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폭우와 코로나19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요즘이다. 예년 7월 하순 같았으면 여름휴가 인파로 고속도로와 공항이 붐볐지만 올해는 서로의 건강과 무탈함을 기원하며 '집콕'을 가장 바람직한 휴가로 꼽는다. <피렌체의 식탁>은 20대, 30대 젊은 필자들에게 더위를 잊고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여름휴가철 콘텐츠를 추천받았다. 2030세대 필자들은 책, 영화뿐만 아니라 웹소설, 웹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권한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기보다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는 젊은 세대들의 기호와 취향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편집자]

◇천현우/ 용접공, 칼럼니스트

책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10주년 개정판>(라프 코스터, 길벗, 2017)

라프 코스터는 세계 최초의 MMORPG(다중 접속 롤플레잉게임)인 ‘울티마 온라인’을 만든 개발자 중 한 명이다. ‘울티마 온라인’은 여러 유저들이 접속해 참여하는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의 교과서 같은 게임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게임 디자인을 하는 법이지만, 본질은 ‘재미’를 주제로 한 철학과 심리학에 가깝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다루는 내용이 방대하다. 하지만 페이지마다 작가의 우스꽝스러운 삽화 덕분에 무겁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내용 중에서 가장 주목한 키워드는 ‘패턴’이었다. 게임이 가장 즐거울 때는 ‘게임 속 패턴을 알아채고, 패턴을 추적하고, 자신의 예상대로 패턴이 발생할 때’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패턴을 너무 쉽게 만들면 생각할 부분이 적어져 지루해진다.

너무 어렵게 만들면 생각하는 재미를 잃고 금방 포기하고 만다. 이는 모든 창작물에 적용되는 공통 원리이기도 하다. 콘텐츠를 만드는 분들이라면 분명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 디 온택트>(박은진, 2020)

올해로 세상에 나온지 22년이 된 MMORPG ‘일랜시아’는 망한 게임의 약자인 ‘망겜’으로 불린다. 넥슨의 자본력이 아니면 당장 서비스 종료해도 이상할 게 없는 ‘적자모델’이다. 이미 게임 안은 해킹 프로그램인 매크로를 돌려 움직이는 유령 유저들이 점령했고, 개발자는 손을 뗀 지 오래. 그럼에도 얼마 남지 않은 초창기 유저들은 오늘도 게임에 접속한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디 온택트>는 2020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일랜시아’는 이미 게임을 구성하는 패턴이 무너져 버린 게임이다. 더 이상 재미를 줄 수 없는 게임은 유저들에게 어떤 존재인 것일까? 소중함과 미련, 지루함과 일상, 안락함과 새로움에 대한 갈망 속에서 일랜시아에서 ‘내언니전지현’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박윤진 감독은 그동안 게임 속에서 만났던 인연을 더듬어가며 게임 속에서 의미를 찾아간다.

1020 세대들의 ‘망겜’에 대한 정서는 냉소 그 자체다. 유저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며 때론 어리석다고 비웃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망겜’도 개발자의 땀과 열정의 산물이었고, 유저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 하는 자그마한 세계다. 낯선 가상 세계의 주민들과 만나고픈 분들께, 이 영화를 추천한다.

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K-를 생각한다> 저자

웹소설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피아 조아, 2019)

장애를 갖고 노력하며 살아온 주인공이 국회에서 비서를 하다 얼떨결에 험지 출마를 하게 되고, 심지어 당선까지 되어버린다. 인생 역전을 이룬 자부심으로 국회에 등원한 임기 첫날. 갑자기 하늘에서 구멍이 뚫리더니 괴수들이 내려와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피아 조아 작가의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의 도입부다.

판타지 소설을 조금 아는 이들이라면 어차피 초능력을 각성해서 괴수 때려잡는 뻔한 이야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괴수가 세상을 뒤집어 놓았어도, 정부는 남았고 국회도 남았고, 무엇보다 정당들도 남았고, 주변국들도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괴수와 싸우고 피난민을 구출해내는 와중에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상대 당을 음모로 몰아넣고, 재벌들과 파워 게임을 벌여야 하는 주인공의 행보는 이 소설을 다른 괴수 소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끌고 간다.

