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의 시대> 공저자이자 민주당 청년대변인인 하헌기 필자는 최근 한달간 2030 여남, 또는 남녀들과 점심, 저녁으로 밥을 같이 먹었다. 온라인에서의 대결적 논법을 제거하고 들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일종의 FGI(Focus Group Interview) 기록같은 이번 칼럼에 대해 편집자도 ‘청년은 이렇다, 저렇다’는 해석을 달지 않기로 했다. 물위에 있는 빙산의 일각이 아니라 빙산의 뿌리가 내는 함성을 직접 들어볼 것을 권한다. 한줄 한줄을 어떻게 새기냐에 따라 각자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청년층의 보수화, 분석보다 소통이 시급

#소통과 변화를 갈망하는 청년들에게 가능성을 제시한 보수 야당

#소통에 목마른 청년층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 '식사를 합시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진보란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유연한 자세

(사진제공:셔터스톡)

내년 대선의 향방을 가르게 될 20·30 청년 세대요즘 ‘2030’이 화두이다.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세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간 청년층은 노년층보다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곤 했다. 실제로 과거의 선거 결과를 살펴보면 청년층은 보수 정당의 주요 지지층이 아니었다.

가령 2018년 지방선거 때까지만 해도 당시 자유한국당의 대표였던 홍준표 의원은 청년층에게 ‘꼰대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홍준표 의원도 그걸 알고 있었다.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의원은 젊은 층 표심을 얻겠다고 대학교에 가서 대놓고 “우리 타깃은 청년층”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당시에 그런 홍준표 의원과 각을 세우기도 했는데, 그러자 홍준표 의원은 이준석 대표에게 “촐싹댄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광경들이 고작 3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요즘 상황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당시 지도부이자 중진인 홍준표 의원으로부터 타박을 받던 이준석 대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30대 교섭단체 정당의 당수가 되었고, ‘꼰대의 아이콘’이던 홍준표 의원은 젊은이들이 불러일으킨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 열풍의 주인공이 됐으니 말이다.

청년층의 보수화, 분석보다 소통이 시급하다이제 젊은 층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법은 깨졌다. 4.7 보궐선거, 이준석 현상, ‘무야홍’까지 최근 정치권에선 20·30세대가 앞장서서 바람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모두 보수정당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실상 민주당으로선 전통적으로 ‘집토끼’처럼 여겨오던 20·30세대의 이런 모습에 적잖은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20대가 보수화되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혐오 문화에 물들었다(일베화)’, ‘역사의식이 부족하다’ 등 온갖 분석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 분석들은 2030세대 입장에선 망언에 가까웠기에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행위에 불과했다.

나는 분석이 아니라 소통을 먼저 해보고 싶었다. 바뀐 문법에 대한 해석보다 문법을 깨뜨린 당사자들로부터 그들의 입장을 청취해보고 싶었다. 4.7 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유튜브 채널을 활용해 다수 청년으로부터 서술형 문항을 구상해 설문을 받았다. 선다형 문항보다 직접 써서 보내준 의견들이 밀도가 높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천여 명이 직접 써서 보내준 의견들을 하나하나 읽기도 하고, 텍스트 마이닝 해 데이터화하기도 했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덧붙인다면, 최근 민주당이 선거 및 여론조사에서 고전하는 유일한 이유가 20·30세대의 지지율 이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4.7 보궐선거에서 4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민주당이 패배했으므로, 세대별로 패배의 요인은 따로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최근 민주당이 여론조사에서 고전하는 원인도 ‘20·30세대의 지지율 이탈’이라는 하나의 이유로 수렴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와 별개로 ‘20·30세대의 지지율 이탈’이란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게 따져볼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대남 뿐 아니라 이대녀도 여당에 등을 돌리다그 작업을 통해 2030 세대 일각의 정서와 여론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20대와 30대 초반 남성들이 민주당과 진보 담론에 갖고 있던 반감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첨언하자면 최근 민주당의 20·30세대에서의 지지율 하락은 ‘남성층’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층’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젠더 갈등’에서 어설프게 ‘이대남’을 잡아보겠다고 남초 커뮤니티의 의견을 비판 없이 수용해서는 ‘이대녀’의 지지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4.7 보궐선거 당시 20·30세대에서의 지지율 하락을 견인했던 것은 남성들이었고, 그들이 민주당에 대해 실망하고 감정이 상한 원인도 탐구해야 했다. 당시 받았던 설문 답변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국민을 갈라치는 정권. 가부장제의 절정인 50~60대가 20~30대더러 잠재적 가해자라고.”(남성, 30~34세, 취업 3~5년 차) / “현 정부는 페미니즘을 대중영합주의의 도구로 활용.”(남성, 25~29세, 학생)

