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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형 칼럼] 제3후보 없는 대선, ‘덧셈 많이’보다 ‘뺄셈 적게’가 중요

By | 2021년 8월 5일 | 선거의 시간, 정치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7월 7일 원회룡 제주지사 지지 현역 국회의원 모임인 ‘희망오름’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야권의 지지율 1위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7월 말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윤석열의 대체재로 간주되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그 전에 입당한 상태였다.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은 국민의힘과의 합당 협상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국힘 행(行)을 저울질하고 있다.
내년 3월 대선에서 보수-진보에 속하지 않는 중도층은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이른바 ‘제3지대’는 역대 대선 때처럼 주요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정치 평론가들은 1987년 직선제 이후 제3후보와 중도층의 존재감이 내년 대선에서 가장 미약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반면 안철수 대표가 국힘 바깥에서 김동연 전 부총리 등과 연합할 경우 제3지대의 공간이 넓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정치권에선 ‘킹메이커’ 역할을 몇 차례 해왔던 김종인 전 대표의 거취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가 상징하는 것은 중도층, 제3지대였다. 그의 의중은 국민의힘과 안철수, 김동연 등을 포괄하는 ‘빅 텐트’(대연합) 성사에 있을 테지만, 국힘을 도와 다른 주자들을 흡수할 것인지 제3지대를 키워서 국힘과 단일화를 도모할 것인지를 미리 알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을 포괄하는 진보세력은 과연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 정치 평론가들은 내년 3월 대선 과정에서 중도층 유권자 중 우리편에 가까운 이들이 기권하지 않고 투표를 하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중도파 존재감과 ‘김종인 비대위’

선거 컨설턴트들은 그동안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판단에 근거해 ‘중도파’를 중시해왔다. 그런데 이들의 정치적 실체와 욕망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소위 ‘산업화 세력’이나 ‘민주화 세력’에 대해서는 1987년부터 줄곧 일관성과 역사성을 부여해왔지만, 중도파에 대해서는 양쪽을 오가는 스윙 보터(swing voter), 심지어 떠돌이 변덕쟁이로 치부했던 느낌이 없지 않다.

필자가 공저자들과 함께 쓴 책 <추월의 시대>에서는 중도파들이야말로 지난 30여 년간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균형을 잡기 위해 대체로 선택지가 두 개밖에 없었던 조종간을 붙들고 분투해온 주인공들로 묘사했다. 이것은 하나의 단순도식이며, 지나친 의인화이지만 그간 정치담론이 외면해왔던 또 다른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 측면이 없었다면 ‘직업적 비대위원장’(?)처럼 보이는 김종인 전 대표가 세 번의 총선에서 당적을 두 번이나 바꿔가며 (※2012년 총선 새누리당, 2016년 총선 더불어민주당, 2020년 총선 국민의힘) 정치지형상 중원(중도층)을 그토록 집요하게 공략해왔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내년 3월 대선에서 중도파의 움직임을 예측해보려면 현재 정국을 파악하고, 그들이 역대 선거에서 어떤 일관성과 역사성을 보여 왔는지, 과거의 제3후보들이 어떻게 부침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현재 정국은 과거 중도파로 분류됐던 유권자들조차 정권 재창출파와 정권 교체파로 갈라져서 치열하게 대립하는 상황이다. 친문 대 반문, 친정부 대 반정부의 구도가 확실하다. 그래서 현상적으로 마치 중도파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도 중도파는 산업화 세력에서의 이탈층과 민주화 세력에서의 이탈층으로 분리해볼 수 있었다. 지역적으로는 영남 또는 호남에서의 이탈층이 각기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 구도는 기존의 분류를 뛰어넘는 새로운 현상을 보여준다. 예컨대 현 집권세력을 ‘파시즘적’이라 공격하는 현상은, 중간지대 없이 양극단으로 흐르는 정치적 격돌 양상을 압축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제3후보가 정치판에서 흥행에 성공한 공식과, 거대양당이 제3후보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을 살펴보겠다.

왼쪽부터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최재형 전 감사원장. (사진=연합뉴스)

#제3후보가 ‘예선’에도 못 끼는 대선 임박

윤석열 전 총장의 국힘 입당으로 차기 대선은 제6공화국 출범 이래 처음으로 유력한 제3후보가 ‘예선’에도 출마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서 ‘유력한 제3후보’라는 표현은, 적어도 10% 넘는 지지율을 갖고 거대양당 사이를 부유하는 중도파 유권자를 그간 대변했던 이들을 의미한다.

