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대세다. 한 대형 와인수입업체 대표는 2021년 한국인의 와인 소비량이 사상 최초로 1억병이 넘었다고 귀뜸했다. 집계중이지만 1억1천만병 수준으로 파악된다. 주류 소비량 전체는 줄었다. 이제 술은 사회생활에서 잘난 필수과목이 아니라 못난 선택과목이다. 술의 전반적 퇴조 속에 와인이 뜨고 있는 이유는 1인가구 증가와 코로나다. 법카 대신 개인카드, 술집대신 홈술, 회식대신 혼술의 시대다.주거가 바뀌고 직장문화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니 주종 교체도 당연하다. 변화는 끝이 없다. 예컨대 1인 가구와 전기차, 자율주행차가 결합되면 '집같은 차','차같은 집'도 나타날 것이다. 메타버스는? 기업이나 대중문화는 변화를 빨리 따라간다지만 법과 제도, 지식과 학문을 다루는 사람들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편집자 주]

✔ 취하도록 마시는 문화는 집단주의적 구시대의 악습

✔ 취하지 않을 자유가 보장된 개인의 시대, 집단보다 취향이 우선

✔ 칠레와의 자유무역 협정으로 가성비 뛰어난 와인 맛에 눈뜨다

✔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홈술, 혼술의 제왕이 된 와인

이제 일상이 되어 버린 와인은 코로나시대와 함께 홈술, 혼술의 아이콘으로 등극하며 주류 업계 최강자가 되었다.(사진: 셔터스톡)

자본가, 와인에서 돈 냄새를 맡다

먹어본 자가 맛을 아는 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냄새’를 가장 빨리 맡는 이들 역시 ‘자본가’다. 특히 사모펀드나 대기업집단의 투자 대상을 살펴보면 현재 무엇이 ‘돈‘이 되는지, 혹은 앞으로 ‘될 것’인지가 확연히 보인다. 적어도 대한민국 소비자라면 신세계그룹이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의 최고급 와이너리인 ‘셰이퍼 빈야드’를 약 3000억 원에 인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 이제는 와인이 대세구나”라는 행간을 쉽게 읽어낼 수 있듯 말이다.

‘유통 공룡’의 수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번에는 나파의 와이너리를 손에 쥐었다. 쇼핑의 주도권이 온라인으로 완전히 넘어가고, 비대면 라이프스타일이 일상으로 굳어진 포스트 코로나 유통 혁명기에 프로야구단과 거대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베이코리아)를 연이어 사들인 이후다. 정 부회장이 새로이 사들인 곳은 보통 와이너리가 아니다. 그는 초특급 와이너리가 몰려있어 미국 와인 산업의 ‘심장’으로 불리는 나파에서도 단 10~12곳 정도만 꼽히는, 대표적인 컬트 와인 브랜드 셰이퍼를 인수했다.

컬트 와인은 병당 가격이 최소 400달러 이상이고,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지속적으로 100점 만점에 100점 가까운 점수를 준, ‘완벽에 가까운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만 얻을 수 있는 명예다. 프랑스 그랑 크뤼처럼 정부에서 품질을 보증하는 공식 등급은 아니지만 ‘최고급’을 알아보는 시장으로부터 암묵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미국 와인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자존심, 헤리티지가 곧 컬트와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미국 와인 산업에서도 ‘그들만의 리그’로 분류되는 컬트 와인 가운데 하나가 신세계의 품에 안긴 것이다.

앞서 15년 전 이희상 전 동아원 회장과 그의 맏사위 전재만(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 씨가 나파밸리에서 ‘다나 에스테이트’라는 와이너리를 운영한 사례가 있으나 거의 명맥이 끊긴 오래된 와이너리를 사들여 새 회사를 설립한 것이고, 생산한 와인도 아시아 시장에 한정해 판매했기 때문에 신세계의 경우와 비교하긴 어렵다.

이로써 신세계는 와인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추게 됐다. 국내 와인수입 규모 1위 계열사(신세계L&B)와 최대 오프라인 유통업체(이마트)까지 보유한 상황에서 컬트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대어’까지 낚았다. 이는 향후 더욱 팽창할 국내 와인 시장을 “신세계가 접수할 것”이라는 선전포고로 느껴진다. 전통주를 제외한 주류는 국내에서 온라인 판매가 불가능하므로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 파워가 매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확신에 가득 찬 신세계의 투자는 국내 주류시장에 와인 전성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1988년 와인이 처음 수입된 이후 지금처럼 불티나게 팔린 적은 없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와인 수입 규모는 2018년 약 1억 5,000만 달러에서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69.6% 급증한 5억 5,980만 달러를 기록했다. 업계 점유율 상위 수입 업체(신세계 L&B·아영·금양인터내셔날·나라셀라)들은 모두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을 경신했다. 전체 수입 주류 규모 순위에서도 와인은 처음으로 맥주를 넘어 1위로 올라섰다.

