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식탁>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지면을 할애한 것은 이 전쟁이 강건너 불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싸움은 부차적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11일 한국에 살상용 무기 지원을 요청하면서 한국도 공식적으로 이 전쟁에 개입되기 시작했다. 거절했다고 끝은 아니다. 한국은 경제력에서 세계 10위권 국가이며,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화약고 라인이 터키, 발칸, 우크라이나라면 대만, 말라카 해협과 함께 동쪽 화약고 라인에 해당한다. 지정학과 세계 경제 생산 소비 체계에서 이 정도 규모면 남 일이란 없다. 이해영 필자가 두 번째 원고를 보내왔다. 이번에는 미국이 러-우크 전쟁의 장기화를 바라는 것 아닌가 의문을 제기한다. 이 전쟁이 미 지상군의 투입없이 오래 가면 미국은 꾸준히 버틸 수 있고, 대신 러시아, 나아가 유럽은 서서히 탈탈 털리지 않겠느냐는 시각을 반영한 원고다. 전편에 이어 진실의 절반을 들여다본다는 취지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2차 대전후 80년 만에 재등장한 미국의 무기대여법, 이번에도 승자를 만드나?

  전쟁 지속될수록 총격과 희생은 유럽에서, 군수 호황은 미국과 무기 수출국에서   

미, ‘러시아에 신냉전 비용지불토록 유도해 1990년 같은 자체 붕괴 기대하나?

  ‘우크라이나 군수지원은 무제한, 자국 지상군 참전은 유보’ 입장으로 장기전 유도할 듯 

미국, 러시아의 양대 블록화는 자유무역 혜택 최다국 한국에 좋은게 아냐

  북한에는 호재, 미국 군사력 분산, 러 자원 수입 용이, 러-중-북 3각 연대 강화   

사진:셔터스톡

나의 글 <우크라이나 '매트릭스'와 콜드워 II>가 <서방언론은 허구였다! 러시아 뜻대로 끝나가는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피렌체의 식탁>에 나간 뒤 몇몇 반론이 있었고, 개중에는 거친 비난도 보였다. (원제목은 편집팀에서 가독성 제고를 위해 바꾼 듯하다). 재반론을 준비하던 중 마침 김현종 대표와 소통하게 되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에 대해서도 미지근한 온기가 담긴 글’을 청하고자 했던 김대표의 원래 ‘실험’ 취지에도 공감되는 바가 생겼고, 해서 원래의 계획을 좀 변경해서 글을 정리해 보았다.  

보도지침 아닌 보도지침에 맞춰

1. 나의 출발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해 한국 언론의 관련 기사는 거의 다가 미영 등 서방 기사의 ‘복붙’이다. 즉 번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신문 어느 기사를 번역했는지 불명이라는 것이었다. 영상도 마찬가지 자체 생산된 것은 없다. ‘단 한 명의 종군기자도 없다.’ 하지만 나의 이 말에 ‘최초로’ 2박 3일 취재에 다녀온 특파원의 취재 리포트를 소개해 준 분이 계셨고, 또 이를 통해 규제당국 즉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의 불합리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가졌던 의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오늘 이 시간까지도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한국 기사 대부분은 여전히 미영 등 이른바 서방의 그것을 그냥 베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한국 언론은 서방이 제작한 해석 프레임을 묵종하다시피 재생산해왔다. 이 프레임은 내가 알기에 대략 개전 2주일 뒤인 3월 8일의 미하원 정보 청문회 이후부터 본격화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자리에서 번즈 미 CIA 국장은 푸틴이 침공 이전 2일 만에 키예프를 점령할 계획을 세웠는데 실패했다, 러시아 군은 패배 중이라는 발언을 한다. 이후 거의 모든 서방 언론은 ‘키예프 2일’이라는 이 보도지침 아닌 보도지침에 맞춰 기사와 영상을 편집하고 제공하기 시작했던 거 같다. 