1987년 대선은 ‘1노3김’ 후보로 치러졌는데 요즘에 비유하자면 2017년의 대선후보 5자구도(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와 유사했다. 대통령중심제에 걸맞지 않는 다당제의 정치적 불안정성은 1990년의 3당 합당을 통해 양당제로 재조정됐다.

그러나 양당제 구도에 만족하지 못했던 유권자들은 끊임없이 제3후보에 대한 갈망을 표출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7년 이전 상황에서도 중도층은 산업화·민주화의 두 축에 온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제성장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민주화를 열망했고, 민주화를 원했지만 경제발전 우선전략도 거부하지 않았다.

#87년 대선, 88년 총선 표심이 뜻하는 것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흔히 1987년 노태우의 대선 승리를 설명할 때, 김영삼·김대중의 후보단일화 무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노태우 후보 지지층에 초점을 맞춘다면, 대통령 직선제 하에서는 ‘안정’을 위해 신군부 출신을 선택할 수도 있었던, 그야말로 양가(兩價)의 미묘한 욕망을 지닌 유권자들도 상당수 존재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당시 노태우 후보의 득표율은 36.6%였고, 이듬해인 1988년 총선에서 집권 민정당의 득표율은 34.0%였다. 이러한 큰 규모의 유권자가 1987년 민주항쟁에 반대했을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민주항쟁의 숨은 지지자였고 후원자였다.

3당 합당 이후 두 번의 대선에서 ‘제3후보’는 김대중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진 않지만 거대여당(민자당)에도 동의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선택지였다. 1992년 대선의 정주영과 박찬종, 1997년 대선의 이인제가 그 사례였다.

그런데 2007년 대선부턴 양상이 약간 달라졌다. 이회창과 문국현이라는 제3후보가 있었는데, 이회창은 ‘보수적이지만 이명박 후보에게 동의 못하는 층’을, 문국현은 ‘범민주당 지지층이지만 정동영 후보에게 동의 못하는 층’을 각각 대변했다.
2002년 대선, 2012년 대선은 선명한 양강 구도로 치러지긴 했으나 ‘예선’ 레벨에선 유력한 제3후보가 존재했다. 2002년 정몽준 후보, 2012년 안철수 후보가 그들이었다. 이들은 후보 단일화 과정을 거쳐 노무현·문재인 후보에게 자신의 지지층을 넘겨줬다.

#정주영, 중도파를 최초로 탐색한 후보

중도파의 실체와 특성을 파악하는 키워드를 꼽아보자면 가장 먼저 ‘정주영’과 ‘국민’이 떠오른다. 1992년 대선에서 정주영 후보의 캠페인, 그리고 그때부터 정당명에 ‘국민’을 집어넣는 어떠한 흐름이 등장했다.
유럽에서 정당명에 ‘국민’을 집어넣는 사례는 과거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같이 대체적으로 극우정당이 많았다. 가방끈이 긴 논객들은 대체로 정당명에 ‘국민’이 들어가는 것 자체를 모종의 퇴행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유럽과 한국의 사정이 다른 만큼 한국에서 ‘국민’이란 당명에 이끌린 중도파들이 특별히 극우성향을 가졌다고 볼 근거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한국의 중도파를 엮어내는 데 아직까지 그 이상의 키워드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국민의힘’이나 ‘국민의당’이 아직도 존재하지 않나 싶다.

정주영 후보는 현대 재벌의 총수(오너)로서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1992년 총선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고 곧이어 대권에 도전했다. 비정치인, 기업인, 부호(富豪)의 도전이라는 점에서 미국 대선에서의 로스 페로, 훗날 한국 대선에서의 이명박, 안철수 등과 통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정주영의 선거캠페인을 탈정치나 정치혐오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1992년 대선의 선전벽보 메인문구를 보면 ‘기호 3번’ 정주영 후보는 <경제대통령/통일대통령>이었다. 반면 ‘기호 5번’ 박찬종 후보는 <젊어서 좋다! 깨끗해서 좋다!>였다. 탈정치나 정치혐오에 가까운 구호는 오히려 박찬종의 것이었다. 정주영은 그와는 전혀 다른 접근으로 유력한 제3후보가 됐다.

