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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2. 10.05. 00:00

[윤영호가 채집한 목소리] 어디서도 반기지 않는 벨라루스 32세 여자의 경우

By | 2022년 4월 16일 | 국제, 미분류, 여성

2015년 노벨문학상은 벨라루스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돌아갔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수상작이다. 한국에도 번역, 출판되었다.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이 2차 세계대전 속의 여자를 다루었다면 [윤영호가 채집한 목소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속 여자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한다. <피렌체의식탁>이 앞서 몇 개의 칼럼에서 게재한 우크라이나 전쟁 칼럼들이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라면 이번부터 연재할 목소리 수필은 당사자, 피해자, 참여자들이 개인의 관점에서 토로해내는게 다른 점이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인간다운 인간’의 얼굴을 하기 어려운 주제다. 어려운 일을 윤영호 기획위원이 맡아주었다. [편집자 주]

✔ 반전집회로 옥살이 뒤 내 삶 송두리째 바뀌어
✔ 내부 독재자와 외부 독재자에게 이중점령 당해
✔ 벨라루스도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와 동의어 아냐
✔ 주변 99%가 전쟁 반대, 투옥 1,500명 넘어
✔ 금전적·인도적으로 돕거나 직접 싸우러 가기도
✔ 벨라루스 여권은 공범자 낙인, 어디서도 천대

우연한 계기에 <피렌체의식탁> 발행인과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새로운 글, 다양한 글이 화제였다. 서울은 새벽이고 런던은 한밤중인데 잠이 싹 깨는 얘기들이 오갔다. 나는 농담처럼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반론을 부탁하자고 제안했다. 의외로 진지하게 받아들인 발행인은 유명인의 생각은 언론에서 쉽게 들을 수 있으므로 ‘일반인의 생각’을 싣고 싶어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주변국 시민 중에 이번 전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찾아 그들에게 글을 요청해 보자는 것이었다. 필자는 런던에 살지만 러시아어를 할 줄 알고 동유럽에 산 경험이 있어,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에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할 수 있다면 보람있다 생각하여 이 연재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찾은 인물이 벨라루스 30대 여성인 소피야 모르조바(가명)였다. 윤영호가 질문하고, 번역·정리했다.

벨라루스에선 더 이상 신념대로 살 수 없어, 30대 여성 소피야

윤: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소피야: 저는 벨라루스의 민스크에서 태어나고 자란 32세 여성입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대학원까지 졸업했습니다. 최근까지 회사에서 마케팅 디렉터로 일했습니다.”

윤:이번 전쟁이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소피야: 2020년 이후 벨라루스 상황이 극도로 불안정했습니다. 그 와중에 러시아 군대 일부가 우리 영토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침략했고, 우리는 본의 아니게 전쟁의 공범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에 대해 매우 분노하고 있어요. 어떤 형태의 전쟁도 반대합니다. 특히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것이잖아요. 우크라이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우리의 이웃이죠. 언어도 통하고 문화도 비슷하여 키예프나 오데사에서 살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지난 2월 27일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어요. 나와 친구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가 붙잡혔어요. 15일 동안 비인간적인 대우와 끔찍한 환경에 갇혀 있었고, 풀려난 뒤 충격에서 회복할 시간도 없이 나라를 떠나야 했어요. 벨라루스에서는 자신의 신념과 생각대로는 살 수 없어요. 신념대로 살려면 형사 처벌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번 전쟁은 내 개인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어요. 민스크의 집, 친구와 친척을 비롯한 모든 것을 두고 이곳으로 떠나 왔어요. 지금 지내는 곳은 나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이어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개척하여 적응해야 합니다. 언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어요.

이제 벨라루스 여권은 일종의 낙인과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공범자이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해요. 다른 나라에서 벨라루스 여권을 가지고 도움을 청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본국에서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고, 우리나라 밖에서도 마찬가지가 되었어요. 우리나라 밖에서도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아요. 물론 모든 곳에서 그런 것은 아니죠. 폴란드는 벨라루스 사람에게 인도주의적 도움을 주기도 하고, 비자를 주기도 해요. 그리고 벨라루스 사람도 이 전쟁의 희생자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나는 ‘어디에서 왔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제가 민스크 출신이라고 대답하면 많은 사람이 당황하여 눈을 감고, 다른 것을 물으려고 하지 않아요. 그럴 때면,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야기와 감옥에 갔었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반응이 바뀝니다. 어느 여성은 울기까지 했어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경로(사진:셔터스톡)

푸틴과 동조자 모두에게 엄중한 처벌을

윤: 이 전쟁에 반대하는 당신의 입장은 아주 분명하군요.

소피야: 21세기에 이런 전쟁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에요.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는 그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어요. 이 모든 게 그저 끔찍한 초현실 같아요. 이 악몽이 최대한 빨리 끝나길 바라며, 푸틴과 그의 동조자 모두 엄중한 처벌을 받기를 원해요.

