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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김정숙 여사의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제안한다

By | 2021년 7월 20일 | 정책

2018년 11월 김정숙 여사가 3박4일간 인도를 방문하기 위해 출국하는 모습. 김 여사의 인도 방문은 현직 대통령 부인으로서는 16년 만의 단독 외국 방문이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요즘 청와대 집무실 창밖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2019년 여름부터 격화돼온 한일관계의 연착륙을 구상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대한해협 건너 ‘가깝고도 먼 나라’와의 관계가 장기간 파행상태를 면치 못한데 대해 국가지도자로서 현상타개 방안을 궁리할 것 같다.

文 대통령, 올림픽 개막식 불참 결정

문 대통령이 끝내 도쿄올림픽 개막식(23일)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한일 외교안보라인이 화해 분위기를 살려 추진했던 두 정상 간 만남의 장(場)이 사라진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갑론을박 끝에 ‘불참’ 쪽으로 결정이 나자 “아쉽다”는 말을 여러 차례 되뇌었다. 참모진들의 보고를 받고 2~3분가량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한일 정상외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사실상 중단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2015년 11월 서울에서 양국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두 정상만 본 경우는 없고 국제회의와 한미일, 한중일 3개국 정상회담에서 잠깐 만났을 뿐이다.

예컨대 문 대통령은 2019년 12월 한중일 정상회담 때 아베 총리를 약식으로 만났다. 그간의 취재 경험으로 볼 때 20~30분 동안의 약식 회담은 인사말 뒤 통역을 거쳐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 금방 끝나게 된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는 더더욱 인연이 없다. 지난 6월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의 맞대면을 추진했으나 불발되고 말았다.

임기를 9개월 남짓 남겨둔 문재인 정부는 레임덕 국면에 돌입했다. 차기 대선 레이스가 격화될수록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외치(外治)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다. 특히 한일관계를 재정비하는 프로젝트는 내년 3월 새 대통령이 뽑히고도 한참동안 손대기 어렵다. 국내정치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새 외교안보라인이 제 역할을 해내려면 꽤 시간이 필요해서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막바지에 차기 정권의 큰 짐 하나를 덜어놓겠다는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한일관계 개선을 놓고 강온파가 대립하는 가운데 문 대통령의 의중은 분명히 “과거에 발목을 잡혀 있을 수는 없다”(3·1절 기념사)는 쪽이다. 반일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일 순 없다.

2021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선수단 본진이 지난 19일 오전 출국했다. (사진=연합뉴스)

한일관계 복원에 올림픽 활용기대 무산

역사적으로 역대 올림픽은 지구촌을 관통하는 축제와 화해의 이벤트였다. 코로나19, 기후변화 위기 속에서 올림픽은 인류 공동의 우울감을 털어내고 세계연대를 강화해줄 선물이 될 거라고 기대됐다. 일본 정부는 경제부흥, 국가부흥을 꾀할 계기로 삼겠다는 목표를 강조했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선 그런 공존공영의 올림픽정신이 십분 발휘됐다. 북한의 김여정이 참석한 뒤 한반도 평화의 물꼬가 터졌다. 당시 언론에서 큰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아베 신조 총리가 참석했고 문 대통령의 이번 도쿄 행(行) 논의에는 ‘품앗이’ 느낌도 있을 것이다.

2021년 도쿄올림픽은 1964년 도쿄올림픽에 비교해 대(大)실패작이라는 온갖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올림픽 자체를 1년 연기한 데 이어 ‘무관중 경기’에다 막대한 적자(赤字) 올림픽을 감수해야 할 처지다. 일본사회에서조차 ‘취소’ 여론이 우세하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지면 막판 취소 가능성도 남아있다. 지구촌 축제가 아니라 마치 ‘업둥이’를 대하는 듯하다.

올림픽의 외교적 성과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23일 개막식에 참석할 외국 정상으론 2024년 파리올림픽을 앞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일하다. 조 바이든도, 시진핑(習近平)도, 블라디미르 푸틴도 고개를 내저었다. 100여 개 나라의 정상이나 고위급 인사를 맞이하겠다는 목표는 저 멀리 사라졌다. 올 가을 스가 총리는 퇴진 압력을 못 이겨내고 ‘단명 총리’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사회는 한일관계를 어떻게 추동해야 할까? 일본의 아베-스가 총리와 자민당 정권은 문 대통령의 거듭된 대화 제의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무성의한 자세로 혐한 정서를 국내정치에 악용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올림픽의 실패를 기뻐하듯 한국인들은 박수를 쳐야 할까?

