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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욱 칼럼] 러시아와 구소련권 국가들의 잃어버린 30년  

By | 2022년 4월 15일 | 국제, 미분류, 정치

✔ 소련 해체 후 독립국가연합(CIS) 결성 등 구소련권 지역 통합 꾸준히 추진

경제적 지원 능력 약화, EU 형성과정에서 독일만큼의 리더십 행사 못해   

구소련권 독립국가간 분리 갈등, 영토 분쟁에 무력 개입해 인심 잃고 관계 악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러시아 안에서도 희귀하지만 신중한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러시아 내 신중론, 균형론의 대표는 안드레이 코르투노프(Andrey Kortunov). 역사학자이며 국책 싱크탱크인 러시아 국제문제 위원회(Russia International Affairs Council)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러시아와 미국에서 공부했으며, 미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경력도 있다. 안드레이 코르투노프는 러시아가 서방세계와는 다른 독립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서방세계와 협력하는 것이 러시아에게 이로운 길이라고 주장하는 논조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개인적으로는 RIAC 내에서 가장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로 인식하고, 신뢰하며 읽는 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코르투노프는 러시아의 침공은 ‘러시아에게 잃을 것은 많고 얻을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다.

소개하는 칼럼은 RIAC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으로 기본적으로 러시아의 시각을 담고 있으며,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글이다. 러시아 내의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대단히 신중하게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으나 푸틴이 언론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이런 정도의 글이라도 실린 것은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RIAC는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던 2011년 창립돼 운영되고 있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외교 연구기관이다. 

#. 이하 일부 지엽적인 부분은 제외한 코르투코프의 게재문 전문 번역임. 의역한 부분이 일부 있으며 괄호(*) 부분은 본문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필자의 해설임을 밝힌다. 

​역사적으로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제국의 해체는 대개 대규모 폭력과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동반했으며 그 과정이 수십년간 지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의 해체는 상대적으로 짧고 평화로웠다. 물론 1990년대 타지키스탄, 나고르노-카라바흐, 압하지야, 남오세티야, 트란스니스트리아(몰도바 바로 옆의 국제적 미승인국가), 체첸, 다게스탄 등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하지만 구소련 영토 내에서 발생한 이러한 무력 충돌들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동결’됐다.

​구소련 해체 후 이 지역에 각종 암울한 예언들- 핵무기 확산, 대량 난민 발생, 인종 청소 확산, 종교적 근본주의 발흥, 국제적 테러리즘 등-이 제기되었으나 이는 소련 해체 후 상당 기간 현실화되지 않았다. 소련이라는 제국의 해체는 치밀한 사전 준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단계에서 상당 부분 평화적이고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특이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제시한다. 특히 구소련의 지배층인 노멘클라투라가 개인의 이익을 체제에 대한 충성심보다 우선시하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인 점이 거론된다. 

(*역자주-페레스트로이카 와중에 크게 한탕 할 기회를 포착한 노멘클라투라들이 소련 붕괴를 묵인했다는 주장. 예컨대, 페레스트로이카로 시장경제가 점진적으로 도입되자 노멘클라투라들은 국가 소유의 산업체들을 민영화해 큰돈을 벌려 했다. 따라서 노멘클라투라같은 지배층의 이익과 체제 붕괴가 상충하지 않았기에 소련 붕괴 시에 커다란 충돌이 없었다는 것.)

2016년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레닌 동상이 철거되는 모습. (사진:셔터스톡)

구소련권 해체는 1991년에 끝난게 아니라 시작일뿐 

또 다른 이유는, 소련은 중앙의 대도시들이 식민지화된 주변부를 착취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중앙이 자신들의 발전 전망을 저해하면서까지 주변부를 지원하는 시스템이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엘리트들은 주변부를 ‘자산’이 아니라 ‘부채’로 인식했다. 

(*역자주-예컨대, 중앙아시아 5개 ‘스탄 국가’-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은 소련에 편입되기 이전에 완전 미개발 지역이었음. 소련은 전국토의 발전 상태를 비슷하게 끌어올리는 걸 주요한 역점사업으로 삼았으며 가장 열악했던 5개 스탄 지역에 특별 개발 계획을 세웠음. 이들 지역에서 걷은 세금은 95% 이상 해당 지역에 재투입했음. 1950년대에 5개 스탄 지역의 평균 임금은 러시아 중심부의 절반 이하였으나 1980년대 후반에는 95% 이상으로 따라잡았음. 그 결과 중앙아시아 지역은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다. 반대로 러시아인들은 ‘우리가 왜 쟤들을 먹여 살려야 해’라는 계산적 사고를 한 것임. 그런 상황에서 러시아 국민들은 구소련 지도부가 해체를 통해 주변부를 분리하는데 대해 거부감이 적었다.)

