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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 칼럼] 기업 참여 늘어나는 ‘근로자 휴가지원제’…현장에선 “이게 뭐꼬”

By | 2021년 8월 8일 | 정책

중공업 제조업 현장에선 업무 특성상 여름에 몰아서 한꺼번에 2주를 쉬는 관행이 있다. 사실 젊은 직원들은 이런 ‘몰빵’ 휴가 방식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에서 정한 사안이고, 관행처럼 받아들여지다 보니, 바꾸려 해도 바꿀 수가 없다. 긴 휴가를 마냥 반길 수 없는 찝찝함 속에서 어느덧 퇴근 시간 30분 전. 현장 정리를 마치고 휴게실에 앉았다. 꽉 찬 공간엔 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썰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왕초’라 불리는 최연장자 형님은 무거운 공기를 파악한 듯 오십 나이 먹고 처음 제주도 간다는 말로 화두를 띄웠다. 그러자 금세 장난 섞인 야유가 돌아왔다.
“나라가 이 꼬라진데 오델 나갑니꺼?”

휴가보다 피서란 단어가 더 익숙

그 지적에 모두가 공감하는 눈치였다. 여행을 가지 못 해 아쉬운 게 아니라, 굳이 안 가도 될 곳에 뭣하러 가느냐는 심드렁한 분위기. 이는 대다수 중공업 현장 노동자들의 기본 정서이기도 하다. 휴가라는 단어의 긴 공백감보단 피서라는 단어의 짤막한 공백이 더 어울리고 익숙하다. 만약 중공업 현장 노동자들에게 ‘휴가 때 어디를 가실 예정입니까?’ 물어보면 ‘고향’ 내지는 ‘등산’, ‘가까운 계곡’이란 답변이 절반 넘게 나올 것이라 장담한다. 맥없이 이어지던 대화가 끊어지고 다들 휴대전화 액정에 눈길을 보내려 할 때쯤. 슬그머니 궁금했던 소재를 꺼내 보았다.

“행님들. 그, 정부에서 하는 거 있다 아입니까. 근로자 휴가 지원? 중소기업만 해주는 그거. 혹시 아십니까?”

야유를 던졌던 형님은 폰 화면에 시선 고정한 채 약간 한심스럽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거 우리 말고 옆에 다른 하청서 신청했는데, 아무도 안 써서 사장이 막살(그만두다는 뜻의 경남 사투리) 놨을 걸?”

생각했던 대답 그대로였다. 근로자 휴가지원제도가 생긴 후 1년 지난 2019년. 권고사직 받았던 이전 직장에서 근로자 휴가지원제도를 신청했었다. 신청자가 20만 원을 월급에서 공제하면, 기업과 정부에서 각각 10만 원을 보태 총 40만 원의 여행 경비를 받는, 청년내일채움공제와 비슷한 구조였다. 취지는 좋았으나 결과는 허무했다. 나 이외 누구도 지원금을 사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조차 서울 오갈 때 KTX 타는 용도로 썼다. 눈으로 본 게 있다 보니 제도 자체가 곧 무산되리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치지 않았던가.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한국관광공사에서 공개한 참여 기업수는 2018년 2250개, 2019년 7900개, 2020년 1만2250개로 매년 큼직큼직하게 늘어나는 추세였다. 어디서부터 이러한 괴리가 생긴 것일까?

좋은 제도를 가로막는 세 가지 장벽

우선 정부의 근로자 휴가비 지원제는 2017년 6월 문체부에서 발표한 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당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우리 국민의 ‘쉼표가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2014년 2500여 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시범 시행 당시에 한국형 체크 바캉스는 정부 지원금 이외에 5.4배의 관광 소비를 창출했다”고 제도 도입 배경을 밝혔다. 직장인 휴가도 챙겨주면서, 국내 소비도 진작시키겠다는 의도로 제도를 설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체부 산하 한국관광공사의 근로자 휴가지원 사업 홈페이지에서 사업성과 항목을 찾아보니 제도 시행 후 직원 만족도 증진, 근로의욕 향상, 복지비용 절감, 사업 필요성 인식, 여행 총지출액 증가, 국내 관광 횟수 및 일수 증가, 휴가의 질과 문화의 향상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수치를 보였다.

