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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2. 05.13, 00:00

[신동성 칼럼] 러시아의 지정학과 우크라이나의 동서분단 가능성

By | 2022년 3월 7일 | 국제, 미분류, 지정학개론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한국은 약자인 우크라이나쪽 시각과 미국, 영국등 서방 언론의 시각을 많이 청취했다. 필요하지만 충분치 않은, 정보의 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침공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폭력국가다. 그러나 러시아가 왜 먼저 주먹을 들게 되었는지 과거의 스토리와 현재의 손익을 파악하면 미래를 점치는데 도움이 된다. 행위주체의 입장이자 소수 시각이다. 신동성 필자는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분단하는게 러시아의 최소 목표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목표설정을 뒷받침하는 러시아내의 신 유라시아주의와 그들의 지정학적 인식을 정리해봤다. [편집자 주]

✔ 러시아의 광활한 초원은 외부 침략시엔 치명적인 약점

✔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정학적 관점에서는 예견된 재난

✔ 우크라이나를 차지해야만 러시아는 지정학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어

✔ 푸틴의 야욕은 최소 우크라이나 분단을 획책하는 것

우크라이나 전도. (사진:셔터스톡)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 NO라고 말하는 푸틴

푸틴은 3월 6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번 침공의 목적이 우크라이나 국가 전체를 통제(control)하는데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2월 22일, 푸틴의 대국민 연설은 러시아 국민의 상당수와 푸틴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들의 시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시경같은 연설이다. 푸틴은 침착하면서도 격앙된 어조로 자신이 준비한 대국민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정체성을 부정하고, 이 나라는 볼셰비키 혁명 당시 잘못된 공화국 연방제 정책과 레닌과 혁명가들의 잘못된 유토피아적 국가관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푸틴은 또 소비에트 해체 당시 구 소련 공화국들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 1989년 소련 공산당 강령을 비판하며, 고르바초프의 이상적인 국가관이 불러온 소련 해체와 국가 분열이 초래한 지정학적 재앙을 상기시켰다. 한마디로 ‘독립국가 우크라이나’는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다. 이어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노선을 비판하며, 키예프(키이우) 정부의 탐욕과 무능함이 우크라이나 동부 공업지대의 경제적 몰락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경제적 몰락, 정치적 혼란, 실업률 증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은 나토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대립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2021년,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은 흑해 연안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령 오차코프에 나토(NATO)군 해상작전기지를 신설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대러 군사훈련을 명목으로 2만 3천 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병력이 나토와의 군사 훈련에 참여했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가진 지정학적 가치와 러시아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1990년 사회주의 붕괴 이후 나토가 모스크바와의 약속을 어기고 폴란드와 발트 3국, 불가리아, 루마니아, 북마케도니아 등 구소련의 서부지역에 광범하게 확장해오고 있음을 지적하며, 만일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나토의 폭격기가 언제라도 러시아 서쪽과 중앙부의 볼고그라드, 카잔, 사마라, 아스트라한 등 내륙 도시들을 위협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INF(중거리핵전력협정) 탈퇴를 지적하며, 만일 나토 또는 미국 단독으로 우크라이나에 중거리탄도미사일, 군용 레이더와 같은 군사시설을 배치할 경우, 러시아의 후방인 우랄 공업지대까지 적성국 탄도미사일의 타격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 때문에 푸틴은 자신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방어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강변함과 동시에 이 같은 군사 작전이 러시아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보장조차 거부한 나토와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노선에게 있음을 주장했다.

