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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학 칼럼] 푸틴을 움직인 건 러시아의 패권주의 지정학

By | 2022년 3월 2일 | 국제, 미분류, 정치

소련 붕괴후 러시아에는 구소련 시절의 강대국을 그리워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푸틴은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자원을 팔아 현금을 쥐게 되자 그러한 대중의 정서를 자신의 권력기반 강화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푸티니즘(Putinism)은 ‘유럽과 다른 러시아’, 사회주의 대신 ‘정교의 믿음에 충실한 러시아’, 중간규모 강국이 아닌 ‘제국으로서 러시아’를 핵심 가치로 하고 있다. 여기에 알렉산드르 두긴 같은 일군의 ‘심장지대(heartland) 지정학자’들이 공세적 이론을 제공했다. 푸틴은 자주 “소련 붕괴는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단언해왔는데 바로 이 재앙을 원상회복하기 위해 주변국 병합과 흡수를 꾸준히 시도해왔다. 평화보다 확장을 추구해왔다는 말이다. [편집자 주]

✔ 아프간 전쟁, 베트남 전쟁보다 더 큰 늪에 빠진 푸틴과 러시아 

✔ 레닌,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머리를 잃는 것” 

✔ 푸티니즘, 제국주의적 유산이자 시대착오적인 지정학적 편견

✔ 한국에 던지는 세 가지 교훈, 동맹은 필수, 외교력, 국방력도 강화해야

우크라이나 국기 색상의 조명을 밝힌 서울시 청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면초가 러시아군, 다가오는 패배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타이슨의 이 말은 지금 러시아에 딱 맞는 말이다. 기세좋게 진군했던 러시아군이 안팎 정세가 여의치 않으면서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미국측 시각임을 감안하더라도 러시아의 초기 전과는 기대에 크게 못미친다. 미 상원 정보위의 공화당 간사인 마르코 루비오 미국 정보위 상임위원에 따르자면, 러시아의 키예프 점령 계획은 초기 12시간 동안 우세한 공군력으로 제공권을 장악하고, 36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군사 통신망 무력화하며, 키예프를 포위하고 이후 48시간 안에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치인들 도주하며, 72시간 이내에 괴뢰정부를 세우는 시나리오였다고 한다. 실제로 러시아는 동남북 3면에서 키예프로 진격하면서 전기와 통신을 끊고, 방화 및 약탈을 조직하고, 난민 행렬을 만들어 우크라이나인들이 승전을 포기하고 체념하도록 조장했다. 이 가운데 핵심은 참수 작전을 흘리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키예프를 포기하고 떠나게 하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물러나면 푸틴은 전쟁 승리를 선언하고 키예프에 친러 괴뢰정권을 세우고 최대한 드네프르강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 동부를 러시아 땅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계획은 과거가 되었다. 크레믈린은 극단적 방법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보인다

자제하던 대량 살상무기를 사용하여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키예프를 정복하는 것이다. 이 전술의 핵심은 주로 야전에서 적 기지를 초토화하는 다연장 로켓, 화염방사기, 자주포 등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대도시 키예프에 사용하면 도시 자체가 초토화되고 정밀타격이 불가능해져서 대량살상전으로 변하게 된다. 그렇지만 러시아가 최후의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키예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 젤렌스키 대통령은 가족도 도망을 보내지 않고 고위 참모들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 키예프 시장도 총을 들었다. 평소에는 으르렁거리던 국회의원 대부분 도망가지 않고 대통령이 요청한 계엄령에 전원 찬성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이처럼 똘똘 뭉쳐 싸우고 있는데, 고층건물과 아파트로 가득 찬 키예프를 러시아군이 단시간에 완전히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러시아가 키예프를 장악하고 젤렌스키 정부를 무너뜨려도 이번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다. 젤렌스키 정부와 상관없이 우크라이나 전국은 이미 게릴라 전쟁에 돌입했다.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마찬가지로 서방과 터키 등 인근 국가들이 지원하는 게릴라를 러시아가 온전히 진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러시아의 잔혹한 진압을 겪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친러 괴뢰정부를 인정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핵을 쓴다는 것은 ‘내가 죽더라도 너를 죽이겠다’는 각오인데 현재로서 푸틴이 그 정도 각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항구도시 오데사의 광장에 반 러시아 시위를 위해 모인 시민들 (사진:셔터스톡)