윤: 가족은 지금 상황에 대해 뭐라고 말하나요?
소피야: 미혼이라 남편과 아이는 없어요. 아빠는 일찍 돌아 가셨고, 엄마는 몇 년 전에 돌아 가셨어요. 여동생이 있는데, 여동생은 2020년에 반정부 시위를 하다가 감옥에 간 적이 있어요. 그 후로 실망하여 벨라루스를 떠났고, 지금은 러시아에 살고 있어요. 현재 제 상황이 동생에게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지요.

윤: 당신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전쟁에 반대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찬성하나요? 통계가 아닌 느낌을 말해 주세요.

소피야: 친구와 친척, 회사 동료와 지인들 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동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내 주변 사람은 99%가 이 전쟁에 반대해요. 아마도 지지하는 사람 중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누군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 자체가 벨라루스 사람 대부분은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윤: 전쟁에 반대하는 벨라루스 사람은 어떻게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나요?

소피야: 나처럼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밝혔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이 1500명이 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높이지는 못하지만, 우크라이나를 위해 금전적이거나 인도적인 도움을 주고 있어요. 지인 중에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간 친구가 있어요. 직접 전선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어린이를 포함한 피난민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편지를 쓰고,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고, SNS를 통해 소식을 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누군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 그 이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피켓 들고 모여 있었을 뿐

윤: 당신은 평화적인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왜 벨라루스 정부는 그렇게 공격적으로 반전 시위자를 탄압했을까요?

소피야: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는 큰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피켓을 들고 모여 있었을 뿐이며, 길거리를 점령하지도 않았습니다. 정부는 우리를 탄압하여 불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부에 동의하지 않고 정부 정책에 반대해 행동하는 사람은 투옥하고 벌금을 부과하고 협박을 받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과 기업이 벨라루스를 떠났어요. 왜냐구요? 우리는 러시아와 같은 독재정권 하에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중 점령을 받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어찌 보면 러시아보다 더 나쁜 상황입니다. 우리 안의 독재자와 외부의 독재자 , 독재자가 둘입니다.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푸틴의 공범이라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거든요.

윤: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은 러시아를 돕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소피야: 솔직히 이 질문의 답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만약 있다 해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형태로 러시아를 돕는지를 알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요. 루카센코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고, 그의 정책을 선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요? 그들은 아마도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주머니를 걱정하고 있는거 아닐까요.

이 전쟁에 유럽과 나토의 이익도 있겠지만…

윤: 벨라루스 국민으로서 당신의 정부가 국익을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했다고 생각하나요?  

소피야: 벨라루스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게 행동해야 했죠. 루카셴코의 정부는 전쟁의 공범자가 되지 말고, 전쟁에 반대했어야 해요. 정부는 이전에 벨라루스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적도 있어요.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국민은 결코 형제와도 같은 우크라이나 국민과 싸우고 싶어 하지 않아요. 우리의 정부라면 반드시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어야 해요. 정부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이익을요.”

윤: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소피야: 불행히도 모두에게요. 정부와 대통령, 이런 정부를 선택하고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침묵했던 국민들에게 책임이 있어요. 우리 벨라루스인은 2020년에 큰 목소리를 냈지만 아무 것도 얻어 내지 못했어요. 그 후로 ‘암묵적인 동의’라는 말이 쉽게 쓰이게 된 것 같아요.”

윤: 누군가는 이 전쟁의 책임이 동쪽으로 확장을 계속하고 있는 나토(NATO)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소피야: 글쎄요. 광범위하게 본다면, 이 전쟁에 유럽과 나토의 이익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해 깊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각 국가의 정책이나 세계전략에 대해서 논의해 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인간의 삶이 가장 걱정스러워요.

전쟁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

윤: 누군가는 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소련이나 제국을 꿈꾸는 푸틴의 망상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소피야: 나는 푸틴의 증상은 국가적 망상이라기보다 노인의 광기라 봅니다. 게임 속에서 전능한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속에서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잃을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노인이 어떤 게임을 벌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인간적인 기쁨이 없는 사람이 기억에 남을 만한’ 무엇인가를 역사에 흔적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거라 생각해요. 거기에는 인간적인 것이 없죠. 탐욕, 권력에 대한 욕망, 역사에 대한 개인적인 야망. 그게 전부라고 봐요.

윤: 미국과 유럽이 이 전쟁에서 취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소피야: 그들이 러시아에 대항해 제재를 가하고 있는 점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러시아를 막고,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힘과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푸틴이 그것을 빨리 깨닫기를 바랍니다.”

윤: 이 전쟁은 푸틴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나요? 지금까지의 전쟁의 전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요?

소피야: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는 여러 각도에서 수립해 놓은 나름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을 거에요. 그러나 전쟁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러시아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 중 가장 큰 것은 전 세계의 강력한 반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가 지금처럼 강력한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현재 러시아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군인이 죽고 있어요. 그것보다 더 큰 손실은 젊은 인재가 나라를 떠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것은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벨라루스도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동의어 아냐

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한 번도 러시아와 별개의 민족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푸틴의 말은 벨라루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가능할 텐데요. 푸틴의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소피야: 러시아는 소련의 일부였던 모든 나라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별도로 존재하며, 벨라루스가 러시아와 동의어가 아니듯,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동의어가 아닙니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는 슬라브 민족일 뿐이에요. 비슷한 뿌리와 공통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역사일 뿐.. 현재 각각의 민족은 자신들의 나아갈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벨라루스는 오랫동안 소련의 일부였지만, 그 이전에는 폴란드이기도 했습니다.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거에요. 30년 동안 우리는 독립국가였습니다. 공통의 역사를 가졌고, 민족적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우리는 벨라루스인이며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는 아닌 거에요.

