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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형 칼럼] 미국과 집권 2기 탈레반은 협력할 수 있을까

By | 2021년 9월 13일 | 국제, 미분류

전쟁과 갈등이 끝나도 상대는 남는다. 미국은 한국(1953), 쿠바(1959), 베트남(1975), 이란(1980)에서 이를 학습했다. 어떤 때에는 봉합을 서둘러야 했고 어떤 때에는 딱쟁이가 진 뒤에도 내버려뒀다. 미국과 아프간 관계는 어떠할까? 미국의 외교 목표가 중국에 대한 전략적 다층적 포위망 구축에 있다면 향후 미-아프간 관계는 ‘적절한 수준의 대화와 협력’이 점쳐진다. 

아프간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 언론과 최초로 인터뷰한 아프간 대표부의 샤힌 대변인은 아프간 재건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했고, 북한에 미군 무기를 팔지 않을 것이고 공언했다. 지구촌 거의 모든 일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워싱턴. 거기서 한국 외교 보도의 새 장을 열고 있는 SBS 김수형 특파원이 최근 아프간 사태의 전말을 정리하고 향후를 조심스레 점쳐봤다. [편집자 주]      

# 전쟁에서 외교로 이동,
워싱턴은 아프간 상황 관리와 폭압 억제가 정책 목표
# 20년 전쟁 끝에 상호 대화법 습득,
미국내 동결 자산 해제로부터 협상 출발할 듯
# 샤힌 대변인, 경제빈곤 인정하며
외자유치, 한국 참여도 요청해 주목 끌어
# “철수는 미국을 위한 최선의 결정”,
바이든의 결기어린 발언에 비판론 주춤   

20년간의 아무 소득 없는 전쟁을 끝낸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두 나라 사이에는 이제 적절한 수준의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 과연 미국은 다시 권력을 잡은 탈레반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사진=셔터스톡)

 미군의 아프간 철수 작전은 미국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 C-17 수송기에 태워달라며 아프간인들이 매달려가다가 떨어져 숨지는 장면이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미국인들은 잊고 싶었던 베트남전 패배의 역사를 다시 떠올렸다. 게다가 이번 사건에 느닷없이 끼어든 IS-K의 자살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이 숨지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책임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독단적인 철군 의사 결정과 정보 실패의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가운데, ‘미국이 돌아왔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큰소리가 과연 타당한 것이냐는 회의론까지 제기됐다. 한편으로는 트럼프 정부와 맺은 평화협정에 따라 탈레반이 안전한 미군 철군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어느 정도 지킴으로써 이들이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낳게 된 것도 사실이다. 

 

“미국을 위한 최고의 선택”…준비되지 않은 철군을 대성공으로 포장한 바이든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철수 작전을 강한 어조로 대성공으로 규정했다. 그는 “진심을 다해 이번 결정은 미국을 위해 올바르고 지혜로운 최선의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12만 명을 항공기로 구해낸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로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철군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제기된 의사 결정 오류 가능성도 전면 부인했다. 철수 작전을 진작 서둘러서 6, 7월에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일단 공항에 사람이 몰리면 혼란을 피할 수 없었을 거라고 자신을 합리화했다. 위험도를 낮추고, 비용을 덜 들이는 방식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지 않았냐는 비판에도 그런 전쟁은 없다고 일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년 동안 2,461명의 미군과 민간인, 24만명의 현지인 사망자를 낸 전쟁을 끝냈다. 그리고 9.11 20주년 이전에 장병들을 집으로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사진=연합뉴스)

 극도의 위험 속에 미군을 노출시켜야 했고, 하루 3억 달러씩 돈을 퍼부었던 소모적인 아프간 전쟁을 이제는 끝낼 때라는 점을 바이든 대통령은 거듭 강조했다. 그에게 아프간 전쟁은 확전이냐 종전이냐, 양자택일의 문제였다. 그에게 확전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도움이 안 되는 결정이기 때문에 종전밖에 대안이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이 결단하지 못한 걸 자신이 이번에는 마무리 짓겠다는 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바이든의 확신은 자신의 결정만 옳다는 독선을 담고 있었다. 이정도 혼란은 불가피했다고 선언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셈이다. 게다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30만 아프간 군대의 느닷없는 항복에 대해 “잘 싸울 줄로 알았는데, 정확하지 않은 정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중대한 오류를 축소하는데 급급했다. 판단 착오와 의사 결정 과정의 문제를 시인하거나 사과하는 건 전혀 없었다. 아프간 정부군이 적어도 18개월은 버텨줄 것으로 판단했고, 현지 외교관들이 긴급하게 반대 채널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철수하자고 했던 건의는 그대로 묵살된 것으로 드러났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미국은 최악의 철수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나에게 아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던 아프간 철군에 대한 소신 관철을 주장하는 대통령의 심기 경호를 위해, 관료 조직이 정보를 어떻게 왜곡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된 것이다. 