위의 설명들에 덧붙여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소련은 사실 1991년에 붕괴된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길고 복잡하며 모순적인 제국 해체 과정에 들어섰을 따름이다. 30년 전 구소련의 각 공화국 지도자들은 소련의 사회, 경제, 정치적 기구들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독립국가들을 창조하려는 목표를 공언했다. 하지만 새로운 국가성(new statehood)을 건설하는 과정은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현재진행형이다.

오랜 기간 동안 구소련의 지역들 가운데 발트 3국을 제외한 지역들은 경제적 연결, 교통 및 유통 인프라, 교육 표준, 과학, 문화, 그리고 정치 경제 엘리트들의 사고방식 등에서 사실상 단일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 단일체가 사라지려면 또 한 세대가 지나야 한다. 그러므로 소련 제국의 해체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으며 구소련 지역에 등장한 국가들은 제국 해체의 여러 위험 요소들을 아직 겪고 있다.

소련 해체를 브렉시트와 비교해볼 수 있다. 영국은 2016년에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4년 정도가 지난 후인 2020년 2월 영국이 EU에서 공식 탈퇴했다. 이 4년간은 수많은 격렬한 협상들과 치열한 정치적 공방, 그리고 전문가들의 쉴 새 없는 컨설팅, 여러 타협안에 대한 검증의 연속으로 가득 차 있다. 참여자들의 상호 간 권리와 의무에 대한 수많은 서류가 준비되었고 이 권리와 의무를 구체화하는 작업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소련 해체 후 CIS(독립국가연합)가 결성되는 데에는 매우 짧은 시간이 소요됐다. 벨라베자 협약(The Belovezh Accords)에서 CIS 초안이 나온 후 최종 사인까지 불과 며칠 만에 이뤄졌으며, 14개 조로 이뤄진 협약문은 단지 2페이지 분량이었다. 협약문은 매우 모호하고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체약 당사국들이 임의로 해석할 여지가 많았다. 브렉시트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두쪽 합의문으로 갈라선 뒤 속으로는 “곧 돌아올 것” 기대 

브렉시트는 다국적 통합 프로젝트에서 단지 한 나라가 탈퇴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벨라베자 협약은 다른 민족적, 종족적, 종교적 집단들이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살았던 역사를 질서 있게 허무는 작업이었다. 여기에 참여한 구소련의 공화국들은 자신들이 성공할지에 대해 전혀 장담할 수 없었다. 모스크바에서는 오랫동안 이런 오만한 분위기가 존재했다. “그들(CIS 소속 공화국들)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조만간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어쩌면 또 다른 상황에서는 이들이 마치 EU나 그 전신인 EEC(유럽경제공동체)처럼 통합을 이뤄낼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긍정적 전망은 보리스 옐친 정부나 초기 푸틴 정부에서 확실히 인기가 있었다. 

오랫동안 러시아 정부는 CIS를 ‘고상한 결별’이 아니라 ‘새로운 통합의 단초’로 여겼다. 러시아에게 구소련 지역을 통합하는 것은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복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이는 또한 러시아가 빠르고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30여년 동안 ‘구소련 지역 통합’이라는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유는 다양하다. CIS의 구성원들이 너무 이질적이라는 점, 서방세계가 러시아와 CIS 국가들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 러시아와 나머지 국가 간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비대칭적이어서 상호 이익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는 점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또한 신생독립국가의 엘리트들 사이에서 러시아가 ‘빅브라더’가 될 거라고 우려한 정치심리적 트라우마 역시 하나의 이유로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2008년 조지아, 2014년 우크라이나 무력 개입의 재판

구소련국가에의 무력 개입은 러시아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되지 않아

상호 책임지고 부담 질 수 있는 안정적 관계 정립이 최우선 과제

 

