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미디어가 ‘메디치 보라(보이는 라디오)’를 시작했다. 시작 프로그램으로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를 초대, 세계정세와 한반도를 주제로 연속 대담을 갖고 있다. 앞으로 2-3년 정도까지의 세계정세를 한반도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프로그램이다. 미중관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새 대통령과 한반도 정세 등 3가지 주제를 6회에 걸쳐 들어보게 된다. 4월 4일 메디치미디어 스튜디오에서의 첫 대담에서 문정인 교수는 1971년 키신저의 비밀 방중 이후 미중 관계가 관여, 협력과 경쟁에서 점진적으로 대립과 갈등으로 전이해 온 역사를 설명했다. 다만 현재는 전면적인 대립과 갈등이라기보다 패권 경쟁의 큰 틀은 유지되지만 분야별로 전략적 경쟁이 진행되는 중간지점 쯤으로 해석했다. 이번 칼럼은 그 첫 대담분이다. 진행은 CBS 베이징 특파원 출신인 민경중 외국어대 초빙교수(민소장)와 메디치미디어 김현종 대표(메대표)가 맡았다.  [편집자 주] 

✔ 중국, 2035년 강군몽(强軍夢), 2049년 선진국 진입 ‘중국몽’이 목표  미국, 이러한 계획은 아태 지역 패권, 세계 패권 구축 의지라고 해석✔ 코로나 초기, 미국 주도 팍스 아메리카나, 중국 주도 팍스 시나카 구상  3년차 맞아 패권이나 질서의 변동과는 무관하다는 현상유지론으로 귀착 ✔ 미중관계 50년, 수교-천안문-WTO가입-트럼프 강압-바이든 동맹외교   냉온탕 교차하며 협력에서 경쟁으로 대결에서 경쟁으로 오가는 형국✔ 미국엔 대국끼리의 강한 메시지 주고받고, 주변국엔 친선·혜택 강조  중국의 메시지 전달능력 미흡으로 주변국은 ‘위협과 눈치 느낀다’

 

▶[메디치 보라- 문정인 특집편] 유튜브에서 시청하기 :  https://youtu.be/309APB4HBhs

민소장:외교안보 통일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한반도 주변국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해왔고 국제외교 정치계의 원로이자 알파고라고 할 수 있는 , 연세대 명예교수인 문정인 선생님 모셨습니다. 메디치 보라 시청자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문정인: 김현종 대표를 오래 전부터 아는데, 메디치미디어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해서 아무래도 제가 축하를 해줘야 될 것 아닌가 그런 뜻에서 왔습니다. 아주 좋은 사업인 것 같고요. 그리고 제가 듣기에는 시청자들도 아주 탄탄하다고 얘기 들어서 나왔습니다.

민소장: 요즘 선생님께서는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떤 부분입니까?

문정인: 제가 맡은 세종연구소 잘 됐으면 하는 게 일차적인 관심이고요. 그다음 국제 정치 시각에서 보면 한반도 문제가 상당히 걱정스럽죠. 새 정부가 들어와서 잘 하길 바랄 뿐인데, 한반도 상황도 녹록치가 않고. 두 번째로 우리 문명과 관련된 게 미중 문제니까 미중 간의 대립과 갈등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도 상당히 관심이 많습니다. 그다음 우크라이나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 대해서 제가 무관심할 수는 없고, 그런 일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메대표: 사실 오늘 선생님을 모신 것도 그런 것들에 대한 말씀을 좀 듣고 싶어서인데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자 벌써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시작하는 세계 경제의 대폭락, 이런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습니다. 

민소장: 많은 사람들이 지금 코로나 이후에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 궁급해 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미중 패권경쟁, 그다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한반도 이 세 가지가 많은 이들의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천천히 하나하나씩 말씀을 좀 들어보려고 모셨습니다. 저희가 메디치 보라의 런칭 특집으로 3부작을 준비했거든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세계와 한반도’라는 주제로 3부작을 마련했는데 오늘 첫 시간은 ‘미중 패권 경쟁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패권은 능력-의도-의지 다 가져야

