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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의 오래된 유럽] 델타변이에도 백신·마스크 반대론…‘침묵하는 다수’를 주목하라

By | 2021년 7월 28일 | 기획 · 연재, 김진경의 '오래된 유럽'

지난 24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한 시민이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접종 거부’라고 적힌 시위용품을 들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7월 중순 쇼핑을 하러 시내에 나갔다가 취리히 중앙역에서 희한한 모습을 봤다. 한 남자가 머리에 커다란 종이 모자를 쓰고 몸에는 알록달록한 현수막을 두르고 있었다. 그 현수막에는 주사기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위에 ‘금지’ 사인이 표시돼 있었다. 모자 양쪽에는 각각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마스크를 네 항문에 집어넣어라’. 두 말할 것 없이 백신 반대론자, 마스크 반대론자였다. 흥미로운 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요란한 차림의 남자에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코로나19와 함께 사는 법을 터득?

유럽에 코로나19가 퍼진 지 약 1년 반이 흘렀다. 나는 지난해 4월 <피렌체의 식탁>에 ‘좋은 유럽인은 죽었다’라는 제목으로 첫 칼럼을 쓴 이후 유럽인들의 허술한 대응과 실종된 시민의식, 구멍 뚫린 의료시스템과 인종 차별 등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했다. 수차례의 유행 ‘파도’가 지난 지금, 코로나19 초기보다 과연 상황이 많이 나아졌을까.

마스크와 손 소독제는 ‘뉴노멀’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것들도 많다. 아무 일 없는 듯 북적이는 식당과 카페, 백신 거부 운동, 최소한의 정부 지침조차 따르지 않고 마스크 없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해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코로나와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한 유럽인’으로 포장하는 글을 마주친다.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게 앞으로의 과제인 건 맞지만, 과연 현재의 유럽이 그 단계인지는 의문이다.

최근 있었던 일을 보자. 7월 17일 프랑스에서 대규모 ‘안티 코로나’ 집회가 열렸다. 수도 파리에만 1500여 명,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모였다. 그 주 초에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새로운 코로나 지침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새로운 지침은 보건업종 종사자가 의무적으로 백신을 접종하고,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 출입할 때 ‘코로나 패스’를 지참하고 보여주도록 하는 내용이다. ‘코로나 패스’는 백신을 완전히 접종했거나 48시간 이내의 코로나 테스트 결과가 음성임을 증명하는 문서다.

시위대의 배너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갔다. ‘의무 백신 반대! 자유 침해!’, ‘마크롱의 보건 독재에 반대!’. 마르세이유 시위에는 마크롱 대통령의 얼굴에 히틀러의 콧수염을 합성한 사진도 등장했다. 시위 참여자 중엔 프랑스 극우 정치인들도 포함됐다. 이 같은 극렬 시위가 벌어지는 프랑스의 현재 코로나19 상황은 어떨까. 7월 24일 신규 확진자가 2만 2700여 명에 달했다. 한 달 전인 6월 24일 신규 확진자는 2000여 명이었다. 불과 한 달만에 10배 넘게 급증한 수치다. 최근 유럽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델타 변종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도 끝날 기미가 없고, 자유에 대한 요구도 초기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지난 24일 정부의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유로2020 이후 폭증한 유럽 내 확진자

눈길을 스페인으로 돌려 보자. 코로나19로 1년 미뤄져 개최됐던 유럽 축구선수권 대회(유로2020)가 얼마 전 끝났다. E조에 속한 스페인은 스웨덴과 조별 예선 경기를 치르기 사흘 전인 6월 11일에 선수들과 코치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았는데, 이게 스페인 내에서 큰 논란이 됐다. 당시 스페인 전체 인구 중 백신 접종을 완료한 건 25%에 불과했고 40세 이하는 아예 접종 스케줄조차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건 관계자나 필수 업종 종사자도 못 맞은 백신을 축구 선수들이 먼저 접종한데다, 경기 일정상 한 차례로 접종을 끝내기 위해 굳이 얀센 백신을 골라 접종했다는 점에서 ‘특혜’라는 주장이 쏟아졌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정치인 아이나 비달은 “팬데믹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이, 축구공이나 주고받는 남자들에 의해 내쳐졌다”고 비난했다. 경기 불과 3일 전에 접종한 것도 문제가 됐다. 접종 후 백신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약 2주가 걸리기 때문이다.

