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사진=연합뉴스)

제20대 대통령선거(2021년 3월 9일)를 앞두고 보수야권 경선 판에 회전목마(merry-go-round)가 등장했다. 회전목마는 한 바퀴 돌 때마다 크고 작은 다양한 말들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위아래 출렁거리는 높이는 매번 달라진다. 방금 껑충 튀어 오른 말이 다음 바퀴에선 털썩 내려앉기 일쑤다. 그 다음 바퀴에는 또 다른 말이 솟아오른다. 최대 18명까지 거론되는 야권 후보군 가운데 오늘 떠오른 인물이 내일도 고공행진을 계속할지 장담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마지막 순간에 정점을 찍을 이는 누구일까?

최재형 입당과 대권 행보 본격화

7월 15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6월 28일 감사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중간에 정치참여 선언을 하고 약 2주 만에 벌어진 일이다. 국민의힘 경선 버스 탑승 속도만큼이나 지지율 상승도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이 순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지율이 쑥 빠지고 본선 경쟁력도 의심을 받기 시작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22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재명 경기지사는 전주보다 1%p 오른 27%, 윤석열은 1%p 하락한 19%를 각각 기록했다. 윤석열의 20%선이 무너진 셈이 됐다. 가상 양자대결에서도 이재명은 46%를 얻어 33%인 윤석열을 여유있게 제쳤다. 2주 전 조사(이재명 43% vs. 윤석열 33%)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윤석열(34%)은 이낙연(42%)에게도 뒤처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윤석열 대체재=최재형’이라는 예측이 쏟아진다. 윤석열은 자질 검증, 민주당 경선 흥행이라는 이중고에다 최재형이라는 적수까지 더해 삼중고를 겪는  형국이다. 윤석열 자질에 대한 실망감은 보수층의 충성도를 흔들고, 민주당 경선은 호남 및 중도 성향 지지층 이탈을 부추긴다. 야권 지지층의 정권교체 전망에 빨간불이 켜진다. 임기 막바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재확산과 야권의 지리멸렬로 국정 수행 지지율이 45%를 넘어섰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대법원 유죄판결도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최재형 카드는 여러 측면에서 보수 지지층의 마음을 파고든다.

TK와 60대 이상의 다음 선택은?

윤석열의 지지율 하락과 최재형의 국힘 입당으로 야권 경쟁구도는 회전목마의 다음 바퀴를 도는 모양새다. '120시간 근무' 발언 등 윤석열은 위기 국면임에도 '나 홀로' 돌파를 선택했다. 최재형의 입당은 윤석열을 국힘으로부터 떼어내는 힘으로 작용한다. 현 상황에서 윤석열이 당내 경선에 참여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렇게 되면 국힘 경선은 당 바깥에 있는 윤석열의 지지층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는 게임이 되고 만다.

윤석열 지지의 핵심은 나이로는 60대 이상, 지역으로는 TK(대구·경북)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보수 야권의 중심 세력과 일치한다. 여기에 PK와 20대 남성 등이 우군으로 포진한다. 이들이 찾고 있는 정권교체의 기수는 강렬한 반문(反文) 상징성과 우월한 본선 경쟁력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윤석열이 본선 경쟁력에서 민주당의 양이(兩李)에게 밀리게 되자 야권 지지층의 시선도 흔들리고 있다. 최재형의 상승세는 국힘 지지층, 정확히는 60대 이상과 TK가 견인하는 모양새다. 관건은 윤석열의 1위 자리까지 넘볼 수 있느냐다.

TK 장악, 정치신인 최재형의 1차 관문

최재형이 윤석열을 넘어서는 1차 관문은 TK를 중심으로 한 영남 보수층의 낙점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같은 당내 인사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윤석열이 흔들리고 국힘 경선에도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이 비(非)정치인 출신의 최재형에게 눈길을 주는 이유다. 이에 화답하듯 최재형은 첫 행보로 부산행을 택했다. 국민의힘 PK 지역 의원들이 먼저 그에게로 향한다. TK 민심도 서서히 옮겨가는 흐름이다.

