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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칼럼] 이것이 K를 아시아에서 세계로 밀었다

By | 2021년 11월 24일 | 국제, 미분류

한류는 이미 우리 손을 떠났다. 시작은 우리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 전 세계가 우리 가수들과 함께 웃고, 함께 춤을 추고 있다. 그 뿐인가. 더 이상 한 시절의 유행이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대조류가 되어 가는 분위기이다. 정호재 필자는 초기 한류의 최전방이라 할 동남아시아에서 한류가 대조류로 변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본 목격자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 역동의 원천을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 교류하며 함께 쌓아 온 보편성이라 보고, 아시아적 보편성을 토대로 커 온 K콘텐츠가 그 추동력을 유지해 간다면 범세계적 공감대를 이루어 갈 수 있을 거라 예측한다. [편집자 주] 

#K를 아시아에서 세계로 추동한 힘은
#해묵은 한류 회의론도 이제는 옛 말
#국가의 지원보다 인적 자원으로 이루어 낸 성과
#아시아적 보편성을 넘어 이제는 범세계적 공감대로 

부지불식 간에 성큼 다가온 한류의 시대

필자는 근래 4년 넘게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생활해왔다. 최근 2년은 코로나 탓에 이동이 크게 힘들어져 실감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2016년 이후 해외에서 거주한 분이라면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체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10년 전과도 크게 다르고 20~30년 전과는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펼쳐진 것이다.

20년 그 이전에 한반도는 주로 “남북으로 분단된 분쟁지역”으로 묘사되었고, 2010년을 전후로는 삼성 휴대전화와 현대 자동차 등의 대기업이 부쩍 눈에 띄었다면, 이제는 한국이라고 하면 “멋지고 쿨한 콘텐츠”를 떠올리는 세계인들이 늘어난 것이다. 국가 이미지가 확연히 좋아진 것인데, 현실 생활에선 의외로 이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 한국인에 대한 기대치가 과하게 커져 버린 것이다.

적어도 한국인을 처음 만난 현지인이라면 K-pop 뮤직비디오와 K-드라마에서 보이듯이 멋지고 아름다운 심성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우리에게 그만한 행동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한국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것을 부담스럽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고맙다고 해야할런지. 물론 “한국”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이제는 꽤 진지한 대화가 이뤄진다는 것 자체가 감동적인 일이다. 우리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생겼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한류가 한 단계 도약한 버전 K 콘텐츠

최근 “한류”라는 말이 주춤하고 “K 콘텐츠”라는 말이 뜨는 이유는, 단순히 한류란 표현이 지겹기 때문만은 아닐 듯싶다. 한류韓流란 말이 1990년대 중화권에서 한국 문화상품이 인기를 끈 데서 비롯되었다면, 최근 K콘텐츠란 이름은 글로벌 플랫폼(유튜브, 넷플릭스 등)을 바탕으로 한류가 서구권에서 눈에 띄게 확장한 결과에 가깝다. 이를 지켜보는 한국 미디어도 자연스럽게 언어의 교체를 시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한류의 인기는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뜨겁고 중동과 남미에선 이보단 살짝 덜하고, 미국과 유럽에선 여전히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묘사되었다. 한류에 대한 회의론도 적지 않았다. 아시아 인종과 언어와 문화의 차이 탓에 한류가 서구 백인 주류 사회에 끼어들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2018년 BTS가 본격적인 시동을 걸더니 2021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모든 편견과 회의론을 일축하고 세계 1등이 결코 불가능한 망상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사진은 연상호 감독의 최신작 <지옥>. 아시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전세계를 아우르는 보편적 감성을 표현하는 능력이 K 콘텐츠의 저력이라 평가된다.

 

겸손인가 자기 비하인가, 되풀이되는 해묵은 한류 회의론

문화적 영향력이 ‘글로벌 경제체제’에서의 서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쯤은 상식에 속한다. 돈과 힘이 있어야 대중문화도 발전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 문화패권이라는 것도 유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단적으로 지난 200년간 영어로 된 콘텐츠가 세계최대 최고의 시장을 일군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연스레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7~8억 명에 불과하지만 70억 인류의 대표 언어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니까 K콘텐츠가 전 세계 1등이 될 가능성을 말한다는 얘기는,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세계적 강대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얼마 전 대전에서 만난 어느 연로한 박사님은 이런 질문으로 필자에게 반박했었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인구 등 종합적인 시장성을 알고 하는 말인가요? 인구는 전 세계 1%에 미치지 못하고, 경제 규모는 2% 정도에 불과해요.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보나요?”

