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 기자로 2차 대전에 참전한 소설가 헤밍웨이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 최초의 노벨상은 아니다. 하지만 국적 불문 언론인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언론인 최초로 필리핀 출신의 마리아 레싸가 그 영예를 안았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 시대의 미디어 시장이 어떤 상황이며 그 속에서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언론은 어떤 사명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독립 언론인 마리아 레싸의 전장은 부정 부패와 인권 유린이 만연한 모국 필리핀이다. 필리핀에서는 모든 언로가 페이스북을 통한다. 돈과 권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페이스북에서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필리핀 독립 언론 매체들은 페이스북 알고리즘과 싸우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대의 언론은 과연 어느 곳에서 어떤 형태의 싸움을 해야하는가? 마리아 레싸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편집자 주]

✔️ 노벨 평화상 120년 역사상 최초로 독립 언론 운영자가 수상✔️ 필리핀 탐사 보도 매체 래플러의 운영자인 마리아 레싸 수상을 통해 짚어본 글로벌 미디어와 거대 공룡 SNS의 문제✔️ 금년도 노벨 평화상은 언론의 통제권을 장악한 세력과 맞서 싸우는 독립 언론인들에 대한 헌사

 

2021년 노벨평화상은 필리핀의 마리아 레싸와 러시아의 드미트리 무라토브에게 돌아갔다.

 

마리아 레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 언론인

올해 202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아시아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 필리핀의 열혈기자 마리아 레싸(Maria Ressa, 58세)가 그 주인공이다. 전 세계에서 현역으로 활약 중인 수천만 명의 기자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수상은 전세계 언론인들의 대축제이자 아시아 민주주의의 중대한 이정표로 기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레싸의 이번 노벨상 수상에 대한 반응은 조금은 차갑다는 말을 써야 할 정도로 미지근하다. 원래 기자라는 직업이 모든 이의 환영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어찌되었건 의아한 현상이다.

마리아 레싸의 현재 직업은 래플러라는 필리핀 독립언론의 발행인이자 대표기자다. 2012년에 설립한 신생언론사로 기자 수가 12명에 불과하니 한국의 평범한 독립언론과 그 규모나 운영방식이 흡사할 것이다. 종이신문을 발행하지 않는 온라인 기반이고,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활용해 텍스트 이외의 영상취재물도 만든다는 점이 요즘 독립언론의 일반적 특징이다. 물론 필리핀에 이런 작은 언론이 주류라는 말은 아니다. 당연히 1억 인구를 가진 필리핀이니 공중파 뉴스에, 케이블 뉴스, CNN 등 글로벌 뉴스, 종이신문, 잡지, 블로거, 유튜버 등 수만에서 수십만의 언론인이 맹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작은 언론사를 이끄는 그녀가 노벨상 수상자가 된 것일까?

우선 레싸의 래플러가 전국적인 인지도를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결정적 배경엔, 창립 이후 일관되게 정권의 부정부패와 인권유린, 그리고 이슬람 무장단체가 벌이는테러리즘에 대해서 용감하고 심층적인 리포트를 써왔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 와중에 벌어지는 참혹한 인권유린에 대해 고발하고 이를 위한 풀뿌리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해왔다. 이렇게 설명하면 대충 "아, 독재에 대항해서 그렇구나" 하고 쉽게 넘겨짚기 쉽지만, 필리핀 언론인이 겪어온 네 가지 현상(부정부패-인권유린-테러리즘-풀뿌리 언론)을 연결지어 이해한다는 게 필자는 물론이고 한국 독자에게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회운동가로 진화한 언론인

기자는 "사회에 의미있는 사실(팩트)"을 전달하는 일을 업으로 한다. 부당한 억압에 맞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저널리즘이 발달하고 법치주의가 퍼진 시대에 그렇게까지 복잡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언론인은 그 나름의 윤리 체계가 있으므로 언론인이 정치인으로 변신하지 않고는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운동가가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언론인이 노벨평화상의 대상이 된다는 것 또한 결코 범상한 일은 아니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20대 기자와 40~50대 기자의 모습이나 행태가 같지 않다. 자신이 전달하는 ‘사실(事實)’이라는 것의 다층적인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또 여러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며 심각한 내적인 갈등과 외적인 변화를 겪기 마련이다. 레싸 역시도 '팩트'를 전달하고 해석하는 저널리스트에 그치지 않고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성숙의 과정을 거쳐 사회운동가로 진화했다는 얘기다. 

