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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묵 칼럼] 도쿄올림픽 중계 망신살 MBC 사고, 핵심엔 한국식 ‘갑질 피라미드’

By | 2021년 7월 30일 | 국제

2020 도쿄 올림픽 개회식 생중계에서 논란이 된 사진과 자막.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넣고 아이티를 소개할 때는 최근 아이티 정국 혼란으로 발생한 폭동 사진을 넣었다. (사진=MBC)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열린 2021년 도쿄올림픽은 스포츠 특유의 감동을 선사하며 모처럼 지구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국 사회 역시 국가대표 선수들의 활약에 아낌없는 응원을 펼친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그간 외면해왔던 후진적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막식 당시 공영방송인 MBC가 보여줬던 각국 선수단 소개였다. 타국에 대한 무시와 무지를 여지없이 나타낸 선수단 소개 자막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이후 외신 보도를 통해 망신을 초래했다. 27세 대학생인 임명묵 필자는 이에 대해 ‘서열화’를 내재한 한국인들의 집단심리 표출이라고 분석한 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와 달리 MBC 안팎에서 ‘자정 작용’이 진행 중이라는데 주목한다. [편집자]

#도쿄올림픽 개막식 중계 때
  MBC의 각국 선수단 소개 논란
#2008 베이징올림픽 때와 유사
  방송 장악 ‘일베 탓’ 논리는 비약
#한국 내 ‘갑질 피라미드’가 주범
  높아진 한국 위상 맞춰 변화해야  
  
2021년 도쿄올림픽(공식 명칭은 2020년 도쿄올림픽)이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23일 개막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막상 올림픽 경기 일정에 돌입하자 지구촌 제전다운 모습을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최국인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 올림픽과 관련된 논란이 여럿 발생했고 국제적인 이슈로도 부상했다. 이전 올림픽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현상이다.

대표적인 논란은 두 가지다. MBC가 지난 23일 개막식 중계에서 각국 선수단을 소개할 때 일부 국가를 부적절하게 표현한 것과 양궁 3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의 단발머리를 문제 삼은 이른바 ‘숏컷 페미’ 논란이다.

부적절한 개막식 중계로 질타 여론

먼저 MBC의 개막식 중계 문제를 짚어보자. 다수의 한국인이 갖고 있는 일종의 보편적 사고관이 표출되었고 이에 대한 자정 작용이 진행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도쿄올림픽은 한국사회 발전과정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듯하다.

MBC는 개막식 선수단 입장식 중계방송 때 각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과 이미지를 적절히 선택하기는커녕, 일종의 무례로 비쳐질 수 있는 부적절한 사진과 문구를 삽입했다. 카리브해의 국가 아이티를 소개할 때는 최근 정국 혼란으로 발생한 폭동 사진을 넣었다. 키예프 공국과 코사크의 나라인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넣은 심리는 아직까지도 해명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MBC 중계의 ‘참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국 불안, 내전 등 해당 국가를 소개하는 데 불필요하고 논란만 낳을 문구들을 넣는다든지, 양귀비를 아프가니스탄의 대표 이미지로 선정한다든지 도저히 일회성 실수로 봐주고 넘어가기 힘든 ‘총체적 난국’이었다. 여기에 각국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관계와 정보도 무수히 틀렸다. 이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각국의 백신 접종률과 1인당 GDP를 넣었다는 것인데, 올림픽을 즐기는 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정보를 삽입한 이유가 무엇일지 의문만 남기고 있다. 결국 MBC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사과를 했지만 한국 공영방송의 대외 이미지는 이미 추락한 뒤였다.

MBC의 개막식 중계방송 문제가 제기된 이후 일부 진보좌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아주 단순한 원인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방송국이 약자혐오 사이트로 악명이 높았던 일간베스트, 즉 ‘일베’ 회원들에게 물들었다는 것이다. 일베 식의 혐오 논리가 끼어든 결과, 올림픽이라는 지구촌 축제에서도 남의 비극을 조롱하고 각국을 서열화해서 차별하는 짓을 했다는 주장이다. 어쩌면 여기에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청년층에 대한 불만까지 섞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베론’은 설득력이 약하다. MBC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도 유사한 잘못을 저질러 역시 징계를 받은 전력을 갖고 있어서다. 당시 MBC는 아프리카 사헬 지대(Sahel zone)의 국가인 차드를 소개할 때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고 설명했다. 태평양의 키리바시에 대해서는 ‘지구온난화로 섬이 가라앉고 있음’이라고 표현하는 등 2021년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한 바 있다. 2008년은 ‘일베’라는 게 생기기도 전이었고, 청년층의 정치적 변동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시절인데도 그랬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MBC의 개막식 중계 화면. (사진=MBC)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도 징계 받아