무색무취의 희석식 소주를 싱거운 미국식 공장 맥주에 섞어 마시고 한껏 불콰해진 얼굴로 “우리는 하나”를 외쳤던 ‘소맥의 나라’에서, 현존하는 술 가운데 가장 다채로운 맛의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와인이 완전한 대중화를 이룬 것이다.

집단의 시대, 와인이 설 자리는 없었다

한때 한국 사회에서 “와인 한잔 하실래요?”라는 인사는 “소주, 혹은 맥주 한잔하자”는 것과 차원이 다른 말이었다. 초고속 경제성장의 달콤한 과실을 누렸던 ‘IMF 위기’ 이전에도 와인은 아무나 마시는 술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인의 술자리를 지배한 건 소주와 맥주 그리고 위스키였다. 퇴근 후 새벽까지 회식으로 으쌰으쌰 결의를 다지고, 잠깐 집에 들어가 이른 아침 출근을 하는 것이 회사에 충성하는 길이요, 조직에 이 한 몸 불사르는 게 인생의 정답인 줄 알았던 때였다. 이들이 ‘막차’로 찾아가는 룸살롱에선 임페리얼, 윈저 등 국산 위스키가 불티나게 팔렸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원액을 수입해와 국내에서 물을 섞어 제조한 제품이었다. 잘 나가는 회사원들은 1, 2차 고깃집에부터 위스키에 맥주에 섞어 ‘10-10(텐텐)’으로 잔을 가득 채운 뒤 원샷으로 퍼부으며 로열티를 과시했다.

IMF가 터지자 다소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위스키 폭탄, 일명 ‘양폭’은 술자리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알잔’의 자리는 이슬처럼 맑은 저가의 희석식 소주가 독차지했다. 다만 일과를 마치고 우르르 몰려가 술을 마시는 문화는 여전했다. 대부분의 주류 매출은 ‘일반음식점’에서 ‘법인카드’로 이뤄졌다. ‘홈술’, ‘혼술’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독재 정권을 거쳐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뤄낸 세대가 경제 활동의 주체였다. 집단의 시대에 익숙한 이들에게 ‘개인’의 삶, ‘나만의 라이프스타일’ 따위는 상상할 수 없었다.

와인은 집단의 시대에 다 같이 만취하는 술로 적합하지 않았다. 가격이 비싸고 수입 물량이 많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졌다. 위스키처럼 도수가 높아 ‘빨리 빨리’ 취하게 만들지도 못했다. 와인잔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양한 향과 맛은 벌컥벌컥 들이키기 보다는 천천히 음미해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생산연도와 지역, 포도 품종에 따라 술의 캐릭터가 천차만별이라는 ‘다양성’은 애주가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줬다. 와인을 구매하려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입맛에 대한 선호부터 알아야 했는데 ‘개인의 취향’은 시대 정신이 아니었다. “와인 한잔 하자”는 말은 해외 경험이 풍부한 상위 1%의 대화일 수밖에 없었다.

한-칠레 FTA, 와인의 빗장을 풀다

와인의 대중화는 머나먼 길이었고, 잡히지 않는 미래였다. 이 무렵 인터넷이 보급됐다. 블로그 등을 통해 다양한 음식과 술을 취미로 즐기는 미식가들의 존재가 알려지고 콘텐츠화되면서 와인 마니아층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수입됐던 유럽, 미국 와인을 넘어 칠레·호주 등의 신대륙 와인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시장은 매우 작았다.

상류층과 극소수의 마니아층을 제외하곤 굳게 닫혀있던 와인 세계의 빗장이 풀린 건 2004년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인 ‘한-칠레 FTA’가 성사되면서부터다. 칠레 와인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자 와인 가격이 대폭 낮아졌고, “칠레 와인=가성비 뛰어난 와인”이라는 대중적인 인식이 생겼다. 꼭 비싼 돈을 들이지 않아도 괜찮은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와인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좁혀지자 마니아층은 중산층으로 확산됐다. 다만 MZ 세대가 주력 소비자층인 지금과 달리 당시 국내 와인 시장을 이끄는 세대는 40대 이상 남성이었다. 4060 남성은 과실 향이 강렬하고 바디감이 묵직하면서 타닌은 부드러운 캐릭터의 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몬테스 알파, 1865 등 칠레산 카베르네 소비뇽은 일찌감치 ‘한국인의 와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와인이 들어와 있는 현재 국내 시장에서도 여전히 가장 잘 팔리는 와인이 칠레산 까베르네 소비뇽인 이유다. 칠레 와인은 와인을 막 마시기 시작한 한국인의 ‘첫 취향’이었다. 그래서 평생 잊지 못하는 첫사랑으로 남았다.

