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경선 개표식에서 컷오프를 통과한 김두관(왼쪽부터), 박용진, 이낙연, 정세균, 이재명, 추미애 후보가 각자의 각오를 다짐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가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르고 있다. 상대방의 과거 행적을 물고 늘어지며 '진흙탕 싸움'에 몰두한다는 혹평까지 나온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이른바 '백제 발언'과 그에 앞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찬반과 관련한 '적통 논쟁', SNS 비방전 의혹 등 갈수록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피렌체의 식탁>은 민주당 경선 후보 여섯 명의 출마선언문을 분석했다. 각 캠프가 경선의 초심으로 돌아가 미래지향적 정책비전과 시대정신을 되돌아보자는 취지에서다. 이 글을 쓴 성한용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는 6명 후보의 공통 의제(어젠다)를 '불공정·불평등 해소'라고 압축했다. 하지만 두 가지는 양립하기 힘든 가치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과연 그 해법은 뭘까? [편집자]

-김두관: 자치분권 국가 만들겠다-박용진: 행복국가 위한 세대교체-이낙연: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이재명: 新한국, 이재명은 합니다!-정세균: 불평등 해소, 경제 대통령-추미애: 사람을 높이는 선진강국#공통 어젠다는 불공정·불평등 해소   양립 힘든 가치, 깊게 성찰해봐야

정치인은 권력욕이 강하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한다. 대통령중심제에서는 대통령을, 의원내각제에서는 총리를 꿈꾼다. 그러나 모든 정치인에게 최고의 자리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종인 전 의원이 몇 차례 언급하면서 유명해진 ‘별의 순간’이라는 말이 있다. 독일어로 슈테른 슈툰데(Stẹrn·stunde)라고 한다. ‘미래를 결정하는 운명의 순간’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에게 아마도 ‘별의 순간’은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순간일 것이다.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말한 ‘신의 발자국 소리’도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인생에 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신의 발자국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가 지나갈 적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외투 자락을 잡아채는 것이 정치인의 임무다.”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일은 2022년 3월 9일이다. 도전 의사를 밝힌 정치인이 벌써 수십 명이다. 이들은 모두 ‘신의 발자국 소리’를 들은 것일까?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대선주자는 모두 9명이었다. 예비경선 과정에서 이광재 의원이 접었고, 최문순 강원지사와 양승조 충남지사는 탈락했다. 가나다 순으로 김두관 의원, 박용진 의원, 이낙연 전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 정세균 전 국무총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까지 여섯 명이 남았다.

이들은 왜 대통령이 되려는 것일까?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대선주자는 영혼을 탈탈 털고 마지막 기운까지 모아서 출마 선언문을 쓴다. 자신의 삶 전체를 압축해서 진솔하게 담아야 한다.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시대정신이 일치하면 대권을 잡는 것이고,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주자 6명의 출마 선언문을 모두 다 읽거나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치부 기자들도 자신이 담당하는 후보의 출마 선언문만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6명의 출마 선언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6인 6색의 출마 선언문을 통해 이번 대선의 의제(어젠다)를 짚어 볼 수 있다.

김두관 "다극분산형 자치분권국가 실현하겠다"

김두관 의원(62)은 7월 1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출마 선언문 제목은 “특권과 차별이 없는 나라, 힘없는 사람들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다극분산형 자치분권국가, 삶의 질 10위 국가를 만들겠습니다”로 좀 긴 편이다. 긴 제목을 하나의 단어로 줄이면 ‘자치분권 국가’가 될 것이다.

<출마 선언문 주요 내용>

“우리 안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습니다. 성문 안에는 모든 것이 비대한 수도권이라는 나라가 있고, 성문 밖에는 소멸되고 있는 비수도권의 나라가 있습니다.”“수도권 일극체제를 해체해야 합니다. 엘리트 중심의 독점적인 중앙정치를 끝내야 합니다. 선진국이 분권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분권이 잘 된 나라가 선진국이 됐습니다.”“다섯 개의 초광역 지방정부와 제주 환경특별자치도, 강원 평화특별자치도로, 전국을 5극 2특별도 체제로 개편하고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실현하겠습니다. 중앙과 지방이 권력을 공유하는 선진국형 연방제 지방분권이 필요합니다.”
▶김두관 출마 선언문 전문▶김두관 출마 선언식 영상