설...설...설...변주에 변주 거듭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CIA 국장의 키예프 2일 점령 계획설은 이후 푸틴 광인설, 푸틴 대노설, 러시아 군 대패설, 러시아 군 전투불능설, 러시아군 몰살설등으로 끝없이 변주되더니, 3월말 러시아가 주장하는 소위 전쟁 2단계 이후부터는 모든 학살의 러시아 자행설로 현재 진행중이다. 키예프 2일 점령은 ‘절대’ 불가능한 기준이기 때문에, 러시아 군의 모든 작전은 절대 성공할 리가 없다. 즉 미국은 ‘정신승리’를 위한 절대 기준을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다 죽었다던 러시아 군이 마른 잎 다시 살아나듯 또 살아나고, 제공권을 장악 못 했다는데 러시아 전투기는 계속 날아다니고, 도대체 미사일은 또 어디서 날아오는지, 전차는 재블린이 다 깨버렸다는 데 러시아 군 장악지역은 계속 늘어나고, 민간인은 계속 죽고, 왜 그럴까 아마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이 아주 단순한 의문들이 문제였다.       

카타르 도하에 있는 알 자지라 네트워크 본사 전경 (사진:셔터스톡)

‘좌파 그것도 이슬람 매체’를?’2.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현실 혹은 전황의 객관적 파악이 필수적이다. 전황은 잘 찾아보면 러시아 측이나 프랑스 국방부가 생산한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보인다. 내가 일상 체크하는 전황도는 <알자리라>것이다. <알자리라>! 하니 처음엔 다들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저 ‘좌파 그것도 이슬람 매체’를 도대체 왜 이래 하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나에게 반론을 작성한 박상현 님조차도 “이 매체가 잠시 떴던 때가 있지만 아직도 이 매체를 기준으로 삼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난 이런 글을 나의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너무나 재밌는 것은 내가 전황 분석을 위해 가져온 그래픽 도면이 <알자지라>것이라고 시비 거는 건 진심 포복절도할 일이다. 왜냐하면 이렇다. 도면의 좌측 하단을 보면 이 전황도가 어디서 제공되었는지가 적시되어 있다. 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 (ISW). 즉 전쟁연구소다. 여긴 또 어딘가. 킴벌리 케이건이 대표이자 창립자고, 미 육군 퇴역 장성 존 킨 장군이 이사회의장이고, 윌리엄 크리스톨이 소장이다. 윌리엄 크리스톨은 딕 체니부통령과 함께 <PNAC 새로운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 즉 대표적인 네오콘 조직을 만든 자다. 

그럼 미 네오콘이 친러라서?요컨대 나는 미국 네오콘이 계약에 의해 <알자지라>에 제공하는 매일 매일의 전황도를 가지고 전황을 분석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 미네오콘이 친러라서 저런 전황도를 내놓았을까? 더 궁금하면 미 네오콘 전쟁연구소 홈피에 가보면 된다. 그런데 그래픽이 알자지라 버전이 더 보기 쉽다. 참고로 프랑스 국방부 전황도도 참고할 만한데, 그래도 그래픽이 좀 못하다.

요컨대 내가 제시한 전황도는 러시아도, 알자지라도 아닌 미국 네오콘이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알자지라>는 좌파매체도 아니다. 처음엔 좀 균형을 잡더니 지금은 서방과 별 차이 없는 반 러시아 친서방 매체라고 봐도 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이슬람 포비아라는 오리엔탈리즘이다. 단 한번 만이라도 이 매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념 아닌 방법으로서 리얼리즘 선택

3. 이제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언급해 보자. 저 수많은 주의(ism)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리얼리즘을 택할 거다. 하지만 나의 리얼리즘은 그 무슨 이념이라기보다 방법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국제정치학 개론 시간마다 나오는 소위 구조 현실주의나 혹은 최근 가장 자주 소환되는 시카고대 미어샤이머 교수의 그것과도 자못 다르다. 또 하나 전쟁 문제에 관한 한 나는 ‘클라우제비츠주의자(Clausewitzian)’ 이라 불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거다. 전쟁이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고 말한 19세기 초 프러시아의 장군이자 전쟁 철학자말이다. 국가정책의 수단으로써 전쟁의 사용은 이미 20세기 초 규범적으로 탄핵되었고, 지금의 국제법 역시 그 연장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쟁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전쟁에 대한 과학적으로 올바른 유일한 견해 중 하나로 나는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에 근거하고 마찬가지 우크라이나 전쟁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러의 우크라이나 침공 역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으로 본다는 의미다. 즉 지금의 전쟁은 결코 일회의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 전부터의 정치적 교섭과 관계의 외교적 해결의 실패가 불러 온 결과이며 그럼에도 양국의 ‘정치적’ 관계는 평화조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문제를 이렇게 본다 하더라도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규범적 비난 가능성이 배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사안을 우선 올바로 분석하고 나아가 그 솔루션 즉 평화를 찾기 위해서는 방법적 단서는 이 것 외 다른 무엇이 있을 까하는 것이다. 즉 이번 전쟁 혹은 러의 침공은 어떤 정치적 목적을 군사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제한전’이라는 것이 나의 중심 테제다.

