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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 칼럼] 아프다 말 못하고 짤려도 갈 데 없는 ‘제조업 4050’ 누가 챙기나

By | 2021년 7월 15일 | 정책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면서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자 마스크 안쪽이 분진으로 뒤덮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이후 정치권에서는 20대 남성을 위시한 ‘젊은 세대’ 표심 잡기에 열중하고 있다. 덕분에 야당에서는 초유의 30대 당대표까지 선출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제조업 현장의 40대와 50대는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다. 천현우 필자는 창원에서 낮에는 용접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30대 초반의 젊은 칼럼니스트다. 천 필자는 제조업 현장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4050세대들의 목소리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불안한 고용상황에서 건강을 담보로 가족을 위해 성실히 일하는 이들에게 정치는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는다.[편집자]

#지방 공장 용접 형님, 식당 아지매
  경제 지탱하지만 ‘투명인간’ 취급
#‘8 to 8’ 살인적 교대 근무에 골병
  형식적 건강검진으론 관리 역부족
#스마트 공장에 고용불안 한층 가중
  직업교육 지원, 살 길 찾게 해줘야
#청년 표심 잡기에 혈안된 정치권
  그늘 속 4050세대의 삶 외면 말라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다리는 금요일. 점심시간 종이 울린다. 용접기를 내려놓고, 열 가지가 넘는 보호구를 벗어던졌다. 내 사수인 ‘형님’은 땀을 훔치고선 “마이 무라”라는 인사치레와 함께 식전 담배를 피우러 갔다. “맛있게 드십쇼”라고 외친 후 식당으로 향했다.

대기업 사내 하청이라 그런지 회사 급식이 무척 잘 나온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앞치마와 위생모 차림의 조리사들이 보인다. ‘식당 아지매’로 통하는 나이 오십 남짓의 누님들은 새파란 남정네들도 쩔쩔매는 무거운 밥솥을 홀로 들고 옮긴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식판을 추슬러 출구로 가면, 또 다른 ‘식당 아지매’ 한 무리가 밀려드는 설거지를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시계를 들여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 종료 10분 전. 현장 간이 휴게실에 용접공 열여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정각 종이 치면 팀장의 오더를 받고 현장으로 복귀한다. 곁눈질로 본 스마트폰 너머로 반 평짜리 욕실에서 물장구치는 네 살배기 아이가 보인다. 늦게 둘째를 본 마흔 초반의 형님은 흐뭇한 얼굴로 “아빠 일하러 갈게.”라며 전화를 끊었다.

맞은편에 유부남 경력 반 오십 년의 형님이 장난스럽게 묻는다. “둘째 키아보이 어떻노?”, “말도 마이소. 미운 네 살이라드만 딱 그 짝이라.”, “그래? 다섯 살이 진또배긴데.”, “그래두 한 주 보고 한 주 못 보이 덜 밉네예.” 객쩍은 대화 속에서 공감의 웃음이 번져갈 무렵. 정각 종이 쳤다. 이제 5시간 30분만 버티면 토, 일요일은 쉰다.

다음 주는 야간근무. 유부남 형님이 ‘미운 네 살을 한 주 못 보는 날’이다.

현장 지키는 4050 세대 용접·조리 노동자의 고단한 삶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이후, 20대 청년들의 발언권과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투표를 통해 스윙보터 자리를 차지한 덕이다. 하지만 정작 묵묵히 제조업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 이야기는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 특히 제조업 현장에서 직급이 없어 ‘형님, 누님’이라 부르게 되는 이들. 4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의 노동자들을 보다 보면, 청년들 사정 늘어놓기가 참 계면쩍었다. 투정을 그럴싸하게 부리는 느낌까지 들곤 했다.

내 일터에서 흔히 보는 4050 세대 노동자는 용접사와 용접원, 조리사, 조리원이다. 용접사, 용접원은 대부분 남성(형님)들이고, 조리사와 조리원은 대부분 여성(누님)들이다. 언뜻 보면 둘은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빼면 닮은 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겉보단 안쪽 사정이다. 두 직종은 골병 나는 일로 악명 높다. 2009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조선소의 근골격계 질환 산재 대상 319명을 분석한 결과. 용접원들의 수가 96명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아래 보기 자세가 많은 용접공들은 목 디스크에 아주 취약하다. 고작 5년 남짓 용접한 나도 이미 4번과 5번 경추가 사이좋게 붙어있을 정도니 ‘형님’들의 목뼈 사정이 어떨지는 뻔히 보인다. 조리사와 조리원도 관련 논문들에 찾아보니 근골격계 질환 증상 호소자와 관리대상자가 10명 중 9명, 10명 중 5명에 달했다.

