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당선자가 만났다. 역대 최소 득표율차로 승부가 갈리면서 정국은 불안정하고 지지자들은 불만과 불편을 호소하던 와중이었다. 민병두 필자가 대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협치를 주제로 해법을 전해왔다. 칼자루를 쥔 당선자가 미래의 야당 당사를 방문하는 것부터 제시한다. 멀리는 여야 합의에 의한 2024년 개헌안 통과의 아이디어도 있다. 쉽지 않은 얘기들이다. 그러나 정치를 현상 불변의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生物)로 본다면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다. 누군가는 정치를 갈등의 최초 진원지로 만들기 위해 애쓰겠지만, 누군가는 정치를 갈등의 종말처리장으로 만들기 위해 궁리해야 타당하지 않은가. 여야 모두의 길고 큰 사고를 당부해본다. [편집자 주]     

✔ ‘갈등 지수’ 세계 1위 한국 신화는 누가 만들었나

✔ 보수, 진보 모두 고정 지지율만 믿고 갈등 키워 

✔ 총선, 대선 일치하는 2032년 시행 목표로 개헌 추진

✔ 여야 합의로 준비해 내후년 총선에서 공통공약 제시 

3월 28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첫 번째 회동을 가졌다. (사진:연합뉴스)

진영 대변 선동가가 각광, 빨강-파랑 확증편향

2012년 박근혜 대 문재인, 2017년 문재인 대 비문재인의 합, 2022년 윤석열 대 이재명의 대결을 보면 우리 사회가 50 대 50의 진영 대결 사회임을 알 수 있다, 때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콘크리트 같아 보이고, 국회의석수가 크게 차이가 나도 우리 사회는 정확하게 50대 50의 사회이며 그 양상은 정치가 변하지 않는 한 지속될 수 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순실 사건 이전만 해도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했다. 언론이 경탄하고 야당은 위축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최고라고 해서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조어도 생겨났다. 아마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적절하게 민심을 관리하면 그런 지지율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가 진영 대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보수든 진보든 35%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인프라로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자금 한국정치는 갈라치기가 일반화되어 있고, 진영을 대변하는 선동가가 각광받는 사회이다. 유튜브를 포함해 언론도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다. 서로가 접하는 정보가 다르고 확증편향은 심하다. 빨강나라와 파랑나라가 있다. 끼리끼리 모여 얘기한다.

사진:셔터스톡

이명박의 청계천사업과 4대강사업의 희비 쌍곡선

이런 갈등사회에서 무엇을 단독으로 해내기란 쉽지 않다. 설령 어떤 변화를 했다고 할지라도 일시적일 뿐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때의 승리도 거품이 될 수 있다. 2년 전 <피렌체의 식탁>이 마련한 대담에서 나는 민주당이 21대 총선에서 역사적 승리를 거두고 20년 집권을 말하는데, 다음 대선에서는 질 가능성이 크다고 견해를 밝혔다.

50 대 50의 사회에서 누가 다수를 포괄하는가 하는 문제는 국민통합과 포용정치에 달려 있다. 대결정치 진영정치 만으로는 심판론 때문에 집권당이 중간을 포괄하기가 쉽지 않다. 당시 대담에서는 180석의 교만이 정권을 빼앗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사업을 야당과 국민적 반대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결과는 무엇인가. 천문학적인 예산을 낭비하고 결국은 수변공원 정리한 것 이외의 가시적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가장 수질 오염이 심한 강 하나를 선택해서 제대로 된 국민적 합의하에 진행했더라면 지금쯤 우리의 4대강은 가장 이상적인 하수관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으로 평가되는 청계천사업은 한 개의 모델이 열 개, 백 개의 파급과 확산을 가져온 사례이다. 정치는 그렇게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탈석탄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국민적 합의이다. 탈원전, 감원전, 증원전은 진영 대 진영으로 나뉘어진 이슈이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감원전을 서서히 추진하면서 탈석탄 신재생정책을 추진했더라면 더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갈등 최대화로 정권 잡겠다는 유례없던 대선

갈등의 최대화로 정권을 잡겠다는 사상 유례 없는 이번 20대 대선을 보면서 1987년 체제로는 이 나라가 지난 시기에 이룬 성과를 앞으로도 계속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대선에서 후보와 정당들은 표면상 국민통합을 내세웠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역사상 최대득표를 한 야당후보는 역사상 가장 분열적인 여당후보의 덕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이 있어서 그런 결집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당선인도 문재인 정부의 5년 덕을 본 것이지, 국민적 감동으로 선거에 승리한 것은 아니다.

