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가 다가오는 가운데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린 익명의 기고문, 밥 우드워드의 책 <공포,백악관의 트럼프> 출간 등에서 보듯, 반트럼프 진영의 공세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는 전방위적 탄핵 공세를 이겨낼 수 있을까? ⓒ 셔터스톡

 

미국 고위관리들이 트럼프를 권좌에서 몰아내려 했다는 자극적인 글이 트럼프 정부 내부 익명의 기고자 명의로 5<뉴욕타임스>에 실려 하루만에 1천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바로 그 전날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보도로 리처드 닉슨을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했던 밥 우드워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서 쓴 <공포-백악관의 트럼프> 관련 보도와 맞물려 미국 조야에 풍파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했을 이들 기고문과 책이 야기한 논란은 새삼 되묻게 한다. “트럼프는 누구인가?” 중간선거와 트럼프 탄핵 움직임,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미국 언론의 변화, 중산층 몰락, 트럼프 집권 1년 성적표 등을 토대로 이를 전망한다.

 

 

대통령 제거 시도 있었다”, 그리고 <공포-백악관의 트럼프>

 

‘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 저항세력의 일원이다’(I Am Part of the Resistance Inside the Trump Administration). “트럼프 대통령의 어젠다와 그가 내릴 최악의 결정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정부 내에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뉴욕타임스>(9월 5일) 익명 기고문의 제목이다. 

 

전날인 4일 그 내용 일부가 보도된 밥 우드워드의 새 책 <공포-백악관의 트럼프>와 함께 다시 한번 트럼프 자질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미국 조야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뉴욕타임스> 기고문은 트럼프의 반민주적·반자유적이고 비도덕적 행태, 그리고 결정된 주요 정책을 언제 바꿔버릴지 모를 변덕과 편향성을 지적하면서 그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과 같은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러시아 스캔들’도 트럼프가 미 정부 내의 러시아 스파이들을 제거하고 책임을 묻지 않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정권의 규제 완화나 감세 조치, 군사력 강화 등은 훌륭한 성과라며, 그런 성공적인 정책들이 “대통령의 (고약한) 통치 스타일 덕이 아니라, 그런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애국적인 관리들이 노력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기이한 행태에 관한 한, 기고문이 이미 거론돼 온 것들에 새로 추가한 내용은 거의 없다. 자극적인 것은 정부 내 고위관리들 사이에 반트럼프 저항세력이 있고, 대통령 제거 시도까지 했다는 주장을 정부 내 인사임을 자처하는 익명의 기고자가 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우드워드의 책(11일 출간 예정)은 트럼프의 기행(奇行)에 관한 종합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주요 국내외 정책들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백악관 주인인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과 무지, 편향, 측근들의 당혹과 좌절 등에 초점을 맞춰 폭로한다.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 오마로자 매니골트 뉴먼의 <언힌지드> 등 트럼프의 아픈 속살들을 드러낸 책들이 이미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리처드 닉슨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기자 우드워드의 저작인 만큼 풍파도 그 등급이 다를지 모르겠다.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 <CBS> 등 트럼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 주류 언론의 대표선수격인 우드워드의 책 출간(<CBS> 계열사인 ‘사이먼 앤 슈스터’ 출판사)을 두고 트럼프가 “타이밍에 신경썼냐”고 했다는데, 아닌 게 아니라 11월 6일로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를 염두에 뒀을 게 분명하다. 트럼프와 실명 거론된 그의 측근들이 즉각 책에서 폭로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하고 나섰지만 이미지 타격을 면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먼저 결론 삼아 얘기하자면, 그래도 별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안팎에서 상당한 얘깃거리가 되고 책은 잘 팔리겠지만 트럼프의 지지율이나 중간선거에서의 공화당 성적에 우드워드의 책이 큰 영향을 주진 못할 것이다. 공화당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분노, 그리고 위기감의 정도가 닉슨의 워터게이트 탄핵 때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보이고 또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하게 반(反)트럼프로 꽁꽁 뭉친 미국 주류언론이나 우드워드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의 탄핵이겠지만,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런 관측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미디어 환경 변화, 미국 중산층의 몰락, 트럼프의 나쁘지 않은 성적표. 이들을 하나씩 짚어보기로 하자.

