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제국 수립에 있어 문화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조셉 나이는 문화력을 소프트 파워로 개칭했다. 나이 교수의 소프트 파워 개념에는 민주적 가치도 포함된다. K로 상징되는 K-Culture가  2021년 워싱턴 외교무대에 등장했다. 한반도 관련 싱크탱크 중 하나인 CSIS의 이번 주제 선택은 이례적이다. K가 문화적 역량에 그치지 않고 정치, 경제, 외교적 역량에까지 확산되려면,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할까 하는 논의다. <피렌체의식탁>은 지난 10월 6일에 개최된 이 컨퍼런스의 발제와 토의 전문을 소개한다. 

특히 ‘1부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계속 성장할 것인가’에 이어 2부 ‘한국의 소프트 파워와 대외정책, 특히 한미동맹 강화 방안’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는 최초로 상세히 소개되는 부분이다. 2시간 반의 라이브 콘퍼런스의 특성상 활발한 발언이 오갔다. <피렌체의식탁> 칼럼니스트인 김정호 필자가 상당한 분량을 읽기 편하게 정리했다. [편집자 주]

 

#한국은 민주화, 경제성장에 이어 문화적 능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

#문화역량에 테크놀로지, 플랫폼 구성역량 갖춰 향후 5-10년 크게 번성할 것

#중국은 매년 1백억달러 쓰고도 실패, 미국도 트럼프 시절 민주적 가치 퇴보

#대외 원조, 협력 강화하며 동맹국과 보조 맞추면 외교안보 역량 강화로 이어질 것 

 

관련 칼럼 바로 가기 '세계는 왜  K를 두려워 하는가?' https://firenzedt.com/19640

 

 

 

안보를 넘어서: 한국의 소프트파워와 코로나 이후 세계에서 한·미 동맹의 미래  

 

개회사수미 테리(Sue Mi Terry, 전략국제연구센터 CSIS 한국 석좌, 선임 연구원

)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워싱턴D.C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주제였다. 이제 한국은 경제 강국일 뿐만 아니라 소프트 파워 강국으로 변모하고 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영화, 드라마,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고 스포츠, 게임, 헬스, 뷰티, 푸드 등 전방위적으로 괄목할만하게 성장하는 중이다. 세미나 1부에서는 한국 소프트 파워의 원천과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2부에서는 소프트 파워를 안보 문제와 대외 정책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하게 된다.

 

발제조셉 나이 교수(Prof. Joseph Nye,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 석좌 교수)

먼저 소프트 파워의 개념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다. 파워는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능력인데 다음 3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강요 또는 위협, 둘째, 지불 또는 유인, 셋째, 매력. 첫째와 둘째는 흔히 채찍과 당근에 비유된다. 소프트 파워는 강요나 지불 대신 자신의 매력을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제3의 방법이다. 매력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강요, 지불, 매력, 3가지를 모두 적절하게 활용해서 원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획득하는 능력을 스마트 파워라고 한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는데, 이는 포화로 인해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철의 장막이 둘러쳐 있었지만 방송을 통해 서구의 문화에 노출되어 있던 동베를린 사람들이 망치와 정으로 장벽을 무너뜨렸다. 소프트 파워가 만능은 아니지만 그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큰 실수다.

국내적으로는 한 국가가 지닌 문화와 가치, 국제적으로는 대외 정책이 소프트 파워의 원천이다. 소프트 파워 강국인 한국도 이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성공적인 대중문화를 만들어냈고, 유례없는 경제적 성취에 민주주의 제도 정착이라는 가치도 형성되어 있다. 또한 대외 정책 측면에서는 대외 원조를 통해 다른 국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문화, 가치, 대외 정책의 삼박자가 맞아야겠지만 특히 대외원조에 더 노력을 쏟아야 한다.

소프트 파워는 나라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인구 500만 명의 노르웨이가 대표적인 예다. 민주적 사회 체제를 유지하고 GDP 1%를 대외 원조로 사용하는 데다가 국제 분쟁을 평화 협정으로 이끌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덕분에 노르웨이는 자기 체급보다 훨씬 더 큰 나라 대접을 받는다. 그 반대의 예로 중국은 소프트 파워 증대에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2007년중국 공산당 제17차 중앙위원회에서 당시 후진타오 주석은 중국이 소프트 파워를 키우는데 더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데이빗 샴보(David Shambaugh) 조지타운대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을 소프트 파워를 배양하는데 쏟아붓는다. 그러나 중국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퓨 리서치 여론조사 결과는 중국이 소프트 파워 강국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통적인 소프트 파워 강국인 미국은 그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민주주의적 가치가 많이 훼손되었다. 그것을 복구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제다.

