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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의 into 아시아] 싱가포르의 ‘탄력 방역’, 못 사는 나라엔 ‘그림의 떡’

By | 2021년 7월 25일 | 기획 · 연재, 정호재의 'into 아시아'

지난 2월 미얀마 시민들이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군부 쿠데타로 인해 그간의 방역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진=위키피디아)


통상적으로 지역을 구분할 땐 지리적 공통점을 기준으로 삼는다. 지리(地理)는 즉 자연환경이라는 뜻으로 확장할 수 있는데, 인간의 삶은 이러한 외부조건에 압도적인 영향을 받는다. 쌀이 주식(主食)인 지역과 밀이 주식인 지역만 비교해도 정치·경제 제도와 문화·예술의 속성이 다르다. 그만큼 환경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환경결정론 관점에서 지구의 북쪽, 즉 “사계절을 지닌 국가들이 비교적 부유하다”는 주장은 꽤나 유명한 문명론에 속한다. 반면에 적도 인근 남반부의 경우 1년 3모작이 가능한 따뜻한 날씨 덕에 난방용 땔감이 필요하지 않다. 심지어 땅은 넓고 경쟁자까지 적으니 사람이 살기엔 좋지만, 동시에 문명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발전 수준이 낮은 개도국들은 대부분 지구 남쪽에 몰려 있다. 유엔과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남국(南國) 문제’라고 부르며 지구촌 차원의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아시아에서는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 가운데 상당수가 여기에 포함된다.

코로나19에다 델타변이로 이중고

지구 남쪽의 코로나19 위기는 한국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특히 동남아 국가들은 올해 7월을 전례 없는 최악의 시기라고 기억할 듯싶다. 과거 끔찍했던 전쟁의 피해와 비견될 정도로 속수무책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환자들은 수백만 원을 들여도 산소통을 구하기 힘들다. 병원 앞에서 환자가 죽어가는 의료붕괴 현상은 오래 됐고 시신을 처리할 화장터까지 부족해 죽은 사람이 줄을 서야 하는 참담한 현실에 처했다. 나라 별로 구체적인 통계치가 나와 있긴 하지만, 어느 나라 국민도 정부 발표 수치를 곧이곧대로 믿는 단계는 지나가버렸다. 나라마다 식료품 사재기가 벌어졌고, 쓸 만한 대체약품은 이미 동이 났다.

1년 전 여름, 유럽과 미국이 겪은 최악의 상황과 비슷한 게 아니냐고 짐짓 냉정하게 반응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유럽의 경우. 조만간 백신을 개발하리란 희망이 있었고, 자국 의료시스템이 나름대로 가동되고 있었다. 코로나19 확진자의 구분과 격리·치료·관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전반적인 사회시스템이 유지됐다. 선진국 일각에서는 코로나19를 “아주 몹쓸 감기” 수준으로 낮춰 보는 여유조차 보였다.

그러나 요즘 동남아시아 지역은 ‘보건의료 안전망’이 절대적으로 미비하다 보니, 지난 3월부터 델타변이 바이러스에 의해 눈덩이처럼 인명 피해가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 급하게 공수 받은 시노백 백신의 효능 논란이 벌어지고 사회 전체의 방역 능력에 허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간) 아세안 10개 국가 별 공식 확진자 및 사망자 통계 현황. (출처=아세안)

‘기약 없는 락다운’으로 경제 붕괴

지난해까지는 코로나19 방역 전선에서 비교적 선방한 나라들 중에는 아세안 회원국이 꽤 있었다. 예를 들어 베트남은 국가적인 방역에 성공해 하루 감염자 0명을 기록할 때도 적지 않았다. 대만과 태국 역시 감염자가 적은 나라 앞순위에 들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에 이른 것 같다. 동남아 전체가 다시금 ‘락다운(lockdown, 봉쇄)’ 상태에 들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들의 고충은 이만저만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급증한 이유는 인구 14억 명의 대국(大國) 인도에서 확진자가 폭증하고 변종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어 동남아 각국으로 퍼지고 있어서다. 지난 4월과 5월 초 인도에서는 하루 확진자 40만 명, 사망자 5000명을 넘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물론 이 수치도 신뢰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 후폭풍이 인도와 국경을 맞댄 지역, 특히 동남아로 불어 닥쳤다.

