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국 방담에서는 한 달도 안 남은 대통령 선거를 점검해보았다. 누가 되느냐, 어떤 소재가 유불리를 가져올 것이냐를 떠나 근원을 따져보았다. 왜 이렇게 더럽고 지루한 선거가 되었는지, 이번 대선은 도대체 무슨 의미이며, 선거 후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지, 이재명, 윤석열, 문재인 등 두 사람의 전 현직 대통령과 한 사람의 석패자는 과연 이 시대에 어떤 배우로서 역할을 했는지 허심탄회한 의견을 교환했다. [편집자 주]

✔생각보다 감각이 앞서는 자극적인 디지털 시대의 선거

✔선거의 기본 성격은 민주당에 대한 야당 지지층의 복수전

✔결과에 상관 없이 진보 정책에 대한 심판 분위기 피하기 어려워

✔실용적인 측면 강조하는 이재명, 전문가 조언 잘 듣는 윤석열, 유하지만 뚝심 있는 문재인

사진:셔터스톡

이번 선거의 근본 성격은 복수전

가오리: 선거가 한달도 남지 않았다. 여론조사는 설 이후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했는데 아직 팽팽하다. 선거전의 양상은 뉴스 보기가 짜증날 정도다. 이번 선거가 이렇게 더럽고 지루한 선거가 된 것은 왜 그런가? 

밀덕: 기본적 성격은 복수전이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징역과 탄핵에 분노하던 야당 지지층은 야당의 누구도 못 하던 강력한 반문 투쟁을 검찰총장에게서 발견하고 검찰(윤)을 밀어 문 정권에 대한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들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을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민주당 지지층의 복수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복수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윤석열 후보의 문 정부 적폐수사 예고도 그 연장에서의 자연스런 발언이라고 본다.  

산돌: 정치권 전체에 내부에 대한 배신감과 외부에 대한 복수심이라는 감정의 인화물질이 깊게 깔려 있다. 이런 감정을 강하게 느끼는 쪽은 보수, 진보 모두 주류(친문, 친박)진영이다. 야당 주류는 강한 복수를 위해 현 정부의 검찰총장을 야당 대선후보로 뽑았다. 여당 주류는 당내 비주류 후보가 우세해지면서 말못하는 배신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재명 부진의 한 원인이다. 각 세력의 정통성과 무관한 후보들이 나서니 선거전의 양상은 당선운동이 아니라 낙선운동이다. 네거티브 선거다. 여권을 대표하지 못하는 여당 대선후보와 야권을 대표하지 못하는 야당 대선후보의 대결은 거의 처음 일이다. 전의 선거와는 구조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가오리: 유승민, 이낙연 같은 주류 후보는 대중적 매력이 없고, 복수심으로 뽑힌 후보(윤석열), 권력의지가 돋보이는 후보(이재명)가 선출되었다고들 말한다. 

산돌: 범인은 디지털과 코로나같다. 2002년 노무현 대선 때에도 최초의 온라인 선거를 했다고들 말하는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온라인-디지털-SNS는 기본값이다. 여기에 코로나 19 사태가 기름을 부었다. SNS가 지배하는 디지털시대는 생각을 제거하고 감각을 증폭한다. 생각은 시간을 먹고 살고 감각은 자극을 먹이로 삼는다. 2022년 대선은 SNS가 주도한다. 그래서 자극 경쟁은 필연이 된다. 자극 중독은 더 강한 자극을 부른다. 에로스에서 포르노로, 포르노에서 변태로 그렇게 까발림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2016년 탄핵 때부터 미투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제보와 더불어 CCTV와 모바일영상과 녹음파일 등이 정치영역에 포르노적 요소로 등장한다. 지금 대선은 그 종합판이다. 

정책은 사라지고 세대와 감정만 남은 이준석식 선거

멀더: 나는 좀 달리 본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구두선같은, 즉 명분은 충분하지만 실효는 검증되지 않은 진보적 경제정책을 다 실행하면서 이번 대선에서 정책은 사라졌다. 여당 후보는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는 마당에 진보적 실험적 경제정책을 공격할 수 없었고, 국민의 힘 당과 후보는 아예 정책 생산능력이 없다. 김종인 위원장이 중도하차하면서 이번 선거에서 정책은 사라지고, 세대와 감정만 남았다. 이준석 스타일의 선거다. 

가오리: 듣던 중 새로운 시각이다.  

멀더: 문재인 정부는 민주정부 3기, 86정권 2기이자 동시에 ‘경제정책을 진보쪽 주장으로 실천한’ 최초의 정권이다. 최저임금의 급진적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부동산 보유세와 양도세의 대폭 인상, 적극적인 재정정책, 건강보험의 급여화 확대,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적용 확대, 사회보장 제도의 대폭 확대, 탈원전 정책, 노후원전 폐쇄 등이 모두 해당한다. 

