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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제 칼럼] ‘형’이라는 마법, 대장동 스캔들의 숨은 그림 찾기

By | 2021년 10월 4일 | 미분류, 정치

대장동 스캔들은 한국 사회에서 일확천금의 ‘흑(黑) 교본’이다. 주인공들은 공적 관계에서 사적 호칭을 사용하는데 익숙하다. 친교의 속도와 깊이를 정상 이상으로 추구하려는 의도가 ‘형’을 호명한다. ‘형’은 뇌물을 낳고 뇌물은 범죄를 낳는다. 일확천금은 범죄의 쌍둥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이 사건의 구도다.
형이라는 호칭을 먼저 사용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이를 용납하거나 즐기는 사람도 문제다. 뇌물이 그렇다. 주는 사람이 문제지만 받는 사람도 문제다. 캐나다에서 한국을 관찰하는게 업인 성우제 필자가 이 문제에 대한 글을 써왔다. 성우제 필자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만 기록해 고담준론 류의 논설과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편집자 주]

 

#혈연도 없이 똘똘 뭉치는 형님 문화,
숨은 뜻은 복종과 의리
#이해가 상충하는 사이에서의 형님 동생은 
부패의 온상이 될 최적의 환경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형님 문화의 폐단,
화천대유 스캔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자매들이 사는 세상> 

최근 페이스북에서 어느 여성이 올린 글을 보았다.  “늦은 오후에 여동생 집에 도착해서 낮잠 자고 동생이 챙겨주는 밥 먹고 쉰다. 여자 형제라는 존재는 참 특별하다. 나는 동생집이 친정보다 더 편하다.” 나는 남자지만 여자 형제들 사이의 이런 특별한 우애를 잘 아는 편이다. 외국생활을 오래한 나 같은 사람에게 가장 그리운 것은 형제와의 교류인데, 여자 형제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더욱 각별해 보인다. 내 아내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내는 여자 형제들과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 아쉬워 한다. 남자 형제들은 많이 다르다.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전화 통화를 해도 용건을 말하고 나면 서로 할 말이 별로 없다. 1시간 넘게 통화하고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여자 형제들 사이가 그저 신기하고 부러울 따름이다. 한 집안에서 실제로 피를 나눈 형과 아우 사이는 대체로 그렇게 데면데면하다. 

친목 단체에서의 형님 아우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이 용어가 등장한다면 큰 문제를 만들 소지가 있다. (사진제공=셔터스톡)

 

<피보더 더 진한 남자들의 세상, 형님 문화>

   그러나 형이라는 호칭은 가족 테두리만 벗어나면 턱없이 각별해진다. 특히 사회에서 만난 나이 많은 사람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렇다. 어릴 적 동네나 학교에서 만난 손윗사람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그 호칭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직장에서는 연차 높은(대개 나이 많은) 상급자는 직함으로 부르게 마련이고, 내가 몸담았던 언론계에서는 어떤 직급이 되었든 ‘선배’라 불렀다. 

   이런 호칭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사회에서 부르는 ‘형님’이다. 형님이라는 호칭은 참 묘하다. 친목단체에서 만난 학교·고향 선배들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야 문제될 바 없겠으나, 공적인 영역에서 이 호칭이 불리기 시작하면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과거 신문 방송 초년 기자들이 경찰서 출입(일명 ‘사쓰마와리’)을 할 때 선배들이 가르치는 것이 있었다(나는 그 경험을 하지 않았다.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형사를 형님이라고 불러라”이다. 젊은 출입 기자가 사용하는 그런 호칭이야 경찰과의 사이를 돈독하게 하는 방편의 하나로 여길 수 있겠으나, 공적인 관계에 ‘형님(이라고 부르는)문화’가 개입하면 그것은 군부 사조직처럼 큰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복종과 의리의 용어, 형님>

