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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현 칼럼] 한국형 외교 독트린에 들어갈 세 가지 원칙  

By | 2022년 3월 31일 | 국제, 미분류, 지정학개론

베이징의 한국 특파원들에게는 급할 때 무엇이든 물어보는 ‘사부’가 있다. 문일현 정법대 교수가 당사자다. 그가 중요한 기고를 보내왔다. 1차적으로는 한국의 정권교체기를 맞아서다. 더 중요한 건 지금이 한국의 경제력, 기술력, 문화력이 골고루 상승해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전보다 더 필요로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문재인 정부의 모호 외교를 긍정 평가하지만 이제는 분명한 원칙과 기준이 필요한 시기로 전이했다고 진단한다. 한국이 선진국에 걸맞는 외교 독트린을 내놓고 외교할 때라는 의견이다. 읽다 보면 기회는 위기이고, 그 반대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국제외교안보 무대의 회전목마에 올라탄 느낌이 든다. [편집자 주]        

중국 지도부, 한국 대선에 이례적 높은 관심, 한국 중요성 인정

미중 경쟁 속에 한국의 기술력, 경제력, 문화력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 

시진핑은 대만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집권 10년 연장 나설 듯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시주석에게 순망치한의 불안감 키워 

사진: 셔터스톡

중국 지도부, 한국 대선에 이례적 높은 관심, 한국 중요성 인정

미국에 이어 중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전략을 다 바꾸고 있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미중 양국에서 매우 높아졌다. 먼저 중국. 지난해말 중국 외교부의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사가 연락해 보자고 했다. 밥을 사겠다고 해서 나갔더니 젊은 친구 하나가 따라 나왔다. 공산당의 외교 파트로 판단되는 언행이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라는 긴 이름의 비공식의사협조 기구를 운용하고 있다. 조장은? 시진핑 주석이다.  

그들이 관심있어 한 건 딱 두 가지였다. 당시 논의되던 한국 주도의 한반도 종전선언에 미국이 협력할 것인가? 윤석열 후보(당시)의 당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그들은 질문하면서도 의아해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정치한다고 갑자기 사퇴해 야당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윤 후보가 당선되면 한중 관계가 굉장히 어려워질 거라고 각오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필자에게는 중국 고위층이 전례없이 한국 대통령선거의 향방을 궁금해하는 배경이 더 흥미로왔다. 베이징에 연고를 맺은 지 30년, 이 정도의 관심은 처음 일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코로나 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이후 2021년초부터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은 계속 상승했다. 지난해 5월 바이든 문재인 회담의 결과물이 대표적이다. 미일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은 A4 용지 4매, 한미 공동성명은 7매 분량이다. 미일 합의는 말 그대로 관례를 존중한 형식적 수준에 그쳤다. 대만 문제를 언급하긴 했으나 획기적이거나 새로운 내용은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바이든-문재인 대통령 간 합의는 항목도 많고 범위도 훨씬 광범위하다. 안보 협력은 당연히 가장 앞부분에 위치했고 여기에 과거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몇 가지가 추가됐다. 대표적인 게 4대 전략품목 공급망 구축이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희토류, 의료물자 등 4대 품목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외교적 수사가 아닌 일반적 언어로 풀어 얘기하면 중국이 좌지우지하는 전략물자를 미국이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한국이 적극 협력해달라는 부탁이다. 