게다가 고등학생 때부터 썼다는 작가의 필력은 나이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절륜하다. 정치를 주요 소재로 삼고 게임을 비롯한 청년 하위문화 요소를 배제한 이 작품은 근래 발전한 웹소설 장르가 어떤 매력을 뿜어내며 독자들을 매료시키는지, 세대를 막론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웹드라마 <좋좋소>(2021)

최근 유튜브 이과장 채널의 웹드라마 <좋좋소>가 26부로 완결되었다. <좋좋소>는 어리바리한 주인공이 모든 것이 주먹구구인 회사에 들어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 중소기업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엄청난 리얼리티로 그려내며 <좋좋소>는 회당 조회수 100만에 달하는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좋좋소>에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좋좋소>가 합리성과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1차 노동시장이 아니라, 관행, 부조리, 무체계성으로 운영되는 2차 노동시장에 대한 불만, 불안, 체념 등의 정서를 잡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좋좋소>는 그래서 드라마 자체에서 끝나지 않고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을 통해서 완성된다.

제작진이 세심하게 배치한 중소기업의 디테일들을 잡아내고, 자신도 드라마와 유사한 경험, 혹은 드라마보다 더한 경험이 있었음을 토로하는 소통을 통해서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해준다. 누군가는 자신이 저런 기업에서 탈출하여 지금은 ‘번듯한’ 곳에 자리 잡은 것을 자랑하기도 한다. <좋좋소>와 그 댓글창은 한국의 노동 현실을 가장 가감 없이 드러내는 창 중 하나다. <좋좋소>는 어쩌면 2021년 유튜브 시대에 걸맞은 쌍방형 노동 문학인 셈이다.

유튜브 이과장 채널의 웹드라마 <좋좋소>. 중소기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호평을 받았다. (사진=유튜브 캡처)

 

◇류영재/ 대구지방법원 판사

책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존 돈반·캐런 저커, 꿈꿀자유, 2021)

엄마, 우리 언제 화해할까요. 아이가 학원 가기 전 진지하게 물어본다. 다녀와서 화해하자고 답했다. 현관문이 닫히자 힘이 풀렸다. 무려 열 살, 열 살짜리와 어제 진심으로 싸우고 오늘 정식으로 화해하는 생활. 자괴감은 이미 예전에 익숙해졌다. 작년부터 갑자기 시작하게 된 육아는 매우 어렵다. 부모교육을 받아도 매 순간 어렵다.

태어난 지 6개월인 갓난쟁이를 키우는 것은 또 어떠한가. 내 뱃속에서 나왔다지만, 혼자서 코도 풀지 못하는 생명체라니. 엄마가 불안해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온몸에 발진이 일든 현란한 분수토를 하든 일단 괜찮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고 웃으며 필사적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의사 지인들에게 질문한다. 때로는 논문 검색도 한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데에는 상상 이상의 전문성과 성실성이 필요하다. 매 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나의 대응이 잘못되진 않았을까 전전긍긍한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정상적이고 건실한 가족을 위해 마땅히 시설에 보내 격리시켜야 할 비인간으로 취급받던 자폐 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내 자녀 사람으로 인식시키기 운동’의 역사를 다룬다. 공동체가 포기한 자녀의 돌봄을 스스로 해내면서 한편으로는 자폐인의 건강권, 교육권에서 나아가 탈시설할 권리, 사람으로 인식될 권리를 쟁취해낸, 평범한 부모들의 비범한 연대와 투쟁을 생생히 그려낸 책이다. 마냥 슈퍼맨 같은 성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운동들이 갖는 반목과 불화, 퇴행과 자초위난(자기 스스로 초래한 위난) 성실히 기록해낸 점이 특장점이다.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2020)

1970년대의 미국 페미니즘 역사와 함께 전업주부들의 놀라운 능력을 볼 수 있는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도 추천한다. 이 드라마는 미국의 전설적인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전업주부들에게 번번이 패배했는가를 보여준다.

얼핏 보면 로즈 번이 연기한 글로리아 스타이넘 같은 스타 페미니스트들과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극우인사 필리스 슐래플리가 주인공 같지만, 천만의 말씀. 이 드라마의 진정한 주인공들은 찐 정치력을 보여준 전업주부들이다.

그들의 조직력과 행동력, 성실함에 매화 감탄하게 된다. 더불어 얄미운 엘리트 진보는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패배하는가, 페미니즘 논쟁은 어떻게 전업주부들을 정치세력화하며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을 조금 더 실현시켰는가를 볼 수 있어 흥미롭다. 50년 전의 전쟁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어 슬픔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달갑지 않은 덤이다.

◇백승호/ 전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에디터, <추월의 시대> 공저자

책 <그리드>(그레천 바크, 동아시아, 2021)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리드(GRID)’는 전기를 공급하는 프로세스 일체, 그러니까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콘센트부터 시작해 전봇대와 전선, 그리고 발전소까지. 전기를 위해 설치된 선로와 관련 시스템 전반을 의미한다.