   ‘형님문화’는 공과 사의 경계를 지우고 허물어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친형이 아닌 누구를 형님으로 ‘부른다’는 것은 ‘모신다’는 의미를 지닌다. 2014년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김무성 의원에게 보낸 “형님” 운운하는 내용의 문자가 공개되어 빈축을 산 바 있다. ‘대표님’ ‘의원님’ ‘선배님’ 같은 건조한 호칭과 달리 바로 그 ‘형님’이라는 표현에는 복종과 의리를 지키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과거 어느 유명 사립대 체육과 교수 두 사람이 특정인의 교수 임용을 반대하며 단식투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사안을 취재하면서 해당 학과 관계자들을 두루 만났는데, 퍽 낯설고 인상적인 것이 하나 있었다. 형님이라는 호칭이었다. 교수들은 선배 교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대학원생들도 교수를 형님이라고 했다. 기자 앞에서 제3자를 지칭하면서도 “그 형님이 어쨌다”고 했다. 결격 사유가 있다고 두 교수가 반대하는 사람을 다른 교수들이 굳이 선발하려 하는 것과 그 ‘형님’이라는 호칭이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교수님” “선생님” 혹은 “선배님” 대신 “형님”이라 부르며 지내온 십수년의 세월과 그 관계가 결격 사유를 덮을 지경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었다. 그들은 친밀감을 높이고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 사적인 호칭을 공적인 영역에서 공공연하게 사용하는 마당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도리어 이상할 것이다.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형님’ 호칭이 공조직 속의 대표적 사조직인 ‘전두환의 하나회’에서 사용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확인할 길이 없으니, 전두환씨의 쿠데타와 권력 찬탈 과정을 그린 MBC 드라마 <제5공화국>(2005년)을 살펴보았다. 이 드라마 역시 공조직에서 사적 관계를 앞세우는 전두환 무리가 상급자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그렸다. 드라마 제작진이 확인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작진 또한 공조직을 좀먹는 사조직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사적으로 서로를 챙기는 ‘형님문화’를 꼽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자리 가리지 않고 선배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전두환에게 강창성 보안사령관은 “내가 왜 당신 형님이야?”라며 면박을 준다. “사적으로 잘 모시겠다”는 속마음을 드러내 보였는데도 그 제안을 거절하고 질책한 강창성에게 나중에 권력을 잡은 전두환은 고문을 하며 보복한다. 

 

<구시대 언론의 촌지보다 더 단단히 뿌리 내린 21세기 미디어계의 형님 문화>  

   예전 한때 언론계에서는 “촌지를 잘 받는 기자가 좋은 기자”라는 말이 떠돌았다. 어느 일간지에서 주필을 했던 유명한 언론인이 한 말이라고 했다. 과거 기자에게 건넨 촌지는 ‘기사를 잘 써달라’ 혹은 ‘잘 봐달라’는 의미의 뇌물이다. 취재원과 기자 사이가 그런 뇌물로 연결되면 공적인 관계는 서로를 봐주는 사적인 관계로 바뀌어 버린다. ‘촌지를 잘 받는 기자가 좋은 기자’ 운운하는 것은 좋게 해석하면 그런 내밀한 관계를 만들어야 고급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우리 회사(옛 <시사저널>. 지금은 <시사IN>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1989년 창간할 때부터 ‘촌지를 받지 않는다’고 선언했었다. 기자를 만나면 촌지를 주어야 한다고 여기는 문화가 여전히 살아 있을 때여서 취재를 나가면 돈봉투를 건네는 이들이 간혹 있었다. 취재원으로서는 ‘어렵게’ 내민 촌지 봉투를 거절하면 그때부터 분위기가 아주 이상해진다. 그런 경험을 몇번이나 했었다. 치부를 드러내며 접근했는데 “내가 왜 당신 형님이야?” 하는 것처럼 면박을 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몇 차례 경험한 이후에는 촌지를 거절해도 서로가 무안해지지 않는 세련된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공적인 관계에서 사용하는 ‘형님’이라는 호칭은 과거 언론계에서 횡행하던 ‘촌지’와 그 성격이 유사해 보인다. 촌지나 형님 호칭은 공적인 관계를 내밀한 사적 관계로 만들어버린다. 내밀하면 할수록 결속력은 더 강해진다.

    “촌지를 잘 받는 기자가 좋은 기자다”라는 소리를 들은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 한국 언론계에서 촌지 문화가 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도 언론계 ‘촌지’와 비슷한 내용의 형님문화는 한국 사회 전반에 살아 있고, 방송이나 언론계에서는 오히려 더 확산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부상한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멀리서, 오랜만에(이민 초기인 2000년대 초반에는 한국 방송을 보기도 어려웠고 일부러 멀리 하기도 했다) 한국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장 낯설었던 것이 사적인 호칭을 방송에서 서슴없이 사용한다는 사실이었다. 자기들끼리 사적으로 노는 자리도 아닌데 방송 출연자들은 ‘형님’이라는 사적인 호칭을 공공연하게 사용했다. 시청자들을 염두에 둔다면 ‘~씨’로 불러야 마땅하지만 예능인들은 사적인 관계를 공적인 방송에 아무렇지도 않게 개입시켰다.

  그런 문화를 주도하는 이들은 주로 남성 예능인들이었다. 그들은 급기야 방송에서 ‘예능 사조직’을 말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유라인’이니 ‘강라인’이니 ‘규라인’이니 하는 것들이다. 일종의 카르텔이다. 이런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당사자들이나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이같은 카르텔 문화가 방송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어떤 해악을 끼치는가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무신경했다. 웃자고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특정 라인이 패거리를 지어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보았다. 자기네들이야 형님 아우님 하며 끌어주고 밀어주며 승승장구하겠으나 그 피해는 그런 형님문화에서 소외된 여성이나 시청자들이 입는다. 실제로 개그맨 송은이와 김숙은 “방송이 우리를 불러주지 않아서” 팟캐스트를 시작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방송에 나와 형님 아우하며 서로를 끌어주는 예능 당사자들은 형님이라는 용어와 그 문화가 지닌 폐해에 대해 문제의식이 전혀 없어보인다. 그들은 ‘아는 형님’을 두지 못하거나 ‘아는 언니’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는 형님’ 패거리 문화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형님 언론 폐해의 표본 출입기자단>

 그래도 예능 프로그램들은 형님문화를 드러내며 내놓고 ‘장사’를 하고 있으니 그나마 나을 수도 있겠다. 형님문화가 조장하는 사조직 성격에다 폐쇄적인 성격까지 더한 집단이 있으니, 바로 출입기자단이다.

