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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환 칼럼] 슈뢰더는 메르켈을 낳고, 메르켈은 숄츠를 낳는 기묘한 독일식 민주주의

By | 2021년 9월 9일 | 국제, 미분류

 

독일 정치는 연정이 특징이다. 메르켈 총리의 16년 집권기간은 그가 이끄는 기민당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임기내내 메르켈 정부는 사민당의 참여하에 운영된 좌우합작 연합정권이었다. 9월 26일 총선을 보름여 앞둔 독일 정가는 좌파 정당 강세가 뚜렸하다. 비록 녹색당 최초의 총리 후보인 1980년생 베어복이 자충수로 지지율을 일부 깎아먹었지만 좌파인 사민당과 녹색당의 지지율 합계 41%는 다당제인 독일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지지율이다. 독일은 과연 좌우합작에서 좌-좌 합작으로 바뀔 것인가? 코로나와 난민, 경제회생 등 비슷한 과제로 고민 중인 유럽 각국은 독일 총선의 결과에 주목한다. 독일은 경제에 이어 정치에서도 유럽내 선도자적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

당초 메르켈은 슈뢰더(사민)의 패착으로 집권할 수 있었다. 2005년 총선은 개혁의 밥은 슈뢰더가 짓고 과실은 메르켈(기민)이 따먹는 결과였다. 2021년 총선은 반대가 예상된다. 메르켈 시대에 대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황금 시대, Golden Zeit)’는 잭 니콜슨적 평가가 유력함에도 불구하고 메르켈의 후임 총리는 연정내 파트너인 사민당 출신 재무장관 올라프 숄츠가 유력하다. 숄츠의 사민당은 현재 지지율 25%로 선두다. 이대로라면 숄츠가 총리 지명자로서, 연정 파트너 지명권까지 갖게 된다. 독일 전문가 김택환 박사의 진단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사민당 슈뢰더의 개혁으로 집권한
기민당 메르켈, 75% 지지 속 16년 만에 퇴장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메르켈 시대,
후임은 연정내 부총리 숄츠(사민) 유력
#사민당(25%)+녹색당(16%)=좌파 정당 지지율 41%로 우세, 두 번째 적녹 연정 이뤄질까?
#독일의 경기도, 인구 1천8백만 NRW주지사
라셰트(기민)의 부진, 정치는 자신과의 싸움?

세 정당의 선거 홍보물

왼쪽부터 사민당, 기민당, 녹색당 홍보물이다. (사진=필자제공)

 

새 시대의 서막

한 시대가 가고 또 한 시대가 곧 열린다. 독일의 총선이 9월 26일로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퇴임 후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16년간 국가를 위해 헌신해 온 메르켈 총리는 “일단 푹 자고 책 읽고, 어느 시점에 새 일을 시작하려 한다”고 대답했다. 학자들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관심도 선거로 모아지고 있으며 다들 선거 이후 어떤 새 시대가 펼쳐질지 궁금해 하는 중이다. 펜데믹, 기후위기, 난민, 양극화, EU국가 격차, 디지털 전환과 신냉전까지, 불확실로 점철된 시대에 독일의 차세대 리더는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녹색당 후보 베어복

올 4월 19일 녹색당은 처음으로 연방정부 총리 후보를 선출했다. 38살에 당 대표, 40살에 총리 후보가 된 베어복의 기세는 대단했다. 당시만 해도 메르켈을 제치고 독일 역사상 최연소 총리로 유력하게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경력 과장과 자서전 책 표절 구설수에 휩싸이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기민당 후보 라셰트

이어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지사이자 기민당 총리 후보인 라셰트가 유력히 떠올랐다. 하지만 최근 홍수로 수백명이 죽어간 현장에서 동료들과 희희낙락하는 그의 모습이 노출돼 여론의 질타를 크게 받고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민당 후보가 추락하는 이유는 인물 경쟁에서 크게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켈의 후계자로 선출된 라셰트는 주지사외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다. 기민당 최고위원들이 그를 총리 후보로 결정할 때부터 민심과는 동떨어진 선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경쟁자인 바이에른 주지사 마르쿠스 죄더가 더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또한 라셰트는 메르켈과 비교하기에 리더십이나 호감도가 약하다는 평을 듣는다.

 

#사민당 후보 숄츠

160년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총리 후보가 최근 부상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을 기점으로 기민당과 녹색당 지지율이 추락하고 사민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추세가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타 나고 있다. 숄츠가 부상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본다. 위기 관리 능력과 경륜. 그는 코로나 정국에서 위기 극복 리더십을 보여 주었다. 부총리이자 재무부 장관으로서 코로나 사태 극복에 앞장섰다는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심어주었다. 또 다른 하나는 기민당과 녹색당의 총리 후보들에 비해 차분하게 정치 커리어를 쌓아 와 경륜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사민당 사무총장, 함부르크 시장, 노동복지부 장관에 이어 부총리다. 지난주 여론조사 회사인 발렌의 발표에 따르면, 총리 후보 선호도에서 숄츠는 49%로 17%인 라셰트를 압도했다.