우크라이나 침공 이유: 지정학적 요소, 식량 생산량, 탄탄한 산업 구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의 역사적 관점에서 돌이켜 보자. 역사라는 과거는 오늘이라는 현실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은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특히 그렇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유라시아 패권 투쟁의 주 무대였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모스크바로 진격했으며, 내륙국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흑해와 지중해로 나가는 통로였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오랜 기간 주변 강대국의 분할 지배를 받아왔으며 ‘피에 젖은 땅’이라고 불렸다. 독립한 지 고작 30여 년이 지났지만 2004년 오렌지 혁명, 2014년 유로마이단과 크림반도 사태,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지정학적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레닌은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우리는 머리를 잃는다”라 했다. 오늘날 루시(Rusi)라고 말하는 러시아의 정체성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시작한다. 동슬라브족으로 불리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역사적 기원은 882년 최초의 고대 동슬라브 민족국가인 ‘키예프 루시’ 공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닌은 그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를 머리로 비유한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무한한 경제적 잠재력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한반도의 3배에 이르는 넓은 국토에 비옥한 경작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곡물 생산량은 2021년 기준 1억 톤에 거의 육박할 정도로 세계적인 농업 국가이다. 또한 철강과 항공우주, IT 등 산업구조를 갖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서 완전히 분리되면 러시아 제국의 재도약은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이나 유럽 연합 가입을 통해 완전히 서방의 품 안으로 들어가면 러시아는 유럽과 안보적 완충지대를 상실하여 직접 맞대면해야 한다. 이것은 러시아의 장기적 지정학적 목표인 중·동부 유럽의 중립화를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전략적 방어를 훨씬 동쪽으로 후퇴시켜 안보적 취약성을 영속화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략적 요충지인 흑해 연안 지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도 종식된다.

(사진:셔터스톡)

푸티니즘, 제국주의 유산이자 시대착오적 몽상

러시아가 경제 제재와 서방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하는 이유는 푸틴 대통령의 특유의 철학 혹은 지정학적 시각 때문이다. 푸틴은 2014년 크림 합병 이후 ‘신(新)푸틴 독트린’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에 그의 정치 철학인 ‘푸티니즘(Putinism)’을 제시했다. 푸티니즘은 붕괴한 소비에트 제국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러시아가 다시 이 제국을 복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치학자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는 푸틴주의의 핵심 요소를 “민족주의, 종교, 사회적 보수주의, 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정부의 언론 지배” 등으로 요약했다. 이것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 관용과 국제주의에 바탕을 둔 근대 서양의 가치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틴은 서방과의 대립을 피하지 않으며, 오히려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유럽과 다른 러시아’, ‘정교의 믿음에 충실한 러시아’,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제국으로서 러시아’가 푸티니즘의 핵심 가치이다.

푸틴은 자주 “소련 붕괴는 지정학적 재앙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이 말은 러시아의 지정학 이론가인 알렉산드르 두긴(Aleksandr Dugin)이 1990년대부터 주장한 ‘러시아의 지정학적 역습(Геополитическая контратака в России)’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두긴은 영국을 유럽과 단절시키고, 러시아가 핀란드를 흡수하며, 코카서스와 중앙아시아는 러시아 영토가 되어야 하고,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병합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영국을 EU에서 분리하는 선동을 줄곧 해왔으며, 조지아의 북부를 차지했으며, 중앙아시아에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통해 간접 지배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우크라이나이다.