러시아 주변의 광활한 평원은 ‘침략의 고속도로’라는 역사의 교훈

이상은 푸틴의 연설문을 간추린 것이다. 이 연설을 통해 우리는 푸틴과 그의 측근들이 우크라이나의 국가 정체성을 부정함과 동시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적 일체성을 강조하고, 우크라이나라는 국가 자체가 역사적 뿌리가 없는, 레닌을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의 유토피아적 세계관이 만들어낸 나라라고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상 강대국 엘리트 계층이 자국 주변부에 위치한 특정 민족을 자국의 역사적 영토로 규정하고 주장하는 예는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베이징의 엘리트 계층은 역사적으로 독립된 몽골의 존재를 인정하기보다는 자국 영토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저버리고 있지 않으며, 모스크바의 유라시아주의자들 또한 자기 나라를 심장지대 주민들(루스·투르크·몽골)의 연합제국으로 규정하며, 몽골-투르크 여러 민족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주장이 아닌 군사적인 힘을 이용해 이 같은 믿음을 실현하려는 실제 사례는 냉전 종식 이래 찾아보기 힘들다고 단언할 수 있다.
비록 세계인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지만, 지정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이 보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예고된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유라시아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안해 근대 지정학의 창설자로 꼽히는 영국의 해퍼드 매킨더(1861-1947)는 여러 편의 논문을 통해 과거 심장지대(heartland, 대체로 유라시아의 내륙지대를 의미함)를 하나로 조직한 몽골같은 유목제국을 예로 들어 자연방어선 없는 대초원 지대의 위험을 강조했다.
매킨더는 몽골군이 헝가리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우크라이나가 포함된 볼가강에서 루마니아의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이어지는 대초원 지대 때문이었다고 해석했다. 차후라도 유라시아 내륙의 심장지대에서 출현한 군사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유럽 대륙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와 카프카즈 남부지대까의 평원을 분쇄지대(Crush zone)화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실제로 러시아 내전 당시, 우크라이나, 카프카즈 남부지역은 서구 열강이 지원하는 백군 장군들과 민족주의자들이 통치하는 군소 정권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으며, 트로츠키가 이끄는 적군은 십여년 싸움 끝에 소련의 서남쪽 국경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만일 심장지대 제국의 유럽 진출을 방관할 경우, 이들은 흑해를 내해처럼 활용해 터키 중동부의 아나톨리아 지역과 발칸반도 여러 나라까지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며, 심지어 헝가리 대평원도 위험하다고 예측한 바 있다.

지도를 보면 넓은 평야로만 이루어진 러시아 서부 지형이 확연히 보이며 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욕심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 (사진:셔터스톡)

우크라이나, 목에 들이댄 비수인가? 침공 방지의 범퍼지대인가?

미국의 니콜라스 J. 스파이크먼(1893-1944)은 현대전에 있어 폭격기에 의한 공습 가능거리에 착안해 지정학을 펼쳐냈다. 그는 스탈린이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1천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카잔, 사마라, 볼고그라드 등지에 대규모 군수공장들을 건설한 이유가 바로 현대 공중전의 지정학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했다. 스탈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공습 유효범위인 800마일 밖의 지역들에 탱크, 대포, 비행기 생산공장을 이전, 신축했다. 우랄 공업지대가 바로 이러한 지정학적 사고의 산물이다. 스탈린은 이어 동유럽 점령지에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그 결과는 구 동독령에 가까운, 독일 중앙부를 남북으로 흐르는 베저강으로부터 독-소 국경선과 일치하는 커즌라인(Curzon Line)에 이르는 대평원 지대를 나토와 소련 사이의 완충지대로 삼았다. 동독, 체코, 헝가리, 폴란드는 구 소련 입장에서는 나토군의 탱크가 동쪽 소련 땅으로 밀고들어올 경우 시간을 벌고 전투력을 떨어뜨리는 범퍼지대인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또한 이 같은 영토 면적과 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푸틴이 지적한 바와 같이 나토가 우크라이나 하르코프에 중거리탄도미사일 기지를 둘 경우, 모스크바를 비롯한 볼가강 유역 전역을 위협할 수 있으며,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 차 타고 반나절 길을 가면 볼가강 유역 하류에 위치한 상징적 도시-볼고그라드(구 스탈린그라드)에 도달할 수 있다. 모스크바로서는 과거 러시아 제국 영토 서남부에 자리잡은 이 거대한 국가 우크라이나가 서방에 기울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할 수밖에 없으며, 키예프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무력을 써서라도 자국의 안보 이익을 관철시키려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거칠데 없는 광활한 평원지대는 이해관계 국가들에 침략의 고속도로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위협감은 고속도로 옆에 수도나 핵심지역이 자리잡은 국가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한편으로 지정학에는 자연 국경 논쟁이 있다. 미국의 언론인으로서 클린턴과 아들 부시 대통령의 자문관 역할을 하기도 한 로버트 카플란(1952-)는 자연 경계역할을 하는 산맥과 거대 하천이 없는 동유럽 대평원 지대의 자연환경적 특징을 예로 들며 이 같은 지정학적 요인이 러시아로 하여금 국가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카플란에 반세기 앞선 스파이크먼같은 사람은 하천보다는 늪이 자연국경, 차단변 기능에 충실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산맥과 사막은 당연히 국경으로서의 차단 기능에 뛰어나다며 그 다음으로 하천이나 강보다는 늪지대를 유용성을 꼽는다. 인도와 네팔 국경 사이에 위치한 테라이(Terai) 저지대같은 곳이다. 구 소련의 서쪽 끝인 벨라루스 남부와 우크라이나 서부의 프리퍄티(Pripyat)강 습지대는 오랜 세월 러시아와 유럽, 정교와 가톨릭 문명간의 일정한 자연 경계 역할을 해왔다. 나폴레옹·히틀러 군대의 진격속도를 일정부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었다. 어찌됐든 나토군의 침략에 맞선 완충지대 확보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유인가? 지난 10년 동유럽-러시아 정세는 또다른 측면에서 숨가쁘게 변화해왔다.

