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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2. 05.13, 00:00

[고재열 칼럼] 소비에서 허비의 시대로 안내하는 여행 가이드

By | 2022년 1월 6일 | 미분류, 사람

미래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일이 아닌 여가를 예측하기는 더 어렵다. 유행과 취향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우연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 뉴노멀’이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의 여행과 여가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어려운 상황을 여행 감독 고재열 필자는 <촉 2022>에서 ‘허비’라는 키워드를 통해 예측해 보았다.  ‘소비의 시대’를 지나 ‘허비의 시대’로 들어가는 대한민국의 여행과 여가. [편집자 주]

✔사물에 대한 고민은 관광이라면 여행은 사람에 대한 고민

✔소비로서의 관광은 가고 허비로서의 여행이 자리잡다

✔외로운 현대인의 관계 모델, 심야식당

✔미래 여행의 키워드는 도시 옮기기, 반려 식물, 관계 인구

(사진:셔터스톡)

합리적 소비에서 여유 넘치는 허비로의 전환

‘여행과 여가의 미래’라고 쓰고 스스로 ‘허비의 미래’라고 읽는다. 소비가 아니라 허비의 관점에서 여행과 여가의 미래를 보려고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개인에 천착하면서 소비가 아니라 허비의 관점으로 들여다봐야 할 현상이 두루 관찰되고 있다. ‘보복적 소비’는 일종의 급성 허비라 할 수 있다. 

IMF를 계기로 해외여행에서 가성비를 추구하는 패키지여행 산업이 발달했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패키지여행은 저물고 있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자유여행이 발달하고 있었는데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관광에서 ‘맥락적 허비’를 하는 여행으로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았다. 

왕년의 X세대, 허비의 시대를 이끌다

이런 ‘허비론’과 관련해 주목할 세대가 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X세대/신세대/신인류로 불렸던 포스트 386세대다. 1970년대 초중반에 태어나, 1990년대 초중반에 대학을 다니고 이제 40대 후반 50대 초반인 그들이 주인공이다. 그 시절 X세대/신세대/신인류가 2020년대를 어떻게 살아가는지 들여다보면 ‘허비의 시대’를 예측할 수 있다. 신중년인 이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허비의 사회학’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물론 이 세대도 아이러니는 있다. 한국이 샴페인을 일찍 터뜨렸을 때 흘러나온 샴페인 맛을 보았지만 샴페인에 옷이 젖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사회생활 초기에 IMF를 겪으면서 소비성향이 급격히 위축되었던 세대다. 여행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마음은 나도 한비야인데, 몸은 하나투어인 사람’으로. 바쁜 일상에 치여 오늘을 살지만 늘 탈출을 꿈꾸는 세대가 바로 이들이다.   

이들에게는 ‘허비력’이 잠재되어 있다. 이들이 50대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허비의 시대’에 돌입할 것이라고 본다. 몇몇 징후를 바라본다. 이전 세대가 50대에 들어서서 전원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려고 했을 때 이들은 캠핑카와 요트를 산다. 이 세대를 보면 여행과 여가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고 본다. 

아끼고 저축한 이후의 해피 엔딩, 맥락적 허비

‘합리적 소비는 합리적이지 않다. 인생을 허비하지 않으면 허비하게 된다.’ 다소 말장난처럼 느껴지는 이런 소비와 허비의 변증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비는 허비를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허비하지 않으면 절약(합리적 소비)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합리적 소비에 대한 이해는 있지만 맥락적인 허비에 대해서는 감이 없다. 아끼고 저축한 다음, 그 이후의 스토리가 없다.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좋은 허비다. MZ세대는 스스로 허비의 맥락을 깨우쳤다. 문제는 기성세대다. 소확행의 저편에 소비의 블랙홀이 있다. 40대 후반 50대 초반에 큰 허비를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다. 큰 만족을 얻으려다 큰 골칫거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갱년기’에 즈음해 지금 자신에게 보상해주지 않으면 늦는다는 자의식(혹은 무의식) 때문이 아닐까. 무리한 소비가 짐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소비에는 소비의 논리가 있고 허비에는 허비의 맥락이 있다. 허비란 여백이 있는 소비다. 소비가 모던하다면 허비는 포스트 모던하다. 논리가 아니라 맥락의 영역이다. ‘저런 걸 왜 모으지’ 하는 생각으로 한심스럽게 보았던 사람이 어느날 자신의 콜렉션으로 전문숍을 차려 돈을 버는 모습을 왕왕 보게 된다. 