문정인: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어떤 사람들은 패권경쟁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전략경쟁이라고도 하는데요. 저는 두 개를 결합해서 봐야 한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있어서 소위 패권경합을 하는 것이고, 만약 거기에서 중국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면 자연히 세계적 수준에 있어서 미국과의 경합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러니까 미국과 중국의 경합은 패권경합이고 그 방법은 전략적 경쟁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패권 개념을 너무 쉽게 쓰는데요. 패권이라고 하는 것은 영어로 프리펀드런스 파워(preponderance power)라고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한 국가에 힘이 집중되는 현상을 말하지요. 인류역사상 그렇게 (완전한) 패권을 찾는 건 쉽진 않아요. 미국이 패권을 가졌다고 얘기하는데, 가령 20세기 초 영국이 패권을 가졌다가 이제 미국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게 처음에는 완전한 패권은 아니거든요.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미국 패권 시대가 왔다고 하는데, 그것도 자유세계의 패권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때도 공산세계는 소련 중심의 블록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패권을 가진 국가가 리더십을 발휘해 패권적 리더십을 가지고 지배적으로 갈 수 있거든요. 그걸 헤게모닉 도미넌스라고 해서 그 패권적 지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특정 국가가 패권이 되느냐 안 되느냐라고 하는 게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닙니다. 물론 거기에 첫 번째 필요조건은 힘이죠.

힘의 배분이 특정국가에 집중이 되는가, 미국에 집중이 되는가 인데, 만약 전 세계 GDP의 50% 이상이 미국에 집중이 된다면 미국이 패권국이라고 얘기를 할 수 있겠죠. 경제력이 있으면 군사력이 뒤따르고, 여기에 요즘은 소프트파워까지 넣어서 그 국가가 정말 수프리머시(supremacy)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일 초대강국이 되느냐의 여부는 그게 중요한 지표가 되고, 두 번째로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세계의 패권국가가 될 의도(intention)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의도가 있다고 다 되는 건 아니에요. 정치 지도자가 패권적인 역량과 의도를 가지고 정말 세계 패권국가가 되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있느냐도 관건입니다. 그래서 세 가지를 봐야 됩니다. 능력(capability)과 의도(intention)와 의지(will) 세 가지를 갖고 봐야 되거든요.

미국 주도의 군사, 무역, 금융질서 완비하며 패권국가 등장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그 세 가지를 다 갖추고 있었죠. 능력이 있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서 유럽과 일본 다 사실상 어려운 상황일 때 미국 경제만이 살아남아 있었으며, 가장 강한 군대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동맹체제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죠. 나토(NATO)도 만들고 그다음에 중동에는 센토(CENTO)라고 하는 걸 만들었으며, 동남아에서는 시토(SEATO)를 만드는 한편, 미일, 한미 동맹 체제를 만들고, 이어서 남태평양에는 호주, 뉴질랜드와 앤저스(ANZUS) 조약기구를 만들어요. 안보분야에 있어서 이렇게 소련을 봉쇄하기 위한 포괄적인 동맹체제를 구축했죠. 

경제도 마찬가지예요. 미국이 국제 경제의 기본적인 규범과 원칙과 규칙과 절차를 다 만들어 놨습니다. 시작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인 가트(GATT)였습니다. 무역 체제를 잡고 보니까 돈이 돌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브레튼우즈 통화체제라는 걸 만들어서 달러를 기축화폐로 하고, 국제통화기금 IMF를 만들어 국제 수지가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게 한 다음, 당시 전쟁이 끝난 다음에 전후 복구를 해야 되니까 전후 복구를 도와주기 위해 월드뱅크(IBRD→WB)라는 걸 만들었어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역량도 있었고, 의도도 있었고, 그리고 정치적 의지가 있기 때문에 패권국이 되어 이러한 국제 질서를 만들었죠. 

그래서 이걸 보면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요. 미국이 왜 만들었지? 그 이론이 두 가지예요. 하나는 패권국이 되면 이타적(altruistic)이어야 한다. 그래서 세계질서를 만드는 게 미국에도 좋고 다른 나라에도 좋으니까 그런 질서를 만든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그게 아니다. 미국의 속셈을 위해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그런 걸 만드는 거라고 보는 시각입니다. 관점이 다른데, 결국 미국이 전후에 안보질서와 경제질서를 만들고 보니 미국도 혜택을 많이 보고 또 한국, 일본, 유럽 국가들도 혜택을 많이 받아서 미국은 소위 유순하고(benign), 자애로운(benevolent) 패권적 리더십이 아니었느냐는 얘기를 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미국의 패권은 자유 서방에 한정된 반쪽짜리였지만, 그 반쪽 패권 하에서 능력도 있었고 의도도 갖고 있고 의지도 있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코로나 이후 세계 질서에 관한 5가지 시나리오