사회경제적 발전 돕지 못하고 정치적 통합만 요구, 인심 잃어  

하지만 러시아가 ‘구소련 지역 통합’에 실패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러시아가 주변 국가들에게 효과적인 사회 경제적 발전 모델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2000년대 중반 이후 러시아 정부는 이 지역의 사회-정치적 ‘안정’을 사회-경제적 ‘발전’보다 더 우선시해왔다. 그 결과 CIS 국가 간의 사회 경제적 역동성이 사라졌다. 한마디로 1960~70년대 EEC 통합 과정에서 독일(+ 부분적으로 프랑스)이 주변 국가들에게 했던 리더십을 러시아는 CIS 국가들에게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역자주-독일은 주권 침해와 특정 경제 부문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유럽이 단일시장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주도했다. 또한 통합 과정에서 프랑스와 영국 간 경쟁과 대립을 평화적으로 중재하는 역할을 지속. 하지만 러시아는 주변 국가들에게 경제적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것 없이 정치적 주도권만을 유지하려는 행태를 보여왔다는 차이가 있다.)

지난 30년간의 경험을 통해 유라시아 경제를 끌고 나가는 원동력의 역할은 러시아의 능력 밖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게다가 러시아는 CIS 국가들을 포함해 유라시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두고 서쪽으로는 EU, 동쪽으로는 중국, 남쪽으로는 터키와 경쟁하는 상황이다. 이 경쟁 과정에서 모스크바는 서서히 입지를 잃어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립감과 안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미지:셔터스톡)

안보 보장, 값싼 에너지 공급, 권역 내 노동시장 개방 등 다양한 유인책 구사    

모스크바는 지난 30년간 이 지역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영향력 증진을 도모해왔던가?
첫째, 러시아는 이 지역 국가들에게 안보를 보장하는 주체로 자임해왔다. 하지만 압하지야+남오세티야 (조지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루한스크 인민공화국 (우크라이나),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 나고르노-카라바흐 (아제르바이잔 vs. 아르메니아) 등 미승인 국가들의 문제에 발목을 잡혀 있다. 이 미승인 국가들의 문제는 러시아가 주변 국가들 및 서방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는데 상당한 부담거리로 작용한다. 

(*역자주- CIS 역내 국가들 가운데에는 여러 분리주의 갈등 및 영토 분쟁이 존재한다. 러시아는 이 문제들을 원만히 처리하는데 실패해왔고 이 과정에서 주변 국가들과 관계가 멀어졌다. 한쪽 편을 들면 다른 한쪽과는 원수가 되는 것이므로.. 특히나 우크라이나 경우처럼 러시아가 분리주의 세력과 한 편이 될 경우에는 주변 국가가 러시아를 안보 보장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안보 위협 주체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둘째, 러시아는 주변 국가들에게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 일부 다른 품목의 수입 가격에 대해 특혜를 제공했다. 이 정책은 상대적으로 효과를 거둬왔다. 하지만 이 역시 2010년대 들어 기존의 ‘생산자 시장’이 ‘소비자 시장’으로 대체되면서 점차 러시아의 에너지 할인 제공이 덜 중요해졌다. CIS 국가들을 비롯해 세계 각국은 클린에너지로 눈을 돌렸고, 러시아 에너지 기업들은 더 이상 추상적인 국가 이익이라는 미명하에 구체적인 기업 이익을 손해 보려 하지 않게 되었다. 

셋째, 러시아는 노동시장을 포함해 이 국가들이 러시아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도록 만듦으로써 주변 국가들을 끌어들이려 했다. 이 정책은 2000년대 러시아 경제가 빠른 성장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CIS 국가들 입장에서는 자국의 소비자와 노동력을 러시아에 내보내고는 자신들의 소비자와 노동력은 다른 먼 곳으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노력들조차도 더 이상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됐다는 점이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러시아 경제는 역동성을 잃고 세계 평균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장 지체 현상을 보였다. 반면 CIS 국가들은 러시아를 떠나 대안시장을 개발하려 애썼다. 이들은 중국, EU, 남아시아, 중동 등 세계 여러 경제권과 협력하며 점점 더 경제 교류를 다변화하고 있다.

넷째, 러시아는 오랫동안 유엔안보리, G8, G20 등의 국제기구에서 CIS 국가들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와 주변국들의 이익은 서로 일치하지 않고 엇갈리게 되었다. 국제기구에서 CIS가 연대하여 단합 투표를 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이들 간 이해 충돌은 점점 더 잦아졌다. 