구 소련의 서쪽 끝인 벨라루스 남부와 우크라이나 서부의 프리퍄티(Pripyat)강 습지대는 오랜 세월 러시아와 유럽, 정교와 가톨릭 문명간의 일정한 자연 경계 역할을 해왔다. (사진:셔터스톡)

프리마코프, 두긴 등이 주도해온 러시아 중심의 지정학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냉전 당시 미국은 1947년 처칠이 얘기한 철의 장막이 현실화되고 그리스에서 공산당의 내전, 한국전쟁 발발 등 소련과의 지정학적 대결이 첨예해지자 장기간에 걸쳐 “미국-일본-중국” 3개국 연대를 결성했다. 우선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일본을 과거로부터 풀어주는 한편 강력한 미일동맹을 결성했고, 같은 공산주의지만 러시아와의 민족감정 대립이 만만찮은 중국을 끌어들였다. 1972년 닉슨의 중공 방문과 마오쩌뚱과의 회담이 그 시작이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미-일 동맹, 미-중 연대는 소비에트 러시아가 심장지대를 벗어나 림랜드(유라시아의 해안쪽 외곽지대)로 진출하는 것을 차단하는데 성공했다. 중국은 소비에트 러시아가 림랜드로 진출하는데 필수인 신장과 내몽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중국과 이란은 수비에 그치지 않고 유사시 심장지대 러시아를 직접 위협할 수 있는 지역강국이었다. 미국이 미일, 미중 관계를 강화해 소비에트 러시아를 향한 잠재적 포위망 구축에 성공한 것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군비 확장에 나서게 만드는, 과다비용 지출의 구조적 원인이다. 중국의 250만 대군에 대응하기 위해 소비에트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와 극동 지역에 120만 대군을 상시 배치했을 뿐 아니라, 파미르와 알타이, 그리고 만주 지역에서 크고 작은 국경 분쟁을 이어갔다. 이 같은 지정학적 대립 구도 하에서 모스크바는 2차 세계대전 때와 같이 거국적인 역량을 서쪽 방면에 집중시킬 수 없었다. 유럽과 중국에서 몰려오는 적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모스크바는 상시로 380만 대군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 병력 유지를 위해 매년 천문학적 군비 지출을 감행한 것은 알다시피 190년대초 소비에트 러시아 해체의 가장 큰 요인이다.
소비에트 러시아 연방의 해체와 함께 유럽 대륙은 민족에 기초한 여러 개의 소국들로 나누어 졌으며, 한때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이 세계제국은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몰락, 그리고 사회보장제도의 와해로 인해 2류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같은 조국의 몰락을 슬퍼한 러시아 지정학자들은 서구화가 아닌 유라시아주의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옐친 집권기 후반에 러시아 외교를 이끌었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1929-2015)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1989년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역사적인 소련 방문 당시 일정한 역할을 해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프리마코프는 러시아 공화국의 안정을 러시아와 중국, 이란 3개국의 반패권주의 연대에서 찾았다. 심장지대에 일정한 지분을 가진 나라들이다. 프리마코프의 구상에 따라 모스크바는 베이징과 테헤란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와 달리 알렉산드르 두긴(1962-)이 이끄는 신 유라시아 학파는 보다 급진적이고 담대한 구상을 제시한다. 두긴의 이름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앞으로도 러시아 관련 뉴스에서 많이 등장할 듯하다. 두긴은 미국인 매킨더의 대륙- 해양 대립론을 이어받아 세계를 앵글로색슨 제국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해양세력과 심장지대 제국의 대립으로 이해하고, 심장지대의 주인 러시아를 주축으로 이란·독일·일본 등 유라시아 대륙에 위치한 지역강국들이 “대륙기사단”을 결성해 해양세력의 세계지배를 종식시키고, 도덕성과 보수주의, 전통적 가족관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와 이란, 독일등 현재의 국가간 관계로 보면 비현실적 얘기지만 러시아의 현상인식과 향후 동선을 이해하는데는 중요한 부분이다.