현재 상황이 가장 심각한 나라는 인도네시아, 미얀마다. 인도네시아는 좁은 자바 섬에 1억5000만 명 넘게 밀집해 살고 있기에 당분간 폭발적 확산세를 진정시키긴 어려워 보인다. 하루 확진자가 6만 명을 훌쩍 넘기고 하루 사망자도 2000명을 넘어섰다. 미얀마(인구 5400만 명)의 경우는 하루 확진자 5000여 명, 사망자 250~400명이라는 통계치가 국제기구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SNS를 통해 파악해온 정황은 전혀 다르다. 화장장을 가득 메운 시신 가방과 산소통을 채우기 위해 끝 없이 늘어선 행렬은 통계치의 허구성을 웅변하고 있다.

개인적 인맥을 통해 현지 상황을 체크해보면 하루 2000~3000명씩 사망한다는 추측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최근 2주간 미얀마에서 사망한 한국 교민만 3명인데, 중환자도 10명을 훌쩍 넘는다. 미얀마 양곤에 남겨진 한국 교민이 고작 1000명 남짓이고 위생상태 역시 상대적으로 나은 편임을 감안하면, 앙곤의 사상자 숫자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 같다. 미얀마에선 유사 치료효과라도 낼 수 있는 약품을 사기 위해 시민들이 약국으로 몰려가는 패닉바잉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얀마보다 잘 살고 힘깨나 쓴다는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의 상황 역시 약간의 편차가 있을 뿐 심각하다는 본질은 똑같다. 확진자-사망자 통계와 방역 방식 역시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도 어렵고, 특권 없이는 백신 접종도 불가능하고. 중증 환자가 아닌 경우엔 병원 진료·치료도 받기 힘들다. 무엇보다 1년 반 넘게 지속된 락다운에 정부와 국민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각국 정부는 락다운 말고는 딱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어느새 1년 반을 넘어선 코로나19 사태는 못 사는 사람들에겐 지나친 형벌이 되고 말았다. 기업활동이 멈추고 자영업이 금지되고 그 고통은 취약계층에게 전가된다. 그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자 그 틈새를 비집고 확진자 수는 다시 늘어난다. 체념한 시민들은 정부에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싱가포르 방역 유지는 경제력 덕택

아세안 10개국 가운데 싱가포르는 거의 유일한 ‘방역 및 백신’ 선진국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 필자가 거주 중인 이곳의 상황은 부럽긴 하지만 복잡미묘한 구석이 적잖다.

7월 초만 해도 싱가포르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외부 유입환자가 아닌 국내 발생환자가 하루 한두 명에 그쳤고, 의료시스템이 탄탄해 사망자는 한동안 ‘제로(0)’를 자랑했다. 백신 접종율도 세계 최고수준이라 8월 9일 독립기념일 전후로는 ‘독감’ 수준으로 코로나19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즉, 앞으로 확진자나 사망자 숫자를 발표하지 않고 “독감처럼 견디며 살아간다”라는 전략을 수립했다. 코로나19와의 공존 전략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7월 중순, 인도발 델타변이가 인근 국가로 확산되고, 베트남발 유입환자가 싱가포르 유흥업소(K-TV)를 통해 바이러스를 퍼뜨려 하루 확진자가 200명선으로 늘어났다. 그러면서 싱가포르 정부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지난 22일부터 4주간 ‘식당에서 모든 취식을 금지하고 외부활동도 전면 금지한다’는 초강수를 던진 것이다. 화려하게 준비했던 독립기념일 행사도 ‘무관중’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사망자 없이 고작 200여 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고 백신 접종률이 60%를 넘는 국가에서 거의 모든 외부활동을 막는다는 게 의학적으로 타당하냐는 것이다. 싱가포르 인구가 585만 명이기에 한국 기준으로 따지면 하루 2000명쯤 발생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의 ‘초강경’ 모드는 요즘 아세안 각국이 마주한 ‘델타변이 공포’를 그대로 방증하는 것이다. 나아가 아세안 거의 모든 나라가 사람이동까지 최대한 억제하는 모습에서, 코로나19 극복의 험난한 길을 예감케 된다. 앞으로 상당기간 백신접종과 함께 ‘탄력적 통제’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그나마 싱가포르가 코로나19 대응에서 낙관적인 이유는, 집에서 매끼 음식을 시켜 먹을 돈을 가진 사람이 많고, 식료품을 주문하면 제때 배달이 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경제적 여유가 있고 정치가 안정된 덕분이다. 이에 반해 동남아의 상황이 최악으로 흐른 이유를 압축해 설명하면 “정치와 경제와 신뢰의 동반 위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싶다. 코로나19 사태는 ‘국가의 임무’와 ‘개인의 참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 22일 싱가포르의 한 쇼핑몰 패스트푸드점에서 배달원들이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정치의 오랜 위기가 불러온 참극들

