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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임기말 대통령의 마지막 임무, 한국은행 총재 지명

By | 2021년 12월 23일 | 미분류, 정책, 정치

대통령의 임기가 5개월이 채 남지 않은 현시점. 여, 야 할 것 없이 양당의 관심은 온통 선거에 쏠려 있다. 하지만 선거만큼, 어쩌면 선거보다 더 중요한 일이 하나 있다. 문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후임 한국은행 총재를 지명하는 일이다.  현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고, 차기 대통령 선거도 3월이다. 5월에 퇴임하는 대통령이 임기 막판에 한국은행 총재를 지명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매우 클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은행의 후임 총재가 현 대통령 임기 완료 전에 지명되어야 하는 이유를 한국은행 출신 금융 전문가 차현진 필자가 조목조목 풀어준다. [편집자 주]

✔️탈정치는 중앙은행 독립의 근간

✔️중앙은행이 정치에 휘둘린 브라질과 터키의 교훈

✔️직접 겪어보아 아는 한국은행 총재 공석기의 교훈

✔️왜 후임자가 아닌 임기 말 현 대통령이 지명해야 하는가

(사진: 셔터스톡)

 

임기말의 대통령이 한은 총재를 임명해서는 안된다는 일부 주장

부작위(不作爲).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부작위는 단순히 ‘게으르다’는 질책을 넘어서 중대한 범죄가 될 수도 있다. 세월호 선장 이준석은 침몰하는 배에서 마땅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죄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부작위의 잘못은 대통령에게도 적용된다. 세월호 사고 초반에 박근혜 대통령은 부작위로 많은 비난을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의 임기가 만료될 때마다 후임자 인선을 미뤘다. 공석이 늘어나자 뒤늦게 3인을 한꺼번에 임명하는 웃지 못 할 사건이 벌어졌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명백한 대통령의 부작위였다. 

외환위기 전에는 수십 년 동안 금통위원이 공석이 되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임기 만료 한 달 전에 대통령이 반드시 후임자를 임명해야 했기 때문이다(구 한국은행법 제13조). 그런데 그 조항이 1997년 말 삭제되었다. 외환위기 초반 한은법을 급하게 개정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실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 실수를 악용했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 문재인 대통령이 그 실수를 또 ‘악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내년 3월 말 끝나는데, 5월에 퇴임하는 대통령이 4년 임기의 한은 총재 후임을 임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주장은 터무니없다. 이 칼럼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속히 후임 총재를 지명할 것을 촉구한다. 퇴임 직전까지 대통령의 인사권을 성실하게 행사해야만 훗날 부작위의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공직에는 알 박기가 없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을 ‘알 박기’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시각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1801년 미국의 ‘심야 판사(Midnight Judges)’ 사건이다. 1800년 치러진 제3대 대통령 선거로 인해 정권교체가 불가피해지자 물러나는 존 애덤스 대통령이 꾀를 냈다. 퇴임 전날 16명의 판사를 급하게 임명한 것이다. 판사는 종신직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사법부를 오랫동안 장악하려던 속셈이었다. 1801년 3월 3일 자정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날 백악관을 접수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미처 발송되지도 않은 임명장들을 발견하고 소각했다. 야당에서는 종신직인 판사를 대통령이 해임하는 것을 문제 삼아 위헌소송을 벌였다. 그로 인해 몇 달간 국정이 아주 혼란스러웠다. 긴 소송 끝에 심야 판사 해임은 합헌으로 결론 났다. 전임 대통령의 ‘알 박기’ 시도 때문에 시간과 인력을 낭비한 경우이다.

그에 비해서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패배 직후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위원(크리스토퍼 월러)을 임명한 것을 두고서는 ‘알 박기’라는 시비가 붙지 않는다. 법률에서 정한 의회 청문회를 통해 여야가 후보의 자질을 검증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총재도 마찬가지다. 2012년 이전이라면, 임기 말인 대통령의 한은 총재 임명은 미국의 ‘심야 판사’처럼 ‘알 박기’ 시비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한은 총재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공직 62개의 하나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인사권 행사를 늦출 이유가 없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임명을 미루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부작위’ 전철을 밟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탈정치는 중앙은행 중립의 근간, 브라질과 터키의 교훈

오늘날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걱정은 그 나라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때문에 모든 국가가 물가 불안을 겪지는 않는다. 통화정책이 방만하면 대개 물가 불안으로 이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중앙은행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도록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총재의 임명이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최근의 브라질과 터키를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브라질중앙은행은 헌법기관(헌법 제164조)이며, 총재는 다른 장관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 중앙은행 총재도 내각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까지 국무회의에 참석했고, 여느 장관처럼 임기도 없었다. 대통령이 바뀌면, 총재가 바뀌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겼다. 그 결과 물가 관리에 늘 실패했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나 화폐개혁을 치렀다(1967, 1986, 1989, 1993, 1994년). 그 분야에서 브라질은 단연 세계 최고다. 2019년 취임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중앙은행법을 개정해서 총재를 내각에서 배제하는 대신 임기를 부여했다. 그랬더니 브라질중앙은행이 올해 금리를 일곱 차례 올렸다. 이번 해의 인플레이션이 주변국보다는 현저하게 낮다. 터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터키도 브라질 못지않게 중앙은행 총재를 부지런히 바꿔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 가속이 붙었다. 지난 3월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기가 임명한 지 넉 달밖에 안 된 총재를 사퇴시켰다. 후임자에게는 끊임없이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그 바람에 네 차례나 금리가 인하되었다. 급격한 환율상승과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파탄 나기 직전이다.