해서 먼저 언급할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의 양국 관계는 나토 가입 문제를 고리로 유럽 역내 정치와 또 세계 정치와 얽혀 있고, 이는 역사적으로 1989년 독일 통일 때까지 거슬러 오른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기술했기에 반복할 필요는 없다. 아울러 2014년 미어샤이머 교수의 우크라이나 중립화 제안이 이 콘텍스트에 자리한다.

‘파격적인’ 부대 편성의 만만찮은 약점

다음 두 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것이 정치적 목적과 그 관철 수단 즉 전쟁 머신 간의 ‘합목적적’ 비례관계의 문제이다. 바로 이 이유에서 이미 나는 미 육군 <제병협동센터 FMSO> 연구보고서를 인용한 바 있다. 이에 따르자면 지금 러시아의 모든 작전은 이른바 대대전술단(Battalion Tactical Group)에 기반 수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 대대전술단은 "강대국 간의 전면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영향권  내에서 발생하는 지역 분쟁에 최적화된 부대 편성"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을 나는 다시 강조하고 싶다. 왜냐 하면 이 형태의 군사적 수단은 언급된 정치적 목적에 최적화된 것이지, 우크라이나 전역의 군사적 점령과 정복에는 적합지 않다는 말이다. 우크라이나 전역의 점령이 목적이었다면 다른 전략, 전술 그리고 부대 편성을 시도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다음을 추가해 둘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에 선보인 ‘파격적인’ 부대 편성은 그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약점도 만만치 않다. 미 육군의 평가에 따르면 작전 지속력이 약해 공격 중 종심 깊이 진출할 수가 없다. 부대 편성상 첨두에 10대의 전차 그 후위에 40대의 장갑차에 탑승한 기계화보병이 서는데, 문제는 재블린 등 서방의 대전차 미사일에 전차가 무력화될 경우이다. 다음으로 병사 충원구조인데 2/3가 징집병으로 근접 전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번 전쟁 기간 중 푸틴은 징집병을 전투에서 제외시키라고 지시한 바 있다. 파격적으로 시도된 대대전술단의 구조적 약점이 의외로 많은 러군 사상자 발생의 이유 상당 부분을 설명해 준다 하겠다. 또 이런 편성은 평원의 제파 전술이지 시가전에 취약하다.

또 하나 우크라이나는 그 자체 결코 군사 약국은 아니지만 상대는 러시아다. 우크라이나는 민족주의적 열정에 기반해 인민무장으로 우위에 있는 러시아 군을 상대했다. 이른바 ‘인민의 전쟁’ 방식이다. 이들의 자발적 동원과 미국 정보자산의 대규모 투입이 전황이 러 의도대로만 전개되는 것을 저지한 셈이다.

서방언론 비판하더니 러 주장 베끼냐고?