 

#K팝은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글로벌화되고 있는 좋은 사례다.

#문화역량에 테크, 플랫폼 갖춰 향후 5-10년 크게 번성할 것   

 

1부 사회: 마크 리퍼트 (Mark Lippert, 전 주한 미국 대사)

버니 조(Bernie Cho, K팝 음원 해외 유통 전문사 DFSB 콜렉티브 대표)

Q: K팝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경로를 밟아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가?

A: 처음 한국에 발을 디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K팝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변화가 감지되었다. 대중문화와 테크놀로지의 융합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한국은 1997년 IMF 위기로 직격탄을 맞고 거의 파산 상태였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제를 복구하는데 도로 같은 사회 인프라를 만드는 대신 지식정보화 사회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혜안이 있었다. 그 결과 IT기술이 경제 성장을 견인했고 특히 한국 대중문화의 성장을 촉진했다. 테크놀로지 기반이 갖춰지자 문화 산업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용이었던 K팝은 2000년대부터 아시아 전역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새로운 도약을 이루었다. K팝 제작에 여러 언어권 출신으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있는 아티스트와 제작사가 참여하게 되었다. 현대자동차는 독일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고 유럽 조지아에 있는 공장에서 조립된 후, 동유럽과 남미에서 팔린다. K팝도 동일한 방식의 생산 시스템과 글로벌 홍보 전략을 적극 사용했다. K팝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고 있는 것은 음악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그런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는 콜드플레이와 BTS가 함께 만든 곡이다. 몇 년 전에 BTS를 콜드플레이와 나란히 언급했다면 BTS가 콜드플레이 뮤직비디오에 배경으로 잠깐 등장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제 BTS는 콜드플레이와 당당히 협업하고 있다. 현재의 K팝은 글로벌 협업체제의 산물이다.  블랙핑크에서 가장 조명을 받는 멤버는 리사다. 리사는 태국 출신이다. 얼마전  빌보드 힙합 부문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찍었다. 여성 아티스트, 아시아 출신, K팝 그룹 멤버로서 빌보드 힙합 싱글 1위를 차지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따라서 K팝 비즈니스 모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BTS의 소속사인 하이브가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J 볼빈을 보유한 메가 기획사 이타카 홀딩스를 약 1조 원에 인수했다. K팝이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글로벌화되고 있는 좋은 사례다.

 Q: K팝이 해외시장 진출에 성공한 요인은 무엇인가?

A: IMF 위기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는 해외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한국 음악 시장은 규모가 작다. 경제적 위기를 돌파해야 하는데 파이가 작은 국내 시장만 노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했지만 해외 시장을 무대로 삼은 것은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K팝 수출액이 자동차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놀란다. 2020년 K팝 수출액은 약 106억 달러 규모였다. 전자제품 수출액의 1.5배, 스마트폰 수출액의 2.6배에 달한다. 누적 수출액만 놓고 보면 1위는 비디오 게임이지만 지난 2년간 K팝 수출액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수출 주도의 한국 경제에서 K팝은 이미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는 테크놀로지 측면에서 훨씬 앞서 나가는 분야가 있다. 코로나 위기를 거치며 한국 음악 시장은 전년 대비 44.1%나 성장했다. 거의 모든 업계가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놀라운 일이다. 라이브 스트리밍 기술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인데 유니버셜 뮤직이 이를 도입하려고 합작사를 세울 계획이다. 한국의 문화를 수출할 뿐만 아니라 문화를 담는 테크놀로지와 플랫폼도 함께 수출하는 셈이다. 따라서 한국의 대중문화는 그냥 지속가능한 수준이 아니라 향후 5~10년간은 크게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창작 생태계 이미 조성해 자동차-스마트폰- 뷰티-영화로 계속 선순환할 것

#끝없는 새로움 추구, 탄탄한 스토리로 보편적인 공감 끌어내는게 한국 영화 강점 

유니 홍(Euny Hong, <The Birth of Korean Cool> 저자)

Q: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지속 가능한 성공인가? 큰 물결은 언젠가 잦아들기 마련이다. 2 BTS, 2의 영화 기생충이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라고 보는가?