 물론 바이든은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철수 작전을 대성공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책임질 것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국 사회는 9.11테러 20주년이라는 특별한 애도기간을 맞았지만, 다시 탈레반이 재집권하는 상황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도 취임 이후 연일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아프간 철군에는 찬성한다고 해도 이렇게 체면을 구기고는 간신히 본전이나 찾은 씁쓸한 현실에 미국인 대부분 마음이 상한 것이다. 

카불 공항을 떠난 마지막 C-17 수송기 내부 모습. 백악관은 철수 작전을 성공적이었다고 규정했지만, 아비규환과 같은 이날의 현장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미군이 사이공에서 철수하던 날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인의 출국 협조한 탈레반…말 뿐만이 아닌 “예전과 달라졌다”

 카불 공항 철수 과정에서 IS-K의 테러로 얼룩지기는 했지만, 탈레반이 미국인들과 아프간 조력자들의 출국에 협조한 것은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미군이 철군할 때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트럼프가 탈레반과 맺은 평화 협정의 핵심이기는 했지만, 카불 공항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로 탈레반이 미국인들을 직접 안내해줬다는 사실은 탈레반이 적극적으로 미국과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특히 한국 정부에 도움을 준 아프간인의 출국도 탈레반이 크게 문제 삼지 않고 허락함으로써 ‘미라클 작전’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실제 탈레반은 SNS는 물론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20년 전 공포 정치를 일삼던 세력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데 주력했다. 대사면령을 통해 통합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경제 개발을 위해 모두가 소매를 걷어 올려야 한다는 점까지 강조함으로써,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는 통합 정부가 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미국을 포함해 국제 사회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점을 대변인이 기회가 될 때마다 말하고 있다. 

“우리는 절대로 북한에 무기 팔지 않는다”…국제 사회 일원되기를 원하는 탈레반

 탈레반의 입장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카타르 도하 탈레반 대표부의 수하일 샤힌 대변인과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직접 화상 인터뷰했다. 2000년대 초반 파키스탄 주재 아프간 부대사를 역임했던 그는 지난해 미국 정부와 평화 협정 협상 때 탈레반의 2인자 바라다르를 수행하는 협상단의 일원으로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는 탈레반의 입장을 듣기 원하는 서구 언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탈레반의 대표선수였다. 

탈레반 대변인 중 한 명인 수하일 샤힌. 그는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탈레반이 테러 집단의 이미지를 벗고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려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샤힌 대변인은 탈레반이 과거 테러 행위와 연관되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한다고 전한다. 공화당 소속 일부 미국 하원 의원들이 아프간에 남겨진 미군 무기가 중국, 북한 등 적대 국가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니 그는 미국 의원들의 주장은 근거 없는 추정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무기는 아프간 자신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북한에 절대로 무기를 팔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북한과 탈레반 정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확인했다. 그러면서 전쟁 이후 국가 재건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들이 들어와 국가 재건 사업에 참여해주기를 희망했다고도 말했다. 한국이 아프간에서 대사관을 다시 열어주기를 원한다며, 자신들이 대사관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으로 출국을 원하는 아프간인도 적법한 서류를 가지고 있다면 출국을 허락하겠다고 확인했다. 

 샤힌 대변인은 거리낌 없이 아프가니스탄의 경제적인 위기에 대해 털어놓았다. 아프간 국민의 70% 이상은 빈곤 상태에 있으며, 중앙은행인 아프간 은행의 자금이 동결돼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앞으로 댐, 철도 등을 건설하는 대규모 사업이 필요한데, 다른 나라와 손잡고 진행할 거라는 계획도 말했다.  