 

<CBS>가 우드워드의 책 내용 일부를 보도하면서 가려 뽑은 주요 토픽 중에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한국 관련 부분이다. 트럼프의 주요 정책 결정이 얼마나 황당하게 이뤄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CBS>가 기사 앞머리에 올려놓은 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부분.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과 롭 포터 백악관 선임비서관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파기 의사를 밝힌 문서를 대통령 집무실에서 몰래 훔쳐내서 트럼프가 거기에 사인하는 사태를 막았다는 게 그것이다. 트럼프는 그 뒤 그 문제 자체를 잊어먹어 버렸는지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전·현직 트럼프 측근 등과의 인터뷰와 메모, 일기, 회고록 등의 문서를 토대로 쓴 이 책이 주목한 또 하나의 한국 관련 사안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얘기. 주한 미군 철수 등에 언급한 트럼프의 생각을 돌려놓기 위해 군사동맹과 자유무역협정의 가치에 대해 역설하던 매티스 장관은 그 뒤 군 통수권자(대통령)의 이해력과 대처(행동) 방식이 “5학년이나 6학년 수준”이라고 탄식했단다.

 

거론된 당사자들은 다들 책 내용을 두고 “사실이 아니다”, “헛소리”, “거짓말”, “날조”라고 했지만, 먼저 나온 책들 내용과도 합치되는 부분이 많다는 걸로 보건대 없는 얘기를 만들어낸 것 같진 않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은 “그(트럼프)를 납득시키려는 건 무의미한 짓이야. 그는 정신이 나갔어. 우린 미쳐버린 도시(crazy town)에 있어”라며 대통령을 “멍청이(idiot)”라고 했다고 우드워드는 적었다. 그는 또 트럼프가 매티스 장관 등에게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죽여버리자”며 암살 제의를 했고, “다수의 대통령 고위 보좌관들이 그의 불규칙한 성격, 비교적 무식하며, 학습능력이 부족하고 위험한 견해 때문에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고 썼다. 대통령 개인 변호사였던 존 다우드는 트럼프에게 직접 얘기하진 못했지만 그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거짓말하는 것을 들었단다. 우드워드는 책을 다우드의 얘기로 마감하면서 그가 트럼프 면전에 대고 해주고 싶었던 게 “당신은 순 거짓말쟁이야!”라는 말이었을 거라고 썼다.

 

 

가짜 뉴스 소용돌이-저널리즘은 옛말

 

지난해 가을부터 1년간 하버드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일본 사회학자 요시미 슌야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가 잡지 <세카이>에 연재한 ‘트럼프의 미국에서 살다’를 보면, 미국의 20개 신문사가 발행한 <폴리티 팩트>의 트럼프 발언 검증 이야기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중에서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단 4%, 높게 잡아주더라도 16%에 지나지 않으며, 약 70%는 사실에 반하는 ‘거짓말’이다.”(<세카이> 2018년 1월호)

 