A: 이미 창작 생태계가 조성된 상태이기 때문에 지속할 것으로 전망한다. 큰 틀에서 보면 한국 자동차의 성공이 스마트 폰으로 이어지고, 또 뷰티 산업으로 이어지고 다시 영화 산업으로 이어지는 식이었다.  생태계가 만들어진 후에는 한 분야가 가라앉으면 다른 분야가 떠오르게 된다. 그런 역동성을 이미 갖고 있다. 또한 한국은 항상 혁신적이고 진보적이다. 실익이 없는 것은 빨리 포기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다니엘 튜더 (Daniel Tudor, 전 이코미스트 한국 특파원, 저술가, 사업가)

Q: 한국 관련 책을 여러 권 출판하는 등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볼 때 한국 대중문화는 어떻게 진화했으며 대외적으로 어떻게 확산하였는가?

A: 대학 시절 만난 한국 유학생과 절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2002년 월드컵 때 초청해서 처음 한국에 오게 되었고 그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외부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인적 교류의 부재 때문이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어느 정도 이룬 후에야 본격적인 인적 교류가 생겨났다. 지금은 영국 어느 대도시에서나 한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고 그만큼 교류할 기회도 많아졌다. 교류가 잦으면 자연스럽게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싹을 틔운다. 최근 외국에서 한국 대중문화가 빨리 확산하는 것은 인적교류를 통해 기반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외부 문화를 적극 수용한 경험이 있다. 전통 문화적인 요소에 외부 문화를 적극적으로 접목함으로써 다른 문화권에서도 잘 통하는 대중문화를 창조하고 있는 것 같다.

이재한 감독(John H. Lee,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 ‘인천상륙작전’ 감독)

Q: 한국 영화계는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큰 성취를 거두고 있다. 스크린 쿼터를 도입해 한국 영화 산업을 보호하고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고전하던 시절도 있었다. 한국 영화가 어떻게 현재의 지위를 갖게 되었는가?

A: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면 첫 장편 한국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관객이 300만 명 가까이 들어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도 대박을 터트렸다. 제작비가 300만 달러 들었는데 그 가격에 판매했다. 한국 영화 시장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투자가 1등에게만 몰린다는 점이다. 많은 감독과 제작자들이 생존 경쟁에 내몰린 상황이다. 우리는 한국 영화의 성공 사례만 기억하는데 그 이면에는 무수한 실패 사례가 있다. 넷플릭스가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계에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제작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실패에 대한 부담을 덜고 더 많은 실험적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한국 영화의 또 다른 강점은 탄탄한 스토리다.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은 한국 사회의 스토리로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낸 것에 있었다.

#그간 한국의 민간은 소프트파워 만드는데 성공, 정부는 북한중심 정책에 매몰

김지윤 박사(Jiyoon Kim, GR코리아 상임고문, MBC 100분 토론 진행자)

Q: 한국 정부가 소프트 파워를 통해서 달성할 전략적 목표는 무엇인가? 한국 정부의 정책 수립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면?

A: 영화 기생충, BTS,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등으로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커지고 있지만 하드 파워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소프트 파워의 증대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얼마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과 민간 차원의 노력 덕분이다. 현 정부의 대외 정책이 지나치게 대북한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소프트 파워 역량을 기르는 것에 등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외 정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립되어야 하는 것처럼 소프트 파워를 키워나가는 것 또한 장기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우선 대외정책의 장기적인 목표를 분명히 한 후에 한국의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의 결합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한국, 식민지에서 선진국까지 세계 유일의 경험국가의 과제 

2부 사회: 이정민(Chung Min Lee,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아시아 지역 선임 연구원, 전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장)

 

빅터 차(Victor Cha, 전략국제연구센터 CSIS 한국 석좌)

Q:한국이 마침내 글로벌화하고 있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제 한국이 변곡점에 와 있다는 의미인가? 세계 시민이 되기 위해 한국은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는가?

#매력은 베풂에서 나온다, 북한 개방한다면 시장성장과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역할할 것 

A: 한국 대중문화가 한국을 변곡점에 이르게 했다. 주류 미국인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보인다. 미국의 청년 세대 사이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이를 한국에 대한 장기적인 연대와 지지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 시민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계속 성장하는 중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U.N 평화유지군, 범지구적 기후 위기 해결,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는 등 세계 시민 역할에 충실했다. 하지만 조금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힘을 갖는 것은 민주주의, 자유, 아메리칸 드림 같은 가치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전후 기간 내내 미국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후한 대외 원조를 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두고 중국판 마셜 플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의 마셜 플랜은 그냥 퍼주기였다. 한편 중국은 융자를 해주고 있다. 소프트 파워를 만들어내는 매력은 바로 이런 베풂에서 비롯한다. 수혜의 대상은 된 국가는 수혜를 베푼 국가와 일체감을 갖고, 앞으로도 계속 지지, 연대하고자 한다. 한국이 소프트 파워를 더 키우고자 한다면 그런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Q: 대외 정책에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미국 고위 정치인이나 행정부의 고위 관료에게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의 소프트 파워 활용방안을 제안한다면?

