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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묵 강연] 90년대생들의 ‘시대와 불화’ 안다고 말하지 마라

by | 2021년 6월 24일 | 정치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2주기를 맞은 2018년 5월 17일 서울 동작구 여성플라자 성평등도서관 ‘여기’ 안에 마련된 ‘기억ZONE: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은 한 여성이 포스트잇 글들을 읽으며 피해여성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7 보궐선거와 이준석 국민의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90년대생들’의 선택에 관심이 쏠렸다. 한국 정치의 새로운 ‘스윙보터’인 2030세대들은 기성세대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존재감을 과시했다. 임명묵 작가는 1994년생으로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 재학 중이다. 최근 <K를 생각한다>는 책을 출간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추월의 시대>를 맞이한 한국 사회를 다양한 각도에서 성찰하고 각종 쟁점사안과 모순구조를 젊은 세대의 독특한 시각에서 분석했다.임명묵 작가는 최근 국회 여당 관계자들의 초청으로 진행된 특강에서 ‘90년대생’과 젠더 갈등을 주제로 한 발표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5060세대들이 좀체 이해하기 힘든 2030들의 세계를 잘 설명해준다. <피렌체의 식탁>은 이날 특강에서 오간 대화 내용을 요약·정리했다. [편집자]

#세계화, 정보화 시대 속 90년대생
  좁혀진 거리감에 계층 격차 체감
#온라인 커뮤니티 모여 정체성 형성
  짱돌 던지는 대신 ‘좌표’ 찍고 댓글
#소수 전사 집단, ‘젠더 전쟁’ 극대화
  여론 폭발하자 윗세대, 정치권 편승
#온라인 문법이 여론과 정치를 주도
  커뮤니티 간 갈등을 간과하지 말라

저의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인 2010년대는 한류를 통칭하는 K콘텐츠의 엄청난 성장과 세계적 확장이 있었다. 또한 온라인 내에서 커뮤니티 전쟁이라는 흐름이 생겼고 오프라인으로도 확산됐다. 두 개의 공통점이 있는데 이게 ‘투쟁심리’다. 즉 상대를 적으로 설정하고 승패나 우열을 가리려는 심리가 깔려있었다.

한류랑 투쟁심리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데 아이돌 그룹의 성장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대에 만개한 K콘텐츠 저변에는 각 콘텐츠 팬덤 사이의 투쟁들이 펼쳐졌다. 음악 차트에서 순위를 올리기 위한 팬덤 간의 치열한 문자투표나 이른바 ‘광클’ 등이 그런 예다.

K콘텐츠·커뮤니티 확산과 ‘투쟁심리’ 

아이돌 그룹뿐만 아니라 웹툰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사실 웹툰은 내용 자체가 투쟁적이었다. 별 볼일 없는 주인공이 사회적 사다리를 타고 급격히 신분이 상승해 무언가를 성취해 내고 적대적 세계와 투쟁해 나가는 내용들이 많았다. 이런 면이 일본 콘텐츠와 차별됐다. 온라인에서 투쟁하는 것과 콘텐츠 내에서 투쟁하는 서사가 흡사했다. 즉 2010년대의 10대와 20대들은 이미 온라인 내에서 각자 편을 갈라 몰입해 집단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소위 운동권이었던 기성세대들이 지금의 20대들을 보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에 대해 왜 짱돌을 들지 않느냐며 힐난하지만 우리는 댓글로 싸우고 있었다고 항변한다.  아이돌 팬덤끼리 순위를 경쟁하고 웹툰을 몇 개 보느냐 마느냐로 우열을 나누고 나아가 남녀 간 서로 반목하고 싸우게 한 동기는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심리적 불만족과 불안, 열등감 등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들이 핵심이었다. 그 감정들을 에너지로 해서 이른바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에서 서로 전쟁을 벌였고 거기의 개별 사안의 승리에 따른 효능감과 만족감을 얻었다.

이런 사회적인 흐름이 2010년대에 벌어지고 있었고 지금 20대와 30대 초반이 된 당시 10대들의 콘텐츠 소비 문법이 다른 세대로 전염이 되었다. 즉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갈등이 심화되고 확산되는 과정이 2010년대에 있었다는 것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90년대생의 생애 키워드: 세계화, 정보화

그리고 90년대생의 생애 경험을 살펴봐야 한다. 21세기 이후 세계적인 트렌드는 세계화와 정보화였다. 이 과정에서 각국의 산업적인 서플라이 체인이 완전한 재구조화 됐다. 단순 제조와 R&D로 나뉘고 고부가가치 산업은 선진국 내에서도 세계와 접점이 있는 몇 곳의 도시들로만 몰렸다. 단순 제조업은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으로 옮겨갔다. 선진국 내에서도 공간적 분리가 심화되었다. 선진국 안에서도 수출 호황을 맞은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등으로 이원체계가 만들어졌다.