1963년생인 마리아 레싸는 1970년대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이중 국적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미국에 돈 벌러 간 어머니가 이탈리아계 새 남편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필리핀계 이민자가 상당히 많다. 필리핀이 20세기 초 미국의 식민지 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이는 등 끈끈한 관계를 지속한 탓이다. 그는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하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모국인 필리핀으로 복귀한다. 저널리즘 공부와 대학 강사 생활을 병행하면서 본격적인 저널리스트로서 경력을 시작한 것이다. 그게 1987년이었고 당시 나이는  24살이었다. 필리핀은 1986년 민주화 혁명(일명 피플파워)의 여파로 사회 전체가 무척이나 달뜬 상태였다. 

지금도 그를 수식하는 타이틀은 CNN 동남아(마닐라-자카르타) 지국장이다. 중간에 필리핀의 대표방송인 ABS-CBN에서 수년간 일하기도 했지만 주로 CNN 타이틀로 일한 방송기자다. 그가 1987년부터 2005년까지 18년 가까이 CNN 기자로 활약한 점은 여러 맥락에서 의미가 커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CNN에 출연한 마리아 레싸. CNN의 동남아 지국장은 그녀의 주요 경력중 하나이다. (CNN 캡처)

 

CNN, 분쟁의 미디어 상품화

지금은 방송학 교과서에 당당하게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는 케이블 전문 뉴스채널인 CNN은 1980년 첫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고, 전 세계적 히트를 기록한 것은 1991년 걸프전 때다. 1980년대에 접어들며 TV수상기가 전지구적으로 보급이 되고 컬러 방송 역시 보편화하였지만, 방송 콘텐츠는 원래가 전파를 활용하는 탓에 국경을 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올드 미디어였다. 일정 반경을 넘어서면 수신율이 확연히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해외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VCR 테이프를 직접 항공기로 운송하거나 거대한 위성 안테나가 필요했다. 그런데 케이블 TV의 발명으로 깨끗한 TV화면을 케이블이 닿는 지역까지 송출이 가능해지자 CNN이라는 첫 번째 '글로벌' 뉴미디어가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국제뉴스를 지겨운 정치분석이나 복잡한 해설로 옮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신문뉴스가 아닌 TV뉴스의 핵심은 한 마디로 '그림'이다. 재밌는 그림과 흥미로운 장면을 잡는 게 방송기자의 본질이 된다. 전 세계를 커버하는 CNN의 등장으로 인해 TV뉴스는 국제정치 질서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데, 주로 텍스트 기사와 1~2장의 사진으로 전해지던 국제분쟁의 현실을 미사일의 불꽃과 총알의 폭음의 들리는 생생한 3차원 공감각적 이미지로 뒤바꾼 것이다. 이렇게 분쟁과 갈등을 시각콘텐츠로 바꾸어 버린 CNN-타임워너는 미디어 제국으로 거듭난다. 이토록 미국적인 뉴스회사의 아시아 지부(마닐라와 자카르타)에서 레싸는 18년을 일하며 미디어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미국적 뉴스 회사라는 CNN의 아시아 지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급박한 취재 아이템은 무엇이었을까. 1990년대에는 민주화 열풍이 가장 시급한 주제였고, 2000년대가 되면서 테러리즘으로 그 주제가 바뀌게 된다. 2001년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타격(9.11 사건)한 알카에다에 미국인의 중심 화두로 부각이 되면서부터다. 레싸 역시도 1995년까지는 필리핀 지부에서, 2005년까지는 인도네시아 지부에서 주로 정치 분야를 취재했지만, 사실상 가장 집중해야 했던 것은 동남아 지역의 분쟁과 갈등, 특히 2001년 이후부터는 무슬림계 알카에다 동남아 지부의 급박한 테러 위협이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무슨 알카에다가 있냐고 고개를 갸우뚱할 분도 계시겠지만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는 전세계 최대 무슬림 지역이다. 당연히 알카에다 이외에 자생적인 무장단체도 많고, 중앙정치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분리주의자들도 적지 않다. 이들 무슬림 조직은 아프리카 북부에서 중동을 거쳐 동남아까지 자신들만의 견고한 경제-상업 네트워크를 꾸리고 테러는 물론이고 무기밀수, 납치, 범죄자 은닉 등의 범죄와 연루돼, 국제적인 관심과 수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연히 CNN의 좋은 취잿감이었다.