숄츠는 최근 굳히기에 들어갔다. 그는 “사민당 총리가 당선된다”면서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스위스의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NZZ), 미국의 뉴욕 타임스 등은 “코로나 펜데믹, 아프간 사태 등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숄츠의 안정감이 어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가장 최근인 9월 첫 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민당 지지율이 25%, 기민당이 20%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말 같은 조사에서 기민당이 27%로 사민당이 17%보다 10%포인트 앞섰지만, 이 숫자는 불과 한 달 만에 뒤집어졌다.

<최근 독일 정당 지지율 및 한 달 사이 변화 추이> 기민기사당 20%(-7%), 사민당 25%(+7%), 독일대안당 12%(+2%), 자민당 13%(+1%), 좌파당 6%, 녹색당(-3%) 기타 8%
자료 : 독일 공영방송 ARD/인프라테스트 조사

 

<지난 2021년 정당 지지율 변화 추이> 자료 : 알렌스바하, 포르샤, 인사 등 여러 조사 결과 취합

 

이번 총선의 3대 과제: 안정, 기후위기 극복, 합리적인 연정

# 메르켈 시대의 안정 유지

현재 독일 민심은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 이에 대해 크게 3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먼저 메르켈 집권 동안의 실적 및 유산과 연관이 있다. 독일의 제2공영방송 ZDF는 지난 16년을 “이보다 더 좋은 시기가 없을 정도” 로 ‘황금시대’(Goldene Zeit)라고 평가한다. 독일은 2005년 메르켈 집권 당시 통일 이후 과도한 복지 지출로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도 받았으나 다시 유럽 최강국으로 자리잡았다. 2005년 실업률은 11%이었으나 최근 3%대로 완전고용의 상태이다. 특히 국가 미래의 주역인 청년 실업률이 2005년 10%대에서 현재 4%대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한국 청년실업은 독일보다 3배 높은 11%대다.

또한 2005년 2조8460억달러(약 3271조원)이던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3조3780억달러(약 3883조원)로 약 120% 성장했고, 1인당 GDP는 3만4500달러에서 4만6500달러로 138% 올랐다. 출산율도 1.34명에서 1.57명으로, 국가청렴도는 16위에서 9위로 상승했다. 현재 메르켈 지지율은 75%로 어떤 총리 후보보다 높은 수치다. 숄츠가 40%대이고, 베어복과 라셰트는 20% 이하다. 이미 독일 국민들 사이에는 메르켈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메르켈이 지은 농사는 같은 정당 소속의 라셰트가 아닌 사민당의 숄츠가 수확하고 있다. 이는 2000년부터 시작한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사회 및 노동개혁’(아젠다 2000, 하르츠 4)의 덕을 기민당의 메르켈 후임 총리가 본 것과 유사하다.

또한 메르켈 집권 16년 동안 ‘정치문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한때 “메르켈은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Merkel isst alles)”라는 말이 유행했다. 메르켈은 동독 출신 마이너리티로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통합과 포용의 정치 문화를 만들어갔다. 그 결과 국민 70%가 중도층이 된 것이다. 메르켈은 녹색당 핵심 이슈 ‘탈핵’과 사민당의 주요 이슈 ‘모병제’를 수용했다. 또한 그는 목사의 딸이자 인도주의자로서 중동 난민 100만 명을 받아들였다. 그 후유증으로 구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극우당 독일대안당(AfD)가 창당, 10%대 지지도를 받고 있다. 양극화 및 민족주의가 심화될 경우 AfD 지지도가 올라가게 된다. 메르켈의 중도 정치는 이제 양쪽에 협공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베를린 자유대 김상국 교수(정치학)는 메르켈 16년 집권에 대해 “지나친 중도 정치로 보수 세력이 분열되는 결과를 낳았다”면서 “장기집권으로 차기 주자 양성에도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사민당의 숄츠는 선거 전략으로 ‘안정’을 강조하고 온화한 모습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마치 메르켈의 후계자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는 총리 후보들 TV토론에서도 말을 가장 적게 하고 여성처럼 웃기도 한다. 그는 사민당·기민당의 대연정으로 메르켈 정부의 부총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메르켈 뒤를 잇는 모양세가 되었다. 동시에 변화, 즉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것이다. 독일 민심은 변화와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 즉 지속성장을 말한다.

이에 당황한 메르켈은 “나는 좌파당과 손을 잡지 않는다. 하지만 사민당 후보 숄츠는 좌파당과 연정을 꾸릴지도 모른다”고 공격했다. 중립을 지키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달 31일 자신의 내각에서 부총리겸 재무장관인 숄츠를 ‘극좌 정당과 손잡을 수 있는 위험인물’이라고 공격했다. 메르켈은 “나와 숄츠 사이는 독일의 미래를 두고 큰 차이가 있다”면서 공격을 이어갔다. 독일 언론들은 기민당이 코너에 몰리자 메르켈이 다급한 나머지 선거전에 뛰어들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의 비판이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사민당으로 정권 교체를 인정하는 모양이 되었다.