근육이랑 뼈만 아플까. 우리 회사는 ‘형님, 누님’이 나란히 주야 교대 근무에 시달린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장시간 노동, 교대 근무를 ‘비정상적인 근무 일정’으로 보는데, 하필 이 둘은 담배와 라이터처럼 한 쌍으로 붙어있는 관계다. 제조업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맞교대 패턴은 ‘8시부터 8시까지’다. 기본 8시간 일에 점심 저녁 시간 1시간 30분. 잔업 2시간 30분을 꽉꽉 채워 돌리는 방식이다. (야간근로 수당 아끼려는 회사들은 출근 시간을 오전 7시로 잡아놓기도 한다) 이러한 장시간·교대 근무를 하는 작업자들은 “몸이 너무 피곤한데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적응 가능한 체질이면 차라리 다행이다. 도저히 교대근무가 안 맞는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일하려 카페인이나 수면제를 들이붓는다. 그럴수록 악순환의 쇠사슬은 더 단단하게 죄어올 뿐이다.

20여 년 전 대한산업의학회지가 낸 보고서 <교대근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 일반 건강, 수면, 스트레스, 삶의 질과 정신건강에 관하여>의 결론도 지금의 내 경험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대 근무군과 비(非)교대 근무군을 비교해본 결과. 교대 근무군은 건강에 대한 인식, 스트레스, 삶의 질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나타냈으며, 불면증과 우울증을 많이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이들 간과하지만 교대근무는 산재만큼이나 위험하다. 산재는 보상이라도 나온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좀먹는 교대근무는 고작 ‘야간 수당’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 면죄 받기 일쑤다.

생색내기 그치는 노동자들의 건강검진

‘일하다 골병 안 나게 해야 한다.’, ‘야간근무 같은 비인간적 시스템은 없애야 한다.’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도덕경 읊는 소리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몸과 마음을 안 다치고 정년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내 경험을 되돌아보다 문득 현장직이 1년마다 받는 건강검진이 떠올랐다. 배치 전 건강검진을 포함하면 열 번을 넘게 받아봤지만 늘 똑같은 패턴 반복이었다. 검진과로 가면 우선 문진표를 작성한다. 집안에 병력은 없나. 술 담배는 얼마나 하나. 운동은 어느 정도 하느냐. 특별히 아픈 곳은 좀 없나. 긴 문항을 써서 제출하면 몸무게랑 키, 시력, 혈압을 재고, 피 뽑고 소변 검사한 다음, 엑스레이를 찍는다. 마지막으로 보건의와 상담하면 잠을 많이 자라던가, 술 담배를 줄이라거나 하는 조언만 던져주고 끝난다. 업무에 따라 청력검사라던가 폐활량 검사 같은 특수검진도 따라붙지만 다분히 형식적이다. 일하다 돌연사할 정도 상태만 아니면 사실상 무질환자 취급받는다.

지난 5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전국급식실노동자 특수건강진단실시와 조리환경 근본적 개선을 촉구하는 전국17개시도교육청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수준의 건강검진은 결국 형식적인 검진에 머물 뿐이다. 현장직들이 달고 사는 테니스 엘보나 골프 엘보, 회전근개 증후군 등은 엑스레이로만 발견하기엔 한계가 명확하다. 허리며 목 상태도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제대로 신경외과 전문의를 통한 검진을 받아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교대근무를 하는 이들의 건강검진엔 전문적인 심리검사 절차가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정신질환은 자가진단조차 어렵고 외부에 쉽게 티 나지도 않는다. 현장에서 꼰대 같은 관리자들이 노동자에게 의지박약의 올가미를 씌워 병세를 더 키우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나처럼 미혼에 젊은 사람들은 그만둘 수라도 있지만, 대개 가정이 있기 마련인 ‘형님, 누님’들은 이런 선택조차 불가능하다.

사전 검사가 어렵다면 하다못해 통원 치료비라도 지원해야 한다. 몇 해 전 회사 다닐 때 두통을 달고 살았다. 그 원인이 목 디스크였음을 알고 치료를 받으면서 늘 속으로 꺼림칙했다. 이건 직업병이 명백한데 어째서 병원비를 전혀 대주지 않을까? 산재뿐만 아니라 인과관계가 증명된 질환의 치료는 예외 없이 기업 측에서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지금 다니는 회사의 원청 기업은 이러한 의료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해마다 정해놓은 한도액 내에서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식이다. 이게 대기업만 누릴 수 있는 복지라는 현실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람을 밤낮 바꿔가며 일 시키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직업교육, 노동자 생존 차원서 접근해야

노동자가 몸 안과 밖으로 모두 상처 받는 사이. 고용불안의 먹구름은 어느새 머리 위까지 다가와 해고의 비를 쏟아낼 기세다. 현장에서 말을 나눴던 ‘형님, 누님’ 중 열에 여덟이 입 모아 말한 문제가 바로 고용유지였다. 대다수가 ‘이런 힘든 직장에서나마 정년까지 버텨보고 싶다.’라고 했다. 이처럼 소박한 바람도 쉽게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조리원들은 전부 비정규직이고, 용접원들 역시 힘없는 하청 노동자. 기업이 손가락 한 번 까닥하면 날아가는 위태위태한 입지의 ‘형님, 누님’들이 남은 10년을 채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노동자가 물러간 현장엔 자동화 기계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추세다.