그분의 말씀대로 K로 대표되는 한국 모델이 세계에서 표준모델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가 과연 현실성 있는 전망일까? 우선 전례를 살펴볼 수도 있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과 일본이 이러한 야심을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본은 1980~90년대 세계 2위 경제력을 바탕으로 J콘텐츠 확산을 시도해왔고, 중국과 홍콩은 15억 글로벌 화교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꾸준한 야심을 발동 중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대중문화는 세계 시장의 일종의 하위문화에 머물러 뚜렷한 한계를 보여왔던 것이 엄연한 과거이자 현실이었다. 

그 때문에 2010년 이후 한류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는 단순히 시기를 잘 탄 일시적인 유행流行일 뿐이라는 관점이 팽배했었다. 그러니까, 비非백인, 비서구권 대중문화가 아시아는 물론이고 서구에서까지 확산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현상이라는 해석이었다. 지난 200년을 지속해온 서구에서 비서구로의 문화의 흐름이 쌍방향으로 바뀌는 일은 결코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었다.

한류에 대한 서구의 흔한 오해, 국가가 개입하여 발전한 거라고?

그런 관점에서 제기된 해석이 바로 아시아 국가들의 특유의 “강한 국가론”이다. 오히려 이것은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서 한류를 해석할 때 주로 활용된 논리다. 그러니까, 한국이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을 키우듯이 한국의 대중문화 산업을 전략적으로 투자해서 세계 시장에 밀어내기 수출을 해왔다는 얘기다. 지금도 서구권 학자들은 여전히 한류의 ‘국가개입론’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올해 초에 CNN 자카르타 채널로부터 전화인터뷰를 의뢰받은 적이 있다. 자카르타 한국 문화원을 통해 “케이팝의 역사”에 대해 강의를 한 인연이었다. 널리 알려졌듯이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에서 한류 인기가 가장 큰 국가다. 넷플릭스 인도네시아 순위를 보면 1위부터 10위까지 온통 K-드라마로 채워 있으며, K팝 스타는 세계 최고의 스타로 대접받는다. 인도네시아가 해양권 이슬람 문화 기반인 탓에 워낙 개방적인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CNN 연예프로그램의 PD가 내게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이 바로 “한국의 연예 산업이 한국 정부의 강고한 지원 덕분에 성공한 것이 아니냐?”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시아 언론인들은 한국과 엇비슷했던 자신들의 과거와 한류의 성공을 비교해 바라보면서 자신의 정부에 항의하고 싶은 것이다. “왜 우리는 한국처럼 못하냐? 정부는 대중문화에 대한 투자를 늘려라”라는 뜻이 숨겨져 있었다. 

지속 불가능한 일시적 유행일까?

비교아시아학자 정호재 필자의 신간 <다시, K-를 보다> 사진제공: 메디치미디어

서구권의 경우는 지난 K방역의 성과에 대한 폄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시아 국가들은 대개 “정부가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아시아 국가는 나름 힘이 세지만, 시장과 개인은 힘이 약하다, 그 때문에 한류가 성공했다면, 당연히 정부가 막대한 투자를 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이 현상은 지속하기 힘들 것이란 고정관념이 발동하는 식이다. 

이는 과거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해왔던 방식을 한국에도 적용한 탓도 있다.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이 대표적이고, 일본도 Cool 재팬이라는 정책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 주도론이 광범위하게 유행한 이유는 과거 아시아의 많은 국가는 과거 서구에 나라를 잃었고,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서 국가에 과도하게 힘을 실어주게 되었고, 개인은 묵묵하게 희생한 역사가 길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필자는 이런 질문에 항상 꺼내는 정해진 답이 있다. 한류와 K콘텐츠의 성공은 국가는 한 발 떨어져 있고, 오히려 민주주의가 확산된 결과에 가깝다고 설명을 한다. 1987년 이후 한국의 대중문화가 어떻게 성장하고, 특히 국가의 검열에서 벗어나 창작자들에게 권리가 돌아가도록 사회가 애썼는지를 보여주는 식이다. 물론,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명쾌한 이해가 어려운 일이다. 누가 봐도 ‘국가와 기업이 투자를 늘려 대중문화를 진흥한다‘는 설명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박도 뒤따르게 된다.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대중문화의 콘텐츠의 질이 좋아진다고? 그럼 민주주가 발달한 북유럽의 콘텐츠가 가장 질이 좋아야 하는 것 아니냐? 헐리우드가 대형 자본으로 돌아가는 곳일텐데, 웬 민주주의 타령인가? 한국정부는 대중문화 지원책이 전혀 없었다는 건가?”  