A: 한국 소프트 파워는 북한 지배층까지는 아니지만 북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반 북한 주민들의 사고방식에 구체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충분하다. 북한이 개방된다면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한국 소프트 파워가 큰 요인일 것이다. 한국은 일본이 동남아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개도국의 성장 모델이 될 수 있다. 차이는 한국의 경우 식민지배와 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지만 경제적 성공과 민주주의의 성취를 동시에 이뤄냈다는 점이다. 같은 역사적 경험을 지난 국가들에게 한국식 모델은 추구해야 할 목표가 된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이런 배경 속에서 확장된다고 하겠다.

지난 5월 발표된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안보 동맹 뿐만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기후 변화, 첨단 기술 협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미동맹의 영역이 구체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미 협력의 장이 다양해지면 더 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협력을 하게 된다. 공동성명이 제시한 한미 협력의 로드맵을 따라가려면 한미 양국의 다음 세대가 상호협력해야만 한다. 여기에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큰 역할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소프트 파워는 공격수 역할, 게임 마무리할 선수도 이제부터 육성해야 

스콧 스나이더(Scott Snyder, 외교협회 CFR 한국 담당 선임 연구원)

Q:브랜드 파이낸스는 2021년 한국의 소프트 파워 랭킹을 11위라고 발표했다. 포틀랜드의 더 소프트 파워 30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의 소프트 파워 순위는 2017 24위에서 19위로 상승했다. 영국 모노클의 소프트 파워 서베이 2021에서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독일 다음으로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수치만 보면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크게 신장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은 아닌가? 한국은 소프트 파워를 대외 정책에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A: 한국이 당면한 과제는 소프트 파워를 대외 정책에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소프트 파워만으로는 부족하다. 소프트 파워는 자신의 팀에 공격을 이끄는 선수를 보유한 것과 같다. 하지만 게임을 확실히 마무리할 선수도 필요하다.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게임에서 승리하게 된다.

사실 특정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소프트 파워를 활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공외교에 소프트 파워를 의도적으로 이용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소프트 파워는 문화와 문화 사이의 교류를 통해 형성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 교류는 단명할 수도 있고 다른 차원으로 업그레이드될 수도 있다. 소프트 파워는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힘을 갖게 된다.

브랜드 파이낸스가 정리한 2021년 세계 소프트 파워 강국 20 (출처= 브랜드 파이낸스 글로벌 소프트 파워 인덱스 2021)

 

#한국의 소프트파워, 중국 견제 따돌리고 미국과 손잡아 세계로 나가야 

이숙종 교수(Sook Jong Lee,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Q: 한국 소프트 파워에 보완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한국 소프트 파워 측면에서 어떤 도전을 받고 있는가? 차기 한국 대통령에게 소프트 파워 활용 방안에 대해 어떤 제안을 할 것 같은가?

A: 소프트 파워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문화적, 정치적, 정책적 측면이 그것이다. USC 소프트 파워 인덱스 2019에 따르면 한국은 디지털화와 교육 부문에서 아주 뛰어났다. 한편 국제적 차원에 참여와 여론 항목에서는 매우 낮은 평가를 받았다. 한류 같은 문화적인 부분에서는 잘하고 있지만 국제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면에서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증진하고 공공 외교 성과를 높이려는 시도는 2009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더불어 ‘글로벌 코리아’ 모토 아래 처음 진행되었다. 외교부에 전담 부서가 신설되었고 소프트 파워 부문에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한편 정부 주도의 한계는 명확하다. 우리는 대중문화와 디지털을 융합하는데 능숙하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 정치에서 우리의 영향력이 바로 커지는 것은 아니다. 먼저 국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한국이 대외원조액을 늘림으로써 소프트 파워를 증대시키자는 주장에 공감한다. 실제로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중 15위지만 국민총소득의 0.15%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외원조가 전부가 아니다. 한국은 식민지배와 내전을 겪었고 극심한 가난과 독재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러한 경험이야말로 한국을 모델로 하는 국가에 소프트 파워로 작용한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커지는 것에 대해 중국이 견제하고 있다. 북한도 정권 차원에서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지배층까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몰래 시청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한국에 대한 경계심이 희석되고 장차 통일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세계 곳곳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미국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의 소프트 파워 또한 증대된다. 외부의 시각으로 보면 한국은 매우 역동적인 민주주의 국가다. 그래서 영국 콘월에서 개최된 G7 정상회담에 초청되었고, 12월에 열리는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에도 초대된 것이다. 아쉽게도 한국 정부는 소프트 파워를 활용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과 연대해야 한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가치 함양 힘쓸 때 문화력 유지된다