민소장: 시청자분들께서는 문을 살짝만 열었을 뿐인데 지난 100년 미국 패권의 역사가 마치 필름처럼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셨을 겁니다. 우리가 지금 포스트 코로나라고 하는 상황에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나뉜다고 하는데요. 코로나19 이전 미국의 패권과 그 이후에 미국이 보여준 여러 가지 모습들에 혼란스러운 점이 있거든요. 이 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문정인: 뉴욕타임스에 토마스 프리드만이 칼럼을 쓰기를, 예수님 이전과 이후를 해서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누었듯이 이제 비포 코로나, 에프터 코로나, 그래서 BC AC라고 하는 개념으로 나눈다 하던데요. 제가 보기엔 과장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코로나가 발생한 지 한 3년이 됐는데 과거와 똑같은 것 같아요. 제가 쓴 책에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질서를 다섯 가지로 예측했었죠. 하나는 키신저 박사가 2020년 3월에 월스트리트 저널에 쓴 칼럼에서 ‘코로나가 장기화되면 새로운 중세가 생겨날 것이다. 나라마다 국경을 닫고 빗장을 걸어서 장벽을 만들 것이다. 소위 이제 폐쇄주의적인 정책으로 갈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어요.그리고 두 번째 시나리오는 2020년 3월, 4월 초기에는 미국은 괜찮았거든요. 그때는 중국이 어려웠지요. 그래서 ‘이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즉 미국 중심의 질서가 다시 살아난다’라는 시나리오가 있었구요.  

그러다가 2020년 8월 이후 중국은 코로나가 가라앉기 시작하고 미국이 창궐하게 되니까 이제 팍스 시니카(Pax Sinica),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올 수 있다는 예상도 나왔지요. 네 번째로는 캐빈 러드라고, 호주 총리 했던 사람은 ‘유엔 중심의 팍스 유니버설리타스(Pax Universialitas)라 해서 유엔 중심의 보편적 세계 질서를 다시 복원시켜야 된다’는 주장을 했죠. 

마지막으로 하버드대학에 있는 조셉 나이 교수나 지금 미국외교협회 회장 리차드 하스처럼 국제현실을 냉철하게 보는 분들이 ‘별반 차이 없을 것이다, 과거와 같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다섯 번째 시나리오가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가는 거 보면 코로나 사태가 큰 영향을 못 주는 것 같아요. 미중 대결 구도는 계속되고 있지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어났어요. 

이런 걸 보면 코로나가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지만 세계질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 것 아니냐 이렇게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백신의 개발 때문에, 그러니까 인류운명이 갖는 어떤 기술적 창의력이라고 하는 게 백신을 만들어내고 백신이 코로나를 가라앉히기 시작하면서 과거와 같은 그런 국제관계로 가는 것 아닌가 이렇게 보입니다.

코로나 19로 사회경제부터 대 변화 시작돼, 어디까지 갈까 

메대표: 정치나 국제관계는 그렇겠지만 백신의 개발을 필두로 하는 과학과 의학의 발전에 따른 삶의 변화, 또 기후 위기로부터 시작되는 여러 가지 노력들, 그게 이제 탄소 배출까지 이어지는데, 정치·국제는 기조가 그대로이지만 나머지 분야들 경제, 과학, 문화생활 이런 것들은 많이 바뀔 것 같습니다.

문정인: 그건 이미 많이 일어나고 있죠. 우선 제일 중요한 게 정치 철학적 논쟁, 그러니까 코로나 사태가 났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자유방임처럼 시민들에게 맡겨라, 국가가 나서서 아주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 등등 제각각입니다. 영국의 공리주의적 시각에서 죽을 사람은 죽고 남은 사람들 집단 면역을 통해서 나가자고 하는 방법도 있었지요. 스웨덴, 영국, 이탈리아가 초기에 그런 방식을 택했습니다. 

또 한국은 공동체주의를 강조하면서 나가는(exit) 방식을 택했는데, 이런 것들이 지금은 한국 정치에서도 논쟁이 있지 않습니까. 국가가 방역과 관련해서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야 하느냐는 논쟁입니다. 미국은 더 심하고요. 그래서 한편에서는 코로나 사태에서 국가와 개인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논쟁이 나온 거고. 

경제문제 같은 데도 사실 2020년만 하더라도 이게 대공황이 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어요. 1930년대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이 왔고, 그다음에 2008, 2009년에 대불황(Great Recession)이 왔고, 이제야말로 또 다른 공황이 오는 거 아니냐 하는 것데, 그건 어떻든 간에 이제 극복이 된 것 같아요. 양적 완화를 통해서, 거시경제적 조정을 통해서 극복이 되긴 하는데, 이제 제일 걱정이 되는 문제는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즉 세계 공급망에 있어서 차질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면서 세계화와 이에 따르는 경제적 상호의존이 항상 축복만은 아니고 저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사회적 거리를 두는 건 좋은데, 재택근무를 오래 하다 보니까 사회적인 인터랙션이 없게 되지요. 한국만 해도 큰 변화가 있지 않습니까. 보통 우리 문화라고 하는 게, 근무 시간이 끝나면 어울려 뭐 선술집 가서 술 마시고 함께 밥 먹는 게 낙인데, 그게 사라졌지요. 

