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류 미래가 불투명하던 지난해 7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이 나왔다. 제레미 리프킨, 장하준, 마사 누스바움 등 세계적인 석학 7명의 분석과 전망을 담은 <오늘부터의 세계>다. 문재인 대통령의 추천도서로 꼽혀 화제가 됐던 이 책은, 재미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안희경 작가의 석학 인터뷰를 통해 출간됐다. 일년 후인 2021년 여름, 안 작가는 다시 한 번 재러드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세계 석학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인류문명의 현 주소를 진단하고 대한민국의 생존 전략을 모색한다. 안 작가의 이번 인터뷰는 22일부터 한겨레신문에 연재되고 조만간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한국에 잠깐 귀국한 안 작가를 이달 초순 메디치미디어 사옥에서 만났다. [편집자]

#세계 석학들과 <내일의 세계> 인터뷰  한 목소리로 “인류, 주어진 시간 없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에게는 이미 재난  後세대에 닥쳐올 파국 대비하고 있나?#정부, 아웃소싱을 관리하는 역할에 그쳐  정치-권력의 재결합으로 변화 이끌어야#탄소규제가 성장 저해? 미래산업 동력  대선 정국에서 핵심 어젠다 되기를 소망

▲<오늘부터의 세계>가 나온 이후 1년이 지났다. 불행히도 코로나19 팬데믹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게다가 캐나다 북동부의 폭염과 유럽 대륙의 홍수 피해 등은 기후위기를 더욱 가시화하고 있다. 기획인터뷰 <내일의 세계>를 통해 만난 석학들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진단했는가?

-한겨레신문에 연재될 기획 인터뷰에는 <총·균·쇠>, <대변동> 등의 저서로 유명한 UCLA 지리학과 교수 재러드 다이아몬드,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 경제학자로 <도넛 경제학>을 창시한 케이트 레이 웍스, <세계화와 그 적들>,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쓴 파리경제대학의 다니엘 코엔 교수가 등장한다. 여기에 지역경제 복원을 이끄는 생태 운동가로 유명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슈마허대 교수, <엘리트 세습>의 저자인 대니엘 마코비츠 예일대 로스쿨 교수, 문화인류학자인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등을 화상 또는 대면 방식으로 인터뷰했다.

저마다 전공이 다르지만 코로나19 이후 기존 체계의 약한 고리부터 타격을 입고 있으며 아시안 혐오라던가 빈부격차 등 수면 아래 있던 각 나라들의 문제들이 물기둥처럼 솟구쳐 오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기후변화 등 이전부터 본인들이 경고해왔던 부분들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고 인류가 정말로 변화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난 1년간 코로나19 백신 공급 과정을 보면 국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인터뷰를 하면서 코로나19나 혹은 기후위기 등의 상황에서 ‘국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물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시장 부문의 혁신이 빠르게 일어나는 반면 국가와 정부, 공공 영역은 이른바 혁신의 방해물이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도 따지고 보면 공공 영역에서 세금을 통해 개발을 촉진시킨 것 아니던가? 코로나19 초기에 글로벌 제약사들은 백신 개발을 별로 서두르지 않았다. 백신 개발 비용이 많이 들고 시장성 또한 검증되지 않았던 탓이다. 그래서 미국과 영국 정부는 막대한 백신 개발 비용을 지원했고 그 비용은 세금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 백신 공급의 경제적 이득은 시장이 가져갔다.

오히려 인터뷰했던 석학들은 지금의 정부가 아웃소싱을 관리하는 기관이 되어버린 상황을 지적했다. 국가는 입찰을 관리하는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은 기후위기 상황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이미 온실가스 제로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사계절의 변화를 통해 혹서, 혹한, 가뭄, 홍수 등의 경험치가 있다 보니 기후위기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대가 다른 나라보다 다소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도 도시 사람들과 지방 사람들 사이에 기후위기 감수성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강원도 고성 지역은 대형 산불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 산불의 원인이 과연 기후변화 상황과 무관할까? 예전과 달리 게릴라성 폭우가 서울에도 곧잘 쏟아지지만 물난리가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서울의 수방 관제 시스템이 잘 갖춰졌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기후변화로 가중되고 있는 폭염의 경우 에어컨이 있는 집에서 사는 이들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쪽방촌이나 고시원 같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선풍기 한 대로 버텨야 하는 저소득층들에게 요즘 같은 폭염은 그야말로 재난이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단순히 자연재해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있는 이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관점에서도 접근해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기후난민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반세기 안에 인간이 더워서 살 수 없는 땅이 현재 지표면 1%에서 19%로 확대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미의 경우는 기후변화로 발발 횟수가 빈번해진 허리케인 탁세 도시 경제가 파탄 나고 갱단들이 활개를 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걸어가는 아이들까지 생겨났다.

결국 기후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각 분야별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와야 하고 이것이 계속 공론화해야 한다. 인터뷰했던 석학들도 똑같이 고민하는 부분이었고 또 이에 대한 제언들을 많이 해주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캐나다 서부 스파크스레이크의 산불 현장. 산불은 지난달 말 기습적인 폭염 속에 건조한 날씨와 바람을 타고 급속히 번졌다. (사진=AFP/연합뉴스)

▲유엔에서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가스 배출과 관련해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이는 일종의 ‘선언’에 불과할 뿐 실제 도달까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석학들의 의견들은 어떠했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우선 오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IPCC는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기후변화와 관련된 범국가적 환경 문제의 대응을 위해 지난 1988년에 공동 구성한 협의체다.