이신화 교수(Shin-wha Lee,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Q: 한국이 소프트 파워를 국제적으로 더욱 키워나가려면 정책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A: 한국의 하드 파워가 증대되고는 있지만 중국, 일본 같은 주변 강대국과의 격차를 줄이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 하드 파워의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소프트 파워를 더 키울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한국의 문화적 역량뿐만 아니라 한국이 지향하는 가치나 규범을 계속 확장해야 한다. 이점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아프간에서 미국의 출구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 가와 별개로 미국이 떠난 후 아프간의 인권 문제가 악화되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도덕적 우위는 약화된다. 미국은 인권 문제에 있어 다자주의적 접근 방식을 취해왔다. 한편 미국이 주창하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의 가치가 모든 국가에서 수용될 수 있는 것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소프트 파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외정책의 결과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대외정책은 집권당이 국내에서 어떤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하느냐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대외정책이 왔다 갔다 하면 외교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로 비치게 된다. 다음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여당이 되든 한국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국익이 무엇인지, 한국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반드시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간 우리 산업계가 애써 성장시켜온 소프트 파워가 대외적으로 평가절하될 우려가 있다.

#중국식 전랑외교는 본받지 말아야, 대외원조와 협력사업 병행으로 문화력 증강에 힘쓸 때 

조셉 나이 교수

Q: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외교 정책을 펼치는데 얼마나 유용한가? 그리고 한미동맹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A: 우선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강해지고 있는 것과 별도로 하드 파워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은 중국, 일본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다. 멀리 떨어져 있기에 영토 분쟁의 가능성이 없는 미국과 동맹을 맺은 것은 매우 현명한 전략이었다. 트럼프가 재임 시절 한국에 취한 행동 때문에 양국 동맹 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는데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고 양국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느끼는 미국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트럼프 식의 돌출적 행동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북한의 경우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김정은 위원장과 지배층에게 당장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일반 주민들에게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하다. 중국은 소프트 파워 역량을 키우기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중국은 열광적인 애국주의의 시기다. 전랑외교는 그 산물이다. 일대일로 정책은 관련 국가에서 중국에 대한 고마움 만큼이나 혐오를 자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소프트 파워를 증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중국처럼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고 지속해서 대외 원조와 협력 사업을 진행한다면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훨씬 커질 것이다. 한국 정부는 외교적 목표에 따라 국가별로 맞춤형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 소프트 파워를 적극 활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폐회사 (수미 테리)눈에 보이지 않으나 현실적인 힘을 가진 소프트 파워, 한-미 양국간의 긍정적인 시각은 동맹 강화에 핵심 열할을 할 것

소프트 파워의 파급효과를 강조하고 싶다. 소프트 파워는 눈에 띄는 구체적 행동을 만들어 내기보다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정부가 설정한 구체적 목표를 당장 달성하기 위해 소프트 파워를 사용하기는 어렵다. 소프트 파워의 역할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환경을 차근차근 마련해가는 것이다.

한국이 공공외교에 소프트 파워를 활용하고자 한다면 문화적 자산,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이 외국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가도록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경우 정권이 세뇌와 정보 독점을 통해 주민들을 강력하게 통제하고자 하지만 지배층 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한국 드라마를 몰래 시청하고 K팝을 숨어서 듣는다. 덕분에 북한 정권의 신화가 조금씩 벗겨진다. 소프트 파워는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현실적인 힘을 갖고 있다.

퓨 리서치센터가 2020년 5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 77%가 한국에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2003년의 경우 46%였다.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인 호주, 프랑스, 독일 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미국에 대한 한국의 긍정적 시각, 한국에 대한 미국의 긍정적 시각이야말로 한미동맹을 강화하는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다.


글쓴이 김정호는미국에서 사회윤리와 국제정치를, 인도네시아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현재 한국에서 인문교양 온라인교육 회사인 ‘알투스인’을 운영한다. 동시에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 관련 콘텐츠를 공급하는 회사를 운영한다. 미중 G2 대립이 격화되는 시대에 대한민국의 활로를 동남아에서 찾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