윤석열이 곤경에 빠지자 홍준표도 TK 민심을 얻을 물실호기(勿失好機)를 잡았다. TK 격전지에서 윤석열, 최재형, 홍준표가 한 치의 양보 없이 부딪친다. 최재형은 윤석열, 홍준표와 TK 민심을 삼분(三分)해선 대세를 장악할 수 없다. 거꾸로 윤석열은 최재형의 TK 독주를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광주 민심 행보에 나섰던 윤석열의 발걸음은 급히 대구로 향했다. 국힘 경선이 본격화되면, TK 민심은 특정주자 쏠림현상을 보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최종 승자는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 시즌2' 같은 방식으로 탄생할 수 있다. 승부처가 될 TK는 더욱 뜨거운 열대야를 맞을 것 같다.

보수 본거지 쟁탈 위해 계파 싸움 소환

TK와 60대 이상 고연령층을 둘러싼 국힘 내부 경쟁은 해묵은 계파 싸움을 예고한다. 이준석 당대표를 앞세운 이른바 '이대남'도 '대깨준‘으로 흑화(黑化)하며 이 대열에 합류할 기세다. 유력 주자의 캠프는 양적으로 확장되기 마련이고, 현역 의원들의 줄 서기는 필연이다. 진영이 갖춰지면 전투는 피할 수 없고, 당내 경선은 치열해진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질수록 죽기살기로 싸우게 된다. 지난 2007년 이명박-박근혜의 당내 경선이 그토록 치열했던 이유다.

윤석열과 최재형의 캠프 주변에는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옛사람들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정권교체의 대의 앞에 친이·친박 같은 계파가 어디 있냐고 말들 하지만, 박근혜 탄핵의 '원혼'이 여전히 떠돌고 있는 이상 낙관은 금물이다.

최재형의 등장과 영남권을 겨냥한 윤-최-홍 3자 경쟁은 국힘 경선판에 계파싸움이라는 망령을 언제든 소환할 수 있다. 만에 하나 박근혜가 영어(囹圄)의 몸을 벗어나는 일까지 벌어진다면, '설마'는 현실이 된다. 치열한 경쟁은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고, 단일화의 꿈을 멀어지게 만들 것이다. 보수층의 정권교체 기대가 아무리 높다 한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이 정동영을 20%p나 앞섰을 때와는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가 40% 밑으로 좀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재형은 윤석열이나 홍준표에 비해 박근혜 탄핵, 적폐청산 몰이, 막말 시비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다. '미담 제조기'라는 별명만큼 도덕성과 인간적 품격은 높이 평가받는다. 보수야권에서 이재명을 꺾을 대항마로 그를 호출한 이유일 것이다. 원전 중단 감사를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반문의 상징성도 가졌다. 그를 지지하는 국힘 인사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대한민국도 이제 인간적으로 훌륭한 지도자를 한 번 가져봐야 된다'는 것이다.

진흙탕 싸움과 본선의 경쟁력을 입증해야

사람의 품격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지도자에겐 더욱 각별하다. 이재명에 맞서 정세균과 이광재는 ‘도덕적 품격’으로 단일화했다. 체면 무릅쓰고 여배우 스캔들까지 꺼내 들었지만 여전히 탄력을 못 받고 있다. 이낙연과 이재명은 연일 언성을 높인다. 경선 후유증을 걱정하는 이도 많다. 집권여당의 경선판이 화끈하면 보수야권도 그 영향을 받게 된다. 선거전이란 품격을 자랑하고 우아할 틈새를 주질 않는다. 인지도와 지지도가 약한 정치신인은 더더욱 그렇다.