특이한 게 또 있다. 한국더러 중남미에 진출해 이들의 경제발전에 적극 참여해달라는 내용이다. 중남미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뒤뜰이다. 중남미 국가들이 원하더라도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나라도 넘볼 수 없는 미국의 세력권이다. 최근 들어 중국이 풍부한 자금과 무역을 고리로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가면서 미국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이다. 바이든대통령은 문대통령에게 중남미 특히 중미 국가들에게 한국의 과거 농촌개발전략이었던 새마을운동과 같은 전략을 이들 국가들과 공동으로 추진해줄 것을 특별히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대통령의 뜬금없는 요청은 엄청난 규모의 중남미 사람들이 미국 국경까지 걸어가 이민을 요구하는 사태가 계속됐기 때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이 중남미 문제로 외국정상에게  도와 달라 부탁한 것은 미국 외교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종합하면 문대통령과 바이든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이 안보동맹이면서 경제동맹이자 기술동맹이고 가치동맹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글로벌 동맹임을 웅변하고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은 16개의 나라와 육상에서 국경을 접하고 있고, 4개 나라와 해상에서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한은 앞에, 한국은 뒤에 해당한다. 해상에서 접하는 나라가 하나 더 있는데 대만이다. 중국이 국가로 인정하고 있진 않지만. 20개의 인접국 중에서도 세계 무대에서 나름대로의 발언권을 가지고 있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빼놓을 수 없으며, 중국이 뭔가 손을 내밀면 관계 개선을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국력과 경제력, 외교안보적 위상과 역할에서 중상급 국가로서 관계 개선의 효과가 크게 기대되는 나라를 말한다. 

중국, ‘미국이 교역을 내세워 한국을 남중국해 분쟁에 끌어들이려 한다’

반면에 바이든의 동맹 외교에 한국을 사실상 맡겨버리면 중국으로서는 큰 낭패다. 중국이 바라보는, 미국의 한국 전략은 이런 것이다. 한국을 쿼드(QUAD, 미국, 인도, 일본, 호주의 비공식 안보 협의체)에 끌어들이기 위해 교대하는 청해부대를 활용하는 것이다. 청해부대가 임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올 때, 인도양과 말라카 해협을 거쳐서 남중국해로 들어올 때 인도양 쯤에서 쿼드 회원국들과의 합동 해상 구조 훈련 같은걸 제안하는 것이다. 이게 이루어지면 다음에는 말라카 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해상 부유물이나 환경오염 제거 훈련을 같이 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쿼드에서의 자유로운 합동 군사훈련이다.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는 한국의 주요 상품 교역로이자 원유, 가스같은 에너지 자원 수송로이기에 한국이 마냥 거부하지 못할 것으로 미국이 판단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와함께 미국이 한국을 회유, 협박해 동중국해나 동해, 태평양 등지에서 한-미-일 3국의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북한-중국-러시아 구도와 한-미-일 구도의 대결 국면을 의미한다. 이 문제는 한국 대통령선거에서도 쟁점이 되었다. 대선 기간 중 윤석열 후보는 미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한·미·일 3자 간 안보 공조 활성화”를 강조했고 티비토론에서도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에 대해 문대통령과 다른 뉘앙스의 답변을 했다.  

중국이 보는 미국의 중국 압박 두 번째 경우는 동남아 개발펀드같은 걸 새로 만들고 여기에 한국을 주요 파트너로 합류시키는 것이다.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인프라 투자사업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 주도의 인프라 개발펀드를 만들고, 거기에 일본과 한국등 돈많은 나라가 참여하도록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은 더구나 K-컬처로 이 나라들에서 문화적 호감도까지 있다. 일본보다 활용도가 높은 것이다. 아세안이 미국 편을 들도록 하는데 있어 한국은 황금의 카드라고 할 수 있다.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물결 잠재운 문재인의 호주 회견 

중국의 이런 해석과 전망은 향후 중국이 섣부른 경제 제제나 한한령같은 걸 휘두르는데 조심할 것이란 예상을 낳는다. 윤석열 당선자의 대 중국 강공이 먹혀서가 아니라 최근 몇 년간 동아시아와 인도 태평양 질서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결과다.