요시미 교수가 인용한, <트럼프 자서전>의 실제 집필자가 잡지 <뉴요커>에 털어놓은 트럼프의 최대 특징은 “집중력이라고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트럼프)는 ‘교실에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유치원생’과 같은 존재로, 자기 현시욕으로만 꽉 차 있는 사람이다. 왜냐면 그는 아직 한 권의 책도 끝까지 읽은 적이 없다. 집중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정보는 모두 텔레비전을 통해서 얻는다. 무엇보다도 트럼프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그의 ‘거짓말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는 게 아니라 계산된 것이다. 사람을 속이는 것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원래 그는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집중력이 없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계속하는 인물이 국민의 투표로 정식으로 선출돼 초대국 미국의 꼭대기에 앉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트럼프를 거짓말쟁이라고 보는 주류 언론이나 반트럼프 세력의 얘기를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그에 못지않게 많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나 우드워드 같은 주류 언론 저널리스트들을 거짓말쟁이로 매도해 온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의 공세는 이번 사태로 한층 더 거칠어질 게 뻔하다. 우드워드의 책이 많이 팔리겠지만 주로 팔려나가는 건 반트럼프 세력 쪽일 것이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반사적으로 지지 욕구를 더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9월 2일자 <아사히 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올린 ‘트럼프 시대, 2018 중간선거’ 타이틀의 기획기사 “Q 음모론, 트럼프를 떠받친다-‘대통령은 구세주’ 수수께끼 투고의 영향력”은 주류 언론에 대한 트럼프 지지세력의 시각을 보여주는데, 충격적이다. “7월의 <CBS> 텔레비전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를 강하게 지지하는 사람 중에서 주류 미디어가 흘리는 정보가 ‘정확하다’고 응답한 이는 겨우 11%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에 트럼프 지지세력이 신뢰하는 정체불명의 인물 큐(Q)를 중심으로 한 음모론 집단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단다. <아사히> 기자가 8월 21일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열린 트럼프지지 집회에서 만난, Q를 디자인한 셔츠를 입고 아들과 함께 나온 40대 남자는 말했다. “주류 미디어의 90%는 악의 비밀결사 중 일부다. 트럼프는 구세주로 뽑혔다. 세계를 구할 것이다.” Q는 지난해 10월부터 사이버에 등장해 트럼프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정체불명의 투고자인데, 그의 글을 지지하고 해석하는 집단 ‘Q아논’(아논anon은 익명을 뜻하는 anonymous에서 따왔다)이 만들어졌고, 이들이 만든 수많은 사이트 중 하나에만 월 800만 이상이 찾는다. 그들이 올린 유튜브 동영상만 13만 개. <타임>이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세계의 25인’에 Q를 넣었단다.

 

갤럽 조사(8월 20~26일)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41%였지만 공화당 지지자들로 응답자를 좁히면 85%로 압도적이었다. 여기에는 '가짜 뉴스'(fake news)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배후에 있는 자들이 누구냐고? 다 가짜 뉴스야.” 러시아의 선거개입 덕에 당선됐다는 의혹에 시달리고 있는 트럼프가 그를 공격하는 주류 언론들 보도를 반박할 때 곧잘 써먹는 화법이다. 여기서 트럼프는 자신이 주류 매체들이 양산하는 가짜 뉴스의 희생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자신이야말로 가짜 뉴스의 최대 수혜자일 수 있다. 가짜 뉴스가 아니었다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는 주장들도 적지 않다.

 

시간이 좀 지난 것이지만, 요시미 슌야 교수의 글을 발췌, 요약해 보겠다. 트럼프가 승리한 대통령 선거 직후(2016년 11월 28일~12월 1일)에 조사, 공표된 <버즈피드(BuzzFeed) 뉴스> 여론조사(유권자 3015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조사)에서 응답자 중 가짜가 아닌 뉴스(이하 편의상 ‘정상 뉴스’로 호칭)를 본 적 있는 사람은 약 57%였고 가짜 뉴스를 본 적 있는 사람은 약 33%였다. 그리고 뉴스 제목을 본 사람 중에 정상 뉴스 제목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0~90%가 신빙성이 있다고 대답했지만 가짜 뉴스 제목을 본 사람은 70~80%가 그렇게 믿었다.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즉 가짜 뉴스 제목을 보고도 70~80%의 사람들이 그게 가짜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비율은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다시 크게 갈리는데, 가짜 뉴스 제목을 본 사람들 중에 그것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민주당 지지자조차 평균 71%, 공화당 지지자는 84%였다. 그런데 또 문제는 당시 가짜 뉴스를 주로 유포한 것은 클린턴이 아니라 트럼프 진영 쪽이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로마 교황이 트럼프 지지 뜻을 표명했다”는 가짜 뉴스에 클린턴 지지자들은 46%가 사실이라고 믿었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75%가 사실로 믿었다. “힐러리의 메일 유출 문제를 수사하고 있는 FBI(연방수사국) 요원이 살해당했으나 자살로 위장 발표됐다”는 가짜 뉴스에는 클린턴 지지자의 52%, 트럼프 지지자는 85%가 사실이라고 믿었다.