(사진:셔터스톡)

개인의 시대, 취하지 않을 자유가 생겼다

칠레산 까쇼와 첫사랑을 마친 한국인은 이제 본격적으로 다양한 와인을 만날 수 있는 여유와 태도를 갖추게 됐다. 특히 2012년 손학규 당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대선 출마를 발표하면서 내세웠던 ‘저녁이 있는 삶’이란 구호는 오늘날의 ‘와인 전성시대’를 촉발한 나비효과의 시작점이었다. 이 천재적인 수사는 앞으로 펼쳐질 시대의 정서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오랫동안 집단으로 만취해온 ‘86세대’가 꼰대 혹은 구악, 옛날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무대에서 퇴장하면서 사실상 ‘개인의 시대’가 열렸고, 식음(F&B)을 비롯한 소비 시장은 ‘취향 시장’으로 재편됐다. 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존중을 받고,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이 곧 ‘셀프 브랜딩’이 되는 새 시대에 와인은 딱 어울리는 술이었다.

이 시기 MZ 세대(1982년생~)는 사회에 진출해 소비 활동의 주체로 떠오른다. 유년 시절 IMF를 겪고, 2000년대 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바늘 구멍 같은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펙으로 교환학생, 어학연수, 배낭여행 등 풍부한 해외 경험을 기본으로 탑재했다. 다양한 술 장르가 발달한 유럽, 미국에서 일과후 숙소에서 마신 ‘한 잔의 감동’은 이들의 뼈에 새겨졌다. 이들은 마트에서 새로운 술을 골라 마시며 개인의 취향을 키워온, 해방 이후 처음 국내 주류 소비 시장에 등장한 ‘취향 세대’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MZ 세대에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퇴근 후 각자 좋아하는(취향에 맞는) 술을 마시며 힐링하고 싶은 이들에게 소맥으로 점철된 ‘강제 회식’은 지옥이었다. 더군다나 조직에 충성하면 안정된 고용이 보장됐던 과거와 달리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이들에게 ‘부어라 마셔라 취해라’하는 옛날 방식의 술자리는 얻을 것도 별로 없었다. 2014년 소규모 양조장도 외부 유통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주세법 개정안이 통과돼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수제 맥주 산업은 소맥과 회식에 지친 MZ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홉과 맥아의 종류, 발효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수제맥주는 와인과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소비층이 완벽하게 겹치는 술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란법과 주 52시간 근무제가 전격 시행됐다. 불필요한 접대와 야근이 사라지자 많은 이들이 ‘저녁’을 되찾았다. 룸살롱은 하나둘 폐업했고 위스키 시장은 반토막이 났다. ‘취해야 하는 회식’에는 ‘취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지기 시작했다. 잦은 회식을 했던 상사들은 눈치를 키우고 입을 닫았다. 회식 대신 퇴근 후 펍이나 바에서 수제 맥주, 와인, 싱글 몰트 위스키를 찾거나 집 근처 편의점에서 술을 사 귀가하는 젊은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홈술’, ‘혼술’이라는 용어도 이때 처음 생겨났다. 취할 필요가 없는 이들에겐 한잔을 마셔도 만족할 수 있는 맛, 나의 취향에 맞는 맛이 중요했다. 취향이 세분되며 선호하는 맛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은 장르의 술인 수제 맥주와 와인 시장이 나란히 성장했다. 온라인 판매를 허용한 전통주 시장도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코로나 시대, 왕으로 등극하다

이 가운데 와인이 결국 ‘주류의 왕’이 된 것은 코로나 19 영향이 절대적이다. 비대면 라이프스타일로 인해 가끔 있던 회식은 아예 사라졌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업장에 적용되는 인원·시간 제한으로 유행한 홈파티는 ‘BYOB’(Bring your own bottle·각자 술 한 병씩 가져오세요)라는 용어를 우리의 일상 깊이 끌어들였다.