김두관은 지방분권을 상징하는 정치인이다. 그는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 이장, 남해군수로 일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그를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왜 그랬을까? 2002년 대통령 선거는 이회창 후보의 중앙집권세력과 노무현 후보의 지방분권세력이 겨룬 한판 승부였다. 지방분권세력이 승리했다. 시골 이장 출신이 지방자치 업무를 총괄하는 장관 자리에 올랐다. 승부는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을 근거로 '행정수도 이전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중앙집권세력의 반격이었다. 김두관은 2010년 경남지사에 당선됐다. 2012년 지사 직을 던지고 당내 경선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두고두고 비판을 받았다.

어쨌든 중앙집권세력과 지방분권세력의 대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김두관 의원의 이번 대선 출마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

박용진 "행복국가 만드는 젊은 대통령 되겠다"

박용진 의원(50)은 6명 가운데 가장 먼저 5월 9일 국회 잔디광장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 선언문의 제목은 “‘행복국가’를 만드는 용기 있는 젊은 대통령이 되겠습니다”였다. 선언문의 열쇳말은 세대교체다.

<출마 선언문 주요 내용>

“정치에서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와 함께 밀레니얼세대를 연결하는 세대통합을 위한 사회개혁이 가능해집니다.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는 개발도상국 시대에 태어난 기성세대와 같을 수 없습니다.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세대 간 통합과 타협이 있어야 합니다. 주거 문제, 자산 성장, 연금 개혁, 노동 개혁, 교육 개혁 등 청년과 미래 세대에게 불리한 모든 분야에서 세대 간 양보와 합의가 이뤄지도록 앞장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한유총이라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유치원 3법을 통과시켰고, 재벌 총수의 불법과 반칙에 맞서 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싸웠으며, 거대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국민 안전을 위해 자동차 제작 결함 문제를 방관하지 않고 5년간의 끈질긴 문제 제기로 리콜과 무상수리 조치를 얻어냈습니다.”
▶박용진 출마 선언문 전문▶박용진 출마 선언식 영상

박용진은 50세다. 사실은 젊지 않은 나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에서는 젊은 편이다. 2016년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됐을 때 45세였다. 그의 정치 경력은 1998년 국민승리21 대변인실 언론부장으로 시작된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민주노동당 대변인을 오랫동안 지냈다. 그 뒤 혁신과 통합, 시민통합당을 거쳐 민주당으로 넘어와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2016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비주류로 분류된다. 출마 선언 뒤 초기에는 지지도가 낮았지만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서 이준석 바람이 불면서 젊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지지도가 올라갔다.

이낙연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 만들겠다"

이낙연 전 대표(69)는 6명 가운데 가장 늦은 7월 5일 영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 선언문의 제목은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다. 그는 모두 다섯 가지를 의제를 제안했다. 첫째, 신복지, 둘째, 중산층 경제, 셋째, 헌법 개정, 넷째, 연성강국 신외교, 다섯째, 문화강국의 꿈이다.

<출마 선언문 주요 내용>

“사회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없는 사람은 더 어려워지고,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로워졌습니다. 청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불공정에 항의합니다. 불평등을 완화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상처 받은 공정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주거, 노동, 교육, 의료, 돌봄, 문화, 환경에서도 최저한의 생활을 국가가 보장할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2030년까지는 모든 국민이 지금의 중산층 수준으로 살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발전시켜가겠습니다.”“10년 전에는 우리 국민의 65%가 중산층이었습니다. 지금은 57%로 줄었습니다. 그것을 다시 70%로 늘리겠습니다. 중산층이 두터워야 불평등이 완화됩니다.”
▶이낙연 출마 선언문 전문▶이낙연 출마 선언식 영상