 

놀랍게도 클린턴 지지자조차 절반가량이 상대진영의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갔다. 클린턴 후보에게 불리한 이런 부류의 가짜 뉴스를 대량 유포하는 데 러시아 정보기관이 (트럼프 진영과 짜고) 관여했고, 이들과는 별 인연도 없는, 유고슬라비아 몰락 뒤 일거리가 없어진 마케도니아 중부의 소도시 베레스의 젊은이들이 순전히 돈벌이용으로 그런 가짜 뉴스를 주문받아 만들고 팔아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것이 지금 트럼프를 괴롭히고 있는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의 기본 줄기 가운데 하나다.

 

그리하여 대통령 선거전 당시 매스컴의 의제설정도 주류 언론이 내보낸 정상뉴스가 아니라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유포된 가짜 뉴스가 주도한 사실이 <버즈피드 뉴스>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클린턴과 민주당 쪽으로 기운 주류 언론에 대한 대응수단으로 트럼프 진영이 이런 가짜 뉴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짐작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의도적인 가짜 뉴스가 정당화될 순 없다. 헌트 올컷 뉴욕대 부교수 등은 가짜 뉴스와 SNS 관련 최근 연구상황을 4가지 논점으로 정리했다. 첫째, 미국에서는 약 62%의 성인들이 뉴스를 매스미디어(주류 언론)가 아니라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접한다. 둘째, 페이스북에서는 주류 언론에서 가장 관심도가 높은 뉴스보다 가짜 뉴스 중심적인 얘깃거리가 더 널리 공유되고 있다. 셋째, 가짜 뉴스를 접한 다수의 사람들이 접할 당시에는 그것을 그대로 믿었다고 얘기한다. 넷째, 가장 인기 있었던 가짜 뉴스는 트럼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

 

사정이 이러하니까, 가짜 뉴스의 영향이 없었다면 트럼프가 어찌 대통령에 당선됐겠느냐는 얘기가 나도는 것이다. 요시미 교수는 SNS의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에도 주목했다. 인터넷 정보들이 인터넷 이용자가 선호하거나 유리한 것 위주로 구성돼 전달되는 현상인데, 인터넷 검색 사이트의 알고리즘에 의해 그렇게 구조화된다. 이로 인해 심각한 정보 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심할 경우 사람들은 각자 취향이나 정치성향에 따라 좁고 작은 그룹들로 분열, 단절된 채 자신들에게 유리하거나 좋아하는 정보만을 접하면서 점점 더 분극화하게 된다. 전체를 위한 의제나 거대담론을 상실한 고립된 소집단이나 개인들의 정치적 사회적 편향은 그럴수록 더 심해지고, 그런 환경은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언어를 구사하면서 반대자들 주장을 통쾌하게 박살 내고 모든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해 주겠다는 낯 두꺼운 선동가에게 쉽게 넘어간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가려내는 건 중요하지 않고 알 수도 없다. 얼마 전까지 정확성, 공정성, 객관성에 토대를 둔 저널리즘을 앞세운 주류 언론들이 그런 기능을 대신 해왔으나 그것은 급속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트럼프의 등장이 그것을 상징한다. 그와 함께 미국사회 자체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쌍방향적이고 평등하며 자유로울 것이라던 뉴미디어 시대의 전망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올드 미디어 시대보다 더 어두워졌다고도 할 수 있다. <역사의 종언>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처럼 인터넷으로 분열된 세계, 각자의 취향이나 지식, 재산, 성별, 인종, 문화, 직업 등에 따라 각기 달리 형성된 정체성를 중심으로 잘고 좁게 나뉘어진 세계를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라는 말로 설명했다.(<포린어페어즈> 2018년 9·10월호)

 

 

더 결정적인 건 미국 중산층의 몰락

 

트럼프의 등장이 이런 미디어 환경의 변화 덕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물론 옳지 않다. 미디어를 그 방향으로 작동시키게 만든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미국 중산층 내지 중간층의 몰락으로 대표되는 미국사회의 질적 변화다.

