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끝났지만, 정치도 삶도 경제도 계속된다. <피렌체의식탁> 김현종 발행인이 선거 과정과 이후에 대한 생각을 편린 형태로 정리했다. 윤석열 당선자에게는 승리의 기쁨만큼 숙제가 크다. 보수도 진보도 눈앞의 과제를 잘 처리하면 변화에 성공할 것이고 그 결과 살아남겠지만 시대에 게으르면 도태, 축출될 것이라는  게 발행인의 생각이다. [편집자 주]

✔ 여당의 정책상 패착은 인간의 경제적 욕망을 간과한 것

✔ 감정적으로는 586 세대의 오만함이 민주당에 등 돌리게 된 계기

✔ 가장 분열된 시기에 분열로 당선된 이가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과제이자 아이러니

✔ 여가부 폐지나 구조적 성차별, 소수자 권리 등에 있어 납득할만한 입장과 정책 내 놓아야

(사진:셔터스톡)

진흙탕에서 진흙탕으로

축구로 치면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야당과 윤석열 당선자가 신승했다. 경기는 처음부터 정권교체론이 우세한 가운데 치러졌다. 야당팀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치른 것이다. 야당팀이 2대1로 이기던 후반 막판에 동점 골이 터져 한때 오리무중이었으나 연장전에서 한 골 추가해 3대2로 간신히 이긴 경기다.

경기장은 진흙탕투성이였으며, 양 팀 선수들은 경고와 퇴장을 밥 먹듯이 받은 험한 시합이었다. 승리를 위해 지난 시즌까지 ‘팀 민주당’에서 주전 공격수였던 윤석열 선수가 야당팀에 스카우트되었다. 거친 플레이로 경고가 누적돼 하마터면 퇴장당할 뻔한 상황에서 결승 골을 넣었다.

후반 교체 투입한 안철수가 마지막 득점에서 어시스트를 했는지, 패스미스로 여당팀 이재명 선수에 잠시나마 단독 드리블을 허용했는지는 해석이 분분하다. 주장인 이준석 선수는 안철수 교체 투입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팀 내에는 나이도 어린 주장이 그간 지나치게 완장을 휘둘러왔다는 비판이 있다. 주장 이준석과 교체선수 안철수, 둘 다 언행이 마땅치 않다는 반발이다.

서울의 힘, 부동산 실패?  서울의 자본주의화?     

서울의 표차는 전국 표차와 거의 비슷하다. 전국 24만7천 표 vs. 서울 31만 표. 지역별 계가로 보면 수도 서울이 손을 들어준 만큼 윤석열이 이겼다. 패자 입장에서는 오래오래 곱씹어볼 부분이다. 이번 결과는 서울 시민의 심리적 중심축이 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뀐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고 있다. 서울은 오랫동안 진보- 민주주의의 보루였다. 두 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지난 30년간 서울시민은 정치 문화적인 측면 외에 경제 소득 측면에서도 액면 그대로 특별시민이 되었다. 서울은 전세도 몇억 있어야 살 수 있는 곳이다. 최고의 학력과 경제력을 가진 사람만 사는 곳이 된 것은 아닌지? 반면 지난 30년간 서울에서 경기, 인천으로 많은 중산층 또는 중하층 가구, 가족의 유출이 있었다. 중국식 표현을 빌리면 하방(下放)이다. 그 규모는 최소 3백만 명 이상으로 보인다. 서울시민의 양(인구)은 비슷한데 질은 많이 달라졌다.

둘째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다. 문 정부가 평등에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을 편 것이 서울시민의 ’민주주의적이지만 자본주의적인‘ 성향과 충돌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다음 인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정부 3기, 86 정권 2기이자 동시에 ‘경제정책을 진보 쪽 주장으로 실천한’ 최초의 정권이다. 최저임금의 급진적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부동산 보유세와 양도세의 대폭 인상, 적극적인 재정정책, 건강보험의 급여화 확대,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적용 확대, 사회보장 제도의 대폭 확대, 탈원전 정책, 노후원전 폐쇄 등이 모두 해당한다.”

서울시민의 자본주의화, 보수화라기보다 경제정책을 채택하고 구사하는 데 있어 현 정권이 인간의 경제적 이기심을 간과한, 정책 실패에서 선거 패배가 왔다는 해석이다.