 

성공의 핵심은 이웃 국가와 교류를 통한 아시아적 보편성의 확보

사실 이 같은 반박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한류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한류의 급발진은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든 현상임에 틀림없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이고, 한국어라는 장벽이 뚜렷하고, 중국과 일본이라는 뚜렷한 아시아의 강호들이 이웃해 있으며, 결정적으로 여전히 영미 문화가 강력하게 세계를 지배하기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부 열혈 애국자들은 이를 “한국 문화의 고유한 우수성”에서 답을 찾기도 한다. 일명 ‘국뽕’의 탄생이다. 한국의 문자가 독창적이고, 한국의 문화가 역사적으로 경쟁력이 있었고, 나아가 한국인의 높은 교육 수준과 신체조건이  아시아에서 가장 독보적이며, 때문에 이를 결합해 세계수준의 컨텐츠가 나올 수 있었다는 해석이다. 중국에서 현재 대유행하는 대중문화도 이와 같은 애국주의와 결합한 형태에 가깝다. 모든 좋은 것이 사실은 중국에서 비롯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국이 세계 초일류 문화대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서다.

하지만 필자가 아시아를 비롯해 여러 지역의 한류를 비교해서 고민해 본 결론은 계속 변화하고는 있지만 아시아라는 뚜렷한 존재감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과 한국문화가 나 혼자만 잘나고 우수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콘텐츠가 지난 반세기 가까이 아시아 이웃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배우고 따라하면서 일종의 “아시아적인 보편성”을 획득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배급된 <오징어 게임>은 K콘텐츠가 헐리우드와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오른쪽 포스터는 <오징어 게임>과 비슷한 소재로 화제를 모은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 아시아의 대중문화는 서로가 서로를 참고로 발전시켜 왔고, 오늘날 K 콘텐츠는 아시아를 대표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문화가 국경을 넘으면 문명이 된다

단적으로 한국의 영화와 가요 산업의 역사를 살펴볼 때 홍콩영화와 일본의 제이팝의 역사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때문에 지금도 일본의 미디어를 비롯한 일각에선 “한국의 케이팝이 제이팝을 베낀 것이다”라고 폄훼하곤 한다. 그런데 대중문화의 세계에서 남의 좋은 것을 따라 배우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될 리는 없다. 관건은 누가 더 멋진 캐릭터를 창출하고 감동의 크기를 늘리느냐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선진적인 이웃들의 좋은 문화를 받아들여 배우고, 그보다 더 효율적인 모델을 만드는데 애써왔다. 이른바 K 모델이자 한국의 오랜 문명의 교훈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K콘텐츠가 지난 20~30년간 아시아 소비자들과 꾸준하게 소통하면서 전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해 냈다는 점이다. 반면 일본과 중국의 콘텐츠는 아시아의 평범한 시청자들과 젊은이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중국의 역사와 일본의 경제력을 과신했기 때문이다. 반면 K콘텐츠는 아시아를 설득해 내며 뚜렷하게 아시아 콘텐츠의 대표주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세계 시장의 흐름에서 높은 생산성을 가진 아시아의 급성장이 한류의 질적인 변화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K콘텐츠는 고작 5000만 인구를 대표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아시아 40억 인민과 소통에 성공했기 때문에 K콘텐츠는 전세계로부터 “아시아의 대표”로 인정받게 되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세계 1위도 가능한 위상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물론, 이 같은 ‘아시아적‘ 설명이 아직까진 거칠고 설득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K콘텐츠의 성장에는 분명히 미국 문화를 빠르게 수입해 소화해낸 한국의 정치경제적 환경과도 따로 떼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한국 K를 넘어 아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문명이란 것은 국경을 뛰어 넘으며 지역적인 교류를 통해서 발전함을 눈과 귀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한류의 발전은 한국 사회의 개혁과 개방의 결과물이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아시아 이웃 간의 뚜렷한 교류의 역사도 간과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즉, 아시아의 대표가 될 수 있었기에 세계적 성공도 가능했다는 얘기다. 일본에서 1위가 가능했기에, 인도네시아에서 1위를 할 수 있었기에 미국에서도 1위가 가능했다는 얘기다. 이미 K콘텐츠는 여러 국경을 뛰어 넘어 문명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 사회가 더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얘기다. 


정호재 필자는
아시아 연구자이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기자로 일했다. 번역서로는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 비즈니스>, <수상이 된 외과의사-마하티르 자서전>이 있으며,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필자의 따끈한 신작 <다시, K-를 보다>가 현재 서점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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