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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중 칼럼] 신문을 떠나 나이 오십에 ‘파스타’라는 바다를 발견했다

by | 2021년 7월 9일 | 위크엔드 컬처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의 아스티에 있는 요리학교(ICIF)와 권은중 필자.

잘 다니던 언론사를 관두고 불현듯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났다. 오십대에 접어든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겨레신문 기자였던 권은중 필자는 인생 2막의 결단을 동료들보다 빨리 내렸다. 정년 퇴직이 아닌 중도 퇴직을 감행했고 ‘셰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탈리아에 가서 외국인을 위한 요리학교(ICIF)에 입학했다. 이후 파스타와 볼로냐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이런 여정을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에 오롯이 담아냈다. 필자는 “나이 오십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인생 2막을 꿈 꾸는 이들에게 희망 메시지를 전한다. [편집자]

#신문기자 관두고 ‘이탈리아 유학’
  주방으로 이끈 건 엄마표 김치칼국수
#파스타-칼국수의 공통점은?
  만들기 쉽고 변주 많은 면발 음식
#레스토랑서 13시간 무급 인턴

  시칠리아·볼로냐에서 맛의 깨달음  
  코로나19 잠잠하면 어학연수 꿈

내가 20여 년 동안 해왔던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2019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 반응은 극단적으로 나뉘었다. 부럽다는 사람이 반이었지만 그 나이에 왜 사서 고생하느냐는 사람도 반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주로 후자 쪽이었다. 일단 어머니부터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가겠다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다 늙어 무슨 짓이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또 나를 잘 아는 아내도 비슷했다. 그런데 결이 약간 달랐다.
‘그래 너 맘대로 해봐라. 그래 봤자 집 나가면 너만 고생이다.’
나를 볼 때마다 아내는 표정으로써 늘 이런 묵언을 하고 있었다. 특히 내가 다녔던 신문사는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정년이 보장된 요즘 보기 드문 괜찮은 직장이었다. 나는 불효자인 동시에 철없는 남편이었다. 분수 모르는 직장인이었다.

반면 직장일이나 육아에 찌든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대부분 내가 부럽다고 털어놓았다. 그들은 끔찍한 노동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나는 내가 그저 부러웠을 것이다. 응원과 걱정을 동시에 받으며 이탈리아 유학을 떠난 데는 분명히 요리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만큼 요리는 재미있었다.

이탈리아 요리로 한식을 깨우치다

파스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내가 처음 도전했던 요리가 김치칼국수였다. 어릴 때 어머니가 우리 4형제에게 가장 많이 만들어준 음식이었다. 멸치로 국물을 낸 뒤 김치와 김칫국을 넣고 끓이다가 국수를 넣는 초간단 요리다. 곰국과 함께 내가 가장 많이 먹었던 엄마표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이대 앞 ‘가미’가 엄마표 요리의 깔끔 버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엄마표 김치칼국수가 나를 그렇게 부엌으로 당기기 시작했고, 그럼 내가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멸치로 육수를 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그래서 쉬운 요리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파스타였다. 파스타는 아주 간단한 공식으로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심지어 초보가 만든 것 치고 맛도 괜찮았다. 처음에는 주로 조개를 넣고 했는데 어떻게 하든 맛이 있었다. 조개를 굴이나 새우 등으로 바꾸고 면(麵)도 펜네, 링귀니 등 여러 가지로 바꾸는 변주를 계속했다.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한 해도 안 되어 내가 만들 수 있는 파스타가 수십 가지나 되었다. 이 공식을 김치칼국수에 적용해보니 바로 어머니가 해주셨던 그것과 비슷한 국수를 뚝딱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된장찌개나 콩나물무침도 거뜬히 할 수 있었다. 나는 파스타로 한식을 깨우친 이상한 요리 경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렇게 미친 듯이 요리를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나는 요리와 관련된 책들을 주르륵 쓰게 되었다. 첫 책인 <독학 파스타>는 열흘도 안 되어서 1000매 가량의 원고를 썼다. 그다음 책들도 당연히 음식 관련 책이었다. 신문기사가 나의 길을 내주는 게 아니라 파스타가 나의 길을 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사실 시간문제였다. 퇴사 후 내가 요리 유학을 떠나기로 한 곳은 당연히 나에게 요리의 길을 알려준 파스타의 고향인 이탈리아였다.