서방의 경제 제재 이후 CIS 국가들은 EU, 중국 등과의 경협에 더 눈길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이외에도 CIS 유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할당 등 다른 유인책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모든 유인책은 궁극적으로 지대(地代)추구적인 러시아 경제의 한계로 인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4년 이후 서방이 부과한 경제 제재로 인해 러시아 경제가 점점 뒤처지는 상황에서 중국이나 EU 등은 CIS 국가들에게 더 매력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게다가, CIS 국가들의 새로운 민족정체성의 형성은 러시아의 역사, 문화, 언어를 포함한 러시아의 정체성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가능하다. 러시아는 이들이 대안적인 민족사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타자(他者)’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시점에서 러시아의 주변국들에 대한 접근법이 어떻게 진화할지 명확한 그림을 그리는 건 매우 어렵다. 언젠가 옐친과 푸틴의 ‘이너써클’ 안에서 논의된 비공개 자료들이 공개되면 이 이슈에 대한 폭넓은 분석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2008년 조지아에서의 전쟁과 그 이후의 사례는 러시아가 주변 국가들에 대한 초기 전략이 변했음을 보여준다.

조지아로부터 분리 독립한 두 지역(압하지야와 남 오세티야)을 러시아가 승인함으로써 러시아와 조지아 간의 관계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 틀어졌다. 이후 어떤 조지아 정권도 영토의 5분의 1이 상실되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만일 조지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향후 남 코카서스 지역을 러시아의 리더십 아래 재통합하는 일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 동안 러시아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보다 명확한 상징적 지표이다. 2014년 러시아는 크리미아에서 신속한 군사작전을 전개했으며 우크라이나로부터 떨어져나와 독립을 선언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신임 정부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거친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러시아의 이 모든 행동은 향후 장기간에 걸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역사적 필연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분명한 시그널이었다. 따라서 2014년의 사건은 구소련 지역의 재통합을 위한 러시아의 모든 계획이 막을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이후 러시아와 구소련 지역 국가들과의 관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CIS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독자적으로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았다. 반면 러시아는 주변 국가들에 대한 직간접적 경제 지원을 줄이고 제3자와의 교역에서도 CIS 국가들과 냉정하게 경쟁했으며 교역과 투자 영역에서 거칠게 러시아의 이익을 방어했다. 

상호 무역의존도 10% 미만, 경제적으로는 딴 살림, 정치도 비슷해질 수밖에 

물론 다자적 경제교류 프로젝트는 계속되고 있다.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이 그것이다. EAEU 내에서 러시아의 중요성은 제한적이다. 독일의 대외교역 가운데 EU 비중이 60%에 달하지만, 러시아의 대외교역에서 EAEU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이다. (*상호의존적이지 않은 경제구조를 말하는 것임) 그런데도, EAEU는 여전히 유라시아 경제 통합을 위한 중요한 프로젝트로 남아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한 것은 구소련 지역에 대한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으며, 보다 실용적인 접근 방식과는 명백히 반대되는 것이다. 크렘린 지도부의 눈에는 서구 지향적인 우크라이나가 NATO와 긴밀하게 공조하는 것이 러시아의 안보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존재 자체에 중대한 도전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군사적 수단에 의해 재조직하려는 시도는 합리적 비용-편익 분석상으로 러시아에게 잃을 것은 많고 얻을 것은 별로 없는 선택이다. 현재 러시아 정부가 택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분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러시아가 지난 30년에 걸쳐 자신의 제국적 유산과 더불어 분투해왔던 장편 드라마의 마지막 장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30년에 걸친 러시아의 대외정책 결과는 러시아가 지역 맹주가 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능동적인 글로벌 파워로 변모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최근 러시아의 세계화는 러시아가 주변 국가들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건설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실패한 데 따른 정치적 보상의 성격이 짙다. 그런데도 주변국들과 그러한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이른 시일 내에 러시아의 최우선 대외정책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 목표를 이루는 것은 1991년보다 지금이 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러시아의 대외정책이 다른 지역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해봤자 평가절하되고 말 것이다.


글쓴이 박정욱은
직업은 라디오 PD이나 역사책을 읽는 것이 최고의 취미인 역사덕후. 특히 중동과 러시아 인도 등 ‘아시아의 서쪽, 에덴의 동쪽’이 어찌 돌아가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종교와 정치가 만나는 역사를 흥미롭게 공부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국제 정치의 핵심에 서 있는 중동에 대한 안내서가 부족하다고 느끼던 중 직장이 6개월간 장기파업에 들어가면서 시간이 주어진 것을 계기로 중동 역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2018년에 <중동은 왜 싸우는가?>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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