허비란 온전히 나와의 대화여야 한다. 나의 내밀한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허비하지 못하는 것은 자존감의 문제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의 내밀한 목소리에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좋은 ‘허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허비해도 된다는 강한 자의식이 필요하다. 남이 뭐라던 나한테 의미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면 된다는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 국내 여행산업과 관련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바로 이점이다.  

취향의 영역에서는 J커브가 자주 나타난다. 품질에 비례해서 가격이 증가하다가 어느 대목에서 급증하는 양상이다. 와인이 그렇고 차가 그렇다.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가격이 된다. 이 구간의 소비를 합리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허비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에 진입한 지금은 허비의 맥락을 살펴야 할 때다.  

외래문화 허비의 토양에서 자라난 한류

합리적 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던 이유는 합리적 소비가 장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과 여가의 영역은 꼭 합리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허비 프레임은 나름의 묘수였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여행도 그렇다. 한류의 원천은 소비일까 허비일까. 우리는 할리우드와 팝문화를 게걸스럽게 허비했기에 오늘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지금의 풍요 전에 허비의 맥락이 있었다. 

여행의 영역에서 합리적 소비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형이 바로 수학여행과 워크숍이다. 지금 기성세대가 다녔던 수학여행은 학습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바뀌었고 워크숍도 직원들의 팀워크나 업무 능력 향상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바뀌고 있다. 여행을 기획해 보라면 전교 1등 반장이 수학여행 짜듯이 답사 여행 코스를 짜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수학여행과 워크숍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여행을 모티브로 관찰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나영석PD의 여행을 보면 ‘허비’가 절묘하게 활용된다. 친구들과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는 로망을 실현해준 것이 <꽃보다 청춘>이고, 나도 조용한 곳에서 게스트하우스나 하면서 늙고 싶다는 바람을 구현해준 것이 <스페인 하숙>이고, 한옥에서 잠만 자는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보고 싶다는 욕망을 채워준 것이 <윤스테이>다. 나영석을 보면 여행의 미래가 보인다. 

소비로서의 관광은 가고, 허비로서의 여행이 자리잡다

사람들은 관광과 여행을 확실히 다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관광은 관광이고 여행은 여행이다. 관광과 여행의 차이를 물어보면 대체로 ‘여행은 좋은 것, 가치 있는 것, 의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인데 반해 관광에 대한 생각은 부정적이다. 사람들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관광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개발독재 시절에는 경치 좋은 곳에 가서 회포를 풀고 오는 관광이 주류였다. 하지만 주 5일제로 바뀌고 연중 휴가를 가는 생활이 시작되면서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관광의 대상은 사물이다. 좋은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이 대상이다. 여행의 동반자는 사람이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나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이 중요하다. 이 말은 사물에 대해서 고민하면 관광이고 사람에 대해서 고민하면 여행이라는 말이 된다. 사람과의 만남 중에는 자기 자신과의 만남도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패키지여행은 관광의 대상만 고민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끊어놓는다. 문제가 생길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그래서 여행 참가자들은 가이드만 바라보고 가이드 말만 듣고 가이드하고만 관계를 맺고 오게 된다. 물론 그 관계도 비행기를 타는 순간 종료된다.

현대인의 만성 질환 외로움

합리적 소비는 가끔 취향과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우리 사회는 취미를 책으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소믈리에 되려는 사람처럼 와인을 공부하고, 바리스타 되려는 사람처럼 커피를 공부한다. 왜? 피아니스트 될 것처럼 바이엘과 체르니로 피아노를 공부하고 자랐으니까. 소비에 있어서도 1970~1980년대 산업사회 프레임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허비해야 할 일을 소비한다. 