권은중 필자가 인턴으로 일한 레스토랑의 셰프 프랑코가 직원용으로 만들어준 타야린 파스타. 피에몬테 지방 고유의 음식이다. (사진=권은중)

파스타, 밀가루보다 오일·치즈가 중요

그렇지만 이탈리아에 가서 나는 넘기 힘든 벽을 만났다. 바로 파스타였다. 내가 다녔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는 이탈리아 북부인 피에몬테 주의 아스티에 있다. 학교에서는 내가 주로 만들었던 건면 파스타를 그렇게 많이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생면 파스타를 주로 가르쳤는데 나에게는 매우 생소했다. 특히 생면 반죽으로 라비올리를 많이 만들었는데 내가 옆구리를 많이 터뜨려 먹어서 나보다 스무 살 어린 학교 셰프에게 엄청나게 깨져야 했다.

이탈리아에 가서야 파스타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달았다. 파스타에서 중요한 것은 오일과 치즈였다. 밀가루가 아니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화두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오일과 치즈를 대단히 세부적으로 나누어 조리에 사용했다. 샐러드와 파스타에 쓰는 오일·치즈가 달랐다. 심지어 북부와 남부의 올리브 오일이 맛도 향기도 다르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탈리아에 가서야 내가 파스타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 다니는 내내 “네가 파스타를 알아” 라는 죽비를 얻어맞고 다닌 셈이다.

“타야린만 배우면 노후 걱정 없겠구나” 

파스타도 치즈도 오일도 잘 모르는 상태로 나는 또 한 번 내던져졌다. 레스토랑에서의 인턴 수업이었다. 토리노의 인턴 레스토랑 ‘라 베툴라'(자작나무란 뜻)에서는 하루 13시간의 강도 높은 무급 노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레스토랑 인턴을 하면서 두 달 만에 무려 8kg이나 빠졌다. 주말마다 계속되는 연회는 나이 오십의 나를 거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유학 오기 전에 틈틈이 운동을 해 몇 년에 걸쳐 만든 내 몸이 무너지는 데는 보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라 베툴라’의 프랑코 셰프는 인턴들보다 더 먼저 나오고 더 늦게까지 일했다. 무슨 무쇠 인간 같았다. 셰프도 날 보고 “너 기자였다며? 그런데 기자나 하지, 왜 이런 전쟁터에 들어왔니”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징용살이 같은 무급 인턴 생활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의 하나가 프랑코가 직원들 식사용으로 말아주던 피에몬테 지방 파스타였던 타야린(Tayarin)이었다. 프랑코의 타야린은 보들보들하고 우아했다. 세이지와 로즈메리를 우리나라 삼계탕에 엄나무 넣듯이 넣어 끓인 그의 라구 소스는 강렬했다. ‘이 타야린만 배우면 내 노후가 걱정이 없겠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채소를 다듬고 생선을 포 뜨고 새우껍질을 까야 하는 인턴이었다. 제면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 내 발에 질긴 가죽으로 만든 신을 신겨 놓고 “그 가죽신이 닳아 떨어질 때까지 너는 스스로 원하는 파스타를 만들 수 없다”라는 주문을 건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타야린을 만들어보지도 못하고 인턴을 마쳤다. 파스타를 찾아서 이탈리아에 왔지만 나는 오히려 길을 잃어버린 듯했다.

이런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여행이었다. 인턴 후 나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시칠리아 팔레르모와 아스티 인근의 볼로냐에서 각각 한 달씩 머물렀다. 이탈리아 20개 주와 107개 현 가운데 두 곳을 선택한 것은 학교에서 만난 이탈리아 셰프들의 추천 덕분이었다. 시칠리아는 ‘미식의 조국’, 볼로냐는 ‘미식의 수도’라고 불린다. 두 곳이 왜 이렇게 불리는지는 직접 가서 한 끼만 먹어봐도 금세 알 수 있다.

시칠리아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음식의 풍경을 봤다. 올리브 농장이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 시칠리아의 올리브 숲은 장관이었다.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이 왜 포세이돈의 말 대신 아테나 여신의 올리브를 신의 선물로 선택했는지, 로마의 시조인 로물루스가 왜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올리브나무에서 딴 올리브를 맷돌로 갈아 갓 짠 올리브유에 트라피니 소금과 허브인 오레가노를 뿌려서 갓 구운 시골빵에 찍어 먹으면 그 비싼 캐비어나 푸아그라 따위가 필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식의 천국’에서 먹는 치즈 이름은?