현재 한국 사회의 상층부에 있는 이들은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까지 중국 경제의 성장에 편승해 경제적 이익을 확보했다. 여기서 한국의 60년대생들이 나뉘었다. 대학 졸업 후 수출 중심의 대기업이나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던 이들은 경제적 이득을 바탕으로 자녀들에게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물려줄 수 있는 환경과 동기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60년대생들이 그렇게 기득권이 되진 않았다. 세계화의 영향력과 양극화가 맞물린 상황에서 기득권이 갈린 60년대생들의 자녀로 태어난 이들이 지금의 20대, 혹은 90년대생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20대 남성들의 피해의식이나 여성들의 가부장적인 것들에 대한 거부감의 표출은 세계화의 맥락에서 봐야 하고 또한 각자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정보화 트렌드의 심화도 같이 봐야 한다.

PC만 해도 1990년대 초반에 보급이 되긴 했지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던 환경 자체가 보편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생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데스크톱은 그나마 아날로그적이었다. 하지만 모바일 시대 오면서 엄청난 변화가 왔다. 스마트폰 만들어낸 변화는 밥 먹을 때 풍경을 보면 된다. 각 가정에서 식사할 때마다 “휴대폰 내려놓으면 안 돼?”라는 잔소리가 보편적인 풍경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컴퓨터는 온·오프가 있었다. 끄고 있을 때와 켰을 때가 구분이 됐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이제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성인이 아닌 유년시절부터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였던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과정에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톡 같은 앱이 등장했다. 이것이 가지는 함의는 원래 인간은 서로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데 그 거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타인의 삶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됐다. 가령 엄청나게 비싼 소고기를 먹고 그 소고기 먹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자랑할 수 있게 된다. 계층 격차를 본격적으로 체감하게 된 세대가 90년대생과 지금의 20대들이다. 그런 세대들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타인의 삶을 0의 거리에서 관찰하게 됐다. 그리고 타인과 비교에 따른 압박감. 이런 외부 압력은 콘텐츠 소비를 폭발시키는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것이 온라인의 커뮤니티로 모여서 여론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갔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2010년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다.

커뮤니티 전쟁, 정체성과 서사를 만들다

특히 기성세대들은 2010년대에 벌어진 온라인 커뮤니티 간의 갈등을 간과하면 안 된다. 오프라인에서의 모임이나 학교에서의 모임은 이질적인 사람들이 섞일 수 있다. 다양한 사고방식을 체감할 수 있고 자신의 위치를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좋아하는 이야기만 할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파편화는 자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게 되고 동질성을 강화시켜주는 배경이 됐다. 이 과정에서 여초와 남초 커뮤니티가 갈라졌고 거기서 서로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기고 거기서 피해서사가 파생됐다. 문화콘텐츠는 이 지점에서 따라 갈렸다. 통상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문화콘텐츠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런 경향이 더 심해졌다.

커뮤니티 안에서는 여론을 모아 불매운동, 댓글 테러 구체적인 행동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일진일퇴의 전투처럼 벌어지게 된 것이다. 남녀 갈등은 예능프로그램인 MBC의 <무한도전>을 두고도 났다. ‘노홍철 장가보내기’ 콘셉트로 프로그램이 나왔는데 여초 커뮤니티에서 이를 두고 성차별적인 관점으로 공격했고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여초 커뮤니티에서의 항의 탓에 프로그램에 자체 검열이 생겨 재미없어졌다며 여초 커뮤니티를 공격했다. 이후에 사회 이슈들. 대림동 살인사건, 강남역 사건(20대 여성이 화장실에 잠복해 있던 모르던 남성에게 강남역 복판에서 대낮에 살해당한 사건), 이수역 사건(여성들이 술집에서 폭력을 당했다며 SNS에 이를 이슈화 했지만 막상 무고로 드러난 사건) 들이 터져 나왔다. 이런 과정에서 기성세대들이 접하는 온라인 공간인 포털은 그저 뉴스를 접하는 곳이었고 사건에 따른 여러 가지 사회적 행동과 서사는 정작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누적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내의 여론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물론 상당 부분은 그럴 수 있다. 중요한 건 온라인 커뮤니티 내 조직된 소수가 이른바 투쟁의 전략을 짤 수 있는 전사 집단으로 거듭난다는 점이다. 그런 집단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소위 넷상에서 남녀 간 천년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여러 가지 커뮤니티에서 이른바 ‘좌표 찍기’(온라인 주소 공개)와 화력지원(온라인 사이트에 가서 댓글을 쉴 새 없이 다는 것, 혹은 민원을 제기하는 법)이라는 여론 전술법이 생겼다.

