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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의 London Eye] BBC의 번민, 삼프로의 웃음, 방송을 어떻게 볼 것인가

By | 2022년 1월 13일 | 국제, 미분류

세계 최초의 방송국이며, 인력 규모로 세계 최대인 영국의 BBC. 한때는 전 세계 공영방송의 교과서처럼 여겨지던 BBC지만,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추지 못한 탓에 어느새 국민의 세금만 잡아 먹는 거대 공룡 신세가 되었다. 이는 BBC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기성 언론이 마주하는 현실이다. 최근 대선 후보들과의 인터뷰로 주목 받고 있는 유튜브 채널 삼프로 티비를 보면 미디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감이 잡힐 듯 하다. 과연 모든 존재는 늙으면 필연적으로 낡을 수 밖에 없는가? 레거시 미디어가 노땅이 아닌 노장으로 남을 혁신의 길은 없는 것일까? 런던에서 자산 운용을 하며 런던 생활에 대한 글을 쓰는 윤영호 필자의 첫 번째 기고이다. [편집자 주]

✔ 보수 정치권력과 다투는 진보 노땅이 되어 버린 BBC

✔ 독선의 BBC Vs 소통하는 유튜버 퓨디파이(PewDiePie)와 케이에스아이(KSI)

✔ 전달하되 가르치거나 영향력을 끼치려 들지 않는 삼프로 TV의 미덕

✔ 미래의 미디어는 전달이 아니라 소통이 핵심이 되어야

(사진:셔터스톡)

 

경이 그 자체였던 20세기 초의 BBC

1920년에 영국에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이 공중 전파를 탔을 때, 방송은 청취자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도 청취하는 사람도 방송의 영향력에 놀랐다. 너도나도 공중파를 이용한 방송을 원했다. 지금 너도나도 유튜버(Youtuber)를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전파를 희망하는 모두에게 배정할 수가 없었다. 전파 사용을 신청한 회사가 100개가 넘었기에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영국 정부는 방송을 원하는 회사들이 컨소시엄을 결성하여 전파를 송출하도록 권장했다. 그렇게 1922년에 British Broadcasting Company(이하 BBC)가 탄생했다. 올해는 창립 100주년이다.

BBC는 세계 최초의 방송국이며, 방송 인력 규모로 세계 최대의 방송국이다. 매출과 순이익 면에서 BBC를 앞서는 미국 방송사가 있지만, 광고 매출이 없는 BBC를 매출과 순이익 관점에서 미국 방송사와 비교할 수는 없다. BBC는 일 년에 8조 원을 쓰는데, 2조 원은 방송 콘텐츠를 전 세계에 팔아서, 6조 원은 가정당 25만 원의 시청료를 받아서 조달한다. 시청료는 준조세에 가까워서 BBC를 보든 보지 않든, TV로 보든 컴퓨터나 모바일로 보든, 공중파 라이브 방송을 한 번이라도 보기만 하면 시청료를 내야 한다.

그로부터 100년 뒤, BBC보다는 퓨디파이와 KSI

시청료 징수에 대한 불만은 대단히 높다. 퓨디파이(PewDiePie)와 케이에스아이(KSI)의 유튜브 채널을 빠짐없이 보는 요즘 아이들은 BBC를 거의 시청하지 않는다. 퓨디파이는 세계 최대인 1억1천만 명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런던 거주 스웨덴 유튜버다. 방송 소재는 게임과 재미난 포스팅을 리뷰하는 것이다. 정성껏 올린 방송은 천만 조회수를 훨쩍 넘으며, 간단히 올린 방송도 수백만 조회수를 쉽게 찍는다. 케이에스아이는 2천만 명의 구독자가 있는 런던에 사는 나이지리아계 영국 유튜버다. 콘텐츠는 음악과 웃긴 포스팅 리뷰다. 구독자와 커뮤니케이션이 뛰어나고, 자신만의 독특한 웃음으로 시청자를 매료시킨다. 음악 관련 콘텐츠는 조회수가 수 천만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고 지속적이다. 전 세계 아이들이 퓨디파이와 케이에스아이를 시청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보여주는 공감 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구독자에게 특정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 대신에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며, 독자의 반응을 콘텐츠의 중심으로 삼는다.