스페인뿐인가. 무리해서 개최한 유로2020 자체가 문제였다. 경기를 시청한 한국인들은 경기장을 메운 관중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이번 대회는 ‘유로 60주년’을 기념해 영국, 러시아, 독일, 헝가리, 스페인 등 유럽 전역 11개국에서 열렸다. 코로나 확산을 막으려면 밀접 접촉을 하는 선수들과 코치들의 동선을 통제해도 역부족일 텐데, 선수들이 한 달 내내 11개국을 돌아다니며 경기를 펼친 것이다. 심지어 11개국의 코로나 방역 기준도 제각각었다. 스페인 세비야에선 관중이 마스크를 쓰고 띄엄띄엄 앉은 반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은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특히 준결승전과 결승전이 열린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는 6만 명 넘게 입장해 마스크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현재 유럽 전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스페인은 6월 말 하루 4000여 명이던 신규 확진자가 7월 중순 이후 하루 2만여 명 수준으로 폭증했다. 유로2020 우승국인 이탈리아 역시 확잔자 증가세가 다시 가팔라졌다. 6월 30일 신규 확진자는 776명이었지만 7월 25일에는 4742명으로 늘었다. 영국은 유럽 내 백신 접종률 상위 국가였지만, 7월 24일 신규 확진자가 4만7500여 명까지 치솟았다. 6월 초만 해도 하루 3000여 명 수준이었다. 스위스도 일주일 만에 확진자가 80% 이상 늘었다.

이런 확산 현상을 보면서 축구에만 책임을 돌릴 순 없다. 여름 들어 방역 조치가 완화되면서 식당, 클럽 등이 정상 영업을 하고 있고, 백신 접종자가 늘면서 거리 두기나 마스크 착용 지침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스위스 연방보건청 디렉터 안느 레비는 “방역 지침을 완화하고 식당 실내 영업을 허용하면서 확진자 숫자가 증가할 걸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이토록 많이 증가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NZZ am Sonntag 인터뷰) 그는 이 발언으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1년 반이 지나도록 정부가 코로나19 경험에서 배운 것이 무엇이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안티(anti) 코로나 음모론, 일부에 주어지는 백신 특혜, 실종된 연대 의식, 무능력한 정부. 코로나19 초기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코로나19가 곧 종식된다는 것도, 코로나19를 독감처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것도 아직은 머나먼 장래의 일로 보인다. 지금으로선 백신 접종이 최선의 방책이지만 그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백신 접종, 마스크 착용’ 거부감은 여전

스위스는 유럽에서 백신 확보 및 접종이 순조롭게 이뤄진 나라 중 하나다. 지난해 12월 말 접종이 시작된 뒤 지금까지 전체 인구의 약 42%가 접종을 완전히 끝냈고 11%는 1차 접종을 마쳤다. 그러나 7월 들어 접종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신청자가 줄어서 그렇다. 대규모 접종을 위해 올해 새로 문을 연 접종 센터가 업무가 줄어 문을 닫는 실정이다. ‘맞으려고 했던 사람은 거의 다 맞았다’는 게 당국의 추측이다. 다시 말해 미접종자의 상당수는 처음부터 백신을 맞을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올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 전체 인구의 70%에게 완전 접종을 한다는 당초 목표는 사실상 달성 불가능해 보인다.

백신이 남아돌아도 접종이 원활히 되지 않는 문제가 있지만, 사실 백신 확보량이 부족해 일상 생활에 제약이 있는 나라가 훨씬 더 많다. 그 제약 때문에 수입이 끊긴 자영업자의 생계는 또 누가 책임져야 하나. 마스크 없이 자유를 외치는 시위대인가, 아니면 시민에게 필요한 것을 때맞춰 지원하지 못한 정부인가. 현재 급증하는 델타 변종 다음엔 또 무엇이 등장할 것인가.

나는 그동안 스위스에 사는 외국인의 시각으로 이 나라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 시각이 항상 객관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의 출신지인 한국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문제라고 보는 것들에 대해 스위스인들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래서 늘 궁금했다. 마침 코로나19 사태를 집중적으로 다뤘던 스위스 언론인을 만날 기회가 최근 있었다. 스위스 양대 일간지 중 하나인 타게스 안차이이거(Tages Anzeiger)의 토마스 크넬볼프 기자다.

(왼쪽) 마스크와 백신에 반대하는 내용의 선전물을 몸에 두르고 취리히 중앙역에 나타난 남자. 코로나19 사태가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런 사람들을 시내에서 종종 본다. (사진=김진경)/(오른쪽) 스위스 일간지 ‘타게스 안차이거’의 탐사보도팀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변화를 심층 취재해 발간한 책 <봉쇄(LOCKDOWN)>의 표지. 실내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남성이 한 손에 활을 들고 있다. 저자 중 한 명인 토마스 크넬볼프 기자에 따르면 이 활은 스위스 전설의 영웅 빌헬름 텔의 것이다. 빌헬름 텔은 부패하고 억압적인 정부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다.


저항의 상징’인 빌헬름 텔의 아이러니

그는 탐사보도팀에서 동료 13명과 함께 코로나 사태를 취재한 내용을 책으로 묶어 냈다. <봉쇄(Lockdown)>라는 제목의 이 책은 코로나19 초기 스위스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주무 장관, 병원 근로자 등을 상대로 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다. 수도 베른의 연방 정부가 소집한 수차례 긴급 회의에서 어떤 결정이 오갔는지도 담겨 있다. 저자인 크넬볼프는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와 나눈 대화 일부를 아래에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는 추가 설명)

▲코로나19 사태 이후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가 뭐였나.

