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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칼럼] 서울과 국가주의를 넘어 ‘바다로 가자’

By | 2021년 9월 14일 | 미분류, 한반도

수도권 주민이라면 평택, 수원, 분당 거쳐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앞에 다시 섰을 때의 미묘한 감정을 기억할 것이다. 약간의 안도감과 ‘다시 전투 시작!’의 긴장감이 교차하는 그 시간. 달콤 쌉쌀하다 해야 할지, 단짠단짠이라고 해야 할지? 명절 끝의 귀경길이었다면 그 느낌이 더하다. 이 칼럼의 필자는 서울이라는 공간, 중앙집권적 국가주의라는 신앙은 여전히 절대적이어야 하는가 묻는다. 자유로우면서도 평등한 체제와 삶의 방식을 위해 넓고 넓은 ‘남쪽 바다’로 갈 마음은 없는지 질문한다. 추석을 맞아 우리를 돌아보는 몇 개의 칼럼, 첫번 째는 영원한 공화주의자 김동규 필자의 글이다. [편집자 주]

#바이킹과 유목민의 역사에서 배우는
수평적 인간 관계에서 오는 자발적 단결력
#삼면이 바다로 막힌 내륙의 시선이 아니라
삼면이 대양을 향한다는 개방적 시각으로
#바다로 눈을 돌려 자유로우면서도 평등한
‘이소노미아’를 향해

 

반도라는 우리의 지형을 삼면이 바다로 막힌 내륙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삼면이 대양으로 향한다는 개방적 시각을 갖는 것이 서울 중심적 사고와 국가주의를 넘는 첫 걸음이다. (사진제공=셔터스톡)

 

수평적 인간 관계의 원형 <수호지>

우리는 중국인들과 달리 <수호지(水滸志)>를 즐겨 읽지 않는다. 우린 <삼국지>의 나라다. <수호지>는 양산박(梁山泊)이라는 큰 호수(泊)에서 활약하는 ‘호수 도적’, 즉 호적(湖賊) 이야기다. 굳이 영어로 하자면 ‘lake pirate’정도 될 듯하다. 바다나 큰 호수(미시간호나 바이칼호를 연상하시라!)의 도적들은 독특한 인간관계를 갖는다. 바다나 큰 호수는 워낙 개방된 공간이어서 서로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불만스러우면 쉽게 짐을 싸 떠나버린다. 사방이 막힌 내륙에서는 떠나기가 쉽지 않다보니 ‘상하관계’ 중심의 꽉 짜여진 조직이 나타나기 쉽지만, 넓은 바다나 호수나 개방된 중앙아시아 초원 같은 곳에서는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다는 이유로 매우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발달한다. 마오쩌둥이 <수호지>를 애독했다고 하는데, 공산당이라는 정당 활동을 하던 그에게 정당이라는 조직은 어쩌면 양산박 호걸들의 인간관계와 비슷했기에 이 책의 내용에 마음이 끌렸던 것이리라. 상하관계 중심의 기업, 정부 조직에서 일하던 기업인이나 고위관료들이 정당에 들어가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인간관계의 수평성일 것이다. 기업과 관청이 의리와 충성의<삼국지>적 세계라면 정당이나 정치는 평등한 <수호지>의 세계다(현재의 한국 정당 구조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바이킹과 초원의 유목민, 자발적으로 이루어낸 고도의 단결력