이런 것들처럼 엄청난 사회적인 충격을 주는 것 아닌가 생각되죠. 결론적으로 코로나 19가 국제 정치에 큰 충격을 줄 것 같아 보였지만 이 부분보다는 경제 사회적인 영향이 더 큰 것 아닌가 생각해요.

베이징 올림픽, 시진핑 입장에서는 도쿄 올림픽보다 성공적인 개최

민소장: 지난해에 쓰셨던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에서 바로 이 다섯 개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예측을 해주셨는데, 지나고 보니까 문 교수님의 그런 혜안이 참 맞아 떨어진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 얘기를 좀 더 해주셨으면 합니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 부분으로 조금 더 들어간다면 말이죠. 

우선 지난 베이징 동계올림픽 있잖아요. 결국은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 사람을 보내지 않았고 또 중국에서는 그 올림픽 자체는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단 말이에요. 이건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합니까.

문정인: 저는 미국을 포함해서 일부 서방 국가들이 동계올림픽을 보이콧 한 거, 옳은 처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스포츠를 정치화 시켜서는 안 된다고 보고요. 다행히 선수단이 갔으니까 과거 LA나 모스크바에서 올림픽할 때의 반쪽 올림픽은 면했지만. 아무리 중국이 밉다고 하더라도 스포츠를 정치화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민소장: 외교적으로 보이콧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결과물도 별로 좋지 못했다, 이런 말씀이군요.

문정인: 미국과 가까운 동맹인 프랑스가 거기에 동참을 안 했고요, 이탈리아, 독일도 동참하지 않았지요.

메대표: 메디치미디어에서 내는 <피렌체의식탁>에 중국통이라고 할 수 있는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가 기고한 걸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호주에 가서 호주 총리와 함께 회담하고 나서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은 좀 합당하지 않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국제적으로 물꼬의 흐름이 확 바뀌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에 한국도 어느 정도 연루가 된 건데 지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건 정치를 그렇게 엮는 거는 좀 온당치 못하다는, 실제 중국이 입은 타격은 별로 없나요.

문정인: 중국은 공산당이 뭘 하면 다 성공시켜야 해요. 그건 중국 공산당 세계에서의 당위론적 관성 때문에 그렇고. 그리고 내가 볼 때는 대성공이었어요. 신기록도 많이 나왔고, 부분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방영 안 된 부분이 있고, 미국에서 시청률이 저조한 부분이 있지만 중국 시각에서 보면 성공적이었습니다. 

중국이 그런 행사를 열 때는 세계를 대상으로 한 것도 있지만 중국 인민들을 하는 게 상당히 크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는 시진핑 주석의 입장에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몇 개월 전의 도쿄 하계올림픽하고 대조가 되지 않았습니까. 도쿄 올림픽은 정말 상당히 실패에 가까웠죠. 반면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사실상 관중도 동원했고, 중국이 무슨 손해를 본 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중국 중심으로 호주를 포함해서, 그렇게 보이콧 한 것이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하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관찰점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푸틴-시진핑 베이징에서 ‘우크라이나' 관련 무슨 말?

민소장: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에 하나가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푸틴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까? 직전에 회담도 했고요. 또 시진핑 주석이 아주 성대하게 대접을 했단 말이에요.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첫째로는 우크라이나 침공 얘기가 과연 그 논의 석상에서 있었을 것인가 굉장히 궁금하기도 했고요. 두 번째로는 어쨌든 올림픽 기간에 절대적으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시진핑의 요청에 결과적으로는 응했단 말이에요. 끝난 뒤에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문정인: 글쎄요 그건 확인할 수는 없는 거라고 보고요. 일부 언론에서는 결국에 시진핑 주석이 푸틴 대통령에게 동계올림픽 기간에는 우크라이나 침공 안 했으면 좋겠다 해서, 그래서 2월 24일 침공했다라고 하는데 그건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푸틴과 시진핑 정상 간에 그런 얘기가 오갔다고 하는 거에 대해서 저는 회의감이 좀 있습니다.

실무에서 얘기할 수는 있겠죠. 양제츠라든가 왕이 수준에서는 러시아쪽에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죠. 마치 북에 대해서 동계올림픽 기간에는 자제해 달라고 하는 메시지를 실무 수준에서 전할 수는 있겠지만.