#보수-진보 벗어난 정치의식을 표출

정주영 후보의 1992년 대선 캠페인은 훗날 수십 년간 회자됐다. 2015년 뉴시스의 ‘곽경호의 아침단상’을 인용해본다.
“유세현장에서 대선 후보 정주영은 기발한 공약들을 발표했다. 반값 아파트, 국민학교·중학교 전면 무상급식 등은 유독 주목을 받았다. 또 국가보안법 폐지, 대학 입학정원 폐지, 경부고속도로 복층화 등도 기억에 남는 공약들이다. 반값아파트와 무상급식 등은 노무현 정부 이후 실제 도입된 정책들이지만 당시로선 최근의 ‘허경영식 공약’처럼 평가절하됐다.”

정주영은 최대 재벌의 오너였지만 재벌 해체를 말했으며, ‘공산당 결성을 막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왜 그랬을까?

정주영의 선거캠페인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본다면 냉전적 사고를 넘어서서 서민·중산층의 삶을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민생 문제’를 겨냥하는 동시에 보수-진보를 벗어난 ‘다른 종류의 정치의식’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중도파는 단순한 탈정치 세력이나 정치혐오론자가 아니다. 그들은 산업화·민주화 세력의 세계관 모두에 대해 일정 부분 만족하지 못할 뿐이다. 민생 문제를 최우선 순위에 놓는 것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의식 측면의 질문에 답을 못하는 상황을 원하지도 않는다.

민자·민주·국민 여야 3당이 1992년 8월 12일 국회귀빈식당에서 대표회담을 갖고 정치문제특별위원회구성과 대통령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 등 3개항에 합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중 민주당 대표, 김영삼 민자당 대표, 정주영 국민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편협한 세계관을 내려놓고 민생부터 챙겨야

우리 기억 속에서 가장 유력한 제3후보였던 안철수 대표를 생각해본다. 그는 2011년 본인의 정치지향에 대해 “‘중도’에 가깝다”면서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고 얘기했다. 이것은 중도층의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2017년 대선후보 토론에서 그는 햇볕정책 계승 여부에 대해 뚜렷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거대양당에서의 이탈층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의식이 그렇듯이 한국의 중도파가 원하는 것은 양쪽 대안의 단순 합산이나 중간치가 아니라 ‘모종의 다른 대안’이다.

1992년 정주영의 국민당 이후 ‘국민’이란 말이 들어가는 정당명을 계승한 역사를 살펴본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아서다.

1995년 DJ의 정계은퇴 번복으로 창당돼 2000년 새천년민주당으로 바뀔 때까지 존속했던 정당은 ‘새정치국민회의’다. 2016년 안철수·천정배 등이 창당했던 국민의당은 그해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가 2018년 바른정당과 통합하면서 사라졌다. 현재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은 그 후신이라 볼 수 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자유한국당이 지금의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이런 사례들은 기존 노선을 쇄신하고 중도파를 잡기 위해 정치지형상 중원으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이라 볼 수 있다.
1995년 DJ의 쇄신은 1997년 대선 정국에서 DJT 연대 (※DJ와 김종필·박태준의 연대)를 통해 실천적으로 전개되었다. 반면 2020년 국민의힘은 당시 비대위원장 성격의 당대표였던 김종인의 의지만 부각됐을 뿐 당 차원에서 중도로의 확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충고를 던지고 싶다.
한국에서 중도파들의 일관된 요구는 “당신들의 편협한 세계관을 내려놓아라. 그리고 민생을 챙겨라”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현 시국에 대입한다면 ‘토착왜구’와 ‘빨갱이’의 프레임정치를 넘어서라는 것이다. 또한 민생문제에 관련해 현 정부가 부동산정책 실패 등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투기세력’을 적으로 상정한 뒤 섣불리 시장에 개입하다가 더 나쁜 결과를 냈다는 인식이 중도파들 사이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말하자면 중도파, 즉 산토끼를 잡으려면 자신이 즐겨쓰는 ‘토착왜구’ 표현에 담겨 있는 대결-배제의 정치를 내려놓아야 한다. 국민의힘은 ‘빨갱이’나 ‘종북세력’ 표현으로 압축되는 극우정치를 내려놓는 것이 맞다. 최근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파시즘’이란 비난을 가하고 있는데, 이것이 무슨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는지 필자는 정말 궁금하다.