제도의 효과를 의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긍정적인 수치를 제시한 설문조사 방식이 잘못되어 있었다. 제도 참여자를 무작위로 뽑아서 추출한 데이터가 아니라 단순 온라인 조사였다. 이 방식으론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고 돈을 돌려받은 경우를 나타낼 수 없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이라도 삼키질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현장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보면 지표가 감추는 영역이 보인다. 바로 제도 자체의 번거로움이다.

제도를 활용하는데 장벽이 되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기업이 신청을 해야 노동자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 신청을 해도 시스템이 복잡해 사용을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한다는 점. 두 장벽을 뚫어도 제한사항이 너무 많다는 점 등이다.

누굴 위해 그 많은 제한을 정해 놨나

우선 기업 쪽 문제부터 짚어보자. 신청을 하는 근로자마다 기업 분담금이 10만 원씩 나가는 꼴인데, 중소기업 입장에선 적지 않은 돈을 들여가며 제도를 유치할 긍정적인 요소가 없다. ‘회사 나갈 사람 안 나가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면 굳이 해야 할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다. 공공기관 및 대기업에서 협력사의 기업 분담금을 대납해주는 동반성장지원제도도 있지만, 참여 대기업 수도 적을 뿐더러 그나마 압도적으로 공기업이 많다.

어떻게 해서 휴가비 지원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해도 제도 자체가 낯설고 번거롭다. 특히 중장년층에게 너무 불편하게 되어 있다. 먼저 www.휴가샵.com 에 가입을 한 뒤, 해당 홈페이지를 통해 제휴한 숙박업소 및 교통편을 일일이 알아보거나, 알맞은 패키지 상품을 찾아다녀야 한다. 심지어 모바일 앱은 제도를 홍보하는 사람조차 민망해할 정도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스마트폰 시대임에도 근로자는 이런 과정들을 전부 컴퓨터로 처리해야 한다. 모바일 앱으로는 안 된다. 이러니 직장 동료가 옆에서 알려줄 수가 없다. 2030세대는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하면 된다지만 컴퓨터가 낯선 현장직 5060세대에겐 크나큰 장벽이다.

마지막으로 포인트 사용처가 너무 제한되어 있다. 호캉스를 의식했는지 숙박업소와 교통, 패키지 상품에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 그나마도 코로나19 시국 때문에 다 막혔다. 캠핑용품 등도 팔긴 하지만, 인터넷 최저가보다 훨씬 비싼 데다 2021년에 2012년식 제품을 파는 등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엉망진창이다. 애써 절반 액수를 부담하고 컴퓨터 작업(?)을 한 노동자 입장에선 괜히 신청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근로자 휴가지원 사업의 안내 책자. 캠핑, 레저용품, 외식 코너는 여기에 나온 게 전부다.

소외된 노동자들을 위한 제안

모름지기 좋은 것은 고쳐 써야 한다고 했다. 근로자 휴가지원 제도는 기본적으로 자체 지원책보단 소비 유도책에 더 가깝다. 문제는 현행 방식이 정작 지불능력이 좋은 중장년층을 소외시킨다는 점이다. 현재 홈페이지를 통한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모두 예약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즉 당일치기 즉흥여행은 불가능하고 ‘여행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준다.

문체부의 ‘2019 근로자 휴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휴가 사전 계획 및 준비 여부’ 항목에서 휴가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다고 응답한 상용근로자는 65.1%로 나왔다. 상당히 높은 수치지만 응답자 특성별로 보면 말이 달라진다. 성별로는 여성, 연령으로는 젊을수록 휴가를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하는 경향이 있었다. ‘휴가 기간 중 적절한 계획이 없어 곤란했던 경험’ 항목을 대비하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성별이 남성, 연령이 60대 이상인 상용근로자 중에선 ‘계획이 없어 곤란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타 집단 대비 높게 나왔고, 업종별로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상용근로자에서 ‘계획이 없어 곤란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즉, ‘가장 휴가를 가기 어려운 계층이 휴가지원 제도에서마저 소외받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하여 기존 서비스를 갈아엎을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제도가 내일채움공제처럼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 새로운 방식 하나를 추가했으면 한다. 현행 제도의 여러 가지 번거로움을 확연히 줄여주는 방편 말이다.