전쟁을 대체한 CNN의 테러 생중계

앞서 CNN이 국제정치의 질서를 바꿨다고 얘기했는데, 1991년의 걸프전과 2001년의 뉴욕 무역센터 테러 사건을 비교하면 보다 명확해진다. 이라크 같은 거대 국가도 아닌 고작 반체제 단체인 알카에다가 저지른 쌍둥이 빌딩 테러는 걸프전 그 이상의 공포와 후폭풍을 전세계에 불러왔다.

CNN이 배출한 여러 스타 기자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들이 국제 분쟁지역에 대한 탁월한 지식이나 진행 실력을 갖췄기 때문이라기보다 분쟁현장에 목숨을 걸고 들어간다는 것이 높은 수당의 주요 근거가 된다. 분쟁지역에 진입하기 전에 경호원도 대동하는 등의 2~3중의 안전장치를 한다지만, CNN의 핵심 콘텐츠는 취재기자가 직접 총탄의 가장 가까이에 다가선다는 것이 핵심이다. 좋게 말하면 갈등의 최전선을 보도하는 것이고, 나쁘게말하면 미국이 주도하는 전세계의 분쟁을 미디어화, 상업화하는 첨병인 것이다. 

그런 CNN 기자를 조준할 테러리스트가 있을까? 머리가 제대로 달린 사람이라면 절대로 기자에게 총구를 돌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CNN이 그들의 행위를 중계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이익이기 때문이다. 즉, 21세기 테러리즘과 CNN의 탄생과 급성장은 상호보완적이라는 얘기다. 9.11 사건에서 보듯이 테러단체의 궁극적 목표는 "(미국 중심) 세계 체제의 혼란"과 이를 무기로 한 테러단체의 영향력 확대인데 그런 혼란을 가져오기 위해선 무엇보다 방송 카메라에 알맞은 그림이 무조건 담겨야 한다. 과격하게 말해 21세기 테러리즘은 CNN과 같은 글로벌 미디어를 위해 맞춤 설계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쓸데없이 CNN 설명이 길어졌지만, 레싸는 이 CNN에서 근무하면서 글로벌 미디어의 '무기화(weaponizing)' 현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 이후 레싸의 페이스북에 대한 고민과 풀뿌리 언론의 중요성에 대한 고민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일단 그녀의 전장은 CNN에서 독립한 이후 필리핀의 부패정치로 옮겨간다.

레싸의 그 다음 전장, 모국 필리핀의 부패와 인권 문제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난 필자 세대는, 1986년의 필리핀 민주화 혁명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는 편이다. 1980년대는 냉전체제의 균열이 이뤄지고 군부가 몰락하면서 아시아 민중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시기였다. 그 첫 단추를 아시아 민주주의 선진국 필리핀이 열어젖혔다. 1986년에 필리핀이, 1987년에 한국이, 1988년에는 미얀마 그리고 중국의 천안문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진다. 사실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에서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이 연달아 펼쳐졌다.