2월14일자 피렌체의식탁 정국방담, <막장드라마같은 한국 대선, 끝나도 끝이 아니라는데> 바로 가기

호남이 기가 막혀

민주당에게 호남은, 반대로 호남에게 민주당은, 그 존재를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픈 손가락’이다. 서로가 적당히 의존하고 적당히 인정하는 그런 구도를 희망해왔다. 이번 선거 결과는 약무호남, 시무민주, ‘호남이 없었더라면 민주당이 어디 있느냐’는 가혹한 현실을 공개해버리고 말았다. 영남권 5개 광역시도에서 윤석열 후보가 얻은 표와 호남권 3개 광역시도에서 이재명 후보가 얻은 표의 차이는 20만 표에 불과하다.

이 지역에 살고 있거나 지역 연고를 가진 기성세대에게 이른바 호남이라는 딱지는 ‘목포의 눈물‘처럼, 정서적 코드다. 박정희에 의해 최하위 지역 카스트로 추락한 것도 서러운데 1987년과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완벽한 호남 고립의 선거구도가 나타났다. 담임에게 얻어맞고 다른 아이들로부터 왕따당한 것 같은 심리구조는 이 지역 기성세대에게 여전히 트라우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번 대선은 공개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를 얼떨결에 드러낸 성격이 있다. 윤석열이나 안철수에게 30% 정도, 이재명에게 70% 정도 줘서 ’호남도 몰표로 똘똘 뭉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안철수가 윤석열 쪽으로 가면서 ’이재명은 멀고, 윤석열은 싫다’는 정서가 드러나 버린 것이다.

이준석과 2030

상당수 젊은 여성들이 차선으로 이재명을 선택했으나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다. 이준석 대표는 2010년대 강남역과 혜화역 집회로부터 시작한 흐름에 반대 흐름을 만들려 했다. 남자를 붙잡고 여자를 내침으로써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젠더 간 표가 엇갈리면서 2030 세대의 위력은 중화되었다. 개표 결과는 4050과 6070의 대결처럼 돼버렸다.

젊은 여성들에게 이번 선거 결과는 실망스럽다. 여야를 막론하고 오십보백보로 보였다. 가급적 끼지 않고 싶었는데 막판 국힘당의 갈라치기에 분노해 참가했다가 결과마저 실망스럽게 나왔다. ‘괜히 관심을 가졌다‘는 반응이 많다. 이 부분, 앞으로의 열쇠는 윤 당선자가 쥐고 있다. 여가부 폐지나 구조적 성차별, 소수자 권리 등에 있어 납득할만한 입장을 내지 못한다면 어디에선가 지지는 줄어들고 반대는 늘어날 것이다.

윤석열, 모순의 세 꼭짓점

대부분 여론조사 결과처럼 5~6%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더라면 부담이 덜 할텐데 ‘가장 애매한 환경에서 가장 분명한 정치’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윤당선자 얘기다. 1천 명 중 8명 차이로 당락이 갈린 선거는 민심이 대나무처럼 양쪽으로 나란히 쪼개진 걸 의미한다. 승리에 이르기까지 야당과 그 후보는 여당보다 훨씬 갈라치기에 주력했다. 특히 젠더와 세대 측면에서. 이른바 ‘남의 살은 포기하고 내 살은 철저히 챙기자’는 집토끼 최대화 작전을 구사했고 결과로는 성공했다.

당선 이후 누구보다 통합에 앞장서야 하는 처지에 직면했다. 정리하면 1) 가장 분열된 시기에 2) 갈라치기에 가장 앞장선 후보가 3) 당선과 함께 통합의 정치를 실현해야 하는 짐을 진 것이다. 아마도 윤캠프 내의 온건론자들은 남북전쟁 당시의 미국 정치과 링컨을 들고나올지 모른다.

간발의 표 차로 승리했기에 당선 후 첫 발자국을 통합 쪽으로 틀어야 하는 이유가 더 커졌다. 물론 반대 방향도 존재한다. 소신껏 하겠다며 통합보다는 정치 경제 사회 정책을 ‘바로잡는데’ 주력할 수도 있다. 그의 선택이다. 외교·안보 쪽에서의 ‘정책 바로잡기’까지 시도한다면, 세상은 Anything but Moon으로 해석할 것이다.

태생적 모순, 치받음으로 일어선 자

윤 당선자의 모순은 하나 더 있다. 인사다. 통합, 통합 말은 하지만 집권 세력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리와 권력의 나눔이다. 180대 110 정도의 양당 의석수 차이를 보더라도, 막판 합류해 국무총리 내정설이 있는 안철수를 감안하더라도 통합의 정치는 더욱 필요하다. 윤석열은 자기 사람이 아닌 사람을 주요 보직에 임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 모순이 있다. 대통령이 지명해 파격적으로 요직에 임명되었음에도 그 대통령에게 들이대고 정치로 온 사람이 윤석열 당선자다. 요직 인사를 어떻게 풀어낼까. 한동훈은 검찰총장으로 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미 유시민은 ‘윤석열과 최재형의 사례로 보건대 다음 대통령은 충성심, 코드를 더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지적한 적이 있다. 인재풀이 더 좁아질 수 밖에 없는, 불신의 통치를 지적한 것이다.