메대표: 그런 경우에 워딩이 어떻게 될까요. 이를테면 시진핑 주석이 푸틴 대통령한테 ‘그 문제는 잘 좀 올림픽에 차질 없게 해주세요’. 뭐 이런 정도 에둘러서 얘기하나요?

문정인: 중국이 제일 좋아하는 용어가 평화와 안정이에요. 중국의 한반도 정책도 제1 원칙이 한반도의 평화 안정, 제2 원칙이 한반도의 비핵화, 제3 원칙이 대화와 외교를 통한 평화적 해결입니다. 그러니까 중국은 (중요한 상황에서) 상당히 원론적 얘기를 많이 하는데 뭐 (평화라는 단어를 넣어서) 충분히 텔레파시가 있었겠죠.

키신저 방중이후 고립 벗고 개혁개방으로 경제성장 나서

민소장: 그렇다면 이제 미중 갈등 문제로 조금 얘기를 넘어가 보겠습니다. 1979년에 수교 당시만 해도 참 좋은 분위기에서 이뤄졌고, 중국의 개혁 개방의 상당 부분, 중국이 경제적으로 올라가는 데 있어서 미국 제조업이 상당 부분 도움이 됐었지요.

이런 부분들에서 미중 갈등을 그동안의 역사적으로 한번 되짚어주시죠. 시점상 좋았을 때와 갈등과 지금의 관계를 좀 정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민소장: 그렇다면 이제 미중 갈등 문제로 조금 얘기를 넘어가 보겠습니다. 1979년에 수교 당시만 해도 참 좋은 분위기에서 이뤄졌고, 중국의 개혁 개방의 상당 부분, 중국이 경제적으로 올라가는 데 있어서 미국 제조업이 상당 부분 도움이 됐었지요.

이런 부분들에서 미중 갈등을 그동안의 역사적으로 한번 되짚어주시죠. 시점상 좋았을 때와 갈등과 지금의 관계를 좀 정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문정인: 중국의 역사가 1949년 내전에서 승리해서, 1950년에 한국전 참전을 하고, 그다음 1958년 대약진 운동하다가 아주 낭패를 보고, 1960년 1961년 거의 3천만 명 이상의 기아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한때 유소기(劉少奇)하고 등소평(鄧小平) 같은 실용주의 세력들이 당의 실권을 잡았다가 또 1965년에 문화혁명으로 당의 강경파들이 이 정권을 잡아요. 문화혁명이 1965년부터 1975년 10년 동안 계속이 됐고, 그다음에 모택동이 죽자 완전히 혼란 상태에 빠졌던 거죠. 그러다가 1976년에 화국봉(華國鋒)이 후계자가 되고 이 과정에서 등소평이 재등장하면서 1978년에 실권을 잡고, 1979년부터 개혁 개방을 시작해 나가거든요.

개혁 개방을 시작해 나가는데 여기서 미중 관계에서 볼 때 제일 핵심적인 건 1971년 7월이에요. 그때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하고, 닉슨의 방중을 준비하죠. 1972년 2월 21일부터 28일까지일 거예요. 그때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죠. 그래서 2월 28일에 상하이에서 주은래하고 상하이 커뮤니티를 채택합니다. 핵심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인정해 준다,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인정해 준다, 관계를 정상화하자, 그리고 핑퐁 외교라고 해서 스포츠 교류한다는 내용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내부 사정이 있었어요. 미국 공화당은 계속 대만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니까 수교가 잘 안됐습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 1979년 1월에 미중이 정식으로 수교를 맺게 됩니다.

1978년에는 미 의회가 타이완 관계법이라는 걸 통과시켜서, 중국 본토로부터 타이완이 군사 공격을 받게 되면 미국은 타이완을 지원해 준다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그다음에 바로 1979년 1월에 미중 수교가 이루어집니다. 수교 이후 관계는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한 축에서는 관여(engagement)라고 하는 협력과 경쟁이고, 다른 한 축은 라이벌 관계, 적대 관계입니다. 1980년대 같은 경우는 관여와 협력이 아주 정점을 이루죠. 그러다가 이제 1989년 천안문 사건이 나기 시작하면서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미중 관계가 냉각되고, 그러다 클린턴 행정부가 오면서 그때는 소위 관여와 확대 정책을 펴기 시작했어요. 중국에 대해서도 계속 관여해 나가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확대해 나가자, 그러면서 다시 협력 관계로 가기 시작했죠. 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경제가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죠.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미국 처지고 중국은 떠올라, 긴장 고조

그러나 2000년대 넘어오면서 달라지기 시작해요. 특히 2010년대부터 시작해서 그러니까 아마 여기 결정적 변수는 2008년 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에서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중국 경제가 뜨기 시작했고. 중국에서는 중국의 자존심이 살아나기 시작한 게 2009년 10년 이후부터라고들 해요.