#‘우리편 중도파’를 투표장으로 오게 하라

무릇 선거는 중도파를 공략해야 이기지만 그 이전에 자기 지지층도 잘 챙겨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 양극화가 심화된 가운데 당내 경선 과정에서 그것을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여야 경선 주자들의 공통된 딜레마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당내 경선에선 자기 지지층에게 ‘배신하지 않을 우리 편’이라는 인상을 확고히 주면서, 대선 본선에서 중도파를 끌어당길 매력을 과시하는 후보가 되어야 최후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

이 지점에서 중도파의 시각으로 볼 때 여야 차기주자들에겐 거의 다 결격사유가 넘친다. 민주당의 경우 지지층의 여론지형상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 어렵고, 부동산정책 대안도 시장경제의 흐름을 따르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윤석열, 최재형 등은 문재인 정부에서 발탁한 관료들이었지만 그럼에도 격렬하게 반(反)문재인 전선에 앞장서고 있다. 야권의 기존 주자인 홍준표·유승민 후보 등도 그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여기에서 새로운 변수가 눈에 띈다. 야권 차기 주자들은 반문(反文) 정서에 따라 특정한 주제, 예컨대 페미니즘 같은 문제를 건드렸다가 의외의 유권자 집단으로부터 거센 반격을 당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중도파 표심 공략이 옛날보다 더 어려워진 것이다.

하지만 선거란 게 본질적으로 상대평가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최악보다는 차악을 고르겠다는 유권자가 많아서다. 여야의 다른 경쟁 후보보다는 ‘중도파를 위하는 인물’로 인정받는 게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중도파들은 소속정당에 관계없이 윤석열, 이재명, 이낙연, 최재형 등의 행보와 정책대안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사진=연합뉴스)

#호감도 up보다 非호감도를 낮춰야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번 대선은 비(非)호감도를 줄이고 관리하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덧셈’을 잘하는 이보다는 ‘뺄셈’을 덜 하는 인물이 승리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중도파들 대부분이 ‘정권 재창출론’ 또는 ‘정권 교체론’에 경도되어 있는 만큼 그들이 대거 투표에 불참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권도 일종의 투표행위’라고 생각하는 중도파들은 내심 투표장에 가야 할 이유가 뭔지 계속 따져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마땅히 투표할 이유를 주는 것이 여야 경선주자들의 주요한 임무 중 하나다.

이 시점에서 민주당 차원에선 ‘경선 전략’과 ‘본선 전략’을 명확하게 나누어 수립해야 한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는 정치평론가와 중도파 장삼이사들의 비난을 받더라도 지지층을 겨냥해 캠페인을 전개하되 나중에 태세 전환을 할 수준의 금도를 발휘해야 한다. 본선이 시작되면 최근 몇 년간 집권여당이 경성(硬性) 지지층에 포획되면서 소외시켜온 중도파의 정서를 적극적으로 보듬어야 한다.

#정의당은 인물 아닌 의제로 승부하길

마지막으로 정의당으로 눈을 돌려 보자. 진보 본산을 표방하는 정의당에게는 이번 대선이 너무나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시장경제 논리에 충실했기 때문에’ 헤매고 있다면 진보적 대안을 주창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런데, 중도파의 시선에서 보기엔 그 반대이기 때문에 정의당으로선 큰 방향을 잡기가 매우 어렵다. 페미니즘, 기후위기 같은 이슈를 갖고 곧잘 정부·여당과 각을 세우게 된 것에도 그런 맥락이 있을 것이다. 거대양당 구도가 강력해지면 정의당 후보의 완주조차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대선에선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접근으로 얻을 게 많지 않다.

그렇다면 정의당은 한국 사회에 요구하려는 바를 명확히 하고 인물이 아니라 의제(agenda) 중심의 선거를 치러야 한다. 대선 막바지에 박빙의 승부에 빠지게 될 민주당 측이 정의당의 의제를 받고 단일화를 추진하거나 말거나, 그때 상황에 따라 ‘명분 있는 완주’ 혹은 ‘명분 있는 단일화’를 선택하는 게 그나마 차선책이라 생각된다.


한윤형 필자

한국 사회의 청년세대 문제, 미디어 문제, 그리고 현실정치에 관한 글을 써왔다. 매체비평 전문지 <미디어스>에서 2012년부터 3년간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이후 몇몇 여론조사기관과 선거컨설턴트 업체에서 일했다. 주요 저서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미디어 시민의 탄생>이 있다. 최근 1980년대 출생 저자들과 함께 <추월의 시대>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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