터키와 브라질의 교훈은 중앙은행 총재 임기의 탈정치화가 얼마나 중요한가이다. 탈정치화란, 총재의 임기를 임명권자의 임기와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대법원장을 임명할 때 대통령의 잔여임기를 고려한다면 사법부가 탈정치화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대법원장을 “임명했던 대통령의 사람”으로 간주한다는 말이며, 지극히 전근대적인 생각이다.

브라질 중앙은행. (사진: 셔터스톡)

 

후임자 지명이 절실한 또 다른 이유는 한은법의 허점

어느 조직이나 대표가 공석일 수 있다. 그러면 규정에 따라 권한대행을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대법원장이 두 번 공석이었는데, 그때는 법원조직법에 따라 선임 대법관이 권한대행을 맡았다.

그런데 현행 한국은행법은 법원조직법과 달리 권한대행에 대한 고려가 없다. 1997년 말 급하게 개정된 한은법의 또 다른 오류다. 과거에는 부총재가 총재의 직무를 대행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조항이 삭제된 것이다. 현재는 미리 정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중 한 사람이 ‘의장의 직무’를 대행하게 되어 있다. 의장은 회의를 주관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총재 유고 시 한국은행 운영에 대한 권한대행은 모호해진다.

부총재의 직무는 총재를 보좌하는 데 있다. 따라서 총재가 없을 때는 그 직무를 말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서 총재가 공석이라면, 금통위원과 부총재 중 누가 한국은행의 업무를 통할하는지 매우 불분명하다. 국내의 다른 법률이나 외국의 중앙은행법에서는 유례없는 치명적인 약점이다(이에 대한 법률 개정 방향에 대해서는 필자의 ‘법으로 본 한국은행’ 참조). 결국 한국은행 운영이 파행을 밟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안에 반드시 후임 총재를 임명해야 하는 이유다.

문 대통령의 후임자가 한은 총재를 지명한다면?

지금까지는 통상 2월 중순에 후임 총재를 지명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고려하여 임기종료보다 한 달 반 정도 여유를 두었다. 그리고 3월 초나 중순경 인사청문회가 개최되었다. 그런데 내년 3월 초에는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그 직전 또는 직후에 한은 총재 임명을 위한 인사청문회를 개최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제기되는 아이디어가 3월 9일 대통령 선거 직후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이 만나 인선을 협의하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비현실적이다. 대통령 당선인 입장에서 볼 때 한은 총재 인선은 그다지 급하지 않다. 국무총리부터 시작해서 채워야 할 공직이 한두 개가 아닌데, 한은 총재 인선부터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 결국 한은 총재 지명은 내각이 채워질 때까지 상당히 늦어질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직 대통령이 당장 차기 한은 총재 임명 절차에 돌입하는 것이다. 우선 2022년 초 한은 총재 후보들을 지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처럼 여론의 검증을 받는다면 더욱 좋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한결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다. 한은이 표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여야 대선 캠프에서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보다 50일 정도 지명을 앞당기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일개 민간기업인 네이버도 내년 3월에 취임할 신임 사장 인선을 넉 달 전인 지난 11월에 발표하지 않았는가?

적기에 사용해야 하는 대통령의 인사권, 지금이 적기

현시점에서 차기 한은 총재 후보를 발표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매우 부담스러울 수 있다. 청문회 과정에서 혹시라도 자그마한 흠결이 발견되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인사권이고 책임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John Shedd)”는 말은 대통령의 인사권에도 적용된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자기가 이끄는 배의 방향타를 놓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한은 총재 지명을 서두르지 않는 것은 방향타를 놓는 것이요, 이는 한국은행을 표류하게 할 것이다. 만일 제때 총재직이 채워지지 않으면, 한은의 2천여 직원들은 “누가 물망에 오른다더라”는 식의 풍문 속에서 바깥 동향만 살필 것이다. 중립성을 지켜야 할 조직이 정치에 흔들리게 된다. 금리와 환율관리가 각별히 중요해질 내년 상반기에 매우 걱정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한은의 흑역사가 된 4.19 직후 총재 공석 기간

참고로 한국은행 총재가 오랫동안 공석일 때가 있었다. 4.19혁명 직후 김진형 총재가 대출압력을 통해 3.15 부정선거를 도운 혐의로 검찰에 불려갔다. 6월 1일 새 정부가 후임 총재를 임명할 때까지 후임 총재로 거론되는 사람은 십여 명이 넘었다. 총재가 없는 그 40여 일 동안 직원들은 새로운 총재를 탐문하고 줄을 대려고 각자 바쁘게 뛰었다. 낮보다 밤이 바빴다. 차마 알리기 부끄러운 한국은행의 실제 과거이다.

지금이 혁명이 아니듯 임기 말 대통령의 한국은행 총재 지명도 알 박기가 아니다. 부작위의 오명을 듣지 않으려면, 문 대통령은 지금 당장 최선을 다해 빠른 시일 안에 좋은 총재 후보를 물색해야 한다. 2018년에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준비로 여념이 없는 속에서도 한국은행 총재 인선에 최선을 다했을 것으로 믿는다. 독자들과 대통령에게 호소하건대, 한국은행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글쓴이 차현진은

금융전문가. 서울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유펜) 와튼스쿨에서 공부했다. 대통령비서실, 미주개발은행(IDB)과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장, 기획협력국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을 거쳤다. 저서로는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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