IPCC의 목표가 지금의 관점에서 봤을 때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소련과 달에 사람을 보내기 위해 경쟁했던 1960년대를 보면 공공 부문과 민간 기업이 함께 관련 기술들을 개발했다. 즉 달까지 사람을 보낸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혁신이 이뤄졌고 이것이 삶과 일상을 바꿔놨다. 달에 사람을 보내려는 목표 역시 결국 성공했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유엔의 기후위기 관련 목표와 계획들을 보고 있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려다 보면 그 과정에서 분명히 파생되는 혁신들이 있을 것으로 본다.

즉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담론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탄소배출 제로에 대해 불가능한 목표로 보거나 규제 일변도 정책 탓에 성장이 멈출 것으로 예단한다. 역으로 기후위기가 없는 세상에서 안정적인 지구인으로 살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산업 관점으로 지금 기후위기 담론들을 볼 수 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혁신이 성장과도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나의 안전보장뿐만 아니라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도 기후위기 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혁신의 동력으로 삼는다면 우리의 ‘바닥’을 좀 더 위로 끌어올리는 일이 되지 않을까?

코로나19 팬데믹이 어느 정도 종료될 시점에서 인류는 ‘기후위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세계 석학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내용이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40개국 이상에 번역된 생태환경운동의 고전 <오래된 미래>로 유명한 스웨덴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교수는 결국 기후위기를 타개하는 과정 자체가 경제의 번영을 지속하는 방법이며 그 자체가 일종의 재생에너지라고 말했다.

▲ 코로나19가 남긴 교훈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코로나19가 아무리 초강대국일지라도 다른 나라들이 안전하지 않을 경우 초강대국 자신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특정 국가만 선도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보다 본질적인 면에서 코로나19는 오히려 최악의 문제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오판으로 발사될 수 있는 핵무기와 기후변화 따른 기후위기로 인류의 생존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진단이다. 특히 기후위기로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는 인류가 백신을 통해 어느 정도 대처를 했지만 기후위기는 즉효약을 당장 만들 수 없는 문제라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코로나19는 막강한 스승이기도 하다는 게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인식이었다. 결국 지구는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런 지점에서 지구 차원에서 답을 찾도록 위기의식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구적인 해법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코로나19 이후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에 대해선 동의한다. 이와 맞물려 인류 문명 전체의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일까?

-2014년 지그문트 바우만을 만났을 때 지그문트 바우만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정치와 권력을 재결합, 즉 다시 결혼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바우만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는 일이 되게 하는 법이고 그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권력이라고 한다.

나의 의견이 반영되는 정치, 세상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갈 수 있는 통로로서 정치와 그 일이 되게 하는 권력이 분리되어 있다는 게 바우만의 의견이었다. 이는 정치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을 비판한 것이었다. 정치와 권력의 재결합 문제를 코로나19 이후에 더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을까 싶다. 기후위기는 정치와 권력이 합쳐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해결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지역과 관련된 정책을 유권자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고, 그 지역과 지역이 모여 전체가 되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끊임없이 참여로 만들어가는 세상은 지금의 온난화가 가속되는 지구는 아닐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조한혜정 교수는 문명 구조 10년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인과 타인, 개인과 자연이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지를 이제 전 세계적으로 공유해 사회경제적인 구조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주제는 무엇인가?

-올해 초 미국 텍사스 등 중남부 지역에 한파가 몰아닥쳐 도시가 마비되었다. 최근에는 캐나다 북동부가 기록적인 폭염으로 산불이 계속되고 있다. 많은 기상전문가들은 향후 10년 안에 기후문제에 대한 전 지구적인 행동을 끌어내지 못할 경우 파국을 맞는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은 그런 측면에서 기후위기 문제가 주류 쟁점으로 부상하지 않은 듯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국에선 내년 3월까지 대선 정국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대선은 어떤 대통령을 뽑느냐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가 논쟁을 통해 내일의 공통 어젠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는 지금 젊은 세대들에겐 곧 닥쳐올 현실이지만 정작 정권을 잡으려는 기성 세대들은 여기에 큰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 오는 22일 한겨레신문에 첫 번째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첫 번째 인터뷰가 나갈 예정이다. 석학들의 인터뷰는 모아서 '내일의 세계'라는 제목의 책으로 8월 말 출간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세계 각국의 석학들의 메시지를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환기했으면 좋겠다.  또한 내년 대선 때까지 치열한 토론과 공론화를 통해 차기 정부의 핵심 어젠다가 되길 소망한다.

글·사진=김용운 편집장


안희경 재미저널리스트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대학원에서 불교 미술을 공부했다. 8년 동안 불교방송국 PD로 일하면서 시사, 교양, 음악 분야의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1998년, 2000년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서구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2012년부터 인류문명의 좌표를 조망하기 위해 4년여에 걸쳐 놈 촘스키, 재러드 다이아몬드, 장 지글러, 스티븐 핑커, 지그문트 바우만 등 세계 지성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왔다. 그러면서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2013)에서 시작해 <문명, 그 길을 묻다>(2015)를 거쳐 <사피엔스의 마음>(2017) 3부작 인터뷰집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