한일 관계가 복원돼야 할  몇 가지 이유

여기서 우리는 1998년 한일관계를 재정비한 김대중(DJ) 대통령의 행적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 담긴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구절은 지금이야말로 양국 정치 리더들의 귀감이 될 수 있다. DJ가 평범한 대통령이었다면 과거사와 반일 정서에 기대 국내정치를 펼치는 게 훨씬 편했을 것이다.

한국은 이제 경제력, 군사력이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중강국(中强國)의 마인드로 주변강국들을 상대해야 한다. 젊은 세대는 진작부터 일본에 대한 열등감을 버리고 새로운 지형의 한일관계를 고민하고 있다. 1980년대생, 즉 30대의 젊은 지식인들이 쓴 <추월의 시대>에서 임경빈 방송작가는 “2017년 한국 민주주의가 일본 민주주의를 결정적으로 추월한 순간이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한국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추월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일관계 복원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할 이유를 하나씩 꼽아보자.

첫째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동아시아 정세가 급격하게 요동치고 있다. 특히 한반도, 일본열도, 대만, 동남아를 잇는 지역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이 전랑(戰狼) 외교의 타깃으로 한국을 겨냥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일본의 재무장이 아니라 차이나 포비아(중국 공포증)가 더 큰 위협으로 느껴지는 시절이다. 중국은 2016년 이후 사드 보복 조치를 계속하고 주한 중국대사를 통해 내정 간섭 언행도 불사한다.

둘째는 글로벌 공급망(GSC)이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한일관계는 경제-산업-무역 분야에서 순망치한의 관계다. 세계경제의 재편과정에서 협력을 강화해야 할 사이다. 감정은 감정대로 풀고, 장사는 장사대로 해나가야 한다. 일본으로부터 첨단산업의 소재·부품·장비를 독립해야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이와 관련된 미국과 유럽의 협력-연대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셋째는 한일관계에도 햇볕정책이 필요하다. 혐한 정서를 악용해온 일본 우익세력과 맞서서 거칠게 싸울수록 저들은 일본 국민들을 선동하고 한국 고립 작전을 펼칠 것이다. 도쿄올림픽이 위기에 처했을 때 화해·협력의 손을 내미는 것은 우리가 약해서도, 일본의 환심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동맹국들과 일본의 양심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 과거사 반성의 동력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김정숙 여사가 6월 12일(현지시각)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배우자 프로그램을 마친 후  질 바이든 여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미일 영부인’ 외교 카드가 아직 남았다

우리는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을 활용하려는 구상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아무리 싫고 미워도 대한민국이 딴 데로 이사를 갈 순 없다. 일본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아닌 영원한 ‘이웃나라’다. 중국이 중요한 만큼 일본 역시 지정학적, 지경학적으로 중요한 파트너다. 문 대통령이 요즘 한일관계에 공을 들이는 것은 적절하고도 사려깊은 통치행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도쿄에 가지 못할망정 이제라도 차선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중 유력하게 검토할 방안은 바로 ‘영부인 외교 카드’다. 정치적으로나 외교의전으로나 두루 상징성이 큰 김정숙 여사가 올림픽 개막식장에 등장할 경우 일본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던져줄 수 있다. 그 효과는 문 대통령의 참석 못지않을 수 있다.

김 여사는 2018년 11월 인도를 단독 방문해 ‘영부인 외교’를 펼친 경험을 갖고 있다. 그의 활달한 성격에다 절제된 언어, 세련미 있는 제스처가 더해진다면 한국 외교는 천군만마를 얻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더욱이 이번 개막식에는 질 바이든 여사가 단독 방문할 계획이다. 한미일 세 나라의 영부인들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만으로도 국제사회에 던질 메시지 효과는 충분하다.
만에 하나, 도쿄올림픽이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취소되는 상황에 대비한 외교적 시나리오도 갖춰야 한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지금 한일관계에 응용돼야 할 경구일 것 같다.


글=이양수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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