세 번째는 나에 대한 비난 즉 ‘서방언론을 비판하더니 러시아 주장을 베끼냐’, 즉 ‘친러파’라는 힐난에 관계된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선 이미 내 주장의 주된 논거와 논리가 앞의 두 가지 즉 미어샤이머 교수의 역사적 시각과 미 육군 보고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겠지만, 그럼에도 <경향신문>이 보도한 러시아 국방부의 브리핑내용을 내가 인용한 것과 관련해서 언급해 둘 것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위에서 말한 저 중심 테제를 입증하기 위해 러시아 국방부를 인용한 것이지, 러시아 국방부 브리핑 내용에서 나의 테제가 도출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전황을 주의깊게 지켜 본 사람이라면 왜 러시아 군이 키예프 혹은 하르코프 문 앞에서 멈춰서 포만 쏘고, 반면 남부전선의 마리우폴에서는 죽기 살기로 시가전을 펼치는 지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한 것이다. 이와 관련 서방측은 러시아의 탄약이 떨어졌고, 병참선이 파괴되었고, 병력 손실이 너무 커서 그럴 거라는 가설을 사실처럼 쏟아 내었다. 그러나 러시아 뿐 아니라 그 어떤 나라도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모르긴 해도 수많은 전쟁계획을 세우고 또 수십 회의 시뮬레이션 (워게임)을 해보고 또 여기에 적합한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침공 병력이 15만-20만이고, 우크라이나 군은 러시아 국방부에 따르면 26만이다. 물론 훨씬 적게 잡는 분석도 있다. 아무튼 수적으로 압도하진 않는다. 

미 이라크침공·노르망디상륙도 성동격서

모든 전쟁에 기만전술은 기본이다. 특히 러시아 고급장교들의 작전 운용 능력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기만전술의 선례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들 수 있다. 처음에 언론 등을 통해 이라크 남부 해안지대를 노리는 척 후세인 군 정예병력을 해안방위로 유인, 고착시킨 뒤 실제로는 왼쪽으로 크게 돌아 그 뒤를 공격했다. 기만당한 이라크군은 전열이 무너졌다. 또 다른 예로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들 수 있다. 그리 보면 성동격서식으로 러시아 군이 기만전술을 전개했을 리가 없다고 주장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지금 돈바스지역에 배치된 약 6만의 우크라이나 정예부대의 상황은 사실 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병력이 수도와 동부에 고착 견제되는 와중에 러시아는 우월한 공군력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역의 군사적, 경제적 인프라를 거의 파괴했고 남부전선에서는 포위 점령을 통해 돈바스를 넘어 남부 대부분을 군사적으로 장악해 가는 과정이다.

당혹감과 불쾌감 줬을 수 있지만

4. 다소 익숙지 않은 나의 분석과 기술이 어떤 이들에게 당혹감 (불쾌감?)을 가져다줬을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고 내가 친러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진행 중인 양국 간 평화협상의 의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정치의 계속임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중립화, 탈나치화, 무장해제, 러시아어 공용어 문제, 크림반도, 돈바스 이렇게 말이다. ‘키예프 2일설’이 맞고 이후 미영이 제작 유포, 한국 언론이 재생한 전쟁 내러티브가 맞다면, 어떻게 협상 테이블의 의제가 저렇게 진행될 수 있을까. 의제 설정은 대개 강자의 권리다. 협상 결과는 전황의 총괄일 뿐이다.         

이렇게 여기까지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으로서 양자 간 군사적 관계를 중심에 놓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바로 미국 변수 때문이다. 그리고 무기대여법이 80년 만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최광은 박사의 요약이다. “이번 렌드-리스 법안(Ukraine Democracy Defense Lend-Lease Act of 2022)은 지난 4월 6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와 상원을 통과했고, 4월 7일 현재 하원으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발의된 날짜가 궁금해 확인을 해보니 지난 1월 19일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일이 2월 24일이니 이미 침공 한 달 이전에 발의된 것이었다. 대표 발의는 공화당의 존 코닌 John Cornyn 상원의원이었다. 최초 발의된 법안과 이번에 통과된 법안을 살펴보니 약간의 수정이 있었다. 이번 법안에는 ‘회계연도 2022년과 2023년 동안‘이 구체적으로 들어갔다. 미국은 최소한 내년까지는 전쟁이 지속될 것임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최초 법안에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물품을 보내는 것으로 명시되었는데,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정부 또는 동유럽 국가 정부들(the Government of Ukraine or to governments of Eastern European countries)‘이라고 명시된 것이 눈에 띈다. 우크라이나 이외의 동유럽 국가가 어디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열되지 않았다. 혹시 모를 동유럽으로의 전선 확장을 미리 예비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3차 대전으로 가는 디딤돌?

