 이번 전쟁이 우크라아나의 러시아어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크라이나어 문화가 새로이 일어서는 중

다리야: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인이 대대적으로 우크라이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곧 우크라이나의 언어로 노래가 쓰이고, 문학 작품이 쓰일 거예요. 우크라이나 문화는 더 이상 러시아 문화와 우크라이나 문화의 혼합으로 구성되지 않고, 오직 우크라이나어로만 구성될 것입니다. 책과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문화가 일어설 거라 믿어요. 

: 폴란드인들은 이 전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나요?

다리야: 이 상황에서 폴란드인은 우크라이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요. 그들은 러시아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가 항의하며, 우크라이나 군대에 무기를 보내고, 물건과 돈으로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어요. 난민들에게 집을 제공하고, 국경을 넘어 악몽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을 돕기 위해 국경에서 밤낮없이 일합니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즉석에서 연극을 펼쳐 보이고, 장난감을 나눠 줍니다. 그들은 음식을 나누고, 서류 작업을 도와줍니다. 

폴란드 정부는 모든 난민에게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며,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모든 지역에 인도주의 지원 센터가 있습니다. 난민들은 그곳에서 밤을 보내고, 필요한 옷과 음식을 얻을 수 있고, 휴대전화를 충전하지요. 분유와 기저귀는 물론, 아이 유모차까지 무료로 제공합니다. 아이들은 별도의 서류 없이 학교와 유치원에 갈 수 있어요. 폴란드인은 우크라이나 사람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무료 심리 상담, 무료 정신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모든 역과 주요 시설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세계의 모범이 되는 폴란드의 우크라이나 지원

폴란드의 지원은 전 세계인의 모범이 되며, 세상에 있는 모든 상을 다 폴란드인에게 주어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폴란드인은 우크라이나인을 도우면서 돈이나 어떠한 형태의 보상도 기대하지 않아요.

: 폴란드 정부는 이 전쟁의 확전에 대해 잘 대비하고 있나요? 향후 폴란드와 러시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다리야: 내가 아는 한 폴란드는 러시아의 공격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고, NATO는 국경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인을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지킬 준비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나치와 파시스트의 나라라고 부르지만, 그들 자신은 우크라이나 땅에 와서 우크라이나인을 대량 학살하고, 우크라이나 역사를 허구라고 부릅니다. 히틀러는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죽였고, 푸틴은 우크라이나인을 죽였습니다. 폴란드에서는 더 이상 히틀러와 푸틴을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러시아와 더 이상 우호적 관계는 없을 것이고, 이제는 다시 손잡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 당신과 인터뷰하기 전에 벨라루스의 32세 여성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녀는 전쟁에 반대하다가 고초를 겪었고, 지금도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벨라루스 여성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다리야: 나 역시 그녀의 걱정을 이해하고, 그 두려움을 이해합니다. 불행히도 벨라루스 당국은 러시아 침공을 전적으로 지원하였고, 그로 인해 벨라루스인은 세계인의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벨라루스인들이 2020년에 독재자와 싸웠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요. 이번 전쟁에 반대하는 벨라루스 국민들의 노력에 대해 듣고 있으며, 그 모든 것에 큰 감사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해와 감사와 별개로 벨라루스인이 궁극적인 행복은 루카센코 대통령을 타도함으로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쉽지 않은 길임을 알기에 큰 응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슬라브 국가가 서로를 피로 물들이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를 마치면서 어떤 감흥이 듭니까? 한국의 독자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다리야: 말을 쏟아 내고 나니 엄청나게 공허하네요. 내 감정을 너무 여과없이 드러 건 아닌가 싶어 걱정도 들고요.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수 있는 여러 채널이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몇 개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국인의 많은 지원을 바라며, 이 도움과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https://savelife.in.ua/en/donate/

https://twitter.com/ukraine/status/1497594592438497282?lang=en


글쓴이 윤영호는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증권사, 보험회사,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고, 카자흐스탄 증권사 겸 자산운용사인 세븐 리버스 캐피털(Seven Rivers Capital)에서 대표로 일했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자산을 운용하며 런던 라이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 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