1980년까지 아시아 민주주의의 첨병 역할을 했던 필리핀은 이후 고질적인 부패로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견고한 호족(豪族, 대지주 지배계급) 중심의 정치경제 체제를 혁파하지 못하고 이들에게 국가시스템 독점을 너무 쉽게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2016년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일대 전기를 마련한다. 그는 필리핀의 문제를 엉뚱하게 '마약'으로 상정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순식간에 공안정국으로 몰아갔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외국인에게는 어느 정도 유머러스하고 개혁적인 성향으로 비칠수 있다. 하지만 필리핀 내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등에 업고 독재 스타일의 정치 행동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5년에 불과했던 '마약과의 전쟁' 시기에 1만 2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사망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법질서가 생명인 민주국가에서 1만 명이 넘는 사망자라면,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구금을 당했고, 100만 명 넘는 사람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지난 5년간 '마약'을 핑계로 대대적인 공안정국, 인권유린과 정적(政敵) 제거 등에 이 소재가 활용되었다는 얘기다. 레싸와 같은 양심적인 기자 관점에서 두테르테는 야만과도 같은 정권이었을 것이다. 필리핀의 진짜 문제는 고위층의 부패 카르텔이지 단순히 마약을 소지한 서민들에게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SNS는 미디어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사진은 마리아 레싸의 2012년 저서 <빈라덴부터 페이스북까지> 표지와 홍보물.

 

SNS가 바꾸어 놓은 미디어 시장의 판도

마리아 레싸가 CNN을 퇴직한 2005년 이후 전세계 미디어 시장은 점차 구글-페이스북-애플이 주도하는 스마트폰-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무대로 옮겨가고 있었다. 레싸가 이를 인지한 것은 그가 동남아에 암약하던 알카에다 무장조직을 취재하면서부터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자생적인 무장단체들이 어떻게 국제적 연락을 주고받고 조직원을 모집하고 작전을 펼치는지를 추적해 보니, 너무나 평범한 답이 나왔다. 페이스북, 트위터로 대표되는 SNS 서비스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당당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당시 미디어 시장으로선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그저 플랫폼 아닌가? 사용자가 원하면 서비스를 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SNS 이후 모두 유사 언론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진실을 추적하고, 사실을 알려야 하는 기자는 너무도 모순적인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20세기 후반 CNN이 글로벌 사회의 탄생을 알렸다면 21세기에는 페이스북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완전히 다른 게임의 규칙이 만들어졌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모순적인 힘들이 페이스북에 모여들어 새로운 형태의 투쟁을 벌이는 기묘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페이스북 안에는 미국의 국무부도 있고, 빈 라덴의 알카에다도 있으며, 미얀마의 군부정권도, 다시 전세계에 무기를 파는 군수업체와 이를 파헤치는 언론사까지 다 있다. 이들이 각자 자신의 주장을 홍보하는 경쟁을 펼친다. 그런 경쟁의 결과가 바로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본사를둔 구글-페이스북-애플의 광고수익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문제는 필리핀과 같은 제 3세계의 경우는 한국과 달리 이런 문제가 더욱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한국이라면 페이스북이 별다른 영향력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공중파 방송도 힘을 갖고 있고, 종이신문도, 온라인 매체도 각기 독자적인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네이버-다음의 포탈이 어느 정도는 구글-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공룡의 영향력을 막아줬다.

오늘날 전세계 스마트폰 사용자 99%는 페이스북과 구글을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제 뉴스의 중심은 CNN이나 뉴욕타임스 같은 개별 언론사라기 보다, 편집을 해서 보여주는 '플랫폼' 사업자로 이동했다. 문제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같은 저개발 국가에서 그런 페이스북이 대대적인 유행을 한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많이 복합적인데 1) 인터넷 프로그램 개발 인력과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고 2) 국내에 페이스북에 비견될만한 뚜렷한 경쟁자가 없고 3) 구글과 페이스북이 너무나 싸고 편리하고 국내뉴스를 편집해서 전달해줘서 누구나가 거기에 의존하는데 있다.

단적인 예로 필리핀 인구 1억 명과 미얀마 인구 5천만 명 거의 모두 페이스북으로 뉴스를 보고 메신저로 연락을 취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레싸와 같은 독립언론을 꾸리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가혹한 현실에 직면한다. 아무리 두테르테 정부의 인권유린에 대한 현실 고발성 기사를 써도 페이스북 알고리듬 상 절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노출이 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필리핀 정부와 재벌사업자가 페이스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있다. 필리핀에서는 돈만 충분히 있으면 페이스북 광고주로 어느 정도 부정적인 여론을 막아낼 수 있다. 두테르테처럼 열렬한 충성심을 가진 인기 정치인의 경우 아예 가짜 계정을 여럿 만들어 댓글을 활용한 여론 조작을 펼칠 수도 있다. 진실을 알리려는 레싸와 같은 독립 언론인들, 나아가 거의 모든 21세기 언론인들이 맞닥뜨린 페이스북 재난 현상인 셈이다. 