-세상에 대한 인식이다. 가깝게는 이웃을 바라보는 시각, 멀게는 아시아에 있는 다른 나라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사는 건물에는 여섯 가구가 입주해 있다. 그 중 옆집 남자와 나는 꽤 친했다. 재미있고 예의 바른 사람이다. 비슷한 또래의 애들을 키우며 가까워졌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마스크가 의무화되자 그는 ‘누구도 자신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요할 수 없다’며 쓰지 않겠다고 했다. 마스크에 반대하는 이웃 남자를 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싶었다. 전례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며 가까운 사람들의 낯선 모습을 보게 됐다. 다른 나라들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코로나19 위기는 전 세계에 고루 영향을 미쳤지만 그에 대응하는 모습은 다 달랐으니까. 코로나 대처에 있어 한국이나 타이완이 1등 아닌가.

▲백신은 그렇다치고, 과학적 근거가 있는데도 마스크 쓰는 간단한 일조차 거부하는 이들의 심리는 뭘까.

-빌헬름 텔의 문화다. 전통적으로 스위스에서 좋은 시민이란 정부에 대항하는 시민이다. 저항이 곧 선이고, 비판이 최고의 가치다. 당국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면 훌륭한 시민이 아니다.

(*빌헬름 텔이 누군가. 스위스 전설의 영웅, 중세 말의 명사수다. 당시 스위스 일부 지역은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았고, 총독 게슬러는 광장에 장대를 꽂고 자기 모자를 걸어놓은 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모자에 대고 절을 하라고 했다. 빌헬름 텔은 이를 거부하다 게슬러의 미움을 받는다. 게슬러는 빌헬름 텔에게 명사수라는 걸 증명해 보이라며 그의 아들 머리에 사과를 올려 놓고 맞추라고 명령한다. 빌헬름 텔은 사과를 맞히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 게슬러를 죽이려고 따로 숨겨뒀던 화살이 발각돼 결국 체포된다. 감옥으로 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탈출한 빌헬름 텔은 끝내 게슬러를 활로 쏘아 죽인다. 14세기 빌헬름 텔의 저항 정신이 지금까지 스위스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크넬볼프 기자의 말이다.)

▲코로나는 다르지 않나. 1년이 넘게 주변에서 환자와 사망자를 보고, 업무가 마비되는 병원을 보면서도 저항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건 비합리적인 태도가 아닌가.

-물론 코로나는 다르다. 이 위기를 이기려면 저항이 아니라 연대가 필요한데 우리는 하던 대로 한 거다. 코로나를 인류 공동의 위기로 인식하지 않고 정치적 문제로 접근한 건 지금도 뼈아프다. 스위스의 26개 칸톤(州)이 저마다 다른 방역 지침을 내세운 건 합리적 해결책이 아니었다. 이 작은 나라에서 칸톤마다 마스크 착용 의무나 모임 금지 같은 규정이 다 달랐다. 스위스는 크게 독일어권, 프랑스어권, 이태리어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언어권 별로 코로나 확진자나 사망자 추세가 각기 달랐다. 정치나 문화에 따라 다른 방역 지침을 적용해서 그렇다. 바이러스는 똑같지만 인간이 개입하는 정치나 문화는 같지 않다. 우리 모두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스위스엔 지금도 코로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규정을 어기고 대규모 파티를 열거나 ‘백신 음모론’ 전단지를 뿌리기도 한다. 외국인인 내게는 이들이 별다른 공개적 비난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내 의견과 다르다고 공개적 망신을 주는 일은 흔하지 않다. 나도 안티 코로나 시위는 전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목소리가 크다고 실제 영향력도 큰 건 아니다.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 나는 타인을 손가락질하지 않으면서 잠자코 자기 할 일을 하는 합리적 다수의 힘을 믿는다.

현명한 유권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옆에 놓인 휴대전화에서 다시 경보음이 울린다. 취리히 호수가 넘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다. 기상이변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올여름 날씨는 특히 이상했다. 6월 초까지 겨울 옷을 입었고 선풍기를 튼 날은 이틀뿐이다. 스위스에도 엄청난 비가 내렸지만 이웃 나라 독일에 댈 바는 아니다. 독일에선 홍수로 인해 현재 확인된 사망자만 160명이고 실종자는 1000명을 넘었다. 선거를 앞둔 독일에선 재난 경보와 대피 조처를 제때 취하지 않았다며 현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염병이나 기후위기를 정파적으로 이용해 피해가 더 커진다는 비난은 새겨들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를 극복하려면 결국 정치가 필요하다. 새로운 정치세력은 팬데믹과 기후 위기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유럽에서나 한국에서나, 침묵하는 다수의 유권자가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김진경 필자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미국에서 만난 스페인 출신의 남편과 2011년부터 스위스 취리히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한국 및 스위스 매체에 문화 다양성(cultural diversity)에 대한 글을 쓴다. 여전히 정체성을 고민 중이고, 심리적 이방인의 새로운 시각을 글에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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