먼저 아세안 국가 중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 미얀마부터 설명을 해보자.
지난해 아웅산 수찌 여사가 이끄는 NLD 정부는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비교적 코로나19 위기를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태 초기인 지난해 3월부터 적절한 락다운과 부분해제를 적절히 조율해 가며 그해 11월에 열린 의회 총선거까지 안전하게 치러냈다. 국가와 시민들이 합심해 적어도 의료붕괴는 막으면서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러나 지난 2월 군부 쿠데타 후 그간의 방역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난 5월 말까지 양곤 시내에서는 100만 명이 모이는 군사정권 퇴진 요구 집회가 빈발했고, 군부는 무려 1000여 명의 사망자를 낳는 폭력 진압을 불사했다. 정부-시민의 연대감도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감옥과 구치소에 무차별적으로 갇히고 풀려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퍼져 나갔다. 심지어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까지 겹쳐 미얀마에는 외부의 인도적 지원마저 끊겼다. 군사정권은 이를 수수방관했다.

정치·경제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태국 역시 오랜 정치불신과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2014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정권은 2년 전 미심쩍은 총선 승리를 통해 정권을 연장한 바 있다. 하지만 오랜 군부독재 및 왕정체제에 지친 시민들이 지난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불복종 운동에 나선 바 있다. 군부의 코로나19 방역은 무시무시하게 강력하지만, 서민들의 고통도 그에 비례해 가중되고 있다.

양극화 문제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아세안 국가들이 똑같이 겪는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 국가 의료시스템은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에게 적절하게 닿지 못하고 있다. 날마다 생계 걱정을 해야 하는 서민들은, 국가의 방역정책과는 반대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집에만 머물라는 얘기는 한마디로 “굶어 죽어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 바람에 코로나도 잡지 못하고 경제만 죽이는 최악의 현실이 반복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벌어지는 종교인들의 반정부 활동과 대규모 집회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극우 종교세력’은 또 다른 고민거리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조코 위도도 정부와 대립하는 극우무슬림 세력이 광장에 집결하고 비밀리에 종교모임을 갖고 있다. ‘국가’보다는 ‘종교’에 더 의지하겠다는 이들이 많아 방역 효과를 반감시킨다.

지난 11일 미얀마의 한 산소통 공장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미얀마는 산소통, 병상, 의사가 부족해 삼중고를 겪고 있다. (사진=미얀마 나우)

南國의 서민들을 도울 방법은 없을까

아세안을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이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모습은 똑같다. 국민소득이 낮다고 한국인들이 무시하기 쉬운 개도국 사람이나, 아시아 최고 부국인 싱가포르인이나 현 사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 돕기 위해 헌신한다. 필자가 무척 강조하고 싶은 지점이다.

전 세계 국경이 거의 닫혔고 언론매체의 현장 취재·보도마저 제한됐기 때문에 지금은 서로의 상황을 비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바이러스 확산에 무지해서 사망자가 폭증하고, 이기심에 휩싸여 방역체계를 깨뜨린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장에서 바라본 아세안 시민들의 방역 노력은 한국 이상으로 엄격하고 처절하고 또 감동적이다.

지난해 필자는 미얀마 양곤에서 거주했는데, 당시 시민들이 공동체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너무나도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을 상시적으로 목격했다. 오히려 현지에 사는 외국인들이 방역 조치를 귀찮아하거나 원리원칙을 무시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코로나19 때문에 거의 모든 인터뷰 약속이 무산되고, 일상 생활이 불편했지만, 적어도 감염에 대한 걱정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뭘 이렇게까지 깐깐하게 굴 필요가 있나”라고 불만을 털어놓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현지인 친구의 말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여기는 전반적 의료시스템이 취약하잖아. 우리 미얀마 사람들이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어. 한국에선 병에 걸려도 죽지 않잖아. 그런데 여기에선 걸리면 죽을 가능성이 높아서 최선을 다해 위험을 피하고 방역하는 거야.”

지구상의 ‘남국 문제’는 오랜 식민지 압제와 군부독재에서 비롯된 경제 양극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남국의 서민들로선 도대체 언제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당도할 수 있을지 그 시기조차 가늠할 수 없다. 서방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처리한 이후에나 못 사는 개도국들에게 신경을 쓸 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세안 각국의 서민들이 겪는 고통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지 모르겠다.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진정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게 바로 ‘추월의 시대’를 맞이했다는 한국인들이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정호재 필자

아시아 연구자.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짧지 않게 기자생활을 했다. 아시아 각국을 두루 답사하며 태국의 탁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을 만났다. 번역서로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비즈니스>, <수상이 된 외과의사-마하티르 자서전>이 있으며 최근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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