다만 와인과 함께 다양성·취향 시장을 형성했던 수제 맥주는 오히려 코로나 19로 산업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했다. 대체로 병입해 오랫동안 보관·숙성이 가능하며 언제든 따서 마실 수 있는 와인과 달리 수제 맥주는 생맥주로 신선한 상태에서 마시는 것이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다. 수제 맥주의 주력 시장이 병이나 캔이 아닌 ‘케그(생맥주통)’를 취급하는 오프라인 업장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사람들이 오프라인 매장에 발길을 끊으면서 이 케그 시장이 박살나 버렸다. 그나마 캔맥주를 생산할 시설과 여력을 갖춘 소수의 양조장은 살아남기 위해 캔맥주를 만들어 편의점에 진출했는데, 이미 국내 편의점 맥주 시장은 ‘4캔 만원’이라는 가격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이 비극이었다. 생존을 위해 편의점에 진출하는 대신 마진율이 제로에 가까워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해 버린 것이다.

반면 와인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꼭 마셔야 할 필요가 없다. 집에서도 업장과 같은 컨디션으로 마실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코로나 기간 와인 업계는 국내 시장의 규모를 거침없이 키울 수 있었다. 수입 물량이 많아지니 소비자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신세계, 롯데, 홈플러스 등 유통 대기업들이 해외 와이너리와 박리다매 계약을 맺고 수입하는 4~5,000원대 초저가 와인이 마트에 대량으로 깔리는가 하면 강남 한복판엔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만을 다루는 전문 매장도 생겨날 정도다. 기후 변화, 중국 시장의 확대 등으로 부르고뉴 와인은 해마다 가격이 폭등해 재테크 수단으로도 자주 언급될 정도다.

엔트리급 와인 가격이 대폭 낮아지자 술에서 ‘다양성’을 중시하는 애주가들이 수제 맥주보다는 와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 병에 7000원 이상 하는 수제 맥주를 마실 바에야 만 원대 스파클링 와인을 고르는 게 이득이며 수제 맥주 스타일이 마시고 싶으면 4캔 만원 맥주를 사면 된다는 심리다. 한때 경쟁 관계였던 와인과 수제 맥주의 희비는 코로나 19로 인해 완전히 엇갈렸고, 주류 시장에서 와인의 위치는 더욱 공고해졌다.

와인 열풍, 주류 시장 ‘다양성’ 확대의 촉매제

와인은 여러 주류 장르 가운데 음용법, 각 상품에 대한 스토리 등 콘텐츠까지 체계적으로 갖춘 유일한 술이다. 회식을 위해 오프라인 매장이 아닌 메타버스에 접속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마신 술을 인스타그램·페이스북·유튜브(SNS)에 기록하고 과시하는 현대인에게 와인은 ‘누구나 마시는 술’이자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취미’로 자리 잡고 있다. 전문가들이 향후 국내 와인 시장이 더욱 팽창할 것이라 보고 있는 이유다.

물론 일각에선 수입 와인 시장의 확대가 국내 농업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늘날의 와인 열풍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순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현재 와인 열풍은 오히려 버려지는 과일이 많아 골머리를 앓는 국내 과일 농가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의 와인 인기 흐름을 타고 오랫동안 와인 불모지로 분류됐던 한국의 과실주 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50년 전만 해도 전무했던 국내 와인 산업은 현재 150개에 달하는 전국의 와이너리에서 700여 종류의 와인을 생산하고, 신라호텔, 그랜드 하얏트 호텔 등 특급호텔에서도 이들 와인을 취급할 정도로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서양의 와인이 하나의 문화라는 점, 또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산업이 형성됐다는 점에서 기존 와인 체계를 한국산 와인이 따라갈 순 없지만 결국 와인도 술의 한 종류이며 ‘취향의 문제’임을 직시할 때 소비 시장에서 한국산 와인의 경쟁력 또한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한때 외국 와인의 아류 취급을 받았지만 끊임없는 고유의 품종 개발을 통해 브랜딩에 성공, 글로벌 시장에 자국의 와인 장르를 안착시킨 일본의 사례도 있다. 수입 와인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수입 와인 시장에서 소비되는 ‘다양성’의 가치와 콘텐츠를 국내 주류 산업에도 적용한다면 K팝, K드라마처럼 ‘K주류’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 먹히는 히트 상품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글쓴이 심현희는어릴 때부터 술맛이 궁금했다. 자라서는 아일랜드로 어학 연수를 갔다가, 펍에서 단골들과 맥주를 마시며 학교보다 영어를 더 많이 배웠고 기자가 되고는 바이라인을 맥덕(맥주덕후, macduck@seoul.co.kr)으로 지었다. <맥덕기자의 맛있는 맥주이야기>, <심현희 기자의 술 이야기>를 연재한 주류 전문 기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