세계를 호령했던 민족들이 북유럽의 북해와 끝없이 펼쳐진 중앙아시아에서 자주 출현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농경사회 정착민의 관점에서 보자면 거의 해적이나 마적과도 같은 바이킹과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석권했던 것에는 어떤 비밀이 있지 않을까? 일본의 평론가이자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은 <철학의 기원>에서 ‘이소노미아(isonomia)’라는 정치체제를 상세히 논한 적이 있다. 그는 이 개방된 정치체제가 높은 수준의 개방성 덕에 고도의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지방의 도시국가들에 이러한 성격이 강했다고 설명한다. 개방된 공간에 살던 바이킹과 유목민 사회는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모아낼 수 있는 정치적 틀만 마련된다면, 그렇게 뭉쳐진 사람들의 단결력은 다른 정치체제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다. 자발적 동참은 그만큼 조직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청교도혁명의 지도자 크롬웰은 군대를 만들 때 병사들에게 반복해서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언제든 떠나라’ 했고, 우리의 경우도 해병대나 해군 UDT같은 특수부대는 철저히 원하는 사람만 받아들인다. 자원(自願)한 부대는 징집(徵集)된 일반 부대보다 강한 단결력을 보여준다. 자발성은 단결력으로 이어진다.

 

서울 중심의 사고와 서울의 폐쇄성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서울과 그 주변인 수도권에 모여있다. 나라의 최고 권력인 대통령과 입법부, 사법부, 대기업 본사, 주요 언론사, 출판사, 대학 등이 모두 서울에 모여있다. 몇 년 전 경주에 우리로선 드물게 리히터규모 5.8의 꽤나 큰 지진이 발생했는데, 서울에 자리 잡고 있는 공영방송은 문자 뉴스 조차로도 보도하지 않고 원래 계획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대한민국은 서울이고, 서울이 곧 대학민국이라는 사고이다. 국토(헌법상 국토가 아니라 통치권이 미치는 사실상의 국토)의 북단에 붙어있는 이 도시가 나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로의 집중은 권력을 독재자와 관료들의 손에서 빼앗아 국민 사이로 분산시키겠다는 ‘민주화’가 진전된 뒤에도 전혀 해소될 기미를 안 보인다. 1987년의 ‘민주화’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권력의 분산을 가져오지 못했다. 지방정부는 여전히 중앙의 눈치를 보고, 대기업 집단은 경제력 집중을 더욱 강화했으며, 교육 현장은 아직도 교육부의 지시만을 따른다. ‘일벌백계’식의 검찰 권력에서 일상 깊숙하게 촘촘히 국가 공권력의 촉수를 갖다대는 경찰권력으로 공권력이 일부 이동해 나가면서 시민 사회의 자율성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을 뿐이다. 즉 시민들이 보호 받아야 할 어린이가 아니라 스스로 계약을 맺으면서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어른(시민)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더욱 도전받고 있다. 이렇게 막강한 중앙권력이 서울에 위치하다보니 그 보호 하에 성장해온 대기업들은 당연히 본사를 서울에 둘 수밖에 없고, 대기업 하청으로 생존하는 수많은 중소기업들도 서울이나 수도권 주변도시에 자리잡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인구가 여기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병의 상당 부분은 서울에 집중된 중앙권력의 분산으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사진=셔터스톡)

 