2차 대전 당시 무기대여법에 근거 영국과 소련에 쏟아부은 전쟁물자는 전세를 역전시키는 중요 모멘텀이었다. 이제 우크라전쟁은 3차 대전으로 가는 디딤돌인가? 상황은 긴박하다. 신뢰할 만한 코멘테이터 한 분은 이로써 3차 대전의 첫 문턱을 넘었고 한국군이 우크라 파병으로 갈지도 모르겠다고 강한 우려를 표한다. 

미 무기대여법의 부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묻게 만든다. 문득 2019년 미 랜드RAND 연구소의 이 보고서가 떠오른다. <Overextending and Unbalancing Russia Assessing the Impact of Cost-Imposing Options> (2019).

무기대여법의 엄청난 위력으로 보자면 나는 이제 우크라이나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전쟁의 신국면이 도래하지 않을까, 아주 우울한 전망을 갖게 된다. 즉 이제 우크라이나는 일 가구 일 탱크, 일인 일 휴대용 미사일 시대, 하늘에서 무기가 비처럼 내리는 영구 전쟁의 시대에 들어서는 게 아닐까.

지금 미국 여론은 아주 기괴하다. 미어샤이머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최근의 강연에서, 그는 미국의 입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인은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하라. 단 우리는 거기 가지 않는다"! 혹시 젤렌스키는 이렇게 말해 오지 않았을까. ‘조금만 참자, 미군이 우리를 구하러 올 거다’. 이 믿음은 그러나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서 탄약과 전투식을 무한 지원해 줄 거다.

지난 3월 이코노미스트의 미국 내 여론조사를 보면, ‘우크라이나 무한 지원, 미군 참전 반대’로 요약된다. 흥미로운 것은 민주당 지지자가 공화당 지지자보다 더 강하게 전쟁을 지지한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바이든 반대는 압도적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지지도 압도적이고 푸틴의 악마화는 완성형이다. 우크라이나 중립화는 반대가 더 높다.

이 모든 것은 한 가지 방향을 가리킨다. 우크라이나 전쟁 확전과 속전續戰! 리버럴ㆍ네오콘 동맹으로서 바이든 정권은 전쟁의 계속을 원한다. 바이든이 결재하지 않았는데 젤렌스키가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 있을까? 마침 우크라이나의 휴전 협상안은 러시아 입장에서 보자면 후퇴중이다. 러시아 외무장관은 휴전 이후 우크라이나 영토 내 군사 연습시 러시아를 비롯한 안전보장 제공국의 동의하에서만 한다는 이스탄불안에서 러시아를 제외했다는 점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이 전쟁이 좋다. 무기 팔고, 러시아 가스 대신 미국 가스 팔고, 미국산 농산품 팔고 영, 독, 불외 다수 EU 소속 국가들을 제대로 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군은 단 한 명도 죽을 일 없다. (미납세자 세금으로 우크라이나에 20억 불 지원해서, 미 4대 방산이 거둘 예상수익이 1,017억불이라는 주장이 있다. 수익률 5,000%. 여기에 나머지 방산 수익이나 또 러시아 가스 대신 미국산 가스 팔아 얻는 에너지쪽 수익도 더해야 한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수익은 늘어날 것임은 자명하다.)

러시아가 망할지, 미국이 망할지

미국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평화로 가는 정치의 계속이 아니라 전쟁의 계속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의 아카데미‘ 미 랜드연구소의 이 보고서는 답이 어디 있는지 시사한다. 소련은 생산력이 냉전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 할 때 엎어졌다. 이제 러시아 차례다. 러시아의 약점이 무엇인가. 경제다. 러시아가 과잉 확장 overextending하게 유도해 균형 무너뜨리기 unbalancing, 이를 위해 러시아에게 ‘비용을 강제하는 cost-imposing’ 옵션을 찾아라. 곧 러시아가 신냉전 비용을 지불하도록 강요해 경제에 부단한 스트레스를 가해 장기적으로 압박 와해시키자는 거다. 미국으로서 저비용 고효율 옵션이 대러시아 제재다. 우크라이나 지원도 이 중 하나다. 2019년 보고서라 지금 상황에 곧바로 적용하자면 약간의 응용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의도가 만일 이것이라면 러시아의 대응은 무엇일까. 지켜볼 일이다. 1988년 소련 붕괴 직전 미국 역사가 폴 케네디는 제국 흥망의 이유를 "제국적 과잉팽창 imperial overstretch"라고 요결했다. 20년에 걸친 테러와의 전쟁과 리버럴ㆍ네오콘의 무한 개입이 여기로 귀결될지 아직은 열린 문제다. 러시아가 과잉 확장해서 망할 지, 미국이 과잉 팽창해서 망할 지 말이다. 