전문인력 나라 떠나 전쟁 뒤도 경제 암담

윤: 이 전쟁이 벨라루스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소피야: 영향이요? 후! 물론 끔찍합니다. 정부 때문에 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어요. 서구의 제재로 인해 환율이 급등하고, 상품의 가격이 치솟는 중이에요. 국민들이 인는 피해가 직접적이고 막대합니다. 가장 나쁜 점은 산업의 일꾼인 전문 인력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고 있다는 거에요. IT 산업은 그야말로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있어요. 조금의 과장도 없는 현실이에요. 전쟁이 끝나도 이미 떠난 전문가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정말 두렵고요. 벨라루스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 중 하나는 등록할 수 있는 학생이 없어서 대학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젊은 인재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누가 이 나라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을까요?

벨라루스 여권 (사진:셔터스톡)

러시아 문화와 언어 공유하는 사람들 침략자로 간주할 것

윤: 이 전쟁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슬라브 문화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소피야: 불행히도 러시아어권 문화는 이미 낙인이 찍혀 버렸습니다. 제 친구 중에 조지아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어요. 조지아 사람들은 우크라이나를 100% 지지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러시아인을 몹시 싫어합니다. 그곳에서 러시아 여권 소지자는 은행 계좌를 열 수도 없고, 집을 빌리기도 어려우며, 많은 공공시설에서 거부당하고 있어요. 서유럽에서도 러시아어 사용자에 대한 반감이 일어나고 있어요. 사람들은 러시아 문화와 언어, 심지어 러시아 제품까지 거부하고 있어요. 제가 지금 있는 곳에서 어떤 사람에게 ‘혹시 러시아어 할 줄 아세요?’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불행히도 할 줄 압니다.” 불행히도!!! 이런 러시아와 러시아어 거부 현상은 벨라루스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전쟁 후에도 세상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러시아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을 침략자로 간주할 거에요. 러시아에 속한 모든 것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깝습니다.

벨라루스 정권 무너지거나 극적으로 변해야

윤: 이 전쟁은 당신과 벨라루스인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요?

소피야: 불행히도 벨라루스 국민의 미래와 마찬가지로 나의 미래도 불확실해요. 나를 포함한 많은 벨라루스인이 망명 중이며, 언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거든요.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어야 해요. 적응하려 노력은 하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차별의 표시인 파란색 벨라루스 여권을 낙인처럼 들고 다녀야 하겠지요. 벨라루스에 남아 있는 벨라루스인의 미래도 예측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에요. 두 독재자의 이중 점령 상태에 있고 경제사정도 몹시 어려워요. 정권이 무너지거나 극적으로 변하는 수밖에 없어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정상적인 삶을 회복하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릴거라 생각합니다.

윤: 러시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소피야: 제가 예언가가 아니라서 무엇이라 말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푸틴의 러시아에 미래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말은 할 수 있겠네요. 전쟁은 확실히 끝나겠지요. 언제가 될지 모를 뿐. 푸틴 역시 죽을 겁니다. 이 또한 언제가 될지 모르고요. 하지만 그 동안 사람들은 고통을 겪을 거에요. 경제를 포함한 모든 상황이 이미 고통 받고 있어요. 분명 언젠가는 변화가 있을테지만, 저는 현재의 끔찍한 상황이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라 믿어요.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각성해야 합니다.

윤: 지금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소피야: 민스크에서 친구들을 만나 포옹하고 싶어요.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고, 같이 영화를 보거나 운동을 하고 싶어요. 저는 운동을 아주 좋아해요. 배구를 특히 좋아하고, 사이클도 즐겨 탑니다. 지금 나에게는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공포심과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런 스트레스 없이 친구들과 마음껏 자전거를 타고 스비슬로치 강변과 민스크 거리를 달리고 싶어요.

애초에 원고를 청탁한 피렌체 식탁의 발행인은 균형 잡힌 의견을 듣기 위해 한 나라에서 두 명의 글을 실어 보자고 했다. 원고료도 그에 따라 책정되었다. 소피아 모로조바와의 인터뷰를 마친 후에 나는 벨라루스에서 다른 의견을 찾아 글을 요청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벨라루스에 배정된 두 명 분의 예산은 이번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임해 준 소피야에게 모두 전달되어야 한다’라고 발행인을 설득해 볼 예정이다.


글쓴이 윤영호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증권사, 보험회사,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고, 카자흐스탄 증권사 겸 자산운용사인 세븐 리버스 캐피털(Seven Rivers Capital)에서 대표로 일했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자산을 운용하며 런던 라이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 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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