기업이 최대한 직원을 보호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회사가 큰 위기에 처하면, 혹은 그 징조가 보인다면 어떡해야 할까? 이때 노동자는 그야말로 앞이 캄캄하다. 당장 경력만큼의 돈은 못 받는다 한들 이직이라도 해야 할 텐데, 정년 10년 남짓 남은 ‘형님, 누님’ 세대는 회사에서 좀처럼 받아주질 않는다.

취업 성공 패키지로 용접을 배울 당시, 같은 시기에 학원으로 들어온 ‘형님’들을 꽤 보았다. 그중 한 분의 사정을 들어보니, 한 회사에서 10년 넘게 cnc 선반 조작을 하다 부도나서 용접이라도 배우러 왔다고 하셨다. 안타깝지만 이 형님이 용접으로 새 취업에 성공하는 기적 따윈 없었다. 취업 성공 패키지는 어디까지나 겉핥기였고, 기업은 50대에게 실무를 다시 가르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국 중년의 취업 활동은 한때 취미생활로 끝난 셈이었다.

이런 경우를 사전에 방지할 만한 해법은 결국 직업교육이라고 본다. 당장 내가 일하고 있는 창원 공단을 쭉 둘러보면 스마트 공장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는 게 보인다. 경남에서도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매우 훌륭한 정책이라 생각하지만, 동시에 기계가 대체할 노동에 종사하는 분들을 구제할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 일학습 병행제 같은 뜨뜻미지근한 방식이 아닌, 제대로 된 정책을 밀어붙여야 한다. 마침 지방 대학이 소멸 위기라고 한다. 이를 살릴 방법이 없다면, 거대한 직업교육원으로 탈바꿈시키는 건 어떨까? 노동자가 제대로 된 설비가 갖추어진 대학 건물에서 주경야독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주는 건 어떨까?

현대는 무한 경쟁의 시대다. 고졸 기능공이 종신까지 일하는 모델은 21세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 노동자의 전체적인 기능, 기술 수준을 끌어올려야만 개인도 기업도 생존할 수 있다. 직업교육을 확대하고 지원하면 비단 중년 노동자들의 구제책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직급 없는 ‘형님과 누님’들, 정치권 외면 말아야

정부와 여당은 4050 세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근데 정작 지방 제조업 현장을 떠받치고 있는 중년들의 현실은 자꾸 외면하려 든다. 야당 또한 마찬가지다. 당장 경남권만 한정해서 보자면, 부울경 통틀어 여당 의석수가 7석인데 야당은 32석이다. 훨씬 큰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이들을 위해 목소리 내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심지어 새로 뽑힌 당대표는 청년 문제에만 꽂혀 지방 제조업 현장의 중심인 4050 세대는 사실상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있다.

이렇듯 정치권이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에만 집중하는 동안. 특히 지방 제조업 현장을 지키는 4050 노동자들의 건강과 고용유지 문제는 주류 담론에서 아예 배제당하는 중이다.

형님과 누님들은 오랫동안 묵묵히 골병든다는 제조업 현장을 지켜왔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연마한 책임감과 성실함은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었고, 코로나19 와중에도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는 동력이 됐다. 지금처럼  자기만 어렵다며 연대를 거부하는 ‘각자도생’의 난장판 속에서도 한 발 뒤로 물러나 주었다. 이들의 말 없는 배려가 한국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는 데 밑바탕이 되어 주었음을 확신한다.

우리가 탄 사회라는 배, 국가라는 배는 수많은 형님과 누님들이 감내하는 힘겨운 노질 덕에 가라앉지 않고 떠 있다. 이들이 계속 일터에서 건강하게 노를 젓고 일상의 행복과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란 문제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를 개선하거나 바꿔나가는 일이다. 정치권이 20대를 챙긴다는 핑계로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지방 제조업 중년 노동자들의 건강과 일자리 문제는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는 분위기다.

형님과 누님들은 꾹꾹 참다 결국 술자리에서 혼잣말 같은 한탄을 털어놓는다.

“IMF 얻어맞고 간신히 선진국 만들어 놨더니 우리 세대 이야기는 입도 뻥끗 안 하더라.”
“청년 이야기는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던데 우린 뭐냐.”
“어디 가서 이런 소리 하면 또 꼰대들 배부른 소리라고 입에 재갈 물린다.” 등등.

백 번 공감한다. 이런 이야기에 공감하고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아내야 할 국민의 대리인들은 지금 대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천현우 필자

본업은 용접공. 전문대 졸업 전후로 여러 중소기업을 돌아다니며 일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소설가를 꿈꾸며 계속 도전하고 있다. ‘쇳밥 먹는 청년 노동자’를 자칭하며, 지방 제조업 현장의 목소리와 수도권 외 청년들의 현실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글쓰기에도 매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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