그리드는 우리에게 두 가지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먼저 전기 공급 측면에서 그리드는 안전한가? 실제로 미국에서는 발전소 자체의 문제보다는 이 그리드 인프라의 노후화로 인한 ‘블랙아웃’이 빈번하다는 게 책의 설명이다. 미국에선 2014년 악천후로 인한 중대 정전이 77건, 연료 부족으로 인한 정전이 17건 발생했다고 한다. 다람쥐나 나무가 유발하는 블랙아웃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두 번째는 우리가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갖추고 있는 신재생에너지는 현재의 그리드에 적합한가? 20세기의 그리드는 ‘연료’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석유나 석탄, 가스 혹은 원자력에 맞추어 설계된 이 원자력은 지금 떠오르고 있는 풍력이나 태양열 같은 에너지로 만드는 전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 그리드를 바꾸지 않고서는 에너지 시스템을 개혁할 수도 없고, 기후 재앙에 대비할 수도 없다는 게 책의 설명이다.

단기적으로는 폭염을 견디게 해 줄 냉방장치의 안전한 가동을 위해서도, 장기적으로는 이 더위의 원인이 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리드의 재점검은 필요하다.

드라마 <킹덤>(2019)

전 세계 좀비 팬에게 각인된 한국 영화 속 ‘K-좀비’의 모습은 빠르고 악착같고 때로는 처절하다.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참을성 없이 여기저기 종횡무진한다. 의식이 없는 존재들인데도 때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렇다. 그 K-좀비들은 한국인들을 쏙 빼닮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K-좀비들을 조선으로 몰아넣었다. 더없이 아름답고 오리엔탈적인 조선의 풍경과 더불어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갓’과 ‘한복’이 입덕 요소를 만들어냈다. <킹덤>의 설정이 여타의 다른 것도 매력이다. 보통의 좀비물은 좀비들이 등장한 데 대해 ‘어느 날 갑자기 좀비가 있었다’라든가 ‘어느 날 연구소에서 미지의 바이러스가 유출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킹덤>은 좀비의 발생 원인 자체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핵심 요소다. 권력자들의 권력유지로 인해 죽어가는 왕을 어떻게든 살려내야 했고 그렇게 죽지 못해 몸뚱이만 산 왕은 ‘좀비’가 되었다.

<킹덤>의 세계관이 가진 방향성도 흥미롭게 볼 만하다. 왕으로부터 시작된 좀비 바이러스는 ‘아래’로 전파되었으며 아래에서 시작한 좀비 바이러스는 다시 ‘위’를 위협한다. 좀비물을 빙자한 정치물에 가까운 게 바로 <킹덤>이다.

<킹덤>은 벌써 두 개의 시즌을 선보였다. 매년 시즌 하나씩을 공개한 <킹덤>은 이번엔 스핀오프 격인 <킹덤: 아신전>을 올여름에 공개한다. 시즌2 마지막에 등장했던 전지현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킹덤>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복습을, 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예습을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K-좀비를 영접할 시간이다.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의 스페셜 에피소드를 담은 <킹덤: 아신전>. 7월 23일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넷플릭스)

◇박희아/ 대중문화·음악 전문 저널리스트, <아이돌 메이커> 저자

드라마 <런 온 RUN ON>(2020)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상하다. 폭력을 휘두르고 이를 묵인하는 나쁜 사람들은 있지만, 이들을 제외한 등장인물이라 할지라도 딱히 착하다, 혹은 선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주인공인 것도 아니라서, 보고 있으면 종종 한숨이 나오기까지 한다. 재벌가 딸이 상대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모습이 소위 ‘쿨’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도 의아한데,

미대에 재학 중인 남학생이 “싸가지가 없으시네요”라고 응수하는 장면도 너무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본 이유는 하나다. 이 사람들이 정중하게든, 막무가내로든 서로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입을 닫고 마음을 닫고 있으면 결과적으로 더 멋진 오늘을 만날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삶의 트랙 위를 달리면서 옆에서 누가 뛰고 있는지도 보고, 그에게 인사도 건네보면 좋겠다. <런 온>의 주인공들처럼.

책 <마틸다>(로버트 달, 시공주니어, 2000)

가끔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여기서 들쑤신다는 말은 아이들이 이런저런 장난으로 어른들을 귀찮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부조리한 세계의 작은 틈을 쿡쿡 찌르면서, 마침내 커다란 균열을 내고 마는 아이들만의 통쾌한 순진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순진함은 마크 트웨인의 소설 속 주인공인 허클베리 핀이나 톰 소여의 것과는 조금 다른데, 그보다는 훨씬 더 영리하면서 용감한 아이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이 아이가 기지를 발휘해 못된 어른들을 혼내주는 동안, 엉망진창으로 비뚤어져 있던 세계가 바로잡히고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진다.