국힘의 맏형론을 펼치는 홍준표는 윤·최를 진흙탕 싸움으로 끌어들일 기회만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유승민, 원희룡, 윤희숙은 정책 경쟁으로 자신의 품격과 자질을 과시하려 할 것이다. 누구든 이들을 단숨에 압도하지 않는 이상, 선두주자의 품격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모든 선거에서 가장 큰 동력은 분노와 저항의 심리다. 야당에겐 특히 중요한 변수다. 그것이 지지층을 묶어주고 더 확장해준다. 최재형은 윤석열에게서 보수층의 기대심리를 빼앗아야 한다. 윤석열은 결단과 의지로 보수층의 정권교체 열망에 화답해 왔다. 최재형은 품격을 갖추었지만 저항의 상징성이 약하다. 그래선 자신의 지지층을 묶어낼 수 없다.

품격이 정치를 바꾸고 시대를 바꾸는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향한 결기와 의지와 집요함 없이는 품격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다. 집권여당의 공격도 만만치 않겠지만, 당내 경쟁자만 해도 13명이나 된다. 더욱이 여권 쌍두마차인 이재명, 이낙연에게 이길 수 있다는 본선 경쟁력도 보여줘야 한다. 최재형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이낙연의 기세가 오르는 만큼, 윤석열이 흔들리는 만큼, 보수 지지층의 마음은 급해진다. 이 산이 아니면 다른 산을 찾아야 한다. 그 때문에 보수 차기 주자들이 회전목마 게임을 계속해야 할지 모른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시청을 찾아가 오세훈 서울시장과 대화하기 위해 집무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재형 좌절 때 그 다음 유력 후보는?

국민의힘 경선주자는 총 14명이다. 이들 가운데 4강 진출자는 두 차례 예비경선을 통해 추석(9월 21일) 이후 9월 말에 가려진다. 이런 수순이라면 국민의힘 경선 버스는 늦어도 8월 하순께 출발해야 한다. 윤석열의 탑승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최재형의 승부처는 경선 초반부가 될 것이다. 7월 하순~8월 중순, 앞으로 한 달 안에 지지율에서 당내 1위, 야권 1위를 거머쥐고 동시에 본선 경쟁력을 과시해야 한다. 최재형의 속도전은 윤석열과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다.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외통수나 마찬가지다. 그렇지 못하면 야권 지지층은 또 다른 회전목마를 찾거나 비장의 카드까지 소환할 가능성이 크다. 바로 오세훈 차출론이다.

최재형이 TK를 넘어 중원으로의 진출에 실패하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거꾸로 중원에서 TK로 향할 수 있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의 성공방정식이다.

오세훈 시장은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기념관' 철거에 나서고 있다. 만약 성공한다면, 반문(反文) 상징성을 강화하면서 보수 지지층에게 남아있는 탄핵의 상처를 달래줄 수 있다. 코로나19를 둘러싼 ‘문재인 방역’과 ‘오세훈 방역’의 대립구도 역시 나쁘지만은 않다. 오세훈이 '대선 불출마' 입장을 밝혔지만, 그 행보는 예사롭지 않다. 정치세력 교체와 분권형 대통령제를 내세운 김동연 전 부총리도 살아있는 카드다. '개천 용' 신화와 스캔들 없는 인생역정, 경제관료 경력 등은 차별화 포인트로 손꼽힌다.

오세훈·김동연 카드는 국민의힘 대선후보 확정 이후에도 유효하다. 윤석열과 당내 차기주자들이 이재명·이낙연을 압도하지 못한다면, 보수야권의 회전목마는 더 멀리 더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4월의 별 오세훈·안철수, 6월의 별 윤석열, 8월의 별이 되려는 최재형, 가을하늘의 별을 노리는 홍준표·유승민, 그리고 새로운 혜성들까지. 보수 지지층의 필승마(必勝馬) 찾기는 계속될 것이다.


장경상 필자

국가경영연구원 사무국장. 문학박사(고전번역).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을 역임했다. 공저로 <새 정부에 바란다>가 있다. 현재는 국가경영연구원에서 리더십연구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