푸틴은 소련 시절에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공산주의라는 탈을 버리고 독실한 정교회 신자가 되었다. 정치학자 로만 스즈포르루크(Roman Szporluk)는 ‘제국으로서 러시아’는 민족 자결을 옹호하는 소비에트 시절에도 살아남았고, 독립 러시아에서도 주류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공산주의와 슬라브 정교는 제국 러시아의 뿌리 위에 핀 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푸티니즘은 일종의 제국주의적 유산이며 시대착오적인 지정학적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를 20세기로 되돌렸다. 푸틴은 지독한 역사광이며 러시아의 극우 민족주의자 솔제니친의 추종자이다. <수용소 군도>의 작가 솔제니친은 만년에 러시아 민족주의자로 변신했는데, 그는 카자흐스탄 북쪽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회복해야 할 땅으로 간주한다. 푸틴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종을 근거로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전면 부정한다. 인종을 근거로 합병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파시즘적 사고다. 그런 의미에서 푸틴은 그가 그렇게 혐오하던 히틀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되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는데, 러시아 차르 제국의 영광에 사로잡힌 지도자가 인종을 이유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구한말, 북한 핵 등 한국사 여러 지점을 상기시키는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시사점은 첫째, 미·러의 힘겨루기와 협상이 정작 이해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의 참여나 의사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한말 한반도가 청나라와 일본의 전쟁터가 되고 인천에서 러·일 전쟁이 발생했다. 강대국의 흥정과 대결로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고, 얄타회담에서 강대국 간의 거래로 한반도의 분단이 결정되었다. 역사에서 강대국은 자신의 영토보다 경계 지역에서 더 많은 전쟁을 벌였다. 이런 의미에서 한반도가 다음 배틀그라운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힘을 키우고 외교 강국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번 사태가 가르쳐준다. 스스로 지킬 힘이 없으면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

둘째, 북한의 핵 문제가 쉽지 않게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소련 해제 후에 핵폭탄 약 5,000발과 ICBM 170기 이상을 보유한 세계 3위 핵보유국이던 우크라이나가 핵을 순순히 포기함으로써 오늘날 러시아 침공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서유럽은 1994년 이른바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를 통해 영토주권의 보호와 더불어 경제 원조를 약속하고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데 합의했다. 물론 당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고 핵무기를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던 우크라이나 정부 역량도 문제지만 너무 쉽게 핵을 포기했다는 비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핵 포기 압력을 받는 이란과 북한은 핵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럴 경우 종전선언과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에도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전 선언, 교황의 북한 방문, 대북 제재 완화 등을 통해 남북교류 확대와 한반도 평화 구도 정착을 모색했던 한국 정부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3월 대선 결과를 두고보아야겠지만 어느 당이 집권하든 한반도 정세 또한 만만치 않은 복병을 만난 것같다.

셋째, 강력한 동맹 없이는 힘의 논리가 지배적인 국제정치에서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보여주었다. 특히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직접 충돌하고 민감하게 교차하는 지정학적 공간에서는 동맹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었다. 러시아가 부당한 침략을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나라도 우크라이나를 도우러 오지 않았다. 미·중, 미·러 사이에 있는 한국도 전략적 동맹관계인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잘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문화 뿐만 아니라 선진국으로서 한국의 매력을 높일 필요다. 지금 세계는 인구가 극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자유로운 노동 이주로 어떤 나라가, 어떤 도시가 가장 살기 좋은 것인가를 둘러싸고 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일하고 놀며 복지가 보장되며, 그리고 자유롭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정학과 인종을 따지기보다 자유와 평화를 앞세우는 가치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러시아는 보여주었다. 누구나 혐오하는 전쟁을 일으키고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러시아를 편드는 나라는 같은 전체주의 국가 중국 말고는 없다는 것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났다.


글쓴이 윤성학은
일찍부터 러시아의 경제와 산업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연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대우경제연구소, UzDaewoo Bank(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소재), 러시아 IMEMO(국제관계 및 세계경제연구소)의Korean Studies Center 등에서 다양한 연구와 조사를 진행했다. CIS Consulting 대표를 역임하였으며, 고려대학교 러시아·CIS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러시아 비즈니스』 (아라크네), 『21세기, 왜러시아인가?』(한국무역협회), 『중앙아시아 비즈니스가이드』(한국무역협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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