<마틸다>(Matilda)는 영국의 동화작가로 유명한 로알드 달(1916~1990)이 1988년 발표한 동화다. 독서광이자 수학과 언어 천재인 소녀 마틸다가 펼치는 모험담을 담았다. 심심한 기간에 <마틸다>를 만나면 이렇게 한 세계를 뒤집어버린 순진함 덕분에 한동안 웃음이 날 것이다. 덤으로 나의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용기가 따라온다.

호수 위 무대에서 열린 2017 브레겐츠 페스티벌 ‘카르멘’의 한 장면. (사진=유튜브 캡처)

◇송가연/ 메디치미디어 C&C팀 과장

공연 실황 <2017 브레겐츠 페스티벌 ‘카르멘’>

한여름 가장 시원한 곳은 물속이 아닐까? 수영할 때 얻는 쾌감과 시원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물 위에서 공연이 열린다면? 오스트리아의 도시 브레겐츠에서는 매년 호수 위 무대에서 공연을 연다. 1946년에 배를 띄워 공연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는 7월에 오페라 <리골레토>가 예정되어 있다. 이 공연 실황은 중계되기도 하는데 몇 해 전 영화관 메가박스에서 처음 접했다. 이렇게 본 브레겐츠의 오페라 중, 2017년에 열린 <카르멘>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공연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하바네라, 투우사의 노래 등 광고나 드라마에서 배경음악으로 들어보았던 음악이 계속 흘러나온다. 1800년대 만들어진 유서 깊은 오페라지만 웬만한 뮤지컬보다 더 신난다.

호수 위라는 무대 조건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에스카미요는 보트를 타고 등장하고, 카르멘은 수영을 하며 도망간다. 카르멘이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느끼는 이 바람이 에어컨 바람인지 호수 바람인지 헷갈린다. 집시들이 물 위에서 격정적으로 군무를 출 때는 마치 함께 물속에서 공연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공연을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역할은 카르멘 역인 가엘르 아르케즈(Gaëlle Arquez)이다. 다른 오페라 여성 캐릭터들이 소극적으로 죽임을 당할 때, 카르멘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끝내 죽음을 택한다. 사랑에 관해서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카르멘을 그녀는 자신과 한 몸이 되어 표현한다. 이를 메조소프라노의 힘 있는 목소리로 표현하니 더욱 설득력 있다. 그녀는 마치 브레겐츠에서 카르멘을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듯하다.

책 <인류, 이주, 생존>(소니아 샤, 메디치미디어, 2021)

<인류, 이주, 생존>은 ‘이동’이 인간과 동·식물의 본능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동안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본 출신지를 그들의 삶의 기준이자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곳으로부터의 이주를 생태계 교란 또는 문제의 원흉이라 여겨온 기존의 생각을 비판한다. 이주는 생존을 위해 당연한 행동이라 적응력이 뛰어난 개체는 이주하고 그렇지 않은 개체는 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

동식물의 끝없는 이주 스토리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내가 집에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이주가 떠오른다. 이들이야말로 이주를 통해 새로운 환경을 찾았고, 변화와 적응 중이다. 야생동물에서만 서식하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야생동물의 서식지 및 개체수가 줄어들자, 새로운 생육환경을 찾아 이주했다. 지구 절반에서 모든 지구로, 활동무대를 넓힌 것이다. 그리고 백신이라는 장애물에도 맞서 알파, 델타, 람다 등으로의 변화를 통해 적응 중이다.

반면 인간은 이들의 놀라운 이주 적응력 때문에 현재 이동 및 이주가 거의 중단됐다. 전 지구를 누비던 생활 반경이 ‘내 집’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동을 삶의 모토로 삼던 인간에게는 몇 백 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면 바이러스와 인간의 공존은 불가능할까?

가능하다. 인간 역시 이주 중이다. 일부 인간은 온라인 및 우주로 이주를 시작했다. 제페토, 메타버스 등으로 이주한 인간은 그 속에서 또 다른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바타를 통해 자신을 재창조하고, 물건을 사고, 사람을 만나 커뮤니티도 만든다. 우주로 이주도 꿈꾼다.

결국 오프라인 지구에서 입지가 좁아진 인간은 온라인과 우주로 완전히 이주할 것인가? 이주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은 어떤 변화를 겪을까? 새 환경에 적응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바이러스와 인간 각각의 이주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어떤 모습일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면 그 힌트를 <인류, 이주, 생존>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