코카콜라와 페이스북이 장악한 제3세계

아주 오래 전 일인데 멕시코 빈민촌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었다. 가난을 실감할 수 있는 허름한 집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멕시코 전통음식을 나눠 먹으며 너무도 자연스럽게 콜라와 환타를 매 끼니마다 마시고 있었다. 당연히 그 집 한쪽엔 콜라병과 캔 쓰레기가 가득했다. 

 "왜 끼니마다 콜라를 마셔요? 멕시코식 수프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콜라는 300원이면 먹잖아요. 다른 음료수는 500원이에요. 주방에서 멕시코 수프를 만들면 1000원은 들 걸요? 콜라 먹는게 제일 경제적이에요. 맛있고 소화도 잘되고."

그 허름한 집에 잔뜩 쌓여 있던 콜라병을 보면서 '가난'에 대해, 나아가 미국식 세계화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연히 콜라가 싸고 맛있지만 거의 모든 멕시코인은 40대가 넘어서면  충치와 비만, 그리고 당뇨병 치료에 더 큰 돈을 쓰는 것이 현실이었다. 오늘 마신 값싼 음료수의 진짜 청구서는 수십 년 뒤에 날아온다는 이야기다. 

레싸의 문제 제기는 21세기를 지배하는 글로벌 미디어가 매일 업데이트하는 싸고 자극적인 뉴스에 대한 일종의 분노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필리핀 언론인들은 대개 정부와 재벌이 주는 달콤한 광고와 권력의 수혜물에 1차 중독이 되고, 2차로는 미국 테크 기업이 주는 너무나도 흥미롭고 자극적인, 나아가 혐오감을 부르는 '포털뉴스'에 중독되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뉴스 주권(主權·sovereignty)을 상실하고 사회 변화의 동력을 잃은 것이다. 페이스북에서는 레싸의 목소리가 '진실'이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의견으로 유통된다. 그리고 더 강력한 필리핀 정부와 두테르테 지지자의 목소리가 레싸의 목소리를 압도한다. 레싸에 의견에 동조하는 미디어의 목소리는 AI 알고리즘에 묻혀 버린다는 뜻이다.

필리핀이나 미얀마는 한국과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체계를 갖고 있고 그에 따른 고민을 안고 있다. 한국에서 콜라는 단순한 기호 식품이지만, 필리핀과 멕시코에서는 정수된 물과 같은 안전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안전하지만 건강한 제품은 아니고, 이를 물처럼 마시다가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온다는 점을 레싸는 2005년 빈 라덴의 잔당과 싸우며 2016년 두테르테와 싸우며 지속해서 문제를 환기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빼앗긴 뉴스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저는 그것이 현재 세계가 처한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기자들이 언로의 통제권을 기술에 빼앗겼을 때 언론은 취약해지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뒤엉켜 있습니다. 진실이 진실 대접을 받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몰락합니다. 만일 우리가 ‘진실’을 잃는다면 도대체 진보에 대한 어떤 공유가 가능할까요? 정말이지 이것은 세계적인 고민이 될 것입니다."

(“But I am not sure that’s not the state of the world. the weakness began when journalists lost our gatekeeping powers to technology. They’re intertwined to me, the collapse of democracy starts with the breakdown of facts. And if you don't have facts you don’t have the shared reality to find the right path. This is a global problem”―2021년 10월 8일 CNN 인터뷰)

마리아 레싸의 노벨상 수상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글로벌 테크 기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노벨 평화상 위원회의 진심어린 공감일 것이다. 진실 보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직업 언론인에 대한 걱정스러운 공감이기도 할테다. 우리 사회가 지속해서 ‘진실’에 대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노벨 평화상 위원회의 이러한 공감과 선택은 한국의 정치와도 그리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필자 정호재는아시아 연구자이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기자로 일했다. 번역서로는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 비즈니스>, <수상이 된 외과의사-마하티르 자서전>이 있으며,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필자의 따끈한 신작 <다시, K-를 보다>가 현재 서점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