인간 관계에서도 소비와 허비의 함수를 살필 수 있다. 간단히 비교하면 ‘영양가’가 중심인 인맥을 관리하는 것이 소비라면, 우연한 인연을 챙기는 것은 허비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인연보다 인맥 챙기기가 더 먼저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외로움이라는 도시인의 만성 질환이 도지기 시작한다. 사이비 종교도 이 외로움을 파고들고 많은 다른 사회 병리들도 이 외로움 속에 깃든다.      

중년의 외로움은 청춘의 외로움과는 다르다. 더 고질적이다. 청춘은 아직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이 있지만 중년을 그렇지 않다. 인간에 대한 실망이 누적된 상태라 외로움이 더 깊다. 청춘의 외로움이 물리적이라면 중년은 화학적이다. 치료가 더 어렵다. 여행감독을 자처하고 ‘어른의 여행클럽’을 구축하겠다고 나선 이유 중 하나는 이 외로움을 치료하는데, 치료는 안 되더라도 완화하는데, 혹은 달래는데 여행이 조금은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여행 뒤에 ‘마음의 마을’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다르게 만난다. 인맥이 아니라 인연을 중심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서로의 SNS에서 인연을 이어간다. 여행에서 만나서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간다면 다시 인간에 대한 호기심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의 여행클럽’을 구축할 때 ‘여행을 통한 느슨한 연대’를 내걸었다. 이 연대는 사회생활 인맥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사회생활 인맥이 이해관계에 기반한다면 여행에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는 ‘정’에 기반한다. 일상에서 사람을 만나는 방식에서는 이성과 합리가 많이 작용한다. 그래서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되기 십상이다. 여행에서는 좀 더 감성과 공감이 많이 작용한다.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할 여지가 많아진다는 얘기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게 된다.      

외로운 현대인을 위한 처방, 심야식당 정도의 친밀함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는 온도가 있다. 어떤 온도가 적당할까 고민할 때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보면서 현대인의 만남에 딱 맞는 온도라고 생각했다. ‘간섭하지 않는 결속력’이 바로 그 온도다. 나이가 든 사람끼리의 관계는 보여주는 만큼만 보고 상관해달라는 만큼만 상관하는 것이 예의다.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을 굳이 보려고 하고, 상관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굳이 상관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폐를 끼치는 것이다.       

<심야식당>의 고객들은 서로의 ‘현재’만 본다. 혈연 지연 학연 등 그들의 과거는 굳이 보려 하지 않는다. 그 현재도 ‘이곳(심야식당)’의 현재만 본다. 그가 일하는 ‘저곳’이 아니라 식당 맞은편에 앉은 그가 보여주는 모습만 본다. 그의 일상이 아니라 그가 휴식하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그들은 심야식당에서 다르게 만난다. 덕분에 선입견에 빠지지 않고 상대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그 정도의 온도가 현대인에게 적당하다 싶었다. 

‘어른의 여행클럽’을 설계하면서 주목했던 것은 ‘관계의 공학’이다.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그리고 인격적인 사람과 비인격적인 사람이 따로 있지만, 사람들이 서로 착하게 만나는 것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은 설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어떤 사람의 본성과 인격이 요리의 재료라면 그들이 착하게 만나고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는 것은 요리사의 일이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다르게 만나고 여행감독이 그 만남에서 역할을 한다면 그들은 훨씬 좋은 기억을 가져갈 수 있다.      

코로나19에도 국내 여행업이 활성화 되지 않는 이유

코로나19 창궐로 국내 여행이 활성화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행객이 몰린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국내 여행은 그다지 활성화 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왜 국내 여행업으로 돈을 벌 수 없는지 그 구조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여행을 업으로 하려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많은데 성공 사례로 알려진 것들도 대부분 ‘빛 좋은 개살구’인 경우가 많았다. 이유가 있다. 

여행업의 본질은 솔루션이다. 우리가 패키지여행을 구매하는 이유는 비자, 항공권, 숙박, 교통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언어와 정보의 문제까지. 그런데 국내여행은 포털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이 솔루션을 제공해준다. 여행지 정보는 블로거들이 내용을 잘 정리해 두었다. 여행사가 해결해 줄 숙제가 없다. 국내여행에서는 여행사의 솔루션이 별 의미가 없다. 있다면 할인 혜택 정도인데 이것 역시 카드사와 애플리케이션에 차고 넘친다. 

