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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선 칼럼] 아이 키우는 여성에게 돈과 힘을 실어줘야 육아가 해결된다

By | 2022년 3월 18일 | 미분류, 여성, 정책

믿기 어렵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돌봄 지원 정책은 획기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 좋은 정책들에도 불구하고 육아가 힘들다는 원성이 끊이지 않는 이유, 이런 정책들이 잘 활용되지 않는 이유, 워킹맘이라는 용어는 있어도 아무도 워킹대디란 말은 안 쓰는 이유는 같다. 육아가 여성에게만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육아는 더 이상 가정 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정책은 시대를 따라잡았으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엄마가 자녀를 돌보는 세상이 아니라, 부모와 국가가 함께 돌보는 세상. 기존에 보던 것과 다른 형태의 가족도 법과 정책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세상이 되어야 비로소 미래가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편집자 주]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 회사일에 매달렸지만 육아로 일 전념 못 한다며 ‘찬밥’ 되고 결국 일 접어

✔ 능력 인정받던 여성도 출산 후 2류 노동력으로 전락 아예 결혼·출산 안하거나 남성 경제력에 의존하거나

✔ 남성 대다수 육아휴직 쓰고 여성 리더 40% 웃돌게 성평등 기준으로 기업 세제 혜택·지원 여부 결정을

✔ 여성이 남성만큼 권력과 경제력 갖추고 독립관계로 선진국 걸맞은 수준의 성평등으로 ‘삶의 질’ 높여야

사진: 셔터스톡

얼마 전 대화를 나눈 30대 기자는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입소했었는데, 같은 또래에 직장에 다니지 않는 여성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일부 직업을 제외한 정규직 직장에서는 영유아를 키우는 워킹맘이 소수파다. 30대 중반 이상의 남성 중에는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다수지만, 그들은 대개 주양육자가 아니라서 양육 때문에 회사일에 큰 지장을 받는 경우가 적어 워킹대디라는 표현은 별로 쓰이지 않는다. 

“월 300만 원 이상 못 벌면 그냥 집에서 애들이나…”

부동산 재테크 관련 유튜브 <월급쟁이 부자들 TV>에서 진행자 너나위는 젊은 맞벌이 부부들에게 부동산 구입에 따르는 적정 원리금 상환액을 계산할 때는 아이가 생겨 외벌이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친절하게 귀띔하곤 한다. 부부 합산 소득이 월 600만 원이라도 출산과 육아로 아내가 일을 그만두어 소득이 대폭 줄어들 수 있으므로 그 수준에 맞추어서 대출을 받아야 안전하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주말에 애들을 데리고 아파트 놀이터에 가면 나에게 친해지려고 접근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영유아를 두 명 키우니까 당연히 전업맘일 거라고 가정했다. 나로서는 그들과 교류할 시간이 전혀 없어 친해지려는 그 마음을 덥석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가 직장맘이라는 얘기를 듣고 한 여성은 자조적으로 이렇게 얘기했었다. “남편이 나한테 월 300만 원 이상 벌지 못한다면 그냥 집에서 애들을 보라고 했어요.” 그녀의 남편은 아마도 아이돌보미를 고용하는 비용과 가족의 편익을 두루 계산한 후 그런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임신·출산·육아·돌봄 지원 뒤지지 않는데 현실은 독박 육아

우리나라의 임신·출산·육아 지원 제도, 어린이집·돌봄교실·방과후아카데미 등 돌봄 지원 정책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획기적인 수준이다. 부부 각각 1년씩 육아휴직을 할 수 있고, 추가로 1년씩 근무시간을 줄이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아이 한 명에 총 4년간, 두 명이면 총 8년간 아무 무리 없이 키울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육아가 힘들다는 아우성은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일까? 