“성 평등을 외쳤으면서 성추행을 한 정당이 선거에서 진 것은 당연한 결과.”(남성, 20~24세, 학생) /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부추겼으나, 실상은 자신들이 가장 많은 여성 착취를 해온 것으로 나타남.”(남성, 25~29세, 학생)

“대체 그만큼의 예산을 투입해서 이뤄낸 게 어떤 것입니까?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었나요?”(남성, 25~29세, 학생) / “지금 소위 말하는 성 평등 예산은 다 깎고 남성 및 여성의 육아 휴직 확대, 출산 및 보육 시설의 지원 확대 등 육아의 측면에서 실질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지금같이 말로만 성 평등이라면서 성 갈등을 조장하는 여성 편향적 지원정책, 교육정책을 다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남성, 25세~29세, 취업 5년 차)

“아무도 내 의견을 들어준다는 생각이 안 든다.”(남성, 20~24세, 학생) / “믿고 있는 정당의 무시와 조롱… 그렇다고 돌아서기엔 반대편 정당은 ×××.”(남성 30~34세, 취업 준비 중) / “남자가 역차별에 대해 소리를 내면 부모님마저 남자가 쩨쩨하다는 소리를 한다. 내 편 없는 세상보다 외로운 것은 없다.”(남성 20~24세, 학생)

그들은 민주당과 진보 담론이 자신들을 대의 해주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유권자 입장에서 자신들을 ‘대의’ 하지 않는 정당을 지지할 이유는 없다. 그들은 무엇보다 젠더 갈등에 지쳐있었다. 20대 남성들의 의견을 기성세대 혹은 진보적 관념의 입장에서 덮어놓고 ‘반 페미니즘’이라고 규정한 후, 반 페미니즘은 보수적이고 일베적이며 철이 없는 것과 동일한 의미인 양 낙인을 찍는 행위에 분개하는 듯 보였다. 그들은 ‘성차별을 하자’는 것은 아니었고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것’인데 진보 담론은 이를 동일시한 것이다. ‘페미니즘은 올바른 것인데, 그 올바른 것을 비판하니 너희들은 틀렸고 보수적’이란 진단은 진보적 가치를 담론적으로 내면화한 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그렇게 접근해서는 이들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도모할 수 없었다. 나중에 오해를 시정하거나 반박을 하더라도 우선 그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야만 했다. 지난 몇 년간의 페미니즘 친화적인 흐름으로 인해 청년 여성의 삶이 비약적으로 나아진 것도 아니니 청년 여성은 청년 여성대로 반감과 불만이 누적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보수정당에서 ‘안티 페미니즘’ 기치를 내걸었다. 이에 20·30 남성층이 호응하며 보수정당을 지지하기 시작한 게 현재 상황이다. 나는 이준석 대표의 방식이 올바른 것이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의 방식은 대중 추수주의적이었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갈등 추수주의적이었다. 한편 민주당 지지층을 포함한 진보 담론의 접근이 ‘페미니즘은 올바른 것이니 그것을 반대하는 너희들과는 타협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순간 이준석 대표 방식의 갈등 추수주의적인 접근에도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명확했다. 그들의 불만을 설명하되 더 큰 문맥에서 체계화할 수 있는 ‘언어’를 페미니스트라고 자인하는 이들도,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진보주의자들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이준석 류의 ‘안티 페미니즘’에 속수무책이었다. 내가 받은 설문조사 의견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여론과 선거를 통해 표출된 표심과 거의 일치했다. 젊은 층이 보수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법이 깨진 핵심에는 ‘젠더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지자체장들이 성범죄에 연루된 민주당이 그다지 페미니즘적이었던 것만도 아니었다. 말로만 여성주의를 강요하고 행동은 달랐던 모습에 젊은 층이 더 실망했다.