솔루션으로서 역할이 없을 때 대안을 찾는다면 큐레이션을 꼽을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돈과 시간을 값지게 의미 있게 재밌게 사용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값지게 의미 있게 재밌게 이끌어주는 서비스라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소비의 영역에서는 여행사의 역할이 없고 허비의 영역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국내여행에선 이 큐레이션 수준이 낮았다.  

개별 여행의 인기와 모바일 혁신으로 또 한 번 전환하는 여행업

여행산업은 다시 변하고 있다. 일단 패키지여행 위주였던 것이 개별여행 위주로 바뀌고 있다.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가 발표한 ‘주례 여행 행태 및 계획 조사’의 2018년 상반기 분석 자료를 보면 상반기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 중 개별여행자는 59.3%였고 단체 패키지여행자는 33.7%였다(에어텔 패키지는 7.0%).

여기에 또 하나 변수가 생겼다. 바로 모바일이다. 다양한 예약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면서 여행이 ‘분해’되기 시작했다. 항공과 숙박과 액티비티(여행지의 체험 프로그램)로 분해되어 각각 발전했다. 특히 강력한 검색 기술을 보유한 외국계 온라인 여행사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마치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선점하듯 여행도 외국계 온라인 여행사들이 플랫폼을 선점했다. 

도시 옮기기 게임과도 같은 미래의 여행

미래의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세 가지 키워드로 흐름을 읽어보려고 한다. ‘도시 옮기기 게임’ ‘식물 여행’ 그리고 ‘관계맺기 여행’이다. 수고하고 짐 진 바쁜 현대 도시인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트렌드를 보면 여행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도시를 벗어나면서도 도시의 편리를 가져가고 싶은, 이율배반적인 욕망을 충족하면서 여행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여행 중 이동은 줄어들면서 시간은 늘어나는 ‘관계맺기 여행’도 뚜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흔히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연으로 가는 여행을 소개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도시로 간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도시는 물 공기 흙처럼 기본 원소에 해당한다. 기성세대는 인공적인 것은 자연을 흉내 낸 것이고 자연은 스스로 완벽하다는 이분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다르다. 그들에게는 자연에서의 원경험이 별로 없다. 그들에게는 인공적인 환경이 자연스러운 배경이다. 

처음 캠핑을 갈 때 캠핑은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캠핑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라 도시로 되돌아오는 일, 도시를 (자연으로) 옮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캠핑을 가서 텐트 설치 등 피칭을 하고 바비큐를 즐기고 난 뒤 화롯불을 켜놓고 즐기는 ‘불멍’도 좋았지만 돌아와서 모든 장비를 원위치시키고 샤워하면서 즐기는 ‘물멍’이 더 좋았다. 

매번 캠핑을 갈 때마다 얼마만큼의 도시를 옮길지를 고민했다. 추위와 바람과 비를 피하기 위한 장비를 얼마만큼 가져갈지가 늘 관건이었다. 모든 짐을 내가 메고 가야 하는 백패킹을 할 때는 짐을 줄이는 것이 관건인데, 끝까지 포기 못하는 도시가 있었다. 그것은 한 잔의 드립커피일 수도 있고 블루투스 스피커일 수도 한 벌의 원피스일 수도 있다. 우리는 도시가 함께 할 때 비로소 안도한다.

일전에 지리산 산행을 할 때 후배가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바람이 너무 좋다. 에어컨 바람 같다.” 이때 후배에게 바람의 이데아는 에어컨 바람이었다. 우리 세대는 에어컨 바람이 자연의 바람을 닮았다고 광고했지만 지금 세대에게는 언제든 내가 원하는 바람을 내어주는 에어컨 바람이 바로 바람의 이데아인 것이다. 그래서 그 에어컨 바람을 닮은 계곡의 바람이 좋은 바람인 것이고. 장범준의 노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기를 느낀 거야>라는 곡의 제목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려 식물을 찾아가는 수목 기행 형태의 여행

반려동물에서 반려식물로, 국민소득이 3만 불에서 4만 불 구간으로 가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식물의 말 없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잎의 두께와 색깔 그리고 온도와 습도를 챙기는 ‘식물 집사’들의 시대다. 반려동물 카페가 유행이었다가 이제 대세는 식물 카페가 되었다. 여행감독으로서 식물에 대한 관심을 관광자원의 측면에서 눈여겨보고 있다.