2008년이라면 광우병 집회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시기였고, 이명박 정권에 대한 청년층의 반발심이 상당하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보수화’나 ‘일베화’ 되었다는 90년대생인 나는 그 무렵 중학교 2학년에 불과했다. 세대론 관점에서 보자면, 당시 각국 소개 작업을 했을 사람들인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은 지금 강고한 민주당 지지자일 확률이 높다. 반복되어서 일어난 2008년과 2021년의 ‘사고’는 이 문제가 일베의 문제이긴 커녕 진보-보수의 문제도 전혀 아니라는 것만 보여줄 따름이다.

오히려 이는 다수의 한국인이 견고하게 갖고 있는 사고들이 절제 없이 표출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바로 한국의 강력한 서열주의와 위계질서 의식이다.

나는 유교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인들이 표준화된 어떠한 위계 기준에 따라 모든 대상을 서열화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그 위계 기준에 따라 평가받으며, 이 평가는 생애주기 내내 계속된다. 입시, 취업, 결혼, 부동산, 육아, 자녀 입시… 그에 딸려오는 수많은 또 다른 평가 기준들. 서열화 다음에는 곧바로 ‘갑질’이 이어진다.

한국의 관계 맺기는 서로 만나 빠르게 서열을 파악한 뒤 자신의 대응 방식을 정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 지점에서 자신이 표준화된 위계 속에서 상대보다 위에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온갖 방식으로 간섭하고 인격적 모욕까지 가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매년 명절 휴가 때 가족-친척끼리 모였을 때 펼쳐지는, 생애주기 전반에 대한 숱한 비교와 간섭은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이런 인식과 행동이 한국 안에서만 통하지 않고(사실 한국 안에서도 문제가 많지만) 국경 바깥으로 계속 확장된다는 데 있다. 한국을 기준에 두고, ‘선진적’이고 ‘중심부’에 있는 위의 국가들과, ‘후진적’이고 ‘주변부’에 있는 아래의 국가들로 세계의 모든 곳을 정렬시킬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인이 외국인들을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차별적이라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위의 국가들’에서 온 외국인들 또한 이방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한국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압박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겪는 압박은 ‘아래의 국가들’에서 온 이들이 당하는 차별, 수모, 모욕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방송국 장악한 ‘일베’ 탓하면 설득력 약해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것은 서구에서 지적하는 외국인 차별이나 혐오와는 사뭇 다른 문제가 된다. 한국인들이 다른 한국인들에게도 행하는, 단일한 갑질 피라미드를 외국인들에게도 적용해서 행하는 것이다. 요컨대 그런 갑질 피라미드에 누구나 예외 없이 속해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한국적 보편성인 것이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MBC의 개막식 참가국 소개 때 표시한 1인당 GDP와 백신 접종률일 것이다.

1인당 GDP는 그동안 한국에서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나누는 데 아주 유용한 기준점으로 애용되어 왔다. 한국 스스로 또한 국민소득 1만 불, 2만 불, 3만 불을 언제 달성하느냐를 국민적 관심사로 삼으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웃 나라인 필리핀, 대만을 따돌렸고 일본을 따라잡는 게 머지않았다고 미소 짓게 만드는 기준 또한 1인당 GDP였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펜데믹과 맞물려 새로운 기준으로 백신 접종률이 부상하고 있는데 MBC는 한국인들의 숨겨진 세계관을 오히려 투명하게 반영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등장한다. 한국인들이 그런 ‘갑질 사고(思考)’를 갖고 있는 것은, 옳다 그르다 이전에 이미 사회에 뿌리 깊게 내면화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이나 미국의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공영방송에서 무절제하게 표출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닐까? 언론이 지켜야 할 책임의식과 윤리를 생각했을 때 무책임한 일을 저지른 것 아닌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도 결국에는 2008년에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MBC는 징계를 받기는 했을망정 이 정도까지 국내외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진 못했다. 많은 경우 대중이 나서서 폭격에 가까운 질타를 하고 나서야 실질적 변화가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2021년에 이런 일이 또 다시 발생했다는 것은 2008년에 그 같은 담금질과 집단학습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즉 MBC는 13년간 ‘일베 물’이 들었다기보다 애당초 그다지 바뀌지 않은 것이고, 오히려 바뀐 것은 한국의 대중 여론과 감수성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어쩌면 2021년에 이런 짓을 저지른 MBC가 문제되는 게 아니라, 2008년에 이런 실수를 저질렀는데 별 문제 없이 넘어가버린 한국 사회 자체가 특이한 게 아니었을까?