윤석열 당선자의 처음 20일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이것은 이미 여론조사가 입증한다. 0.7%  초박빙 대선 승리의 연장전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선거가 끝나고 인수위를 구성하고 조각을 하는 첫 100일은 당연히 당선인과 새 대통령의 시간이다. 몇몇 상징적인 행동만 해도 국민들은 기대를 하게 된다. 윤 당선자 야당 당사를 방문했으면 어떨까? 어차피 2년 동안은 여소야대 정부인데 야당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굴복으로 비쳐질까, 야당은 어떻게 대응할까? 

처음 며칠 동안은 온통 어디 가서 점심을 무엇으로 먹었는지가 화제가 됐다. 이른바 식사정치다, 이것이 대국민 메시지는 아니다. 나는 차기 정부 관계자들에게 지금 국민은 영안실과 화장장을 못 구해서 난리인데 김치찌개와 피자가 뭣이 그리 중하냐고 우려를 전달했다. 그 후에는 대통령의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이슈 때문인지 식사정치는 사라졌다. 국민은 당선자가 어디를 찾아가고 어디에 있을까를 주시하는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32년 대선과 총선 일치…20년 만의 기회

윤 당선자 주변은 이른바 ‘핵관’들이 포진하고 있다. 대통령과 당선인과의 만남 등 모든 이슈를 핵관들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야당 시절에는 최고의 공격수로 꼽혔던 인물들일 것이다. 지금은 여당이 되었다, 야당 때는 선전전이 최고의 정치일 수 있지만 여당이 되면 진짜 정치를 해야 한다. 윤석열 당선자와 그 주변에서 저격수 정치 체질을 교체하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협치의 정치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대통령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둘러싼 쟁점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나는 국민통합과 수도 이전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싶다. 특히 이번 선거를 보면서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승자는 권력을 독식하고, 패자는 사법처리의 위험에 처하는 치킨게임 식 선거가 앞으로도 반복된다면 역사의 전진은 쉽지 않다. 

지난 20년 동안 쉬지 않고 ‘87년 체제’의 종식과 새로운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개헌론이 제기되었지만 국회 문지방을 넘어서지 못했다. 1987년의 예를 볼 때 개헌은 국민적 요구가 분출해야 가능하다. 다른 길은 정치권의 상층 타협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국민적 요구는 없고 정치권은 권력구조 등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결할 뿐 타협하지 않는다. 권력구조 개편은 차기 선거가 아니라 그 다음으로 미뤄두면 어떨까? 그때 가서는 어느 정당, 어느 후보에게 유리할지 알 수 없으니 이해득실을 잠정적으로 제로로 해놓은 상태의 개헌을 하자는 것이다.

2032년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가 일치한다. 임기종료가 함께 이뤄지는 해이다. 2032년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안의 발효를 전제로 여야가 개헌안을 만들어 2024년 총선에서 국민투표에 회부하면 어떨까. 항상 다음 대선을 목표로 해서(이번에는 2027년) 개헌을 논의하니 될 턱이 없다. 5년 차이일 뿐이다 그동안 세월을 허비한 것에 비하면 5년은 오히려 짦은 기간이다. 

내각제가 되든 이원집정부제, 4년 중임제가 되든 정부와 국회의 구성시기를 일치시킬 수 있다. 이런 것이 국민통합이다. 당선인이 선거결과를 보면서 정치개혁이 정말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절감했다면서 2단계 개헌론을 논의하자고 제안하면 어떨까. 

용산 이전, 갈라파고스 행정수도 ‘대못’

수도 이전 혹은 하나의 행정수도는 반드시 해야 한다. 이미 국회는 이전을 시작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집무실 국회 대법원이 관습헌법상 수도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판결을 하면서 우리나라 정치행정수도가 갈라파고스의 섬이 되었다. 이 상태를 영원히 방치할 것인가. 나는 2년 전 국회의 경우, 국회의 상징인 국회의장실과 본회의장을 제외하고 전부 세종시로 이전해도 헌법재판소 판결 위반이 아니라는 적극적 해석으로 국회 이전의 논리를 제공한 바 있다. 그리고 국회를 4차 산업혁명 캠퍼스로 전환하자는 나의 아이디어는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했다.