소통과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가능성을 제시한 보수 야당그런 의견을 청취하며 보수정당을 지지하기 시작한 이유는 그들이 보수화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 보수정당이 민주당 보다 훨씬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란 가정을 했다. 민주당이 ‘관념적’ 진보를 고수하며 청년 유권자들의 의견을 도덕적으로만 재단할 때, 보수정당은 그들의 이야기를 청취하고 변화한 시대에 맞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집단으로 보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태도만 놓고 보면 전자가 훨씬 꼰대적이며 경직되어있고, 후자가 훨씬 유연하고 변화하려는 모습에 가깝지 않은가? 굳이 따지자면 후자가 ‘진보적인 태도’에 가깝다.

시간을 되감아 보자. 2018년 6월까지만 해도 20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서 국정 지지율이 80%대였다. 2018년 지방선거 때도, 2020년 총선 때도 황교안 대표 체제의 보수정당을 전혀 지지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다수 젊은 층에 박탈감을 안긴 사건이 그 전에 여러 차례 있었고, 당시에도 젠더 갈등은 첨예했는데도 그랬다. 청년들이 민주당에 대한 반발로 ‘보수화’ 되었다면 그때부터 모종의 신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무당층으로 남았다. 아무리 민주당에 실망했다 한들 태극기 부대를 지지기반으로 두는 황교안, 나경원 체제의 친박 정당을 대안으로 선택할 순 없었던 탓이다. 경직되고 ‘꼰대화’ 되어가는 민주당에 실망했는데, 그보다 더 심한 꼰대 구태 정당을 지지할 순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정치 성향이 집단적으로 단 3년 만에 보수화되는 비현실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소통과 변화를 갈망하는 그들이 요구하는 변화와 모습과 가능성을 보수정당에서 본 것이 지금의 결과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필자는 온라인 설문조사의 한계를 극복해 보려고 4주 동안 다양한 청년들과 점심, 저녁마다 만나 식사를 함께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고자 했다. (사진제공: 하헌기 필자)

 

공감을 갈망하는 청년층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 ‘식사를 합시다’‘식사를 합시다’는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이다. 온라인 기반 설문조사는 다수의 의견을 모으기에 효율적이지만 한계가 있었다. 의견을 청취할 순 있지만, 역으로 되묻는 건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회성 질의응답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밀도 깊은 소통이 어려웠다. 방법을 고민하다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온라인 기반 설문조사가 표본의 대표성에 다소 의문이 생기는 여론조사였다면 ‘식사를 합시다’는 포커스그룹인터뷰(FGI)에 해당했다.

한국인들은 특이하게도 ‘밥 먹었냐’는 말을 안부 인사로 쓴다. 친구, 가족 사이에, 그리고 비즈니스 관계에서도 식탁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라포(rapport)를 형성한다. 그래서 딱딱한 인터뷰가 아니라 ‘언제 밥 한 번 먹읍시다’를 써보기로 했다.  다양한 2030 세대의 사람들과 식사를 하며 대화를 시도하고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SNS를 통해 신청을 받았는데 여러 명과 함께 이뤄지기도 했고, 1:1로 만나기도 했다. 식탁에 음식을 두고 긴장이 풀리자 곧 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4주 차에 접어드는 동안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만났다. 시작했을 때는 정치 고관심층 위주로, 특히 주로 민주당 지지층 청년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극우 활동가 출신의 청년, 정의당 활동가 청년,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 무관심층 20대 공시생, 휴직 중인 청년,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수업을 마치고, 취업 준비를 하다가 나온 청년들을 만났다. 나이가 젊을수록 당연하게도 '명함'이 없는 청년이 많았지만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 개발자, 교사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청년도 의견을 전해줬다.

인상 깊었던 만남 중 하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여성 K씨였다. 여당 대표가 누군지도 모르는 정치무관심층이었다. 그녀는 주변 친구들이 대개 국내 정치적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건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20대 여성의 의견을 청취하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다. 매체, 여론조사 또는 커뮤니티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층이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여론이 과잉대표되었다는 지적이 자주 있는 만큼 혹시 온라인 커뮤니티를 하는지부터 물어봤는데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젠더 갈등에 대해선 아느냐고 물었고, 안다면 20대 여성인 본인에겐 그게 어떻게 보이냐고 질문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페미니즘은 사회악이라고 봐요. 그 말이 어떻게 쓰이냐면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다가 그런 농담이 오갈 때가 있어요. ‘너 페미지?’ 아니면 ‘너 페미냐?’ 그러면 칠색 팔색하며 아니라고 해요.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인 에타(에브리타임)에 보면 일부러 시비 거는 듯한 이상한 댓글 같은 게 있어요. 그럼 그 밑에 ‘너 페미냐?’ 이렇게 달려요. 누가 이상한 이야기하면 ‘너 일베 하냐?’ 이러잖아요? 그 비슷한 느낌으로 쓰는 거죠.”