서로 반목하던 남초와 여초 커뮤니티에서 국·공연합 같은 걸 맺은 게 있는데 바로 JTBC의 <조선구마사> 종영 사태다. 남초와 여초 커뮤니티에서 반중 정서로 뭉쳐 <조선구마사>의 역사왜곡 등을 공론화했고 일종의 사이버테러를 통해 종영시켰다.

90년생 커뮤니티 내 전사들이 커뮤니티를 벗어나 온라인에서 전사가 됐다. 2015년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사이트인 메갈리아가 탄생했다. 메갈리아는 디시인사이드의 아이돌 커뮤니티에서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여초 커뮤니티가 각성해서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났다. 20대 여성들이 주도했고 3040대 여성주의 활동가들이 환호하면서 따라붙었다.

온라인 문법, 여론과 정치권 주도할 듯 

20대 남성들은 마이너리티 감성, 열등의식이 심어져 있다. 이준석 돌풍은 인터넷 방송 문화의 영향이 컸다. 각종 커뮤니티에 실시간으로 이준석의 토론 모습이 전해졌다. 이준석 본인의 목소리라기보다 20대 남성을 대변해주는 아바타 같은 역할을 했다. 20대 남성들이 결집해서 만든 목소리를 대리하는 일종의 스피커였다. 이준석의 말과 글은 온라인 콘텐츠에서 나오는 문법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러니까 보수적인 60대와 70대들이 오히려 이준석에 따라붙었다. 윗세대들이 청년층의 흐름에 편승하게 된 것이다. 젊은층들이 주도해 여론을 만들어내고 고도로 정치화된 콘텐츠와 커뮤니티 엔터테인먼트 방법으로 여론을 폭발시키고 이끄는 상황이 앞으로도 정치적 국면에서 벌어질 듯하다.

최근 흥미로운 기사를 봤다. 중국 매체에서 ‘K팝이 정치적 혼돈을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기사였다. 그 기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반(反) 트럼프 운동과 동남아 반정부 시위의 주된 행동대원들이 바로 K팝 팬들이었다. 태국에서 블랙핑크의 노래를 부르면서 젊은이들이 민주화 시위를 했다. 586 운동권들은 동남아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한국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린다고 자랑스러워했지만 실제로는 블랙핑크 노래가 많이 불린다.

사실 세계화와 정보화에 따른 심리적 위기와 온라인 대중운동의 형성을 가장 집약적으로 겪은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제 서구에서 따라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트럼프 당선은 트럼프의 이념적 지향점과는 별개로 한국에서의 노무현 현상과 본질적인 측면에서 비슷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당내 조직이 없었지만 온라인을 통해 열성 지지자를 자발적으로 규합했고 본인 스스로가 대중연설에 탁월했다. 당시 민주당 내부와 보수 정당과 모두 싸우면서 대권을 잡았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벌어졌던 노무현 현상이 시차를 두고 미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사실 정보 미디어 수용에 있어서 한국이 엄청나게 빨랐다. 따라서 한국에서 선행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미투 운동의 경우 미국에서는 2018년에 벌어졌다. 하지만 이미 2016년 한국에서 문화계 성폭력 폭로가 일어났다. 이런 사례를 보면 고도 미디어, 고도 정보화 사회로서 한국이 서구보다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90년대생들이 만들어내는 현재 한국 사회의 변화는 어쩌면 전인미답이고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도 한국은 ‘퍼스트 무버’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임명묵 작가(사진=김용운)

다음은 주요 질문과 대답을 요약 정리한 내용이다.

▲스윙보터로 떠오른 20대 남성들에게는 어떤 것이 의식에 영향을 미쳤을까?