선조가 가꾼 ‘오래된 정원’을 누리는 수목인문기행이 미래의 여행법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인문이란 인간이 그려낸 무늬다. 수목 또한 인간이 그려낸 무늬 중 하나다. 그러므로 수목을 읽어내며 가는 여행 또한 인문 기행이라 할 수 있다. 광양 읍성터의 듬직한 고목들, 삼천포 대방진굴항의 아름드리 나무들, 남해 물건리의 방풍림 그리고 황홀했던 경주 대릉원의 고목숲, 여기에는 인간이 진하게 써 내려간 삶의 무늬가 있다. 그것을 읽어내는 여행은 다분히 인문적이다. 

정자의 고장으로 알려진 담양은 수목인문기행의 좋은 답사지 이기도 하다. 소쇄원의 수목이 지니는 유교적 의미, 관방제림을 조성한 지방관의 고심, 메타세콰이어길을 조성한 군수의 혜안 그리고 죽녹원을 설계한 정원 전문가의 구상. 모두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다. 광주의 호랑가시 언덕에 서양 선교사들이 남긴 흑호두나무와 피칸나무 그리고 은단풍나무는 서양 문화의 전파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언덕에 늠름하게 서있는 500년 된 배롱나무는 이 언덕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증거 한다.  

식물학자는 식물을 통해 사람의 흔적을 읽는다. 한 때 화전민촌이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는 곳에서 인간이 남긴 식물로 식물학자들은 ‘시간의 나이’를 읽어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인간이 뿌린 씨앗으로 공간을 읽는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멋진 식물 탐험이 될 것이다. 식물 여행의 끝은 아마 나를 닮은 식물을 찾는 것으로 수렴될 것이다. 식물을 2인칭으로 대해 보고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면 멋진 여행이 될 것이다.    

한달 살기의 확장판, 관계 인구로 살기

경상남도의 어느 섬에 답사갔을 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주민 수가 10명이 안 되는 섬이었다.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 부산의 수천억 대 부자가 빈집을 빌려서 살고 갔다고 한다. 무인도에 가까운 유인도인 그 섬에서 효과적인 사회적 격리를 하고 간 셈인데, 지역 주민들과 제대로 관계 맺기를 하지 못하고 간 점은 안타까웠다. ‘인맥’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 ‘인연’도 맺지 않은 것이겠지만. 

부산 부자가 아니더라도 코로나19로 ‘한 달 살기’ 유행이 제주를 중심으로 일었다. 지인이 ‘한 달 살기’ 하는 집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대체로 무료했다.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가 없으니 먹고 마시고 노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선 ‘한 달 살기’ 이후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관계인구’라는 개념은 일본에서 정립된 것인데 보다 외향적이고 관계 지향적인 우리에게 더 맞는 개념으로 보였다. 

돌이켜보니 여행감독으로서 ‘관계인구’로 살고 있었다. 또한 서울과 지방의 인연을 이어주면서 ‘관계인구’를 늘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관계인구’라는 개념을 적용해 보니 나는 서울에 살지만 서울시민이 아니었다. 지인들과 아지트를 구축한 삼척시민으로, 덕산기계곡의 명예 주민인 정선군민으로, 미탄마을의 동생들과 추억을 쌓는 정선군민으로, 전용 방을 두고 외갓집처럼 양림동에 드나드는 광주시민으로 살고 있었다. ‘관계인구’로 사는 멋진 경험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글쓴이 고재열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한때 시사 IN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어른의 여행’을 디자인하는 여행감독이다. 비록 코로나 19로 인해 행동 반경이 위축된 감이 있지만, 언제나 ‘길위의 살롱’을 만들어가는 여행을 기획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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