육아가 여성에게만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 회사에서 소수파인 상태에서 육아 지원 제도를 여성만 주로 활용하니, 날로 극심해지는 경쟁에서 뒤지고 동료들의 압박에 시달리다 보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여성도 출산 후 이류 노동력으로 전락하고 나면, 남편의 경제력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자신은 이미 글렀고 남편이라도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진하도록 밀어주어야 가정 경제에 희망이 생기므로 여성 스스로 육아와 가사를 도맡으며 남편의 커리어를 지원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여성해방으로 여성이 얻은 것은 더 많은 일 뿐’이라는 냉소와 함께 여성 스스로가 페미니즘에 등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이미지: 셔터스톡)

결국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벌 받는 사회에서 여성의 선택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되기 쉽다. 앞서 언급한 30대 기자는 젊은 신입 여기자들은 자신의 세대보다 결혼과 출산에 훨씬 더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치열한 언론고시 끝에 일간지에 취업한 여성들은 자신의 경력을 위태롭게 할 만한 일은 결코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만 해도 괜찮은 직업 중 여성에게 허락된 것은 공무원, 교사, 간호사 같은 일부 직종에 한정되었고, 일반 기업에서는 결혼과 동시에 퇴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임신해서 배가 부른 여성이 어떻게 상사의 커피 심부름을 하냐며 조기 퇴직을 당연하게 여기는 여성을 본 적도 있다.

여성해방으로 여성이 얻은 건 오직 일…페미니즘 등 돌려

그런데 한국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90년대 이후에는 여성이 사회 전반에 진출하게 되었다.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이 당연해졌고, 잘나가는 전문직 여성 캐릭터가 TV 드라마 주인공을 맡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IMF 경제위기 전후해서 사회에 진출한 내 또래들은 경제가 회복된 후에도 여성이든 남성이든 직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결혼과 출산으로 일찌감치 직장을 그만둔 여성들도 많았지만, 내가 일하면서 알게 된 내 또래 여성들은 대체로 여성의 경제활동을 당연하게 여기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더라도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나이까지 경쟁이 심한 업계에서 버틴 여성들은 독종이거나 능력을 인정받은 여성들이므로 일반 여성들과 똑같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다른 현상을 접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알게 된, 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여성 중에는 결혼과 출산에 별 관심 없는 경우도 많았지만, 반대로 결혼이나 임신과 동시에 퇴사하는 경우도 흔했다. 최근에야 여성에게 간신히 허락된 버젓한 정규직 일자리를 여성 스스로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육아와 회사일을 병행하려고 노력하다가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이나 임신 후 바로 퇴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마처럼” 자신의 경력이나 꿈을 포기하고 가족만을 위해 살지 않겠노라고 결심한 여성들은 직장에서 인정받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여전히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며 회사일도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새 시대의 여성상은 이후 세대 여성들에게 역할모델이 될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한 시간은 전혀 없이 그렇게 쫓기며 살아도 일에만 전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찬밥 신세가 되고, 힘겹게 버티다가도 육아 문제로 한순간에 커리어를 접게 되는 선배 여성들은 후배 여성들이 별로 닮고 싶은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성해방으로 여성이 얻은 것은 가정과 회사에서 죽도록 일만 하게 된 것이라는 인식이 여성들을 페미니즘에서 등 돌리게 만들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의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되기 전에는 페미니즘에 무관심한 여성들이 다수였다. 나는 페미니즘 서적을 기획하자는 말을 했다가 나보다 훨씬 젊은 여성에게서 “요즘 세상에 그런 책을 누가 봐요?”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사진: 셔터스톡

그 많던 하버드 경영대학원 여성 동문은 다 어디에?

미국의 문화적 지형도 어느 정도 우리나라와 비슷했던 것 같다. 지금은 메타로 사명을 바꾼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여성 동문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서 <린 인 Lean In(2013)>을 완성했다. 이 책은 여성학과 사회학의 연구를 종합해서 비즈니스 세계에서 여성의 지위와 현황을 조망하고, 여성들에게 앞으로 몸을 기울여(lean in) 적극적으로 이 세계에 참여하고 문제 해결에 달려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샌드버그의 여성 동문들 상당수가 아이를 키우느라 전업주부가 되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전업주부로 살기로 했다면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녀들이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할 때는 자신이 전업주부가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고, 나중에 전업주부가 된 것도 스스로 원해서라기보다는 대개 남편 대신 육아를 책임지느라 커리어를 포기한 것이었다. 

<린 인>에서도 샌드버그는 여러 데이터를 인용하며 젊은 여성들이 보수화된 현실을 지적했다. 여성의 대대적인 사회 진출이 지위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여전히 육아와 가사가 여성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보니, 여성들 스스로 전통적인 성 역할에 안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은 전 세계적인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과 함께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 변화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페미니스트건, 페미니스트가 아니건 젊은 여성들은 예전처럼 순진한 이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현실의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들 상당수는 여성이 커리어와 육아를 병행한 지난 수십 년간 삶의 질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음을 깨닫고, 커리어든 아이든 하나만 선택하기로 했다. 결혼이나 출산을 안 하거나, 아이를 선택하는 대신 처음부터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하거나.