작년 12월 중국 시안에 코로나19가 갑자기 확산되면서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중국지도부에 비상이 걸렸다. 시주석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1개월 전인 1월4일까지 신규확진자를 0으로 만들라는 특별지시를 하달했다. 시안시정부는 다급했다. 뾰쪽한 묘수를 찾지 못한 시안시 정부는 감염자들을 행정구역상 시안시가 아닌 외곽으로 소개(疏開)했다. 시안에 있는 삼성반도체 공장도 조업 단축 또는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삼성은 중국정부의 방역정책에 적극 협력을 약속하면서 조업 차질로 발생할지 모를 사태를 중국정부에 통보했다.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난은 불가피하고 중국 역시 반도체 공급이 부족해지는 사태를 겪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삼성의 보고를 접한 중국지도부는 발칵 뒤집혔다. 어떤 경우든 정상적 조업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특명이 떨어졌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중국정부의 지시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무조건 복종해야 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미국과 중국의 손익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들 두 거인을 움직일 전략적 카드를 한국이 쥐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은 미국발 보이콧 움직임에 마음 고생이 심했다. 보이콧이라고 하지만 선수들은 참석할 건 다 하고, 정재계의 주요 인사들도 상당수 참석했다. 다만 공식으로 오느냐, 비공식으로 오느냐, 어느 레벨에서 오느냐 정도가 이슈였는데 잔치상을 차린 중국 입장에서는 고심이 많았다. 지난해 12월 13일 문대통령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는 북경 올림픽 보이콧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중국내 많은 지인들이 뛸 듯이 환영했다. 개인적으로 고마움을 전해오는 중국인들이 많았다. 사실로 문대통령의 기자회견 이후 전세계적으로 보이콧 운운의 목소리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참석 여론이 대세를 타느냐 못 타느냐의 갈림길이었는데 한국이 물꼬를 터주었다고들 말한다. 문대통령은 그러고도 호주와 K-9 자주포 1조원대 수출 상담에 합의했다.   

문 정부 5년에 대한 중국 지식인들이나 조야의 평가는 역대 한국 정권 중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을 가장 적절하게 풀었던 정권’이라는 평가다. 또는 현안에 대한 뚜렷한 입장 표명없이 모호한 자세로 일관한 ‘모호 정권’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천안문 등단과 사드 배치 허용이라는 극도의 냉온탕을 보여준 박근혜 정부 이후 집권한 이 정부는 중국과의 교역량을 지켜냈다. 한국의 대중 무역량은 25.3%이고, 한미간 무역량은 14.9% 정도이다. 

반면 한반도 문제 역할론에 있어서는 문재인 정부의 활동으로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문 대통령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 문제는 북미 간의 문제였고 협상의 중재 역할은 중국이 맡아 왔다. 중국이 북한 얘기를 듣고 미국에 전달해 주고, 미국 얘기는 북한에 전달해 주는 중재 역할을 맡아왔다. 6자회담이 대표적이다. 

사진: 셔터스톡

과 북한의 2글자, 4글자 대화 

2018년 평창올림픽을 하면서 미북간 중재 역할을 한국이 가져갔다. 이때부터 중국이 북한에 보였던 히스테리는 지금도 북한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수모다. 북한은 원래 중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집권 초인 2014년에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은 백년의 숙적이지만 중국은 천 년의 숙적입니다.’ 한참 6자 회담 할 때다. 그 즈음 김계관 전 외상도 코리아 소사이어티에서 연설하길 ‘미국이 우리를 핵무기 몇 기만 용인을 해주면 우리는 미국과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데 협력하겠다’고 했다.  

북한의 중국 불신은 이런 이유다. 중국에게 있어 대만 문제는 북한 문제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래서 중국과 미국간 물밑 협상에서 대만 문제의 양보를 받아내고 북한 문제를 양보할 가능성, 대만 때문에 자기들을 팔아먹을 가능성을 늘 경계한다. 2003년경 참여 정부 초기에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중국은 대만이 독립 국민투표를 못하도록 미국이 압력을 행사한다는 양보를 받아내자 그 반대급부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도록 몰아세웠다. 북한이 반발하자 중국은 단동과 신의주간 송유관을 잠궈버렸다. 중국이 보내온 메시지는 단 두 글자였다. ‘검수(檢修). 검사와 수리를 위해 잠근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일주일 만에 손을 들었고, 이후 북미 회담, 북-미-중 회담이 이어졌다. 