-저 같은 경우 청소년기에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했지만 지금 10대는 아예 스마트폰 세상에서 태어났다. 이는 남녀 마찬가지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지금  20대 남성들은 성장과정에서 권력자가 여성들이었다. 우선 집에서는 엄마의 권력이 강하다. 학교에는 여자 선생님들이 다수다. 게다가 뛰어난 동급생은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심지어 여성 대통령도 봤다. 그래서 요즘 가장 첨예한 이슈가 성평등 교육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강당에서 했는데 교육이 끝나자마자 의자는 남학생들한테만 치우라고 해서 남학생들이 자기들 표현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남학생들은 그 상황에서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래서 성(性)적 표현 문제 등이 20대 사이에서는 첨예한 갈등 지점이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낙태가 되는 데 리얼돌이 안 되는 세상이 어디 있냐?’는 논리가 만들어지고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성폭력 문제와 이를 유발하는 사회의 구조에 대한 학습과 남성들에 대한 대응 논리가 만들어진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서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젠더 갈등 이슈에 대해  사실상 언론계와 학계는 페미니즘으로 합의를 했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20대 남성들은 이 문제를 놓고 게이트 키핑 당하는 것에 열 받아한다. 가령 2018년 여성들이 주도로 참여한 ‘혜화역 시위’에서 게임 방송을 하는 남성 유튜버가 실시간 중계를 하며 본인의 모습과 함께 시위에 나온 여성들의 모습을 찍어서 공개했다. 그 유튜버는 시위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은 초상권 보호에서 예외가 되고 그 시위하러 나온 본인을 스스로 찍어 알리는 게 무슨 문제냐? 는 논리로 현장을 중계한 것이다. 그래서 남성들 사이에서 영웅이 됐다.

현재 남초 커뮤니티에 핫한 건 20대와 40대간 갈등이다. 20대는 반민주당으로 결집해 있는데 40대는 민주당 지지자가 많다. 20대 남성과 40대 남성은 서로 적으로 간주한다. 20대 남성 커뮤니티와 40대 커뮤니티가 분리되어있는데 20대들은 40대를 ‘진보 대학생’이라고 놀리고 40대들은 20대를 피해의식에 절은 머저리라고 놀린다. 남성 안에서는 20대와 40대 갈등이 첨예하다. 50대만 해도 온라인 커뮤니티 안 해서 그런 듯싶다. 다만 남남 갈등이 젠더 갈등 수준으로 확대될 거 같지는 않다. 20대와 40대의 갈등은 정치적인 대결이기 때문이다.

▲성폭력 문제는 여성들이 피해의식 차원이 아니라 생존에 걸린 문제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그리고 여성 징병에 대한 찬성이 2030 여성들 사이에서 높았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젠더갈등에서 여성 징병제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성폭력범을 처벌하는 것 자체는 남성들도 저항이 없다. 남성 일반을 성폭력의 잠재적 위험군으로 설정한다던지 그런 설정을 기반으로 한 정책들에 대한 반발이 강력하다. 성폭력 문제를 보면 남성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긴 하다. 문제는 그것을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방식의 언어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이 풀어야 할 문제로 정책 포지션을 잡아야 한다.

남성들은 여성이 징병되지 않는 한 계속 군대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인구 감소 추세다 보니 과거와 달리 세대 전체가 징병이 될 상황이다. 실제 입영 대상 중 90%가 징병되고 있다. 다만 여성 징병에 대한 찬성 비율이 이외로 여성들 안에서도 높았다고 하는데 이건 진지한 게 반영된 게 아니다. 이게 실현된다면 젠더 문제 관련해 대격변이 있을 것이다.

남성 입장에서 여성 징병된다고 하면 다시 군대 내 보직을 문제 삼을 것이다. 여성들 입장에서는 최근 공군 부사관 성폭력 사건처럼 군성폭력을 문제 삼을 것이다. 여성 징병이 되면 군성폭력 문제가 지금보다 작아지진 않을 가능성이 커서다. 그렇다면 여성들 입장에서는 군대도 가는 데 갔더니 성폭력 문제 예방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뭐냐? 하며 반발할 것이다. 이런 식의 상호 또 다른 피해의식을 자극하면서 서로 지지고 볶을 것이다. 사실 꼬이고 꼬인 문제다. 어려울 것 같다.

젠더 갈등은 서로의 피해의식에 기반 한 집단 전쟁 즉 정체성 전쟁이다. 20대 남성·여성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서사가 있다. 서로의 피해의식을 어떻게 완화시키고 대화의 공통 지반을 마련해야 할지 그거부터 고민해야 한다. 정체성에 대한 피해의식의 미디어 회로에 들어서면 그걸 완화하기 어렵다.