서유럽 국가들과 함께 놓고 본 우크라이나의 위치. (사진:셔터스톡)

에너지 가격 상승이 부채질한 러시아의 신 유라시아주의

문제는 푸틴의 집권이후 체제가 안정되고 천연가스와 석유를 본격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러시아가 이러한 지정학적 해석을 채택할 경제력을 갖게 된 점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러시아는 유라시아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제국 체제를 하나하나 모색하기 시작한다. 모스크바의 주도 하에 집단안보조약기구와 유라시아 경제연합, 러시아-벨라루스 연맹국 등 다양한 형태의 심장지대 국가 연대가 결성됐으며,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6개국은 경제·군사적 이익을 공유하는 정치체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구 소련권 국가 내지 러시아와의 접경국가임에도 이 같은 모스크바의 정치적 움직임과 달리 독자적 미래를 모색하는 나라가 있었다. 발트 3국중 벨라루시를 제외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이런 나라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가장 방어선과 공격선의 출발점이 되는 나라가 코 잎에서 반기를 드는 셈이다. 더군다나 해줄만큼 해줬다는 과거의 시혜심리도 충분했다.
우크라이나 민족의 입장에서는 심장지대에서 유럽으로 통하는 통로이자, 유럽 세계의 동방 보루로서 오랜 세월 동서남북의 여러 유목민족의 침입과 폴란드 귀족들, 러시아 차르의 압제에 시달린게 지겨웠다. 제정 러시아 와해 직후, 이들은 짧게나마 자신들의 나라를 가질 수 있었지만, 곧바로 트로츠키가 이끄는 적군에 의해 점령당하고 말았다. 당시 소비에트 지도부, 특히 레닌은 우크라이나에 관대한 태도를 보여줬는데, 그는 민주집중제 하에서 민족자결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이 같은 자신의 철학적 신념에 기초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 정부를 수립함은 물론 러시아에 속한 돈바스 지역까지 우크라이나에 편입시켜 이들의 환심을 얻고자 노력했다. 대 루스족 연대 개념에 입각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밀월기에 해당한다. 이어 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로 유럽 대륙 절반의 지배자 반열에 오른 스탈린은 카르파티아 산맥에서 디나르-알프스 산맥에 이르는 중부 유럽·발칸반도 여러 나라에 대한 지정학적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아본 적 없는 갈리치아와 판노니아 평원 북서부, 도나우강 하구까지를 우크라이나 영토에 귀속시켰다. 엄청난 크기의 땅을 형제국가 우크라이나에 선물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스탈린은 1945년 국제연합(UN)의 출범과 함께 우크라이나, 벨라루시도 러시아와 함께 독자적 회원국으로 가입하도록 적극 주선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국가연합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들을 51개 창설 회원국 중 하나로 자격을 확보해준 것이다.
스탈린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확장해준 까닭은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옛 헝가리 지역까지 확장해줌으로써 유럽 내전에서 수비와 공격의 편의성을 확보하려 한데 있다. 이 조치로 소비에트 러시아는 실제로 1950년대와 60년대에 기갑사단을 동원해 중부 유럽의 심장부인 부다페스트와 프라하 등지로 빠르게 진출한 전례가 있다.