정치무관심층에 속하지만 K 씨가 딱히 성차별주의자는 아니었고 대화에서도 여성 혐오적인 느낌을 받지도 못했다. 오히려 여성의 삶의 어려움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 계기를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어서요. 저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대학도 그냥 점수 맞춰 학과를 골랐고, 전공 살려서 취업하는 친구를 본 적도 없거든요. 다들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하는 거죠. 저 같은 경우 웬만한 직장에 취업하면 결혼과 출산이 어렵잖아요. 출산하면 경력이 단절되니까 일과 아기 사이에서 택일해야 하는 건 싫거든요. 공무원은 육아휴직이 보장되어서 삶의 조건을 따지면 이게 최선인 것 같더라고요.”

일반 기업에서도 육아휴직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성차별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느냐고 되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이익을 내는 게 목표니까 생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매월 생리휴가를 써야 하고, 애 낳으면 일을 못하는 사람보다는 계속 더 일을 할 수 있는 남자들을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해요.”

K씨의 말은 페미니즘의 맥락에서는 전형적인 성차별 시각이지만 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현재 금융권에서 일하는 30대 남성 J 씨도 같은 맥락에서 몸담은 스타트업 현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경우, 육아 휴직을 다 보장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될 때가 있어요. 스타트업에서는 인력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부서와 같습니다. 인원이 부족하고 개인의 업무 전문성에 의존해야 하니까요. 한 명이 출산해서 육아휴직을 하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여가부든 어디든 예산을 이런 데다 배정해서 지원해주는 구조로 만들어야 육아휴직이 자연스러워질 겁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책이 필요한데 육아휴직을 남성에게도 확대하는 방안만으로는 풀리는 게 아니거든요.”

20대 여성인 K 씨나 30대 남성인 J 씨의 말을 단지 젠더 문제로만 접근해서 성차별로 몰아간다고 해서 해법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산업구조의 문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정책적으로는 생리휴가를 없애고 남녀 모두에게 보건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육아휴직 시에 가용할 수 있는 비용을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 보육 시설 확충과 같은 구체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정치가 청년들이 처한 삶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아니라 대결적 논법으로 남녀 간에 갈등을 증폭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과 언론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거나 배운 청년층이 넓게 분포하는데 20대 여성 K 씨처럼 온라인이나 주변인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거나 경험한 또 다른 청년층도 그만큼 넓게 존재한다. 양층에서 사용되는 ‘페미니즘’은 같은 의미를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전자는 후자에 대해 ‘페미니즘은 이러저러하게 좋은 것인데 너는 왜 싫어하는 것이냐? 혐오 세력이냐?’라는 식으로 생각하기가 쉽고. 후자는 전자에 대해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여기거나 분통을 터트리기 십상이다. 무턱대고 상대방을 낙인찍기 전에 전혀 다른 맥락에서 페미니즘이 이해되고 있는 상반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아직도 자신들이 진보 세력이라 착각하는 386에 대한 반감‘식사합시다’에서 제일 많이 나온 지적 중 하나가 ‘386 세대’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의 386 세대가 청년일 때 그들 역시도 그 윗세대인 산업화 세대와 싸우며 자기 세계를 구축했을 겁니다. 당시 386세대에게 윗세대의 6.25 이야기는 역사화된 얘기에 불과했겠죠. 30년 전의 일이니까요. 지금 20~30대들에게 386세대가 딱 30년 터울 윗세대입니다. 386세대가 윗세대로부터 6.25 이야기 들었을 때의 느낌을 지금 청년층들이 386세대 이야기를 들을 때 느낀다는 겁니다.”(30대 남성 / 회사원)