 지난 2007년 탈레반의 폭탄 테러로 숨진 故 윤장호 하사와 피랍 살해된 샘물 교회 선교단원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냐고 묻자, 당시 아프간이 점령 상태였고, 한국도 점령군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간 국민 수십만 명도 점령군에 살해당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직접적인 사과 표시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과 관련한 사건은 과거의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기를 원한다며, 탈레반 정부는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은 한국 정부와 상호 이익과 존경에 기반을 둔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한 알카에다를 비롯한 모든 테러 조직이 아프간 땅을 거점으로 삼지 못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거듭 확인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포함해 다른 어떤 나라를 공격하려는 테러를 위해 아프간이 이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러단체 이미지가 강한 탈레반이 다른 극단주의 테러를 일삼는 단체를 비난하며 본인들은 상대적으로 이성적이고 정상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탈레반은 절대 믿을 수 없다”…워싱턴 공항에서 만난 아프간 피란민들

 지난 달 21일 새벽, 200명의 아프간 피란민 선발대가 아비규환의 카불 공항을 탈출해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내렸다. 공항에서 직접 만난 피란민들은 미국 시민권, 영주권이 있는 사람조차 카불 공항까지 접근하는 게 너무 어려웠고, 공항에 진입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 증언했다. 탈레반들은 아무렇게나 허공에 총을 쏘고, 아프간인들을 겁주기 위해 심지어 수류탄까지 던지는 일까지 비일비재했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실제 파편에 맞아 얼굴을 크게 다친 피란민을 직접 확인할 수도 있었다. 수송기에 매달려 떨어져 사람이 숨지는 비극적인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하기도 했고, 바로 옆에서 탈레반이 쏜 총에 사람이 맞는 걸 봤다고도 증언한 피란민도 있었다. 

 목숨을 걸고 탈출한 아프간인들은 탈레반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20년 전 이들이 보여줬던 여러 악행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고, 이들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다. 특히 아프간의 젊은 여성들이 탈레반에 대해 갖는 적개심과 반감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이미 자유를 누렸던 여성들은 여성을 억압하는 탈레반 체제를 다시 겪게 된다면 그건 죽음 목숨과 다름없다고 단언했다. 

 미국의 조력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탈레반이 수색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고, 곳곳에서 야만적인 폭력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폭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아프간 언론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는 것이 피해 언론인들의 끔찍한 상처를 통해 세계에 공개되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미국과 탈레반…탈레반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과제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의 말은 빈틈이 안보일 정도로 정제된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볼 수 있는 탈레반의 행동과 괴리가 큰 게 제일 큰 문제이다. 탈레반은 열린 자세를 취하면서도 서구 사회가 만든 질서는 따르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립외교원의 인남식 교수는 “탈레반은 아프간의 이름을 Islamic emirate(이슬람 통치자가 다스리는 지역)로 선언했다”며 “여성의 문제나 기본 인권의 문제는 보편적인 가치로 추구하겠지만, 서방 세계의 표준을 따르지는 않고 자기들의 이슬람 가치를 지키겠다는 게 목표가 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샤힌 대변인의 발언만으로 탈레반의 전모를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정상 국가의 모습으로 아프간의 지배세력이 되려는 영리해진 탈레반의 모습이 샤힌을 통해 투영됐다고 이해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철권, 폭압 정치를 해서는 더 이상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분명하다. 말이 부드러워지면 실제 행동도 과거와는 달라질 가능성은 커진다. 특히 탈레반은 미국이 동결된 자금을 풀어주지 않으면 국가 운영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인남식 교수도 “국가를 운영할 만한 재원을 마련하고 인사 운영을 하지 않으면 탈레반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아프간에 남겨진 미국인들의 안전한 탈출을 위해 탈레반의 협조가 절실하다. 사지에 미국인을 남겨두고 미완의 철군을 했다는 것 자체가 바이든 정부에게는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군 철군 이후에도 탈레반은 카타르 전문가들이 들어와 카불 공항을 정상화할 수 있게 했고, 미국인들이 추가 출국하도록 허용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미군 철군 이후에도 탈레반이 효율적이고,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추켜세웠다. 20년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미국도 탈레반과 대화하는 법을 어느 정도 습득했다고 분석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델타 변이 폭증으로 코로나 대응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아프간 철군의 악몽을 단기 악재로 끝내는 게 바이든 정부에는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이는 탈레반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제는 전쟁보다 외교가 중요한 시점이 됐다. 아프간 상황이 악화해 내전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면서도, 탈레반이 과거 폭압 정치를 행사하지 않도록 국제 사회의 감시와 압박도 필요하다. 전쟁의 참화를 딛고 국가를 재건한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도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이 정상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미리 고민할 필요가 있다.


김수형 필자

SBS 워싱턴 특파원.  미국의 다양한 문제적 현장을 직접 다니며 방송 리포트를 제작하는 건 물론 페이스북에도 취재 후기를 꾸준히 남기고 있다. 정당과 IT분야를 오랫동안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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