젊은이들에게는 유튜브가 오락이고 언론이다. 사진 왼쪽은 스웨덴의 인기 유튜버 퓨디파이(PewDiePie), 오른쪽은 영국 최고의 인기 유튜버 케이에스아이(KSI). (사진:유튜브 영상 캡쳐, 셔터스톡)

 

내각과 BBC, 반목으로 점철된 역사

BBC 교양 프로그램도 1980년대에는 동시 시청자가 2천만 명을 넘은 경우가 있었다. BBC가 제공한 프로그램으로 소중한 정보를 얻고 깨달음을 얻었던 기성세대는 그렇다고 치자. 미래 세대는 왜 보지도 않는 BBC에 적지 않은 돈을 시청료로 내야 하는가? ‘BBC가 세계 최고라고 한다면, 준조세에 의존하지 말고, 시장에 나가 광고로 살아남으라’는 여론이 영국 내에 비등하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러한 여론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BBC에게 몸집을 줄일 것을 요구한다. 시청료가 물가인상률을 반영하는 것을 반대하며, 시청료 면제 혜택을 받는 시청자의 범위를 확대하려고 한다. 그러나 세계 최고이며 최대라는 BBC는 위기의식을 못 느끼고 있다. 오히려 보리스 존슨 총리의 압박을 언론 탄압이라고 생각한다.

BBC는 권력과 마찰을 빚어 왔지만, 가장 심했던 시기는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집권기였다. BBC는 대처가 결정한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마저도 지지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대처는 재임 기간 내내 BBC 뉴스가 편견으로 가득차고 무책임하다고 비난했다. 보수당은 BBC가 좌파에 가까우며, 언제나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쪽이고, 과도한 LGBT 편향성을 보인다고 비난한다. 노동당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당내 좌파는 BBC가 지나치게 리버럴한 경향이 있으며, 엘리트주의에 빠져있다고 비난한다. 노동당은 가정당 동일한 금액을 지불하는 시청료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시청료 제도를 폐지하고, BBC를 국가 예산으로 운영하려고 했지만,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온건 좌파로 제 3의 길을 추구했던 토니 블레어(Tony Blair)와 BBC는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했다. BBC 뉴스를 진행했던 앤드루 마(Andrew Marr)는 이렇게 말했다. ‘BBC는 공평하거나 중립적이지 못하다. 그렇다고 어느 정당 편향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BBC는 지나친 리버럴 편향이다.’

1972년에 발행된 BBC 개국 50주년 기념 우표 (사진:셔터스톡)

 

여전히 총리 정도는 바꿀 수 있다 생각하는 시대착오적인 BBC

BBC와 현재 정권과의 관계는 대처 집권기와 비슷하다. BBC는 보리스 존슨 내각과 자주 충돌하고 있다. 급기야 BBC 진행자인 닉 로빈슨(Nick Robinson)은 대담 중에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그만 입 다물어(Stop Talking)’라는 말까지 했다. 말의 격조를 따지는 영국 사회에서 ‘스탑 토킹’이라는 말은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에서도 거의 들어 볼 수 없는 막말이다. 그 후 보리스 존슨 내각이 BBC에 가하는 압박의 강도는 더 강해졌다. 미디어를 담당하는 장관인 나딘 도리스(Nadine Dorries)는 BBC는 향후 10년 안에 사라질지도 모른다고도 말했다. 이에 BBC는 더 이상 보리스 존슨 내각과 같이 갈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총리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듯한 방송을 매시간 쏟아 내고 있다. 요즘 BBC 뉴스와 시사를 보면, 엘리트 방송이 시청자에게 정치적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BBC의 오만한 태도에서 시대에 변화에 둔감한 엘리트 언론의 한계를 본다. BBC는 자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정권을 바꾸지는 못해도 총리 정도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진화하는 미디어 시장의 지도, 오만에 빠져 그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기성 미디어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주요 언론 역시 대통령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런 착각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양한 유튜브 방송과 여러 SNS 채널의 영향으로 기존 방송과 신문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는 10년 전만 해도 조선일보 사이트와 연합뉴스 사이트를 자주 방문했지만, 이제는 언론사 웹사이트에 들어가지 않는다. 포털 사이트인 다음이 띄우는 뉴스를 보기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줄고 있다. 유튜브 채널이 소개하는 뉴스와 페이스북 친구가 자기의 의견과 함께 링크하는 기사, 그리고 단체 대화방에서 링크되는 외신도 다 소화하지 못한다.