ⓒ 피렌체의 식탁

 

세르비아계 미국인 경제학자로 세계은행 수석연구원을 지낸, 뉴욕시립대 대학원 객원 석좌교수 블랑코 밀라노비치가 작성한 통칭 ‘코끼리 그래프’라는 게 있다. 1988년부터 2008년까지 20년간의 세계 모든 사람 소득을 백분율로 환산한 뒤 소득 순위와 소득 상승률을 그래프로 표시한 것인데 그 모양이 코끼리와 닮았다. 이 그래프를 보면 소득 순위 중간쯤에 해당하는 그룹의 소득 상승률이 70~90%에 이를 정도로 코끼리 등처럼 불쑥 솟아 있고 소득 중상위 그룹 소득 상승률은 고개 숙인 코끼리 입처럼 아래로 푹 꺼져 거의 0%에 수렴한다. 그리고 바로 그 위의 상층 소득자들 상승률은 급상승하기 시작해 최상층은 코끼리가 코를 위로 치켜든 것처럼 거의 수직으로 솟아 70%쪽을 향하고 있다.

 

가장 상승률이 높은 소득 중간순위 그룹에 이른바 중국 등 동아시아 나라들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 중간층들이 포진해 있다. 거의 제자리걸음인 중상위 소득그룹에 포진한 건 이른바 선진국의 중간층 및 그 이하, 그리고 중간순위 그룹 못지않은 높은 상승률을 보이는 쪽에 소수 부유층들이 포진해 있다. 이는 소득액이 아니라 소득액 상승 비율을 나타낸 것이어서 신흥국 중간층이 선진국 중간층 및 그 이하보다 소득수준이 더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진행된 세계화(globalization)로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신흥국 중간층이고, 가장 큰 상대적 박탈감을 맛본 건 선진국의 중간층 및 그 이하 계층이라는 것을 가시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준다. 승자와 패자로 나눈다면 승자는 선진국 최상층과 신흥국 중간층이고 패자는 선진국 중간층 및 그 이하층과 코끼리 꽁지에 해당하는 절대 빈곤층이다.

 

트럼프가 집중적으로 공략한 쪽이 바로 이 선진국 중하층 그룹이다. 미국의 이 계층은 2차대전 뒤부터 1970년대까지, 고등학교 정도만 나와도 취업은 거의 자동 보장됐다. 그들 그룹의 중심은 고교 이상의 학력으로 철강, 기계, 자동차, 화학 등 주로 제조업에 취업해서 평일엔 일, 주말엔 취미생활을 하면서 풍족한 생활을 누린,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아메리칸 드림’의 체현자들이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그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급속히 몰락했다. 미국만 그런 건 아니다. 유럽 또한 마찬가지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감행한 것, 유럽 각국에서 우파들이 득세하고 이민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도 선진국들 중간층의 상대적 몰락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아사히신문> 뉴욕 주재기자로 2015~2016년에 미국 대통령선거를 취재했던 가나리 류이치의 <르포 트럼프 왕국>(이와나미 신서, 2017)에 따르면 미국 제조업 총 고용자 수는 2차대전 직후인 1945년에 약 1200만, 그때부터 늘기 시작해 1979년에 1950만으로 정점에 도달한 뒤 2000년에는 1700만, 2016년에는 약 1200만으로 다시 7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미국 중산층이 몰락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신흥국 중간층의 급상승이 시작됐다. 2015년에 유엔은 “세계의 10억 명 이상이 극도의 빈곤상태에서 벗어났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하루 생활비가 1인당 1.25달러도 되지 않았던 극빈층 인구가 1990년에 약 19억 명이었으나 2015년에 8억 3000만으로 줄었고 세계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에 36%에서 12%로 줄었다. 동아시아만 보면 그 비율이 61%에서 4%로 급감했다. 남아시아도 52%에서 17%로 줄었다. 여기에는 중국과 인도의 빠르고 높은 경제성장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 중간층의 몰락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과 식민지배 이후 조성된 극도로 불균등한 국가 간 부의 편재가 완화돼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선진국들의 중간층은 이처럼 국가 간 부의 불균등 완화 추세와 국내 계층(계급)간의 불균등 심화에 따른 이중적 박탈감, 피해의식에 젖어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이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 소외 등의 패배의식을 자신들의 몫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타국의 중간층이나 자국 최상층에 대한 적대감으로 바꿔 표출한다.