한국사회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어떤 쇼크를 받게 됐다. 이후 한국 진보세력은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한국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이 확대됐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정책들은 그간 한국 진보세력의 주장을 대폭 수용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간 한국 진보세력이 주장하던 정책들을 거의 다 실천해버렸고, 동시에 그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별로 안좋기 때문에, 새로운 정책 및 공약들이 별로 없게 된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내세운 기본소득과 국토보유세 정도가 전에 없던 것들인데 이 후보가 기본소득과 국토보유세를 ‘하겠습니다’할 때는 지지율이 떨어지고, ‘하지 않겠습니다’가 할 때는 오히려 지지율이 올라갔다. 이런 자세는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정부의 왼쪽 포지션>을 차지하는데는 큰 도움이 되었지만, 본선 경쟁력과 중도 확장력에서는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오리: 지금 얘기한 부분은 선거 이후 평가 단계에서 많이 등장할 것같다. 왜 이런 선거가 되었는지. 그런데 선거 후는 어떻게 될까? 당선자를 점치기는 어렵지만 선거 이후 한국사회 변화는 얘기할 수 있을 것같다. 이번 선거는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였으며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산돌: 선거가 끝나면 역대 어느 선거 때보다 자성의 목소리가 클 것 같다. 대략 몇 가지로 압축하면 1) 디지털 시대를 맞아 포퓰리즘적 정치가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보완할 방법은 무엇인지, 2) 정치 리더에게 있어 인성과 도덕성은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지, 필요한지, 만약 제도를 통해 이를 거르고자 한다면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3)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선출함에 있어서 배우자 등 가족에 대한 검증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권력구조 개편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가오리: 국민들에게 지금 대통령선거와 그 선출권은 던전이나 리니지 게임의 평생 무료 이용권보다 백배 의미있고 재미있는 것이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식자층을 중심으로 대선 후 개헌을 얘기하는데 국민들은 직선제 대통령 선출권을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국민에게서 이걸 회수할 때에는 그 이상의 현실 참여권을 보장해야 하는데 대안이 없다.      

산돌: 그런가? 현실은 직선제 대통령제에 대한 빨간불이 계속 켜지고 있는데. 어쨌든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남녀갈등의 전선이 4050세대와 고령세대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SNS상에서 서로 다른 영토에 진지를 구축하고서 공동체보다는 각자 속한 세대의 이익에 극단적으로 충실했던 선거전이었던 만큼, 그 결과에 따른 감정의 골은 쉽게 메워질 수 없다.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향후 청년세대는 한국사회 여론 주도세력으로 거침없이 언제 어디서나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노장청 중에서 노(老)와 장(壯)이 맞서 있으면 청(靑)이 균형추 역할을 하는거다. 

사진:셔터스톡

선거가 끝나도 끝이 아닌 새로운 대결의 시작

밀덕:  모든 복수극이 그렇듯 복수가 끝나면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다만 여든 야든 복수 당한 쪽은 다시 복수심에 불타오를 것이다. 윤석열 후보가 이길 경우, 적폐청산과 국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의 반대는 뻔하다. 이재명 후보가 이길 경우, 마찬가지로 검찰과 보수언론을 필두로 사실상 불복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여태 해온대로 (뭔가를) 흘리고 (기사로) 키우고 하는 순환구조다. 다만 이재명이 영리하게 검언 연합을 유화적으로 대한다면 몰라도. 

야당은 사실상 붕괴 수순에 들어갈 것이다. 홍준표의원이 비대위를 맡으며 복구하려 할 것이나,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번 패배당하면 ‘야당의 원점 재구성론’으로 넘어갈 것이다. 

가오리: 시중에서는 3월 대선, 5월 취임, 9월 제3촛불론이 나오고 있다. 또는 광화문에서 20만 vs. 20만. 대결론이다. 어느 쪽이 이기든 진 쪽을 중심으로 뭔가 이유를 들어 광화문과 서울시청 사이에 20만명 정도가 결집하고, 한편으로는 이긴 쪽도 그 만큼 거리로 쏟아져 나올 거라는 전망이다. 양쪽 모두 거리 경험도 풍부하고 지원자도 많다. 선거의 끝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대결의 시작이 되는 거지.     

