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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슬 칼럼] 스물 여섯에 ‘도배’로 도피, 내가 벽 앞에서 배운 것들

By | 2021년 7월 19일 | 정책

도배사로 일하며 에세이집 <청년 도배사 이야기>를 펴낸 배윤슬 작가. (사진=배윤슬 제공)

남들이 선망하는 명문대학을 나와서 하고 싶은 일을 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선별해야 하는 업무에 마음이 불편했다. 조직 분위기에 적응하기도 어려웠다. 다시 진로를 고민했다. 돌봄을 주로 하는 사회복지사에서 벽지를 바르는 일로 직업을 바꿨다. 2년 남짓 벽지를 바르며 ‘초보’ 딱지를 뗐다. 28세의 ‘도배사’인 배윤슬 필자는 또래 대학교 졸업생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청년이다. 그는 2년간 건설 현장에서 일한 경험담을 통해 젊은 세대들의 달라진 직업관과 하루빨리 바뀌어야 할 건설 현장의 문제점들을 진솔하게 들려준다.[편집자]

#부담 컸던 복지수혜자 선별 업무
  벽 보고 일하는 ‘도배사’로 전직
#다양한 청년들 뛰어든 건설 현장
  스펙은 무관, 노력하면 기술 배워
#여자 화장실 없는 현장 수두룩
  작은 부분부터 바꾸려 노력해야
#주52시간 등 근로기준 보장 안돼
  주휴수당, 단가 현실화 이뤄지길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운명처럼’ 직업을 만났다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신기한 계기로, 마치 인연처럼 직업을 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도배를 택하게 된 것은 운명적인 만남도, 용기 있는 도전도 아닌, 나름의 철저한 조사와 계획에 의한 도피에 가깝다.

괴로웠던 사회복지 업무 ‘다른 길’ 찾아보니

내 첫 직업은 ‘사회복지사’였다. 누군가에게 유익한 일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직업이었다. 하지만 막상 직접 복지 현장에 투입되어 일 해보니 내가 누군가에게 미치는 영향이 때로는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복지서비스 대상자를 선별하는 게 내 일이기도 했다. 내 손으로 사회복지서비스를 받을 어르신들을 가려내고 또 탈락시켜야 했다. 마음이 불편했고 늘 부담감을 느꼈다.

조직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이외에 해야 하는 업무들이 너무 많았고 잘 해내지 못했다.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주변에서 만류하거나 전임자들이 하던 대로만 하라고 했다. 때로는 내게 ‘너 말고도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는 태도를 은연중에 내보이기도 했다. 그런 직장생활에 지쳤다.

그렇게 직장을 그만둔 나는 직장생활과 반대되는 새로운 직업을 찾기 시작했다. 성장과 성과가 추상적이기보다는 명확한 일, 기술만 가지고 있다면 인정받을 수 있는 일, ‘일 자체’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 조직생활에 취약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으면서도 매 순간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 무엇일까 물색했다.

그렇다. 도배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어서 찾은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할 수 없는 일을 피하다 보니 시작했다. 이직을 준비하며 여러 직업을 찾아보았고 지금 당장은 업무 내용이나 보수, 업무 환경 등이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게 될 곳들은 하나씩 지워나갔다. 그렇게 찾은 일이 바로 도배였다.

도배를 하면서 내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는 고작 도배 하자를 만드는 일이며 도배 하자는 얼마든지 수습이 가능하다. 도배지가 찢어지면 새로 뽑아 붙이면 되고 일을 잘 못하면 돈을 덜 받으면 된다. 누군가에게 미칠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영향 역시 도배가 예쁘게 되지 않아 소비자가 불만을 가지는 것, 그 정도이다. 누군가의 삶에 커다란 피해를 줄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만약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만 도배를 하게 된다면 소비자를 직접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기에 나에게 딱 맞았다. 나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는 벽지를 바라보며 시간과의 싸움을 하면 되는 일, 내게 너무나 잘 맞는 일을 찾았다.