칼과 돈의 분리가 방법?

이 문제는 현실적인 이해관계이기 때문에 이긴 쪽이든 진 쪽이든 모두 지켜보고 있다. 윤 당선자가 이 문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한 칼에 자르는 해법 제시와 함께 정국의 기선을 제압할지, 노력한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제자리걸음일지 다 쳐다보고 있다. 아마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인선이 첫 번째 갈림길이 될 것이다. 2007년 이명박 당선자처럼 무색무취한 민간인(이경숙 숙대 총장)을 임명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의 해결은 아닐 것이다. 조각 때쯤에는 칼(권력 기관장)과 돈(기재부 등 경제부처와 여타 행정부)을 구분해 칼은 내 사람에게 맡기고 돈과 일반 행정은 탕평인사에게 맡긴다는 내부 방침을 세울 수도 있다.

보수의 실력

윤당선자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오늘 한국에는 보수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있다. 과연 실력이 있는가. 억지 쓰거나 우기지 않고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자세를 취하려 하는가. 나아가 약자나 소외계층에 대한 관용(tolerance)이 있는가 등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궁금한 점은 보수의 실력, 능력 부분이다. 막연한 정권교체 심리가 구체적 정권심판 심리로 발전하면서 야당에서 당선자가 나왔지만 여러 조사에서 능력 지수는 이재명 후보가 더 높다. 땅을 파고 들어가 보면 현안이란 ‘넘’은 다 고구마 줄기처럼 다 얽혀 있다. 경제와 외교·안보, 국내정치, 사회, 문화정책이 다 따로가 아니다. 잘할 수 있을까? 2022년은 행정부와 입법부 간 밀월을 요청할 수도 있고 받아줄 가능성도 있다. 연말 안에 실력을 보여줄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복원할 수 있을까? 업무 파악과 근태에서 좋은 점수가 아닌 보수 출신 전직 대통령을 겪어봤기에 걱정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웰컴 투 헬

21세기 들어 집권자에게는 ‘재임 중 중도하차’라는 충격적 그림자가 늘 어른거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 의결을 받았으나 헌법재판소 판결로 벗어났다. 그는 결국 자살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 광우병 촛불을 혹독하게 겪었다. 퇴임 후 감옥에 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의결과 헌재 결정에 따라 탄핵되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감옥도 갔다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중 탄핵 시비는 없었으나 퇴임 후 어떨지는 두고 보아야 알 일이다.

역대로 보면 2등으로 떨어진 사람보다는 1등으로 당선된 사람이 자리에서 끌어내려지거나 감옥에 갈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권력자란 그런 자리다. 윤석열 후보는 이제 당선자의 입장에서 현대사의 장면들을 되새김질해 볼 필요가 있다. 반복이냐, 새 관행이냐. 일단 공은 당선자에게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1년은 이 점에서 주목받을 것이다.

민주당과 586의 동일 티켓은 언제까지 

이번 선거가 남긴 또 하나의 질문은 이제 야당이 된 민주당과 586이 지금처럼 동일 티켓으로 함께 가는 것이 서로에게 바람직한가 하는 점이다. 2000년 16대 총선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진출한 386 운동권 세대는 20년이 지나 586으로 불린다. 대개 학생회장이나 학생회 간부를 지냈고, 지금은 당의 등뼈(backbone)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년 586 세대가 민주화를 향한 단일대오로 사회와 소속 정당에 기여했다면, 즉 자산이었다면, 앞으로 20년은 여전히 자산이 될 수 있나, 부채로 전락할까? 부채라면 언제부터 부채일까? 진영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빠진다면, 그들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부동산이나 진보 일변도의 정책들 때문에 패배했다는 건 51%의 진실이다. 이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586으로 대표되는 세력의 싸가지, 내로남불을 이유로 든다. 여기에는 다른 세대, 다른 집단을 인정하지 않는 586의 몸에 밴 우월감이 있다. 586 민주화 세대는 산업화 세대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1970년대 학생운동권 세대, 긴급조치 세대의 기여에도 관심이 없다. 이러한 살부(殺父)의 태도는 오늘날의 2030 세대들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