2009년에 제가 다보스 포럼을 갔는데 중국 기업 대표 중 하나가 공개 석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1949년에는 사회주의가 중국을 살렸고, 1979년에는 자본주의가 중국을 살렸다. 그리고 1989년에는 중국이 사회주의를 살렸다. 동유럽 소련 다 무너질 때 중국하고 베트남은 사실상 강건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중국이 사회주의를 살렸고, 2008년 9년에는 중국이 자본주의를 살렸다고. 그리고 2010년을 기점으로 해서 중국 경제가 급격히 부상하기 시작해요. 제2의 경제 규모가 되고, 무역 규모는 미국을 능가하기 시작하고, 외화보유고도 미국 중국이 1, 2위를 다투고, 그다음에 제3세계에 대해 개발 원조 지원 역시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기 시작하고. 이런 것들이 변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죠. 그래서 그때부터는 경쟁 협력보다 경쟁이 심해져요. 

그러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중국이 밉단 말이에요. 무역 적자가 계속 생기고 중국은 계속 치고 나가는 것 같고 미국은 뒤처지는 것 같고. 중국을 거의 적대시하기 시작 라이벌로 생각하고 적대시하기 시작한 거죠. 지금 바이든 행정부 와서는 기본적으로 협력은 하겠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과 대결 구도로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거든요. 지금은 협력의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반면에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고 대결의 공간은 점점 커지고 있는 게 현재의 형국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현대 중국, 농경민족의 평화 전통과 북방민족의 확장 전통중 어느 쪽? 

메대표: 선생님 말씀 듣다 보니 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이후 대략 73, 74년 정도가 지났는데 큰 틀에서는 적대에서 협력, 그러다가 다시 요즘은 적대와 협력의 중간인 경쟁 정도로 흐르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1971년에 키신저가 파키스탄 거쳐 비행기 타고 몰래 들어갔잖아요. 그때부터 이미 미중 간에, 수교 협상에서부터 문제였던 게 대만 문제였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미중관계에서는) 대만 문제가 가장 크구나 싶습니다.

두 번째는 중국이 오늘날과 같은 경제력을 갖게 된 데 있어서 본인들도 잘했지만, 클린턴 행정부 때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시켜준 게, 2000년인가 2001년인가요. 그때부터 중국의 무역량이 급격히 늘고, 거기서 비축된 힘을 가지고 2008년 2009년 금융위기도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잘 넘기고, 그 힘으로 지금까지 큰소리를 치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전직 베이징 특파원인 민소장은 어떠세요. 지난 몇십 년을 좀 정리해보자면.

민소장: 데이비드 샴보라는 학자가 쓴 책을 보니까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체제는 사실 지정학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지경학적으로나 청나라 시대 때  황제 건륭이나 강희 시절의 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쭉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시진핑이 꿈꾸고 있는 것은 청나라 시대와 같은 패권을 꿈꾸기 때문에 단순히 최근의 일만으로 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책이었어요.

중국과 육·해상 접경국 21개, 팽창 야욕 땐 집단 갈등 가능성

문정인: 시각이 다 달라요. 그러니까 키신저 같은 분이 쓴 <중국에 대해서(On China)>라는 거 보면,, 키신저는 (인류의) 과거 5천 년 역사를 보자. 대부분 시간을 중국이 패권적 위치에 있었다. 미국은 패권적 지위에 오른게 100년이 채 안 된다, 그렇다면 중국의 패권적 부상을 인정해 주는 게 역사의 순리 아니냐. 그리고 한족이 중원을 차지했을 때는 팽창 정책을 펼친 적이 없다. 이민족 왕조 특히 북방 민족 몽고나 이제 만주족이 중원을 차지했을 때는 팽창 전쟁을 했다. 청나라가 대표적인 케이스지요. 명도 그렇고 송도 그렇고 한족의 왕조에서는 팽창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족 평화주의(Han Pacifism)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중국도 얼마든지 평화 공존이 가능하다고 이렇게 주장을 하는 거예요.

데이빗 샴보를 포함해서 미국에서 중국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DNA 속에서는 소위 패권적 DNA, 제국적 DNA가 있어 조공과 책봉이라고 하는 과거의 관성이 그냥 남아 있는 거라고 해요.