▲젠더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가부장적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중화학 위주의 생산구조가 쇠퇴하고 서비스산업이 약진하면서 여성이 부상했다. 이런 트렌드가 지속되면 여성들의 우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 이게 어떤 모습일지는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이 실험을 해보고 있다. 단적인 예가 한류의 핵심은 여성들이 보는 콘텐츠다. 한류는 기본적으로 여성을 향한 콘텐츠였고 그게 세계를 제패했다.

모바일 시대로 오면서 자기가 원하는 콘텐츠를 보게 된다. 웹툰이나 웹소설의 경우 성별에 따라 선호하는 게 다르다. 남자는 성장 서사를 통해 주인공이 누군가를 지배하고 이를 확대하는 콘텐츠를 좋아한다. 반면 여자는 로맨스물을 선호한다. 남녀 간의 복잡한 애정 관계와 그 안에서 밀고 당기기를 담은 콘텐츠가 일종의 문법이 됐다. 한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에 다른 나라 여성들이 환호하면서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한국 여성들이 국제적인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초유의 시대다.

그렇다 보니 또 흥미로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예전에는 한국 팬클럽이 K팝 종주국이니까 인정해줬는데. BTS의 경우 북미 아미가 한국 아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너희가 종주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케이팝을 둘러싼 표준 전쟁을 하고 있다. 가령 K팝은 미국의 히스패닉 흑인들이 많이 본다. 한국 아이돌은 하얗다. 그렇다 보니 외국에서 한국 아이돌 이미지를 조작한 거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되자 한국 팬들이 오히려 백인들이 홍인이고 우리들이 진짜 백인이라며 맞받아친다. 이런 소규모 커뮤니티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여기서 이기면서 현실의 대리만족을 한다.

다시 20대 여성 이야기로 돌아와서 한국에서는 20대 여성들이 여론 주도하고 여성 3040세대가 이를 지지하면서 유기적인 정책담론 생산 구조가 만들어졌다. 20대 남성들의 경우 사회 표준 자체가 성인 남성이다 보니 자신들의 피해의식에 대해 정작 다른 성인 남성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즉 기성세대들이 20대 남성들의 피해의식을 보면 ‘뭐야 남자답지 못하게’ 이런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20대 남성들의 여론을 백업해주는 남성들이 없으니까 오히려 20대 남성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여성들은 정책 생태계를 구축했고 남성들은 그렇지 못했다.

<추월의 시대>의 공저자인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이 4월 재보궐 이후 20대 남성 여론 조사를 한 것은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 불만에 기반한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개선할 것인가. 남성들의 불만을 개선하고 정책을 개발할 의제 그룹이 있어야 한다. 젊은 남성들의 피해의식을 인정하고 그걸 타도하라가 아니라 어떻게 개선해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말이 나오면 여성계에서는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지점에서 젠더 갈등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으로 본다. 어쩌면 젠더 갈등은 엔터테인먼트와 축구 경기 같은 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갈등을 해소하기가 더 힘들 수 있다. 게다가 실제의 전쟁은 끝나고 나서 서로 지쳐 평화를 추구하지만 젠더 갈등은 오히려 정치로 들어오면서 상호간 공격할 수 있는 엄청난 힘으로 작용했다.

사실 과거에도 커뮤니티 안에서 젠더 갈등이 있었고 서로 간 이런저런 온라인 베틀이 있었다. 이런 히스토리들이 계속 누적되었지만 그동안 메인스트림에서는 신경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재보궐과 이준석 당선, 정책의 변화 등으로 현실화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여론을 만들고 끌어갈 수 있는 훈련된 집단이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란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그리고 결혼은 1차 노동시장(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직업들이 고임금, 장기 고용관계, 좋은 근로조건, 승진 기회와 합리적인 노무관리를 누릴 수 있는 추상적인 직업시장)에 편입한 사람들이 획득할 수 있는 지위가 됐다. 1차 노동시장에서도 결혼할 수 있는 집단과 여기서 배제된 집단이 생길 것이고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한 이들은 콘텐츠 소비에 좀 더 돈을 쓸 것이다. 그래서 콘텐츠 분야는 젠더 갈등의 굉장한 전쟁터가 될 것이다. 때문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문제를 정부에서도 들여다봐야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젠더 갈등이 해결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완화는 될 것이다. 취업도 잘되고 경제 성장도 잘해서 내가 저축도 하고 자산을 쌓을 수 있다면 갈등이 첨예해지진 않을 듯하다. 문제는 지금의 10대들이다. 이들은 우리 세대보다 젠더 갈등이 더 심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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