한국에서 이 같은 선택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수준으로 급감했다. 둘째, 결혼과 육아에 긍정적인 여성이 남성보다 아주 적은데, 그중 상당수가 남성의 경제력을 과거보다 훨씬 더 중시하면서 남성의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 즉, 결혼하고 싶은 남성은 과거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경제력이 필요하다.

미국은 이민자 비중이 높고 이민자들의 출산율이 높아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출산율이 높은 데에는 기독교 문화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또 강력한 차별 금지 정책, 능력 중심 문화의 영향으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라도 모든 난관을 스스로 극복하면 차별을 별로 받지 않는 사회 풍토로 인해 문제의 양상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것 같다. 

그렇지만 미국 역시 결혼 시장에서 남성의 경제력이 중시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핀란드 출신으로 미국 남자와 결혼해서 뉴욕에 살고 있는 아누 파르타네는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북유럽 사회가 행복한 개인을 키우는 방법(2016)>에서 “미국인 여성 90%가 경제적 불안을 느낀다”는 통계를 인용하는 한편, “미국에서 결혼은 금융 합병 행위”라며 배우자를 고르는 조건으로 경제력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미국 여성들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에 따르면 북유럽에서는 개개인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므로 배우자의 경제력에 종속되지 않는다. 북유럽의 행복 지수가 높은 것은 독립적이고 강한 개인들이 서로 평등한 관계를 맺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은 벌기만 하고, 한 사람은 쓰기만 하면

지금은 남녀노소 모두 소비 성향이 높아져서 생활비가 많이 든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우리나라도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활비가 쪼들린다. 그런데 영유아를 키우는 여성들은 경제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이를 낳을 의향이 있는 여성들은 처음부터 경제력이 우수한 남성들을 배우자로 선택하려는 경향이 심해졌다. 커리어를 포기한 대가, 그로 인한 평생 소득의 감소분을 보전받으려면 돈을 잘 벌고 재산이 많은 남성과 결혼해야 한다. 

얼마 전 한 여성이 남편을 약물로 살해했다고 의심되는 사건이 있었다. 별로 여유 있어 보이지 않는 시아버지는 결혼한 아들에게 수억 원이 넘는 돈을 주었다. 또한 남편은 급여가 월 300만 원 미만이었는데,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선사하기 위해 투 잡을 뛰면서 주말에도 전혀 쉬지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 아내가 자신을 속이고 바람을 피우며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경제력이 좋은 남편의 기준이니,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무리를 하게 되기 쉽다. 게다가 한 사람은 벌기만 하고, 한 사람은 쓰기만 하면, 그런 관계는 쉽게 착취 관계로 변질된다. 북유럽이라면 맞벌이를 했을 테고, ‘아들바보’로 불리던 그 남성은 사랑하는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며, 아내는 남편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재산을 탕진할 시간과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30대 남성 상위 10% 혼인율, 하위 10%의 4배

과거에는 누구나 가정을 가질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아무 남성이나 가정을 가질 수는 없다. KBS <[앵커의 눈] 소득 빅데이터 분석해보니…결혼도 ‘빈익빈 부익부’>(2019년 3월 20일)에 따르면 30대 남성 중 소득 하위 10% 남성에 비해 상위 10% 남성의 혼인율이 4배나 높았다. 남성의 혼인율은 소득에 정비례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30대 남성 절반이 미혼이다. 

동거부부 비율이 매우 낮고, 30대 이상에서는 주로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하며, 가족을 제외하면 소속감을 느낄 만한 정서적 공동체가 거의 없는 현실을 볼 때, 수많은 남성이 정서적 위안을 얻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점점 더 우리 사회의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 

경제력으로 가치를 평가받고, 데이트 비용과 주거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해야 하며, 고소득자가 아니면 결혼하기 힘들고,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거의 전적으로 떠맡게 된 현실에 대해 많은 남성이 불만스러워하며 페미니스트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남성들이 고통받는 건 페미니스트 탓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의무를 지고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생계전선 나선 전업맘도 가정과 사회 홀대

21세기에도 아침 드라마의 소재는 엽기적인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다. 현대의 기혼여성이 아직도 시부모의 전근대적인 지배를 받는 주된 원인은 남편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혼 적령기 남성 중 수입이 많거나 재산을 많이 축적한 남성이 드무니 시집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시집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원치 않는 간섭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악습과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들은 자연히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부하게 된다. 