ⓒ 피렌체의 식탁

 

<르포 트럼프 왕국> 초장에 실려 있는 간결한 지도를 보면 트럼프 승리 요인이 무엇인지 단박에 파악할 수 있다. 미국 지도 두 장인데, 하나는 2012년 오바마의 재선 당시 대선 결과를 주별로 색깔을 넣어보여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트럼프가 승리한 2016년 대선 때의 그것이다.

 

두 대선에서 결과가 달라진 곳은 오대호 주변의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아이오와, 그리고 플로리다주다. 이 6개 주는 2012년 대선 때 민주당의 오바마를 지지했으나 4년 뒤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다. 나머지 주들은 달라진 게 없다. 6개 주 중에서 플로리다를 뺀 5개 주는 미국이 잘나가던 시절 제조업의 중심지요. 지금은 몰락해버린 백인 중산층이 집중돼 있던 지역이다.

 

이들 지역이 1980년대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과정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몰락했다. 중심산업이었던 제조업이 싼 인건비와 시장 등을 찾아 줄줄이 해외로 나가거나 경쟁력을 잃고 파산했으며, 건실했던 중산층은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급락했다. 이들 지역이 이른바 녹슨 산업지대 ‘러스트 벨트’(Rust Belt)다. 세계무역기구(WTO)를 탈퇴해버리겠다거나 특히 중국을 그 원흉인 것처럼 지목해 비난하는 트럼프의 선전·선동이 이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먹혀들어 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트럼프가 도발한 미중 무역전쟁에 박수 갈채를 보내면서 그를 ‘구세주’로 상찬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들 지역이다.

 

트럼프가 겨냥하는 것은 물론 중국만이 아니다. 미국에 손해를 끼친다고 보는 모든 나라들이 다 그 대상이며, 오랜 동맹국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하여 2차대전 이후 형성된 전통적인 미국의 대외정책, 나아가 미국인들 세계관의 기저를 이뤄온 틀 자체가 해체되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반트럼프 진영은 이 해체에 반발한다. 주류 언론과 기존 외교정책 입안 및 실행자들이 중심을 이루는 이 세력(공화당 내 반트럼프 온건파도 포함)을 오바마 정권 외교정책 보좌관이었던 벤 로즈는 ‘블럽’(Blob)이라 불렀다. 미국은 지금 이 블럽과 트럼프 진영 간의 격전이 벌어지는 전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화당의 트럼프나 민주당의 반트럼프 모두 과거 “좋았던 시절”에 대한 짙은 향수와 그 시절의 재건이라는 같은 목표를 갖고 있지만 한쪽은 전통의 해체를 통해, 다른 쪽은 전통의 회복을 통해 그 목표를 이루려 한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미국 국력의 상대적이며 추세적인 쇠퇴가 자리 잡고 있다.