서울과 국가주의, 중앙권력과 대기업의 협업

강력한 중앙권력의 비호를 받아 성장해온 대기업들은 개방성에 기반한 ‘공정한 경쟁’을 싫어한다. 관세, 비관세 장벽 뒤에서 국내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추구하게 되어, 밖으로는 해외기업들을 견제하고 안으로는 신생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을 억압한다. 몇년 전에 있었던 연합뉴스를 위시한 매스미디어가 주도했던 ‘BMW 화재’ 이슈를 떠올려 보자. 자동차들의 화재는 브랜드를 불문하고 종종 일어나는 일이며, 당연히 국내 승용차 시장의 점유율 90% 내외를 차지하는 현대‧기아 자동차의 화재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것은 돈 문제에 민감한 보험회사 자료가 가감없이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국내 관영 미디어들은 유독 ‘BMW’에만 손가락질을 했고, 당연히 BMW의 판매량은 내려갔다. 뉴스가 나오자 중립을 지켜야 할 국토교통부 장관은 매우 신속히 BMW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고, 미디어는 장관의 엄중한 지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불자동차 BMW’라는 이미지는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공인되어 버렸다. BMW가 화재 위험이 유독 높았다면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유사한 이슈가 발생했어야 했지만, 그런 해외뉴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즈음 미국에서는 현대‧기아차의 ‘직분사(GDI) 엔진’의 화재 문제가 더 이슈였다. 이 ‘BMW 화재’ 이슈가 국내 언론을 도배하고 중앙정부가 ‘BMW 때리기’를 할 시점은 매우 ‘공교롭게도’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 브랜드로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 진입하려고 할 때였고, 또 SUV 라인업 확대에 한발 늦어지면서 미국에서 시장점유율과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있던 시기였다. 한국 시장에서 한풀 꺾인 아우디에 이어 이젠 ‘화재’ 이슈로 BMW가 주춤하게 되었다. 물론, ‘자동차의 역사’ 그 자체인데다 국가 의전용으로 사용되는 벤츠까지 건드릴 순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중앙정부의 지원사격 덕분인지 현대는 제네시스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SUV 라인업 확대로 미국 시장에서도 반등하고 있다. 현대‧기아 자동차가 공장이 있는 울산이나 광주 등이 아니라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정부나 언론사와 긴밀히 협업하려면 울산보다는 서울에 본사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독점 기업은 보호무역과 경제적 민족주의를 추구한다.

중앙정부와 대기업의 ‘협업’에는 관료들과 관료화된 회사원들이 필요하다. 이들은 ‘공정한 경쟁’ 보다는 학연 등의 ‘연줄’로 일하기 좋아한다. 중앙정부의 도움과 는 무관한 ‘경쟁시장’ 요식업종 같은 곳에서는 ‘연줄’이 무력하다. 음식점은 맛있는 음식을 좋은 가격으로 만들어내는 능력만이 중요할 뿐이며, 여기는 서울대, 연고대니 하버드, 옥스포드니 하는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울대 인맥보다 ‘할머니 손맛’이 더 중요한 곳이 이러한 시장이다. 하지만, 큰 규모로 인해 안으로는 개인의 업무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고, 또 밖으로 중앙정부와의 ‘협업’이 중요한 대기업에서는 ‘인맥’ ‘연줄’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연줄’을 얻기 위해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이른바 ‘명문대학’을 들어가려 밤잠을 줄여가며 교과서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푼다. 한국의 대학은 지성을 갈고 닦는 곳이 아니다. 옥스포드, 하버드 학생들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를 읽을 때 이제 좋은 인맥에 안착하게 된 서울대 학생들은 고시, 로스쿨, 회계사, 주요 언론사,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입사시험 준비에 매진한다. 강력한 중앙권력과 그 비호 하에 관료화된 대기업들 덕분에 우리나라는 ‘학연’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프랑스라는 타산지석