키쇼르 마부바니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가 최근에 쓴 미중 갈등에 대해서 읽어봤는데, 상당히 정확합니다. 이렇습니다. 차이나 센트럴리즘, 중국 중심주의라고 하는 거라면 자기가 수용할 수 있지만 어떻게 지금 근대 국가 시스템에서 조공과 책봉이 가능하고 현대 시스템에서 어떻게 제국적 구상이 가능하겠느냐. 중국이 중심이 되려고 하는 역사적 동력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게, 최소한 스무 개 국가하고 국경을 접하거나 바다를 두고 있단 말이에요. 그렇게 주변에 국가가 많은 나라도 거의 드물어요. 심지어 러시아도 그렇게 많은 국가와 국경을 접하지는 않아요.

육상과 해상으로 21개국과 접경, 평화유지에도 벅차다?

그러니까 지금 땅으로 붙어 있는 접경국이 14개 국가이고 그다음에 해상이 7개국, 이렇게 21개 정도가 되는데, 이런 중국이 주변국하고 잘 지내야 되지 만약 팽창적 야욕을 보이게 되면 주변 국가들이 다 똘똘 뭉쳐서 중국을 과거처럼 못살게 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 그걸 압니다.

그런데 민 소장께서 얘기하신 핵심은 그거예요. 중국은 솔직히 얘기해요. 왜 우리가 패권적 야망을 갖느냐, 우리는 반패권 노선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55년 반둥회의에서 주은래 당시 수상이 우리는 반패권이다, 제3세계 연대할 때 성명을 냈고 평화 원칙을 얘기했다. 우리는 절대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중국은 동맹이 없지 않으냐 이렇게 얘기했죠. 사실 중국은 동맹이 없어요. 

미국은 조약을 맺은 동맹국 수만 57개국이고 거의 120개 국가에 사실상 군사를 파병하고 있지만은 지금 중국은 그건 없단 말이에요. 북한도 동맹이 아니에요. 그런 동맹이 제일 가까운 데가 파키스탄이에요. 파키스탄하고 중국은 군사무기도 공유해요. 근데 북한에 대해서는 군사무기를 공유한 적이 없어요.

메대표: 북한과의 조중우호협정은 동맹이 아닌가요? 

문정인: 동맹으로 보면 힘들어요. 물론 침공 받았을 때 바로 즉각 지원한다는 조항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데, 동맹이라고 할 때는 제일 중요한 게 군사적 협조가 얼마나 되느냐, 군사 무기를 공유하느냐, 병참 지원을 하고 있는가인데, 사실 이런 부분은 전혀 없는 상태거든요. 북한 인민군하고 중국의 인민해방군 사이에 인적 교류는 상당히 활발해요. 그러나 실질적인 군사적 지원은 별로 없어요.

2021년까지 의식주 해결 소강사회, 2049년까지 중국몽 달성이 목표

민소장: 중국 인민해방군은 국가의 군대가 아니고 당의 군대잖아요. 그리고 군사 원조라는 것도 바로 북한을 도왔을 때 (공산)당의 군대가 지원에 의해서 갔다는 것 때문에 지금 말씀하신 어떤 조약에 의한 자동적인 조항 같은 거는 조금 맥락이 다룰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문정인: 핵심은 그거예요. 그러니까 미국과 중국 사이의 인식 차이가 너무 크고, 그게 서로서로 비판하다 보면 불신의 벽이 훨씬 더 높아지는 거죠. 

실제 중국이 얘기하는 그들의 목표가 뭐냐하면 중국공산당 창건 1백주년인 2021년까지 소강(小康)사회 건설인데, 중국 인민의 80%가량의 의식주 해결해 주겠다는 건데 그거는 달성했다고 얘기했단 말이에요. 그 다음 2035년까지는 강군몽. 중국 군대가 지금 너무 낙후돼 있는데 강한 군대로 만들겠다. 그리고 공산당의 중국 본토 통일 1백주년인 2049년까지 중국몽을 만들겠다는 거구요. 

중국몽이 다른 게 아니에요.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인데 시진핑 주석은 개발도상국으로 인식해요. 그러니까 2049년까지 개발도상국인 사회주의 국가 중국을 선진국으로 변화해 놓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미국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하면 2035년까지 중국은 강한 군대를 통해서 아시아 태평양에 있어서 패권을 구축하고 2049년이 되면 세계 패권을 구축하는 것이다, 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게 미국 국무부 장관하던 마이크 폼페이오가 직접 한 얘기예요. 그리고 워싱턴에 있는 사람들 전부 다 그렇게 인식해요. 그런데 그게 과거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스파르타하고 아테네하고 싸운 이유랑 꼭 같은 거거든요. 스파르타하고 아테네가 싸운 가장 큰 이유가 이런 거예요. 스파르타는 기존 패권국인데 갑자기 아테네라는 조그마한 도시국가가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군사력이 세지니까 스파르타가 겁을 먹은 거예요. 그거 견제하다가 전쟁이 일어난 거거든요.