이런 과거 때문에 2019년 트럼프와의 하노이 회담이 깨졌지만, 북한은 중국이 다시 한반도 문제에 주역으로 등장하지 않도록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이 다시 중재자로 들어오면 상전이 둘(미국, 중국), 중재자가 둘(중국, 한국)인 묘한 구도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6자 회담(한, 미, 일, 러, 북, 중), 4자 회담(남북한, 미국, 중국) 모두 효과가 없고, 일단 북미 간에 하고 필요하면 한국을 끼우든지 말든지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이후 중국이 대미 회담을 제안하거나 촉구하면 두 글자 아닌 네 글자를 보내 회답한다. ’입장불변(立場不變)‘ 그러면 중국도 더 이상 얘기를 못 꺼낸다. 

사진: 셔터스톡

집권 연장 위해 대만 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시진핑, 한국 협조 절실 

그러면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판에 영영 들어오지 못하나. 그렇지는 않다. 관건은 시진핑 주석이다. 그의 미래에 중국의 미래가 달려있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그립 정도나 포지션도 시주석의 미래와 밀접하다. 시진핑을 읽는 코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그는 기술만능주의자다. 기술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2012년 11월에 정권을 잡자마자 서둘러서 고안해 2013년에 발표한게 ‘중국 제조 2025’다. 시주석은 기술 개발로 현재 처한 인구 절벽, 한편으로 실업율 증가, 경제성장 부진, 부동산과 금융의 난조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술만능주의다. 기술을 통해 수출과 생산을 늘릴 수 있고 미국의 기술과 특허 견제를 뿌리칠 수 있고, 반도체나 전기차 분야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고, 통신장비나 해킹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을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어마어마한, 무제한적인 지원을 기술 개발에 쏟고 있다. 

또 하나의 코드는 시진핑의 시간관념이다. 그는 20년을 자신의 시간으로 보고 있다. 마오쩌둥은 대만 문제를 푸는 데 있어 ‘돌려받을 수만 있다면 100년 이상이라도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마오의 시간은 1백년이라고 할 수 있다. 덩샤오핑에게 시간은 50년이다. 덩은 ‘한 국가 안에 두 제도’의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캐치프레이즈로 홍콩 문제를 해결했다. 1997년 반환 이후 아직 50년이 안됐지만 홍콩은 중국의 계획대로 착착 본토에 합쳐지고 있다는게 중국 지도부의 시각이다. 시진핑의 20년은 그보다 절박하다. 2012년 집권한 그는 지금까지의 10년을 중국의 경제, 외교, 국방 역량 강화에 힘썼고 이제부터의 10년은 대만 문제 해결에 쓰겠다는 심산을 거의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중공당 역사상 이례적인 20년 연속 집권론의 이론적인 토대다. 그의 3연임이 2022년 10월부터 시작해서 2027년 10월까지이고, 4연임은 2032년에 끝난다. 

성공할까. 베이징의 지식인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 아직까지 3연임에 대한 공개적 반대는 어떤 개인도 못내놓고 있다. 철권통치라고 해도 좋고, 사회주의 중국의 최대 성공 지표가 될 대만 문제 해결을 앞두고 지도부를 밀어줘야 한다는 정서일 수도 있다. 겉의 공기와 다른 흐름이 물론 있다.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 이렇게까지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중국 공산당과 시주석 앞에 돌연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돌발변수가 나타났다.  

중국의 당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순망치한의 가능성 발견  

중국 안전부는 판단을 잘 못 한 것 같다. 러시아의 침공 직전인 2월4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시주석은 푸틴 대통령에게 ‘중-러 우정은 한계가 없다’는 말풍선을 날려줬다. 중국 지도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치지 않을 것으로 봤다는 관측이다. 현실에서 20일 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들어갔다. 