프랑스 정치사상가 토크빌은 <앙시엥레짐과 프랑스혁명>(L’Ancién régime et la révolution)에서 프랑스혁명이 왕정을 공화정으로 바꾸긴 했지만, 절대국가의 강력한 중앙 관료제를 혁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국가주의적 경향과 이러한 국가주의가 통치자를 ‘제왕’으로 추대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더 엘리트 사회이다. 모두 ‘태양왕’ 루이 14세로 상징되는 부르봉 왕조 절대국가의 유산이다. 보통 프랑스 대학은 서열도 없이 파리1대학, 파리2대학과 같은 식으로 평준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진짜 엘리트 학교는 파리대학이 아니라 이른바 그랑제꼴이라고 하는 학교들이다. 그랑제꼴 중 이공계의 최고봉으로서 수많은 국영, 민영기업 CEO를 배출하는 에꼴 폴리테크닉(EP)이나 졸업 후 대학교수 자격을 주는 고등사범학교(ENS), 그리고 막강한 중앙 관료를 배출하고 대통령, 총리 대부분을 배출하는 국립행정학교(ENA)가 프랑스의 최고 엘리트 교육 기관이다.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같은 지금은 세계적으로 더 유명한 명문 대학들이 있는 미국이지만, 이 학교 출신들이 프랑스의 국립행정학교, 고등사범학교처럼 미국 사회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정치, 행정 엘리트들은 다양한 곳에서 배출되고 있고, 스티브 잡스처럼 미국 경제를 이끄는 수많은 기업 엘리트들은 특정 명문 대학 출신들이 아니다. 고졸 CEO도 많다. 연줄보다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강력한 중앙 관료들은 많은 기업을 국영기업으로 거느리고, 국가 GDP의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거두어 직접 관리하고 분배한다. 강한 관료는 당연히 ‘큰 정부’를 좋아하고, 서민들을 ‘복지’라는 방식으로 포섭해 통치의 정당성을 높인다. 현 마크롱 대통령이 개혁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런 거대 관료 조직과 국가주의 체질일텐데, 어느 정도 개혁 동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국가주의 전통이 부르봉 왕조 절대국가 이래 수백년간 이어져온 것이라는 점에서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최정예 엘리트들만을 양성하는 그랑제콜 중 하나인 프랑스국립고등사범학교(ENS).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모교이자 데스탱, 시라크, 올랑드 등의 대통령을 배출한 국립행정학교(ENA)를 2022년 전에 폐교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셔터스톡)

 

서울을 떠나 남쪽 바다로 가자

다행히 우린 국립행정학교도 고등사범도 없다. 상업고등학교 출신들이 대통령이 되기도 했던 나라다. 중앙 관료들도 예전같지 않다. 경찰의 약진이 걱정스럽긴 하지만 중앙 관료의 마지막 철옹성이었던 검찰의 힘을 빼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도 모아지고 있다.

인구의 수도권 집중, 학연 사회, 활기 잃은 경제 등등 ‘대한민국 병’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문제들은 중앙권력(제왕적 대통령제 포함)의 분산으로 해결될 수 있다. 중앙권력, 즉 행정부의 권력을 입법부, 사법부, 그리고 지방정부로 분산시킨다면, 대기업은 약해진 중앙정부의 강력한 비호를 기대하지 못하게 되어 예전과 같은 독과점적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많은 신생 기업, 중소기업들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지방정부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대기업 본사도 공장이 위치한 지방으로 이전하게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대기업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성장하게 되면 수도권 ‘명문 대학’ 입시 경쟁은 약화될 것이다. 대기업이 이전해 간 도시에는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며, 그곳 대학에는 인재들이 모일 것이다. 많은 공장들이 있는 남쪽 바닷가가 당연히 기업 활동, 대학 교육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이다.

서울을 떠나 바다로 간다는 것은 서울에 집중된 권력을 국민들 사이로 분산시킨다는 것이며, 경제활동하기 좋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사람과 재화, 그리고 지식과 문화가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관료와 대기업의 결탁으로 형성된 국가주의가 약화된다면 사회가 더욱 자유롭게 개방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창의력과 추진력 만으로 새로운 기업을 일구는 일에 청년들이 뛰어들 것이다. 그들은 창조할 것이고, 생산할 것이고, 유통할 것이고, 무역할 것이다. 국가주의가 약화되면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기보다 상공인이 되려 할 것이다. ‘수도권 부동산 불패론’을 믿기보다는 해외로 나가 시장을 개척하고 자신의 기업을 키우는데 힘을 기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 남쪽으로 갈 것이고, 바다로 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모습도 어느덧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사람들, 북유럽 바이킹이나 중앙아시아 초원의 유목민처럼 자유로우며 평등한 ‘이소노미아’에 한발짝 더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남쪽 바다로 눈을 돌려 본다.

 


필자 김동규는

공화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과정 중이다. 해군사관학교 교수를 지냈고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 생활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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