갈등과 대립의 상승 작용은 미국이 먼저 시작했다?

그래서 하버드대학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 같은 사람은 그런 걸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 불러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책을 투키디데스가 썼는데, 그와 꼭 같은 함정이 미중 간에도 있을 수 있다는 거거든요.

서로서로 선의의 어떤 생각도 분명히 있는데 저놈이 크면 나를 공격할 것이다, 또 이쪽에서는 저쪽이 크니까 나를 누를 것이다, 이런 상태가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 거지요. 그런데 (갈등 대립의) 상승 작용의 시발은 미국이에요. 

중국은 ‘우리는 화평 발전이다, 우리는 사실상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의도가 하나도 없다, 우리는 미국이 만든 질서 속에서 살겠다’고 말하는데 미국이 그걸 안 믿는 거예요. 그래서 자꾸 압박을 가하니까 중국이 ‘당신들은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구나, 그러면 당신은 우리를 흔들고 중국 공산당을 파괴하려 한다, 그러면 우리도 대항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거지요.

메대표: 그런데 중국과 해상 국경을 접하고 있는 20여개 국 중 하나인 한국으로서 중국의 부상은 걱정입니다. 바로 옆에 큰 나라가 있으니까 우리는 말 한마디 듣는 것도 신경 쓰이거든요. 이를테면 강군몽 이러면 ‘아니 군대를 강하게 만들어서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하는 걱정이 되죠. 중국의 주먹 범위에 한국이 있으니까 당연히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중국몽은 또 뭐냐. 결국 중국이 세계 1등 하겠다는 거 아니냐. 그러면 미국과 중국 사이 끼어 있는 고단한 한국 처지는 어떻게 되느냐, 이런 걱정이 들고. 또 중국 사람들이 겪어보면 뭐랄까, 말이 조금 세거든요. 주변국 생각하면서 말을 조금 살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 들으며 생각해 보니 중국은 스무 개 나라하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중국이 국내적으로 빨리 경제 강국을 만들어 가지고 인민들을 잘 먹여 살려야겠다는 쪽이라면 기본적으로 주변국들하고 잘 지낼 수밖에 없겠구나, 평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중 한 나라하고만 갈등이 생겨도 거기에 많은 시간과 돈과 군대가 가야 되니까. 그런 거 보면 중국이 참 가지 많은 나무처럼 조심조심 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건 제가 오늘 새로 알았는데, 중국 사람들 말이 좀 셉니다. 강군몽. 중국몽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례, 중국 접경국가들에 어떤 영향 미칠까?

문정인: 그런데 이제 이런 문제가 있어요. 중국의 고민은 그걸 거예요. 그러니까 미국하고는 신형대국관계로는 하겠다. 그래서 미국도 대국이고 중국도 대국이다. 대국끼리 이제는 새로운 협력과 경쟁 관계를 갖자. 그러면서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는 강하게 보내야 되거든요. 그런데 또 시진핑이 주변국과의 외교는 친성혜용(親誠惠容) 정책이라는 걸 펴겠다고 했어요.

주변국들하고는 친선관계를 유지하겠다. 

주변국들에 대해 성의를 다해서 대하겠다. 

주변국들에 혜택을 베풀겠다. 

주변국들을 포용해서 나가겠다.  

이런 주변국 정책을 발표했어요. 그러나 한국같은 주변국 입장에서 보면 우리에게 오는 메시지보다 중국하고 미국 사이에 어떤 메시지가 오가느냐를 보고 우리는 겁도 먹게 되고 중국의 위협을 느끼고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중국이 아직은 주변국에 보내는 메시지하고,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 사이에서 조율을 잘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존적으로 생각해야 될 부분이 있어요.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이번 우크라이나가 좋은 교훈인데요. 주변에 있는 대국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은 건가, 아니면 주변에 있는 대국을 적대시해서 다른 동맹을 맺어서 그렇게 나가는 게 좋을 것인가, 그건 고민을 많이 해봐야 될 거예요.

지금 핀란드하고 스웨덴이 어떻게 나가는 걸 보면 알겠죠. 핀란드하고 스웨덴은 러시아하고 국경이 붙어 있는 국가들 아니에요. 그래서 그들은 서방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EU도 가입했는데 나토 가입은 안 했어요. 중립 지위를 유지했어요. 그런데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에 지금 나토 가입을 하겠다, 중립국 지위를 버리겠다고 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한번 지켜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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