참고할 만한 제도가 이미 있다. 바로 문화누리 카드나 내일배움 카드다. 문체부의 제도 중 하나인 문화누리카드는 2018년 기준으로, 사업 예산 대비 전체 이용금액의 비율이 87.8%로 나왔다. 카드를 사용하는 저소득층이 보통 전액을 다 못쓰고 소액씩 남기는 경향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매우 높은 회수율이다. 이를 토대로 제도를 재구축해보자. 우선 관광구역을 지정하고, 그 안에서 영업하는 이들의 신고를 받는다. 제도 사용자들에겐 40만 원(포인트)이 들어간 현금 카드를 만들어준다. 사용자는 지정 구역 내에서 자유롭게 카드를 쓸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골치 아픈 진입장벽 문제가 아예 사라진다. 카드 사용률이 높아지면 무허가 영업인들을 양지로 끌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여행 동기부여도 중요하다. 중장년층의 경우 여행지를 선택하는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이분들을 위해 카카오톡 알림 등으로 관광구역으로 지정된 여행지의 정보를 보내주는 건 어떨까. ‘소비 유도책’을 좀 더 정교하게 가다듬자는 말이다. 기왕지사 보기 좋은 매거진 형태면 더 괜찮을 듯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여행 작가들의 기행문을 보고 짐 싸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 아닌가. ‘어차피 써야 할 돈인데 한 번 가볼까?’라는 마음이 들게 할 수 있다면 제도 활용률은 확연히 증가할 것이다.

휴식의 중요성을 알아야 할 때

대한민국이 일 많이 하는 나라임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근로 환경이나 근로 시간에 대한 연구는 많은 반면. 여가시간이나 휴가 사용을 조사한 국가기관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 이유가 대단히 궁금했는데, 2016년 12월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 개정’ 이후에야 실태조사나 관련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한다. 즉 그 전까진 ‘쉼’의 효과에 대해 공공영역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못했다는 뜻이다.

휴식이나 휴가에 대한 연구 결과는 다행히 긍정적이다. ‘2019 근로자 휴가 조사 보고서’에서 휴가가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응답한 상용근로자는 80.8%, 휴가가 업무 집중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응답한 상용근로자는 82.5%다. 즉 근로자를 쉬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열악한 장기근속률이나 산재율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리 말하면 같이 용접하는 형님들은 “쉬는 것도 돈이 있어야 쉬지!”라고 탄식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선 과감하게 연차수당을 없애고 휴가를 전부 소진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2019 근로자 휴가 조사 보고서’에서 연차수당 폐지와 관련한 설문조사 결과에선 ‘반대’가 86.4%, ‘찬성’이 10.6%로 반대가 압도적 우세다. 돈이 휴식을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휴식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면 다른 판단을 했을까?

과로사회 바로잡을 정책을 실시하라

제조업 현장 노동자들은 오늘도 길게 일했고, 쉬는 날도 나와서 일했고, 법적으로 보장받은 휴가까지 반납해가면서 일했다. 현장엔 활기가 없다. 하루하루가 힘들다는 아우성으로 꽉 찬다. 마음 놓고 푹 쉬어본 적이 없으니 그렇다. 나름 10년 가까이 제조업 현장에서 일해보니 확실하게 보인다. 이 일의 끝에서 마주한 노년의 삶은 대부분 밝지 않다. 건강은 엉망진창이 됐고 대인관계도 거의 단절되어 있다. 여가를 즐기는 법을 몰라서, 여윳돈이 있어도 다시금 일터를 기웃거린다. 그저 성실히 악착같이 일했던 삶의 결과가 이런 식이라면 대체 돈이 무슨 소용일까.

사람에게 이미 자리 잡은 인식과 관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근로자 휴가지원 제도에 기대를 건다. 뒤늦게나마 ‘과로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정책들이 실현되길 바란다. 아울러 정책 당국자들은 설문조사 등에 사용한 ‘근로자’라는 단어를 이제는 ‘노동자’로 표기했으면 한다. 그간 ‘부지런함’이란 긍정의 단어는 노동자 개인의 품격을 올려주었지만, 동시에 착취의 정당화에 일조해왔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부지런함은 세상이 다 안다. 굳이 모두가 아는 사실을 행정용어로까지 강요해야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지 않았던가.


천현우 필자

본업은 용접공. 전문대 졸업 전후로 여러 중소기업을 돌아다니며 일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소설가를 꿈꾸며 계속 도전하고 있다. ‘쇳밥 먹는 청년 노동자’를 자칭하며, 지방 제조업 현장의 목소리와 수도권 바깥 청년들의 현실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글쓰기에 매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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