  출입기자단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이유가 있다. 언론사 입사 초기에 경험한 일 때문이다. 우리 매체는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새로운 시사주간지였다. 일간지 부럽잖게 많은 인력을 보유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실용으로 부서도 나뉘어 있었다. 당시 우리 매체를 창간하고 이끌었던 박권상 편집인 겸 주필은 여러 언론사에서 온 경력 기자들과 나 같은 신참들을 교육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 박 주필은 “우리는 기자단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기자단은 한국 언론을 망가뜨리고 부패시키는 집단이라고 박 주필은 강도높게 비판했다. 

   일부 선배 기자들이 불만을 표시했으나 박 주필은 단호했다. 기자단에 가입하지 않고도 우리 매체는 성공했다. 출입기자단이 언론 발전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조직이라는 말을 들은 것은 무려 30년도 더 된 일이다. 외국에서는 출입을 신청하면 언론사 요건을 갖추었는가를 해당 기관이 심사한 뒤 공간 사용료를 받고 출입을 허가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한국에서도 청와대가 그런 시스템으로 기자실을 운영한다.

  일반 관청에는 출입기자실이 있고, 그곳의 출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출입기자단이다. 30년 전에도 ‘부패의 온상’이라고 지목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그런 폐쇄성을 유지하는 기자단이 존속한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한국이 경천동지할 지경으로 바뀌고 발전해도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출입기자단만은 여전히 후지고 요지부동이다. 

   출입기자단이 존속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배타적이고 폐쇄된 조직 속에서 자기들만의 달콤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나 드나들지 못하는 닫힌 곳에서 해당 출입처와의 유착이 생겨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거리를 두고 서로를 견제해야 할 언론인과 공무원이 악어와 악어새처럼 거의 한몸이 되어 공생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화천대유 최대주주 김만배 대표(사진 좌)가 회사 고문으로 모신 ‘존경하는 형님’들이 줄줄이 전관 출신 변호사, 그것도 주로 대검 특수통 출신인 것이 우연일 확율은 얼마나 될까? 우측 사진 위에서부터 박영수, 곽상도, 이경재. (사진제공=연합뉴스)

    

<출입기자단 제도가 낳은 괴물 대장동 스캔들>

이번에 터져나온 성남 대장동의 부동산 스캔들은 출입기자단 제도가 만들어낸 문제의 결정판이다. 누구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 보니 출입기자단에도 공과 사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형님문화가 스며들게 마련이다. 스캔들의 중심 인물인 화천대유 김만배 대주주는 20년 가까이 법조기자로 일했다고 했다. 출입 기자 신분으로 대법원이나 검찰청에 드나들면서 만난 고위직 인사들을 그는 “좋은 형님들”이라고 했다. 어느 누구의 감시 눈길도 닿지 않는 굳게 닫힌 공간에서 서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할 사람들이 “형님” “아우님”하며 밀어주고 끌어주며, 엮고 엮이며 초대형 사건을 만들어냈다. 카메라  앞에 서서 “좋은 형님들” 운운하는 김만배 <머니투데이> 전직 법조기자는 공과 사가 무엇인지 구분도 하지 못할 정도로 질퍽한 형님문화에 푹 젖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적 영역에 ‘형님문화’가 스며들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만들어내게 마련이다. 내가 아니면 네가 죽어야 하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외국인 노동자 알리는 상우를 형이라 부르며 믿었다가 목숨을 내준다. 친목단체도 아닌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남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고 큰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형님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대표적인 군부 사조직인 전두환의 하나회는 하루아침에 해체라도 시킬 수 있었으나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가 드러낸 언론 영역의 ‘형님문화’ 독기는 단기간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도, 기자단을 해체하고 기자들의 취재 시스템을 다른 나라들이 하듯 새롭게 정비하는 것이 방법일 수 있겠다. 문제는 출입기자단 소속 언론사들이 반대할 것이 뻔한 터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어떻게 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실행했던 출입기자실 폐쇄를 이명박 정부가 복원한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글쓴이 성우제는

시사저널(현 시사IN) 창간 멤버로 문화부에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이민 후에는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다양한 한국 매체에 기고를 하고 있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 수상했고(소설 및 산문 부문), 현재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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