 

가나리 류이치 기자가 대선 1년 전부터 이들 지역을 취재하며 만난 몰락한 옛 중산층 멤버들이 그에게 한 다음과 같은 얘기들은 심화되고 있는 미국 국내 부의 불균등이 야기한 사회적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봐, 보라고! 데모(대선 직후의 트럼프 반대 데모)가 일어나고 있는 곳은 뉴욕, 필라델피아, 로스앤젤레스야. 모두 대도시뿐이야.” “동해안은 정치가, 대기업, 은행, 매스컴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고, 서해안은 할리우드 배우와 실리콘밸리. 어느 쪽이든 모두 리버럴(liberal) 민주당 지지자들이고, 물가 비싼 곳에서 밤마다 파티를 벌이며 놀고 있어.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건 온통 이스태블리시먼트(잘 사는 기득권층) 뿐이야.” 트럼프와 반트럼프로 갈라진 국내 여론전쟁의 전선도 이들 러스트 벨트의 몰락한 옛 중산층이 바라보는 갈라진 세계의 경계와 대체로 일치한다.

 

 

트럼프 집권 1년의 성적표

 

11월의 미국 중간선거와 트럼프의 탄핵 가능성을 점치는 데에는 또 한 가지 빠뜨려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트럼프가 만들어내고 있는 변화 내지 성적표다.

 

이에 관해서는 랜덜 슈웰러 오하이오대 교수(정치학)가 <포린 어페어즈>(2018년 9·10월호)에 기고한 ‘트럼프 외교정책을 밀어주는 세 개의 응원가- 기득권자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란 글이 흥미롭다. 슈웰러 교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전 지구적 침체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한 폴 크루그먼 교수 칼럼(<뉴욕타임스>)이나, 트럼프가 임기 첫해 말까지는 사임할 것이라던 토니 슈워츠(<트럼프-거래의 기술> 공저자)의 예상, 미국이 바이마르 공화국 뒤 제3제국(나치스 독일)으로 간 독일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던 오바마 전 대통령 경고 등 트럼프 정권 이후에 대한 ‘블럽’의 암담한 전망들이 다 빗나갔다며 이렇게 그 성적표를 펼쳐놓는다.

 

트럼프 집권 뒤 이슬람국가가 미국 정부의 쿠르드 무장강화 등의 조처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축출되고 있다. 중동정책 기조도 ‘오바마 독트린’을 계승하고 있고, 전임자가 실패했던 시리아 문제도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 등으로 잘 대처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도 최대한의 압박으로 국제적 부담을 절반으로 줄이고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실업률은 5월까지 닷컴 붐 이래 최저 수준인 3.8%로 낮췄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실업률은 사상 최저가 됐고, 히스패닉과 10대들, 고졸 미만 학력자들과 65살 이하 여성 노동자들 실업률은 최근 수십 년간 최저다. 주가와 소비자 신뢰지수도 고공행진 중이며 새 주택 대출 건수도 7년 만에 최고치고 기름값은 12년 만에 가장 낮다. “정치인들이 자국 국경보다 남의 나라 국경 방어에 더 신경 쓰는” 시대를 끝내겠다고 약속한 트럼프 덕에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불법 이민자가 38%나 줄었고 남서부 국경의 체포자 수도 1만 5766건으로 17년 만에 가장 낮았다.

 