(사진:셔터스톡)

미군의 아프간 철군과 카자흐 정변도 푸틴의 러시아를 도운 셈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함께 과거 동유럽 지배체제 강화를 위해 기형적으로 확장해준 우크라이나 영토는 이제 비수가 되어 러시아의 생명줄인 볼가강 유역을 겨누고 있다. 푸틴이 말한 바와 같이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미군이 나토의 일원으로 우크라이나에 레이더 내지 미사일 기지를 설치할 경우, 러시아의 심장부는 미군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우랄 공업지대에 이르는 러시아 서부 전역은 미국의 레이더 감시망에 들어가게 된다. 러시아는 푸틴의 침공을 서방세계의 심장지대 진출을 막고, 동유럽 제국에 대한 모스크바의 지정학적 우위를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잘하면 우크라이나의 서쪽 국경 부근까지, 못해도 드네프르강을 경계로 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획득하는 새로운 국경선을 확정하는게 그의 최종 목표로 보인다. 우크라이나를 서방과 나토의 러시아 침공에 대비해 분쇄지대화하거나 적어도 그 절반인 드네프르 강 동쪽을 러시아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한국의 한강이 한반도 중간을 동서로 가로지른다면 드네프르 강은 우크라이나의 중간을 남북으로 세로지르는 강이다. 푸틴은 최소한 우크라이나 분단을 획책하는 것이다.
경제사정의 호전과 함께 푸틴의 러시아는 소비에트 러시아 해체 당시 이루어진 비공개 약정을 근거로 현상 변경을 꾸준히 추진해온게 지난 10년의 이 지역 역사다. 크림반도는 러시아에 귀속됐으며, 돈바스 반군 또한 러시아로의 귀속을 요구하며 우크라이나 정부군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러시아의 서진이 가져올 지정학적 파장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서방 세계는 대러 제재와 더불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돈바스 반군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2015년 프랑스와 독일의 중재 하에 채결된 신 민스크 협정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돈바스 반군은 상호 군사적 공격을 멈추는 대신 우크라이나 정부는 헌법 개정을 통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자치정부 수립을 보장해 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돈바스 반군과의 군사적 충돌을 이유로 우크라이나 정부는 협정을 이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2019년에는 나토 가입 추진을 명시한 자국 헌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소식은 크렘린궁의 ‘차르’인 푸틴을 격분케 했다. 푸틴은 즉각 남시베리아 대평원에 30만 대군을 결집시켜 자국의 군사적 역량을 대내외에 과시했다(동방-2018 훈련). 이어 중부-2019(13만), 카프카스-2020(8만), 서부-2021(20만) 등 훈련에서 모스크바는 중국,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아르메니아 등 우방국 병력까지 동원해 자국의 군사 능력을 과시하며, 2주일이면 키예프를 함락 시킬 능력이 있다고 큰소리쳤다. 미국과 서방 세계도 이에 맞서 흑해 해상에서 우크라이나 해군과 몇차례 군사 훈련을 진행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불타는 푸틴의 분노에 기름 붓는 결과로 이어졌을 뿐이다.
유라시아 지정학으로 볼 때 202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푸틴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정적 호재였다. 푸틴으로서는 서쪽 방면으로 병력을 집중하기에 앞서 후방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가 제거된 것이다. 바그란 공군기지를 비롯한 아프가니스탄 여러 곳의 미군 기지는 유사시 러시아의 후방인 남시베리아와 우랄 공업지대를 위협할 수 있었다. 이들이 건재하는 한, 푸틴은 쉽사리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개할 수 없었다. 2021년, 미군의 아프간 철수, 탈레반 반군의 집권은 푸틴에게 천우신조, 가미카제에 해당한다.
카자흐스탄 내부의 정변도 러시아의 침공에 호재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나자르바예프는 비록 대통령에서 물러났지만 상왕 자격으로 이 나라의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상태. 그는 유라시아 심장지대에서 중립주의를 표방하며, 중국과 러시아, 터키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펼쳐왔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나자르바예프는 여전히 누르술탄에 머무르며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토카예프 대통령은 그의 영향력 아래 있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2년 1월에 일어난 카자흐스탄의 반-나자르바예프 시위는 푸틴에게 이 ‘위험한 정치인’을 축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푸틴은 토카예프의 요청을 받자마자 러시아·키르기스스탄·벨라루스 군대로 평화유지군을 구성해 카자흐스탄에 보냈다. 나자르바예프와 측근 세력은 타도되었고, 카자흐스탄의 국가 권력은 토카예프 대통령, 배후의 푸틴에게 넘어갔다. 2월 10일, 러시아의 도움으로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토카예프는 모스크바에 가서 “러시아는 하늘이 카자흐스탄에게 내려준 이웃”이요, 러시아 공수부대를 위시한 평화유지군이 “전략시설을 보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극찬하며, 자원과 기술 협력에 관한 여러 이권을 러시아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다가온 푸틴의 시간, 언제까지 계속될까