건설 현장에서 만난 다양한 청년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하면 보통 ‘조금은 거친 외모의 중년 아저씨’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직접 현장에서 일해 보니 밖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청년들도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가 직접 대화해보거나 스쳐간 청년들만 떠올려보아도 같은 분야의 도배는 물론, 외부 로프 도장작업(아파트 외벽 페인트칠), 건물 외벽 발판 설치, 욕실 환풍기 설치, 타일, 마루, 미장, 조적(벽돌 쌓기) 등 곳곳에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잠깐 일하러 온 청년들도 있지만 자기 주관과 목표를 가지고 기술을 배우기 위해 현장에 직접 뛰어든 사람들도 많았다. 도배사 아버지를 따라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도배를 배우기 시작하여 이미 어엿한 기술자가 된, 나보다 훨씬 선배인 10대 청년 도배사를 만난 적도 있다. 나와 동갑이지만 이미 수년간의 경력을 쌓고 여러 팀원을 이끄는 팀장이 된 청년 도배사도 있었다. 내가 현장에서 만나온 청년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 그들은 꽤나 성실하고 건실했고 또 멋있었다.

배윤슬 도배사가 현장에서 작업하는 모습.

내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사무실을 뒤로 한 채 건설 현장에 온 이유와 건설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비슷했다. 직장생활과는 다르게 내가 가진 기술로 은퇴 없이 평생 일할 수 있다는 것, 직장 상사 혹은 동료와 비교적 갈등 없이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많은 급여 등에 매력을 느꼈다. 거기에 민간 기업들이 원하는 ‘스펙’을 갖추지 못해 취업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청년들도 성실하게 노력하면 누구나 동일선상에서 시작해 기술을 배워갈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 역시 많은 청년들을 ‘건설 현장’이라는 일터로 불러왔을 것이다.

일터에서 성실한 청년들은 일터 밖에서도 열심히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 일상, 취미생활, 고민 등을 SNS를 통해 열심히 기록하고 공유하기도 한다.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직접 만나본 적이 없더라도 온라인상에서 서로 응원하고 또 위로 받기도 한다. 얼굴을 몰라도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하며 연결된다. 기술자가 되기 위해 혹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열심히 앞만 보며 달리는 청년들도 있고, 취미생활도 즐기고 조금은 여유롭게 일을 하는 청년들도 있다. 각자가 직업을,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은 유사하다.

‘건설 현장 성평등’을 위한 나의 고집

일을 마친 후 믹스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이 도배사들의 유일한 휴식이다. 그래서 도배사들이 쉬는 ‘풀방’에는 꼭 커피포트와 믹스커피, 종이컵이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함께 일을 마치고 모인 후에 자연스럽게 커피를 타는 것은 여성 도배사일 때가 많다. 내가 현장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커피를 타지 않는다고 한 시간 넘게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함께 식사를 할 때에도 수저를 놓고 물을 따르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고,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남성인 경우가 많다. 내가 경험한 ‘건설 현장’이라는 일터는 ‘남자는 힘을 쓰고 여자는 커피를 타고 상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만연해 있는 곳이다. ‘성평등’이라는 것이 어느 사회에서나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겠지만 건설 현장에서는 그 가능성이 더욱 작아 보인다.