중국 지도부는 2월말 침공 이후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미국이 유럽과 전 세계 동맹을 다 묶어서 러시아를 잡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설령 이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국제무대에서 과거와 같은 러시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다. 적어도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으로서의 러시아는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고, 그렇다면 지금까지 세계가 봐 왔던 미중러라고 하는 삼각 구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이 경우 다음 타겟은 중국이라는게 지금 중국 지도부와 학계의 생각이다. 당장은 어떻게 해서든 러시아가 좀더 버티게 해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과 일대일 싸움은 두렵지 않은데, 중국 vs. 세계의 1대 다자의 싸움은 버겁다. 유럽, 그 중에서도 코로나 19 사태 이후에 등을 돌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새삼 섭섭해 한다. 영국이야 외교상 균형을 잘 잡는 나라이지만 유럽 주요 3국의 미국 편향은 중국에게 아픈 부분이다. 이는 두 가지로 파급효과를 가져 온다.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어정쩡해지면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중재자도 지원자도 아닌. 또 하나는 그래서 한국의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 동아시아 판에서 입장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을 잡아야 동아시아에서 유리하다’는 미중 양국의 패권 경쟁

양국의 호의는 기회이자 위기, 한국만의 분명한 외교노선이 중요

문 정부의 모호외교는 긍정적 수명 다해, 보다 분명한 외교로 나갈 때    

강대국의 제안이 한반도 평화, 통일, 번영에 부합되는가 따질 때 

한국 외교 독트린 3원칙, 평화, 통일, 번영에 도움이 되는가? 

한국은 지금 몸값이 올랐다고 신나기만 할  때가 아니다. 윤석열 당선자 확정 이후 ‘시진핑 주석과의 통화를 한참 뒤로 미루어도 중국이 꼼짝 못하고 있다’는 식의 해석은 어이없음 그 자체다. 오늘의 한국은 국제외교에서 불리한 세 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 다자외교의 전통이 없고, 보수와 진보로 국민이 상당히 나뉘어져 있으며, 북한이라는 특수관계의 한민족 제2국가가 존재하는 묘한 체스판 위에 서 있다. 이 시점에 한국의 외교는 분명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에 동일한 조건을 내놓고 협력과 실리 추구를 병행해야 한다. 한국의 외교 독트린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칙은 세 가지다. 

첫째, 그 일이(그 제안이) 한반도의 평화 안정 유지에 도움이 되는가. 

둘째, 그 일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기반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셋째, 한반도의 지속적인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주도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자세, 어떤 외국이 선택을 요구하더라도 한국은 이 기준을 따를 것이라는 선언, 이를 통한 한국 외교의 예측 가능성 확보가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미중에게 ‘내가 이 카드를 던지면 한국은 분명히 위의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따질 것이고, 그 원칙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함부로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모처럼 확보한 외교적 우위를 계속 유지, 확대하기 위해서는 한국부터 자세를 확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각 부처 별로 미중 간의 대립사안, 한국이 결부된 사안을 놓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 스터디를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이 사안에 있어서 미국의 이익이 여기까지고 중국이 저기까지라면 한국의 이익 극대화하는 부분은 요기까지라는 판단이 필요하다. 이 판단은 위의 세 가지 원칙, 1)평화 안정에 도움 2) 통일기반에 도움 3) 지속적 경제발전에 도움이라는 원칙에 부합되어야 한다. 미중 양측이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고, 한국의 입장을 송곳처럼 세우는 21세기 외교의 일대 필드 매뉴얼(Field Manual) 제작이 시급하다. 지금은 긍정적이지만 비상한 시대다.  


글쓴이 문일현은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했으나 현실에서는 독학으로 배운 중국어로 사회생활의 꽃을 피웠다.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로 있다가 1996년 아시아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중국국가주석이었던 장쩌민 주석을 단독 인터뷰했다. 그 이후로도 중국최고지도자의 외국언론과 단독 인터뷰는 아직까지 없다.1997년 중국 지도부가 비공개에 부친 ‘덩샤오핑 사망’을 전세계에서 최초로 특종보도했다. 이후 한국 김대중정부의 언론개혁을 지원하는 문건을 작성해 관계기관에 제언했다는 이른바 언론개혁 문건 작성 의혹에 휩쓸려 언론계를 떠났다. 베이징에서 학계와 실업계에 몸담았다. 북경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마치고 중국 엘리트 대상의 고등교육기관인 정법대 교수로 재직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여러 기관과 기업, 특파원들에게 상담과 조언을 해주었다. 저서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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