이낙연의 이른바 ‘스펙’은 화려하다. 5선 국회의원, 전남지사, 국무총리, 당 대표를 했다. 스펙을 쌓아준 사람들은 세 명의 전·현직 대통령이다. 그는 김대중(DJ) 대통령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DJ는 동아일보 기자였던 그에게 정치를 권했고, 당선이 보장된 영광·함평 지역구 공천을 줬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대변인을 했다. 당내에서조차 노무현 후보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는 유명한 논평으로 맞섰다. 그 뒤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는 바람에 노무현 정부와 각을 세운 시절도 있었다.이낙연은 내리 4선 국회의원을 한 뒤에 전남지사가 됐다. 고향을 위해 도백으로 일하는 것을 정치 인생의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직후 전남지사였던 그를 일약 국무총리로 발탁했다. 그리고 그는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이재명 "새로운 대한민국, 이재명은 합니다"

이재명(57) 경기지사는 7월 1일 영상으로 출마 선언을 했다. 출마선언문의 제목은 ‘새로운 대한민국! 이재명은 합니다!’였다. <이재명은 합니다>는 이 지사가 2017년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기 위해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선언문에는 ‘공정’과 ‘성장’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출마 선언문 주요 내용>

“역사적으로 공정한 나라는 흥했고 불공정한 나라는 망했습니다. 공정한 사회에는 꿈과 열정이 넘치지만, 불공정한 사회는 좌절과 회피를 잉태합니다. 규칙을 지켜도 손해가 없고 억울한 사람도 억울한 지역도 없는 나라, 기회는 공평하고, 공정한 경쟁의 결과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여야 미래가 있습니다. 공정성 확보, 불평등과 양극화 완화, 복지 확충에 더해서, 경제적 기본권이 보장되어 모두가 최소한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사회여야 지속적 성장과 국민의 더 나은 삶이 가능합니다.”
“규제 합리화로 기업의 창의와 혁신이 가능한 자유로운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미래형 인적 자원 육성 시스템으로 기초 및 첨단 과학기술을 육성하고 문화콘텐츠 강화를 위해 문화예술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대대적 인프라 확충과 강력한 산업경제 재편으로 투자 기회 확대와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새로운 일자리와 지속적 공정성장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이재명 출마 선언문 전문▶이재명 출마 선언식 영상

이재명이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경쟁에서 1위로 치고 올라온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낙연·정세균 등 경쟁자들에 비해 진보적인 가치관과 정책 노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 출신 주자로서, 본선 경쟁력에서 앞선다고 보기 때문이다. 친(親) 문재인 성향의 권리당원 중에는 2017년 경선 당시의 ‘구원(舊怨)’ 때문에 이재명 지사를 절대로 지지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정권이 넘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명박 정부 시절 겪지 않았나. 이재명 아니면 누가 본선에서 이길 수 있겠나. 그래도 이재명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당내 여론도 만만치 않다.

민주화 운동 출신 정치인들의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대표를 지낸 우원식 의원이 최근 “불평등·불균형·양극화 시대를 넘기 위해 이재명 후보와 함께 하겠다”고 지지를 선언했다. 이재명 지사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정세균 "강한 대한민국, 경제 대통령 되겠다"

정세균(71) 전 총리는 6월 17일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대선 출마 선언식을 했다. 출마 선언문의 부제는 ‘강한 대한민국, 경제 대통령’이다. 중간중간 들어간 부제만 살펴도 대략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불평등과 대결하는 경제 대통령”, “밥 퍼주는 대통령이 아닌 밥 짓는 대통령”, “소득 4만 불 시대를 열겠습니다” 등이다.

<출마 선언문 주요 내용>

“대한민국의 구조적인 불평등의 축을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일상의 회복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국민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공평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국민이 불평등을 깨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 일자리 불평등, 계층 간의 불평등, 모든 불평등의 축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국민은 불평등한 세상의 노예가 되느냐 다 함께 잘 사는 나라의 주인이 되느냐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미래 경제를 지휘하고 먹거리를 만드는, 밥 짓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다 지어진 밥을 퍼주는 일도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밥을 지어내는 역동성입니다. 불평등의 원인은 시작도 끝도 경제입니다. 격차 없는 임금과 일자리도 주거안정과 국민의 편안한 삶도 강한 경제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세균 출마 선언문 전문▶정세균 출마 선언식 영상