남성의 경제력을 기대하고 결혼하더라도, 결혼이 여성의 생계와 노후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높은 이혼율로 한부모가족이 증가했지만, 여성가족부의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 조사>에 따르면 거의 절반 가까이 정부 지원을 받을 정도로 한부모가족의 경제 사정은 좋지 않다. 남성이 실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한 후, 과거 ‘동반 자살’이라고 부르던 ‘가족 살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평생에 걸쳐 온 가족을 충분히 부양할 만큼 많은 수입을 올리는 남성이 드물기 때문에, 전업맘들도 상당수 아이가 자란 후 다시 생계 전선에 뛰어든다. 그리고 주로 비숙련·저임금·시간제·비정규직·가족 사업장 일자리에서 적은 대가를 받으며 가정과 회사에서 홀대받는다.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 지금도 아주 많은 빈곤 여성 노인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이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와 재정의 문제로 직결된다. 

워킹맘의 육아 동반자가 친정엄마라면 결혼을 왜 하나

나는 비혼으로 두 아이를 입양해서 키웠다. 아이를 입양하기 전에도 주변 워킹맘들을 통해 아이를 키우는 데 남편보다 엄마를 비롯한 친정 식구가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남편보다 친정엄마가 더 필요하다면 결혼할 이유가 있을까? 그냥 처음부터 원가족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편이 더 낫다. 남편과 평생 살면서 육아를 할 때만 친정 식구의 도움을 받고 그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건 친정 식구들을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친정 식구가 가부장제를 보완하는 무상 노동을 제공하는 것은 부당하다. 

나는 엄마를 비롯한 원가족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키웠다. 나 역시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내 원가족과 내가 입양한 아이들은 서로 돌봄을 주고받는 진정한 가족이다. 나는 사랑이 넘치는 나만의 모계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웠다. 현재의 가족제도가 해법이 아니라면 누구나 자신이 정말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아이 낳고 키우는 사람들이 경제 주역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너무나 낮아서 이대로 가면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노인 인구가 급증해서 재정 부담이 급격히 높아지는 한편, 돌봄 대란이 이미 시작되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출산율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도 인구 감소로 장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일본은 경제활동인구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생산인구 감소에 대응하고 있다. 노인과 여성의 경제활동을 장려하며 산업 규모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로선 출산율이 높아질 리도 없지만, 출산 연령 여성인구 급감으로 백약이 무효다. 재정 수요와 복지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생산인구와 세수를 최대한 확보하려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람들이 경제의 주역이 되는 사회,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회를 만들어야 미래가 있다. (적극적인 이민 정책도 필요하지만, 이 글의 논의를 벗어나는 문제다.)

엉뚱한 이대녀-이대남 젠더 대립 기괴한 상황도

돌봄 노동을 여성에게만 전가하고 사회에서 합당한 대우를 하지 않아 미래가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 와중에 엉뚱하게도 이대녀, 이대남의 젠더 대립이라는 기괴한 상황마저 진행되고 있다. 아이가 있는 남성들 대다수가 육아휴직을 써야 하고, 각 조직의 리더 중 여성 비중이 40%를 넘어야 한다. 노르웨이에서는 사회 각계에서 성평등이 진전된 후에도 사기업의 여성 임원 비중은 좀처럼 늘지 않자 여성 임원 할당제를 실시했다. 경로 의존성의 폐해로 비즈니스 관행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성평등을 기준으로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과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제라도 밀린 숙제를 하자. 여성이 남성만큼 권력을 갖고 경제력을 갖춰야 남성도 과중한 부담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아를 계발할 수 있다. 선진국에 걸맞은 수준으로 성평등이 진전되어야 삶의 질이 향상된다. 각자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한 여성과 남성이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의 미래가 열린다. 


글쓴이 백지선은
20년간 출판 편집자로 일했다. 최후의 모계사회로 알려진 중국 윈난성 모쒀족에 대한 기사를 읽고 막연히 현대판 모계사회의 가능성을 꿈꾸다 2010년과 2013년, 차례로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으며 이 이야기를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결혼도 출산도 아닌, 새로운 가족의 탄생>에 담았다. 다른 저서로 유유출판사의 <편집자 공부책 시리즈>, <경제경영책 만드는 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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