여성 노동자의 수가 적어서인지, 놀랍게도 여성전용 화장실이 단 한 칸도 없는 건설 현장이 적지 않다. 그런 현장에서는 정말 급할 때에는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하루 종일 참을 수밖에 없다. 여성전용 화장실이 있더라도 그 개수가 근로자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처음 현장에 왔을 때에는 화장실에 잘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리기도 했다는 여자 반장님들도 여럿 보았다. 나 역시 새로운 현장에 가면 화장실의 위치와 상태부터 파악하고, 화장실에 가기 어려운 현장에서는 물이나 커피를 참아가며 일을 하는 게 일상이 됐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는 성희롱을 당하는 등의 불쾌한 상황에 자주 놓이기도 한다. 소위 ‘노가다는 원래 이래!’라는 핑계로 불쾌한 농담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서 불만을 제기하기 어렵다. 미묘하게 불편한 말들을 하나하나 짚고 넘어갈 수 없는 환경이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법과 제도 밖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근로계약서 한 장 쓰지 않고 일하다 보니 불합리한 대우를 당해도 정당한 시스템을 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제도적 도움을 받기에는 근거를 마련하기 쉽지 않으며 근거를 찾아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가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늘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는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변화를 만들기보다는 작은 행동에서 아주 작은 변화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보고 있다. 예를 들어 일을 마치고 나서 뒷정리를 할 때, 여성은 커피를 타거나 사용하고 남은 비닐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동안, 남성은 무거운 쓰레기를 버리고 오거나 짐을 옮기는 것이 내가 속한 팀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작은 차이도 싫었던 나는 커피를 타더라도 작업 후에 쓰레기를 버리고 짐을 옮기는 일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작은 변화조차 달가워하지 않는 기성세대, 기존의 근로자들도 있다. 아니 오히려 변화가 더 싫고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전반적인 사회의 흐름보다는 조금 느리게 변화해가는 일터이고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을 강조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보니 작은 변화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내 고집을 꺾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고 앞으로도 일할 곳이라면 조금의 변화를 위해서라도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내가 일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일이 사회적으로 받는 부정적인 시선을 조금이나마 바꾸기 위한 것이다.

남자 화장실만 있는 건설 현장. 여자 화장실에도 남성 전용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다.

‘워라밸’에 대한 세대 간 인식차이 커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정해진 길’이란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한 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게 빠르게 성공해내야만 하는 ‘미션’이 아니다. 그것을 제 때에 하지 못한다 해서 인생이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청년세대는 여러 선택지 중에서 자신이 만족감을 느끼는 선택들을 해나간다.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길을 그대로 밟아가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다양한 자신의 기준에 따라 선택하고 판단한다.

그렇다 보니 직업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 역시 달라진다. 취업이 목표가 아니라 더 나은 내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하며 이에 따라 직업을 택하는 기준도 다양해진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스스로 재미있는 일, 혹은 급여가 적더라도 몸과 마음이 편한 일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어떤 직업을 택했다 하더라도 직접 부딪혀본 후 그것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빠르게 다른 직업을 찾기도 한다. 청년세대에게는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청년들이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워라밸’은 단순히 야근 없이 빠르게 퇴근해서 개인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 할 때에는 일에만 집중하여 성과를 내고 성장하고자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일에서 벗어나 내 삶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일과 삶을 온전히 분리시키고자 한다. “요즘 애들은 너무 이기적이야, 개인주의적이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효율이나 효과 없이 조직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일의 효율,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협력하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결국 청년에게 좋은 일이란 개인의 생각, 가치관에 따라 각자 다를 것이다. 대기업 직원, 공무원, 혹은 ‘사’ 자로 끝나는 전문직처럼 좋은 직업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은 일이면 그게 좋은 일’이다. 청년들이 자신의 직업에 관해 책을 내거나 글을 쓰는 등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기성세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직업을 택하는 기준이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주휴수당 지급, 단가 현실화 이뤄져야

새내기 도배사로서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주말이 있는 삶이다. 그리고 일하는 날이 줄어든다 해도 급여가 줄어들지는 않도록 주휴수당 지급이나 단가 현실화 등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건설 현장이라는 일터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에는 몸을 쓰는 험한 일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주5일제, 주52시간, 최저임금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도 근로자의 권익에 대한 기본적인 보장이 필요하고, 그 보장을 협력업체가 떠안는 것이 아니라 본사가 책임지는 제도와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건설 현장 노동자들의 4대 보험 가입이 의무화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사회보장 제도임에도 그전까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안타깝고 씁쓸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조금씩이나마 건설 현장의 근로자들도 법적 보호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가진다. 앞으로 건설 현장이 보다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일터가 되길 바란다.


배윤슬 필자

도배사, <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연세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후 노인복지관에 취업했지만 2년 만에 그만두고 도배라는 완전히 새로운 업(業)을 시작했다. 아직 초보와 숙련 사이 어딘가에 있지만, 기술자를 향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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