정세균은 대학 졸업 후 쌍용에 입사해 회사원 생활을 했다. 상무까지 했으니 월급쟁이로는 꽤 높이 올라간 셈이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서 다음 해 국회의원이 됐는데, 의정 활동을 주로 경제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그를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여야 대선주자 중에서 유일하게 ‘경제 대통령’을 자신 있게 내세우는 데는 이러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정세균 전 총리는 당대표, 국회의장, 국무총리를 했다. 대통령 빼고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거의 다 해 본 것이다. 특이한 경력이다. 그런데도 지지도가 낮아서 고전 중이다. 왜 그럴까? 너무 점잖은 성품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추미애 "사람이 높은 세상, 사람을 높이는 나라, 선진강국으로 나아가자"

추미애(63) 전 법무부 장관은 이번 대선에 비교적 늦게 뛰어들었다. 6월 23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갈대광장 잇탈리스튜디오에서 출마 선언을 했다. 선언문의 제목은 ‘사람이 높은 세상, 사람을 높이는 나라, 국민의 품격을 지켜주는 선진강국으로 나아갑시다’였다.

<출마 선언문 주요 내용>

“이제 촛불개혁 완수를 위해 민주정부 4기, 정권재창출의 출발점에 섰습니다. 이제 촛불의 시대는 지나갔다며 촛불 이야기 그만하자는 분들도 계십니다. 입에 담기를 꺼려하시는 정치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 추미애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광장에서의 약속을 지키고 촛불개혁을 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간직해 왔습니다. 촛불시민이 계셨기에 검찰개혁의 험난한 여정을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촛불, 다시 시작’을 추미애와 함께 외쳐주시기 바랍니다.”“기득권 세력의 선택적 정의와 가짜 공정, 초법적 행위에 맞서 정의와 공정, 법치의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나라의 기강을 흔들고 공적 권한을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자들은 정의와 공정, 법치의 이름으로 단죄하겠습니다.”
▶추미애 출마 선언문 전문▶추미애 출마 선언식 영상

추미애 전 장관과 야권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일종의 적대적 공존 관계를 맺고 있다. ‘추미애-윤석열’ 대립이 없었으면 윤석열 전 총장은 야권의 대선주자로 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이 대선주자로 나서니까 추미애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출마 선언문에 나오는 ‘기득권 세력의 선택적 정의와 가짜 공정, 초법적 행위’는 문재인 정부에 맞선 검찰 조직과 윤석열 전 총장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 경선 초반에 추미애의 기세는 무서웠다. 이낙연 전 대표를 제치고 2위까지 치고 올라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런데 윤석열 전 총장의 장모가 구속되고 윤석열 지지도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추미애 전 장관의 상승세도 다소 힘을 잃는 분위기다. 정치,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6명의 출마 선언문에는 공통적으로 “불공정과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왜 그럴까?

차기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후임자다. 전임자의 실패와 한계에서 출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 대통령의 2017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습니다. 민생도 어렵습니다. 선거과정에서 약속했듯이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동시에 재벌개혁에도 앞장서겠습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정경유착이라는 낱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습니다. 국민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는 지금 다시 읽어봐도 무척 강렬하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 중에 일자리 마련, 갈등 해소, 비정규직 해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다짐은 보수세력의 조롱을 받고 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특히 가장 뼈아픈 실패는 ‘공정’과 ‘평등’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에 공정과 평등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제20대 대선주자들의 의제가 ‘불공정 해소’와 ‘불평등 해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불공정 해소’와 ‘불평등 해소’는 양립하기 어려운 의제다. 공정을 추구하면 불평등이 심화한다. 대학 입시에서 정시 입학 비율을 늘리면 서울 강남 지역 학생들이 일류 대학에 더 많이 들어간다.

평등을 추구하면 공정이 무너진다. 문재인 정부에서 불거진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논란의 배경이다. 공정과 평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까? 산토끼와 집토끼를 동시에 잡는 방법만큼이나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6명의 출마 선언문에서도 그런 비방(秘方)은 찾아볼 수 없다. 앞으로도 계속 고민과 성찰과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2027년 대선에서 도돌이표를 찍지 않으려면.


성한용 필자/ 한겨레신문 정치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