“386 세대는 자기가 여전히 ‘진보’인 줄 압니다. 산업화 세대와 달리 아직도 자기들이 시대의 ‘첨단’이고 ‘청춘’인 줄 안다는 것입니다. 통일문제, 여성주의, 환경주의 등, 이념적으로는 진보를 추구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는 ‘행동’은 진보적이지 않아요. 청년 세대가 보는 386세대는 젊은 세대의 아이디어, 에너지, 외국어 실력 등을 적극 활용하려고 하지만 정말로 민주적이고 평등을 추구하는지는 의문이 많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종종 권위주의적이고 때로는 야만적으로까지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386세대들이 어설프게 여성을 배려하는 척하는 것 때문에 남성 직원들은 업무 과중으로 피를 토합니다. 남자들에게는 회사에서 그들의 비위 맞추고 술 먹는 것도 업무니까요. 여성들에 대한 진짜 복지, 그러니까 임신 출산, 육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진보적이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거기서 위선을 느껴요”(30대 남성 / 회사원)

청년들이 생각하는 진보란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유연한 자세이런 지적들은 결국 민주당의 경직성과 독단성에 대한 비판과 닿아 있었다. 청년들이 보기에 ‘진보’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유연한 태도다. 그런데 386세대는 개념적인 진보에만 천착한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기성세대 다수는 젊은이들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거두고 국민의힘에 희망을 거는 모습 등을 보고 “지금의 20·30들은 퇴행적이다”라거나 “아무리 그래도 국힘은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이며 덮어두고 자기만 옳다는 식으로 진영논리 차원에서 비판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2018년부터 남초 커뮤니티의 40대 남성들은 민주당에 불만을 품는 20대 남성들을 향해 ‘그자찍’(그래서 자한당 찍을 거냐)이라는 윽박지름으로 모든 논쟁을 대신하곤 했다. 그런 윽박지름이 몇 년 지속되자 자유한국당을(그새 당 이름이 몇 번 바뀌었지만) 찍을 수 있는 이들로 변모하고 말았다. ‘보수적이고 구시대적 태도’를 갖고 있으면서 말로만 진보를 주장하는 표리부동한 이들이 민주당의 주류세력이라고 여기기에 386세대에 대한 비판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과 겹쳐진다.

역사 인식이 부족하여 민주당을 비겁하다 하는 것이 아니다민주당의 일부 인사들은 청년 세대 일각이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거두자 “젊은이들이 역사의식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발언으로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만나본 바에 따르면 그런 인식은 현실이 아니었다. 386세대에 대해 실컷 비판하면서도 꼭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

“그래도 386세대가 목숨 걸고 민주화 운동을 했던 덕분에 내가 지금 이렇게 권력을 깔 수도 있게 된 것인데 너무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사회악 취급하는 분위기에는 미안한 마음도 드네요:”(30대/남성)

“마치 사회에 악영향만 미쳤다는 듯 너무 지나치게 과만 부각하는 모습에선 괜히 화가 나기도 해요. 애초에 한국이 민주화가 되었으니까 인터넷에서 그분들 욕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건 그분들의 공이 맞죠”(20대 여성)

정말로 역사 인식이 부족하고, 386세대의 역사적 공로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말일 것이다. 청년들이 386세대의 사회적 기여를 인정하고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만 현재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하는 것임을 386세대가 이해해야 성찰이 가능할 것이다.

욕을 먹더라도 소신껏 이야기하고 설득하려는 이에게 호감‘식사를 합시다’에서 만난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며, 진영논리를 동원해 모든 것을 선악 구도로 치환하는 태도였다. 과거 태극기 부대를 앞세운 자유한국당의 모습을 싫어했고, 지금의 민주당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어했다.