푸틴의 시간이 온 것이다. 후방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가 모두 사라진 푸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20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 병력을 배치했다. 마지막까지 이어진 워싱턴과의 협상에서 자신들의 지정학적 요구, 즉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중립지대화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2월 22일 대국민 연설, 연설 직후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 승인 문서 서명을 통해 러시아군의 서진 프로세스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전황만을 놓고 보면 러시아군은 키예프 시민들의 완강한 저항 때문에 우크라이나 북부에서의 진격은 신통치 않지만, 크림반도에서 올라오는 러시아군은 이미 돈바스 지역 러시아군과 함께 우크라이나 동부군에 대한 포위망을 좁히고 있다. 만일 하르키우가 함락되고, 러시아 기갑사단이 아무런 방해없이 우크라이나 동부군 후방을 공격할 경우, 우크라이나는 드네프르강 방어선을 짤 병력조차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비록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생각보다 강한 저항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 시작한지 이제 일주일 지났을 뿐이고, 크림반도 방면군의 군사적 성과가 너무도 분명하기에 러시아가 쉽사리 물러설 가능성은 없다.
아마도 러시아는 회담 기간 중 군사력을 정비한 다음, 사소한 이유를 들어 회담 결렬을 선언한 뒤, 하르키우를 함락시키고 우크라이나 주력을 섬멸한 다음, 키예프 함락을 다시 한번 노릴 것으로 보인다.
지금 푸틴은 자신의 임기중 심장지대에서의 마지막 전쟁을 치르고 있다. 푸틴은 내심 초조하다. 당장 서방의 경제제재는 생각보다 심대하고 예상보다 치밀하다. 그러나 아직 미군이나 나토군의 우크라이나 입경이나 참전은 계획되지 않고 있다. 군사력 불참의 원칙은 유지되는 것이다. 푸틴으로서는 경제 제재만 버티면 그간 축적한 막강한 권력, 최고 수준의 외환보유고, 높은 에너지 가격, 카자흐 아프간 그리고 중국와의 밀월 등 정리된 주변국 환경은 뭐 하나 부족한게 없다. 러시아 내에서는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누가 언제 푸틴같은 절대권력으로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뒷담화도 나오고 있다. 이번 침공이 푸틴 사후나 실각후까지를 내다본 러시아의 대망이라는 것이다.


필자 신동성은
화당월색荷塘月色의 수련과 일탑호도一塔湖圖의 빼어남으로 유명한 곳에서 공부했다. 세상 모처에 살면서 글 쓰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업業으로 삼고 있다.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역사·문화·지리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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