슈웰러는 트럼프 어젠다의 핵심 분야인 무역 불균형(2017년 5660억 달러 적자) 시정도 잘 진행되고 있다며, 특히 미국이 가장 큰 적자를 보고 있고 불공정한 투자 규제, 기술 유출, 수출품 보조금 지급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과의 교역도 ‘블럽’들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를 압박수단으로 활용해 잘 풀어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외교정책도 부담만 크고 실익이 없는 다자 간 집단교섭보다는 1 대 1의 양자관계 위주로 실효성을 높였고, 군사안보문제도 상대국들의 부담률을 높임으로써 무임승차 기조를 없애가고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미국에 불리한 세계화·자유무역 관행 타파, 미국의 독자적 힘의 행사와 이익을 가로막는 다자주의·국제주의 타파, 미국에 기댄 서방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 거부, 이 세 가지가 트럼프 대외정책을 떠미는 응원가인 셈인데, 한마디로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다. 트럼프의 이런 정책 변화가 즉흥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국내외 정세의 구조적 변동을 면밀히 관찰한 끝에 감행한 전략적 결단이라며, 러스트 벨트에서 오래 강의를 해 온 슈웰러는 트럼프를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단기 이익에 초점을 맞춘 트럼프의 대내외 정책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 팍스아메리카나 체제를 지속할 수 있게 했던 미국의 지출(투자)까지 무의미한 손실로 간주하는 트럼프 전략의 장기 대차대조표가 어떻게 될지, 팍스아메리카나의 토대를 스스로 허물어 장기적으로 오히려 미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지 누가 알겠는가. 미국 패권 유지를 위해 투입하는 비용들까지 모조리 손실로 간주하고 투입을 중단하거나, 압도적인 무력을 배경으로 교역 상대가 누려온 수익구조 변경을 강제하거나 하면 일시적으로는 분명 득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그것은 전략적 오판 탓일 수도 있고, 그걸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국력 쇠퇴기의 힘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이 세계제국이나 패권국가로서의 야망을 버리고 일개 국민국가(네이션 스테이트)로 돌아가겠다는 트럼프와 그를 지지하는 슈웰러의 생각을 우리는 환영해야 하지 않을까.

 

 

중간선거와 트럼프 탄핵

 

<아사히>가 인용한 정치 전문 사이트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 조사(8월 29일)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39% 대 47%로, 민주당이 8%포인트 정도 앞서는 것으로 돼 있다. 이를 토대로 전문가들은 2년마다 435명 의원 전원을 새로 뽑는 하원의 경우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지금은 235 대 193(결원 7)의 공화당 우세) 인구비례로 의원을 뽑는 하원과 달리 한 주에 2명씩인 임기 6년의 상원 의석(2년마다 3분의 1씩 개선)은 50 대 49(결원 1)의 공화당 우세가 거의 그대로 가거나 민주당이 몇 석 더 잃을 가능성이 높단다.

 

민주당이 하원 의석 과반을 차지할 경우 트럼프 탄핵을 발의할 수 있지만, 3분의 2 이상을 얻어야 탄핵이 가결되는 상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없단다.(<이코노미스트> 2018년 8월 25-31일) 하지만 트럼프 정권 중간평가이기도 한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의 과반의석을 차지하면 트럼프로서는 무역과 안보 등의 정책 수행이 어려워지고, 러시아 스캔들은 더 시끄러워져 탄핵 발의까지 되면 재선 전략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우리 문제와 연관 지어 생각하면,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미국 주류 언론과 외교정책 수행자들, 곧 블럽의 기존의 고착된 사고틀을 깨버리겠다는 트럼프의 전략은 우리에게 위기이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획기적인 기회일 수 있다. 자칫 새로운 냉전을 초래해 한반도 분단 해소를 더 어렵게 만들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일본에 편중된 민주당과 주류 언론의 기존 동아시아정책이나 한반도 전략도 분단체제 현상 유지지 해소는 아니었다. 트럼프의 대외정책 전환 효과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과 그것이 북중과 미중, 미일, 일중, 북일 관계를 움직이는 연쇄파장으로 이미 실현되고 있다.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블럽 쪽의 시각, 특히 미국 주류 언론의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진전에 관한 대체로 부정적인 보도를 덜컥 받아 삼키는 건 그래서 위험할 수 있다.

 

트럼프의 푸틴, 곧 러시아 쪽과의 관계 개선은 동서 냉전시기 중국과의 관계개선으로 소련을 고립시켜 결국 무너뜨린 미국 공화당 정권의 전략을 생각나게 한다. 이번엔 고립 대상이 중국으로 바뀌었다. 만일 트럼프의 러시아 접근이 이런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그에 대한 안팎의 평가로 볼 때 믿을 바는 못되지만, 우드워드나 블럽 쪽의 트럼프 비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다) 계산은 복잡해진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남북이 이런 판세변화를 주도적으로 활용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의 전례에서 보듯, 그래야 기회를 우리 뜻대로 활용할 수 있다.

 

한승동/ 본지 편집인, 전 <한겨레> 국제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