“인정할 것은 좀 인정해야 하는데 잘못인 줄 알면서도 눈치만 봅니다. 이준석 대표가 대구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정당했다’라고 연설한 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게 젊은 사람들이 국민의힘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30대 남성)

“민주당은 비겁해요.”(20대 남성)

“민주당은 그냥 비겁한 게 아니라 X~~~라 비겁해요.”(20대 여성)

정치권이 이른바 ‘정무적인 판단’에 의거해서 지난 잘못에 대해 변명하는 것이 자신의 옮음을 부정당하기 싫어서 억지로 하는 위선적인 태도라고 청년들은 생각한다. 이런 태도를 ‘비겁하다’고 느끼고 욕을 먹더라도 소신껏 이야기하고 설득하려는 정치인에게 호감을 보였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정치인이 청년들과 직접 소통하려는 시도에 청년들이 신선함을 느끼는 듯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되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청년도, 민주당을 벌하기 위해 국민의힘을 지지하겠다는 청년도 그랬다. 입장이 다소 다를 수 있겠으나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신뢰가 형성된다는 것이었다. 홍준표 후보가 솔직하게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에서 2030세대가 호감을 느끼고 정치적 지지로까지 이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30대 남성 J씨는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도 이런 의문을 갖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싫은데, 그런 건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든 이재명 후보가 당선 되든 그가 과연 ‘통합의 대통령’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가뜩이나 갈등과 분열이 심하고 갈라치기가 횡행한다고 느끼는데, 후보들 중 누가 되든 (국민)통합적 대통령이 될 것인가? 그런 걱정이 있습니다. 자기 편이 아니면 배제될 것 같다는 그런 걱정들이 있을 수 있는 거죠.”

2030 세대가 민주당은 물론 정치에 환멸과 혐오를 느끼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 옳고 상대는 틀렸다며 탄압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는 것이다. 홍준표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본인이 지적받은 일에 대해 해명보다는 '지적과 비판을 다 수용하고, 그런 것들 다 포용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태도를 보였는데 젊은 층의 반응이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난다.

단절의 시대, 어느 때보다 외로운 청년들직접 만나본 20·30 세대는 생각보다 더 외로워 보였다. 그것이  소통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았다. 20대 남성 한 명은 “이런 자리가 정말 오랜만이다”라며 “요샌 다 온라인이나 줌으로 하니까 집에서 그냥저냥 그렇게 있다가 커뮤니티 들여다보고 SNS에 들여다보고 유튜브 보고 그럽니다. 이렇게 저녁에 사람들이랑 같이 대화하며 술 먹는 게 좀 오랜만이네요”라고 말했다.

온라인, 온택트, 언택트, 디지털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통한 ‘연결’의 시대에 어쩌면 효율적으로 단절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20대 때는 매일 저녁마다 친구들과 만나 밥먹고 술먹고 놀았다. 대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신입생 환영회, OT, MT 등 새로운 사람과 사귀며 사회성을 업데이트하곤 했다. 최근 2년 사이 대학에 입학한 20대에겐 그런 경험이 소실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이는 여론은 과잉대표 되었다는 비판이 있고, SNS나 커뮤니티, 유튜브 등은 확증편향을 강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의 대화는 그런 확증편향을 어느정도 희석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내가 20대 때도 인스타를 통해 상류층의 또래가 ‘돈 자랑’을 하는 모습은 있었다. 하지만 딱히 박탈감은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현실에서 나와 섞이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현실에서는 단절을 겪는 코로나19 시대의 젊은이들은 또 다른 상황에 놓여있을 지도 모른다.

분노의 대상은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여당의 태도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만큼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부동산 상황에 대한 분노’ 였다. 이는 꼭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었다. 내가 만난  청년들 중 일부는 전 세계 상황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민주당의 태도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 사지 말라고 했잖아요. 자신 있다고 했고, 심지어 집 팔 기회를 드리겠다는 말까지 했잖아요. 그렇게 해놓고 이제와서 변명한다고 통하겠어요?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망까지 도덕적으로 규제하겠다는 식이었는데, 자기들은 똘똘한 한 채 때문에 공직도 포기하면서 왜 우리보고는 임대주택에 살라는 겁니까?” 어느 20대 남성이 한 말이었는데 대부분 이야기를 했다. 매번 식탁에 앉을 때마다 아직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든 기대를 완전히 접은 사람이든 직접 밖으로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런 부분은 제발 좀 바꾸라’고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역설적으로 아직 민주당에 희망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정치의 요체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한두 사람의 마음이라도 더 얻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밥 한 끼 하며 대화를 계속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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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하헌기는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 국회에서 일하다 양극화된 정치적 소통에 대한 해법을 고민하기 위해 연구소를 만들었다. 뉴미디어 운영과 기성 방송 매체 출연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매주 <시사IN>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공저로 <추월의 시대>(메디치미디어, 2021)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