 

#기후 변화에 따른 환경 문제

둘째, 독일 총선을 달구는 또 다른 논점은 코로나 팬데믹과 홍수 참사로 인해 새로이 돌아보게 된 기후위기이다. 독일에서 100년 만에 수 백명 목숨을 앗아간 홍수로 인해 기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상황이 녹색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핫 이슈인 코로나 펜데믹에 집권당이 무기력하게 대응하면서 정권 교체 민심이 높아진 것이다.

2017년 총선 이후 4년 동안 독일의 핵심 이슈들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이어 코로나 극복, 사회 불평등, 연금, 아프간 등의 이민자, 그리고 경제 순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가 호황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난민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독일 민심 6대 주요 이슈 – 불평등/경제/연금/기후/이민/코로나 등>

자료 : 폴리트바로메타 – 6개월 마다 조사

 

국민에게 관심 높은 이슈와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은 기후 환경 문제로 녹색당에 기회가 왔으나 후보의 실수와 미숙한 대응으로 오히려 노련한 사민당 후보가 기회를 포착한 점이다. 총리 후보를 배출한 세 정당의 선거 구호를 보자면, 사민당은 고령화 사회에 ‘확실한 연금 보장’, 기민당은 ‘독일에서는 국가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그리고 녹색당은 효과적인 ‘기후 보호와 청년 일자리’를 내걸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연금 이슈가 먹혀들어가고 있어 사민당의 지지도가 상승하는 국면이다. 여기서 시니어와 청년의 연합인, 즉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을 상상할 수 있다.

 

#현대 독일 정치의 고유한 문화: 연정정치

셋째, 독일의 연정정치 문화이다. 독일은 1949년 이후에 항상 연정을 꾸려왔다. 1957년 콘라트 아데나워 정부가 의회 과반수를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독일당과 소연정을 실시했다. 또한 ‘코끼리 결혼식’이라는 대연정, 즉 기민당과 사민당과의 연정도 4번이나 이뤄졌다.

대한민국 상황에 비유하자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연합정부를 꾸리는 셈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제안한 대연정이 이러한 형태였다. 연정의 장점은 각 정당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실적을 내고, 투명하고 검증된 인사 발탁이 이뤄지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밀실 정치나 인사가 없다. 연정 문화의 효율성 덕분에 독일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 사회복지와 교육 기회 균등, 지역간균형발전과 성평등사회, 그리고 평화통일과 유럽중심국가로 도약한 것이다. 시대마다 리더가 새 비전을 제시하고 업적을 만든 것이다.

실용적인  결과를 낳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연정을 독일 국민들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민심은 어떤 정당들의 조합이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가’를  따진다. 사민당의 숄츠 후보는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녹녹적(綠綠赤) 연정’, 즉 사민당+좌파당+녹색당 연정을 제시했다. 이미 튀링겐, 브레멘, 그리고 수도인 베를린 등의 시정에서도 이와 같은 연정이 뛰어난 효율을 보여주고 있다. 숄츠 후보는 “녹녹적 연정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집권 의지가 강하다. 메르켈 총리와 라셰트 기민당 후보는 ‘녹녹정’을 ‘위험하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극좌인 좌파당이 공약으로, NATO 탈퇴, EU 탈퇴 등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사민당이 총선에서 제 1당이 되더라도 다른 정당과 연정을 꾸릴 수밖에 없다. 또한 어떤 정당 간 조합이 등장하느냐에 따라 국정 방향도 달라진다. 여섯 가지 유형의 연정조합이 예상되고 있다. 사민당이 좌파당과 진보 성향의 녹색당과 연정을 할 경우 ‘탄소세 조기도입’, ‘최저임금 인상’ 등 친환경 및 서민층 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아프간 난민 수용에 있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자메이카 연정도 예상된다.

 

#사민당이 우승할 경우 가능한 시나리오는

사민당이 원내 1당이 되면 16년 만의 재집권이다. 미국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메르켈 정부보다 더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3대국인 독일·프랑스·영국에서 2017년 이후 모두 중도우파가 집권해온 구도가 깨진다. 영국의 우파, 프랑스의 중도, 그리고 독일의 중도좌파가 집권하는 새로운 지형이 만들어진다. 독일 새 정부는 EU 결속력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독일과 유럽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 김택환
국가비전 전략가, 4차 산업혁명과 독일 전문가, 특강 강사 및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일보 기자, 한국언론연구원 연구팀장, 광주 세계웹콘텐츠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을 거쳐 현재 경기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한민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자 시대정신인 4차 산업혁명, 리더십, 교육혁명, 통일 등을 주제로 국회, 행정부, 지방자치단체, 경제계와 기업, 그리고 언론계에서 많은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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