2021년을 뜨겁게 달군 화두는 암호화폐, NFT, 메타버스 등이다. 메타버스와 함께 논의되고 있는 개념 중에 web 3.0이 있다. 웹 3.0은 무엇인가?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인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가 www 개념을 선보이면서,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가 되었다. 웹 1.0은 읽기 전용 인터넷 시대를 지칭한다. 사용자가 참여할 방법은 댓글 몇 줄 다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인터넷이 점차 참여와 공유의 장으로 발전했다. 이를 웹 2.0이라고 한다. 사용자가 콘텐츠를 만들고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위키피디아를 비롯하여,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웹 2.0의 대표주자다. 웹 2.0을 넘어 이제는 웹 3.0을 앞다투어 이야기한다. 웹 3.0을 구성하는 요소로 회자되는 것이 탈중앙화, 인공지능, 맞춤형과 같은 단어다.

방송도 웹에 빗대어 볼 수 있다. 제한된 포맷 속에서 방송을 송출하는 기존의 공중파 방송은 방송 1.0이다. 그들이 독자와 소통하는 방법은 시청자가 보내주는 엽서나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는 정도다. 그에 반해 형식과 내용에서 자유롭고 구독자와 긴밀히 소통하는 유튜브 TV는 방송 2.0이다. 방송 1.0의 시청자였던 이들이 방송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여 방송 1.0을 뛰어 넘고 있다. 방송에도 3.0이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형태일까? 오늘날 유튜브 방송의 다양한 실험은 방송 2.0을 넘어 3.0을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진화하지 않는 방송 1.0은 그것이 설령 BBC라고 하더라도 진화하는 유튜브 방송을 이기기 어렵다. 그러므로 ‘BBC가 10년 안에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입 다물어!’에 대한 화풀이만은 아니다.

삼프로 TV의 미덕: 가르치려 들지 않고 영향력을 끼치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삼프로 TV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공중파 방송이 대선 후보 간의 조율이 되지 않아서 TV토론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삼프로 TV는 자신만의 포맷으로 기민하게 유권자와 대선후보가 만나는 장을 만들어 냈다. 이재명 후보 편만 600만 조회수를, 윤석열 후보 편만 300만 조회수를 넘어섰다. 시청자의 열렬한 지지 속에 후속으로 안철수 후보 편과 심상정 후보 편이 제작되어 시청자를 만족시키고 있다. 대단하다는 말과 함께 박수가 저절로 나온다.

대선후보를 검증하는 공중파 패널 토론이나 관훈토론에 비해 삼프로 TV가 좋았던 것은 삼프로가 보여준 태도 때문이다. 진행자 세명에게는 자신들이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없었다. 후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거나 삐딱한 질문으로 후보자를 곤경에 빠지게 하여 대선 판도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가 없었다. 대선 후보의 도덕성을 국민을 대리하여 평가해보겠다는 오만한 태도가 없었다. 유권자의 한 명으로서 대선후보의 생각을 자세히 들어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점이 삼프로 TV가 이번 대선 국면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된 결정적 지점이다.

나만 옳다는 오만함 버리는 것이 진화의 첫 걸음

BBC는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매체다.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도,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도, 유명 유튜버조차도 BBC의 마이크를 사양하지 못한다. BBC 인터뷰어(interviewer)는 시청자를 대신하여 인터뷰이(interviewee)를 몰아붙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인터뷰이의 의견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때는 무례하게 자르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리버럴한 가치와 궤를 달리하는 주장을 시청자에게 전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비판적 댓글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독자를 가르치려 들고, 다른 매체는 제공할 수 없는 자신만의 방송 콘텐츠가 있다고 오만하게 믿는다.

세상의 언론은 고유한 정치적 입장을 내세울 수도 있고, 시청자와 독자를 설득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이해관계를 정치적 입장으로 포장하고, 그것으로 세상을 좌지우지하겠다고 나선다면, 3.0 시대를 준비하는 시청자에게 외면당할 것이다. 지금의 독자와 시청자는 전달자의 자세와 태도에 예전보다 민감하다.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은 많고, 그중에는 나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채널도 있다. 오만한 채널을 보고 있을 이유도 시간도 없다. BBC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면 가장 오래되었다는 100년의 역사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세계 최대라는 타이틀로도 10년 안에 사라질 목록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세계 최고도 아니고 최대도 아니면서 자신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포장하여 세상에 주입하겠다는 오만한 자세를 보인다면, 그것이 방송이 든 신문이든 유튜브이든 간에 사라지는 데는 몇 년까지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엘리트 언론인이 무례하거나 오만할 자유로 대표되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 윤영호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증권사, 보험회사,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고, 카자흐스탄 증권사 겸 자산운용사인 세븐 리버스 캐피털(Seven Rivers Capital)에서 대표로 일했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자산을 운용하며 런던 라이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 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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