영국 신문인 가디언은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엔 체르노빌, 이탈리아엔 피자 : 한국 TV 올림픽 사진에 대해 사과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MBC의 중계 사진과 자막을 비판했다. (사진=가디언)

‘2008 vs. 2021’ 달라진 여론 수준과 감수성

이 역시 ‘과거의’ 한국 사회가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의외로 쉽게 설명된다. 그때까지 한국은 전형적인 ‘섬나라’였던 것이다. 한국은 분단으로 인해 육로 국경이 반세기 넘게 닫혀 있었고, 외국인과의 진지한 인적 교류는 이제야 막 시작되고 있었다. 한국인 사이에 형성된 고도의 동질성은 ‘집단 대 집단’으로서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한국 바깥에서 한국 안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이곳에서 끝난다’가 한국인의 기본적인 정서였던 것이다. 이런 고립된 섬나라의 인식으로는 바깥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없고, 나라 안에 들어온 외국인들도 모두 동화시키거나 배제하면 그만이었다. 2008년과 2021년에 일어난 MBC의 사고는, 어차피 이 방송을 외국인들이 볼 이유가 없다는, 아주 편리한 섬나라 인식 아래에서 일어난 일인 셈이다. 2008년에 이것이 용인되었던 이유는 다수 한국인들의 인식 또한 MBC 제작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그러나 201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거쳤다. 디지털·모바일 혁명이 급진전되고,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훨씬 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게 되고, 한국인들이 수많은 나라로 나가 경험을 쌓게 되면서, 한국은 고도로 세계화된 사회가 되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곳에서 끝나지 않고, 세계 각지에 전파되면서 파급효과를 낳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한국에 대한 바깥 세계의 관심도 급증했으며, 이제는 한국 관련 뉴스에 대해서 외신들이 국내 언론보다 더 자세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싣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은 동방의 조용한 섬나라가 아니라 바야흐로 세계의 중심이자, 비서구와 서구를 잇는 문명적 허브가 된 셈이다. 몹시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의 대중들은 이런 변화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에 MBC가 사고를 재차 일으켰을 때, 방송이 나가는 그 즉시 다른 누구보다도 한국 대중들이 MBC를 질타하면서 사과와 교정을 요구했다. MBC 방송 사고야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한국인 스스로의 자정작용이 작동해 문제를 빠르게 해결했다는 것은 꽤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까 싶다.

‘갑질 피라미드’ 자성 없이 근본 변화 못해

그러나 이번 사태가 내부, 외부를 가릴 것 없이 한국식 위계 인식과 갑질 자체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MBC 사고를 대하는 반응도 ‘나라 망신이다’는 게 주류지, 그 근저에 깔려있는 갑질 인식을 한국인 누구든 부지불식 간에 갖고 있다는 사실은 좀체 거론되지 않는 것 같다.

20세기 후반 반세기 동안 한국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21세기에는 반대로 그런 한국에 매료된 세계인들이 한국으로 물밀 듯 들어오고 있다. 그런 만큼 한국 안에서 위계의 피라미드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한국 바깥으로까지 그것을 확장해 나가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인당 GDP나 백신 접종률을 기준으로 다른 나라들을 서열화하고 따지는 사회 기저의 인식이 없었다면, MBC가 왜 국가 소개 때 그런 수치들을 구태여 삽입했겠는가? 어쩌면 ‘일베’라는 유령을 소환해 MBC를 비판하려는 움직임 또한, 스스로의 내면에서 그런 부끄러운 면모를 분리시키려고 하는 일종의 자기보호기제가 아닐지 우리는 다시 자문해봐야 한다.


임명묵 필자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서아시아 및 중동 지역을 전공하고 있다. 문명과 역사, 사회와 국제정세, 대중문화와 과학기술 등 다방면의 지식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과 <K를 생각한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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