대통령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갈라파고스 행정수도에 대못을 박는 것 같다. 행정수도의 일치라는 생각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다. 그 많은 시간과 효율의 낭비를 영원히 방치할 것인가. 어차피 국회가 이전하면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도 현안이 될 것이고, 당분간 세종집무실과 청와대로 이원 운영하다가, 개헌이 되면 청와대는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세종시가 완전한 행정수도로 합체되는 시간표를 갖고 운영해야 한다. 

오는 5월에 취임하면 바로 지방선거가 있다. 그 전에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려면 거대 야당의 벽을 넘어서야 하고, 야당은 새 정부 발목을 잡는다는 인상을 피하면서도 지지자들 눈치를 보아야 하니 검수완박과의 빅딜을 만지작거릴 것이다. 그 후 조각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참사가 일어나면 지방선거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취임 첫 1백일이 이명박 정부의 리바이벌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이런 얘기는 정치게임일 뿐이다.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윤석열 정부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야당이 패배하면 윤석열 정부의 출발이 순조로울 것이다. 타격을 받든, 순조롭든 그것이 국민생활과 나라의 앞길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타격 받든 순조롭든 그것은 정치게임일 뿐

2027년에 우리나라 1인당 GDP가 일본을 앞지른다고 한다, 가처분소득등 여러 지표에서 앞서기 시작했지만 1인당 GDP 추월은 상징성이 크다. 아일랜드는 2003년에 영국을 추월한 것을 축하하며 밀레니엄 기념탑을 세웠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거나 재역전 당할 수 있다. 인구구조가 최악이다. 잠재성장율이 가장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OECD 국가다. 

두 명이 짝을 이루어서 두 명 이상을 낳는 종족보존의 본능이 지켜지지 않고, 개체유지가 본능이 되는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노동개혁, 연금개혁, 부동산개혁, 무엇보다 교육개혁이 우리의 절실한 과제이다. 이것을 누가 하겠는가, 50 대 50의 진영대결 사회에서 이 모든 이슈는 철저하게 대립해있다. 그 대립을 뚫고 개혁의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길은 협치와 국민통합 뿐이다. 보수정부에서 징검다리를 놓은 것을 진보정부가 이어받고, 진보정부가 발판을 만든 것으로 보수정부가 이어가게 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경제, 노무현 정부의 개방경제, 문재인 정부의 데이터경제는 경제의 발판이 되었다. 그것을 발판 삼아 윤석열 정부가 무엇을 하든 하면 좋겠다.

사진:셔터스톡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길은 국민통합

201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민주당은 크게 실의에 빠졌다. 그때 내가 제안한 것이 공통공약 이행이었다. 패자가 먼저 승자의 공약 중에 공통된 것을 함께 추진하자는 제안은 파격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두 후보가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초기에 대기업 임원보수공개, 프랜차이저의 단체교섭권 인정 등 많은 경제민주화법이 통과되었다. 재계가 반발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7월에 경제민주화 종료선언을 했다. 그리고 성과연봉제등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반발과 저항을 샀다.

이제  민주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당장은 지방선거 전략에 몰두하겠지만 민주당을 어떤 방향으로 재편할 것인가. 어떤 자료를 보니 민주당 국회의원 중에 70명이 386세대 운동권 총학생회장 출신이라고 한다. 확실히 민주당의 주류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세대교체를 선언한 후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386세대 운동권세력이 민주당의 주류이자 체질이 되었다.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한 것이 훈장도 아니고 주홍글씨도 아니다. 어떻게 시대의 요구에 응답해왔고 진화해왔냐가 문제이다. 단순히 386의 용퇴냐 아니냐, 불출마냐 아니냐, 여성과 청년의 진출을 얼마나 보장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는 주류와 방향을 만들지 않으면 민주당의 미래도 밝지 않다. 지금 국민의 힘이나 민주당이나 진영정치로 무리를 짓는 당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그들만의 진영놀이와 치킨게임으로 날을 세울 것이다.   


글쓴이 민병두는보험연수원 원장. 전직 3선 의원, 1958년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진학 후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문화일보 정치부장, 워싱턴특파원으로 활약하며 필력을 자랑했다. 2004년 국회에 처음 등원했으며 19대, 20대 총선 때 서울 동대문(을)에서 당선됐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입법과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를 위해 줄곧 노력해왔다. 저서로 <웰빙이 아니라 웰리타이어링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