결과에 상관 없이 선거 이후는 진보 정책에 대한 비판기가 될 듯

멀더: 이재명과 윤석열에 대한 비호감이 있어 제3후보에 대한 호감이 형성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근데, 제3후보는 심상정, 안철수 두명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왜 심상정 지지율은 제자리고 안철수 지지율만 10% 가까이로 올랐는지이다. 가능한 추론은 ‘문재인 정부의 왼쪽’에 위치하는 이재명, 심상정의 지지율은 갇혀 있고, ‘문재인 정부의 오른쪽’에 위치하는 안철수, 윤석열이 오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번 대선의 큰 흐름 중 하나는 ‘진보 심판’이다. 그렇기에, 대선 이후 한국 사회는 ‘진보를 심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최저임금에 대한 신중한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중단, 원전 재가동 및 원전의 적극적 활용, 재개발 재건축을 포함한 부동산에 대한 규제완화 등이 추진될 것이다. 이재명이 당선되더라도 이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유럽의 현대 정치사를 보면, ①자유방임주의의 폐해 때문에 복지국가가 등장하고, ②복지국가의 폐해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고, ③신자유주의의 폐해 때문에 제3의 길이 등장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쟁점이 되고 코로나19 이후 재난지원금의 대폭 지원이 이뤄진 시점이 ‘진보적 정책의 확대기’였다면, 2022년 부터는 거꾸로 ‘진보적 정책에 대한 비판기’를 보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산돌: 예고된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는 격언이 있다. 인간 사회에 불행을 예언하는 카산드라가 필요한 이유다. 이런 우려를 국민도 정치인도 잘 알고 있기에 새 정권의 에너지로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의 통화긴축이 미칠 글로벌 경제상황 변동 등 국제 이슈는 ‘부동산과 공정’만을 외치는 대선판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다. 거대 여당이든 거대 야당이든 일방적인 자기고집은 정권 혹은 정당 자체의 조기파멸을 불러올 것이다. 우리 국민은 영리하다. 2008년 금융 위기때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Occupy the Wall Street)’ 운동이 세계적으로 유행할 때 우리 국민은 웃고 말았다.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또는 한국이 신자유주의 무역질서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걸 아니까. 

대선 후에는 새 대통령과 새 집권 세력을 중심으로 권력구조와 국정운영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통합과 연합의 지혜가 출현할 것으로 예측한다.  

가오리: 선거 막판에 오니 이번 대선의 세 주인공, 문재인 이재명 윤석열은 우리에게 누구인지,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하다. 때로는 시대나 역사가 사람을 통해 표현되기도 하는 법이다.   

밀덕: 이재명은 시대정신이 ‘더 많은 포퓰리즘’에 있고, 거기에 가장 부합하는 정치 지도자였기에 급부상이 가능했다고 본다. 그러나 노무현에 대해 대한민국 엘리트층이 가진 생리적 거부감이 여전히 이재명에게도 작동한다. 노무현은 그걸 ‘노사모’를 통해 극복했는데 이재명에게는 이사모가 없다. 그 이유에 대한 논쟁은 나중에 할 일이고, 그래서 이재명의 선거운동이 끝까지 잘 안 풀리는 것이다.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어 복수를 대행해주는 데까지가 끝이 아닐까?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많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초반은 민주당 우위 국회와 갈등하다가 중반인 2024년 총선에서 국힘이 이기면 그때야 비로소 권력 행사가 가능해지고, 그 이전에도 여러 돌발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성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전직 대통령을 자기 손으로 감옥에 보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법조인이기 때문에 법적 형식논리로 모든 걸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즉 헌재와 법원이 두 대통령을 법적으로 처벌했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상징 권력이 개입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박근혜를 사면 복권함으로써 자신이 보수층의 적이 될 수 없다고 믿는 눈치다. 이번에 윤석열의 전정권 비리 검찰 수사 가능성 시사에 문대통령이 발끈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 특히 보수층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여당 패배시 어려움이 예상된다.    

멀더: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좌파다. 민주당 내에서 가장 진보정당스러운 입장을 가진 분이다. 정의당의 존재감이 없어진 가장 큰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진보정당의 정책’ 대부분을 집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매우 비판적이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 개인은 ‘어진 임금님’이다. 현재 지지율이 높은 이유다. 국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성품, 인품, 품격은 높이 평가하고,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이재명 후보는 인품과 품격은 문재인 대통령을 닮지 못했고, 정책은 문재인 정부보다 오히려 왼쪽에 있다. 현재 지지율이 고전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오히려 인품과 품격은 문재인 대통령을 닮고,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오른쪽에 위치했어야 했다. 

윤석열은 ‘쎈 사람 몇 명과 싸워서’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 도달한 사람이다. 박근혜 정부 때 원세훈 국정원장, 이명박, 박근혜를 감옥 보냈고, 문재인 정부 때 문재인, 조국, 추미애와 싸워서 대중적 인지도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됐다. 정치에서 ‘쎈 놈과 싸우는 것’이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이다. 

산돌: 이재명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시절 보여준 돌출행보와 밀어붙이기 행정으로 탈레반처럼 비추어진 면이 있었는데, 대선국면에서는 보다 실용적인 측면이 더 많이 보이지 않았나 싶다. 환경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카멜레온 같은 인물로도 보인다. 

윤석열은 수직적이고 직선적인 관계에 익숙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를 중시하고 조언에 귀를 잘 연다고 한다. 인사에 있어서 수평적이고 통합적인 리더십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은 참모형이지 리더형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386 민주화세대의 아바타라고 까지 했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드러난 리더십은 유약할 거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생각보다 뚝심 있는 유형이었다. 국내외 여론에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꽤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온 공은 인정받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