볼로냐 여행에서는 파스타에 대한 심화학습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도시에서 학교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이탈리아 치즈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볼로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비싼 경성 치즈인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로 유명하다. 이 치즈는 중세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16세기 라틴어 교재에 “나는 오늘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먹을 거야”라는 예문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이 치즈는 음식이라면 지기 싫어하는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수입할 정도로 세계적 명성이 높다.

볼로냐 식당에선 이 유서 깊은 치즈를 파스타와 샐러드에 아낌없이 뿌려서 내놓는다. 나는 볼로냐에서 이 치즈를 먹어보고 왜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상상 속의 ‘미식의 천국’에서 “사람들이 파르미지아노 치즈로 만든 산에서 빈둥거리며 라비올리를 먹고 수프를 끓여먹었다”고 썼는지 알 것 같았다.

볼로냐가 주도로 있는 에밀리아로마냐 사람들이 치즈에 들이는 정성은 효율을 중시하는 미국 중심 세계관을 가진 여행자에게는 꽤 신기한 일이었다. 우선 소에게 사료가 아닌 풀만 먹인다. 겨울에도 발효한 풀을 주지 않는다. 치즈를 만들 때 천연 응고제인 레닛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그래야 조상들이 먹었던 치즈와 똑같은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볼로냐 사람들은 대단한 고집쟁이인 셈이다.

“단순하면서 복잡, 복잡하면서 단순”을 체감

파스타도 특이했다. 고기를 토마토 소스로 요리한 볼로네제 파스타만 해도 이미 독특한데 우리나라의 만둣국처럼 국물에 꼬마 라비올리를 말아먹는 토르텔리니(tortellini)는 다른 어떤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음식이었다. 이 음식은 볼로냐의 명절 음식이었다. 볼로냐 골목 어디를 가든 이 만두를 만들어 파는 데다, 주말이면 가족들이 모여 식당에서 이 만둣국을 먹는 정겨운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볼로네제(볼로냐 사람)에게 음식은 자신의 자존심인 동시에 정체성이었다.

요리와 관련된 이탈리아 격언 가운데 내가 이해 못했던 것이 있다.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것이 이탈리아 요리”라는 말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오일과 소스 그리고 치즈를 끼얹은 파스타 한 그릇은 그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눅진한 이탈리아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이탈리아 음식이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까닭이었다. 주방에서 배울 수 없었던 파스타에 대한 갈증을 나는 볼로냐 거리를 여행하며 채울 수 있었다. 비록 인턴을 하며 느낀 육체적 한계 탓에 오너 셰프의 꿈은 가물가물해졌지만 나이 쉰에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온 것이 아주 잘못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19년 말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오자마자 2020년 3월 다시 이탈리아로 가려고 마음먹었다. 이번에는 요리학교가 아니라 어학연수를 다녀올 생각이었다. 목적지는 당연히 볼로냐였다. 이탈리아 표준어는 토스카나어인데 로마어가 아니라 토스카나 말이 표준어가 된 것은 단테의 <신곡>덕분이었다. 단테는 볼로냐대학 출신이었다. 볼로냐에서 어학연수를 마친 뒤에는 마을마다 신화와 전설이 가득한 시칠리아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싶었다. 에트나 화산이 꿈틀거리는 시칠리아의 강렬한 음식과 와인을 탐닉해보고 싶었다. 아직도 기승인 코로나19가 하루 빨리 잠잠해져 이탈리아로 가는 하늘 길이 수월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권은중 필자

20년간 해오던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요리유학을 다녀왔다. 유학 시절엔 요리 스킬보다 올리브유, 치즈, 살루메, 와인 같은 식자재에 끌려 올리브 과수원, 치즈 공장, 와이너리 등을 열심히 찾아 다녔다. 개별 음식보다 그 음식을 이끌어내는 식생, 역사, 문화 등에 관심이 많다. 출간한 책으로는 <독학파스타>, <10대를 위한 음식인류사>, <음식경제사>,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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