한국도 ‘파이브 아이즈’ 후보국

여기서 잠깐 무기대여법이 2차 세계대전을 열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3차 세계대전 우려와 관련해 한국군 참전 가능성을 언급해 두자. 무기대여법을 통한 군사지원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이 비가 되고 강을 이루더라도 이를 운용할 병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아프간 전선에서 막 돌아온 미군을 대신해 우크라이나에서 뛰어 줄 용사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근 대위’의 복제품들 말이다. 당연 앵글로색슨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다. 미 영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말이다. 여기에 파이브 아이즈의 후보국인 일본과 한국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파병 우려가 생성된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의 우크라이나전 지원을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이 광적으로 지지하고, 여기에 한국의 진보 네오콘 동조화 징후가 읽히긴 하지만, 현재 본격 국내 여론전은 아직 진영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사안에 관한 한 진보 진영의 균열이 향후 더욱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는 다만 한국 뿐 아니라 글로벌하게 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에 경사될 것이 확실한 북의 미사일 동향이라는 한반도 안보적인 요소, 글로벌 자본으로서 중국과 아울러 러시아에도 상당한 투자 지분을 갖고 있는 국내 자본의 이해관계, 야당으로 바톤터치한 민주당도 새 정부가 만에 하나 참전 시도를 할 때 오히려 국회 동의권을 주장 강력 반발할 가능성 (anything but Yun), 여전히 대세를 이루지 못한 채 허약성을 노정하는 새 정부의 지지기반, 대다수 국민이 우크라이나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민여론을 전쟁으로 몰고 가기엔 아직도 너무나 갈 길이 멀다는 점 등을 길항 요인으로 상정해 볼 수 있다. 아무튼 매우 주의깊게 지켜봐야할 대목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부정적 영향5. 나는 러시아보다 미국이 장기 전쟁을 원한다고 본다. 미군 참전만 없다면 미국 내 여론도 이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 까 본다. 조기 종전을 강제하기 위한 국제적인 툴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러 중 접근은 공고화될 것이고, EU는 파편화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리버럴 단극체제의 포스트 리버럴 양극 내지 다극체제로 이행은 현실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루블 가스와 페트로 위안을 첨두로 달러의 기축성은 도전받게 될 것이다. 에너지가 무기화되면서 핵+에너지가 이제 초강국의 힘의 척도가 되었고, 금융 만능 세계 자본주의 역시 이대로는 안 된다. 자본주도 세계화는 이제 그 형태 변경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아울러 코비드 위기와 결합해 경제의 내적인 모순이 순방향으로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중국와 러시아가 블록화 될수록 기존 자본주의의 모순은 서방측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비즈니스 사이클상 공황에 대한 경고는 전혀 새롭지 않다. 

이 전쟁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극체제화로의 이행이 진행될수록 북한 체제의 스트레스는 감소될 가능성도 예측되는 반면, 한국의 세계화 레짐은 어떻게든 새로운 상황에 적응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특히 FTA만으로 대외경제를 운용하는 시대는 사실상 종결될 것이다.  

당장의 전쟁에서 최대 피해자는 물론 우크라이나 민중이다. 전쟁 중단 요구와 ‘최대한의’ - 물론 전비와 전투무기는 배제한 - 인도적 지원은 그나마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이다. 


글쓴이 이해영은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마친 뒤 독일(당시로선 서독) 마부룩(Marburg) 대학교에서 철학박사(Dr.Phil.) 학위를 받았다. 주된 연구 영역은 서양정치사상과 국제정치경제다. 대학에선 마키아벨리, 그람시, 슈미트, 하버마스 등을 강의한다. 국제관계에서는 국제통상을 주되게 하면서 한미관계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리엔탈리즘과 지정학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